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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0x4 모나코 그랑프리 - 모나코 서킷. (2)[2권] (6/20)

체커드 플래그 2권

6. 20x4 모나코 그랑프리 - 모나코 서킷. (2)

호텔의 최고층은 8층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마지막 층에서 멈추고 걸어 나오자마자 루크는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상대의 뒷덜미를 붙잡으며 고개를 틀었다. 맞물리는 입술이 문질러지고 그 열기에 눈을 치켜뜬 에단은 입술을 손등으로 닦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복도잖아.”

“여긴 나밖에 없어.”

그 말이 진짜냐고 묻기 위해 벌려진 입술에 다시 숨결이 닿았다. 벽을 더듬거려 문을 여는 동안 뜨거운 숨이 재차 엉켰다. 키스는 아래층부터 정중하게 안내하던 느긋함과 전혀 달랐다. 입술을 강압적으로 벌리고 들어와 치열 사이를 훑은 두툼한 혀가 안쪽을 핥아 얽어 온다. 숨이 섞여 색색 내뱉는 호흡의 속도가 같아지고 나서야 드디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뒷걸음치는 대로 움직이던 에단은 불이 드문드문 들어온 내부의 정경을 눈으로만 훑었다. 격자식 창문 밖 야경과 바다. 항구의 불빛. 그리고 그 모든 것 대신 천장에 그려진 그림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무릎 뒤가 걸려 갑작스럽게 침대 위에 눕혀진 에단은 어지러움에 눈을 찌푸렸다.

뒤늦게 취기가 오르는 것만 같았다. 몸을 돌려 엎드린 자세로 침대 시트에 이마를 비비는 에단의 어깨에 입술을 누르며 루크가 속삭였다. 등이 더욱 동그랗게 말렸다.

“에단.”

“으음.”

“졸려요?”

“조금. 아주 조금…….”

그런 말과 함께 눈을 치뜨는 것을 보고 있던 루크가 침대 위로 왼 무릎을 올렸다.

오른쪽 다리마저 올려 그 사이에 양 허벅지를 가둔 루크는 에단의 허리를 붙들어 당겼다. 약간 몸이 끌려 내려간다고 느낀 순간 에단은 눈을 깜빡여 흐릿한 시야를 똑바로 하려 노력했다. 푸른색의 눈동자가 너무 가깝게 있었다.

거기에 시선을 빼앗기자 거리감은 더욱 가까워졌다. 더운 숨을 나눠 주고 있던 남자가 키득 웃으며 입술을 떼었다. 그는 조급하게 에단을 끌고 온 사람답지 않게 너른 손바닥으로 검은 머리카락과 말랑하게 달아오른 귓바퀴를 느리게 쓰다듬었다.

“내일 기억은 나겠어?”

“그 정도는 아니야.”

“영 정신을 못 차리는 표정인데.”

“이런 게 더 좋죠.”

“아하. 정신없는 게 취향이에요?”

“조금.”

“왜?”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싶…….”

귓바퀴를 건드린 손가락이 목덜미를 따라 내려왔다. 흰 티셔츠의 목 부근을 구기듯 쥐어 당긴 루크는 쇄골과 목 아래로 이어지는 단정한 어깨선을 훔쳐보았다. 더, 더 당겨지다가 거의 옷이 찢어질 지경이 되어서야 밑단을 붙잡아 거칠게 벗겨 올렸다.

부드러운 면에 얼굴과 머리칼이 잔뜩 쓸렸던 에단이 다시 눈을 뜨려던 순간, 입술이 맞물렸다. 이번에는 비벼 오는 입술의 살갗뿐만 아니라 벗겨진 상체에 비벼지는 셔츠의 질감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너머의 탄탄한 육체가 묵직했다.

짓눌린 폐 때문에 입을 크게 벌리자 이번에는 굵은 살덩이가 제 자리를 찾듯 입 안을 헤집어 입천장을 간질이고 있었다. 모든 것을 갈취당하는 것만 같은 입맞춤이었다.

입술이 떨어질 무렵, 등 허리를 만지작거리는 더운 손길을 느끼며 에단이 몸을 들썩였다. 그만큼 조금 물러난 루크에게 손짓했다.

“가까이 와 봐요.”

“뭐 하게.”

술기운과 쾌감으로 흐리멍덩해진 에단의 눈동자가 자신을 낱낱이 핥듯 살피는 것을 느끼며 루크는 느긋하게 눈을 감았다. 간지러운 숨결이 이마와 콧대, 이윽고 입술 아래로 내려가 목덜미에 다다른다. 명치까지. 마치 제 급소를 찾는 듯 미끄러지는 얼굴을 느끼며 루크가 목울대를 울렸다.

“마음에 듭니까.”

“생긴 건 진짜.”

“미인이라고?”

“이렇게 생겨서 감사한 줄 알아요.”

“늘 감사하고 있지.”

대답하며 하체 위에 무게를 실어 올라타듯 앉은 루크가 부풀어 터질 듯한 성기를 비비며 상대를 밀어 넘겼다. 흰 시트 위에 눕혀진 에단의 턱 끝부터, 조금씩 내려간 입술이 움직이는 목울대를 빨아들인 뒤 아래로 내려갔다. 푹 패인 쇄골의 반듯한 선을 혀끝으로 음미하다가 살갗을 빨아 내렸다.

납작하게 근육이 올라붙은 가슴과 숨 쉴 때마다 부풀어 오르는 흉곽의 가장자리까지. 평소 땀을 자주 흘려서인지 옅기만 한 체향도 흠뻑 느껴지도록 루크는 게걸스럽게 몸을 탐했다. 제 셔츠를 뜯듯이 벗어 던진 그가 오목한 장골 뼈의 아래를 만지작거리자 에단은 고개를 길게 내뻗으며 숨을 내쉬었다. 등 뒤의 베개에 상체를 기댔다. 아래를 내려보는 삐딱한 시선이 흐물했다.

“올라오면, 알려 준다면서요.”

“왜 당신인지?”

“그래.”

“별건 없어요. 그냥 포스터를 봤습니다.”

“어떤 포스터?”

“잘 기억 안 나는데… 영상도 봤어요. 터진 타이어로 완주를 했던 영상이었어요.”

“그게 한두 번이어야, 으음…….”

직접적인 자극에 아랫배가 옴폭 파이도록 힘을 주느라 말이 마무리되지 못했다. 대답하면서도 착실히 버클을 끌러 내던 루크는 검은색의 딱 달라붙는 브리프 위로 융기한 성기의 모양을 훑었다.

얇은 천 아래 습기를 머금은 브리프의 모양을 덧그리며 그는 스스로도 꽤나 신기해하는 중이었다. 동하긴 했어도 남자의 발기한 성기를 만지는 느낌이 이렇게 괜찮을 줄은 몰랐다.

아직 물컹한 감이 남은 성기를 손아귀에 움켜쥐자 에단은 절로 움찔거리는 얼굴 근육을 어쩌지 못하고 앓는 신음을 흘렸다. 들썩이는 다리 한쪽을 무게로 깔아 짓누르고 성기의 끄트머리를 손끝으로 꾹꾹 눌렀다. 근육이 팽팽하게 잡힌 판판한 뱃가죽이 들썩였다.

“후우…….”

“그래서 궁금했죠.”

“그 드라이버의…… 벗은 꼴이?”

에단의 대꾸를 들은 루크는 기가 막혀 눈을 가늘게 떴다.

“가끔 당신이 나보다 더한 거 알죠?”

그와 동시에 검은 드로어즈의 밴드가 약간 내려갔다. 매끄러운 살갗 아래로 발갛게 잘 익은 성기가 비어져 나온 것을 본 루크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마치 첫 만남에서 호기심을 충족하려던 그때처럼.

고개를 내린 그는 먼저 에단의 아랫배를 슬쩍 혀를 내밀어 핥았다. 에단은 성감을 견디지 못하고 손끝을 움찔거렸다. 손을 뻗어 이마를 더듬고, 루크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기며 귓가를 만지작거리는 손가락 끝까지 열이 올랐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는 그대로 피식 웃었다. 남자의 아랫도리에 제 얼굴이 닿도록 달라붙어 배를 핥고 있을 줄이야. 매끄러운 배를 긁어내리던 치아로 드로어즈의 밴드 부분을 마저 끌어 내렸다. 숱이 적은 체모가 드러나며 붉게 잘 익은 성기의 맨질맨질한 면이 드러났다. 루크는 깨끗한 피부색 아래에 코라도 박을 기세였다.

“그때 마침 어떻게 홍보할지 고민 중이었거든요. F1 팀이라도 사야 우리가 자동차 회사처럼 보이려나 했지.”

“이유가 무슨…….”

“그런데 당신이 보였어. F1 드라이버라고.”

“고작 그 이유라고?”

“나름의 운명 같지 않아?”

그 말과 함께 긴 혓바닥을 내민 루크가 기둥 부근을 슬쩍 혀로 핥듯이 건드리고는 웃었다. 요도구가 번들거리는 성기의 긴 기둥 아래 달아오른 고환을 들춰 보던 남자의 손가락이 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 아래에 손가락을 세워 둥글게 굴리듯 움직이는 손끝에 에단의 허리가 들썩였다.

“아, 거기 말고, 읏…….”

“알았어요.”

왼 손아귀로 반쯤 기립한 성기를 감싸 쥔 그는 에단의 표정을 살피며 손아귀를 살살 굴렸다. 터질 듯 달아오른 얼굴과 헤벌어진 채 번들거리는 혀가 움찔대는 입 안까지 눈에 담았다. 옷 안에 갑갑하게 갇힌 성기를 허벅지에 문지르자 에단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두툼하다 못해 터질듯한 앞섶을 본 에단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

루크는 다시 힘을 주어 하체를 문질렀다. 발기된 성기를 쑤시듯 허리를 튕길 때마다 상체의 달아오른 근육이 요동치는 것 역시 신기했다.

에단이 느른하게 눈을 감아 고개를 젖히는 순간, 그는 다시 한번 오른 손가락으로 고환 아래를 파고들었다. 놀랍도록 맨질맨질한 살갗의 살짝 벌어진 회음 부근이 부드러웠다. 그 부근을 살짝씩 쑤셔 주자 다시 아래를 노려보는 눈매가 붉어져 있었다.

“거긴……, 왜. 흣”

“잘 주물러 주고 있잖아요. 이것 봐.”

라며 얄밉게 웃어 보인 루크가 다시 왼손을 주물거리듯 움직였다. 곧게 뻗은 성기의 요도구가 움찔거린다. 생각보다 색이 옅어 벌름거리는 성기를 보던 그의 눈이 다시 음험하게 짙어졌다. 아닌 척해도 회음을 지그시 눌러 주는 손길에 제 성감을 어쩔 줄 모르고 있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허벅지와 길게 이어지는 부근을 꾹 입술로 누른 이가 점령하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발기하다 못해 수납된 방향으로 꺾인 성기는 꺼내자마자 묵직한 무게로 에단의 허벅지에 늘어졌다. 이미 척척하게 젖은 액이 다리 사이를 적시며 올라왔다.

몸 위를 완전히 점령한 루크는 팔을 에단의 목덜미 뒤로 둘렀다. 온몸에 가두어지듯 엉킨 자세가 불편한지 에단은 허리를 뒤틀었다. 그걸 알면서도 팔을 둘러 등을 쓰다듬던 루크는 새삼 손바닥에 눌리는 근육의 결에 정신이 팔렸다. 군더더기 없이 얇은 근육이 붙은 등은 어깻죽지와 마른 허리의 감촉을 부드럽게 손안에 남긴다.

등줄기를 쓸어내리고는 엉덩이를 스쳐 허벅지를 더듬었다. 난생처음 당해 보는 애무에 당황한 에단이 품 안을 벗어나려는 듯 다리를 움직였을 때, 그 사이로 몸을 완벽하게 끼워 넣은 루크가 허리를 움직였다. 근육이 꽉 잡힌 배 사이에 끼인 성기가 서로 뭉개지고 비벼졌다.

“아, 헉…….”

“후우……. 오늘은 비비기만 할 텐데.”

“무거워, 좀. 비켜 봐.”

“그래도 원하는 대로 정신없는 해 줄게요.”

한껏 다정한 위로와 함께 두 개의 성기를 함께 잡아챈 루크가 귀두의 굴곡이 걸리적거리도록 서로 비비며 허리를 문질렀다. 에단은 앓는 신음과 함께 한쪽 팔을 들어 제 눈을 가렸다. 숨을 가쁘게 들이쉬는 코끝과 붉게 번들거리는 입술만이 보였다.

마치 제게 내어 준 것인 양 루크는 입을 벌려 입술을 갈취하듯 핥고 혀를 섞었다. 아래를 치대는 손 역시 더욱 거칠어졌다.

뽑아내기라도 할 듯 거친 손놀림에 혀를 섞고 있던 에단의 호흡이 가빠졌다. 읍, 흑. 흣……. 흐……. 그 숨을 집어삼키며 허리를 놀리던 위보다 아래의 몸짓이 먼저 뻣뻣해졌다.

“이런. 같이 가려 했었는데.”

루크는 입술을 물리며 혼잣말을 속삭였다. 에단은 입술을 짓씹으며 손을 다리 사이로 넣었다. 사정 직전에 자극이 멈춘 성기를 흔들며 눈을 질끈 감았다. 허벅지 안쪽 근육이 질끈 서며 다리를 경련시킨다.

루크는 그런 몸을 시야 아래 두며 무릎으로 양다리를 더욱 벌리며 손을 흔들었다.

“하아. 하. 아. 아…, 흣…….”

빳빳하게 선 성기에서 튄 짙은 정액이 가슴팍과 오목하게 고인 아랫배에 엉겨들고 있었다. 울컥 솟는 정액이 꿀렁일 때마다 에단은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성기를 흔들었다. 다른 눈을 가린 그는 붉은 입술을 벌벌 떨며 사정했다.

“읏, 눈 좀, 돌려……. 저기…….”

“하하. 이걸 어떻게 안 봐요.”

루크는 아랫입술을 살짝 핥으며 시선을 고정했다. 아래에서 어디에 쑤셔 박듯 들썩이던 허리가 멈추자 흐른 정액도 얌전히 아랫배에 고여 든다. 얕은 배꼽의 그늘을 가린 흰 점액질을 본 루크의 시선이 짙어졌다. 정액을 잔뜩 머금은 구멍 같은 꼴이었다.

탁 탁 탁. 제 사정을 위한 루크의 손길이 빨라졌다. 이윽고 왈칵 쏟아질 듯 벌름거리는 요도구를 아랫배에 댄 루크가 목울대를 울리며 몸을 굳혔다. 사정의 후희로 한껏 늘어져 있던 에단은 제 몸 위에서 사정으로 꿈틀대는 남자의 몸짓을 받아 냈다. 숨통이 짓눌렸고 눌린 골반 위로 매트리스가 삐걱거릴 정도로 깊게 쑤셔 대고 있었다. 제 다리 사이에 쑤셔지는 성기는 아랫배를 짓치더니 비켜 내려가서는 고환을 압박했다. 지독한 후희가 몰려온다. 왈칵 토해진 정액이 엉덩이 사이를 적시자 에단은 몸을 뒤틀었다. 움직이던 팔은 깍지가 낀 채로 시트에 눌렸다.

“젠장……!”

“너무 좋아서?”

“하아……. 하.”

“정신은 들죠?”

찐득한 요도구를 만지작거리더니 발갛게 열이 오른 귓가에 이를 세우며 속삭였다.

“내일 기억 안 난다고 하기만 해 봐요.”

협박조였지만 관자놀이를 문지른 입술은 깃털이 스치듯 부드러웠다. 자꾸 얼굴을 간질거리는 머리카락과 입술에 에단은 가슴께가 답답해 몸을 뒤틀었다.

동공이 풀린 채로 가물가물 뜨인 검은 눈동자는 영 정신을 차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에단의 아랫입술을 살짝 핥아 내며 루크가 피식 웃었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너무 그러지 마요. 당신도 내 혀 빨았잖아.”

하며 제 입술을 뻐끔 벌려서는 혀를 내밀어 보인 뒤 윗입술을 가볍게 핥아 올리는 제스처에 에단은 순간 얼이 빠진 듯하다가.

“하…….”

하고는 힘이 풀린 팔을 들어 제 눈가를 거칠게 비비고는 잇새로 중얼거렸다. 잘한 짓인지 더욱 확신이 없어졌다.

한참의 금욕 후 풀린 고삐를 에단도 단 한 번으로 잡아챌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루크와 밑을 비비며 엉켜 있을 생각도 없었다.

거푸 사정한 성기의 기둥이 아려올 지경이 되자 다시 울컥 쏟아져 내린 정액이 허벅지 안쪽에 흘러내린다. 턱 끝까지 찼던 숨을 내쉬기 위해 고개를 왼쪽으로 틀었던 에단은 창밖의 어둠을 노려보았다. 축제의 잔열마저 가신 밤하늘이 새까맣다.

목울대를 할짝거리던 입술이 아래로 내려가자 상대의 두툼한 어깨를 밀었다.

“이따위로 할 거면 저리 비켜.”

“하. 너무하네…….”

어깨에 이마를 기대고 있다가 고개를 들자 푸른 눈동자가 여전히 사정의 여운에 젖어 있는 것이 보인다. 에단의 허벅지 사이로 아직 단단하게 심지가 선 성기를 문지르던 그는 눈을 지그시 내리깔며 다시 허리를 움직인다. 미끈한 허리와 장골 아래로 두툼한 허벅지가 꿈틀거렸다.

긴장이 풀린 남자의 나른한 얼굴에 시선을 빼앗겼던 에단이 욕설을 속으로 씹었다. 이제는 저 얼굴이 저런 표정을 지어도 한 대쯤은 거뜬히 칠 수 있을 것 같다.

일어나기 위해 몸을 틀자 그 뒤를 덮쳐 모로 누운 루크가 다시 다리 사이로 허벅지를 끼워 넣었다. 이번에는 옆으로 누워 서로의 성기가 질걱이는 소리와 함께 비벼지는 자세였다. 다시 근질거리며 올라오는 성감과 함께 두 사람의 성기가 완연한 모습을 되찾았다. 검붉게 서 제 배 위를 오가는 루크의 성기를 에단이 잡아챘다. 손안에서 맥박 치는 두께감을 서툰 손놀림으로 만지작거리자 등골이 조여드는 쾌감에 루크의 눈이 찌푸려졌다.

순간 반사적으로 상대의 아랫배를 끌어안으려 했던 루크는 대신 옆구리를 살며시 쥐었다. 이대로 무게로 짓눌러 끝이 없이 싸게 하고 싶었지만…….

성기를 쥐고 있던 손아귀의 힘이 풀린다. 상체를 일으켰던 루크는 깜빡이다 못해 감기는 에단의 눈꺼풀에 위를 누르듯 키스했다. 제 욕망이 혹시라도 그의 눈에 비치어 보일까 봐.

다음 날 아침. 에단은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낯설고 광활한 천장을 응시하며 낮은 목소리로 뇌까렸다.

“젠장.”

어둑한 방을 뚫고 커튼의 이음새로 새어 들어오는 강렬한 빛이 천장을 가로지른다. 그는 푹신한 침대에서 억지로 몸을 일으킨 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그 한 줄기 빛을 향해 다가갔다. 커튼을 젖히자 자신의 객실보다 높은 고도의 정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조금 더 높게, 조금 더 멀리 보이는 모나코 몬테카를로의 푸른 항구에는 손가락만 한 요트들이 줄지어 정박한 채 오르내리는 이들을 품어 준다. 저 너머 수평선,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마저 바라보는 동안 에단은 벌어진 가슴팍에 느껴진 햇살에 무심코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잇자국이 남은 가슴과 배 부근을 보고 다시 중얼거렸다.

“망했네.”

그리고 다시 뒷걸음질 쳐 차마 침대에 앉지는 못하고 그 옆의 의자에 간신히 엉덩이를 붙였다. 이번에는 바닥에 엉켜 떨어진 옷가지가 발에 차인다.

그 구겨진 꼴을 망연한 표정으로 보았다. 점점이 떨어진 셔츠와 팬츠. 그리고 엉킨 상대의 옷까지. 다시 무슨 말이든 중얼거릴 듯 그의 입술이 달싹인 순간이었다. 저 너머 닫혔던 문이 열리자 공간을 채우고 있던 수증기와 깨끗한 향취가 물씬 풍겨 왔다.

그와 함께 걸어 나온 루크는 젖은 머리카락을 털며 에단에게 한마디 했다.

“또 망했다고 말하면 가만 안 둘 겁니다.”

에단은 그를 바라본 순간 더 크게 외치려던 무슨 말을 잊고야 말았다.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더듬거리던 입술이 겨우 똑바로 된 질문을 뱉어 냈다.

“혹시 관음증 같은 거 있어요?”

“내가 관음증이면 인류에게 큰 선물이지.”

하며 양팔을 당당히 벌려 보이는 태도에 에단의 표정은 더더욱 형용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걸음에 따라 여미지 않은 로브의 벌려진 가운데로 보이는 넓적한 허벅지와 매끄럽게 근육이 붙은 치골, 그리고 묵직하게 늘어진 물건은 수풀 사이에서 그새 심이 선 듯한 크기였다. 에단은 눈을 돌리면 지는 것만 같은 유치한 기분이 되어 그의 가슴팍 위 조각 같은 얼굴을 노려보았다.

그 뜨거운 시선에 루크는 방만하게 펼쳐 보았던 로브의 끝을 대충 매듭지으며 웃었다. 더할 나위 없이 밝은 웃음이라 에단의 마음은 더욱더 심란해졌다.

루크는 그런 에단의 표정을 살피며 한탄했다.

“눈 뜨자마자 모닝 키스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망했다는 말만 중얼거리는 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

“나도 상처받을 줄 아는 사람이야.”

모닝 키스? 웃기지도 않은 소리였다. 레이스가 끝난 들뜸과 술기운, 그리고 도무지 알 수 없는 어떤 분위기에 휩쓸려 팀 오너와 일을 치고 일어난 이 훤한 아침에. 망했다는 말 이상으로 이 상황을 설명하기 쉬운 말이 또 있을까.

에단이 또 내뱉을 말이 뻔히 보였던 루크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 순간까지도 에단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씻고 와요. 나가게.”

“지금 같이 나가자는 겁니까?”

“뭐 어때요. 남들은 우리가 뭐 했는지 모를걸. 그냥 샴페인이나 더 따다가 널브러져 잔 줄 알 겁니다.”

어젯밤 에단의 끊어진 정신 속에서 드문드문 이상한 말만 지껄이고 있었던 루크는 오늘 아침따라 더할 나위 없이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 간극에 눈이 부신 듯 눈살을 찌푸리고만 있던 에단은 더듬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습. 일단 뒷수습을 해야 했다. 나가서 조지에게도 말을 전해야 했고. 어쨌든, 무엇이든.

빌어먹을.

욕실의 샤워 부스에 들어간 그는 결국 머리를 샤워 부스의 벽에 쿵 하고 들이박았다. 미쳤다. 미쳤던 것이 분명했다.

옷을 주워 입고 얼떨결에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내려온 뒤 에단이 방으로 돌아가려 뒤돌아섰다. 루크는 그 퇴로를 차단하듯 자연스레 막아서며 말했다.

“아침 식사 두 사람분 준비해 두라고 했어요.”

“괜찮아요.”

“배고플 텐데. 어제도 뭐 안 먹고 샴페인만 마셨잖아요.”

그건 또 언제 본 걸까. 안 그래도 빈속이 점점 고통스럽게 조여 오고 있었다. 이것이 허기인지, 아니면 어젯밤 친 사고로 인한 심적 고통인지 도무지 구분할 수 없지만.

대답이 늦던 사이 팀 크루 중 한 명이 함께 나온 두 사람을 정면에서 마주쳤다. 딱딱하게 굳은 에단의 얼굴을 본 팀 크루는 측은한 어조로 물었다.

“에단. 괜찮아? 얼굴이 안 좋네.”

“죽겠네요.”

“거절 안 하고 마실 때 알아봤어.”

다행히 팀 크루는 에단의 표정이 어젯밤 과음으로 인한 결과일 것이라 추측했다. 그사이 호텔 직원이 다가와 자연스럽게 루크를 인도했고 에단 역시 그 뒤를 얼떨결에 따라가게 되었다.

전날 파티의 여운이 느껴지지 않는 호텔의 로비를 지나자 마치 예약이라도 된 듯 항구와 가장 가까운 테라스에 차양이 쳐진 자리가 비어 있었다. 등나무를 꼬아 만든 의자를 끌어당겨 앉은 루크는 물수건에 손을 닦고는 태연하게 주문했다.

에단은 그 뻔뻔스럽고 반질한 낯이 기가 막혀 눈을 뗄 수 없었다. 맞은편에서 주문은 물 흐르듯 이어지고 있었다.

“이쪽은 따뜻하게 데운 수프도 가져다줘요.”

“양송이수프, 감자수프, 단호박수프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떤 것으로 가져다드릴까요.”

“에단. 어떤 게 좋아요?”

거기에 고심하는 꼴을 보다 못한 에단이 대충 손을 들며 말했다.

“아무거나 가져다줘요.”

대강의 주문에도 고개를 숙여 보인 직원이 물러난 뒤에도 루크는 연신 웃는 낯이었다. 꽤나 가증스럽게 걱정스러운 얼굴을 해 보이기도 했다.

“몸은 괜찮아요?”

“지금 어제 고작 그거 했다고.”

“쉿.”

순간의 화에 높아진 목소리를 여유롭게 받아넘기며 루크는 긴 손가락을 들어 입술의 한가운데를 눌렀다. 그 모습을 보고 어제 가까워지던 입술이 떠오른 에단은 눈앞이 아찔해지는 환상을 느꼈다.

“레이스 후에 드라이버들 체력 소모가 대단하다고 들어서 물어본 겁니다.”

“항상 그러니 괜찮아요.”

“그런 몸 상태로 거기까지 하다니. 어젯밤 좋았어요.”

에단이 손을 찍어 버리기 위해 포크를 거꾸로 쥐려던 찰나, 직원이 수프와 샐러드를 서빙하러 왔다. 그릇이 테이블 위에 올려지는 걸 바라보던 루크는 떠나간 직원의 등에 시선을 잠시 돌렸다가 속삭이듯 대답했다.

“뭐 어때요. 가볍게 생각해요.”

“그래. 가볍고 별거 아닌 일이죠. 아무것도 아니야.”

제가 한 말을 그대로 읊어 준 것뿐이었는데 루크의 눈썹이 과히 기울었다. 에단은 그런 상대를 내버려 두고 일단 허기진 속이라도 달래야겠다는 생각에 수저를 들어 수프를 떴다. 수저가 몇 번 움직이는 동안 나름대로 마음을 갈무리하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어쨌든 실수는 맞잖아요. 갑자기 기분이 거기까지 동해서……. 후우.”

“그럴 기분은 진작 들었었다니까.”

“그리고 어젯밤이 아니었다면 그러다 말았겠죠.”

“글쎄. 가정을 해 보죠. 당신이 어제 파티에서 운명의 사랑을 만났다. 뭐 그러면 내가 백 번쯤 양보해서 넘어가 줄 수 있긴 하지.”

수저를 움직이던 에단은 어디까지 지껄이나 싶어 눈을 들었다.

“어제 한눈에 보자마자 내 요트 갑판 끄트머리에 둘이 올라가서 타이타닉을 찍을 정도로 서로 사랑을 한다. 그럼 내가 아주아주 신사답게 물러날 수도 있었단 말이죠. 뒤에서 조금 눈물은 찍고 혼자 나를 달래야 하는 밤이 며칠이겠지만.”

“대체 뭐라는 거야.”

“하지만 어차피 그런 사람도 없었잖아요.”

“만나지 못하게 했던 게 대체 누구더라.”

“그런 와중에 나랑 잠깐 비비는 게 뭐가 그렇게 나쁜 일이라고 날 그렇게 애타게 한 거야?”

길고 긴 하소연의 마무리를 들은 에단은 차라리 웃어 보인 뒤 고개를 숙였다. 정말 안 맞는다. 그냥 그 생각뿐이었다.

그때 호텔 직원의 인기척보다 훨씬 투박한 걸음이 들렸다. 에단은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가 긴장했다.

조지는 가까이 다가와 루크를 보고는 조금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인사한 뒤 에단의 곁에 가까이 서 물었다.

“너 어제 어디 갔던 거야? 룸에 없었지? 한참 찾았잖아.”

“그게…….”

어렵사리 변명을 궁리한 에단의 어색한 목소리가 시작된 순간, 테이블의 너머에서 루크가 의자를 끌어 만든 소음으로 시선을 모았다.

“제가 어제 에단의 첫 포디움 축하 겸 앞으로 팀을 어떤 방향으로 지원해야 할지 알려 달라고 부탁했었습니다. 함께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하다 보니 제 객실에 그대로 머무르게 되었네요. 늦게라도 연락해야 했는데 미안하게 됐어요.”

“아닙니다. 팀의 지원은 지, 지금도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로요.”

자연스레 시선과 관심을 끌어낸 루크는 의자를 밀친 김에 자리에서 일어나 조지에게 손을 내밀어 보였다. 황송한 듯 머뭇거리던 조지는 그 손을 외면하지 못한 채 다가가 바로 붙잡았다. 마치 여느 사업 설명회와 같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아침에 가운을 한껏 방만하게 벌리고 돌아다니던 이가 반듯하게 슈트를 차려입고 조지를 홀리는 모습을 에단은 생소한 눈길로 노려보다시피 했다.

“조지 맞죠? 에단에게서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에단을 잘 부탁해요.”

악수를 마치고 다시 앉은 루크는 조지의 시선을 피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에단은 입 모양으로 ‘당신이 뭔데 날 부탁해?’라는 말만을 벙긋거리며 남겼다. 하지만 소리 없는 아우성은 두 사람의 대화에 묻혔다.

“에단의 생활 전반뿐만 아니라 계약까지 일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에단에게 들어올 광고나 여타 다른 계약 관련으로 도움이 될 사람을 한 명 소개할까 하는데요. 크리스라고 제가 법률 자문을 구하는 친구입니다.”

“어……. 그런 부분까지 팀에서 도움을 준다면 저는 더할 나위 없지요. 감사합니다.”

최소한 대화 후 알겠다 할 줄 알았던 조지는 냅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에단은 그 순간 나온 계란프라이를 받아 듦과 동시에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번갈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화가 그새 끝났는지 조지는 에단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한껏 밝아진 표정이었다.

“다음에는 문자 하나만 남겨 줘. 어제 걱정 많이 했었어.”

“아. 그래. 미안. 이따 이야기할게.”

“응. 내가 방해되었겠네. 일 이야기 중인지도 모르고. 짐 챙겨 두었으니 연락해.”

“아니 방해까지는 아니야. 일단 알았어.”

한껏 변명을 늘어놓을 준비가 무색하도록 조지는 밝은 표정으로 테이블 사이를 가로질러 지나갔다. 에단은 멀어지는 조지를 배웅하듯 보는 사이 모든 테이블마다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의 손짓이 느리거나, 혹은 멈춰 있는 것을 보았다. 어느 테이블은 대놓고 곁눈질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시선이 모여들어 있었던가. 새삼 어색함에 오른손으로 왼 손등을 공연히 만지작거리던 에단을 향해 루크가 조금 허리를 굽혀 테이블 위로 손을 뻗었다. 작은 소금 병을 쥔 그가 에단의 귓가에만 스치도록 짧게 속삭였다.

“변명은 이 정도면 되었을 거고. 그럼 우리 이야기나 계속하죠.”

“무슨 이야기?”

뭐, 어제 어쨌느니 저랬느니 복기라도 하자는 것일까. 어느 누구의 말대로 이미 벌어진 일에 큰 신경을 쓰지 않기로 결심한 에단은 프라이에 소금을 툭툭 친 뒤 포크를 들었다.

이번에는 감독이 찾아왔다. 루크에게 인사한 그는 맞은편에 앉은 에단에게는 조금 더 편한 어조로 물었다.

“아침부터 뭐 하고 있어?”

에단이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루크가 요령 좋게 대꾸했다.

“아이스 브레이킹. 서로의 장점을 꼽아 보는 중입니다. 감독님도 같이 할래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떨떠름하게 대꾸하는 감독의 시선이 아직 희게 낯빛이 질린 에단을 향했다. 마치 수고하라는 듯 고개를 숙여 보인 감독마저 바쁘게 테이블을 떠났다.

거듭 찾아온 이들마다 루크가 먼저 말을 건넸다. 덕분에 에단은 어제의 축하를 몰아 받는 것 이외에 딱히 다른 할 말이 없었다. 마지막에는 에단보다도 안색이 희게 질린 크리스가 다가와 루크를 다그쳤다.

“당장 일어나. 네가 아침부터 느긋하게 식사나 즐길 일정인 줄 알아?”

“언제 왔어? 못 올 거라고 들었는데.”

“네 덕분이다. 아 참. 에단 한. 어제 2위 축하해요.”

그사이 분주하게 축하 인사를 챙기는 크리스와 손을 얼떨결에 마주 잡은 에단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독촉에도 루크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포크를 든다.

“나 아직 식사 못 했어.”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칼질만 된 접시를 손가락질한 루크는 크리스의 발작 같은 재촉 사이에서도 꽤 우아한 몸짓으로 아침 식사를 계속했다.

커피로 입가심을 하는 마지막까지 두 번 더 사람들이 더 테이블을 찾았다. 에단은 살면서 이렇게 혼잡한 아침 식사를 한 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찾아온 린드베르그 레이싱의 스폰서 의뢰인까지 돌아서자 루크는 단추를 열어 두었던 투 버튼의 재킷을 여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다 처리했으니 가 볼게요. 연락해요.”

팀 오너가 드라이버에게 연락한다는데 그 말을 딱 잘라 거절하기에는 듣는 귀가 너무 많았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단둘만 있는 순간이 편하다. 에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소식은 다 듣지만 그래도 순위는 눈으로 보는 게 낫네요. 나 다음에 언제쯤 올 수 있지?”

“너는 두 번 다시 직관할 시간이 없을 거다.”

이를 가는 크리스의 말에도 루크는 개의치 않았다.

“아마 헝가리쯤에서 볼 겁니다.”

다행히 바로 다음 그랑프리에는 오지 않는 모양이다. 에단은 한결 가벼운 표정이 되어 일어나 그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악수를 위해 붙잡은 손바닥 안을 은밀히 엄지로 간질이듯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 감각에 에단의 눈썹이 크게 움찔거린 순간, 금발의 미남은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돌아섰다.

걸어가며 자연스레 흔들리는 루크의 반듯한 손과 방금 놓은 제 손을 번갈아 보던 그는.

“하.”

하는 기가 찬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야 허기가 제대로 돈다. 깨작거리듯 먹고 있던 흰 빵을 쥐어 수프에 푹 적셔 우물거리던 그는 더 이상 테이블에 와 어제를 묻지 않는 팀 크루들과 화창한 날씨를 지켜보았다. 접객 능력이 좋은 호텔 직원은 그의 빈 물잔을 소리 없이 채우며 다시 멀어진다.

그래도 충동적인 원 나잇 후 들던 저조한 기분에 비해서는 생각보다 일이 잘 수습되었다. 루크는 능글거리는 태도로 조지와 주변 모든 이들에게 어젯밤의 알리바이를 설명했고 질척거리지 않는 마무리로 담백하게 떠나가기도 했다.

빵을 오래도록 씹던 에단은 그것을 꿀꺽 삼키면서 순간 든 감정에 찝찝한 표정이 되었다.

생각보다 괜찮긴 한데, 대체 이 기분은 뭘까.

***

루크와의 연락은 계속되었다. 대부분이 시시콜콜한 연락이었다. 식단을 보내면 그쪽도 가끔 식단을 보냈고 일정을 물어봐 답장하면 자신의 일정도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날의 그 일을 연상하는 단어는 없었다. 긴장하던 반응이 무색하도록 말이다.

이제는 더 이상 안 하려나.

한 번쯤 떠오를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늘 그 질문을 받는 대상이었던 에단은 이 감정이 퍽 구질구질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이런 종류의 연락을 받으면 최대한 상냥하게 대해 주겠다고 결심도 했다. 이런 감정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솔직함과 용기가 필요한 일로 느껴졌다.

대신 새로운 이로부터 연락이 오기는 했다. 레드불링의 첫 연습 주행을 대비하기 위해 서킷을 직접 걸어 기억을 복기하던 중이었다. 피트에 새로이 돌아다니는 이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남자는 마른 몸에 키가 훌쩍 컸으며 다소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리고 그 예민한 모습이 이해될 정도로 매우 피곤해 보였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포뮬러 원에 대해 꽤 지식이 있어 보였고 관심 역시 충분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지난번 모나코에서 루크를 다그치던 남자는 미캐닉에게 낮은 차체에 대해 몇 번이고 질문을 하다가 피트에 들어온 에단에게 반색하며 다가왔었다. 덥석 내민 손에 마주 악수하자 남자는 손을 몇 번이고 흔들었다.

“에단 한. 내 은인이 여기 있었군요.”

혹시 이 남자의 외국어가 어색해서 잘못 들은 것일까? 에단은 다른 대꾸 없이 흔드는 손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남자는 눈 밑이 푹 꺼져 창백한 안색이었지만 눈빛만큼은 반짝였다.

“크리스입니다. 우리 그때 봤죠? 루크가 보냈어요. 법률 자문을 원한다면서요.”

“네. 원한다기보다는 필요하다면 도움을 주겠다고 들은 것이지만.”

“고마워요. 덕분에 당분간은 가벼운 계약서나 보면서 포뮬러 원을 즐기는 게 내 업무가 되었거든요. 그렇다고 대충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광고 계약이 그래도 온갖 환경 규제와 관세를 얽어 둔 공장 설립보다는 쉽거든요.”

진심으로 즐거운 듯 연신 지껄이던 남자는 곧이어 들어오는 리암을 보고는 에단의 어깨를 두드리며 멀어졌다.

“마음에 안 드는 언론이나 반응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해요. 대신 고소해 줄게요.”

마치 서비스로 빵 하나 더 얹어 주는 듯한 가벼운 말투였다. 이윽고 리암에게 다가가 인사말을 나누던 둘은 이내 빠른 어조의 프랑스어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프랑스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에단은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렸다. 신경 써 주어 고맙다는 문자를 남겨야 할까. 고민만 하다가 결국 휴대폰을 조지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오히려 그날 이후 문자를 하는 것이 더욱 불편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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