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방(前方)과 후방(後方) -->
모든 물건의 가치는 상대적이다.
강가에 굴러다니는 특이한 모양의 돌이 보기에는 쓰레기라고 할지라도 수석 수집가에는 엄청난 보물일 수 있다.
허나 기본적으로 많은 투자를 해야 얻을 수 있는 물건이 당연히 가치가 크다.
그리고 힘들게 얻은 물건일수록 애착이 가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차원창세신 코아가 가진 것 중에서 여왕의 열쇠들은 독보적인 최상품이었다.
누구에게도 넘겨줄 수 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솔직히 화가 아주 많이 난다.
너희 세력, 아니 이계의 전부를 합친다고 해도 내가 가진 재산과 가능성의 가치를 넘지 못한다.
그런 나를 이런 고생을 하게 하다니?
어떤 대가와 보상을 준다고 해도 절대로 안 준다.’
결심을 굳히자 다시 차원창세신 코아의 몸을 중심으로 신력과 마력, 투기가 융합되어 소용돌이친다.
구구구구구구구궁-!
그리고 마치 신언으로 세계에 법칙을 각인하면서 최대의 존재감을 실어서 선언했다.
“나를 죽이고 빼앗지 못하면 여왕의 열쇠들은 누구도 못 얻는다.
여왕들도 자신의 열쇠를 원한다면 직접 와서 내게 도전해라.
어떤 방법으로 도전하던지 전부 받아주고 나를 이길 수 있다면 돌려주지.
이 두 가지 방법 외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다른 존재가 가질 수 없다.
내가 이렇게 결정했다고 전하라.”
“!!!”
이계의 창조신장이며 마신황제, 초월자들의 총수이기도 한 차원창세신 코아의 선언이었다.
강렬한 구속력이 되어서 세계의 법칙이 변화되는 조짐이 느껴질 정도였다.
‘놀라운 존재감이다.
그리고 지금 선언의 무게를 생각하면 여왕의 열쇠의 정체를 알아도 감히 원하는 자들은 없겠지.’
여왕의 결속은 세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본이었다.
가장 큰 연합유지의 사유가 될 수도 있는 여왕의 열쇠가 보물고에서 나오지 못하고 영구 보관되고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중요했다.
그런 열쇠들이 전부 유출되었으니 삭월(朔月)의 시즈지가 가지게 된 고민을 알 수 있었다.
여왕들이 열쇠를 가지고 몸의 봉인을 풀고 나가버리면 막을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원래 주인인 여왕들에게조차 돌려줄 생각이 없다면 삭월(朔月)의 시즈지님도 어느 정도 안심하시겠어.
그런데 설마 열쇠가 무엇인지 아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 열쇠만으로 봉인의 정체를 유추하기는 불가능하다.’
녹발독후(綠髮毒后) 수월(水月)의 눈동자가 안심 혹은 당황감이 섞여서 흔들린다.
그러자 차원창세신 코아는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를 채고 속으로 웃었다.
‘후후후후후후후-! 이 열쇠가 무엇인지 대충은 안다.
여왕들에게 가장 소중할 수도 있고 아무런 쓸모가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세력의 수장인 삭월(朔月)의 시즈지에게는 아주 처지 곤란한 물건일 것이다.
여왕이라는 지배층을 하나의 세력으로 묶을 수 있는 족쇄와도 같으니 포기할 수도 없겠지.
아마도 다시 보물고의 수액바다에 던져 넣어서 누구도 영원히 꺼낼 수 없기를 바라 고 있겠지.
나도 세력의 정점에 선 존재라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아쉬운 시선을 보물고에 보냈다.
삭월(朔月)의 시즈지의 열쇠까지 끝까지 찾고 싶지만 더 이상은 단서가 없었다.
보물고 밖으로 나와 완전히 발동된 언제나 동전의 앞면도 열쇠가 계속 보물고 안에 있다고 알려주기만 한다.
그 이상의 세부사항은 전혀 밝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절대권능인 흑염의 절대 직감조차 이렇게 모호할 정도면 어떤 지독한 방어책으로 탐색을 막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가 다르다면 흑염의 절대 직감도 무용지물이지.
그럼 내가 만들 수 있는 세계보다 상위의 세계에 보관되어 있는가?’
문제의 원인은 알고 있지만 해결방법이 없었다.
사백구십구 주우주 차원 오리진의 세계 창조 수준이 겨우 초월자의 영웅 따위에게 밀린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확실한 격차가 있는 것이다.
‘세계 자체의 수준차이는 마도신이라고 해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절대로 편법을 용납하지 않는군.
자신이 정한 길로 가야만 여왕의 열쇠를 얻을 수 있게 해놓았어.
찾으려 시도하면 반드시 죽을 정도의 함정을 파놓고 말이다.
위험하지만 지금처럼 은하유성(銀河流星) 아이언이 만들어 놓은 길을 찾아 나서야 하는군.
그러나 저러나 이럴 바에는 열쇠들을 없애버릴 것이지 뭐 하러 남겨두었을까?
초월자들의 영웅 은하유성(銀河流星) 아이언이라?
아주 지독하고 위험한 놈이야.’
자신의 환생의 일부일지도 모르지만 가혹하고 냉정한 판단을 내리고 보물고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보물고 내부는 더 이상 조사할 필요조차 없이 샅샅이 확인을 끝냈기에 시간낭비였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로군.’
더구나 도약과 추락의 갈림길에 서있는 세력들의 수장으로서 휴식처나 연회장이 아닌 전장으로 가야할 때였다.
뚜벅-! 뚜벅-!
녹발독후(綠髮毒后) 수월(水月)을 앞질러 가면서 다시 다짐하듯이 말한다.
“내가 삭월(朔月)의 시즈지의 열쇠까지 찾아서 여왕 전부를 후궁이자 혈맹으로 받아들일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겠다.
후궁이라는 혈맹의 신청자로서 삭월(朔月)의 시즈지에게 첫 번째 신뢰를 보여주지.
여왕의 열쇠는 보물고 내부에 있을 때보다 더욱 안전할 것이다.
나를 말소시킨다고 해도 절대로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겠다.
그러나 지금은 신족과 초월자들에게 급한 일이 생겨서 일단 복귀하겠다고 전해다오.”
정확한 복귀이유까지 말한 이상 더 이상 알현을 권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차원창세신 코아가 초월자들의 총수이면서 신족의 창조신장임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시원하게 인정하니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었다.
‘무슨 생각이지?
서로 혁명과 반역자으로 불구대천의 원수인 신족과 초월자들이다.
그들의 공동 수장임을 인정하면 굉장히 곤란할 것인데 숨기지를 않는다.’
그렇지만 공손하게 대할 이유가 있기에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배웅을 했다.
“삭월(朔月)의 시즈지님에게 그렇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다녀오십시오.”
보물고를 유지 관리하는 녹발독후(綠髮毒后) 수월은 꽉 막혔던 보물고 내부가 정리되어서 열리기 직전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보물고가 개방이 되기만 하면 오백억년을 투자해서 만들어온 세력의 숙원이 마침내 완성되는 것이다.
‘보물고가 개방된다.
드디어 기계 차원이동 항성계 요새(機械 次元移動 恒星系 要塞) 골드 로즈가 기동한다.
그럼 우리들의 앞을 막을 존재는 없다.’
강제적인 은거생활이 끝나고 어떤 세계라도 자유롭게 갈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장미 우주수에 묶인 드라이어드 일족이라는 제약조차 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여왕의 열쇠를 누구에도 넘겨줄 생각은 없고 보물고를 열어주며 일족의 제약까지 풀어준다면 정말 후궁이라도 되어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기쁘게 고개를 숙이면서 배웅하는 장미 우주수 드라이어드 여왕이었다.
그런데 앞서 걸어가던 차원창세신 코아가 갑자기 멈추어서 한쪽 벽을 보고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
“거기 숨어서 보고 있는 너-!
열쇠의 반응을 보니 함대의 여왕인 에메랄드가 맞지?
초월총수인 내게 초월자가 무슨 무례인가?
당장 모습을 보이지 못할까!”
그 말에 녹발독후(綠髮毒后) 수월(水月)이 깜짝 놀라서 벽을 보니 정말 아주 작은 비행체가 벽에 붙어있었다.
정체를 들켰으니 숨길 생각은 없는지 작은 비행체에서 입체화면을 허공에 비춘다.
우우웅-! 우우웅-!
화면 안에는 함대 통제용의 화면이 끝없이 늘어진 지휘부에서 서 있는 여성이 나타난다.
검은 상복 위에 포대가 달린 전투함을 옷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전신갑옷을 입은 함대의 여왕 에메랄드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살짝 떨리지만 위엄이 있는 말투로 자신을 소개하려했다.
“숨지 않았노라.
단지 정찰이었지.
나야말로 함대의 여왕........”
“하? 정말이네.
상복을 입고 있잖아?”
차원창세신 코아는 함대의 여왕의 자기소개를 끊어버렸다.
녹발독후(綠髮毒后) 수월(水月)의 주신전을 사용할 때 슬쩍 이런저런 여왕에 대한 기밀정보도 얻었는데 가장 기막힌 사연을 가진 여왕이었다.
‘철이 없군.’
누구나 바라는 거대세력의 여왕이 되었으면 잘해야 하는데 혼자 떠돌아다닌다.
여기에 결혼도 못하고 짝사랑하던 애인이 죽어서 애도한다고 상복만 입고 다닌다는 아주 이상한 취향까지 가졌다.
참으로 복장이 터지는 상황이었다.
“당장 그 말도 안 되는 상복을 안 벗어!
언제까지 애도를 하는 것이야?
삼일만 슬퍼하면 되었지 오백억년을 하고 있어?
여왕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강자면서 이게 무슨 감정의 낭비야?
부하들이 본받고서 누가 죽기만 하면 애도를 하겠다는 핑계로 놀겠다고 설치면 어떻게 할래?
그럼 조직의 일을 누구에게 시키려고 이 짓을 해?”
“!!!”
초면에 다짜고짜 날라 오는 날선 비판에 함대의 여왕 에메랄드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 인정사정없는 말투와 저 이상한 명분은 역시 그와 똑같아!’
인류를 전부 정리하려 했고 연인까지 죽였던 기계제국을 천신만고 끝에 무너트려서 복수를 끝냈지만 동시에 삶의 의욕을 잃었다.
그래서 우주를 떠돌면서 연인을 애도하면서 인생을 마치려고 했었던 과거의 자신이었다.
물론 삭월(朔月)의 시즈지님이 새로운 여왕의 자리를 제안하며 만류했지만 더 이상 연인이 없는 세상과는 인연을 맺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은하유성(銀河流星) 아이언이 정중하게 독대를 청했다.
기계제국을 내부에서 붕괴시키고 기계여왕까지 생포했다는 숨겨진 영웅을 한번 보고 싶어서 허락한 것이 일생일대의 실수였어.’
그는 기함에 혼자 들어와서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각종 센서까지 확실히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자신에게 지금과 동일한 이유로 소나기처럼 비난을 퍼붓고 강제로 몸에 봉인을 걸어 자신의 여왕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당연히 저주를 퍼부으면서 도망을 쳤더니 정말 은하 끝까지 추적해 와서 다시 끌고 갔지.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보니 결국 도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
강제로 끌려 다니던 그때의 생각을 하면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이 추워온다.
아니 실제로 식은땀을 흘리면서 떨고 있었다.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격이 다르기에 당당하게 대하려고 했지만 자꾸 몸이 떨려서 더 이상 못 견딜 지경이었다.
“함대의 여왕은 다른 여왕들의 말도 안 듣고 세력을 뛰쳐나간 사고뭉치라고 했지.
너 이리와-!
절대로 못 벗겠다면 강제로 벗겨주지.”
“히이이이이이-! 전속후퇴-!”
광폭한 투기를 품어내면서 초월총수가 소리를 치자 화들짝 놀라버린 함대의 여왕(艦隊의 女王) 에메랄드였다.
화면을 다급하게 꺼버리고 근처에 대기 중인 기함과 함대의 후퇴명령을 내리고 도망을 친다.
딱-! 팡-!
입체화면은 사라지고 벽에 붙어있던 초소형 비행체까지 폭발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더욱 차원창세신 코아의 심사를 뒤틀리게 했다.
“감히 도망을 가?
너의 몸의 봉인과 연동되어 있는 열쇠가 내게 있음을 잊은 것이냐?
내 심기를 이렇게 건들이고 내 손에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당장이라도 쫓아가서 혼 줄을 내줄 생각으로 위치를 찾는다.
과민반응이지만 보물고에서 짜증이 날대로 나서 화풀이를 할 곳을 찾고 있었던 탓이 컸다.
“겨우 상복을 벗기 싫어서 도망을 쳐?
그러면 세계 끝까지 쫓아가서 발가 벗겨버리고 정신을 차릴 때까지 혼을 내주마.”
차원창세신 코아가 당장이라도 추격을 시작할 기세를 보인다.
그러자 보다 못한 녹발독후(綠髮毒后) 수월(水月)이 나직하게 말하면서 말렸다.
‘삭월(朔月)의 시즈지님의 결정이 나기 전까지 여왕들과 불필요한 충돌은 막아야 한다.’
“초월총수님. 신족과 초월족의 일이 급하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왜인지 모르지만 말투에 섞인 염려를 어느 정도 읽은 차원창세신 코아는 헛기침을 하면서 대답했다.
“흠흠흠! 내가 여왕으로서 불합리한 행동을 보고 좀 흥분했던 것 같군.
그럼 삭월(朔月)의 시즈지에게는 열쇠는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기를 바라겠다.
나는 일이 있어서 잠시 다녀오마.”
“예. 알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아아. 금방 다녀오지.”
그렇게 말하면서 장미 우주수 밀림을 떠나는 차원창세신 코아의 앞에 황금장미 기뢰 밭이 펼쳐졌다.
이미 아군인식을 착각시키는 통과방법을 고안했기에 다시 복제한 공간기뢰를 꺼내서 통과하려했는데 반응이 아주 달랐다.
마치 구름이 돌 벽이 되는 것처럼 자신의 앞에 공간기뢰들이 재배치되어 밀도를 높여 간다.
“응? 어라?”
단순한 아군인식에 따라서 유폭하기만 하던 황금장미 기뢰 밭의 양상이 완전히 변해 있었다.
기계주신성에 배치되어 있던 인공지능 기뢰들이 마치 지휘관처럼 사이사이에 뿌려져 있던 것이다.
그리고 광역의 감지 기능까지 개선했는지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태풍처럼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기뢰들의 앞장 선 인공지능 기뢰들이 발산하는 소리가 우주공간을 뒤흔들 정도로 커져만 간다.
‘삐-! 드디어 침입자 발견-! 복수다!’
‘삐-! 돌파당한 수치는 공멸로 씻는다! 돌진-!’
‘삐-! 삶은 순간이고 치욕은 영원하다.’
‘삐-! 지금 자폭하면 바로 상위등급으로 다시 재조해 준다는 기계 자아님의 통보다.’
‘삐-! 망설이지 마라.’
뭔가 지극히 기계의 인공자아 같지 않은 소리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기뢰들이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속도와 포위망을 구성하고 몰려오고 있었다.
“뭐야? 이놈들?
살기와 투기를 품어?
인공자아가 맞나?”
인공지능 기뢰에서 투신들처럼 막강한 기세가 발생된다.
자신감이 충만한 지금의 자신조차 일순 뒤로 물러나서 상황을 살펴볼까 생각할 정도였으니 어이가 없었다.
“앞장서서 지휘하는 인공지능 기뢰들도 너무 인간적인 것 같은데?
또 그 놈이 직접 만든 인공지능들은 아니겠지?
그리고 나와 정말 해보자 이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