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 20x6년. 12월 14일. 아부다비 그랑프리. (19/20)

19. 20x6년. 12월 14일. 아부다비 그랑프리.

차는 급격한 코너를 빠른 속도로 돌았다. 원심력으로 미세하게 바뀐 몸의 중심을 느끼면서도 루크는 차량 안의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화면에는 그랑프리가 라이브로 중계되고 있었다. 화면과 같은 시간대인 아부다비의 검은 지평선은 눈이 닿는 곳마다 조명이 눈부시게 켜져 있다.

저 멀리 태양 같은 조명이 모여 내리쬐는 아부다비 그랑프리의 서킷은 더더욱 그렇다. 루크는 점점 더 거대한 몸체를 부풀리며 가까워지고 있는 포뮬러 원 서킷을 쏘아보았다. 옆에 멀찍이 떨어져 앉은 사라가 미리 변명했다.

“이제 10분이면 도착해요.”

“알았어.”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린 루크는 아까부터 자신이 움직일 때마다 버튼이 눌린 양 남은 시간을 내뱉는 사라에게 대꾸했다.

“늦는 게 차라리 나아.”

“거짓말이신 거 같은데요.”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그것도 맞지만요.”

“정말이야.”

그 순간 린드베르그의 레이싱 카를 향해 미래가 없는 것처럼 달려드는 레이스 카를 본 루크는 참담한 분노를 느끼며 아랫입술을 한 번 씹었다.

“현장에서 눈 뜨고 보고 있으면 심장에 너무 안 좋아.”

“그렇긴 하죠.”

“에단도 차라리 오지 말래. 내가 그런 표정으로 보고 있으면 신경 쓰인다고.”

“그것도 맞아요.”

이보다 더 끔찍한 것은 없다는 표정으로 경기를 관람하는 루크의 얼굴은 트랙을 돌아다니다 보면 간간이 화면에 잡히곤 했다. 에단은 이후 그 표정을 몇 번 확인했던 것 같았다.

트랙의 주차장을 가로질러 린드베르그 레이싱 팀 트럭 가장 가까운 데에 대어진 차가 드디어 멈췄다. 루크는 내리기 전 가만히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였다. 제 삶은 모조리 운명에 얽매인 것만 같았다. 차로 가족을 잃었으나 오토 메이커였고 연인은 레이싱에 목숨을 걸고 있다.

……물론 에단은 목숨까지 건 것은 아니라고 항변하기는 했지만, 대체 그게 목숨을 건 게 아니면 뭐냐고 루크 역시 항변하고 싶었다.

빌어먹을 업계. 루크는 경건한 기도 중에 짧게 욕설을 읊조렸다. 이 미친 업계는 사람이 죽다 살아나 겨우 돌아왔는데도 은퇴시켜 줄 생각은커녕 환영과 함께 레이스 카에 태우는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로 이것도 끝일지 모른다. 루크는 그 생각과 함께 맞잡았던 양손을 힘차게 놓았다. 그 순간이 파이널 랩이었다. 열린 차 문 밖으로 함성이 휘몰아친다. 점점 가까워져 오는 레이스 카의 굉음을 느끼며 루크는 화면에 홀린 듯 바라보다가 차 밖으로 나왔다.

1섹터, 2섹터, 3섹터의 첫 번째 커브. 중계를 보지 않아도 사회자의 목소리와 함성으로 경기의 진행이 생생히 머릿속으로 다가온다. 그 모든 경쟁을 떨친 순간 사회자의 흥분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린드베르그의 에단 한이 이번 시즌 마지막 그랑프리, 마지막 랩, 마지막 코너에 진입하며 우승을 확정 지어 갑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월드 챔피언입니다!”

팀 개러지는 이미 환호가 가득했다. 벽에 붙은 화면 너머, 순식간에 직선을 달린 흰색의 레이스 카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그 순간, 짜릿한 전율이 등골을 관통한다.

요란한 폭죽이 그랑프리 서킷의 하늘을 수놓고, 하늘을 적시는 함성이 온 지상을 울린다. 그 환호에 동조하면서도 피트의 그늘 아래 멈춰 선 루크는 마음 놓고 한숨을 몰아 내쉬었다. 비식거리는 미소는 탈력감을 숨길 수 없었다.

“좋았어.”

드디어 끝이 났다.

표정을 갈무리한 루크가 뒤늦게 긴 다리를 뻗자마자 플래시가 터졌다. 그는 가장 환한 미소를 띠며 득달같이 달려든 기자를 맞이했다.

“루크. 린드베르그 레이싱이 2년 연속 그랑프리 챔피언을 맞이하게 되었네요. 축하합니다.”

“고마워요. 정말 믿을 수 없게 좋은 밤이네요.”

익숙한 축하를 받으며 트랙을 가로지른 루크 역시 모두가 달려가는 방향으로 함께 걸었다. 바퀴도, 장비도 내동댕이치고 달려 나가는 이들의 뒷모습마저 막바지이다.

다가가는 걸음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저 멀리 피트 레인의 끄트머리, 멈춰 선 레이스 카 위로 불쑥 올라오는 하얀 레이싱복의 길쭉한 인영이 보인다. 순간 기쁨과 뿌듯함으로 부풀어 오른 심장을 마냥 부정할 수는 없다.

꽃가루와 폭죽. 그리고 수많은 인파. 온갖 화려한 축복 속에 파묻힌 에단의 새하얀 얼굴이 자랑스럽다. 루크는 두 번째 맞는 그랑프리 챔피언의 환호를 먼발치에서 마음껏 만끽한다. 처음 보았던 그 순간, 빗물이 고여 내리는 개러지의 뒤편에 기대어 있던 모습 따위는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 순간은 이미 멀고 먼 과거일 뿐이다.

고개를 돌리던 에단은 수많은 머리통 사이 인파에서 한 걸음 물러나 서 있는 루크를 단번에 알아본다.

희열로 달뜬 얼굴을 마주한 찰나, 루크의 가슴은 벅차오른다. 그래. 당신은 이게 가장 잘 어울려.

마주 웃은 미소를 본 걸까. 활짝 웃는 에단의 얼굴은 어두운 밤이 믿기지 않도록 환하게 빛이 났다. 루크는 기꺼이 인파의 사이로 파고들었다.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연인을 모두의 앞에서 마주 안아도,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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