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망(絶望)과 희망(希望) -->
자신들이 나름대로 세력의 중심을 맡고 있어서 모두 얼굴을 알고 있고 몇 번 마찰도 있었다.
그래서 이미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으로 자신들을 쳐다보는 적대세력의 신계관리주신들을 보니 앞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허나 다른 생각을 할 여력도 없었다.
차원의 마도신의 살기와 투기가 또 다시 급증하면서 사정없이 자신들의 신령을 죄어들고 있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창조신인지 마신왕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흉악한 살기를 품어내는데 모르면 바보였다.
‘본래의 세력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가는 당장 처분 당한다.’
‘그럴 명분도 있다.’
고위신들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더없이 가혹하지만 기존의 직위를 유지할 기회를 마지막 선고로 내리는 신계주신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대답은?”
“......자비롭고 관대하신 조치에 감사드립니다.”
“다시는 이런 실망스런 모습을 보이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신계주신에 의해 강제로 소속이 바뀐 것이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수궁했다.
명분과 상황도 그렇고 이번 일로 누가 이 신계에 가장 강대하고 무서운 존재인지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창조신의 압도적인 무력과 마도신의 무차별의 폭력이라?
직접 움직이니 감당할 수가 없다.’
‘이래서 주신장이 되었구나.’
그런 고위신들의 수긍과는 전혀 다르게 신계관리주신들은 폭발직전이었다.
당연한 것이 핵심 중간관리직들을 적 세력에게 넘겨주고 적들을 받아들이게 되었으니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뭐라고 말을 하려는데 지극히 만족한 차원의 마도신의 음성이 먼저 주신전을 뒤흔들듯이 크게 울렸다.
“좋아-! 이번에는 한명도 안 죽였다.
나도 할 수 있었군.
이걸로 이번 일을 끝낸다.”
단숨에 세력의 중심이 교체된 일에 말도 안 되는 조치라고 항의를 하려는 신계관리주신들을 황금빛의 눈동자로 쳐다본 차원의 마도신은 선언했다.
“신계주신인 나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
이제 누구의 의견도 조언도 받지 않는다.
머리수는 대충 맞게 교체되었으니 죽이지만 말고 부려먹도록 해라.”
완전히 신계관리주신들의 의지를 묵살한 차원의 마도신은 영광의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심술이 잔뜩 난 음성으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신계관리주신들을 쳐다보면서 내뱉었다.
“내 방식이 싫으면 너희들이 직접 처리하던가?
후후후훗-!? 불복하겠다고?
그것도 좋지.
좋아! 그동안 얼마나 세력을 발전시켰나 비교해 볼까?”
그리고 가볍게 손가락을 튕긴다.
딱-!
그리고 차원신계를 통째로 공간이동 불가로 만들었던 제약이 풀렸다.
더구나 각 세력이 머물고 있는 중심지에 공간이동의 문까지 생겼다.
“내 조치에 불만이 있으면 당장 덤벼보아라.
나를 이긴다면 이 결정을 바꾸어도 좋다.”
완전히 막나가는 행동에 어안이 벙벙해지는 신계관리주신들이었다.
그리고 바로 오른쪽 옆에 앉아있던 전율의 진군은 머리가 아파진 듯 이마를 손으로 두드렸다.
오로지 강력한 힘에 의한 지배와 반발, 그리고 다시 굴복시키는 폭력이야말로 마신족의 지배의 본질이다.
그럼 저 행동이 마신족으로는 당연하지만 신족의 기준을 보았을 때는 절대로 아닌 것 같다.
돌아가는 상황도 역시 뭔가가 이상했다.
판단이 잘 서지 않아서 뒤의 고위마신들에게 의지를 보냈다.
‘마신왕이면 저런 행동이 맞기는 한데 신족은 아니지 않나?’
하지만 분위기는 갈수록 살벌해지는데 또 찬사만 늘어놓는다.
‘굉장한 자신감입니다.’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당당한 마신왕이로군요-!’
‘전율의 진군님의 계약자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지금 마신족이 신족에게 물들어서 힘에 의한 지배의 순수성이 사라지고 입으로 살려한다고 개탄하던 고위마신들이라서 전혀 의논상대가 안되었다.
아니 오히려 조금 더 상황이 악화되면 드디어 자신들의 힘을 보일 차례라고 기대하면서 반길 분위기였다.
‘역시 이들은 정통 마신족이라서 전혀 도움이 안 되는군.
차원의 마도신이 커다란 힘을 얻어서 자신감이 넘쳐서 폭주 중인 것 같은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
내가 보기에도 저런 자신감 있는 행동이 좋은 것 같은데 신족의 일이라서 정확한 판단이 안 서.’
결국 신족의 일은 전문가에게 물어야 했다.
잠깐 망설였지만 은은히 높아지는 신계주신과 신계관리주신들의 투기를 보니 빨리 움직여야 했다.
차원의 마도신이 열어놓은 공간의 문을 통해서 상황을 보던 고위신들이 자신들의 주신을 보고 집결을 시작하고 있었다.
두두두두두두-!
갑자기 신계에 걸린 공간이동이 풀렸고 주신전으로 통하는 공간의 문까지 열렸다.
더구나 중간관리를 하던 고위신들까지 강제 소환되자 불안해하던 다른 고위신들이 자신들의 주신들을 찾아서 오는 것이다.
그러나 각 세력의 신계관리주신들은 주력의 소집연락도 없었는데 속속 모여들자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신계주신인 차원의 마도신의 힘은 분명 자신들을 뛰어넘은 것이 확실했다.
광역권능을 주로 쓰기에 하위신의 세력이 아무리 모여도 오히려 단번에 제압될 뿐이다.
자신들이 보호까지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럴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이런 상항인데 이렇게 모여들면 일격에 전부 쓸려버릴 우려까지 있었다.
‘이 멍청한 놈들아-! 오지마-!’
‘왜 이런 상황에서 몰려오는 거야?’
‘이걸 어째?
뭐가 이렇게 심각해지지.’
그렇다고 신계관리주신들의 입장에서도 휘하 고위신들이 있는데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죽는다고 해도 부하들이 의지할 수 있는 강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세력을 만드는 것은 힘들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주신전에 고위신들이 집결을 시작하자 경계를 맡고 있던 500주우주의 전 오리진출신의 주신들도 몰려온다.
쿠쿠쿠쿠쿠쿠쿵-!
공간이동의 제약이 해제된 것을 알았으니 아무 망설임도 없이 주신전으로 공간이동을 하여 차원의 마도신의 뒤로 도열을 시작했다.
200명의 오리진 출신의 주신들 입장으로서는 차원의 마도신은 반드시 신계주신으로 있어야 했다.
차원의 마도신에게 패배하고 포로로 붙잡혔지만 499주우주에서 강해지기 위해서 오리진을 포기하고 귀순까지 한 입장이다.
과거보다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최고위 창조신계의 신계관리주신은 반드시 유지해야 했다.
그걸 위협하는 어떤 세력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순식간에 차원의 마도신 뒤로 도열된 전 오리진들이 품어내는 신력과 투기가 여주신들과 정령주신들을 강타했다.
소멸된 신체대신에 차원의 마도신이 직접 만들어준 신체로 다시 단련해온 권능이었다.
비록 오리진의 권능은 사라졌지만 500주우주에서 최고의 위치까지 쟁취했던 신격과 권능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그들이 진심으로 품어내는 신력파동은 단숨에 여주신들과 정령주신들을 압박했다.
이런 도발을 참을 만큼 인내가 있는 신계관리주신은 여기에 아무도 없었다.
“으득-! 해보자 이거지?”
“모두 머리 좀 식혀주었으면 좋겠는데.
아니면 내가 직접 식혀주지.”
결국 자극을 받은 신계관리주신들도 자제하지 않고 투기를 방출하면서 전투태세에 들어간다.
그리고 자신들의 주신이 전투태세를 하자 비상사태임을 확인한 각 세력의 고위신들이 물밀듯이 주신전으로 이동을 해왔다.
점점 주신전에 넓은 공간을 편을 나누어서 채우기 시작하는 고위신들이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은 바로 전투 직전이었다.
전율의 진군은 돌아가는 상황에 저절로 한숨을 쉬었다.
그냥두면 또 한바탕할 분위기였다.
‘하? 또 이러나?
무슨 놈의 신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이야?
더구나 이제는 회의 중에 의견이 틀어지면 바로 전쟁?
이걸 갈수록 태산이라고 하던가?’
마신족도 이러지 않는데 수시로 내전직전까지 치닫는 꼴을 보니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의 차원의 마도신이 질리는 없지만 신계관리주신들의 대표들이 신계주신에 당해서 전부 쓰러지면 신계가 뒤흔들린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렇다고 마신족이 나서면 기름에 불을 붙이는 격이다.
이런 신족의 흥분상태를 막거나 중재할 수 있는 고위신족이며 중립인 존재가 다행히 있었다.
‘전지의 성(全知의 聖)과 신계주신대리 가이아나.’
주신전의 경비대장의 자격으로 신계자아를 통해 지급으로 호출을 했다.
그러자 조금 응답시간이 걸렸지만 바로 연락이 왔다.
‘.......뭐지? 네가 나에게 연락을 보낼 정도로 친했던가?’
이런 저런 사정을 설명도 부탁도 할 생각이 없었기에 바로 본론만 꺼냈다.
‘여기 또 내전직전이다.
신족의 신계의 일은 마신족인 나는 모르겠다.
거기 신계주신대리도 같이 와서 좀 말려봐라.
이러다가 차원의 마도신에게 신계관리주신들과 고위신들이 전부 전멸하겠다.’
‘정말 내게 도움요청?
아하하하-! 설마 내가 너의 말을 들어 주리고 생각해?
우리 친구보다 원수에 가까운 사이 아니었나?’
물론 처음 보자마자 서로 우열을 가리자고 치고받은 결투한 기억밖에 없지만 무조건 도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전지의 성이 마신왕으로 갑작스럽게 승급되어 겪고 있는 신체의 문제점을 눈치를 못 챌 정도로 둔하지는 않았다.
‘마신왕에 도달한 성마신(聖魔神)을 신계에 손님으로 받아주고 요양까지 하게 해줄 고위 창조신이 차원의 마도신외에 또 있다면 거절할 수 있겠지.
일족까지 몰래 데리고 빌붙으려는 차원신계가 박살나기 전에 와보지 그래?
마신인 내가 나서면 여기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알았어.’
창조신과 비견되는 신력을 기진 성마신이지만 결국 마신왕이다.
일반 창조신조차 능가하는 마신왕을 신계내부로 들여보내줄 간 큰 창조신은 당연히 없었다.
만약 차원신계가 또 문제가 생겨서 창조신들이 몰려오는 날이면 이런 편한 요양은 끝이었다.
더구나 최고위 창조신급의 신력을 자연스럽게 흡수시키기 위해서 봉인한 신족의 기대주까지 전부 데려왔는데 쫓겨날 수 는 없었다.
전지의 성은 이런 강요까지 받게 된 원인에게 새삼스럽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창조신성은 고사하고 고작 주신성을 만드는데 1만년이 넘게 걸리고 확률조차 절반밖에 안 되는 멍청하고 무능한 전능의 휘 같으니라고-!
이게 모두 네 탓이야.
더구나 이제 창조신이면서 신계의 등급은 또 왜 그렇게 낮아?’
지금 전능일족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창조신은 전능의 휘다.
겨우 중급 창조신에다가 신계조차 주신이 부족해 겨우 일반 창조신급이니 자신의 신력안정에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
마신성에 자체적으로 만든 신계와 비슷한 약한 신력이 성마신이면서 마신왕이 된 자신에게 도움이 될 리가 없다.
‘그 정도로는 마신왕이 되어서 어긋난 신력과 마력의 조율과 신체휴양은 고사하고 악화만 막을 뿐이다.
여기에 있으려면 어쩔 수는 없지.’
그러니 마신족에게 호감을 보이는 차원의 마도신이 신계주신으로 있게 도울 수밖에 없었다.
신계주신대리로서 이미 상황을 거의 알고 있는 가이아나가 의욕이 충만한 얼굴로 눈동자까지 반짝반짝 빛을 내면서 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주신전에 가보자고 조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어야 할 것 같네.’
“이제는 갈 때다.
길을 열어라.
주신전에 가자꾸나.”
“예. 길은 열어놓았어요.”
신계주신대리로서 차원의 마도신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자유자재로 주신전으로 가는 공간의 문을 열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가이아나다.
한참 전에 준비한 듯 안정적으로 열어놓은 공간의 문을 쳐다보면서 전지의 성은 잠시 말을 못했다.
아주 대문짝만하게 열어놓았다.
‘단 둘이 이동하는 공간의 문으로는 너무 크다.’
보아하니 현재 주신전에 각 세력의 주신들의 세력이 총력을 동원하고 있는데 경거망동을 못하게 하려면 이번에 데려와서 깨운 아이들도 데려가야 했다.
마치 그걸 예상한 듯 수십 명이 동시에 움직일 수 있게 만든 공간의 문을 보고 결국 한마디를 했다.
“.......가끔 무척 빠르구나.
아니 현명하다고 보아야 할까?”
“?”
신계기록을 보니 차원의 마도신으로 신계주신이 교체되는 격변기에서도 여신들 중 최고의 위치를 유지했다.
원래 신계주신이 권력을 잃으면 반려도 같이 추락하거나 추방하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드문 일이다.
가이아나가 굉장히 둔하고 순진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때를 놓치지 않았다.
아주 멍해 보이는 데 이런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바른 선택을 한다.
아니 위기상황을 자신에게 아주 유리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것도 누구의 불만도 사지 않고 자연스럽게는 거의 불가능하지.
하긴 과거 일족의 창조신 중에서 진리와 싸우고도 혼자서 살아 돌아올 정도였으니 멍청하거나 약할 리는 없지.
평소에 고민을 하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가장 유리한 상황을 만든다.
누구의 미움도 받지 않는 처신 덕이기는 하지만 이것도 재능이려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빨리 가자고 자신을 쳐다보는 가이아나를 보면서 평가를 조금 고친 전지의 성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