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방(前方)과 후방(後方) -->
터무니없이 강대한 힘을 가진 존재들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
덕분에 죽기 직전인 자신은 저 둘이 왜 싸우는 의미를 전혀 모르겠고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강제로 내용이 들려온다.
“진정한 영웅은 있어요.
시대의 종말이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나타난답니다.
그리고 세상을 구하고 자신도 행복해지지요.”
“아니다.
영웅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더구나 세상을 구하면 쓸모가 없어져서 반드시 버려진다.”
서로의 주장이 다르니 바로 용서 없는 전투가 벌어진다.
자신은 이미 저 중 한 명에게 한 대 맞아서 죽기 일보직전이 되었지만 살아 있었다.
그런데 돕겠다고 난입해 온 다른 존재와의 전투로 시공간 구멍들이 여기저기 뚫려버린다.
빈사상태에서 신령이 시공간 구멍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끝장인 상황이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그런 한탄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머리가 부서졌지만 끈질기게 숨만은 붙어있는 신체를 신령으로 들고서 피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이 신체(神體)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야 한다.
내가 여기까지 단련시키는데 얼마나 고생했는데 포기할까 보냐?’
하지만 여기저기 안전지대를 찾아서 피하는 도주도 한계였다.
화아아아아아악-! 푸하하하하하하하하-!
결국 강대한 권능이 충돌한 여파에 날려서 시공의 구멍으로 빠져버렸다.
“우아아아아악-! 결국 이 꼴이냐?”
기기기기기기긱-!
시공의 구멍 입구 주변을 손으로 붙잡아 버티면서 안을 들여다보니 끝도 안 보였다.
파악하기조차 힘든 불규칙 시간의 어딘가의 세계로 날려질 위기였다.
“으아아아아-! 도대체 어디까지 관통된 거야?
시공간에 어떻게 이 정도 규모의 구멍이 뚫릴 수가 있지?”
정상인 상태라면 얼마든지 벗어나겠지만 신령 상태로는 어쩔 도리가 없이 조금씩 끌려들어간다.
여기에 시공간 폭풍의 위력으로 구멍의 끝을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타격을 입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압-! 나 죽는다.
제발 도와 줘-!
부디 살려주십시오!”
신령이 타격을 입으면 신력이 줄어든다.
손실을 막기 위해서는 기억과 권능을 압축해서 따로 저장해야했다.
즉 신격이 저하되는 것이다.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 구조를 요청했지만 들어주는 존재들이 없었다.
합작해서 자신을 이 꼴로 만든 두 명이 전투를 멈추는 모습을 보니 듣기는 했다.
다만 도와줄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오히려 좋은 해결방법이 생겼다고 환영하는 눈치였다.
“잘 되었군요.
본인이 증명하게 하지요.”
“그러는 것이 좋겠군.
이게 바로 자업자득이다.”
시공간 폭풍에 신령을 보호하기도 힘든 최악의 상황인데 참으로 억울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었다.
분기탱천해서 소리를 쳤다.
“협박도 권유도 하지 마-!
그리고 왜 하필 나야-!
훨씬 강한 네가 가면 편하잖아?
무엇보다 저는 여기서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자 처음에 자신의 신체를 죽음직전에 몰아넣었던 직속 상급자이자 의뢰주가 다가왔다.
툭-! 툭-!
시공의 구멍을 붙잡은 손가락을 친절하게 하나하나 풀어주면서 말한다.
“그렇게 쉬운 일을 똑바로 못한 벌이예요.”
“그....... 그건 억지십니다.
정말 거기에는 영웅 따위는 없었습니다.
입만 정의를 말하지 몽땅 거지에 깡패, 양아치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안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입니다.”
“시끄러워요.
자기 입으로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한다고 했지요.”
“.........”
뭐라고 변명이라도 해야 하는데 시공의 입구를 붙잡은 손가락이 겨우 하나가 위태롭게 남아버린다.
신령이 시공 구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가려 하자 바로 머리를 날리고 입을 벌려서 입구주변의 공간을 물어버렸다.
꽈드드드득-! 꽉-!
구멍 끝을 잡고 버티던 신령의 손가락을 빼어버리니 이빨로 물고 버티는 격이었다.
손가락을 풀었던 존재도 황당한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어라? 시공의 균열을 무형인 신령의 이빨로 물 수도 있군요.
역시 이름값을 해요.”
“으으으으으으으읍-! 아! 지금 신령상태이니 말할 수 있지.
전 할 만큼 했습니다.
제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아시잖습니까?”
“제가 시킨 일은 하나도 진행 안했던데요?
보나마나 저에게 안 혼나니 깜빡했었지요?
이러니 상위자가 잘 대해줄 때에 열심히 해야지요.
꼭 한 대 맞아야 일을 해요?”
“........”
사실이니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신령의 이빨로 입구를 꽉 물고 버티는데 또 다른 존재가 진심어린 충고를 한다.
“이 의뢰는 너만의 힘으로 끝내라.
최선을 다해서 세계를 구원하고 너도 행복한 진정한 영웅이 되어라.
그런데 힘보다 인내와 품격을 좀 갖추어라.
그걸 못하면 이번에야말로 정말 넌 끝장이다.
귀환은 영원히 없다.”
“미쳤다고 소문난 주제에 한 세계의 정당한 지배자인 나에게 충고하지........”
거기까지 말을 하는데 역시 인정사정없이 발로 얼굴을 차서 시공의 구멍으로 처박았다.
퍼어어억-!
“꽥-!”
“너보다 강자에게는 입조심을 하라고 했지.
넌 어떻게 변하지가 않냐?
그리고 제발 욕심은 적당히 부려.”
그렇게 어딘지도 어느 때인지도 모르는 알 수 없는 시간과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크아아아아아-!”
빠르게 닫히고 있는 시공의 구멍 너머로 커다란 의지가 서린 목소리가 전해온다.
“진리께서 말씀하시기를 선(善)도 악(惡)도 모두 절대적인 힘 앞에 가치가 없다고 하셨다.
어떤 악도 선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강해져서 돌아와라!”
“이 미친 자식아! 네가 가서 직접 하란 말이다.
난 지금이 너무 좋아.
할 일도 많다.
이대로 가면 세계가 난리가 난단 말이다.”
“너 없어도 세계는 알아서 잘 돌아간다.
제발 욕심은 줄이고 분수를 지키면서 살아라.
휴우우우우-! 일단 예정대로군.”
마지막에는 이상하게 안심하는 목소리였다.
그런데 갑자기 당황스런 외침으로 바뀌었다.
“이건 뭐야?
신체 권능이 신령으로 이동을 한다고?”
팟-! 화르르르르-!
거의 닫힌 시공의 구멍사이로 검은 불꽃이 순간적으로 통과하여 떨어지는 신령에 달라붙었다.
“설마 신령이 위기 상황이라서 최대한 발동된 흑염의 절대자의 가호가 신령에 부여되었다고?
이건 너무 과해-!
너 당장 이리 나오지 못..........”
그 순간 시공간 구멍이 완전히 닫히고 검은 불꽃에 보호된 신령은 격렬한 시간과 공간 속을 역행하기 시작했다.
수우우우우우웅-!
측정할 수조차 없는 힘을 가진 두 명이 전투로 만든 시공간의 구멍이기에 어느 때인지 어디인지 알 수조차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이게 도대체 몇 백억 년이야?”
비명을 한참 지르면서 강력한 시공간의 폭풍 속이지만 검은 불꽃의 도움으로 손상 없이 버티었다.
그러다가 시공간 구멍의 끝인 어딘가의 세계로 떨어진다.
신령 상태지만 최대한 권능을 펼쳐서 주변을 확인하니 역시 난생처음 보는 곳이었다.
강자들의 전투에 휘말려 이 꼴이 되니 입에서 저절로 욕설이 튀어나온다.
“아오 시바-! 열 받아!
그나저나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하늘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빌딩들과 공중에 떠서 부양하는 자동차들이 수없이 늘어서 있는 굉장한 물질문명을 가진 도시의 한복판이었다.
그런데 권능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자신의 신령이 흐릿해지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으으으으아아아악-! 시공간 구멍에서 신령을 보호하느라 가진 정기를 거의 다 소모했어.
이러다간 기억만 남는 허신(虛神)이 되고 만다.
신령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현상은 신령상태로 정기를 너무 사용해서 권능을 잃어가고 있다는 징조였다.
더 이상의 정기 소모를 막기 위해서는 신의 육체에 들어가는 것이 좋지만 있을 리가 없었다.
“신체(神體)가 여기 준비되어 있을 리가 없으니 적당한 육체라도 찾아야 해.’
일단 대용품으로 영혼이 없는 식물인간과 같은 육체나 영혼이 아직 정착되지 않은 태아와 융합해도 되기는 되었다.
그러나 신격과 권능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지성체의 몸으로는 아무리 신격의 대부분을 봉인해도 버틸 수 없다.
그러니 대부분의 권능을 봉인하거나 버려야한다.
하지만 상당한 용량을 차지하는 환생기록 대신에 정보행성 코아가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정보행성 코아는 무한대의 권능과 마도, 신격이나 기억까지 저장할 수 있었다.
다급하게 자신의 모든 존재정보를 정보행성 코아에 입력하자 신령을 보호하던 검은 불꽃도 그대로 정보행성 코아 안으로 스며들었다.
신령을 보호하던 검은 불꽃이 꺼지자 완전히 투명한 상태가 되고 바로 주변을 검색했다.
화르르르-! 우우웅-!
수백만이 넘게 살 수 있는 엄청난 대도시이니 사고를 당한 죽기 직전인 인간은 넘치도록 있어 보였다.
그 중에서 강력한 육체를 가진 남성체를 고르면 기억과 권능봉인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 전부의 지성체를 검색하고서 바로 당황하고 말았다.
“뭐! 뭐야?
왜 이렇게 인간이 적어?
멀쩡한 인간은 거의 없고 기계인간들만 이렇게 많아?”
인간은 극소수에 모두 건장한 성인들밖에 없었다.
더구나 대부분이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바꾸거나 아예 뇌만 생체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저런 기계 육체는 신령의 융합에 전혀 쓸 수가 없었다.
“육체를 모두 기계로 개조한 기계인간들의 행성인가?
하필이면 왜 이런 쓸데없는 행성에 떨어졌나?”
사지가 멀쩡한 인간이 거의 없고 사고로 영혼이 떠난 의식불명의 신체도 전혀 없었다.
결국 다급하게 태아라도 구해보려는데 그것도 만만치가 않았다.
“애들은 아예 없다!”
일천만이 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큰 도시에 아이나 신생아가 거의 없었다.
결국 극도로 생명력이 희미했지만 탄생의 징조가 보이는 커다란 병원과 같은 건물로 공간이동을 했다.
허나 도착해서 목표로 한 아기를 보고 맥이 불리고 말았다.
새애액-! 새애액-!
두꺼비 같은 얼굴에 몸도 짜리몽땅한 모습의 미숙아가 가쁘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니었다.
‘제길-! 하필이면 불량품이냐?
아-! 나도 인간이었으니 이런 표현을 하면 안 되지.
태아 시절에 영혼이 배정이 안 되어서 제대로 신체가 성숙되지 못했어.
영혼이 없는 빈껍데기에 미숙아로 태어났으니 곧 죽겠군.’
금속가면과 같은 얼굴을 한 기계의사들이 갓 태어난 아기를 보면서 센서를 대고 이것저것 조사하고 있었다.
권능으로 본질을 확인해 보니 역시 뇌만을 기계의 몸에 이식한 기계인간들이었다.
그들은 점점 줄어들다가 멈추어 버리고 마는 아기의 생명반응에 모두 고개를 저었다.
우우웅-!
그들은 아이가 완전히 죽은 상태를 보면서 낙담하고 있었다.
“역시 죽었군.”
“강력한 초능력자의 아기이니 살 수 있다고 기대했는데 역시 안 되었어.”
이미 태어나기 전에 미숙아이고 죽을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인간의 얼굴을 한 의사가 화를 내면서 의견을 꺼낸다.
“그러게 내가 말했지 않는가?
임신기간 동안 환자실을 인간에게 완전 적합하게 바꾸어도 똑같을 거라고 말이야.
지금처럼 개발행성이나 식민행성에서 임신한 신생아는 대부분이 죽어서 태어나.
이건 과학과는 다른 무엇인가의 문제다.”
팔 부분만 부분적으로 기계화한 인간 의사의 의견이었다.
그러자 주변의 완전한 기계인간 의사가 반론을 한다.
“또 행성과 인간의 영혼이 연관되어 있다는 가설을 말하는가?”
“영혼은 죽으면 중력으로 인하여 행성에 귀속된다.
죽은 영혼은 어떤 과정을 거쳐 정화되고 증가되어서 신생아에 정착되어 다시 태어난다.
그래서 본래 지성체가 존재하지 않던 행성이 아니라면 행성에 축적되어 있는 영혼이 없다.
그래서 태아는 영혼이 없으므로 태어나자마자 죽는다.
타당성이 있는 설명이다.”
“아직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은 비과학적인 가설이지 않는가?”
“본성 외부에서 임신된 아기들의 생존율이 극단적으로 낮은 이유는 다르게 설명할 수가 없다.”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은 인간 의사의 말에 주변 기계의사들은 모두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영혼이 존재한다고?
위대한 과학문명이 만든 기계신체를 쓰면서도 그런 비과학적인 가설을 잘도 믿는군.”
“개발행성에 정착하고 나서 일백년 정도가 지나면 신생아가 죽어서 태어나는 문제가 조금씩 해결된다.
하지만 그렇게 무사히 태어난 신생아는 식민행성에서 죽은 노인의 수와 거의 비슷해.
그러니 앞으로 임신만은 본성에서 시도하게 해야 해.”
하지만 금속 얼굴의 기계인간들은 유일한 인간 의사를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이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중에는 조롱까지 이어졌다.
“조그만 더 있으면 신이 있다고 하겠군.”
“후후후후! 과학문명의 선구자인 의사이면서 나중에는 천국과 지옥까지 있다고 믿겠어.”
저들의 이야기인지 듣고서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결정을 내렸다.
‘여기는 신도 없나?
더구나 천국과 지옥이 아예 없다고 믿어?
신족이 아예 손을 뗀 어디 원시적인 시골에 떨어진 것 아니야?
그나저나 멀쩡한 신생아가 아주 없다면 이 육체라도 써야한다.
이러면 기억조차 봉인해야 해서 내가 누군지도 모를 수도 있지만 어쩔 수가 없다.’
더 이상 대상을 고를 여력도 시간도 없자 바로 실력행사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마음에 안 드는 미숙아의 시체였다.
‘이대로는 수준이 너무 낮아서 못 써.
아무리 노력해도 본래의 힘을 찾기는 고사하고 초월자가 한계일 것이다.’
몸이 좋지 않으면 어떤 재능을 가져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한 세계를 제압하고 부흥시켜 지배자로서 인정받을 정도로 강대한 권능과 창조력이 있었다.
아무리 신령상태이고 정기가 고갈된 상태지만 죽은 아기의 육체를 다시 신체로 재창조하는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이 아기의 육체를 재료로 하여 신체(神體)를 재창조한다.’
영혼이 없는 아기의 육체가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신령의 창조력을 움직인다.
우우우우웅-!
아기의 유전자부터 세포까지 존재 전부를 신령에게 적합한 신체(神體)로 다시 창조하려했다.
그런데 그 순간 세계의 변화가 느껴지고 이변이 벌어졌다.
빙글-! 빙그르르르르-!
병실의 공간만 격리되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한다.
마치 아기의 육체를 분해하여 신체로 만드는 것을 방해하는 듯 했다.
고위신인 자신이 이런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큭-! 세계의 항상성?
왜 갑자기 이렇게 격렬하게 반응하고 있지?
겨우 죽은 갓난아기의 육체를 신체로 바꾸는 정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