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6 무자비하고 기나긴 밤 =========================================================================
하영은 갑자기 승낙이 생각났다. 승낙과는 전혀 다른 성적 취향을 가진 이 남자 때문일까.
승낙과의 섹스는 단순했고 항상 같은 방식이었다. 여자 후리는 걸 좋아하는 남자였지만 섹스 취향은 단순하기 그지없어서 그녀가 밑에 누우면 그 위로 올라가서 허리를 놀리고, 사정하고 그걸로 끝이었다. 기분에 따라 세 번, 네 번 할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두 번 내외로 끝났고 넣어달라는 애원을 그녀 입에서 이끌어내는 걸 좋아했다. 그렇게 뻔하고 반복적인 섹스였는데도 그녀는 그저 좋았다. 승낙에게 반해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당시 그녀 삶에서 승낙과의 만남이 유일한 기쁨이었으니까. 둘이 섹스하지 않았더라면 그 정도로 그와의 만남을 고대하진 않았을 지도 몰랐다.
승낙과 처음 섹스하고 난 뒤, 그녀는 그와의 다음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첫 만남부터 그는 아주 매력적인 남자였지만 섹스하고 난 뒤엔 더더욱 그와 접해 있고 싶었다. 심지어 수업 시간마저도 그녀는 그와의 섹스가 생각나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쉬는 시간이나 휴식 시간엔 머릿속을 텅 비운 채로 그와 섹스 하던 순간만 끊임없이 되새김질 했다. 자신이 하던 일을 무의미하게 느꼈기에 더더욱 그녀는 그 되새김질에 빠져들었다.
승낙에게 완전히 질려버린 지금도, 그와 처음 섹스하던 순간을 떠올리면 아랫도리가 촉촉하게 젖어든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미묘한 성적 신호를 계속해서 보내던 그가 마침내 그녀를 붙잡고는 널 보내지 않겠다고 했을 때, 그녀를 끌어안고 정신없이 가슴이며 목덜미 같은 곳들을 애무했을 때, 잔뜩 흥분한 둘이 마침내 모텔 방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 순간순간이 세세한 장면까지 전부 다 그녀 기억 속에서 생생하게 재생되었다.
“아, 아앗..”
그녀는 우중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면서 소리를 냈다. 그는 여전히 심하게 코를 골고 있어서 그녀를 안심시켰다. 하영은 몸을 조금씩 접었다 폈다 하면서 질퍽거리는 소리를 극대화했다. 팔을 내려서 더듬더듬 선을 잡고, 스위치를 찾아 버튼을 눌렀다. 위잉- 약한 강도로 해놓은 뒤 다시 우중을 살핀다. 그에겐 여전히 변화가 없다. 한 번 잠들면 웬만해선 깨진 않는 타입인가 보지?
하영은 과감하게, 버튼을 최고 강도로 올려버렸다. 위이이이잉--- 엄청난 소음이 공간을 압도한다. 우중은 약간 몸을 뒤척일 뿐, 깨어나지 않는다. 그녀는 부르르 몸을 떨며 진동에 몸을 맡겼다. 수시로 강도를 조절하면서,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수위를 찾는다.
한 번 절정을 맞은 뒤 다시 한 번 더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잘 되지 않는다.
그녀는 그런 식으로 망상에 빠졌다가, 자위를 했다가, 하면서 날을 샜다.
“너 진짜 대단하다.”
그가 깼는지도 모르고 자위에 열중하던 하영의 몸을 내리누르며 우중이 말했다. 묶인 손으로 아랫도리를 더듬으며 진동을 최대 수위로 해놓고 몸을 움직이던 그녀를 그가 도중에 멈춘 것이다. 흥분 직전에 멈춰지자 허탈하면서도, 더 이상 이러는 것도 질려가던 참이라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동시에 하영의 멍한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잠을 못 자 피부가 푸석푸석하고 피곤에 찌든 얼굴을 하고 있는 하영은 텅 빈 탁한 눈을 하고 있었다. 우중은 팬티를 내리고 그녀의 질속에 들어가 있는 것을 끄집어낸 다음 급하게 몸을 놀렸다. 눈 뜬 직전이라 발기해 있는 그의 물건은 무리 없이 쑥 그녀의 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콘돔은...”
“밖에다 쌀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는 자신의 욕망을 충분히 분출하지 못한 상태에서 밖으로 나왔다. 급하게 그녀를 끌어당겨 얼굴 쪽에다 자기 성기를 대고는 자기 손으로 직접 훑는다. 빠르게 위아래로 기둥을 훑는 그의 손놀림을 멍한 눈으로 지켜보는 하영. 반쯤 달구어지다 만 그녀의 아랫도리가 아쉬움을 호소한다. 곧 하영의 얼굴에 뜨뜨미지근한 정액이 흩뿌려졌다. 그녀의 얼굴 전체에 질서 없이 뿌려진 정액은 여기저기 웅덩이를 이루며 흘러내렸다.
우중은 손바닥으로 치덕치덕 얼굴 전체에 정액을 골고루 발랐다. 그 느낌이 몸서리 처지게 싫다. 비릿한 냄새가 진동을 하면서 오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끔찍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물 먹은 솜 같이 흐물텅거리는 그녀의 몸처럼 머릿속도 탁해졌기에 그 느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는 곧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중은 콘돔을 가져와서 자기 물건에다 씌우고는 이번에는 그녀의 안에다 사정했다.
겨우 씻은 그녀는 피곤에 절여져 밥 먹을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우중은 씻어서 보송보송해진 그녀를 기어이 식탁에 앉혔다.
이번에는 앞치마도 두르지 않고 알몸으로 앉혀진 그녀. 어제 저녁과는 달리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앞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과 계란 후라이, 미역국과 몇 가지 밑반찬이 차려져 있다. 빨리 집에 가기 위해서 억지로 먹어보려 하지만 자꾸 숟가락이 손에서 떨어진다. 서너 번 떨어뜨리고 나자 짜증이 나서 더 이상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시큰거리는 손으로 의자를 부여잡고 꾸벅꾸벅 조는 그녀를 보다 못한 우중은 그녀의 옷과 가방을 가져와 입으라고 명령한다.
“속옷은?”
“버렸어.”
“네?”
“상관없잖아. 어서 입고 가 버려. 난 밥 먹고 작업해야 하니까.”
그는 끝까지 그녀를 골탕 먹이려 했다. 돈 많이 냈으니까 본전 뽑겠다는 건가? 그녀는 그가 얄미웠다.
하지만 그 말대로 그녀는 어서 가서 푹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에라이 모르겠다 싶어서 쉬폰 소재의 옷을 꿰어 입고 위에 가디건을 걸쳤다. 단추를 여몄는데도 하도 얇은 소재라 젖꼭지가 뾰족하게 나와 있는 게 노골적으로 티가 났다. 맨정신이었다면 절대 이러고 나가지 않겠지만 맨정신 아닌 그녀는 후딱 나가서 택시 타고 가버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럼 저녁에 또 와. 예약해놓을 테니까.”
그 말과 함께 철컥, 문이 닫혔고 곧 삐삑 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문이 완전히 걸어 잠겼다.
뭐?! 또 부른다고???
그 말에 하영은 망연자실했다. 또 이런 끔찍한 밤을 보내고 싶진 않은데. 아랫도리는 헐어서 욱씬거리고 온 팔다리가 오랜 시간 동안 한 자세로 고정되어 있어 저리고 아프다. 끝난 줄 알았던 악몽이 오늘 밤에도 그녀를 괴롭힐 거라 생각하자 더 이상 살맛이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