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첫번째열병-4화 (4/14)

#4

그가 왔을 때, 난 의자에 앉은 채 웅크려 잠들어 있었다. 그가 해윤의 팔에 놓인 내 손을 떼 내고 안아 올렸다. 놀라 눈을 뜨자 싸늘한 눈빛이 날아와 꽂혔다. 환자복을 입은 채 안겨 나와 곧장 차에 태워졌다. 그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얘긴 내일 해."

방문이 닫혔다. 내 방에 우두커니 선 채로 생각했다. 과연 내일은 얘길 할 수 있을까? 내일도 그는 자정이 넘도록 일에 파묻혀 있을 게 뻔한데.................

샤워를 하고 침대로 들어갔다. 반듯하게 누워 천장의 꽃무늬를 세다가 잠이 들었다. 그러다 번쩍 눈을 떴다. 알람 맞추는 걸 잊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뻗어 시계를 잡았는데 바늘이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잠이 내 5시간을 채갔나 보다. 그때 문득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날 깨운 게 그 소린지도 몰랐다.

침대에서 빠져나와 맨발인 채로 계단을 올랐다. 소리는 3층에서 들려왔다. 3층에 운동기구들이 있지만 그의 운동 시각은 오후였다. 요즘엔 통 집에서 운동하는 걸 보지 못했던 걸 떠올렸다. 운동시간을 새벽으로 옮겼을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수면이 흔들렸다. 소리는 3층 한가운데를 넓게 차지하고 있는 풀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흰 몸이 검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팔이 물을 휘젓자 거품이 일었다.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가는 몸을 보고 있자니 한 마리의 힘찬 돌고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발에 물기가 스며들었다. 조심스레 쪼그려 앉은 난 검은 수면으로 손을 넣어보았다. 차가울 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온기가 느껴졌다. 내 손을 삼키고서도 물은 어떤 내색도 하지 않았다. 내 얼굴을 비추지도 않고 반사하지도 않았다. 무엇이든 깨끗이 집어삼킬 듯이 어둡고 깊어보였다. 그 속으로 날 내던져도 물은 전혀 내색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 줄 것만 같았다. 그 속에 잠기면 안전하고 평온할 것이다.

타일에 걸터앉아 발을 넣었다. 발이 보이지 않았다. 발이 없어진 내 다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더 깊이 날 묻어버리고 싶었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커다란 보금자리, 바로 내가 바라던 곳............

엉덩이를 내려 물속에 섰다. 물이 가슴까지 차오르고 머리끝이 수면을 타고 떠다녔다. 점점 무릎을 굽혔다. 머리를 집어넣기 직전 내가 본 것은 그의 눈이었다. 허리께까지 물속에 잠긴 그가 쳐다보고 있었다. 물이 날 완전히 삼켜주는 순간이 다가왔다. 한동안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 평온은 겨드랑이로 파고 들어온 두 손에 의해서 금방 끝나버렸다.

물 위로 끌어올려졌다. 얼굴에 붙은 젖은 머리를 넘기며 위를 보았다. 천장이 유리로 돼 있어 칠흑 같은 밤하늘과 달이 보였다. 드문드문 별이 셋, 넷, 다섯..........

그에게 잡힌 양팔이 아팠다. 하늘에서 그에게로 시선을 옮기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내게 하늘인 사람, 저 깊고 깊은 밤하늘처럼 날 에워싸는 남자...........

"날 지켜줬어요."

그의 매서운 눈을 보고 말했다.

"그 애가 날 감싸줬어요. 이 물처럼.........."

그때 난 아마 미소 짓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왠지 화가 난 듯 보였다. 그의 머리가 내려왔다. 팔에서 미끄러진 그의 손이 젖은 잠옷 위로 내 가슴을 감싸 쥐었다. 그의 손길은 만진다기보다 잡아 뜯을 것 같은 날카로움이 있었다. 역시 화가 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질 거냐?"

귓가에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를 차디찼다. 거친 손이 내 머리채를 홱 잡아당겼다. 하지만 몸 안으로 피어오르는 달콤한 열기가 그 아픔마저 앗아갔다. 쓰러질 것 같아서 손을 내밀었다. 근육으로 두꺼운 그의 어깨를 잡고 몸을 휜 채 냉랭한 표정의 그를 보았다.

"가지고 싶어?"

그가 다시 물으며 손을 미끄러뜨렸다. 아래로 내려간 손이 잠옷을 끌어올렸다. 그 속으로 손이 들어왔고, 어느새 하얀 팬티가 다리를 타고 내려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맨살에 그의 손이 닿은 순간 오르르 소름이 돋았다. 심장에서 말발굽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열띤 손이 내 몸을 더듬어 갔다. 가슴에서 옆구리를 타고 엉덩이까지 미끄러졌다가 다시 가슴으로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날 안 기다리고 그 놈 옆에 있었어?"

"나, 난........"

"그래, 난."

가슴을 어루만지는 손길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발끝까지 열기가 뻗어 온몸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것 같았다.

손을 올려 그의 뺨을 만졌다. 남자다운 얼굴 골격을 쓰다듬자 여랑에 손끝이 저릿했다. 눈이 뜨거워졌다. 그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갈망이 몸을 태웠다. 아플 정도로 그에게 안기고 싶었다.

"다, 당신을 좋아해요."

"그래?"

말하는 그의 입매는 여전히 굳어있었다. 난 감당하기 어려운 혼란에 잠긴 눈으로 서늘한 그의 눈을 열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의 눈을 내가 바라는 그 어떤 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안......믿어요?"

불안감에 흔들리는 질문을 하자 그의 손이 내 허리를 휘감아 당겼다. 물속에서 다리가 맞닿았다. 그리고 복부에 그의 단단한 근육 덩어리가 느껴졌다. 깜짝 놀라 몸이 굳어졌지만 곧 간지러운 감각이 떠올랐다. 숨이 가빠졌다.

"네 사랑에 날 걸 순 없어. 걸지 않을 거다."

맹렬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가 어떻게 나 같은 것에 자신을 걸 수 있겠는가. 그는 완벽한 조건을 갖춘 남자지만 난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고등학생일 뿐이다. 내가 얼마나 재수 없는 아이인지 알면 그는 절대 날 가지려 들지 않을 것이다.

"어려도...............너한텐 뭔가가 있어. 하지만 난 자제력을 잃는 게 싫다. 싫어서 짓이겨버리고 싶은데 어쩔 수가 없게 됐지. 이미 시작돼 버렸어. 무슨 말인지 알아?"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게 나아. 서로 모른 채로 지나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다."

냉소 어린 그의 눈빛에 숨이 멎었다. 갑자기 물이 차디차게 느껴졌다. 찌르듯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후회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 앞에 내가 서 있는 것조차 반기지 않는 것 같았다. 괴로워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 순간,

"널 가져야겠다."

하는 그의 한마디가 날 살렸다. 감정도 실리지 않은 눈빛을 보면서도 다시 심장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머리는 혼란스럽고 불안해도 마음은 그를 붙잡아 매달리고 있었다.

"네가 다가오면 공기가 달라져. 네가 느끼는 거..............나도 느낀다."

같이 느낀다는 그의 말이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아아, 나도 그래요. 나도............

애틋한 감정에 사로잡혀 나도 모르게 손을 올렸다. 그의 뺨을 향해가는 내 손끝이 떨리는 게 내 눈에도 다 보였다. 뺨에 닿을 찰나 그가 내 손을 잡고 손가락에 입을 맞췄다.

"사랑이라곤 말 안 한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아요, 아무 것도..............날 당신에게 줄 수만 있다면, 당신이 날 가져만 준다면........

"사랑은 언젠가는 멈추게 돼 있어. 하지만 네가 멈춰도 넌 내 소유야. 내 소유는 절대 안 뺏겨. 됐지?"

아! 굵은 음성이 전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을 울렸다. 그 이외 다른 건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무섭지 않아?"

고개를 저었다.

"배신하면 용서 안 할 건데?"

다시 고개를 저었다.

"용서는 안 해. 차라리 죽여 버리고 말지."

그의 입술이 내려오는 걸 보며 눈을 감았다. 입가를 핥는 달콤한 키스에도 내 몸은 뜨겁게 불타올랐다. 입술을 빨아들이는 그의 입술 감촉에 애가 탔다. 열에 들뜬 난 작게 흐느꼈다. 부끄러움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런 행위에 능숙한 아이처럼 꼭 매달려서는 키스를 받고 되돌리려 애쓰고 있었다.

입술을 뗀 그가 뺨을 눌러 사랑스럽게 비벼댔다. 다음순간 난 날아오르는 느낌으로 가볍게 들어 올려져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았다. 실오라기 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꽉 안겼다. 강한 힘이 느껴지는 단단한 몸에 밀착되었다. 그의 두툼한 가슴에 내 젖가슴이 짓눌렸다. 깊은 포옹에 몸이 떨리고 가슴이 벅차 올랐다. 깊은 키스가 이어졌다. 내 입술을 탐하는 그의 열정에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아아! 난 어떻게 돼버린 걸까? 더 이상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다. 그냥 느끼는 대로 따라갈 뿐이다.

그의 몸을 타고 미끄러져 다시 바닥에 발이 닿았다. 아래로 내려간 그의 손이 단추를 풀고 잠옷을 벗겨갔다. 조금씩 맨살이 드러날 때마다 긴장감은 고조되었다. 심장에서부터 시작된 떨림이 발끝까지 전달되었다. 맥박이 무섭게 고동쳤다. 그러면서도 난 알몸이 되어 서 있었다. 어둠과 따뜻한 물이 없었다면 그렇게 용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날 다시 안고 부드러운 키스를 퍼부었다. 아래로 내려온 손이 내 가슴을 만졌다. 뚜렷한 정욕을 띠고 지분거리는 손길에 숨이 끊어질 듯 가빴다. 참으려고 입술을 깨물어도 자꾸만 소리가 새어나갔다. 할딱이며 벌어진 입 안으로 그의 배가 들어왔다. 숨소리가 얽히고 혀가 엉켜 관능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응.................!"

순간 그의 손이 엉덩이를 받치고 날 들어올렸다. 난 본능적으로 다리를 벌려 그의 허리에 감고서 매달렸다. 딱딱하게 부푼 그의 것이 바로 내 사타구니를 찔렀다.

"아!"

놀란 내 신음소리에 그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날 매단 채 그가 움직였다. 부끄러움과 욕망 속에서 갈등하다 그의 목덜미를 꽉 안았다. 엉덩이가 타일에 닿았다. 날 타일 위에 올려놓고 그는 감상하듯 내 몸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길이 바로 내 가슴 높이에 있었다.

"내가 지금 열일곱의 나신을 보고 있는 건가?"

그의 목소리가 비단처럼 매끄럽게 울려 퍼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알겠군. 여리고 부드럽고 탄력에 넘치고. 보고만 있는 건 실수겠어. 실수는 용납할 수 없지."

부끄러움과 떨림 속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다가온 그의 입술이 가슴을 핥았다. 뾰족하게 솟은 내 유두가 그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

그는 혀로 가볍게 핥다가 떼어버릴 듯 힘 있게 빨아 당겼다. 충격에 어쩔 줄 몰랐지만 뿌리치고 싶지는 않았다.

밀어내고 싶은 건지 당기고 싶은 건지 모를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야한 행위에 몸이 야해지고 마음도 야해지는 것 같았다. 다리가 배배꼬였다. 그러더니 야릇한 기분이 점점 좋은 쪽으로 기울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거친 환희가 샘솟았다. 모든 게 처음이었지만, 그 모든 게 너무나 유혹적이고 짜릿했다. 속에서 감당할 수 엇는 불길이 타올랐다. 주체할 수가 없어서 서툰 손길로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어느 순간 그의 머리는 내 벌린 다리 사이에 놓였다. 열에 들떠 있는 머릿속으로 경종이 울렸다. 육감적인 손길이 다리 사이에 느껴졌다. 소스라치게 놀라 엉덩이를 빼려 했지맘ㄴ 그가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그의 집요하고 끈적끈적한 애무에 몸속에서 이상한 게 자꾸 글어올랐다. 마치 꿈틀거리는 정자들이 혈관 속을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허물 벗는 뱀의 몸짓이 이러할까.

난 맥을 못 추고 뒤로 누워 버렸다. 그는 수치심과 쾌락에 몸부림치는 날 잡아당기며 다리 사이 더 깊숙이 파고 들어왔다. 아랫배에 뜨거운 입술이 와닿았다. 허벅지를 애무하는 그의 손길은 너무도 부드러웠다. 난 그의 손이 시키는 대로 한쪽 무릎을 세우고 깊숙한 속살을 드러냈다. 거기에 그의 뜨거운 입김이 닿았다.

"예뻐. 참을 수 없을 만큼......"

그의 한마디에 내 정신은 가물가물 녹아버렸다. 태울 듯 뜨거운 숨이 내 안을 파고들었다.

"아.............그, 그만........!"

"움직이지 마."

아래에서 그가 말했다. 쾌락과 수치감의 격돌, 오싹오싹한 전율과 데일 듯 뜨거운 열기가 무섭게 소용돌이쳤다.

난 도리질을 치며 할딱거렸다.

"제, 제발............!"

"맛 볼 거니까."

다리 사이에서 불이 일었다. 그가 키스를 하고 혀로 핥으며 안으로 들어와 휘저어댔다. 쩍쩍 빠는 소리가 음란하게 들려왔다. 그곳이 어딘지 알기에 충격과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그러면서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감각에 거의 실신할 지경이었다.

"아흣...........! 시, 싫어요!"

"넌 내 거야."

"그렇지만...........그, 그렇지만......"

쩝, 소리와 함께 그의 입술이 멀어졌다. 난 음탕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사타구니를 그에게 다 내보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가 않았다. 온몸이 꿀처럼 녹아 흐르는 것 같았다.

달뜬 숨을 몰아쉬며 몽롱한 눈을 들었다. 어느새 그는 물에서 올라와 있었다. 건장한 두 다리로 우뚝 선 그는 알몸이었다. 이미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건만 다시 몸이 뜨거워졌다. 그는 살아있는 혓바닥같은 시선으로 내 몸을 핥아올렸다.

"하고 싶다. 지금."

난 흐릿한 눈으로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미술책에서 본 조각상보다 완벽한 몸, 더 크고 더 건장하고 더 아름다운 몸이 검은 가운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돌아오는 그는 힘이 넘쳐보았다. 그에 비하니 난 이름 없는 작은 들꽃 같았다.

"응?"

확인하는 질문에 누운 채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날 가볍게 안아 올렸다. 알몸에 닿은 가운의 부드러운 감촉이 좋았다. 두 팔로 그의 목을 안고서 규칙적으로 내쉬는 그의 호흡소리를 들었다.

계단을 내려와 복도를 지나고 거실을 가로질러 그의 방에 다다랐다. 방엔 몇 개의 작은 조명이 켜져 있는 상태였다.. 젖은 채로 그의 침대에 눕혀졌다.

오랫동안 바랐던 일이기에 두려움은 없었다. 처음 그를 본 순간부터 이런 열망을 가진 건 아니었다. 처음엔 단지 거의 시선을 받고 싶었다. 그리고 곁에 있고 싶을 뿐이었다. 그 마음에서 그에게 안기고 싶은 마음으로 자랐다.

그건 내 육체의 성숙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크고 포근한 것을 보면 안고 안기고 싶듯이.......

가운을 벗어던진 그가 내게 올라왔다. 몸을 겹치며 말했다.

"내게 맡겨. 날 느끼게 해줄 테니까."

대답 대신 머리를 들어 입술을 포갰다. 작은 키스는 달콤한 불꽃을 일으키며 열정의 밤을 예고했다.

내 신음소리를 삼킨 그는 목덜미를 세게 빨아들이며 희롱했다. 아픔과 희열이 교차되었다. 쇄골 오목한 곳에 혀를 세워놓고 자극하며 할짝할짝 핥아댔다. 혀의 돌기가 피부를 따라 미끄러질 때마다 세포들이 흠칫흠칫 떨렸다.

목에서 새끼 고양이 칭얼거림 같은 소리가 자꾸만 흘러나왔다. 내 안에서 나오는 그 짐승의 소리가 너무도 교태스럽게 들렸다. 부끄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소리는 더 간드러지고 음란해졌다.

그의 손이 가슴 둔덕으로 내려갔다. 젖가슴을 잡아 애무하며 유두를 베어 물고 혀로 간질였다. 옆구리를 만지던 손이 엉덩이를 쥐었다놓고는 허벅지 안쪽으로 파고들어 왔다.

"으응.....으응....으응응........."

"이젠 정말 돌이킬 수 없어. 넌 어디도 못 가!"

격렬한 음성에 소유욕이 묻어나는 걸 느꼈다. 범람하는 욕정의 파도가 나를 덮쳐버렸다. 난 정신없이 달아올라 열정의 파도에 쓸려갔다. 그때 그의 몸이 멀어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눈을 떠 그를 찾았다. 침대에 무릎을 꿇고 앉은 그가 보였다. 그는 콘돔을 끼우고 있었다. 처음으로 남자의 성기를 실물로 보였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충격과 호기심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표정 없는 그가 낮게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보면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

"괘, 괜찮아요."

"지금은 아냐. 나중에........나중엥 맛보게 해줄게."

그의 약속에 가슴이 뛰었다. 설렘 속에 기대감이 있었다. 긴장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그를 받아들이기 위해 기꺼이 몸을 열었다.

"흐읏.............!"

신음하며 몸을 틀었다. 거친 그의 숨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젖은 눈으로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는 내 손을 깍지 끼우고 침대로 밀어붙였다. 쑥쑥 밀고 들어오는 느낌, 생살을 찢고 묵직한 것이 파고드는 느낌이 있었다.

불같이 뜨겁고 딱딱하고 기다란 것이 계속해서 침입해 들어왔다.

"아! 아..........."

몸을 가르는 거대한 이물감에 눈물이 흘렀다. 붉어진 그의 눈이 일그러진 채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픔에 젖어서도 난 그가 느끼는 게 무엇인지 궁금했다. 나와 같이 아파하는 건지, 잔인하게 구경하며 기뻐하는 것인지, 단지 이 행위만을 생각하고 있는 건지...........하지만 힘이 들어간 그의 눈빛은 어둠처럼 검기만 했다.

"싫으면 날 할켜."

화난 것처럼 굳은 표정에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빼진 않을 거니까."

내 눈물이 그를 화나게 한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정말 화가 난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의 몸짓이며 손길이 너무도 부드러웠기 때문이다.

그는 머리를 숙여 내 귀를 핥으며 부드러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아랫도리가 연결되어 있는 이 부자연스러움이 익숙해지자 그의 것이 움직였다. 뻑뻑하고 쓰라린 움직임에 몸뚱어리가 꿈틀거리며 발열하기 시작했다. 알몸으로 가장 은밀한 부분을 교접하고 있었다. 그의 성기가 내 안을 들락거리며 부드럽게 쑤셔댔다. 눈으로 보았던 그의 것이, 흉물스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 그것이 내 몸 안에 있는 것이다. 느낌이 생각으로 이어지자 아랫도리에서 축축한 것이 자꾸만 샘솟았다. 음탕한 상상에 머리가 뜨거워지고 몸이 더욱 예민하게 타올랐다.

"아응...........응..........."

그와 내가 만들어가는 관능의 소리, 열정의 풋내가 방안을 메웠다. 쾌감에 몸부림치는 날 붙들고 그는 격하게 허리를 흔들었다. 휘저으며 끝 간 데 없이 파고들어 왔다. 온몸이 붉게 물들었다. 시야는 흐르고 머릿속은 몽롱했다.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지잉, 하는 느낌이 몸속을 관통했다.

느끼고 싶어. 더, 더 느끼고 싶어요. 내 안을...........당신으로 가득 채우고 싶어. 외롭게 두지 말아요. 혼자 있게 하지 말아요. 더, 더 가득..........들어와 줘요. 날 가져줘요!

고개를 들어 힘줄이 솟은 그의 목덜미와 어깨에 열렬히 키스했다. 그러다 너무 짜릿한 쾌감에 그의 어깨를 물고 말았다.

"아흐.......아...........!"

하얗게 부서지는 것 같았다. 밤하늘로............은하수처럼...................

늦잠을 자버렸다. 기지개를 켜는데 온몸이 찌뿌드드했다. 특히 다리 안쪽에서 찌르는 아픔이 느껴졌다. 그 아픔이 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니 볼이 확 달아올랐다. 다시 몸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발그레 상기된 채 시계를 봤다. 오늘은 학교를 가지 않기로 한 날이다. 과학실의 폭발과 화재가 까마득한 일로 여겨졌다.

침대에서 나와 곧장 샤워를 했다. 몸 구석구석을 볼 때마다 그와 나눴던 은밀한 시간이 떠올랐다. 그의 몸이 얼마나 강하고 뜨거웠으며 멋있었는지 생생히 되살아났다. 내 몸 여기저기에 열을 뿌리면서 움직이던 그의 손길, 입술, 혀.........

거울 속의 내 몸은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입술은 추파를 던지듯 벌어져 있고 다리 사이는 쓰라렸다. 하지만 그 따끔따끔한 아픔마저 감미롭게 느껴졌다. 탱탱하게 솟은 가슴과 뾰족하게 고개를 내민 유두, 잘록한 허리, 그가 몇 번이나 혀를 밀어 넣었던 배꼽, 그리고 무성하게 난 검은 털........

난 사랑스런 눈길로 내 몸을 핥아댔다. 무심코 보았던 내 몸이, 특히 다리 사이의 은밀한 부위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가 예쁘다고, 달콤하다고 아껴주었던 거기.........그를 애태우고, 뜨겁게 만들고, 흥분하게 했던 내 몸.

난 수증기 속 나를 보며 유혹하는 미소를 지었다. 밤의 여왕이나 된 것처럼.........

아래층에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청소를 하고 있었다. 주방에서 씻겨 있는 그의 잔을 보았다. 그는 변함없이 일직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출근을 한 모양이다. 보지 않아도 일찍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출근을 한 모양이다.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랬을 것이다. 내가 그에게서 가장 좋아하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세상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냉정함. 내게 그것은 무정함이 아니라 강함을 의미한다. 내게 있어 다정함은 나약함이다. 사랑을 받기 위해 안달하는 것이다. 난 내 피 속에 흐르는 그 다정함이, 아니 그 나약함이 싫다. 그래서 그의 거침없음이 좋다.

책장을 뒤적이다가 그래도 시험이다 싶어 책상에 앉았다. 하지만 책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지금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앞으로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복잡한 생각이 머리에 빽빽이 들어찼다. 어서 빨리 그를 보고 싶었다. 그가 어떤 눈빛을 하고 어젯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하루 종일 생각하고 기다렸건만 초저녁쯤에서야 그의 전화가 왔다.

-몸은 괜찮아?

아! 그의 목소리...........가슴이 벌써 뜨거워진다.

"괘, 괜찮아요."

-뭐하고 있었어?

"공부요. 곧 기말시험이에요."

-공부 잘해?

"아, 아뇨."

-열심히는 하고?

"그냥..........."

-좋아하는 과목이 뭐야?

"어, 없어요."

-관리 좀 들어가야겠는걸. 저녁약속이 있어. 늦을 거야. 기다리지 말고 자."

".........."

-대답해.

"기다릴게요."

이번에는 그가 침묵했다. 난 그의 목소리를 놓칠까 싶어 전화기를 귀에 꼭 붙였다. 벌써 끊어버리려나 해서 조마조마했다. 그때 그의 깊은 목소리가 울렸다.

-어젯밤 어땠어?

그걸 어떻게 말로 다 한단 말인가. 그 충격, 그 희열, 그 은밀함을.......

-좋았어?

"조, 좋았어요."

-그게 다야?

"........."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나 보군.

"..............아, 아직도 내 거기에 있는 거 같아요."

부끄러움에 내 목소리를 모깃소리처럼 가늘게 떨려나왔다.

-뭐가?

"............"

-내 손이?

"아, 아뇨. 그, 그게........"

-내, 성기?

"......네."

-거기 넣어두고 왔을지도 모르지. 네 거기, 좋았거든.. 엄청.

"......."

-거기, 아직 뜨거워?

"........."

난 꼴깍 침을 삼켰다. 얼굴은 볼에 덴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숨소리가 열감기 앓는 아이처럼 뜨겁고 가빴다. 전화기 너머에선 침묵에 이어 탁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 가쁜 내 숨소리가 섞여들었다. 그건 마치 절정으로 치달을 때 우리 같았다. 그때의 나와 그를 떠올린 순간, 리듬을 타고 격렬하게 움직였던 아랫도리가 질척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방안이 내 뜨거운 숨으로 자욱해졌다.

깊은 숨소리 끝에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네 방이야?

"네."

-뭐 입고 있지?

"청바지..........."

-위엔?

"티셔츠."

-옷 벗고 침대로 가.

놀라 숨을 들이켜는 것과 거의 동시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숨 막힐 듯 열이 오르면서 호흡이 흔들렸다.

-시간 없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말고 다 벗어.

부끄러움이 일었지만 그의 명령이라면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아니, 거부하고 싶은 의지가 없었다.

"자, 잠깐만...."

전화기를 내려놓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혹시 그가 기다리다 지쳐 전화를 끊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동작이 빨라졌다. 떨리는 손으로 재빨리 팬티를 내리고 전화기를 들고 침대로 갔다.

"버, 벗었어요."

-알몸이야?

긴장되고 떨려서 전화라는 것도 잊고 습관대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는 마치 눈앞에서 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좋아. 침대에 누워.

그의 명령대로 침대에 누운 난 등에 닿는 이불의 감촉에 몸을 떨었다. 몸이 말할 수 없이 민감해져서 작은 스침에도 파르르 경련이 일었다.

-눈 감아.

더 그윽해지는 그의 목소리레 숨이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입에 넣고 혀끝으로 가만히 핥아. 천천히........내 손가락이라고 생각하고......충분히 적셔. 내게 들리도록 핥아봐.

그가 원하는 대로 소리 내어 손가락을 핥았다. 문을 잠그지 않았다는 것도, 침대에 혼자 누워 있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전화기를 통해 들리는 그의 숨결을 느끼는 순간 난 이미 그와 함께였다.

-내 생각하고 있지?

"네에.........."

-어떻게 해줄까?

"아, 안아줘요."

-안고 있어. 으스러지도록 안고 있어. 내 가슴에 탐스런 네 유방이 눌려서......

"흐으.......

-가슴이 빵빵하게 부풀었어.

".........네."

-만져 봐. ...............어때?

"부, 부드럽고..."

-좀 더 세게.............

"아............!"

-젖꼭지를 만져 봐. 단단해졌나?

".............네."

-내 손길 기억나? 내 손을 생각해. 네가 아니라 내가 만지는 거야. 내 손가락이 귀엽게 오똑 선 네 젖꼭지를 만지고 있어. 어젯밤에 한 것처럼.........비비고........당기고.........

그의 말대로 어젯밤을 생각하자 몸이 자동적으로 들뜨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하루 종잉ㄹ 그와 함께한 어젯밤이 떠올라 달뜬 상태였다. 그 제어를 풀자 욕정이 봇물 터지듯이 넘실거렸다. 나 자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그의 품이 그리웠다. 마음뿐만 안이라 이제 육신까지 그에게 사로잡혀 버린 것이다.

"아......하응......!"

-생각나지? 어젯밤에 내가 네 젖꼭지를 물고 어떻게 했는지. 응?

"아........! 제, 제발....."

-그렇게 하는 거야. 내가 빨았듯이 잡아당겨 봐. 세게.......

"아흑.........!"

-네 신음소리, 듣기 좋아. 좀 더 소리를 내 봐.

"으응................"

-다리를 벌려. 나한테 거기가 보이도록 크게 벌려.

시키는 대로 다리를 넓게 벌렸다. 사타구니가 공기 중에 드러나고 가운데가 벌어져 속살이 내비치도록 벌렸다. 수치스러움이 더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손 내려서 거기 만져. 천천히.......부드럽게.......

"저, 젖었어요."

-그 맛이 생각나. 쌉쌀하고 달콤한 꿀 같았어. 거기에 가운데손가락을 넣는 거야. 깊이.......

시키는 대로 손가락을 질 속으로 집어넣었다. 처음으로 하는 행동이었지만 수치감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감은 두 눈 속에선 어젯밤의 환영이 현실처럼 펼쳐져 있었다. 난 애욕에 휩싸인 채 더 깊숙이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전화기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가 마치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세하게 흔들리고 거세지는 그의 숨소리가 날 혼미하게 만들었다.

"아....!"

-뜨겁고 축축한 동굴 속에서 들어가 봐. 어젯밤에 내 걸 물고 얼마나 움칠거렸는지 알아? 먹고 싶어 안달 난 것처럼 게걸스럽게 빨아댔어. 처음이면서 날 미치게 만들었어. 지금 내가, 내가 거기에 있는 거다. 느껴져?

"네...............!아응............!"

굶주린 신음소리를 흘리며 젖은 소리가 나도록 아랫도리를 파고들었다. 검은 털ㄹ에 둘러싸인 굵고 기다린 그의 것을 생각하면서.....

-그 부분 건드렸을 때 너 정말 까무러칠 것 같은 표정이었어. 거기를 문질러 줘. 울음소리가 날 때까지 손가락을 움직여. 빠르게...................더 빨리!

"아으....................아아...........!"

-소리를 듣고 싶어. 거기에, 거기에 전화기를 대 봐.

난 그를 위해 전화기를 아랫도리에 댔다. 내 자랑스런 거기의 소리가 그를 흥분시길 바라며..............

순간, 전화기에서 그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기폭제가 되어 난 높게 치솟았다.

"아......!"

욕정에 찬 비명 소리를 지르며 나는 도리질을 쳐댔다. 절로 손가락이 자꾸만 움직였다. 몸이 뜨겁고 숨이 가빠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뜨겁게 달아올라 펄떡이는 몸으로 그의 목소리가 퍼졌다.

-늦을 거다. 기다리지 말고 자.

전화는 그걸로 끊어졌다. 난 덜 채워진 욕정에 몸이 덜덜 떨렸다. 당장 그에게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시 손가락을 대봤지만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다 않았다. 그의 목소리 없인 되지가 않았다.

십여 분 후 난, 땀으로 젖은 몸을 씻으며 생각했다. 영영 그의 것으로 남고 싶다고.........

그날 새벽, 그가 내게로 왓다. 잠결에 눈을 떴을 때 난 그의 품에서 옮겨지고 있었다. 자정까지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실망감에 젖어 잠들었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가 내게로 온 것이다.

그의 침대에 눕혀졌고 그는 옷도 벗지 않은 채 달려들어 왔다. 난 숨 막히는 기쁨과 열정에 휩싸여 그를 안았다. 그는 키스를 퍼부으며 곧장 내 안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솟구쳤다. 그답지 않은 성급한 손길과 거친 숨소리에 쾌감은 금방 절정으로 치달았다. 그가 내 안에 가득했을 때 흐릿한 머리로 또다시 생각했다.

버려진다면 죽고 말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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