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역(反逆)과 충성(忠誠) -->
방금 회색의 절대자가 무슨 짓을 했는지 영원체들은 모두 짐작을 했다.
초소형 시공간폭탄을 실처럼 연결하고 순차적으로 연쇄 폭발을 시켜서 499주우주의 흑염의 절대자를 공격한 것이다.
그것도 응축시킨 절대 봉인권능 ‘이그드라실’을 선두에 날려서 말이다.
‘이그드라실’은 유일한 영원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현자계열의 최고의 절대 권능이다.
그런 초고도의 권능을 각 주우주에 있는 방어막이 마치 없는 것처럼 뚫어버리고 날리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는 기적과 같은데 사정거리조차 한계가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이런 속도로 발현되고 초고속으로 날아오면 자신들도 막을 자신이 없었다.
이런 영원체조차 타도하는 저격을 거리나 방어와 상관없이 발동할 수 있는 존재가 진리의 친위대이면서 대립을 시도하고 있는 10중심의 하나라면 그 공포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10중심이 명확하게 진리의 부하인지 반항세력인 결정되면 대응을 할 수 있는데 이건 상황에 따라 수시로 왔다 갔다 하니 상종을 하지 않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를 할 수 없어서 협조는 해주지만 주우주마다 방어막을 세워서 출입을 막아왔다.
지금도 이런저런 주도권의 문제로 싸우는데 정말 상대하기 벅찬 10중심들이다.
여기에 기존의 10중심들에게 유효했던 주우주의 방어막조차 무시하는 이런 존재가 추가되다니 앞으로 마음 편하게 지내기는 글렀다.
‘감당할 수 없는 괴물들이 더 늘어났다.’
‘진리여.......진리여.......왜 이러시나?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시킨 대로 모두 했지 않는가?
명령한 대로 주우주를 만들고 정신체도 무수히 창조했는데 왜 이러시는가?’
‘주우주만으로 부족한가?
더 무엇을 하라고?
차라리 속 시원하게 말이라도 해보시게.’
500억 년 전 진리가 영원체들의 정상을 차지한 이후로 한시도 이 처절한 감정이라는 것을 느끼지 않은 적이 없었다.
과거에는 정적과 고요를 견디다 못해 심심해서 못살겠다고 스스로 말소된 영원체들도 많았다는데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모든 영원체들은 절대계의 중심에서 조용히 잘 살고 있었는데 1대 8인의 절대자들의 8륜 봉인을 만든다고 강제로 아무것도 없는 외부로 쫓겨난 이후로 말이다.
진리가 조용히 있어서 조금만 안심하면 10중심들이나 바람가가 수시로 이런 감당 못할 일을 일으키니 피가 마른다는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용무가 끝났다는 듯이 자신들은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저 멀리 멀어지는 회색의 절대자와 마도신의 오리진을 바라보면서 처연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이런 고민을 안기면서도 티격태격 하며 떠나는 꼴을 보니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머리 때리지 마시라니까요-!
아-! 귀도 잡아당기지 마요.”
“서열전이 끝나면 저 8륜 봉인을 당장 풀어-!
성과도 좋지만 결국 자기 자신에게 무슨 짓이야-!”
그 말에 잠시 회색의 절대자가 생각을 해보다가 넌지시 말을 했다.
“이제 제 과거는 필요 없지 않아요?
그냥 이대로 가죠.
속에 있는 것을 무사하게 봉인을 풀려면 장난 아니란 것 아시잖아요?
지금 서열전의 마무리가 급하지 않습니까?”
“.......일단 서열전부터 처리한다.”
이미 과거의 자신을 ‘것’이라고 물건 취급하듯 말하는 것은 굉장히 거슬리지만 이해는 했다.
저런 초고도의 봉인은 실시하는 것도 힘들지만 해제하는 것은 더 어렵다.
외부에서 건들면 오히려 더욱 강화되거나 폭발하여 주변까지 초토화를 낸다.
내부에서 불법으로 해제하려고 하면 오히려 더욱 강화되는 순환장치도 철저하다.
영원체를 뛰어넘는 강함을 가진 1대 8인의 절대자의 신체들이 괜히 조용히 갇혀있는 것이 아니다.
내부에서 난동을 부리면 부릴수록 제어가 강화되기 때문이다.
힘으로는 절대 못 풀고 동시 발동시킨 8개의 권능의 융합도와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아예 꼼짝도 하지 않는다.
강제해제를 시도하면 최악의 경우 주변까지 날려버리는 최악의 폭탄이 된다.
시공간폭탄 정도의 파괴력이 아닌 세계 멸망급의 파괴력이라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여기에 본인인증까지 수많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결론적으로 8륜 봉인은 시행자 본인이 아니라면 해제는 불가능이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렇게 꺼림직 하지요?”
“나도 그렇다.”
회색의 절대자가 무엇인가 놓친 것 같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마도신의 오리진도 이렇게 일단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는데 아주 속이 불편했다.
차원의 마도신이 흑염의 절대자의 권능 하락 의뢰를 최상으로 마무리를 지었는데 결국은 뒤통수를 쳐버린 상황이 마음에 안 들기도 하지만 불안감이 치솟았다. 서열전이 끝나기 전까지 흑염의 절대자를 봉인한 8륜 봉인에 무슨 일이 발생할 것 같았다.
아니 자신들 정도의 경지면 거의 확정된 미래의 예지와 같았다.
서열 4위 흑염의 절대자가 초장거리 공간이동을 막아서 직접가지 못하니 이론적으로 신속하게 모든 가능성을 점검했다.
“내부에서 차원의 마도신이 해제를 시도하여 성공할 가능성은?”
“없지요.
겨우 11써클의 마도신 주제에 14써클의 마도신인 저를 능가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2대 흑염의 절대자가 힘으로 내부에서 파괴하고 나오는 시도는 봉인의 특성상 불가능하다.
파괴 여부의 가능성보다 본인이 아니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다.
각종 본인인증을 통과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시행한 것은 회색의 절대자이니 차원의 마도신도 일단 시도는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차원의 마도신의 마도로 해제하기에는 너무나 신격과 연산력이 부족하다.
“8륜 봉인에 문제는 없는데 불안하다.”
“예. 가서 확인을 하거나 회수하여 추가 봉인을 하면 확실할 것 같은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저희들에게는 지금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이런 불안에 고민과 추가 조치를 하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일을 시작하면 폭풍처럼 몰아쳐야지 머뭇거리면 반드시 역풍이 온다.
거기다 10중심이 상대였으니 여유 따위는 없었다.
비록 회색의 절대자와 바람가가 뭉쳤어도 전력의 차이는 컸다.
그리고 그렇게나 고대하던 봉문 해제의 때가 가까이 왔다.
지독한 현실과 바꿀 수 없는 무력함에 외면만 하던 시절은 끝이었다.
서열 1위를 차지하고 봉문을 풀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조성만 하면 자연스럽게 나설 수 있다.
유리한 상황조성은 마도신의 오리진인 자신에게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일단 서열전의 장소로 이동하여 마무리를 추진한다.
최대한 빨리 진행하자.
거의 되었는데 지체해서 돌발 상황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예.”
그렇게 회색의 절대자와 차원의 마도신이 다급하게 서열전의 장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정적을 되찾은 499주우주의 주신계에는 방금까지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수없이 흩어져 있는 파멸유혼검에 남아있는 절대 권능의 여파로 아무도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능의 거대한 소용돌이로 바뀐 중심부에는 8륜 봉인인 구슬이 진동하면서 음성을 토해내고 있었다.
불안대로 봉인은 완벽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회색의 절대자가 알았다면 어떤 방해와 시간을 무릅쓰고 바로 달려왔을 것이다.
직접 현장 확인을 못하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그드라실’은 완벽했다.
다만 1인용 봉인에 2인을 집어넣어서 생긴 문제였다.
아니 14써클의 흑염의 절대자를 신경을 쓰느라 11써클의 차원의 마도신을 완전히 무시한 결과였다.
가장 큰 오류는 차원의 마도신의 들어있는 창조신의 보석이 오리진 50명과 그 외의 고위신들이 수천 명이 억류되어 있는 신령연옥이란 사실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500주우주의 오리진들은 지금은 약하지만 잠재력은 499주우주와 같았다.
주신이상의 신격을 가진 고위신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합한 잠재력의 총합은 이그드라실의 여유 용량을 조금 초과하여 아주 약간의 틈을 만들었다.
물론 파괴되거나 차원의 마도신이 빠져나갈 수 있을만한 것은 아니고 완벽에서 아주 미세한 틈이었다.
시행한 회색의 절대자가 눈치를 못 챌 정도의 아주 작은 흠집과 같았다.
그 흠집사이로 저주와 분노로 미치기 직전의 차원의 마도신의 목소리가 새어나온 것이다.
“10억년이 아닌 영구봉인이 맞다.
회색-! 이 갈아 마실 미래의 나 같으니라.
나를 가만두지 않겠다.
지금........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지?
하하하하하-!돌아버리겠네.”
다행히 죽지는 않았지만 이러면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신령이라 죽지도 못하니 꼼짝없이 이 좁은 신령연옥에 영구히 연금될 판이다.
그걸 시행한 것이 타인도 아닌 미래의 자신이라니 미치지 않은 것이 용했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분하여 발광하기 직전의 차원의 마도신의 귀로 진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래의 자신에게 이런 꼴을 당하다니 너 정말 현자가 맞느냐?
너의 삶이 참 우습구나.
허허-! 거기에 말려든 나는 더 우습군.
내가 누구를 탓할 것인가?”
신령연옥의 오리진들과 고위신들은 시끄러워서 신령연옥 안으로 모두 깊숙이 박아 넣었으니 음성이 들릴 리가 없다.
그럼 같이 봉인된 흑염의 절대자의 신령이 맞는데 완전히 분위기가 바뀌어져 있었다.
3미터가 넘는 키도 터질 것 같이 확장되어 있으면서 극도로 압축된 근육의 모습도 똑같았다.
그러나 신령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아까 미쳐 날뛰는 거인 광전사와는 전혀 달랐다.
뭔가 근접할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가 넘쳐났다.
신격의 차이가 아닌 존재 그 자체가 가진 높고 높은 품격이었다.
당연히 투기와 살기의 융합체인 흑염의 절대자로서는 꿈도 못 꿀 품위를 보이고 있었다.
“뭔가........스타일이 많이 바뀌신 것 같습니다.
다짜고짜 책임을 지라면서 저부터 박살내실 줄 알았는데 왜 갑자기 점잖게 말로 하십니까?
참고로 저도 어쩔 방법이 없습니다.
저도 같은 피해자입니다.”
‘미래의 내가 한 짓이지만 나도 거들었지........복잡하군.’
같이 봉인을 당한 신세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의 원흉은 자신이다.
물론 결정타를 먹인 것인 회색의 절대자이지만 타인이 보면 미래나 과거나 자기 자신이 맞았다.
그래서 이 일로 흑염의 절대자에게 당장 치도곤을 당하고 소멸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이걸 뒤처리를 해줄 회색의 절대자가 흑염의 절대자와 같이 봉인을 해버리니 더욱 이가 갈리는 것이다.
그런데 각오했던 주먹은 안 날아오고 대신 더욱 무거운 의미를 가진 말이 넘어왔다.
“내게 시비(是非)를 걸지 말지어다.
진리(眞理)를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냉정하고 완벽한 패배만이 기다릴 뿐이니 내가 곧 진실(眞實)이다.”
“흑염(黑炎)이 진실(眞實)이요?
게다가 시비(是非)를 걸지 말라고요?
뭘 잘못 드셨습니까?
아니면 벌써 미치시기라도?”
오랜 기간 갇히면 아무리 신령이라고 해도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이런 증상이라니 심각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정말 불쌍하다는 느낌의 말이었다.
“이 따위가 현자의 정점인 회색이 된다니........말세(末世)로다.
하긴 반영원체(半永遠體)인 진리께서 세계의 정점이 된 순간부터 말세(末世)와 현세(現世)의 끝없는 반복이었지.
영원한 혼세(混世)로군.
유지를 하고 계시니 결과적으로는 세계의 입장으로는 더없이 좋겠지만 왜 그렇게 힘든 길을 가시는지 알 수 없구나.
나와서 여기 앉도록 해라.
물어 볼 것이 많다.”“.........”
갈수록 태산이다.
허나 하나는 확실했다.
‘언제나처럼 맞을 염려는 없어 보이는데 엄청 불안하네.’
폭력 그 이상의 방법으로 당할 위기감에 신령연옥에서 나와서 예의를 다해 무릎을 숙이고 앉았다.
알아서 숙인 셈인데 황당하게도 흑염의 절대자가 똑같이 무릎을 끊은 자세로 앞에 앉는다.
너무 익숙한 듯 예의가 넘치는 자세도 그렇고 말도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시간은 넘치도록 있는 것 같으니 너의 과거 이야기나 해보아라.
진리께서 회색의 절대자를 임명하신 것을 보니 무슨 이유가 있겠지.
그걸 알고 싶구나.”
방금 전까지 투기와 살기를 품으며 날뛰던 3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근육질의 거한의 신령이 상대도 안 되는 자신에게 예의를 다하면서 말을 하니 괴리감에 온몸이 떨릴 정도다.
이건 미쳐 날뛰는 상대와 싸우는 것보다 더욱 무서웠다.
결국 봉인을 당하는 것과 동시에 최악의 사태를 예상하고 준비하고 있던 말을 꺼냈다.
“.......저기 말입니다.
그냥 이 신령연옥과 신령을 박살을 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럼 잘하면 저는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역시 자신답게 허점이 있는 완전한 8륜 봉인이 아니다.
파악도 잘되지 않는 흠집과 미세한 틈에 불과하지만 신령이 박살난 파편이라면 통과가 가능해 보였다.
그러면 근원의 칭호의 효과와 차원의 권능으로 어떻게든 바깥에서 되살아난다.
물론 성공확률은 희박하고 모든 권능과 마력을 잃고 처음부터 시작을 해야겠지만 영원히 갇혀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내가 중간에 개입하면 의미가 변할 수 있으니 이제 침묵하겠다.
그러니 처음부터 과거 이야기를 해보 거라.”
“.......”
지그시 눈을 절반쯤 감은 채 자신의 이야기를 묵묵하게 기다리는 흑염의 절대자의 모습에서 지금까지 느꼈던 모든 황당함보다 더한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만족할 정도의 설명이 아니면 끝없이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해야한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그렇다고 거부하자니 신령의 신력 차이가 거의 1만 배 이상이다.
이런데 강제로 기억을 읽히면 바보가 될 확률이 컸다.
꼼짝없이 모든 것을 스스로 밝혀야 무사할 것이다.
자신이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추억이고 나발이고 생각만 해도 끔찍하니 그럴 리가 없었다.
그러나 안할 수도 없다.
신격의 차이도 비교할 수 없이 저쪽이 높고 침묵이 이 정도로 압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울 뿐이었다.
‘완전히 잘못 걸렸다.’
결국 그나마 비교적 잘 나가던 신계시절을 이야기했다가 아무 반응이 없어 결국 아기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