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긴 겨욹방학 동안 집에서 꼼짝도 하질 않았다. 내가 시간이 많아지면 질수록 그는 더 점점 더 바빴다. 어렴풋이 들은 건 회사가 사업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였다. 어떤 사업을 준비하며 규모가 얼마며 자금은 또 얼마나 필요한 건지, 그런 것에 대해선 조금도 알지 못했다.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고 수를 놓고, 이따금씩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다. 그 나머지 시간엔 그냥 멍하니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를 맞이하고도 내 생활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행복했다. 출근한 그가 하루에 두 번 꼭꼭 전화를 해오고, 아무리 깊은 밤이어도 내게로 와 뜨겁게 안아주기 때문이다.
며칠 전 밤엔 그와 꽤 긴 대화를 나눴다. 거친 맹수처럼 엉켜 녹초가 될 정도로 사랑을 나누고 또 나누고, 나와 그의 체취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사랑을 나눈 뒤였다.
"방학인데 하고 싶은 거 없어?"
"하고 싶은 거요?"
"꽤 중요한 시간이야. 열일곱의 두 달 휴식. 천금 같은 거지."
"그때 뭘 하며 보내셨는데요?"
".......까마득하군. 유학 중이었어."
유학? 금시초문이라 그를 쳐다봤다. 그의 말대로 난 그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여행이 좋겠군."
"혼자서요?"
"친구들이랑 가든지."
"싫어요."
"왜?"
"집이 좋아요."
"노인네 같은 소리 한다."
"공부해야죠. 이제 고3인데."
"집에만 있지 말고 가끔 나가 봐. 쇼핑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기사를 붙여줄 테니까."
"네."
"건성으로 대답하지 말고."
"........"
"과외선생을 붙여줄까?"
"해야 돼요?"
"네 선택에 달렸어."
"내가, 내가 귀찮아졌어요?"
불안해서 고개를 들자 그의 손이 뻗어왔다. 내 목덜미를 잡은 그는 숨겨둔 뭔가를 찾기라도 하듯이 내 눈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브래지어를 한 치수 늘여. 부드러운 피부에 자국 생기는 거 싫으니까."
그러더니 턱을 핥아왔다. 곧 난 무엇 때문에 불안했는지 잊어버렸다. 그의 손길이 다시 내 몸 여기저기에 열꽃을 피워 올렸기 때문이다.
그와 난 미래에 관해선 얘기하지 않았다. 그도 나도 정지된 채로 이렇게 지내길 바랐기 때문이다. 단지 그가 없는 시간을 내가 어떻게 보낼지 얘기할 뿐이다. 아마 그는 내 신분에 맞게 과외수업을 생각한 모양이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난 이대로도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출장을 떠난 지 사흘 째 되는 날, 한참 뜨개질을 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서문 회장님 계십니까? 대석동에서 왔습니다."
"회장님은 안 계신데요."
잠시 있자 모니터에 웬 아주머니의 얼굴이 나타났다.
"나, 서문 회장 이모 되는 사람이에요. 문 좀 열어봐요."
놀라서 주춤거리다가 버튼을 눌렀다. 뒤늦게서야 제대로 확인도 않고 낯선 사람을 들이는 건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안으로 들어선 여자는 50대 중반의 귀부인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대궐 같은 집 놔두고 이런 데서.......쯧쯧. 제 집도 하나 못 지키고, 쫓겨나긴 지가 왜 쫓겨나."
귀부인은 뭔가를 캐내려는 듯 날카로운 눈으로 집안 곳곳을 쳐다보았다. 걸치고 있던 흰 털 코트를 제집마냥 편안하게 거실 소파에 벗어놓고는, 넓은 거실을 휘둘러보더니 2층 쪽을 흘깃했다.
"방은 저긴가?"
대답도 듣지 않고서 계단을 올라갔다. 키가 작고 통통한 편이었지만 걸음걸이는 매우 가볍게 보였다. 난 당혹스러워서 우물쭈물하다가 귀부인을 따라 계단을 올랐다. 그의 외모라는 귀부인은 성큼 걸음으로 2층을 마음대로 둘러보고 다녔다. 거실과 서재, 드레스룸, 씨어터룸을 지나 그의 방과 내 방까지.
"여긴 누구 방이지?"
하는 말투에 짜증이 묻어났다. 뒤를 따라 거실로 나오자 갑자기 확 몸을 돌려 날 쳐다봤다. 가죽실내화에서부터 청바지와 니트셔츠를 훑어보고 내 얼굴을 뜯어보았다.
"아가씬 누구야?"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굳어버렸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니 조카라고 둘러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황해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귀부인의 눈빛이 냉랭해졌다.
"누구냐니까?"
다그치는 새된 음성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떨리는 호흡으로 간신히 대답했다.
"여, 여기서 살아요."
"뭐!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여기서 산다니?"
"여기서 지내고 싶어요."
"그럼 저 방이 아가씨 방이란 말이야?"
더 목소리가 커진 귀부인은 갑작스럽게 낯빛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눈초리에 어찌나 날이 서 있는지 간담이 다 서늘할 지경이었다. 그러자 내 기분은 지옥보다 더 깊고 어두운 곳으로 침잠되었다. 그의 관찰대로 난 상대가 흥분하면 할수록 극도로 차분해지는 편이었나 보다.
"아가씨 제정신이야? 내가 서문 국 회장 이모라니까. 똑바로 말해. 아가씨 뭐야?"
"전에 회장님 모시던.........최 기사 딸이에요."
"뭐?! 최 기사? 형부 돌아가실 때 운전했다던 그 최 기사..........아가씨가 그 사람 딸이라고? 세상에!"
귀부인은 어이없단 표정으로 소파에 주저앉았다.
"아가씨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살인자의 딸이........"
흠칫 놀라 쳐다봤다. 물을 달래서 주방으로 뛰어갔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거칠게 물잔을 받은 여자는 벌컥 한 모금을 들이켜더니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그러니까 아가씨 아버지가 최 기사란 말이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 우리 형부가 누구 때문에 돌아가셨는데! 무슨 낯짝으로 여기 들어와 살아! 잉건 말도 안 돼! 아가씨 아버지가 술 처먹고 운전하는 바람에 돌아가신 거 알아, 몰라!"
금시초문의 믿을 수 없는 말에 얼어붙어 버렸다. 충격에 온 몸의 피가 좌악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하얗게 질려있으려니 귀부인이 갑자기 전화기를 들었다.
"오빠, 나예요. 국이 정말 출장 간 거 맞아요? .............아니, 지금 여기서 무슨 일이.........오빠가 우리 동훈이 뒤만 좀 봐줬어도 내가 여기까지 찾아오지도 않았어! 아니, 됐어요! 나중에 얘기해요."
전화를 끊은 귀부인이 대뜸 물어왓다.
"아가씨, 오갈 데 없어?"
뻣뻣하게 굳은 채 고개를 떨구었다.
"보니까 여기서 일이나 거들면서 지내나 본데, 참 염치도 좋네. 아가씨 몇 살이나 먹었어? 다 큰 처녀가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해? 그것도 혼자 사는 남자 집에서? 이 녀석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말 나면 어쩌려고........이래서 내가 진작 와보려고 했는데..........애가 제 엄마를 닮아서 마음이 여려서는, 원."
귀부인은 쯧쯧 혀를 차며 날 위아래로 째려보았다. 뭔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내 얼굴을 보고선 미간을 모았다.
"국인 출장 갔다고?"
"네."
"아가씨한테 이 집을 맡기고 갔단 말야?"
그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건 사실이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의심에 찬 눈빛과 쯧쯧 혀를 차는 모습에 주눅이 들 뿐이었다.
"참 알 수가 없네. 그 녀석이 누구랑 같이 지낼 성격이 아닌데........이러니 계모가 욕먹는 거야. 제 자식 같아봐. 아가씨랑 여기 살게 두겠어? 아무리 사고라고는 하지만 제 아버지가 누구 때문에 돌아가셨는데..."
귀부인이 다녀간 뒤 난 불안해서 방안을 서성거렸다. 누구에게서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사실 장례식까지 그의 가족과 마주치질 않았으니 들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어째서 말하지 않았을까? 그의 성격에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니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문제가 되었다면 날 데리고 왔을리가 없다. 그래도 뭔가 불안했다. 그에게 확인을 해봐야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출장을 간 뒤에도 그는 변함없이 하루 두 번씩 전화를 해왔다. 유럽과 남태평양, 호주를 도는 매우 길고 고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번도 전화를 빼먹지 않았다. 귀부인이 다녀간 밤에도 어김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망설이다가 궁금한 마음에 귀부인의 얘기를 했다.
-이모가?
"네."
-무슨 일로?
"그건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근데...........우리 아버지 얘기를 하셨어요."
-무슨 얘기?
"사고 날, 아버지 술 드셨다고........사실이에요?
-신경 쓸 것 없어. 다른 일은 없지?
"....네."
-신경 쓰여?
"네."
-그럴 거 없어. 이미 다 지난 일이야.
"하지만 아버지 때문에 회장님이 돌아가셨다면................."
-그랬다면 어쩔 건데?
"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어떻게든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네가 뭘 해? 네 아버지도 돌아가셨어. 실수의 대가라면 치뤘으니까 됐어.
실수의 대가. 실수치곤 너무 어마어마한 실수인데........죽음으로 죽음을 보상할 수 있을까?
-이모가 쓸데없는 얘길 했군. 학원은 알아봤어?
"다음 주부터 가기로 했어요."
-일 생기면 적어준 번호로 연락해.
"네."
-더 할 말 없어?
".............보고 싶어요."
-그래. 잘 자.
난 행복감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음 한 구석에 불안감이 남아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에 한결 좋아진 탓이었다. 그는 아마도 어느 순간에도 날 떨리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남자일 것이다.
다음날 오후, 해윤의 전화를 받았다.
"이 번호 어떻게 알았어?"
-그거야 식은 죽 먹기지.
떡볶이 먹는 걸 실패한 후에 해윤은 더 궁금한 게 많아진 것 같았다. 반으로 찾아오는가 하면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말을 걸어왔다. 누가 내게 관심을 보이고 친하게 구는 게 처음이어서 기분이 이상했다. 얼떨떨하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뭐하고 있었어?
"그냥 책 보고 있었어."
-책? 무슨 책? 제목이 뭔데?
그의 책장에서 무심코 꺼내 읽고 있던 책이라 제목이 생소했다.
"블로그마케팅."
-뭐? 무슨 그런 책을 봐? 재밌냐?
난 대답도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문장이 아니라 그냥 활자만 따라 읽던 중이었다. 내 세상의 중심에 있는 그가 읽는 책이니까 읽고 싶어졌다. 궁금해서 보고 있긴 하지만 사실 재미는 없었다.
"근데 웬일이야?"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주말에 놀러 가는데 같이 안 갈래?
"아니. 난......."
-야, 들어보지도 않고 너는. 일단 들어 봐. 애들이랑 스키 타러 가기로 했거든. 근데 한 명이 펑크를 내서 자리가 비었어. 보호자도 있어. 우리 외삼촌이랑 외숙모랑 애기까지 갈 거야. 전부해서 일곱. 가자. 응?
그때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알맞은 질량과 부피, 습관이 아니면 빚어낼 수 없는 유일한 발소리.
"어, 저기 미안. 나중에 연락할게."
후다닥 전화를 끊고 뛰어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막 마지막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유령을 본 것처럼 놀란 표정으로 그를 봤다. 며칠 사이 그을렸는지 조금 터프하고 더 건장해 보였다.
"어, 어떻게 된 거예요?"
"뭐가?"
"일주일은 더 걸릴 거라고...........무슨 일 있어요?"
"아니. 보고 싶다고 해서."
무슨 뜻인지 몰라서 눈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그가 팔을 벌렸다. 망설이지 않고 달려가 그에게 안겼다. 그가 너무 힘을 줘서 갈비뼈가 바스라질 것 같았다. 그 아픔이 오히려 더 황홀했다. 숨이 끊어질 것처럼 꽉 안긴 채로 그의 체취를 흠뻑 들이마셨다. 그의 손이 내 머리칼을 치우고 목덜미를 쓰윽 핥아 올렸다. 길들여진 내 몸은 곧장 반응하며 부드럽게 열릴 준비를 했다.
그는 가볍게 날 안아들고서 자신의 침대로 갔다. 침대에 쓰러뜨리듯 놓고는 넥타이를 당겨 풀었다. 침대 옆에 서서 날 내려다보며 옷을 벗었다. 그의 눈이 위험한 색으로 빛나는 걸 보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오는 내내 상상했어. 어떻게 널 안을까. 12시간 동안 그것만 생각했어."
그의 고백에 심장이 덜컥 멎는 것 같았다. 성급하게 벗은 옷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린다든지, 욕망이 드러난 눈길로 날 보는 건 그답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이 너무나 좋았다.
"회의도 미루고 하루를 빼버렸다. 넌 정말 내 계획에 없던 일이었는데....."
알몸이 된 그가 다가왔다. 벌써 크게 일어서있는 그의 것을 보았다. 순간, 내 은밀한 동굴에서도 뜨거운 수증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침대로 올라온 그는 느긋하게 굴었다. 흥분하고 기대하고 있는 걸 알면서 너무 천천히 다가왔다. 내 목덜미를 잡고 얼굴 곳곳에 달콤한 키스를 뿌리고, 쇄골을 따라 길게 핥았다. 내 몸은 금세 비를 머금은 꽃잎처럼 젖어들었다.
입술을 뗀 그가 애태우듯 가슴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말해 봐. 어떻게 안기고 싶은지...."
안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내 가슴을 애무하는 그의 손을 더듬어 올라 두꺼운 팔을 쓰다듬었다. 벗은 어깨 근육을 부드럽게 애무하자 그의 입술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어깨가 딱딱해요."
"부드러운 건 너 하나로 족해."
수줍으면서 기쁜 마음에 미소를 지었다. 그가 내 입꼬리를 만지고는 거기에 키스했다. 떨어지기 싫어 그를 꽉 안았다. 내가 먼저 그의 입술을 찾아 유혹했다. 혀끝으로 그의 섹시한 입술을 맛보았다. 그가 내 청바지를 벗기며 말했다.
"3시간 정도밖에 없어."
"정말 날 보려고 온 거예요?"
청바지가 내려가기 쉽도록 엉덩이를 들었다.
"미친 거지. 돌았거나..."
그가 갑자기 팬티 위로 고개를 숙여왔다. 크게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움찔해 그의 머리를 잡았다. 밀어내려는 게 아니라 그저 당황했을 뿐이었다.
"이 냄새가 그리웠어. 미치게...'
팬티 안으로 그의 손이 들어왔다.
"아...."
"비단결 같은 이 감촉이 미치게 그리웠어."
그가 낮게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손으로 내 아랫배와 허벅지를 애무하며 키스를 퍼부었다.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내 사타구니를 만졌다.
"맘대로................맘대로 해버려도 돼요."
열기에 휩싸여 할딱이며 말하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붉어진 눈을 보며 스웨터를 벗고 브래지어를 풀어 내던졌다.
"망쳐도 좋아?"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잡아 올렸다. 지금 내 마음이 얼마나 따뜻하고 벅찬지 다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니 말로 시간을 허비할 순 없었다.
손을 내려 그의 가슴을 만졌다. 딱딱한 근육이 숨어있는 매끄러운 피부를 애무했다.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더 손을 내려 단단한 복부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의 눈이 꿈틀하고 움직였다. 몸을 내려 더 손을 미끄러뜨렸다. 까슬까슬한 음모를 헤쳐 그의 것에 닿았다.
벌써 성대하게 부풀어진 그것을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놔."
"싫어요."
우린 노려보듯 서로를 뜨겁게 바라봤다. 이상하게도 그때 난 알았다. 그가 진심으로 날 좋아하며 원하고 있다는 걸.......
그가 빠르게 내 손을 떨쳐냈다. 그리고는 성난 것 같은 표정으로 덮쳐왔다.
"누가 네 주인인데?"
손으로 내 다리를 잡고 위로 홱 밀어 올렸다. 난 수치스럽게 반 접힌 자세가 되었다. 진한 액체가 고여 있는 그곳과 항문까지 적나라하게 열린 느낌이었다.
"응?"
"다, 당신."
그의 것이 안으로 쑥 들어왔다.
"흑!"
"맘대로 해도 된다고?"
"아아..............네........."
왕성하게 커진 것이 내 안을 채우며 꾸역꾸역 밀고 들어왔다. 다 들어왔다고 생각했을 때도 계속 들어왔다. 안을 부풀리는 압박감에 숨이 막혔다. 그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다. 콘돔의 느낌이 아니었다. 식당에서 한 이후 처음이었다. 그때는 느낌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 달여 가까이 관계해 온 지금은 달랐다. 온전한 그의 것이라 생각하니 피가 뜨겁게 소용돌이쳤다. 그의 것이 정말로 내게 닿았다는 환희가 날 미치도록 들뜨게 만들었다.
그 순간, 갑자기 그가 으르릉거리는 소리를 냈다. 나도 모르게 그를 꽉 조인 모양이다.
그가 상체로 내 다리를 누르며 다가왔다. 입술이 닿을 만큼 가까이 왔다. 그때 그가 예고도 없이 거칠게 허리를 튕겼다. 안쪽 깊숙한 곳까지 찔리는 느낌이었다. 소스라치는 감각에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아파?"
"아.........아, 아뇨."
"절대 아프게는 안 해. 내 거니까."
욕망에 젖은 그의 눈을 잠깐밖에 없었다. 그가 곧 탐욕스럽게 키스를 해댔기 때문이다. 입술을 열고 숨이 차도록 열렬히 키스에 응했다. 서로의 혀가 뒤엉켜 놀았다. 타액이 흐르고 몸이 땀으로 젖어 갔다.
"넌.........나한테서.......못 벗어나..........절대........."
그 말이 달콤하게 들렸다. 격렬하게 움직이며 벅찬 숨소리를 내뿜는 그가 사랑스러웠다. 그의 움직임은 보통 때보다 거칠었지만 내 몸은 금방 적응해 갔다. 두꺼운 그것이 불뚝거리며 들어올 때마다 엉덩이를 흔들었다. 내 목덜미를 핥고 있는 그의 머리를 감싸 안고서 몇 번이고 그의 어깨에 키스했다.
"빌어먹을..........!"
그는 난폭하게 몸을 빼고서 서랍을 열어 콘돔을 찾았다. 왠지 그를 막고 싶었다. 그의 이성이 남아있다는 게 원망스러웠다. 임신이나 그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 전혀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의 아이를 가지고 싶었다. 내 시선을 느낀 그가 흐트러진 표정으로 쳐다봤다.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피했다. 콘돔을 끼운 그의 몸이 지그시 누르며 포개왔다. 그는 내 젖가슴을 움켜쥐고 빳빳하게 솟은 유두를 게걸스럽게 핥아댔다. 혀로 굴리다가 크게 비어 물고서 뽁뽁 빨았다.
"아무 것도...."
내 말에 그가 입술을 떼고 내려다보았다. 그러면서 다시 아랫도리를 밀어붙였다. 안으로 쏙 들어와 격하게 날 흔들어댔다.
"변하지 마."
그가 헉헉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배신하면.............용서 안 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끊임없이 내 안을 찌르고 휘저으며 무섭게 몰아쳤다. 부서뜨릴 기세로 수없이 침입해 내 몸을 꿰어 올렸다. 갈가리 찢어놓을 것처럼......
기진맥진한 난 몇 분간 무아지경이었다. 온몸이 땀과 체액으로 끈적끈적했다. 그래도 그에게서 떨어지고 싶지 않아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그런 날 그는 자신의 몸으로 부드럽게 감싸 주었다. 우린 팔다리를 교차한 채 서로의 몸에 밀착해 있었다. 그의 손이 내 머릿결을 따라 부드럽게 움직였다.
"이모가 말한 거 신경 쓰지 마. 다신 오지 않을 거니까 겁 먹을 필요도 없어."
겁? 내 전화 목소리가 겁먹은 것처럼 들렸을까? 만약 그랬다면 아버지의 음주운전 때문이었는데.....
"아버지에 대해서도 걱정할 거 없어. 내가 문제 삼지 않아. 그러면 된 거야."
이 말을 해주고 싶었던 걸까? 내가 걱정하고 신경 쓰고 불안해하고 있을 것 같아서 온 걸까?
"앞으로, 그럴 일 없겠지만, 누가 또 와도 나 없을 땐 절대 문 열어주지 마."
손으로 그의 매끈한 허리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걱정.........했어요?"
그의 배 근육이 움찔하며 수축했다.
"씻자."
그는 갑자기 침대에서 나가버렸다. 그러더니 휙 돌아와 날 안고는 욕실로 데려갔다. 장난치듯 서로의 몸에 비누칠을 했다. 그러다 점점 손길이 음미하듯 느려지기 시작했다. 뜨거운 눈빛을 주고받으며 은밀한 곳을 더듬으니 다시금 열기가 피어올랐다. 그의 허리춤이 이미 뜨겁고 단단해진 걸 보았다.
"전화 누구였어?"
그가 날 돌려세우며 물었다. 목덜미에서 등, 허리로 미끄러진 그의 손이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전화.......?"
"들어올 때 통화중이었잖아."
"아.......친구...."
"무슨 일로?"
그가 뒤에서 내 몸을 씻어주었다. 난 차려 자세로 서서 그 손길을 만끽하고 있었다.
"기, 기억 안 나요."
"기억해 봐."
"음............스키......."
"스키 타러 가자?"
끄덕이고는 물에 젖어 미끈거리는 몸을 그에게 기댔다. 몸이 비누거품처럼 부드럽게 흘러내릴 것 같았다. 내 목덜미를 이루만지던 그의 손이 턱을 당겨 입술을 포갰다. 키스는 짜릿하고 달콤했다. 그가 입술을 놓아주었을 때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봤다. 고스란히 드러난 내 알몸과 내 뒤에서 반쯤 가려있는 그의 알몸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거울을 본 그가 짓궂게 가슴을 감싸 쥐었다. 달콤하게 주무르며 내 귓불을 깨물었다.
"정말 먹어버리고 싶다."
난 신음하며 그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본능젖ㄱ으로 엉덩이를 그의 사타구니에 비벼 자극했다. 그러자 뒤에서 그가 손으로 내 엉덩이를 벌리고서는 가운데를 쓰윽 쓸어 올렸다. 놀라 움찔했지만 곧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쑥 내밀었다. 체벌을 받는 학생처럼 손을 뻗어 거울을 짚었다. 점점 미끄러진 손이 음부를 비벼대더니 부드럽게 파고들어왔다.
"아응........"
다리를 벌리고서 더 깊숙이 그의 손가락을 빨아들였다. 안에서 농탕질을 하는 손가락에 맞춰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그러자 때가 되었다는 듯이 두툼하게 부푼 그의 성기가 내 안을 침버했다.
"아흣....................응응..................!"
신음하며 들썩이는 날 그가 붙잡아 올렸다. 붉게 달아오는 난 엉덩이를 돌리며 그의 것을 쭉쭉 빨았다. 깊이 머금었다가 차진 소리가 쩍쩍 나도록 뽑아대니 그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 엉덩이에서 앞으로 미끄러져 오는 그의 손을 보았다. 거울 속에서 내 검은 음모를 덮은 그의 손은 말할 수 없이 음란하게 보였다.
"아직도...........아직도 날 원해?"
"아...........!"
"날 가지고 싶어?"
"흐으.............!네.............."
"날...............줄까?"
"아응..........."
"주고 싶어진다."
"좋아해요. 너무........너무...........좋아요."
"가지려고만 했는데......"
뒤에서 꿰뚫린 채 천국과 같은 쾌감에 휩싸였다. 더 절망적인 쾌락을 원한 난 손을 올려 그의 머리를 휘감아 당기며 머리를 돌려 키스를 했다. 혀가 뒤엉켜 젖은 몸으로 타액이 흘러내렸다. 허공에서 부닥친 혀가 엎치락뒤치락하며 날름거렸다. 탱탱하게 부푼 유방은 마구 주물려서 터질 것 같았다. 욕정에 휩싸인 난 야성의 본능이 시키는 대로 원초적인 몸짓을 서슴지 않았다. 음탕하게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깊숙이 들어온 그의 성기를 움칠움칠 빨아먹었다. 아무리 뜨겁게 빨아대도 그의 단단한 성기는 지칠 줄 모르고 더 맹렬히 폭폭 쑤셔왔다.
"줄게. 줄 테니까.........가져 봐."
정신이 아득해졌다. 관능의 늪으로 깊이, 깊이 빠져들어 갔다. 집어삼킬 듯한 키스에 날카로운 희열이 번져갔다. 그는 점점 더 강하고 빠르게 날 몰아세웠고, 기꺼이 나 자신을 버리고 높이 솟구쳐 올랐다.
"아.....!아악!"
난 정열적이고 강한 힘에 휩싸여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었다. 그의 곁에 있으면 두렵지 않았다. 할머니도 아버지도 없는 이 세상에 혼자 남겨졌지만 살아갈 수 있었다.
욕실에서 나온 후, 그는 다시 대양해운 서문 국 회장으로 변신했다. 난 옷을 챙겨 입을 생각도 못하고 몽롱한 채로 그의 변신을 지켜보았다. 목욕가운만 입은 채로 따라 나왔다가 도우미 아줌마를 만나 당황했다. 하지만 도우미 아줌마의 인사를 받으며 나가는 그를 보자 수치심도 사라졌다. 종종 걸음으로 나가 신발을 신었다.
"나오지 마. 추워."
그가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정원으로 나오자 그가 말한 대로 엄청 추웠다. 나른하게 흐느적거렸던 몸에 소름이 확 끼쳤다. 앞서 걷던 그가 몸을 돌려 내 몸에 팔을 들렀다. 든든한 품에 꽉 안긴 채 대문까지 걸었다. 대문 너머로 그가 부른 콜택시가 보였다.
"들어가."
나가려는 그를 붙들었다.
"언제 와요?"
머리도 눈동자도 거기도 젖은 채로 간절히 그를 보았다. 그는 말없이 내 눈동자만 들여다봤다.
"스키 타러 가. 조심 하고."
돌아서는 그를 다시 또 붙잡았다. 이렇게 조르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헤어지는 게 너무 싫어서 아이처럼 칭얼거렸다.
"아, 안아 주세요. 한번만..."
"정말 대책 안서는 아가씨군."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날 껴안았다. 난 그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힘주어 그를 안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의품에 스며들고 싶었다. 언제나 같이 있을 수 있게......
"감기 걸려. 들어가."
그렇게 말했지만 난 놓지 않았다. 그 역시 날 안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젖은 머리에 그의 입술이 느껴졌다.
머리를 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가 키스해왔다. 짧지만 깊고 격렬한 키스였다. 떨어질 땐 너무 아쉬워서 눈물이 나려했다.
검은 대문의 틈으로 걸어가는 그를 보았다. 그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 조금 서운했지만 그의 성격이 그런 걸 어쩌겠냐고 날 위로했다. 게다가 난 이미 그의 마음을 알았고 그를 가졌지 않은가.
그때는 몰랐지만 그때부터 몇 개월이 내가 살아오는 동안 가장 행복한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