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자(勇者)와 영웅(英雄) -->
정신체에게 가장 중요한 신력을 올려줄 보물을 놓친 워터 문은 은근슬쩍 살기를 뿌리면서 말했다.
“우리 이야기 좀 할까요?
겨우 지성체들의 여왕이면서 신계를 책임지고 있는 천족의 대표에게 상당히 무례하군요.”
상황을 보니 앞으로 꽤 마주칠 것 같아서 교육할 필요가 있었다.
‘지성체들의 여왕이라고 하지만 천족은 정신체다.
존재의 무게가 다르다.’
그러나 프롬 여왕은 물러서지 않았다.
“말투부터 가렸으면 좋겠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상위의 존재를 섬기는 노예보다 자유로운 존재들의 여왕이 더 높다고 생각하는데요.”
서로 적대하던 입장이었으니 의견이 합치될 리가 없었다.
강력한 초능력과 신력을 가진 서로의 눈빛이 부딪쳐서 실제로 번개가 일어났다.
빠지지지지직-!
자신이 만들 영웅동맹의 세부 조직표를 만들고 있는 아이언의 눈치가 보이지 않았다면 당장 결투를 벌인 기세였다.
“아무리 보아도 상하관계부터 확실히 해야겠군요.”
“그것만은 동감이에요.”
지금 두 여걸의 의견이 일치했다.
아이언의 입장으로서는 귀엽기 짝이 없는 살기가 느껴지자 혀를 차면서 손을 튕겼다.
“쯧-! 지금은 싸우지 마라.
한 병으로는 부족한가?
하긴 여유가 평화를 부르지.”
딱-! 우르르르르르-!
허공에서 세계수의 술이 담긴 커다란 상자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탁자 위에 수십 병이 놓여있는데 겨우 한 병 때문에 싸우려 한 셈이 되어버린 프롬 여왕과 워터 문은 할 말을 잃었다.
“........”
“........”
어느새 파악했는지 후계자들의 이름을 일사천리로 적어가는 아이언의 모습만을 볼 뿐이었다.
그런데 프롬 여왕의 눈빛이 한순간 빛났다.
맹주인 영웅황제 아이언의 바로 옆에 아주 익숙한 이름이 적혀있었다.
‘영웅동맹 군사(英雄同盟 軍師) 청춘의 환상(靑春의 幻想) 크롬.’
병에 쓰러진 자신을 살리기 위해 유모의 역할을 자처했던 장녀의 이름이었다.
‘유모만이 아니라 다른 직위를 맡길 모양이구나
그런데 제국의 공주이자 다음 여왕을 맡길 인재를 겨우 용병 같은 집단의 군사로 쓰려고 하는 것인가?
아무리 무력 수준이 높다고 해도 그럴 수는 없다.’
크롬의 역량은 누구보다 잘 아니 뭐라고 이견을 말하려고 하는데 아이언의 혼잣말이 입을 다물게 했다.
“지역 우주까지 완전 제압을 시키려면 최저한의 병력이 일억인가?
일단 일만의 초월자와 십만의 초능력자가 탑승한 하위 기계신들로 가볍게 시작하고 늘려가야 한다.
내가 겨우 기계신 군단을 붙잡고 있을 수 없으니 크롬에게 맡겨야 하겠군.”
하위신이라고 하지만 신족의 전력이 일억이면 은하 절반을 장악한 프롬 여왕으로서도 상상하지 못할 전력이었다.
‘그런 대군을 통제하는 군사의 직위는 은하를 다스리는 여왕보다 절대로 낮지 않다.
초월자가 되면 늙어 죽지 않는다고 하니 이렇게 되는 쪽이 더 좋을 수도 있겠어.’
은하를 다스리는 여왕인 자신과 지역 우주를 제패할 기계신 군단의 군사가 된 크롬의 조합이면 더 큰 꿈을 꿀 수 있었다.
그렇게 복잡한 생각이 교차하고 있는데 아이언은 완성된 조직표를 상공으로 던지면서 외쳤다.
“끝났다.
이제 나와서 너의 부하들을 인식하라-!
영웅황제 아이언.”
그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천국이 진동한다.
파아아아아아앗-!
땅에서 하늘로 황금빛의 기둥이 솟아오르면서 서서히 강철의 거신이 모습을 드러낸다.
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궁-!
크기는 일백 미터이며 극도로 화려한 장식이 된 황금의 갑옷을 입은 기사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투구 대신 쓴 커다란 진주 같은 검은 보석이 이마에 붙어있는 화려한 황제의 왕관은 이 기계신이 어떤 위치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쿠쿠쿵-! 쿠쿵-!
기계신들의 황제가 천국의 대지에 내려선다.
몸에 두른 피처럼 붉은 망토에는 거대한 나무가 자라난 행성의 문양이 푸른색이 그려져 있었다.
거기에 아이언이 던진 영웅동맹의 조직표가 닿자 찬란한 빛이 발산되면서 이름들이 아주 작게 무늬처럼 새겨진다.
파파파파파파파파-!
붉은 망토에 고대문명의 후계자 일만 명과 천족이 파악하고 있던 은하의 초능력자 십만 명의 이름이 남김없이 새겨져 간다.
그리고 영웅황제 아이언의 전신에서 품어진 황금빛이 피떡이 되어있던 후계자들을 비추었다.
파아아아아-!
그러자 후계자들의 영혼과 영웅황제 아이언의 검은 보석이 감응을 시작했다.
일만 개의 영혼에서 추출된 영혼의 일부는 모두 왕관의 검은 보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검은 보석의 정체는 창조신의 신령까지 무수하게 가둘 수 있는 신령연옥(神靈煉獄)이었다.
영혼 전부를 흡수할 정도는 흡수하지 않았지만 확실하게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신령연옥은 겨우 지성체들에게는 과분하지만, 이 수준에서는 어쩔 수 없지.
되도록 많은 수를 채워 넣어서 쓴다.
그리고 축하한다.”
초능력이 강한 후계자들은 천국의 도움으로 머리와 상체까지 복구했다.절반 정도 회복한 그들을 향해서 아이언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이제 영웅황제 아이언이 너희들의 유일한 천국이자 지옥이다.
마침내 얻은 신족으로부터 자유를 마음껏 기뻐해도 좋다.”
“?”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 줄 모르는 후계자들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러나 상급 천족 워터 문은 방금 일어난 권능의 흐름을 읽고 탄성을 지르면서 물었다.
“아-! 전투형 독립 기계 신계입니까?”
이렇게 작게 만들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시군요.”
“정답! 작게 만드는 정도는 기본이지.”
순수한 찬사에 아이언은 기분 좋게 응답했다.
위성 크기의 신계를 일백 미터의 인형으로 압축시킨 기계신이 바로 영웅황제 아이언의 정체였다.
‘독립적인 신계와 다름없는 영웅황제 아이언이다.
저 망토에 이름이 적히고 영혼의 일부가 신령연옥에 들어간 이상 죽으면 바로 회수가 된다.
그리고 기계신의 몸체를 복구하면 다시 영혼을 입력하면 원상복귀다.’
전투형 신계이니 바로 전장의 현장에서 부활시킬 수 있고 기계신이라서 수리나 보충할 재료만 있으면 정기의 소모도 거의 없다.
창조력이 강한 정신체이지만 권능사용과 부활에 많은 정기가 소모되는 신족으로서는 끔찍하기 짝이 없고 끈질기기 짝이 없는 기계신 군대의 탄생이었다.
자신의 작품을 만족스럽게 쳐다본 아이언은 아직 피떡 상태의 후계자들을 내려다보면서 의아하게 물었다.
“너희가 원하는 대로 신족의 지배에서 완전히 독립했는데 안 좋아하냐?”
“?”
후계자들은 뼈가 으깨지고 근육과 내장이 납작해졌지만, 의식도 뚜렷하고 말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이언으로서는 나름대로 회심의 역작으로 배려했는데 아무도 모르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신계의 역할을 겨우 일백 미터가량의 기계신으로 대체하다니 엄청난 일이었다.
“에이-! 무식한 것들.
정신체와 세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무슨 반란에 혁명이야?
이 꼴이니 성공하고도 망하지.”
좋은 물건을 얻었으면 다른 존재에게 자랑하고 부러워하는 모습을 봐야 만족감이 커진다.
그러나 가치도 모르는 존재에게 보물을 보이면 허탈하기만 할 뿐이었다.
아기 앞에서 황금 광산을 자랑한 꼴이었다.
‘후계자들은 원래 현세계의 신족들에 묶여있던 영혼의 환생을 전부 영웅황제 아이언이 가져갔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 못 하고 있군.
이제 완전히 신족의 지배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도 몰라.’
설명하려면 끝이 없었다.
영혼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직접 경험하게 하는 방법이 최고였다.
“일단 빠르게 교육부터 완료해야 하나?
전부 밟아 죽여라.
영웅황제 아이언.”
“!!!”
그 명령과 함께 영웅황제 아이언의 거대한 모습이 순간 사라졌다.
그리고 피떡이 되어 바닥에 눌어붙은 채지만 절반 정도 살아나던 후계자들의 위로 커다란 발자국들이 일순간 찍혔다.
꽈꽈꽝꽝꽝-!
기계신의 신체로는 믿겨 지지 않을 속도로 단숨에 일만의 후계자들의 숨통을 끊어버린 영웅황제 아이언이었다.
그 신속함은 상위 천족인 워터 문조차 어떻게 움직였는지 모를 정도였다.
“크아-!”
“아아-!”
최후의 비명을 지르고 죽은 후계자들의 영혼이 신체에서 이탈된다.
비록 죽었지만 그래도 이 비참한 순간에서 벗어났다고 안심하는 순간 엄청난 흡입력이 빨아들이는 것을 느꼈다.
‘어어어어-! 또 뭐야?’
어디로 흡수되어 가는지 확인해 보니 방금 자신들을 끝장내었던 거대 기계 인형의 이마에 박힌 검은 보석으로 영혼들이 모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신령에 거의 도달한 격이 높은 영혼이기에 신계 자아가 거침없이 정보를 주입한다.
‘허어억-! 그보다 우린 죽지 않았나?
이 상태는 뭐야?’
‘설마? 죽어도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인가?
그보다 영혼이라는 것이 실재했어?’
‘영혼이 정말 있다면 천국과 지옥도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걸 통제하는 것은 바로 신족이다.’
‘그럼 우리는 도대체 무엇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야.
이건 말도 안 돼-!’
이것은 후계자들에게 충격이었다.
죽은 뒤의 삶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기계신체나 복제 인간을 쓰면서까지 어떻게든 수명을 늘려왔다.
그리고 고대문명의 지배층에게 배운 대로 지성체를 가축으로 삼으려는 신족을 적대해 왔는데 알고 보니 완전히 미친 짓이었다.
‘아무리 이겨도 죽으면 영혼이 되어 다시 신족의 관리에 들어간다고?
그럼 승리할 방법이 없잖아?’
‘이런 이야기는 전달된 자료에 전혀 없었어.’
‘그보다 저기로 들어가면 안 돼!’
후계자들의 영혼을 빨아들이는 검은 구슬이 신령연옥이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고위신의 신령조차 탈출 불가능한 감옥이라는 설명에 이제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달은 후계자들이었다.
잘못하면 유령 상태로 영구 감옥행이었다.
‘신령도 허락 없이 나올 수 없다면 우리들의 힘으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다.’
‘영혼 상태에서도 초능력의 사용은 가능하다.
어떻게든 벗어나야 해!’
‘초능력은 오히려 더 강해졌는데 벗어날 방법이 없다!’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들의 영혼의 일부를 가지고 있는 영웅황제 아이언의 흡입력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으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악-!’
그렇게 모든 후계자의 영웅황제 아이언의 망토에 적힌 그들의 이름이 일순 빛나면서 회수가 완료되었음을 알린다.
신령연옥에 마련된 독방에 전원이 갇힌 것을 본 아이언은 간단하게 부활의 명령을 내렸다.
“아무래도 너희들에게는 너무 아깝구나.
바로 나오너라. 리!”
현세계 최고위 창조신도 가두고 권능을 활용할 수 있는 신령연옥의 가치를 생각하면 당연한 판단이었다.
그래서 나온 장난 같은 말투였지만 모든 후계자의 영혼은 신령연옥에서 품어져서 순식간에 부활했다.
후계자들은 엉망이 된 신체가 멀쩡해지고 거기에 의복과 장비까지 신품이 되어있자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기계신의 복구까지 고려한 부활이 완전히 작동하자 만족한 아이언은 흐뭇한 미소로 물었다.
“이제 너희들은 다른 신계의 천국과 지옥에 안 간다.
영웅황제 아이언이 존재하는 한 신족의 통제를 받아서 환생을 안 해도 된다는 뜻이지.
이게 바로 진정한 신족에게서 자유라는 것이다.
너무 좋지?”
“.........”
자신들의 영혼 소속이 바뀌었고 영웅황제 아이언에 의해 죽어도 바로 원상태로 부활할 수 있다는 점은 이제야 이해가 갔다.
‘신족 대신 이 무서운 고위신에게 묶이지만 않았다면 좋아했을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태는 악화하고 있다.’
죽으면 끝이니 살아서 자유롭게 살자고 생각했던 후계자들이었다.
그래서 암중에서 지성체를 관리하려는 신족에게 전력으로 저항했다.
‘죽으면 영혼이 신족이 다스리는 천국이나 악마가 통제하는 지옥에 간다고 이야기는 들었다.’
‘그러나 그건 옛날이야기였어!’
‘영혼조차 실증되지 않아 실제로 믿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경험해 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정신체에 입문을 시작하고 신계로부터 본격적으로 정보를 받자 바로 결론이 나온다.
‘지성체는 죽으면 정신체의 관리를 받는다.’
‘영혼과 육체가 승급되어 초월자가 되기 전까지 영구히 환생을 반복한다.
‘그럼 우리는 영원히 심판당할 짓을 하고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