소설리스트

〈 2화 〉002화 (2/112)



〈 2화 〉002화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성여은은 현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를 했다.

그리고  신고가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난 이후, 그들은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덮어버리기로 결정했다.

선거가 끝날  까지 현수를 감옥 속에 가둬놓고, 재판을 최대한 조용히, 천천히 진행시켰다.

선거가 끝나고 난 이후, 그들은 이 이상 무고한 현수를 붙잡고 늘어질 수 없었기에 현수를 풀어줬지만, 이번엔 새롭게 잡게 된 권력을 이용해서 현수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한다.]

가정이지만, 확신이 들었다.

현수는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제 경고를 무시하면 당신과 당신 가족은 지금의 처지마저 그리워하게 될 겁니다.’

현수의 머릿속에는 박혁수의 경고가 끊임없이 맴돌았다.

자신의 삶이라면 전부를 던져서라도 명예를 되찾고 싶었다.

그러나 가족까지 다치게 할 순 없었다.

성폭행범의 부모, 동생이라는 이유로 일상이 무너져버린 그들이었다.

현수는 차마 이것보다  힘든 삶으로 가족들을 내몰 수 없었다.

그렇게 현수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그날 이후, 법은 현수를 성범죄자가 아니라고 했지만, 세상은 그를 성범죄자라 손가락질했다.

현수가평생을 살며 이룩한 모든 기록은 통화기록 하나만 못했다.

학창시절은 항상 1, 2등을 다퉜고, 다니던 학교가 마음에 안 들어 재수를 해서 한국대 의대에 들어갔고, 앞으로 2년 남짓만 고생하면 전문의가 될 수 있었다.

심지어 교수로부터 조교수 제안까지 받은 상태였다.

그 모든 노력의 결실들이, 고작 통화기록 하나에 전부 무너졌다.

자신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여동생 때문에 집과는 거의 의절 상태였고,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받았던 학자금대출은 의사가 되지 못한 현수의 목을 점점 죄어왔다.

심지어 잘생긴 외모가 독이 되어 SNS에 잘생긴 성범죄자로 낙인찍혀, 손가락질하는 통에 대부분의 일을 할 수도 없었다.

그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그나마 신분에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일용직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근근이 살아갔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하루에도 몇 시간씩 쬐던 햇빛과 알코올중독으로 그의 빛나던 외모는 이제 마스크를 벗고 다녀도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노가다 판에서 그는 젊은 학생들이 보이면 항상 같은 레퍼토리로 여자를 조심해야 한다고 훈계했고, 자신의 젊었을 적 찬란했던 과거를 더욱 부풀려 자랑했다.

찬란한 미래가 약속되었던 그가 이제는 공사판에 흔히 보이는 허세 가득한 노가다 꾼이 되어있었다.

현수는 그나마 일할 때가 좋았다.

일이 끝나고 돌아오면 끊임없이 그날 주워준 휴대폰이 생각났고, 추운 겨울바람도 현수의 뜨거운 분노를 가라앉혀 주지 못했다.

“자, 다들 모이세요.”
“아저씨, 모이래요.”

쉬는시간이 끝나고 상념에서 깨어난 현수는 벗어둔 안전모를 들고 터벅터벅 걸어갔다.

“어, 어!”
“야! 피해!”
“아저씨!”

갑자기 난리법석을 떠는 사람들에 놀라며 현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분명 태양과 구름만이 보여야될 하늘에 척봐도 무거워보이는 물체가중력의 힘을 고스란히 받으며 현수의 머리위에 내려오고있었다.

순간 현수는 어렸을 때부터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아…. 이렇게 인생이 억울해도 되는 거야?’

찰나의 순간에 드는 감정은, 억울함과 분노, 그로 인한 후회였다.

‘X같네.’

현수는 다짐했다.
다음 생이라는 것이 만약에 존재한다면, 이번 생과는 다르게 살 것이라고.

떨어지는 낙하물에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그대로 즉사한 현수는 짧은 인생을 마무리 지었다.

아니, 지은 줄로만 알았다.

. . .

뻐억.
통증은 없었다.
그저 무언가가 머리를 산산조각 내는  같은 더러운 감각과 함께, 현수의 시야는 암전됐다.

‘이제 죽는건가.’

죽음 이후의 세계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현수가 알 턱이 없었다.

그러나 현수가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사후세계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부분이었다.

분명히 그는 죽어야 마땅했고, 그럼에도 그는 아직도 정신이 살아있었으니까.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현수는 혼란스러운 생각에 잠긴 채로 캄캄한 시야만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후.

현수는 서서히 어두운 시야 끝이 조금씩 열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새롭게 뜨여진 시야에 보이는 것은 왠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새하얀 벽, 그리고 그곳에 걸려있는 투박해 보이는 원형 시계.

그 아래의 성인 두세명이 양 팔을 벌려야 간신히 끝에서 끝을 채울  있을 정도로 기다란 칠판.

무려 이십 여  만에 보는 풍경이었지만, 현수는 한 눈에 알아볼  있었다.

한국대학교 의과대학 대강의실. 203호.

‘……꿈인가.’

현수는 혹 죽기 전에 펼쳐지는 파노라마라는 것이 이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한낱 꿈조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자, 현수는 마지막 과거의 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익숙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먼저 졸업했던 선배들, 매일같이 공부로 함께 밤을 지새던 동기들.

‘젊네.’

하나같이 이십 대  중반의, 젊고 싱그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현수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현수는 그들의 시선이 새삼스러웠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 담긴 감정은, 다름 아닌 부러움이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만이지.’

항상 자신을 벌레보듯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

그렇지만 레지던트 생활을 할 때만 해도 익숙했던 동경의 눈빛을 잊고 있지 않던 현수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현수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자 그 뙤약볕에 보기 싫은 구릿빛 피부와 알코올중독으로 벌벌 떨리는 손이 아닌, 하얗고 뽀얀 손이 있었다.

우우웅.

문득 현수는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진원지를 찾아 더듬거리다 손에 잡히는 걸 꺼내 보니 아주 오래된 모델의, 구형 싸구려 휴대폰였다.

현수는 지문인식으로 잠금을 풀자 수 많은 알림이 떠있었다.

알림을 전부 제거한 현수는 캘린더를 확인했다.

202X년 3월 3일 월요일
한국대 의대 오티.

그걸 확인한 순간 현수는 의문스러웠다.

어째서 하필 지금 이 순간인걸까.

인생에서 가장 스스로가 빛났던시절.

죽기 전에 신이 자신에게 던져주는 개평인 것일까.

‘꿈이면  깼으면 좋겠다…….’

헛된 희망인 것을 알았지만, 현수는 강렬한 열망을 느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새 삶을 살  있다면, 정말 많은 미래를 바꾸고, 행복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갈 확신이 있었다.

‘이대로 죽고싶지 않아.’

그 즈음.

강의실 단상 위로 머리를 질끈 묶고, 캐주얼한 복장을 하고 있는 여자가 한 명 올라왔다.

그리고  여자가 입을 여는 순간.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한국대 의예과 57대 학회장 민재경입니다.”

현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가 이렇게 생생해?’

방금 전까지 고요했던 강의실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생생한 목소리가 현수의 귀를 때렸다.

그리고 그때부터 현수는 머리가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주마등, 꿈 따위라고 하기에는 지금  순간이 너무 생생했다.

그리고 그 생생함은 학생회장 민재경의 목소리를 들을수록 점점 더 짙어졌다.

그것만이 아니였다.

의자 팔걸이를 움켜쥐는 손의 촉감도. 몸을 살짝 비틀  소파 등받이의 쿠션이 삐그덕 거리는 소리도, 어느새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의 축축함도.

전부  이게 꿈이 아닌, 생시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현수는 저도 모르게 벽돌을 얻어맞은 부분의 뒤통수로 손을 가져갔을 때, 그는 소름이 돋았다.

손에는 마치 둔기에 맞은것처럼 움푹 패여져 있는 뒤통수의 굴곡이 느껴졌다.

‘……지금  순간도, 내가 죽기 전까지 겪었던 시간들도, 전부 다 진짜라고?’

복잡하다 못해, 말로 설명이 안되는 상황.
그러나 방금 전 지금  순간이 현실이라고 알려주던 본능이,  하나를 알려줬다.

‘……설마 내가 과거로 돌아온거라고……?’

. . .

학회장의 연설에 이어, 부학회장이 몇 가지 당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수에게 그 목소리들은 백색소음에 불과했다.

나락 끝까지 떨어졌던 그의 삶이 과거로 돌아왔음을 깨달은순간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끓어 올랐다.

죽기  벼랑 끝에서 돌아왔다는 안도감.

다시 추락하진 않을까 하는 공포.

억울함. 분노.

온갖 부정적이고 짙은 감정들이 현수의 내면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런 현수는 그런 감정들을 가슴 한구석으로 쳐박았다.

‘정신차리자. 난 지금 새로운 기회를 얻은거야.’

모든 것을 새롭게 설계하고, 쌓아올릴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 생에 일군 것 또한 남부럽지않은 수준이었다.

그런데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2회차 도전이라면 세상 어떤 존재와도 비교가 불가능한, 압도적인 성과를 이룩할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내야만 했다.

스스로가 자부심을 느꼈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이었지만, 누군가에겐 가볍게 즈려밟을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었으니까.

현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미래지식을 이용해 누구도 무너뜨리지 못  위치까지 올라가야만 했다.

‘누구한테도 밟힐  없게. 완벽해지는거야.’

현수가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죽기 전에 다짐했었지. 다음 생이라는 게 있다면 다르게 살 거라고.’

과거지만,  또한 다음 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난 생은 미래만을 바라보며 현실을 희생했었다.

그리고 정작 모든 것을 투자한 미래가 무너져내리자, 현수가 남길 수 있었던 세월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 생만큼은 다르게 살고 싶었다.

문득 주변을 둘러본 현수는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여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래, 이게 나였어. 학벌도, 외모도, 실력도, 꿀리는 거 하나 없는 사람. 한국대 의대 수석입학자.’

스스로에 대한 수식어라 하기에는 민망하지만, 스물  살이 이룩할 수 있는 스펙으로는 완벽 그 자체라고 할  있었다.

그 덕에 수많은 여자들에게 관심 표현과 고백을 받았다.

하지만 현수는 전생에서 미래를 위해 현실에 충실하겠다는 명목 하에, 자신에게 주어진 이십 대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그렇기에 현수는 이번 삶은 스스로의 속마음에 솔직한 삶을 살고 싶었다.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고, 안고 싶은 사람을 안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그런 솔직한 삶.

당연히 이 말이 현실에 안주해 미래를 내팽개친다는  또한 아니였다.

양자택일이 아닌, 두 마리 토끼를 전부 다 사냥해내는 데 성공하는 삶.

앞으로 8년.

현수는 현재를 위해 미래를 포기하지도,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지도 않는 완벽한 삶을 완성해야만 했다.

현수는 그때가 되면 반드시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현수가 스마트폰으로 성현재를 검색했다.

[이웃정당 비례 2번 성현재]

서울시장이 아니라, 국회 초선의원인 성현재의 정보가 스마트폰 화면에 떴다.

‘지금은 이르지.’

현수가 위로 올라가는 데에는 몇 년의 시간이 걸릴 터였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지금은 한낱 초선 비례대표에 불과한 성현재는 지역구 의원부터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나가며, 이윽고 대통령이 되기 위한 초석이라 불리우는 서울시장 자리까지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 해에, 현수의 인생을 망가트린 성여은 또한 성인이 된다.

‘최고의 자리에 도전할 때. 네가 가장 행복한 순간에.’

현수는 최연수 조교수가  앞에 아른거리는 순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그 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다.

‘똑같이 바닥에 꽂아주마.’

이십  년동안 쌓아올린 것들이 무너질 때에도 눈에서 피눈물이 났었다.

현수는 성현재가 무려 환갑이라는 시간 동안 쌓아올린 것들을 무너트리고서, 적어도 피눈물보다는 더 한맺힌 무언가가 그의 눈에서 흘러나오게 만들고야 말리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계산대로라면 그의 딸이자, 그의 인생을 망가트린 트리거를 제공한 성여은 또한정확히 그 즈음에 성인이 된다.

성여은이 성인이 되는 순간.

냉혹하게 사회의 밑바닥으로 내몰리는 스무살의 삶을 선사해줄 것이다.

‘내가 느꼈던 지옥을 너는 평생을 느끼게 해줄게. 제발 부탁이니까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라. 성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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