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20x4 일본 그랑프리 - 스즈카 서킷.
트랙 길이 5.807km, 레이스 랩 53랩, 레이스 거리 307.471km, 랩 레코드 1:31.540
다이내믹한 트랙의 높이 변화와 공략이 어려운 코너를 가진 스즈카 서킷은 드문 8자형 서킷으로 본래부터 드라이버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 심지어 그런 서킷의 특징에도 불구하고 공략 속도는 높은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순위가 더욱 뼈아프게 다가왔다. 마지막 순간까지 페달을 부러져라 짓밟았던 발을 떼고 에단은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이어폰으로 들리는 딘의 목소리에서도 한풀 꺾인 기운이 여실히 느껴졌다.
- 오늘 고생 많았어 에단.
“너도 고생 많았어.”
- 들어와서 이야기하자. 피드백할 게 많아.
“그래.”
짧은 대답을 끝으로 통신을 마무리하려던 에단은 선두부터 일렬로 늘어선 레이스 카를 따라 멈춰 서며 다시 한번 말했다.
“오늘 레이스는 정말 고생 많았어. 고마워.”
- 내가 당연히 할 일이잖아.
딘은 시원스레 대답했고 통신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머신에서 빠져나온 에단은 앞에서부터 줄지어 선 레이스 카의 순위를 무심결에 바라보았다. 예선 7위, 오늘의 본선은 9위. 받아 든 성적표를 곱씹으며 에단은 돌아가는 내내 오늘의 레이스를 끊임없이 되새겼다.
코너에서 추월이 더 과감해야 했을까. 중간의 피트 스톱에서 소모된 3.4초의 문제였을까. 예선의 7위가 근본적인 문제였을까. 아니면…….
거듭되던 생각 때문에 레이스 이후의 일정이 무의식중에 지나가고 있었다. 입을 굳게 다문 에단을 조심스레 이끌며 조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가끔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면 에단은 말수가 없어지곤 했다. 가끔씩 돌아가는 카메라가 굳게 다문 입매를 향하고 있는 것을 알았지만 방해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걸 잘 알았다.
그렇게 갈 길만 안내하던 조지가 자신의 팔꿈치 부근 옷깃을 잡아당기자 에단은 시선을 올려 정면을 응시했다. 정면에서 헬멧을 옆구리에 낀 리암이 다가오고 있었다.
리암의 성적은 5위였다. 피트 스톱이 2.5초라는 매우 성공적인 시간으로 마무리되었고 경기에서 상위권의 경쟁이 치열하던 중 운 좋게 틈을 파고들기도 했다.
어떤 이유를 갖다 붙이든 오늘의 성적은 리암이 더 좋았다는 뜻이었다. 덕분에 긴장이 풀려 이완된 리암의 눈매는 오랜만에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멈춰 섰다. 잠시간의 침묵을 지키던 둘 중 먼저 움직인 것은 리암이었다. 자신의 앞에 아무것도 없는 양 레이스 엔지니어와 이야기를 이어 나가며 에단을 스쳐 지나갔다. 어깨가 거의 맞닿을 듯 아슬아슬한 간격이었다.
뻔한 시비를 눈치챈 조지가 순간 욱해서 뒤 돌았다. 에단은 그런 조지를 붙잡았다.
“가자.”
“작작 해야지. 한마디 할까?”
“이런 날도 한 번쯤 있어야 리암도 숨을 쉬지. 내버려 둬.”
아직 멀어지지 않은 기척을 뻔히 듣고 한 말이었다. 에단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공식 기자 회견에서는 그 지긋지긋한 부상의 여파에 대한 질문이 들어왔다. 에단은 왼팔을 들어 흔들어 보이며 짧게 대답했다. No problem. 대부분은 그 대답이면 충분했다.
마지막 질문 기회를 받은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에단, 오늘 성적은 포인트를 따내기는 했지만 챔피언 도전에서는 멀어지는 등수라고 생각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렇죠.”
짧게 대답했던 에단이 다시 덧붙였다.
“하지만 오늘이 이번 시즌의 마지막 레이스인 건 아니니까요.”
기자는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고 기사를 작성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내려오자 린드베르그 레이싱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잘했어.”
시즌 초반 에단에게 짧은 대답만을 강조하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는 언젠가부터 그가 어떤 말을 하건 엄지를 치켜들곤 했다. 그 변화를 음미하며 에단 역시 엄지를 치켜 보인 뒤 팀 빌딩으로 돌아갔다.
팀 빌딩 회의실에서는 그랑프리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위해 짧은 팀 회의가 소집되었다. 감독과 기술 책임자들이 자리한 사이에 앉은 에단은 자리에 놓인 마이크를 만지작거렸다.
마무리되는 대로 미캐닉들이 분주하게 해체한 레이스 카를 들고 출국해야 하기 때문에 회의는 바로 시작되었다.
막 말문을 열려던 감독이 양해를 구하고 일어나더니 문간에 서서 전화를 받았다. 덕분에 문자를 볼 여유가 생긴 에단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오늘 경기 좋았어요?
결과를 아직 안 받아 본 것인가. 눈을 치켜떴던 에단은 문자를 간단하게 써 전송했다.
완벽하게, 더할 나위 없이 최악이었어요.
문자의 전송을 누르자마자 부산스러운 분위기가 한결 가라앉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이번 시즌, 린드베르그 레이싱에게 기대 이상의 성적을 안겨 주고 있다고 평가받는 감독이 자리에 앉아 먼저 말문을 열었다.
“오늘 레이스는 고전했지만 그래도 사고 없이 두 드라이버 모두 포인트를 따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고 없이. 감독은 별생각 없이 한 말일 수 있었지만 에단은 마이크를 보며 내리깔았던 눈을 무심결에 옆으로 돌렸다. 이미 바라보고 있던 리암의 조소가 똑똑히 보였다.
정말 그런 의미일까. 사고 좀 작작 내라는. 그런데 저 새끼는 자기가 와서 들이받았던 영국 그랑프리가 올해였던 것도 까먹은 건가? 리암의 자그마한 머리통을 노려보던 에단의 시선이 정면으로 돌아갔다. 감독은 고작 그게 오늘의 감상인지, 발언 순서를 이미 수석 엔지니어에게 넘기고 있었다.
“출력에 조금 미스가 있었지만 레이스 카의 밸런스는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수석 엔지니어 역시 짤막한 답변을 남긴 뒤 최고 기술 책임자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비슷한 부류의 발언이 연이어 이어졌다. 레이싱 엔지니어마저 거치고 회의실을 울리는 리암의 발언이 에단의 귓가에 똑똑히 꽂혀 들었다.
“저도 이번 업그레이드가 마음에 듭니다. 오랜만에 마음에 들었어요. 속도가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초고속보다 다운 포스가 중요한 서킷이 더 많잖아요. 안전하게 레이스를 마무리하고 포인트권에 지속적으로 드는 게 임팩트 있는 레이싱보다 중요할 때도 있는 법이죠. 안 그래요?”
대놓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리암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에단은 테이블에 설치된 마이크를 켰다.
“팀의 의견은 잘 들었습니다. 좋아요, 리암. 방금 마지막 의견은 제게 직접 문자로 보내 놔요. 답변 남겨 줄 테니까.”
“뭐?”
곁에서 터져 나온 리암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에단은 팀을 돌아보았다.
“나만의 느낌일 수도 있지만 페달을 밟았을 때 느낌이 좋지 않아요. 뭐랄까……. 안정성을 중시한 건 알았어요. 연달아 박은 입장에서 할 말이 없지. 이해해요. 그래서 이번 업그레이드를 진행한 건 알겠는데. 뭐랄까. 다운 포스를 위해 희생된 엔진의 출력값보다 더 안 나가는 느낌이 강해요. 빌. 엔진에 문제없는 거 맞아요?”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은 수석 엔지니어가 감독을 한 번 돌아보더니 마이크를 가까이 가져왔다.
“우리 의견은 그래.”
“데이터까지 다 봤는데 그렇다면 그냥 내 느낌일 수도 있죠. 나도 업그레이드에 최대한 맞춰서 브레이킹 스타일을 바꾸든지 고민은 해 볼게요. 하지만 내 의견은 그래요. 포뮬러 원이 안전하게 달리자고 하는 경기는 아니잖아요. 우리가 안전 운전 캠페인을 찍는 것도 아니고.”
머릿속에 있는 말을 뱉고 보니 예전에 루크가 했던 말이었다. 에단은 심각한 와중에 생각이 다른 쪽으로 빠질 뻔해서 아랫입술을 약간 깨물었다가 간격을 두고 말했다.
“내 의견은 이래요. 오늘 모두 고마웠어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게요.”
그다음 들어올 반박을 기다렸지만 감독은 문간 쪽으로 힐끔 시선을 줄 뿐이었다. 문간에는 정장을 갖춰 입은 남자 하나가 메모를 남기고 있었다. 기자도, 팀 크루도 아니라면 린드베르그에 소식을 넣는 사람인 것이 뻔했다.
“오늘 회의는 이렇게 마무리하죠. 모두 러시아에서도 잘해 봅시다.”
감독이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자마자 에단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리암이 무슨 말이라도 던질 듯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이쪽이 이야기할 기분이 아니다.
***
서킷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시내에 자리한 호텔의 로비는 어수선했다. 러시아로 넘어가자마자 레이싱을 준비해야 할 미캐닉들이 분주히 체크아웃하는 사이를 지나치며 에단은 몇 번이고 붙잡혀 사진이 찍히거나 인사를 나눴다. 이전에는 지나가도 별 관심 없더니 이것 역시 변화 중 하나였다.
몇 번의 카메라 세례에 어색하게 굳은 입꼬리를 만지던 에단은 조지와 간신히 엘리베이터에 탔다. 조지가 에단이 머무르는 층의 버튼을 눌러 주며 물었다.
“어디 갈 데 있어?”
“아니. 방에만 있을 거니까 걱정 말고 쉬어.”
“요즘 너무 빡빡했잖아. 나가서 기분 전환이라도 하는 게 어때.”
에단은 조지의 권유에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흔들어 보였다.
“우리 팀 오너가 얌전히 휴식이나 취하라네.”
“지금 문자 하는 거 그 사람이었어?”
“응.”
“에단, 너 그래도 팀 오너랑 사이가 괜찮은 편이기는 하지?”
“아마도.”
지난번 독일 린드베르그 가문의 병원에 끌려갔을 때부터 한 번쯤은 조지가 물을 것이라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하지만 대비했다고 해서 긴장을 덜할 수 있는 주제는 결코 아니었다. 에단이 딱딱하게 굳은 목을 살짝 끄덕이자 조지는 안심한 것 같았다.
“그럼 다행이고.”
“그렇지.”
“그리고…. 있잖아.”
“왜.”
“너 혹시 요즘 연애해?”
“뭐?”
이 역시 언젠가 받을 거라 예상한 질문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일 줄은 몰랐다. 놀라 사정없이 미간을 찌푸리며 바라본 표정을 조지는 다른 쪽으로 해석한 것 같았다.
“물론 네가 나 모르게 연애할 이유가 없다는 건 알지만. 휴대폰도 늘 손에서 안 떼어 놓는 거나 가끔 연락도 안 되고…. 그냥 물어본 거야.”
마침 타이밍 좋게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에단은 대답 대신 열린 문밖을 고갯짓했다.
“다 왔네. 잘 들어가.”
“그래. 혹시 뭐 할 말 있으면 이야기해 주고.”
“응. 그런데 무슨 할 말? 뭐에 대해서?”
스스로 찔린 에단의 반문에 조지가 의문을 표했다.
“우리 재계약 말이야. 아직 말 안 나왔나 해서.”
“아……. 맞다. 그게 있었지.”
“물론 안 할 거 같지는 않은데 언제쯤 이야기 나오나 해서 물어본 거야. 다른 드라이버 물색하는 기색도 전혀 없고 다들 당연히 내년에도 너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크게 생각은 말고. 푹 쉬어.”
조지는 에단을 안심시킬 말을 한껏 쏟아 낸 뒤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에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회의보다 긴장되네.”
그리고 연신 만지던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은 에단은 멋쩍은 기분이 되었다. 사생활 보고가 계약 내용에 기재되던 것을 뻔히 본 조지마저 휴대폰을 자주 만진다며 수상하게 여기는 점에서 이미 글렀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나 많이 휴대폰을 만졌던가?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니 말할 타이밍을 도무지 잴 수가 없었다. 적어도 이 좁아터진 엘리베이터에서 갑자기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이걸 뭐라고 설명할 텐가.
무엇보다……. 어떻게 설명해도 이상하게 보일 것이 뻔하다. 팀 오너와 드라이버의 관계를 그저 순수하게 볼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편견이나 좁은 마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역시 자신의 일이 아니었다면 이런 종류의 소문을 듣자마자 가운뎃손가락을 올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복잡한 심경을 한껏 품은 채 에단은 멈춘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최상층 스위트룸을 자꾸 잡아 주려 하기에 작작 하라고 말한 뒤부터는 다른 드라이버나 감독들처럼 적당한 방이 제공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지나다니는 사람과 가끔 마주치기도 했다.
저 멀리 룸서비스 카트를 끌고 가는 흰옷의 직원이 멀어지고도 공연히 사방을 둘러본 뒤 카드키를 가져다 대고 문을 열어젖혔다.
얌전히 호텔에만 있으라는 문자를 받았을 때부터 예상했지만 마주하니 기가 막힌 것이 사실이었다. 빙긋 웃은 채 침대맡에 앉은 루크의 앞에 다가간 에단은 표정이 심각해졌다.
“당신이 잡아 주는 호텔들은 보안이라는 개념이 없는 거야?”
“룸서비스라고 생각해요.”
“룸서비스면 미리 벗고 있든가.”
“가끔 듣고 있으면 나보다 더해.”
“왜. 서비스라며.”
“드라이버들은 다 그래요?”
고개를 갸웃 움직이던 루크의 손이 허리춤에 올라왔다. 윗옷의 옷깃을 들어 올려 살갗을 만지작거리는 손끝에 옅은 소름이 등골을 달린다. 늘씬한 허리가 경직되며 드러나는 근육의 결을 골똘히 바라보는 루크의 시선에 에단이 물었다.
“뭐야.”
“이젠 정말 다 나았네요.”
“이러고 있으니 키우는 개가 된 것 같아.”
“개치고는 너무 많이 돌아다니지.”
하여튼 한마디를 안 진다.
“오늘 못 온다면서요.”
“레이싱은 못 갔잖아요.”
“우리 성적 소식 들었어요?”
“아니. 아직.”
고개를 가로젓는 루크의 머리칼에 손바닥을 올리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에단은 대신 어깨에 손을 올렸다. 셔츠 아래 널찍한 어깨에 길게 단련된 세모근이 손끝에 걸린다. 무심코 빗장뼈까지 손가락을 움직이던 그가 자진해서 고백했다.
“오늘 9위 했어요.”
“예전보다 낫네.”
“리암은 5위.”
“그래?”
“알고 있었죠?”
“아니라니까.”
“네게 보고하는 사람이 안 들어온 데가 없었어.”
“내가 아직 안 봤어요.”
“거짓말하지 마. 다 보잖아.”
“음……. 언젠가 보겠지만 내가 그걸 봤고 안 봤고가 지금 그렇게 중요한 건가.”
“응.”
“왜요.”
“나한테 실망했다고 말 좀 해 줄래요?”
“안 실망했는데 왜 그래야 하지.”
“믿으라고 했었잖아. 그런데 왜 실망을 안 해.”
“알아요. 잘 달리는 거.”
“그럼 뭐 해. 이따위 성적이나 받아 온 주제에 팀 회의에서 할 말은 다 하고. 하…….”
“의견은 자유롭게 낼 수 있는 거잖아. 뭐 어때.”
“보고 아직 안 봤다며. 이것 봐. 들었네.”
“아. 우리 그 대화는 내가 본 걸로 이미 결정된 거 아니었어?”
능청스러운 대답에 에단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별안간 터진 웃음을 참지 못하다가 결국 허물어져 버린 마음마저 답답해서 눈가를 가린 채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색색 내뱉는 숨소리만이 고요했다. 루크는 갸름한 에단의 턱을 한참이고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안 해도 돼요.”
“차라리 실망했다고 해 달라니까.”
“내가 실망했다고 하면 뭔가 달라지나.”
“다음번에는 들이박아도 한 순위 높이고 끝내게.”
잇새를 씹을 듯 질근거리며 화를 삭이던 에단이 결국 숨을 훅 들이 내쉬었다. 혼자 열 내고 혼자 끓어오르는 모습을 즐겁다는 듯 보고 있으니 오르던 열도 식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꼴을 온전히 눈에 담는 푸른 시선에 에단이 결국 멋쩍게 대꾸했다.
“이런 식의 위로는 또 처음이네. 머리가 식는 기분이야.”
“딱히 위로하려고 한 건 아니고 진심이에요. 편하게 해요. 난 그 정도 순위면 괜찮고 실망하지도 않아.”
“의욕 꺾이니까 그런 말은 차라리 하지 마.”
허공에 내젓는 손을 쥐어 손가락 마디마다 깍지를 끼자 에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손 마디마다 들어찬 감각을 꾹 쥐었다 놓는 감각이 몇 번이고 반복될 뿐이었다.
“그러다 성적 처져서 시트 내놓아야 할지도 몰라.”
“내가 기념관 세워 준다니까. 그 옆의 테마파크에서 타요.”
“끔찍한 소리 하지 마.”
“전용 서킷 세워 준다는 말이 그렇게 끔찍한 말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태연히 지껄이는 말에 에단은 손아귀에 힘을 주어 꾹 쥐었다.
“됐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고 믿기만 해. 제발.”
루크는 그 말에 빙긋이 웃으며 손바닥을 정성껏 맞추어 꽉 쥐어 오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