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첫번째열병-12화 (12/14)

#12

"으응..............응, 응응.......!"

끈적끈적한 접촉에 눈을 떠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그의 성기를 빨아들였다. 뒤에서 끌어안긴 채 한쪽 다리를 그의 다리 위에 올리고 있었다. 다리 사이를 점령당한 자세로 몸을 틀어 그의 키스를 받았다. 혀를 얽고서 깊은 키스를 나누었다.

타액을 따라 그의 입술이 내려왔다. 목덜미를 강하게 흡입하더니 어깨로 혀를 미끄러뜨렸다. 끝의 둥근 부분을 베어 물고선 세게 빨아댔다.

"아아아.......!"

그의 다리가 허벅지 안쪽으로 파고들어와 네 다리가 얽혔다. 풍만한 유방을 주무르는 손이 육감적인 움직임을 더했다

묵직한 욕망의 덩어리가 더 깊숙한 곳까지 찔러왔다. 비명을 내지르며 그의 엉덩이를 꽉 움켜잡았다. 지독한 쾌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완벽한 일체감이 환희의 절정을 맛보게 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더 애절하고 절박하게 그를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도 느꼈는지 움직임이 무섭도록 격렬했다.

그가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떨었다. 내게서 나가지 않고 그대로 꽉 안았다. 전류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누구의 몸에서 시작된 건지 알 수 없지만 그와 내 몸을 자유자재로 휘돌아다니는 전류가 있었다. 그 전류가 잠잠해질 때까지 우린 침대에 있었다.

"신기해."

곁눈으로 보자 그가 쉰 목을 풀고서 말했다.

"할수록 새로워."

듣고 싶은 말은 통 안 하면서 때때로 그는 상스러울 정도로 노골적인 표현을 잘도 한다.

"다른 때보다 엄청 커졌어. 그러니까 더 꽉 조여서.......확 갈 뻔했다. 아팠을지도 몰라."

난 손으로 내 눈을 가려버렸다.

"새삼스럽게 뭐가 부끄러워."

입도 가려버렸다.

"오늘은 정말 주머니에 넣어가고 싶다. 무릎에 앉혀놓고 만지면서 일하고 싶어."

상상이 돼서 온몸이 다시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속옷 같은 건 안 입히고. 언제든지 할 수 있게."

"회, 회사 늦겠어요."

후다닥 빠져나오는데 그가 허리를 감아 당겼다.

"잠깐만."

앉은 채 끌려갔다. 허벅지 위에 그의 머리가 닿았다. 당황해 내려다보자 그가 한 팔로 허리를 감아 잡고서 요구했다.

"한번만 빨게 해줘."

말과 눈빛이 의미하는 걸 깨달은 순간 체온이 다시 급상승했다. 놀라면서도 그의 음란한 표현에 몸이 금세 촉촉해져 버렸다. 이성적이고 냉정한 평소 모습과 침대에서의 그의 모습은 극에서 극을 달렸다. 너무 달라서 아직도 이렇게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감히, 어떻게 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으랴.

난 벌써 초점이 흐려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손으로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상체를 내렸다. 그의 입술 위치에 맞추어 유방을 움직였다. 중력에 의해 출렁 잡아당겨진 커다란 젖가슴 끝에 유두가 꼿꼿하게 솟아 있었다. 그가 혀를 내밀어 받아먹었다. 포도알을 따먹듯 입 속에 넣고서 아기처럼 빨아대기 시작했다. 그의 다른 손이 올라와 비어있는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풍만한 살집을 모양이 일그러지도록 주무르다가 젖꼭지를 꾹꾹 누르고 집어 돌려댔다.

"아흐.........."

쾌감을 참지 못하고 그의 몸을 만졌다. 가슴 근육과 갈비뼈를 더듬었다. 더 아래로 손을 뻗자 털이 순가락에 휘감겼다. 순간, 그가 몸을 일으켰다. 상기된 채 찌푸린 눈으로 날 봤다.

뭔가 그의 내부에서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어나자. 늦겠다."

그는 휙 몸을 내려 곧장 방을 나가버렸다. 자신의 욕실을 쓰러 간 것이다. 그는 회사, 난 학교로 가야 하니까. 하지만 내 음모는 애욕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뜨겁게 젖어 있는 그곳을 씻으며 생각했다. 이긴 건 그의 이성이다. 그럼 진 건 뭘까?

결심한 것을 지키기 위해 난 열심히 공부했다. 그가 필요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여자가 되기 위해서, 간호사든 뭐든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 앞에서, 다른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여자가 되리라 결심했으니까.

"이것 좀 가르쳐 줄래? 뭘 묻는 건지 잘 모르겠어."

해윤의 문제는 그렇게 접근했다. 상처주고 싶지 않아도 상처받게 되어 있는 이 상황을 이겨내는 법은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게 대하는 방법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과도 좀 더 어울리도록 노력했다. 여학생들과 같이 밥도 먹고 얘기도 나눴다. 지루한 연예인 얘기에도 관심을 가져 보려고 했다.

얘기를 듣고 나누다가 무심코 고아란 얘기를 털어놨다. 측은하게 보는 아이도 있고 어색해 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다가도 내 시계며 보라색 운동화, 빨간 가방, 짝짝이 양말, 교문 앞에 대기하고 있는 검은 승용차 같은 것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양호실에 나타난 그에 대해 묻기도 했다. 또 그들은 그와 관련한 나에 대한 억측이 학교에 떠돌고 있다고 했다. 요약하자면, 그는 재벌이고 나는 재벌의 상속녀. 그래서 내 별명은 나도 모르게 어느새 '소공녀'로 통한다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아이들이었다.

"나보다 소화 말이 더 중요한 거 아니었어?"

해윤이 비아냥거려도 아픈 건 이쪽이 아니었다.

"싫다면 묻지 않을께."

"아니란 거 알잖아."

"변덕스럽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미안해."

땅에 발 딛고 서니까 보이기 시작했어. 다른 사람들 말야. 그와 날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자신 없어서 피하고 외면하고 움츠러들고만 있었는데, 그러면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았어. 강해질 거야. 강해져서 그를 돕고 싶어. 할 수만 있다면 너도......

"그 장단에 내가 맞춰주야 되냐?"

버럭 소리칠 것처럼 화난 표정의 해윤을 보았다.

"싫으면 말 안 해도 돼. 나 무시해도 돼. 내가 어리석었어."

"내가 무시하든 말든, 상관없으니까 그렇겠지. 안 그래? 우산 하나 선심 쓰는 거 너한테는 아무 것도 아니지? 받는 상대 마음이 어떨지 생각도 안 하지? 이랬다저랬다 네 맘대로 해도 어차피 내 맘은.....똑같으니까. 그걸 아니까 내 반응이 어떻든 괜찮은 거야. 다른 누구 좋아하는 게 진짜라면, 사람 좋아하는 게 어떤 건지 너도 알 테니까."

상관없지 않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싫지 않고, 걱정되고, 안쓰럽단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 말이 해윤을 더 아프게 할 것 같아서......

소화에게 말했다. 소화의 마음, 해윤의 마음, 그리고 내 마음에 대해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마음들이 흐르는대로 두기로 했다고, 걱정되면 걱정할 거라고.......

그의 손이 어깨에서 가슴으로 내려왔다. 셔츠 속으로 들어와 브래지어 위로 가슴을 만졌다. 귓가에 달콤한 숨결이 살랑 불어왔다.

"가슴이 점점 커지는 것 같은데?"

"아니에요."

"이젠 손에 다 들어오지도 않아."

"설마......"

"뭐해?"

"시험이에요."

내일이 중간고사 첫날이었다. 갑자기 공부한다고 해서 성적이 팍 오르지도 않을 것이고, 이제와 성적이 잘 나온다고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 시험에 전력투구하고 싶었다. 스스로에게 뭔가를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다.

"저녁은?"

"샌드위치 먹었어요."

"간식이잖아."

"배 안 고파요."

"난 고파."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너부터 먹고 싶어."

날카로운 이가 귓불을 깨물더니 목덜미를 길게 핥아왔다. 보고 있던 단어에 밑줄을 그었다. 외워보겠다고 중얼거리는데 다음순간 목덜미에 날카로운 통증이 일었다.

"아!"

놀라 돌아보자 그는 이미 등을 돌려 방을 나가고 있었다. 목의 따끔한 부위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쓰라린 느낌이 있어 거울에 비쳐봤더니 빨갛게 자국이 생겨있었다. 아무리 격한 사랑을 나누었을 때에도 그는 내 몸에 손톱자국 하나 남긴 적이 없었다. 오히려 서툰 내가 그의 등이나 어깨를 긁어놓긴 했어도 말이다.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배고프다더니 혼자 저녁을 먹으러 내려갔나 생각했다.

3시간여 동안 책상 앞에 있었나 보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몸을 일으켰다. 문득 시장기가 느껴져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뭘 먹을까 싶어 냉장고를 여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뭐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서재에 있었다. 문을 약간 열어 물어 보았다.

"저녁 먹었어요?"

그는 컴퓨터만 두드리고 있었다. 그냥 나오려다 책상 위에 있는 박스를 봤다. 안으로 들어가 자세히 보았더니 박스 겉면에 잇는 사진이 휴대폰이었다.

"이거 혹시 내 거예요?"

손을 대려하자 갑자기 그가 상자를 홱 채갔다. 잠깐 당황했지만 내 게 아닌가보다 싶어 돌아섰다.

"선물을 받으려면 값을 해야지."

다시 몸을 돌려 그를 봤다. 여전히 컴퓨터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헛것을 들었나 싶었다. 더 이상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우두커니 서서 지켜봤다. 다른 게 느껴졌다. 뭔가 이상했다. 일에 메몰 돼서 열심인 것이 아니라 좀 날카로워져 있는 것 같았다. 서류를 넘기는 속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강도, 활자를 보는 눈빛이 자연스럽지 않아 보였다. 평소의 그답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나 내 방에서 나갈 때 기분이 상했던 게 아닌가는 생각이 들었다.

관찰 끝에 조심스레 책상 앞으로 다가가 섰다.

"나, 여기 좀 보세요."

그의 거친 키스로 빨갛게 자국이 생긴 피부를 가리켰다. 그는 모니터를 향한 채 눈동자만 잠깐 내게로 움직였다. 아무 말 없이 금방 제자리로 돌아가는 그 찰나의 반응에 확신이 들었다. 정말로 화가 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왜? 난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저녁 먹었어요?"

"....."

"내가 뭐 잘못했어요?"

"학생이 공부하는 게 뭐가 잘못이겠어."

뭐가 잘못이겠어? 그런데 말의 뉘앙스는 그게 잘못이라는 것 같았다. 느껴지는 게 정말인가 싶어 미간을 좁혀 보았다. 그의 표정을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믿을 수 없는 무언가가 팟, 와 닿았다. 순간, 긴장이 확 풀리면서 놀라움과 함께 기쁨이 떠올랐다. 내가 응해주지 않아서 기분 상해 있는 것이다. 아, 세상에!

가슴에 뛰었다. 그가 이끌면 내가 금방 흘려버리고 마는 걸 그도 알고 있을 텐데, 그런데 책상에서 날 끌어내지도 않고서 혼자 꽁해 있는 것이다. 믿어지지 않았다. 너무 행복해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나............., 나 배고파요."

그가 눈을 들었다. 눈초리가 날카로웠지만 조금도 긴장되지 않았다.

나도 이제 그의 표정을 조금은 읽으니까 말이다.

"삼촌이 좀 차려주시면 안 될까요?"

"뭐라고?"

"학교에선 다들 그렇게 알아요. 다녀가신 이후로 얼마나 유명해지셨는지 몰라요. 삼촌."

"그만해."

정말로 화난 것 같은 목소리였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다. 날 좋아하고, 날 원하는 그를 다 알아버려서 현재 자신감 과잉이다. 예전 같았으면 금방 위축이 돼서 고개를 떨구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감 과잉의 난 좀 거만해져 어떤 부분에 있어선 그와 동등한 입장이라고 생각해싸. 남자 대 여자로서 말이다.

책상을 돌아 그가 앉은 의자로 다가갔다. 의자의 팔걸이 부분을 잡고서 슬쩍 돌려버렸다. 좀 무례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가 정말 서늘하게 쳐다봤을 땐 가슴이 뜨끔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냉랭해질 수 있는 남자라는 걸 다시금 알게 됐다.

"휴대폰 얼마예요? 값, 어떻게 치르면 되는데요?"

용기를 내 말했더니 겨우 상대해줄 기분이 됐는지 의자 깊숙이 등을 기댔다. 쌀쌀한 눈으로 값을 매기듯 날 아래위로 훑어 보았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다시 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눈빛 하나로 상대의 기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이미 가진 거에는 흥미가 없는데.........."

그는 아마 탐정에 배우까지 섭렵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목소리, 눈빛, 손동작 하나까지 저렇게 얼음장 같을까.

한 달전만 하더라도 진심으로 하는 말로 믿었을 것이다. 그런 걸 보면 나도 이제 아둔함은 벗어난 게 아닌가 싶다.

"저도 사실 휴대폰은 별로 필요 없어요. 밥이나 먹으러 갈게요."

돌아서 걸었다. 곧장 불러 세우지 않아 초조했다. 그의 시선이 닿은 등에 내 긴장이 다 드러났을 것이다. 문에 거의 다다랐을 때에서야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너, 이리 안 와?"

안도의 숨을 몰래 내쉬고 머뭇거리듯 몸을 돌렸다.

"왜, 왜요? 흥미 없다면서............."

난 배우의 자질이 없어서 그 말을 할 때 벌써 웃고 있었다. 그가 노려봐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웃었다. 탁, 소리가 들려 힐끔 봤더니 볼펜이 카펫 위로 데구루룰 구르고 있었다.

"외식하려고 예약까지 해놨었단 말야, 이 여우야."

"저, 정말요?"

"기분 엿 같아. 그런 기분인 게 더 엿 같아."

웃음이 가셨다. 말로써 내게 황홀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이다. 심장이 뻐근하도록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에게 내 모든 것 다 주어도 아깝지가 않다.

그 기분으로 아직도 약 올라 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허공에서 얽힌 시선에 불꽃이 일었다. 열정이 차올랐다.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머리 위로 셔츠를 벗었다. 천천히 한 꺼풀씩 벗으며 말했다.

"일해요."

내 몸을 탐하는 그의 시선을 느끼며 브래지어를 벗고 바지를 내렸다. 그의 눈길이 너무 뜨거워 몸의 굴곡을 따라 핥고 있는 것 같았다. 벌써 유방이 팽팽히 부풀ㄹ어 오르고 유두에 힘이 들어갔다. 흰 레이스 팬티를 내렸다. 가리지 않고 보였다. 음모로 뒤덮인 삼각ㄱ지를 파헤치는 노골적인 시선을 즐겼다.

알몸으로 다가갔다.

"일해요. 나 만지면서....."

그의 다리 사이로 들어가 허벅지에 앉았다. 팔을 그의 목에 감고서 발을 움직여 의자를 돌렸다.

"숨도 안 쉬고 조용히 있을게요."

하지만 말처럼 되진 못했다. 그의 손이 머리를 휘감아 쥐고서 키스를 퍼부었을 때부터 난 가파른 숨을 몰아쉬었다. 전신을 쓰다듬는 손길에 몸 곳곳에서 열기가 피어올랐다. 다급한 욕정에 쫓겨 미친 듯이 그의 셔츠를 벗겨냈다. 매끄러운 가슴을 핥고 혀끝으로 작은 유두를 굴렸다. 탄탄한 복부를 어루만지다가 그의 허벅지에서 내려와 카펫에 무릎을 꿇었다. 움푹 들어간 배꼽에 혀를 밀어 넣자 갑자기 그가 머리를 잡아당겼다.

열기에 젖어 흐려진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내 눈에서 입술로 내려갔다.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살짝 핥았나 보다.

"어디까지 갈 거야?"

"끝까지......"

"내가 뭘 묻는지 알기나 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알고 싶어요."

그가 움찔하는 걸 보고서 다시 손을 내밀었다. 바지벨트를 풀고 지퍼를 내려 이미 발기해 있는 그의 성기를 잡았다. 손으로 만지며 천천히 머리를 숙였다. 손 안의 기둥이 흠칫 떠는 게 느껴졌다. 더 깊이 머리를 숙여 끝 부분에 입을 맞췄다. 다시 연달아 두 번 키스한 뒤 마지막에는 혀를 내밀어 살짝 핥아 올렸다. 그가 전율하는 게 느껴져 내 피도 뜨겁게 달구어졌다.

감출 수 없는 욕정에 겨워 그에게 요구했다.

"가르쳐 주세요."

"타락천사가 따로 없군."

"어젯밤에 당신이 내 거기를 핥을 때 생각했어요."

"내가 거길 핥고 있는데 딴 생각이나 했다고?"

어이없어 하는 그의 표정에 웃음이 났다.

"그거 잡고 웃지 마."

"복수해야지, 생각했다구요."

뜨거운 눈이 태울 듯이 맹렬히 날 사로잡았다. 그에 대한 복수로 손 안에 쥐고 있는 것을 조금씩 주물렀다.

"본능적으로 아는 건지, 내가 교육을 잘 시킨 건지 모르겠다."

다시 입술을 내려 키스하자 그가 명령하기 시작했다.

"혀로 핥아. 아이스크림 핥듯이........그래.......좋아. 부, 부드럽게...."

잘하고 있는 건지 알고 싶어 그의 표정을 봤다. 날 내려다보고 있는 눈길이 너무 섹시해서 가슴이 울렁거렸다.

"으, 음.........."

그를 신음케 하는 건 너무도 흥분되는 일이었다. 내 몸에 들어와 날 제 맘대로 휘저으며 달아오르게 하는 것을 내 멋대로 가지고 노는 것에도 희열이 왔다. 복수, 말 그대로 달콤한 복수였다.

"으, 흐으.........! 젠장........"

두 개의 방울을 살짝살짝 주무르며 곳곳을 정성껏 핥았다. 검붉은 해면체가 타액에 젖어 끈적거렸다. 입술을 떼자 은색줄이 우뚝 선 그의 성기와 내 입술을 이었다가 사라졌다.

"이제 어떻게 해요?"

"방금 네 표정이 어땠는지 알ㄹ아? 뼛속까지 녹게 만들어 놓고는 어떻게 해요라고?"

"나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요?"

"물지만 마."

깨물어볼까 했었는데, 그럼 그건 포기.

입에 넣고 빨기 시작하자 그의 손이 내 머리를 덥석 잡았다. 그의 손이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게 되었다. 입술과 혀로 줄기 전체를 쭉쭉 빨아먹었다. 입 안에서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끝 부분을 입 안에 넣고 혀끝으로 간질였다. 그랬더니 입 안으로 뭔가가 흘러 들어왔다. 다음 순간 두 팔이 잡혀 휙 들어 올려졌다. 휘몰아치는 욕정에 이성이 날아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날 안고서 자신의 침대까지 옮겼다.

서랍에서 콘돔을 꺼내는 그의 목덜미에 키스를 퍼부었다. 수염이 돋기 시작하는 턱을 핥아대자 그가 내 목덜미를 잡아챘다. 거칠게 입술을 덮쳐왔다. 혀가 뽑힐 것 같았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격렬히 키스 당했다.

내 입안에서 놀던 것이 다리 사이로 침입해 들어왔다. 복수라도 하듯이 날 세차게 흔들고 들리며 깊숙이 찔러댔다. 환희의 폭풍에 휘말려 쾌락의 비명을 내질렀다.

"아흣! 아, 응응.......!"

이 달콤한 복수는 영원히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시험기간 동안 방해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그의 퇴근 시각은 11시 이후로 늦어졌다.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했지만 기분이 엿 같다는 그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어느 날은 자정에 들어오더니 점점 늦어졌다. 들어와선 씻고 곧장 잠자리에 들었다. 날 찾지도 않았다. 방해 않겠다고 결심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야속하게도....

그의 지나친 배려로 시험기간 내내 사랑을 나누지 못했다. 그의 성의를 생각해 열심히 공부했고 시험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결과야 어떻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시험이 끝난 날, 오늘밤은 그와 함께 보내리라는 기대감으로 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윤 기사가 실망스런 소식을 전해왔다.

"출장 가셨어요. 사흘 뒤에 오신답니다."

주말인데 출장이라니.........사흘, 기나긴 사흘이 되겠구나.

그가 없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의기소침해 있지 않기도 했다.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사흘정도야 금방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책을 읽고, 공부도 하고, 화분도 닦고, 미뤄뒀던 책상정리며 옷장 정리도 이참에 다 해치웠다. 곧 다가올 그의 생일을 대비해 도우미 아주머니께 미역국 끓이는 법도 배워뒀다. 선물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 부족한 게 없는 그인데다가, 어차피 그의 돈으로 사는 것이니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다. 같이 살기 전에는 축하카드를 전하는 게 고작이었다. 뭘 선물해야 할지 도저히 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를 할까? 하지만 항상 교문 앞에 차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사람 몰래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학원 다닌다고 둘러대면........아니다. 완벽주의라서 어느 학원인지 체크할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에겐 어떤 거짓말도 하고 싶지가 않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이다 보니 벌써 자정이 넘었다. 출장 마지막 날인데도 전화가 없었다. 출장 간 사흘 동안 내내 한번도 전화하지 않았다. 어젠 너무 궁금하고 걱정 돼서 점심시간에 전화를 했었다. 장 비서가 받아 클라이언트와 오찬 중이라고 말했다. 그 뒤로 난 전화를 할 수 없었고, 그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도 전화기를 켜두었는데.........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어쨌건 내일은 올 테니 사정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위안을 삼았다.

그의 품에 안기지 못한 지 열흘째 날.

"어디 아파?"

소화가 물어왔다.

"아니."

"너 요즘 좀 무리하는 거 같더라?"

중간고사 성적이 발표되었다. 생각보다 좋은 성적을 얻었지만 내 기쁨은 그의 부재로 반 이상 삭감되었다.

"수업 끝내고 뭐해?"

소화를 보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그의 생각뿐이었다. 너무 바빠서 연락을 못 하는 거라고 생각하려 해도 잘 되지가 않았다. 사고는 아니라고 곱씹는 걸로 초조함을 달랬다.

"오늘 우리 아빠 생신인데 뭐 사야 될지 몰라서. 같이 좀 골라줄래?"

아빠 생신? 그럼 같이 가 그의 선물도 골라볼까.

"어디 갈 건데?"

"학교 뒤에 있는 할인마트. 모아둔 게 별로 없어서."

오늘은 그가 오지만 모처럼 소화의 부탁인데 거절할 수가 없었다. 시간도 그리 많이 뺏길 것 같지 않아서 그가 퇴근하기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찍 집에 오게 되면 연락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같이 갈게."

"근데 있지......해윤이한테 같이 가자고 한 번 말해 봐. 가, 같이 가면 좋잖아."

"내가?"

"네가 말하면 간다고 할 거야."

수업종이 울렸다. 소화가 제자리로 돌아간 뒤에도 난 계속 소화를 쳐다봤다. 무슨 생각일까?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결국 청소시간에 해윤에게 말했다. 복도의 유리를 닦다가 밀대를 들고 오는 해윤의 앞을 가로막았다.

"저......부탁이 있는데..........."

뜻밖이라는 해윤의 표정에 기대감이 떠오르는 것 같아 좀 당황했다. 하지만 소화의 청을 들어주기로 마음먹었으니 말해야 했다.

"끝나고 마트에 가지 않을래? 나랑 소화랑...."

해윤이 표정이 눈에 띄게 확 굳어졌다.

"소화 아버지 생신이시래. 나도 좀 둘러보고 싶고 그래서........"

"거기에 내가 왜 껴?"

"아, 알았어. 싫으면......."

"누가 싫댔어! 거기에 내가 왜 끼냐고!"

갑자기 소리를 질러와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청소하던 아이들이 쳐다보았다. 삽시간에 복도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 그냥 같이 가면 좋을 것 같아서........미안해."

"에이, 씨팔! 뭐가 미안이야!"

해윤의 거친 음성에 숨이 턱 막혔다. 분노로 벌겋게 달아오른 해윤은 전혀 딴 사람 같았다. 충격에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잇는지 알기나 해! 내 맘은 조금도 생각 안 하지! 정말 너, 정말 최악이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걸까?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그는 왜 전화가 없을까? 나는 지금 여기 서서 뭐하고 있는 걸까? 그 순간 난, 비겁하게도 사라지고 싶었다. 혼란이 두려웠다.

느닷없이 입술에 뭔가 닿았다. 거칠고 강압적인 느낌......멍하니 서 있었다. 머릿속이 엉망이라 그의 입술인가 했다.

감촉을 음미해 보려고 눈을 감았다. 입술을 달싹여 부드럽게 움직이며 맛을 보았다. 능숙하게 내 입술을 유린하고서도 뻔뻔할 정도로 당당한 그의 입술....!

번쩍 눈을 떴다. 그의 입술이 아니었다. 있는 힘응ㄹ 다해 밀쳐냈다. 홍조를 띤 해윤의 젖은 눈이 얼이 빠진 채로 날 향해 있었다.

야유와 박수와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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