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섹스 ~ 우정 음치에 아웃사이더인 내가, 반에서 제일 인기 있는 그녀와 친해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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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게(懺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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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이거, 써도 돼
무릇 이 세상의 살아 있는 모든 것에게는 생명을 영위하는 장소가 정해져 있다.
민물고기를 바다에 풀어 놓으면 조만간 죽음에 이르는 것처럼, 어류라고 하는 범주만 따져서 그 생태를 하나로 묶어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점은 우리 인류도 마찬가지일 텐데도,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의 태반을 같은 공간에서 보내라고 강요한다. 뭐, 분명 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역시 좀 난폭한 시스템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학교라고 하는 하나의 사회 속에는 민물고기나 바닷물고기만이 헤엄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기괴한 심해어나 교활한 문어와 대치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런 식의, 일종의 타 문화 커뮤니케이션이 가치관에 다양성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점과, 사회라고 하는 큰 바다에서 둥지를 틀 때 필요한 대인능력을 효율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곳이 학교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솔직히 말하자면, 역시 숨이 막힌다.
같은 시대의 같은 지역에서 태어나 자랐을 텐데, 마치 외계인처럼 느껴지는 동급생이 적지 않다. 상대방 쪽에서도 분명 나를 그렇게 생각하리라.
오전 마지막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혼자서 도서실로 가려고 하는 나의, 반에서의 입장은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창가 자리에서 교실을 횡단해 가니, 복도 쪽 자리에 앉은 한 사람의 여자 주위에 몇 명의 남녀가 모여 있었다. 표정이 별로 없는 나하고는 정반대인 그녀의 자연스러운 웃음과 언동은 동성·이성을 상관하지 않고 사람을 끌어들인다.
“마리~? 너 아까 수업 때 잠깐 졸았지? 어젯밤에 애인이랑 재미가 좋았나 보네~ 응?”
그녀에게 말을 건 여자에게서는, 거리낌 없이 말을 걸면서도 자신도 이렇게 되고 싶다고 하는 동경의 심정이 느껴진다. 그녀의 이성이라는 점을 의식하지 않게 하는 털털한 분위기는 남녀 모두에게 거리감을 가깝게 만든다. 하지만 남자들의 눈빛 안쪽에서는 명확하게 그녀의 외모에 사로잡혀 있다는 본심이 느껴진다.
그런 그들 옆을 지나쳐가도 나라는 존재를 알아차리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만 빼고.
그녀만이 담소를 나누면서도 나를 흘끗 보며, “친구에게 빌린 DVD가 재미있었거든~.” 하고 대답했다.
나는 그대로 교실을 나와서 도서실로 향했다.
사람에게는 각자 살아가기 적당한 장소가 있다. 세상 물정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그 철학이 나에게 뿌리박혀 있었다. 좋게 말하면 타인을 존중하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도가 지나친 개인주의이다.
결코 인간이 싫은 것이 아니다. 그저 주위를 둘러보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타인과 어울리지 않아도 좋지 않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케이스가 종종 있다.
인맥이 넓어진다고 해서 나쁠 일은 없겠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귀찮음을 상상해보면, 손익은 비등비등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나 자신이 외톨이라는 사실을 정당화시키는 이론 무장이었다.
원래부터 고독을 싫어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점은 사실이다. 유아 시절부터 그랬다고 아버지가 증언해준다.
단, 옛날부터 친구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었고, 이렇게 삐뚤어진 인간이 된 것도 이유가 있다.
그것을 트라우마라고 표현하는 것은 좀 과장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기억도 희미하다. 내가 억지 이론을 내세우면서까지 친구라는 관계를 멀리하고, 학교에서 무미무취의 존재가 되기 위해서 항상 주의를 기울이게 된 원인.
독서를 중단하고, 천장을 올려다본다.
“뭐더라…….”
유아원의 모래밭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 순간 눈앞이 새까매졌다. 눈꺼풀이 따뜻해지고, 무언가가 매끈매끈했다.
“누~구게?”
누군가가 등 뒤에서 두 손으로 내 눈을 가린 것 같다.
학교에서 붕 떠 있기만 한 게 아니라 이미 공기가 되어 있는 나에게 이런 장난을 칠 인간은 한 사람밖에 없다.
하지만 친구라는 존재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이럴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이 정답인지를 모른다. 그래서 그냥 이름으로 대답한다, 라는 아마도 가장 시시한 반응을 보이려고 하자, “앞으로 5초 내에 대답이 없으면 눈썹이 몽땅 뽑힙니다.” 하고 장난치는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온다.
“스즈네. 그건 좀 봐주라.”
“얘, 츳치—. 친구 이름 정도는 바로 대답하라고. 내가 다 애잔하다.”
시야가 열리고, 내 어깨에 아주 자연스럽게 팔꿈치가 올라왔다. 내 얼굴 바로 옆에 그녀의 얼굴이 나란히 있다. 긴 머리카락이 내 뺨을 간질였다.
“머리카락이 닿는다만.”
나는 시야를 책상에 놓아둔 책으로 향한 채 그녀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러자 그녀는 머리카락 끝을 집어서 내 입 주위로 내밀었다.
“간식으로 한 가닥 어때? 샴푸를 바꿨는데 사과 맛이 좀 나지 않아?”
물론 그녀가 평소에 하는 농담이라고 이해한다.
“단백질이라면 아침으로 낫토를 먹었으니까 충분해.”
하지만 나는 자신의 행동원리를 굽히지 않는다. 즉, 위트나 유머를 곁들이지 않고, 그저 사실만 간결하게 입에 담았다.
대다수의 사람은 내 말본새가 농담이 아니라, 그저 이런 성격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떨어져 나갔다. 잰체한다고 여기든가, 이상하다고 여기든가, 둘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점이 재미있는지, 지금도 어깨에 올린 팔꿈치로 내 뺨을 빙글빙글 누르면서, “사과 맛이라면 비타민도 들어있지 않을까? 시식 좀 해봐.” 하고 유쾌하게 입꼬리를 치켜 올리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그 실험이 성공했는지 입증할 수 있는데?”
“내일이 되면 츳치의 피부에 윤기가 흐를 거야.”
그렇게 말하며 웃는 내 유일한 친구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스즈네 마리(鈴音真理).
그녀는 “이히히.” 하고 웃으며 팔꿈치로 내 뺨을 짜부라뜨리더니, “뭐 읽어? 에로 책? 에로 책이지? 츳치도 남자였네. 벽창호인줄 알았는데 그런 것에 흥미를 가지는 나이가 되다니, 내가 다 감개무량하다.” 하고 히죽거렸다.
이대로 대충 상대했다가는 장난이 가속된다. 나는 지난 2년간을 통해서 그녀랑 접하는 방법을 완벽하게 몸에 익혔다.
팔꿈치를 살며시 뿌리치고 그녀 쪽으로 몸을 돌린다.
“일단, 이게 이상한 책으로 보인다면, 스즈네의 머리는 사춘기를 지나서 발정기라는 소리겠지.”
그렇게 말하며 일단 내가 읽고 있는 책의 표지를 보여준 뒤에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나는 옛날부터 성적인 것에 흥미가 있었어. 오히려 그쪽 방면으로는 발육이 빨랐고, 그리고 깊이 아는 편이야.”
나는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한다. 성에 관심을 가지는 거야 당연한 일이니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그녀는 예전부터 나의 그런 반응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츳치는 거유파였지. 진짜 웃겨.”
2년간이라는 얕은 역사이기는 하지만, 그녀와는 마치 유아기 때부터 친교가 있었던 것처럼 마음이 잘 맞았다.
스즈네가 내가 내민 책을 손에 들더니, 페이지를 펄럭펄럭 넘겼다.
“「각본가의 길」, 이네. 지난번에는 영화 소품에 대해서 조사했지? 좋겠다, 츳치는. 좋아하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명확해서.”
“아직 모색 중이야. 스즈네는?”
내가 묻자, 스즈네가 살며시 자기 앞에 책을 반듯이 놓는다. 자잘한 몸짓 하나하나에서 그녀의 기품을 느낀다. 여기는 도서실이니까 확실하게 목소리를 죽이고 말하는 것도 그런 면이다. 그녀는 그 언동으로 봐서는 직감과 본능에 더 가까운 인간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이지적이고 합리적이다.
“일단은 대학에 갈까 하는 정도.”
“공부도 잘하는데 좋은 대학을 노려보지 그래?”
스즈네는 학교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라, 무슨 일이든 간에 요령이 좋다. 역으로 말하자면, 무언가 하나에 파고들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명확한 목적도 없는데 공부를 열심히 할 만큼 근면한 인간이 아니거든.”
그녀는 내 옆자리에 앉더니, 연체동물처럼 힘을 빼고 책상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 상태에서 얼굴만 이쪽으로 돌린다.
“츳치, 오늘 한가해? 새 레저 시설 같은 게 생겼잖아. 곧바로 거기 초대권 같은 걸 받았거든. 2인분인데.”
“평소에 노는 친구들은?”
“모두 소개팅.”
“스즈네도 소개팅이나 가면 좋잖아?”
“나, 애인이 있을 때는 절대로 안 가니까.”
“그럼, 그 도우지마(堂島) 씨랑 놀러 가면 되잖아.”
도우지마 씨는 스즈네의 연인이다. 우리보다 세 살 연상이고, 남자인 내가 봐도 세련된 사람이다.
호리호리한 몸에 키가 큰 스타일은 시크한 색의 카디건이나 재킷이 아주 어울린다. 이름은 모르지만 멋진 모양의 자동차도 타고 다닌다.
스즈네가 나를 친구라고 소개해줘서, 몇 번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아주 호쾌하면서도 겸허한 말투에, 교양도 있다.
외모도 태도도 모두, 스즈네와 그가 나란히 걸어가고 있으면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이 된다. 왕자님과 공주님. 최고급 꽃병에 꽂혀 있는 고령(高嶺)의 꽃 같다.
“오늘은 바쁘대.”
“스즈네랑 도우지마 씨도 벌써 1년이 넘었구나.”
“그러네. 진짜로 세월 군은 쏜살같아. 다시 봤다니까, 세월 군. 올림픽에 나가면 좋을 텐데.”
“처음에는 꽤 긴장했지? 도우지마 씨랑 데이트할 때.”
사귀기 시작했을 때는 반쯤 농담으로 ‘츳치, 데이트 같이 하자.’라고 제안 받은 적도 있었다. 스즈네는 그 외모나 성격으로 봐서 연애경험이 나름 있는 것 같았지만, 도우지마 씨는 내가 보기에도 스타일리시한 어른 남성이라서, 그런 소리를 하는 그녀의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익숙해져서 사이좋은 연인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귀여울 때도 있었습죠. 지금은 전혀 긴장감이 없지만.”
그리고 스즈네는 책상에 엎어진 채로 내 소맷부리를 살짝 집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시선만으로 올려다봤다.
“……그때는 고마웠어. 츳치의 응원, 진짜로 든든했어.”
1년 전. 나는 처음으로 친구의 연애상담이라고 하는 이벤트를 경험했다.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나는 그저 그녀의 등을 떠밀어 준 것뿐이다.
스즈네가 어디에 내놓아도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점은 틀림없어서 승산이 높은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마음이 편했다. 그녀에게 부탁을 받고 거절할 수 있는 인간은, 나 말고는 그다지 없을 것이다.
그녀는 그때 생각이 나는지 킥킥 웃으면서, 내 소매를 가볍게 잡아당겼다.
“그때 츳치가 해줬던 응원 방법, 지금 생각해도 웃겨.”
“뜻밖이네. 딱히 이상한 말을 한 기억은 없는데.”
“‘스즈네는 객관적으로 보면 얼굴 생김새는 교내에서도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반듯하고, 성격도 같이 있어도 편안하니까 일단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라고 하셨지요.”
“아무런 문제도 없잖아. 내 나름 만점짜리 응원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스즈네는 상체를 일으키더니, 히죽거리면서 내 뺨을 두 손으로 부드럽게 꼬집었다.
“그 직후에 ‘뭐, 전혀 내 타입은 아니지만.’이라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는데요?”
“사실이니까 별 수 있나.”
그녀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면서 내 뺨을 어루만지는 것 같은 촙을 휘둘렀다.
“그때는 거짓말이라도 ‘나도 귀엽다고 생각해.’라고 했어야지.”
“만약 다음에 할 일이 있다면 선처해주지.”
“그래서, 오늘 한가해?”
“아쉽게도 예정이 있어.”
“쳇. 어쩔 수 없네. 엄마랑 갈까.”
스즈네는 일어나서 내 바로 뒤에 서더니 어깨를 주무르면서 투덜거린다.
“아, 아, 아깝네. 내 수영복 차림을 볼 수 있을 건데.”
“『나도 스즈네의 수영복 차림은 귀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쉽구나.』”
“그게 선처한 거야?”
“곧바로 적용해봤어.”
스즈네는 “아하하.” 하고 즐겁게 웃으면서, 등 뒤에서 내 어깨를 툭툭 때리고, “뭐, 여름이 되면 진짜로 함께 가자. 마지막 여름방학이고 하니.” 하고 당부의 말을 남겨 놓고서 도서실을 떠나갔다.
그녀가 사라지자 갑자기 실내가 따분한 분위기로 가득 찼다.
그에 더해서, 나를 향한 싸늘한 시선 몇 개를 느낀다. 그 전부가 남자들이 보내는 질투의 시선이다.
스즈네가 아무리 누구와도 격의 없게 지낸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간 이야기를 할 때 정도다.
분방하게 보이는 그녀도 가정교육이 좋았던 덕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런 것인지, 이성에 대한 몸가짐은 평균 이상으로 완고하다.
그런 스즈네지만, 마치 누나와 남동생처럼 나에게만은 소탈하게 신체 접촉을 해온다.
외부인이 교문에서 기다리다가 고백을 해올 정도인 스즈네가, 학교 안에서도 반 연락망에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이 잊힐 정도인 나에게, 그러는 것이다.
그 행동에 연애 감정이 섞여 있지 않다는 것은 옆에서 봐도 명확했기에, 다른 남자들의 질투는 겨우겨우 살의(殺意) 바로 앞에서 멈춰 주고 있다.
연인인 도우지마 씨에게도 이렇게까지 소탈하게 바디터치를 하지 않는 것 같으니, 나와 그녀의 거리감은 어떤 의미로는 연인 이상으로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내가 그녀에게 특별한 남자여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그녀에게 있어 가장 ‘특별’로부터 먼 존재인 것이다.
그것을 설명하려면 그녀와 처음으로 친해졌을 때부터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그녀와는, 이 학교에 입학해서 같은 반이 되고 여름방학 바로 전의 자리 바꾸기에서 이웃이 된 일이 계기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책상을 옆으로 끌고 와서 자리에 앉을 때, 그녀는 입을 열자마자 첫 마디로 나를, “츳치. 잘 부탁해.” 하고 별명으로 불렀다.
내가 제창하는 ‘각각의 사람은 생식지에 차이가 있다’라고 하는 지론이 다시 한 번 확실도를 높이는 순간이었다.
“츳치가 뭐냐?”
내 질문에 그녀는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뭐라니? 츠치야(土屋) 군이니까 당연히 츳치지.”
무엇을 감추랴, 나와 그녀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것이 이때였다. 그런데도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역시 나하고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
하지만 그 친근하게 구는 태도가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분명 그녀가 나와는 달리, 타인을 보는 눈에 생식지의 차이 같은 필터를 씌우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금에 와서는 생각한다.
그녀가 속한 주된 교우관계는 소위 갸루라고 불리는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그녀는 보다 더 세련된 풍모와 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내 히에라르키에서는 틀림없이 최상위에 위치해 있다. 게다가 스즈네 마리는 그 그룹 안에서도 남들보다 한층 더 눈에 띄는 존재였다.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그녀는 매우 귀여운 것이다. 눈꼬리가 살짝 처진 커다란 눈동자는 왠지 좀 어른스럽고 요염하게 보인다. 그런, 약간의 풋풋함도 남아 있는 색향(色香)은 얼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손가락은 길면서도 가늘어서, 손을 흔들기만 해도 보기 좋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흩뿌리는 향기는 다른 여자들과는 분명하게 격이 달라서, 페로몬이라고 불릴 무언가를 흩뿌리고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보통 몸집에 보통 키인데도 몸매가 아주 좋대, 하고 남자 화장실에서 동급생이 콧김을 뿜으며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본질적인 매력은 외모가 아니다.
그녀는 아무튼 누구에게나 솔직하게 대한다. 자신을 전혀 꾸미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커뮤니케이션을 좋아하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사상이나 기호에 접촉해서 자신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을 자기도 모르게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말을 그녀에게 하자, ‘아니야, 그냥 수다를 떨고 싶은 것뿐인데.’ 하고 킥킥 웃었다.
누구에게나 아주 싹싹한 그녀의 언동은 언뜻 봐서는 얕은꾀로도 보일 수 있겠지만, 실제로 그녀를 그렇게 여기는 인간은 눈이 옹이구멍이거나 지인(知人) 이하의 관계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가랑잎만 굴러도 까르륵 웃는다는, 그런 나이에 걸맞은 시끄러운 여학생이지만, 그녀의 품성과 주위에 대한 배려의 섬세함은 놀랍기만 하다.
교복 옷맵시나 평상복 옷차림도 어디까지나 세련되기만 했지, 화려하거나 천박하지 않다. 그녀가 가끔 보여주는, 어딘가 먼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우수 어린 표정이 어떤 우등생보다도 고결하게 보인다는 점이 바로 그 증거이리라.
처음부터 아무리 말을 걸어도 쌀쌀맞기만 했던 나에게 기가 죽는 모습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딱히 허세를 부리지도 않고, 그녀는 내게 커뮤니케이션을 계속 시도했다. 화제는 조금씩 날씨 이야기에서 취미 등의 깊은 쪽으로 변화해 갔다.
그때부터 2년 하고 조금 더 되는 기간을 그녀와 친구로 지내왔지만, 어떤 상대든 차별하지 않고 대하는 인간이라는 인상은 무엇 하나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즈네는 태도나 말로 내보이지는 않았지만, 한때 정말로 큰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표리 없는 웃는 얼굴과 농담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리 해도 교실 안에서 눈에 띄고 매력적이었다. 그녀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남자들은 전부 그녀를 이성으로 의식했다. 원래 좋아하던 여자아이가 있던 남자조차도, 그렇게 되었다. 이성으로서 자신의 이상형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호쾌하다는 인상조차 풍기는 그녀에게 뒤따라오는 친근함은, 그런 식으로 남자를 매료시킨다.
그것이 그녀의 교우관계에 문제를 일으킨 적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저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을 뿐이다. 즐거운 일은 많은 편이 좋다. 매우 합리적인 생각이다.
그녀는 나와는 달리, 사람과 사람 사이에 울타리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생각해본 적이 없으리라.
하지만 그녀 같은 여성이 사춘기 남자를 친근하게 대하면, 되지도 않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것은 당연한 섭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도, 나만은 그녀를 전혀 이성으로 인식하지 않고 단순한 친구로 계속 남아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기뻤던 것 같다.
새삼스럽게 그런 고백을 들은 것이 얼마 전의 일이다.
봄방학도 끝나가던 어느 날 밤, 갑자기 밤중에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고 그녀가 제안했다.
“그런 건 애인에게 말하면 되잖아. 차도 가지고 있고.”
“딱히 애인이랑 로맨틱한 일을 하고 싶은 게 아니야. 우정과 청춘틱한 일이 하고 싶어.”
그렇게 말한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억지로 나를 불러냈다.
벚꽃이 피기 시작한 시기의 밤은 쌀쌀했지만, 해안에 도착할 때까지의 30분 정도 자전거 페달을 돌리자, 몸은 완전히 따뜻해졌다. 그녀는 뺨에 돋은 땀을 닦으면서 즐겁게 입을 열었다.
“이런 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멀리 나와 본 건 처음이야. 이런 짓, 로드 무비 분위기가 나서 청춘 포인트 높겠는데.”
“시체나 발견하지 않으면 좋겠다.”
모래밭으로 내려가자 수평선 너머에서 떠오르는 보름달이 해면에 빛의 다리를 만들어서 우리에게 드리우고 있었다.
“이대로 저 너머로 건너갈 수 있겠다.”
그렇게 말한 그녀는 신발을 벗고 밀려오는 파도에 발을 담그더니, “으악. 차가워.” 하고 말하고,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웃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냐?”
차가운 바닷물을 상대로 장난을 치는 그녀의 등에 말을 건다. 무언가 특별한 고민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평소와 다르다는 것은 확실했다.
“음~. 딱히 없어.”
그 말이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아무 일 없다고 한다면, 아무 일도 없는 것이리라.
“그냥 이제 1년 뒤에 졸업하는데 하고 생각했더니 말이야, 졸업 전에 이런 저런 말을 해두고 싶어졌어. 장례식 같은 데서 그런 생각하잖아? 고맙다는 말이든 원망이든 살아 있을 때 해두지 않으면 의미 없구나 하고.”
“졸업한다고 해서 못 만날 것도 없는데?”
“그렇기는 해도 말이야. 그래도 역시 말할 수 있을 때 똑바로 츳치에게 말해두고 싶다고, 갑자기 생각했어.”
“무슨 말을?”
그녀는 내게로 방향을 돌리더니, 달빛을 배경 삼아서 두 손을 뒤에서 깍지 끼며 “이히히.” 하고 웃었다.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하고.”
그녀의 말은 깃털처럼 가벼웠지만, 그 깃털이 지금까지 몇 번이나 젖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버팀목이 되어준 것도 아닌데, 고맙다는 말을 들을 이유가 있나.”
“그러네. 그래도 나에게는 역시 츳치의 존재는 ‘고마워’니까.”
굳이 전부 말하지 않아도, 나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남자 친구가 많지만, 그 우정은 그녀의 짝사랑인 것이다. 그녀를 그냥 친구라고 여기는 남자 따위, 나밖에 존재하지 않으리라.
스즈네는 노골적으로 익살맞게 머리카락을 빗어 올렸다.
“왜, 나 인기가 많잖아? 친구가 돼도 상대방이 곧바로 나한테 푹 빠져버리니까.”
나는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도, 주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녀의 이미지와, 그녀의 자기혐오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자그마한 맨발이 모래를 살며시 걷어찼다.
“……여러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던 것뿐인데. 남자니 여자니 따지기나 하고, 진짜 짜증나.”
그때 그녀가 한순간 내보인 쓸쓸한 미소에는, 그녀가 지금까지 맛보았던 낙담과 실망, 그 중에서도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어버린 남자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그런 생각이나 하는 자의식 과잉인 자신에 대한 혐오가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스즈네는 그런 답답한 감정을 날려버리기 위해서, 명랑하게 생긋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츳치는 그냥 친구로 있어줬어. 그래서 고맙다는 느낌.”
그냥 친구. 항간에서는 차고 넘치는 존재.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바라던 것이었다. 물론 여자 친구여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성의 차이를 넘어서서, 변치 않는 우정을 가질 수 있었던 나라는 존재는, 그녀에게는 특히 더 희망의 빛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과장이 심하네.”
“아하하. 그럴지도.”
그녀는 기쁘게 웃고, 두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무슨 뜻인지를 몰라서 멍하니 서 있는 나에게, 그녀는 연기 티가 팍팍 나는, 열혈 교사 같은 시원한 미소와 목소리를 내게 보냈다.
“좋았어, 와라. 우정의 허그를 하자.”
“오랜만에 만난 친척 아저씨도 아니잖아.”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도 스즈네가 그 행동을 통해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이해했기에, 그녀에게 다가가서, 포옹했다.
스즈네의 두 팔이 내 옆구리 아래를 지나서 등을 껴안았고, 나는 그녀의 어깨 위로 살며시 끌어안았다.
나에게는 아무런 감개도 없다. 그저 친구가 우정을 확인하기를 원해서, 응해줬을 뿐. 그 순수한 친구로서의 마음이 고동이 되어 스즈네에게 전해진다.
그러자 스즈네는 그 점에 안도와 환희를 느낀 듯, 프로레슬링 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나를 꽉 끌어안았다.
“이히히. 어때 내 씨름 기술?”
그야말로 눈과 코앞에서,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며 득의양양하게 웃는다. 이렇게 몸을 밀착시키고 나서야, 스즈네의 가녀린 몸매에 놀란다.
“딱히 아프지도, 저리지도 않아. 그보다 가슴이 닿고 있는데.”
두 사람 다 두꺼운 상의를 입고 있기는 했지만, 가슴에 닿는 풍만한 탄력은 소문으로 듣던 그것이었다.
그 정직한 신고는, 나의 그녀에 대한 순도 100퍼센트의 우정을 담고 있다고 할 만한 의사표시였다.
그녀는 그 말에 특히 더 기뻐하며, 나를 놀리는 것처럼 히죽 웃은 후, 가슴을 꾹꾹 더 세게 밀어붙여 왔다. 그 몸짓이나 표정에서 이성을 상대하고 있다고 하는 의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츳치, 여자아이랑 사귄 적 없지? 어때 처음 느끼는 가슴은?”
“어떻기는 뭐…… 어차피 스즈네인데.”
이성으로서 쑥스러워하는 것이 아닌, 나의 미묘한 반응을 보고 스즈네는 킥킥 웃었다.
“거유 좋아하잖아, 솔직히 기뻐하도록 해.”
“당연히, 가슴은 가슴이니까 감동하기는 하는데, 그래봤자 친구니까. 경우가 다르지. 정도(正道)가 아니잖아.”
“야. 남의 가슴을 사도(邪道) 취급하지 말라고.”
수수께끼 같은 이론에 스즈네가 아주 즐겁게 웃었다.
아무리 친구라고는 해도 신체적으로 성의 차이가 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남자고 스즈네는 여자다.
우리는 그 달이 뜬 밤에 그런 점까지 다 포함해서 우정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의 사이가 되었던 것이다.
그 뒤에는 모래밭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서, 진로 이야기 같은 것을 하다가 돌아왔다.
그때부터 스즈네는 내 몸을 망설임 없이 만지게 되었고, 그때마다 나는 주변 남자들의 눈총을 받게 된 것이다.
그날 밤 일이 있기 전부터, 그녀와는 어느새 몇 번인가 서로의 집을 오고 가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몇 번이라고 말하면 너무 적다는 인상을 줄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의 두 손 두 발로는 셀 수 없는 횟수다.
그녀는 눈치 빠르게 나의 그런 물건들을 발견해서 장난거리로 삼았다. 그녀가 무엇보다도 재미있게 여기거나 좋다고 여겼던 것은, 동급생 여자에게 그런 물건을 보이고도 반응이 없는 나의 모습인 것 같았다.
“이런 걸, 나 아닌 여자에게 보이고도 그렇게 차분히 있을 수 있을까?”
“아니, 불가능하겠지. 스즈네니까 아무런 생각도 안 드는 거야.”
거짓 없는 나의 그 말에, 그녀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녀하고는 언제나 둘이서만 놀았다. 그녀의 친구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만큼이나 있지만, 그 반대로 내 친구를 찾아보자고 하면 사막에 떨어진 조개껍데기 찾기만큼이나 어렵다. 집단행동을 싫어하는 나를 배려해서, 그녀는 억지로 자신과 사이좋은 그룹으로 끌어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만약 나를 끌어들이려고 했다면, 나도 그 그룹 사람들도 곤란할 터였으니, 그녀는 그런 배려가 가능한 사람이다.
그래서 같이 논다고는 해도 외출은 거의 하지 않는다. 내 방에서 DVD를 보는 일이 많다.
나는 영상 작품을 좋아해서, 소위 오타쿠나 마니아라고 불릴 만한 영역에 한 발을 걸치고 있다. 스즈네의 말로는 이미 온몸이 다 빠진 상태라지만.
영상 작품이라면 뭐든 좋아해서 심야 애니메이션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폭 넓게 즐기는데, 스즈네도 그런 작품을 어떤 편견도 선입관도 없이 즐겨준다.
내가 성우가 어쩌니, 작화가 어쩌니 하고 옆에서 주석을 달면, “츳치 시끄러워. 지금 보는 중이잖아.” 하고 웃으면서 내 무릎을 살며시 때리거나 한다.
그러다가 딱 한 번,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을 잘하는구나.” 하고 지적받았다. 감정이 빈곤한 나도 이때만큼은 조금 창피해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더운 여름날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우리 집에 들렀기에 그녀는 하복을 입은 채 책상다리로 앉아 있었고, 입을 다문 나를 놀리는 것처럼 고개를 살짝 갸웃거린 후, “이히히.” 하고 웃었다. 그때 그녀가 했던 말은 지금도 내 가슴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창피해할 것 없어. 친구가 열중하는 것을 알게 되어서 나도 기뻐. 자, 더 말해봐, 말해봐.”
그렇게 말하며 내 등을 팡팡 때렸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구원받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의 내가 아니라, 먼 옛날의 내가.
어쨌든 우리는 서로의 집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당연한 사이였다. 스즈네에게는 남자 친구가 잔뜩 있었지만, 집을 방문하는 것은 물론이고 둘이서만 노는 남자 친구는 나뿐이었기에, 주위에서는 그런 우리의 친교를 매우 신기하게 여기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거기에 남녀 관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원찮은 동급생이랑 어울리는 별난 스즈네’였고, 거기에 나는 등장인물로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나와 스즈네의 관계성에 대해서는 대강 이해가 되었으리라. 이번에는 나 개인의 이야기로 넘어가고 싶다.
내가 스즈네에게 우정 이외의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관련이 있는 이야기다.
단순히 그녀가 내 성적 취향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은 자질구레한 요소일 뿐이다. 그런 것은 나와 스즈네가 순수한 친구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처음부터 관계가 없었다고 말해도 되는 부분이다.
오후 수업도 소화하고 학교를 나오면,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딴 길로 샌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이용하는 역의 앞쪽은, 둥근 지붕이 씌워진 길을 따라서 상점가가 형성되어 있다. 꽤 번창해서 사람도 많이 지나다닌다. 특히 저녁이 되면 식사를 하러 온 사람들로 붐빈다.
하지만 역의 뒤쪽은 쓸쓸하기만 하다. 낡은 목조 가옥들이 줄지어 선 그 풍경은 쇼와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촬영지로 쓰기에는 최적이었다.
그런 세피아색이 어울릴 것 같은 주택가 안에, 그 서점은 오도카니 서 있다. 신경 쓰지 않고 걸어가면 거기가 서점이라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원래는 ‘하나마루(花丸) 서점’이었을 간판은 이미 페인트가 완전히 벗겨져서, ‘花’의 초두머리(艹) 부분만이 남아 있다. 장사를 하겠다는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 아마도 주인이 취미로 하고 있는 가게일 것이다.
물론 자동문 같은 유행도 따르지 않는다. 손으로 밀어야 하는 문 앞에서 나는 등을 똑바로 펴고, 유리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체크한 후, 손으로 앞머리를 빗어서 정리했다. 맥박이 평상시보다 빠르다.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자위행위를 할 때는 무조건 거유물을 선택하는 나의, 풍만한 흉부를 감추고 있는 스즈네와 끌어안았을 때조차 태연하게 있던 심장이 가슴뼈를 때리기라고 할 것처럼 미칠 듯이 뛴다.
이미 몇 번이나 젖히고 들어갔던 포렴인데도 익숙해지지 못했다. 문이 엄청나게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녹이 슬어 있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손과 발이 동시에 가게 안으로 침입한다.
계산대 쪽은 보지 않는다. 그쪽으로 간단히 고개를 돌릴 수는 없다.
손님의 방문을 환영하는 인사는 없지만, 계산대에 그녀가 앉아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다. 시선을 피부로 느끼는 것이다. 사춘기 특유의 육감이다. 그 능력의 이름은 자의식 과잉이라고 불린다.
스즈네랑 이야기만 했을 뿐인데도 구름 위를 떠다니는 동급생들의 마음을 지금만큼은 나도 공감할 수 있다.
마치 태엽장치가 달린 인형 같은 움직임으로, 영화 월간지를 손에 들고 계산대로 향한다.
까만 단발 보브 컷에 몸집이 작은 그녀는, 평소대로 아무 말 없이 바코드를 읽어 들이고, 불면 꺼질 것 같은 목소리로 나에게 가격을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고막에 닿기만 했는데도 나는 승천하는 것 같은 기분을 맛보았다.
스즈네가 절벽 위에 핀 아마릴리스나 월하미인 꽃으로 비유할 수 있다면, 그녀는 특별할 것도 없는 민들레다. 그 소박하고 조신한 꽃잎은 내 가슴속에서 무엇보다도 선명하게 흔들리고 있다.
나는 이름도 모르는 그녀를, 벌써 5년 이상 사랑하고 있었다.
명찰은 없고, 말을 걸어볼 용기도 없어서, 나는 그녀를 미츠바(三つ葉) 양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가게 유니폼인지 언제나 입고 있는 앞치마에 새겨진 무늬가 세 이파리(三つ葉)이다. 그 미츠바 양이 포장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평범한 잡지가 꽃처럼 화사하게 보인다.
그녀의 작은 손이 포장해준 영화 잡지를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간다. 책상 의자에 앉으면 일단 아직 포장되어 있는 잡지를 두 손으로 든다. 나도 모르게 뺨이 느슨해진다.
사랑은 병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이것은 완전히 단순한 착각이고 환상이다.
그렇게 알고 있으면서도, 눈꺼풀을 감으면 미츠바 양의 얼굴이 뇌리에 떠올라서, 마음과 몸이 고양된다.
사춘기 한복판에 있는 내 신경 회로는, 새콤달콤한 기분이 성욕 쪽으로 넘쳐 흘러버린다.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생각하며 불끈불끈 흥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하지만 동정인 나는 그 점이 너무나도 발칙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미츠바 양을 그런 마음을 품고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좋아하는 컬렉션을 책상 서랍에서 꺼내든다. 인터넷의 전성기인 요즘 시대에도 나는 소위 말하는 에로 책을 가지고 있었다. 마음에 든 서적이나 영상매체는 가능한 한 실물로 보관해두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스즈네가 발견했을 때는 가슴이 꽤 철렁했지만, 지금은 이미 익숙해졌다. 그녀가 방에 놀러 와서, ‘신작 들어왔어?’라며 서랍을 열고 체크하는 것을, 나는 이미 전혀 아무런 감정도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어쨌든 나는 자위행위 태세로 들어갔다. 아무도 끼어들 수 없는 신성한 시간이다. 비록 가족이라고 해도 용서할 수 없다. 좋아하는 책, 그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페이지를 편다. 단아한 이목구비인데도, 아무튼 가슴의 크기와 모양이 굉장하다. 전라도 아니고 속옷을 입고 있으니 보정도 들어갔을 테지만, 가까이에서 찍힌 가슴살의 언덕은 거의 지면(紙面)을 뚫고 나올 정도로, 터질 것 같은 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의자에 앉은 채 하복부를 노출시키고, 미츠바 양 생각으로 옮겨가려고 하는 사념을 떨쳐내듯 자위를 시작했다. 그러자 휴대전화의 벨소리가 울린다. 나는 비록 상대가 부모님이라고 해도 이 자리에서는 안 받을 결심이었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온 상대가 유일한 친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남근을 훑는 손을 일단 멈추고 전화를 받는다.
“왜?”
“안녕~.”
임전태세인 나와는 달리, 스즈네의 목소리는 매우 고양되어 있었다. 꽤 즐거운가 보다. 흥분해서 빠른 말투로 마구 떠들기 시작한다.
“여기 온수 풀, 꽤 본격적이야. 아까까지 흐르는 풀에서 계속 흘러 다녔는데, 그거 분명 속도 조절 실수였을 거야. 너무 빨라서, ‘내가 소면이냐!’ 하고 생각했다니까. 아하하하하.”
“재미있다니 다행이다. 꽤 시끄러운 것 같네.”
그녀의 목소리 뒤에서 다른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막 오픈했으니까. 츳치도 다음에 함께 오자. 슬라이드도 여러 가지가 있어서 진짜로 재미있어.”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겉치레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재미있는 것을 발견해서 친구랑 공유하고 싶다고 하는, 뜨거운 기분이 전해져 온다.
“내가 수영 못한다는 거 알잖아.”
“괜~찮~아. 나한테 맡겨. 열심히 가르쳐주지. 이히히.”
“생각해 보마. 그래서 결국 어머니랑 갔어?”
“아니. 그이가 시간이 돼서 함께 왔어.”
“잘됐네.”
나도 언젠가는 미츠바 양이랑 둘이서 수영장에 갈 수 있을까. 그런 몽상조차 불가능하다. 그녀는 나에게 있어서, 고령의 민들레다.
“그런데 지금 화장실 가겠다고 잠깐 자리를 비웠거든, 그 화장실도 엄청 혼잡한지 좀처럼 돌아오지를 않아.”
수영복을 입은 스즈네가 인파 속에 홀로 있다. 그것만으로도 남자들이 말을 걸어올 빈도를 상상하기는 쉽다. 그에 대해 하나하나 대응해야만 하는 짜증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는 해도 남들의 헌팅을 피하기 위해서 내게 전화를 건 것이 아니라는 점은 명백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순수하게 친구에게 즐거움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전해져 온다.
“그런데 츳치는 뭐해? 목소리가 좀 거칠어진 것 같은데? 혹시 남자아이 타임이었나. 설마~. 이히히.”
스즈네는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그녀는 야한 농담을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다. 사이좋은 친구가 야한 농담을 하면 그냥 분위기에 맞추어서 대답해주는 정도다. 단 한 사람의 예외는 나였다.
그만큼 그녀는 나라고 하는, ‘보통 남자 친구’라고 하는 존재를 기뻐하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 농담에 한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나와 스즈네의 의사소통 능력은, 서로의 음색은 물론, 대화의 ‘간격’으로도, 서로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얼굴을 마주보고 있다면 눈짓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점이 원수가 되었다.
“……어, 혹시 완벽한 정답이었어?”
스즈네가 쓴웃음을 짓는 표정이 명확하게 뇌리에 떠오른다. 하지만 그 표정은 정색하는 것이 아니다. 이 상황이 다른 남자 친구와의 것이었다면 분명 정색했을 것이다.
“꺄아아, 진짜로 미안! 부디 천천히 즐기시길!”
통화가 끊긴다. 하지만 곧바로 메시지를 수신했다.
『지난번 신작? 흑 갸루가 표지인 것』
『아니. 가장 좋아하는 것』
『아, 팔다리 짚고 있는 것 말이구나. 내가 표시해 놓은 그거지?』
『맞아. 그거』
보통은 동성 친구라고 해도 좋아하는 에로 책의 표지랑 페이지까지는 파악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술한 대로, 스즈네는 나와의 사이에 성적인 울타리가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듯, 의식적으로 이런 대화를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남녀 불문 단순한 친구였다면 정신 상태를 의심하겠지만, 스즈네는 그저 그런 불쾌한 인간이 아니었고, 그리고 지금까지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는지를 충분히 잘 알고 있었기에, 나도 그런 점을 불쾌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 후로 1분 정도 지났는데도 메시지가 오지 않았기에, 도우지마 씨가 화장실에서 돌아온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녀가 말한 ‘남자아이 타임’을 재개하려 했다.
발기가 죽지 않은 남근을 고쳐 쥔 타이밍에, 다시 스즈네에게서 메시지가 들어온다.
『미안, 미안. 사과의 의미로 써 줘. 변변치 못한 거지만, 받아주세요』
손으로 키스를 보내는 이모티콘이 문장 끝에 붙은 메시지에 첨부되어 있던 것은, 지금 막 셀카로 찍은 스즈네의 수영복 모습이었다. 풀 사이드의 테이블에 딸린 의자에 앉아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녀의, 버스트 업 사진.
노출이 적어 보이는, 플레어 레이스가 달린 까만 비키니였지만, 대각선 방향으로 찍은 그 구도는 깊고 깊은 골짜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터질 것 같은 생생한 질감에, 작은 물방울들이 표면에 남아 있어서, 폭력적이라고 할 정도의 건강미를 주장한다.
오른손으로 V자를 만들고 윙크하고 있다. 무척이나 친구를 보고 있다는 느낌의 표정이다. 원래 가지고 있는 귀여움을 바탕으로 했을 뿐, 색기는 일절 연출하고 있지 않다. 그 점이 오히려 보고 있기만 해도 터질 것 같은 유방의 마성을 눈에 띄게 한다.
『어때? 나를 찍은 것치고는 츳치의 컬렉션에 넣어도 될 정도로 대단한 작품 같지 않아?』
이어서 도착한 표표한 메시지는 스즈네다웠지만, 그 속사정을 보자면, 그녀 자신도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아마도 연인에게도 이런 사진을 보낸 적은 없으리라. 그 증거로 찍혀 있는 얼굴의 귓불이 조금 빨갛다.
테이블에는 화려한 과일이 잔뜩 담겨 있는 커다란 유리잔에, 빨대가 두 개 꽂혀 있었다. 분명 스즈네는 이 비일상적인 음료를 흥에 겨워 주문했겠지만, 막상 눈앞에 가지고 오니 창피해져서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그 얼굴이 뇌리에 떠오른다.
『G는 될 것 같네』
『정답. 역시 내 친구야』
멀리 떨어져 있는 그녀가 ‘이히히’ 하고 웃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곧바로 이어지듯 메시지가 들어온다.
『써도 돼♡』
조금 농담이 지나친 것 같기는 했지만, 그녀에게는 절대로 연애로 발전하지 않는 ‘그냥 남자 친구’와 이런 장난을 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운 것이리라. 나 또한 멋진 가슴을 앞에 두게 되면, 친구도 적도 없게 된다.
기꺼이 받아들일까 하다가, 아무래도 신경 쓰이는 점이 있어서 메시지를 보낸다.
『미안한데 말이야, 친구 얼굴이 찍혀 있어서 그런지, 집중을 못하겠어. 네 얼굴이 안 찍히게 해서 한 장 보내줄래?』
전화기 너머에서 그녀가 박수를 치며 웃고 있다고 확신했다.
『거참 실례했네. 이런 느낌이면 될까?』
첨부된 신작은 주문한 대로 가슴 업 사진이었다. 그것도 오른팔로 감싸 안는 것처럼 떠받치고 있다. 작은 수박 정도는 될 것 같은 볼륨의 가슴살이, 무척이나 부드럽게 보이도록 물컹하게 들려 올라와 있다.
친구의 얼굴이 구도에서 사라지자, 나는 거리낌 없이 그 사진을 보고 발기한 성기를 문질렀다.
1분도 되지 않아서 스즈네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한다.
『저기요, 저기요. 갑자기 말이 없어서 불안합니다만?』
나는 재빨리 답장을 한다.
『미안한데, 몇 분간은 대답 못할 거야』
분명 그녀는 배를 잡고 웃고 있으리라.
『절찬 탁탁탁 중이라는 느낌? ^^』
내가 자위에 전념하고 있자, 그녀에게서 계속해서 메시지가 들어온다.
『조금만 더 참으면 보너스 찬스가 있어』
『지금 사람 없는 곳 찾는 중』
『괜찮아? 아직 안 나왔지? 조금만 더 참으렴 ^^』
귀두는 친구의 거유 사진을 보고 참지 못하겠다는 듯 쿠퍼액을 흘리고 있었고, 손 안의 음경은 벌써 정액을 방출하고 싶다고 움찔거리고 있었다.
『여자 화장실은 비어 있네~. 변기 칸으로 대시』
정액이 요도를 타고 올라오려고 하는 낌새를 느낀 그때, 그 메시지와 사진이 도착했다.
『자. 어서 마무리 ^^』
그것은 스즈네의 입가와 가슴팍의 업 사진이었다.
나를 놀리려는 것처럼 혀를 날름 내밀고 있었지만, 역시 그것은 요염하다고 할 수 없는, 소년의 장난 같은 분위기를 내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좀 부끄러웠던 것인지, 뺨은 살짝 빨갰다. 그리고 왼손은 왼쪽 비키니를 바깥쪽으로 살짝 치우고 있었다. 아주 깨끗한, 옅은 핑크색 유륜과 자그마하고 귀여운 유두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동갑의,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는, 그것도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인 여성의 유두를 봤다. 그 충격도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유방과 귀여운 유두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으윽!”
왈칵!
쾌락과 감동, 그리고 약간의 죄악감을 수반한 절정은 무척 진한 정액을 방출했고, 그 정액은 스즈네의 사진을 표시하고 있던 액정을 새하얗게 물들였다. 숨을 헐떡이면서 티슈로 손을 뻗어서 먼저 액정을 닦는다.
자위 따위는 일상적으로 반복해온 의식인데, 왜인지 무척이나 피곤할 정도의 황홀감 속으로 몸이 빠져 들어갔다.
『안 늦었을까? ^^』
『겨우 참았어』
『막 달려왔다니까. 도중에 미끄러져서 넘어질 뻔했어.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나는 ^^』
그녀는 자신의 행동에 어이가 없는 것 같았지만, 역시 조금은 즐거워하는 면도 있었다. 물론 이런 일은 나에게만 할 것이다. 연인에게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우월감을 품게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 된다.
『어쨌든, 고맙다고 해야겠지?』
『새삼스럽게 고맙다고 하면 부끄러운데 ^^』
『엄청 예뻤어. 내 컬렉션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아니, 야한 의미는 아니야』
『아니지, 아니지, 그거 야한 의미잖아』
『뭐, 광의의 의미로는 야할지도. 괜찮으면 앞으로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해줘』
『일일이 허가 받지 않아도 되는데 ^^』
그녀는 몸을 내보였고, 나는 그것으로 자위를 했다. 그런데 우리 사이에 흐르는 것은 약간의 쑥스러움 뿐, 거북함은 없었다.
『다음에 말이야, 츳치가 남자아이 타임 하는 것 좀 보여줘 ^^』
『그런 건 애인에게 보여 달라고 해라』
『딱히 그런 것 자체에는 흥미가 없거든! 친구니까 여러 가지 탁 털어놓고 싶다는 기분 같은 게 있잖아?』
스즈네의 말대로, 내 자위하는 모습에는 관심도 없을 것이다.
여자 친구들끼리라면 (야한 농담이 아닌) 성적인 이야기도 할 수 있지만, 상대가 남자라면 그렇게 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그런 상황이 그녀는 매우 답답했던 것이리라.
그녀는 처음으로 생긴 ‘그냥 남자 친구’에게 그런 벽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돌아온 그이랑 엇갈렸어. 나, 가봐야겠다. 그리고 굳이 말 안 해도 잘 알겠지만』
『알고 있어. 스즈네의 신뢰의 증표니까』
그녀는 오늘 사진에 대해서 한마디 해둘까 말까를 망설인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입으로 하자니 멋이 없지 않나 하고 망설이다가, 문장을 끊은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말하기 전에, 내가 확실하게 의사를 표명한다.
『오케이. 수고했어~』
스즈네도 다시 한 번 다짐을 받거나 하지 않고, 가볍게 답장을 한다.
서로를 향한 절대적인 신뢰가 이심전심으로 전해진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일의 재회를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