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自由)와 통제(統制) -->
군신과 투신들이 은근히 출전을 원했지만, 각 세력의 지휘부들은 지금 이 상황이 점점 머리가 아파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검편이 진짜 분노하면 감당하기가 힘들고, 무엇보다 지금 검편일족을 저렇게 만들고 있는 차원창세신 코아는 정말 예측 불가였다.
‘검편의 본성을 일 분 만에 떨어뜨렸다는데 나의 본성에 쳐들어오면 무사할 리가 없다.’
결론은 이미 나와 있었다.
“관둬라.
너무 멀어서 어차피 우리에게 필요도 없는 행성이다.”
“검편일족의 무분별한 확장을 방지하기 위해서 임시 점령했을 뿐이다.”
“검편이 일족을 장악하고 정말 직접 나선다면 그 정도는 양보해야 하겠지.”
각 세력의 지배층들은 검편 일족이 가진 현재 전력의 정확한 수준을 알기에 더 이상의 영역 확대는 무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차원창세신 코아라는 미지수의 강자를 의식한 결정이었다.
“주변에 요새를 세워라.
그걸 새로운 경계선으로 삼는다.”
“어차피 더 먹으면 관리를 못 하니 스스로 토해낼 것이다.”
임시였지만 점령지역을 버리라는 지시에 군신과 투신들은 불만을 느꼈지만, 곧바로 병력을 물렸다.
그런 사정으로 거의 무혈로 행성을 점령하자 검편일족의 투신과 군신들은 얼떨떨할 기분이었다.
‘그렇게나 힘들게 하던 분쟁지역이 이렇게 쉽게 손에 들어올 줄은 몰랐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왜 이렇게 쉽게 되지?’
그들의 뒤로 필사적으로 달려온 행성의 보급대가 요새를 지울 물자와 정기를 내려놓는다.
거의 위성 관문을 만들 수 있는 규모에 놀랐지만 언제 반격이 들어올지 모르기에 바로 착수한다.
그동안 엄청난 예산을 잡아먹었던 복지가 사라졌기에 이 정도는 감당할 수준이었다.
새로운 행성에 군신을 총독으로 임명하는 서류를 작성해 보내면서 차원창세신 코아는 중얼거린다.
“영역확장도 끝났고, 그럼 다음에는 시험이다.
검편의 반대세력을 모두 축출했다.
그럼 이제 무능한 아군도 손을 봐야 하겠지.”
아직 일족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감도 못 잡은 지배층들은 수많은 명단이 허공에 새겨지자 집중한다.
그리고, 차원창세신 코아가 붉은 선을 그 명단 위에 긋자 기겁을 한다.
“윽!”
“헉!”
주신전에서 이름이 아예 삭제되어 버리니 거의 일족에서 내쫓긴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자신과 관련이 있는 존재들까지 많이 처리되자 다급하게 외친다.
“무…무슨 기준으로 그렇게 제거를 하십니까?”
거의 고위층의 삼 분의 일이 신계에서 배제되었다.
붉은 줄이 그어진 이름이 가득한 허공에서 차원창세신 코아의 손을 쉬지 않았다.
“시험이 아닌 추천으로 들어왔다면 조직에서 지워야 한다.”
“예?”
그러고 보니 대두분 원로나 지배층들이 끌어준 고위신들이었다.
정상적으로 시험을 치고 승진한 것이 아니라 특례로 높은 신분이 된 고위신들은 모두 배제를 해버린 것이다.
“그들은 일족의 인재입니다.”
“겨우 시험을 보지 않았다고 그 자리에서 쫓아낼 수 없습니다.”
검편의 지지세력에도 당연히 구 지배층들의 세력이 있다.
그런데 단숨에 모든 기반을 잃게 된 그들이 소리를 치자 차원창세신 코아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럼 다시 시험을 보라고 해라.
정말 뛰어난 인재라면 등용을 위한 시험 따위는 쉬울 것이 아니냐?
합격한다면 다시 원래의 직위로 돌아가게 해준다.”
“….”
실로 할 말이 없는 답변에 구 지배층들의 머리는 입을 다물었다.
‘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면 특례로 뽑지도 않았지.’
그렇게 추천이나 특례로 들어온 모든 관리와 군신들의 직위가 말소되었다.
과거라면 어떻게든 무마시키거나 취소시킬 수 있는데 머리만 남은 상태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당연히 막 점령지에 요새를 쌓고 있는 군부와 지원하느라 정신이 없던 관리신들은 난리가 났다.
오만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상급자들이지만, 단숨에 명령체계가 무너진 것이다.
그러나, 차원창세신 코아는 느긋하게 추가명령을 내린다.
“해임당한 상급자는 본성에서 정식 시험을 치르고, 다시 임관될 것이다.
공백 기간에는 가장 선임이 지휘하게 하라.”
항의를 위해서 연락을 하려던 모든 지배층이 반색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들도 과거 지배층들이 권력을 이용해서 불법으로 임관시킨 자들이 불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힘차게 군례를 올리면서 화면이 끊긴다.
그리고, 본성에 황급하게 도착한 해고자들을 기다리는 것은 임관용의 시험지였다.
주신전의 광장 아래에 준비된 시험장에 하나둘 자리를 채우는 그들을 내려다본 차원창세신 코아는 나직하게 말한다.
“발전 중인 정상적인 조직에는 추천이나 특례가 없다.
인사평가도 의미가 없고, 오로지 시험점수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당당하게 합격해서 돌아가라.
떨어져도 기회는 바로 준다.
몇 번이든 도전하라.”
“….”
공부해 본 지가 아득했지만, 겨우 임관시험의 기초문제였다.
고위직으로 오랜 시간을 지낸 그들의 경험으로 어려울 리가 없기에 바로 시험지에 달려들었다.
그리고, 곧 모두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지면서 여기저기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어떤 자식이 시험을 이따위로 만들었어?”
“시바! 우리 때는 선택형 문제가 네 개 중에 하나만 고르면 되었는데 왜 이제는 다섯 개야?”
“더구나 정답이 두 개가 있거나 없을 수 있다고?
괴롭히는 거냐?”
“교재에 없는 내용은 왜 튀어나와!
이건 참고서를 통째로 외워도 아무 소용이 없잖아?
돈 들여서 사교육이라도 받으라는 거냐?”
“주관식은 또 왜 이래?
문장을 그대로 적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라고?”
“어디의 박사 논문을 쓰냐?”
“시험에서 논술을 측정하다니?
바꿔 말하면 정답이 없다는 소리잖아?”
“시험관 마음대로 점수를 매길 수 있는 문제를 어떤 자식이 만든 거야?”
자신들의 유아신 때 배웠던 것과는 엄청난 난이도를 가진 문제에 모두의 분노가 하나로 향한다.
“시험 출제자가 어떤 자식이야!”
“그 자식이 만점 못 받으면 목을 잘라!”
평상시에 특혜받고 들어왔다고 무시당한 것도 서러운데 갑자기 직위가 해제되어서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그런데 임용시험만 합격하면 바로 복직할 수 있다고 해서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한 그들에게 이 엄청난 난이도의 문제는 날벼락이었다.
그런 그들의 혼란을 흐뭇한 시선으로 지켜보던 차원창세신 코아는 재빠르게 해답을 제출한 고위신들을 채점한다.
“합격이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노력한 보람이 있어서 해답을 전부 적어낸 고위신들의 이름에서 붉은 선이 지워진다.
스스스스스스-! 스스슥-!
바로 눈앞에서 합격자의 점수가 알려지고, 복직되기 시작하자 다급해진 모두는 문제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들 위로 목검 한 자루가 나타나더니 감독관처럼 허공을 떠돈다.
빠아아아-! 따아아아아-!
슬쩍 커닝하려던 고위신의 머리를 두들겨서 저 멀리 날려버린 목검은 다음 먹잇감을 찾아서 떠돈다.
그렇게 험악한 분위기에서 시험을 치르는 와중에 차원창세신 코아는 예산안을 다시 편성하고 있었다.
“삼 분의 일의 고위층을 정리했더니 예산이 꽤 남는군.”
어느 조직이나 하위층 열 명보다 고위층 한 명의 유지비용이 더 비싸다.
그들이 제대로 조직을 위해서 이바지하면 상관없지만, 대부분 권력싸움으로 바쁘니 최대한 줄여놓을 필요가 있어서 이렇게 한 것이다.
“모두 요새와 공장건설에 편성한다.”
복지를 금지하고 회수한 비용과 지배층을 감소하여 회수한 비용을 모두 쏟아붓는다.
복지가 하위층의 충성을 일으키고, 지배층의 숫자는 상위층의 지지를 얻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최악의 선택이었다.
벌써 여기저기서 반발이 나오려 하고 있으나, 차원창세신 코아는 섬뜩한 미소를 지으면서 경고한다.
“날 방해하면 목을 잘라 버린다.”
실제 신체의 목과 사회적 직위라는 두 가지를 동시에 처단하고 있으니 기가 질려버린 검편의 일족은 따를 뿐이었다.
그렇게 검편의 지지세력조차 권력자들의 특혜를 받든 삼 분의 일이 정리 해고를 당하고, 시험을 치면서 육 일이 끝나갔다.
그리고, 검편은 드디어 차원창세신 코아가 헝클어놓은 구역을 드디어 벗어나게 된다.
파아아아아아아-!
거대한 검의 환영이 일그러진 공간과 시간을 자르면서 길을 열었다.
박쥐의 검을 앞세워서 우주 공간을 돌파해낸 검편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우우우우-! 역시 지치는군.”
일그러진 공간에서 단거리 공간이동을 반복하는 것보다 검으로 방해가 되는 구역을 자르면서 이동하는 방식이 빨라서 그렇게 했지만 막대한 체력과 정기를 소모했다.
그러나, 본래 일주일 정도의 여정에서 하루를 단축해낸 검편의 기세는 살벌하게 변한다.
“코아. 만약 내 반려와 일족을 건드렸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그러나, 이미 늦었음은 알고 있었다.
‘내가 없는 일족이 차원창세신 코아를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그 녀석은 아무런 망설임이 없지.
어떻게든 놈을 막아야 한다.’
검편 아스나스는 자신을 직접 만나겠다고 감옥행성부터 파괴하는 차원창세신 코아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이렇게 될지 직감했다.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휩쓸려서 어딘가로 흘러갈지 모른다는 원인 모를 불안감이 몰려왔다.
최소한 하루는 벌었으니 놈의 계획을 틀어놓을 수 있다.
회복은 이동하면서 한다.’
그것이 이런 무리한 강행수단을 취하면서 고속이동해온 이유였다.
근처의 행성의 초장거리 공간이동 장소로 황급하게 이동하려는데 그 길에 거대한 인영이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일반적인 신의 크기를 벗어난 삼 미터의 키를 가진 근육질 거한의 모습에 아스나스의 얼굴이 굳었다.
‘흑염의 절대자!
어떻게 내가 여기로 나올 줄 알고서 기다리고 있었지?
출구는 여러 곳에 있다.
으윽! 절대 직감의 권능인가?
정말 대단하군.’
완전한 상태에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강자였는데 지금은 거의 탈진상태였다.
그런데 검붉은 투기를 휘날리면서도 오랜 친구처럼 친근하게 말을 건네온다.
“여! 오래간만이다. 아스나스.
어디를 그렇게 바삐 가시나?
나와 술이나 한잔하러 가자.”
“루카 에일레스! 날 막을 작정이냐?”
신족에게 거부당해 홀로 대수림에서 살아가는 흑염과 일족에게 경원시 당해 스스로 감옥에 들어간 검편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서 술을 나눌 정도의 친분은 있었다.
그러나, 길이 틀리면 언제나 사투를 벌일 각오도 역시 되어있었다.
검편의 입장에서는 이미 용납할 수 있는 한계는 일찌감치 넘은 상태였다.
스르르르르응-!
검편은 박쥐의 검을 뽑아 들고, 흑염에게 외친다.
“네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었느냐?”
절대계 검의 정점인 검편이 직접 검을 겨누었는데도 흑염은 아무런 대응이 없이 친근하게 말을 건넨다.
“나에게 그럴 머리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잖아?”
“후웃! 네가 나를 아는 것처럼 나 역시 너를 안다.
너는 미련한 광전사가 절대로 아니야.
어지간한 현자는 우스울 정도로 머리가 좋지.”
흑염에게 싸울 기색이 전혀 없지만, 검편은 검을 거두지 않고 더욱 기세를 높이면서 추궁했다.
“뭘 노리고 나를 막으면서까지 차원창세신 코아란 존재를 돕고 있나?
정확하게 설명해라!
아니면 너도 적으로 규정하겠다.”
그 말에 흑염은 웃고 있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지면서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젠장! 나보고 널 왜 지금 막아야 하는지 설명하라고?
그게 가능하면 내가 이렇게 혼자 왔겠냐?
황금의 절대자와 같이 왔겠지.
“….”
만약 그렇게 했다면 지금 지친 상태에서는 바로 제압당할 판국이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흑염의 절대자는 투덜거리면서 말을 이어간다.
“내 직감이 이렇게 하란다고 대답하면 네가 이해할 수 있겠어?”
당연히 할 수가 없다.
검편은 흑염에게 완벽한 이익을 보장하는 절대 직감의 대단함과 왜 그렇게 되는지 설명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떠올랐다.
흑염의 절대자와의 술자리에서 직접 들은 이야기였다.
‘네 절대 직감은 이렇게 하면 좋다는 선택의 결과는 완벽한데 과정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
그리고, 나한테만 유리하게 작용하니 주변에는 피해가 올 경우가 많아.
안 쓰자니 손해고, 사용하면 주변의 불신을 사니 참 고민이다.’
친분의 증거로 자신의 권능에 대해서 어느 정도 설명해주면서 들었기에 정확했다.
‘하지만, 절대 직감의 정확성은 어떤 예지보다 높다.
누구도 무시할 수 없지.’
그런데 지금 절대 직감의 권능을 완벽하게 발동시킨 흑염의 절대자가 자신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내 직감이 네가 일찍 가보았자 별 도움이 안 되고, 후환만 남는다네.
어떤 후환인지는 당연히 잘 모르겠다.”
그것도 자신을 위해서란 명분이었다.
“그러니 나랑 하루 동안 노는 게 어때?
황금세력에 들어갔더니 주머니도 두둑해졌으니 이번에는 내가 사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