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26)

00022  두번째 손님:알몸 에이프런  =========================================================================

                                                      

동작이 아름다워서 눈이 갔다는 말을 할 만큼 널푼수는 아닌 그녀는 입을 꼭 닫고 식사에 전념하려 했다. 하지만 그를 향했던 눈길을 거두자 다시 자신이 전라보다도 야한 상태라는 데에 온 신경이 가버린다. 

브라가 고정해주지 않는 가슴은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노골적으로 움직였고 얇은 앞치마 사이로 들어오는 에어컨 바람이 마치 그녀의 몸을 애무하는 것만 같다. 이 민망한 상황에서 느긋하게 식사할 수 있을 만큼 뻔뻔하지는 못했지만, 그녀 혼자 가만히 있자니 그건 더 어색해서, 하영은 억지로 깨작깨작 음식을 입으로 가져갔다. 

훨씬 많은 양의 음식을 음미하듯 천천히 먹는 우중. 마치 눈앞에 그녀가 없는 것처럼 식사에만 몰두하는 그가 야속하다. 어색함을 떨치기 위해 

“음식이 맛있네요.” 같은 소리를 했다가 

“식사하면서 말하는 거 싫다니까.” 라고 면박 당한 그녀는 이 상황에서 대화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대화도 없고,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이런 걸 입으라는 이유는 뭔데?! 라고 소리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게 하영은 갑갑했다.  

영원과 같은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식사를 끝낸 우중. 그제서야 그녀 쪽을 본다.

“맛있었어?”

“아? 네..”

하영은 아까 맛있다고 했잖아!!! 라는 말을 꾹 참고 떨떠름하게 말했다. 그는 힘겹게 의자를 끌어 당겨 자신의 몸을 테이블 안으로 좀 더 밀어 넣었다. 갑자기 거리가 좁혀지자 본능적으로 긴장하는 하영. 그는 다리를 들어 올려 발가락으로 그녀의 가랑이 사이를 건드렸다. 우중의 발가락은 꼼지락거리며 한참동안 하영의 음부를 더듬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얼어붙은 듯 그의 행동을 견디던 하영을, 우중이 성난 눈으로 노려본다.

“너! 내 말이 장난 같아?”

“네?”

“당장 팬티도 벗어.”

온 얼굴 근육을 동원해 표정을 일그러뜨린 그의 처참한 얼굴은 정말로 괴물 같았다. 괴물의 성난 포효에 기가 죽은 하영은 덜덜 떨면서 손을 앞치마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러면서도 자기 의자 옆에 꼭 붙어 있는 핸드백을 의식한다. 저 괴물은 아무리 성능 좋은 전기충격기로도 쉽사리 제압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하영은 부디 그가 이성을 잃지 않기를 빌었다. 공포에 질려 오들오들 떨면서 그녀가 손으로 팬티 양 쪽을 잡자, 그의 발가락이 떨어진다. 한숨을 내쉬면서 발을 바닥에 쿵 떨어뜨리고는 후후, 숨을 들이셨다 내쉬는 게, 저렇게 발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운동이 된 것 같다. 

“벗었어요.”

그녀는 팬티를 식탁 바닥에다 떨어뜨렸다. 그제야 표정이 풀어진 우중은 발가락으로 그녀의 털숲을 건드리다가, 발가락 몇 개로 그녀의 입구를 간질였다. 그 동작이 힘겨웠는지 얼굴이 벌게진 그는 곧 발을 그녀로부터 철수시키고는 일어나 식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영혼이 빠져 나간 눈으로 그가 정리하는 것을 구경만 했다. 

“디저트 먹을 거야?”

“디저트요?”

앵무새처럼 말하는 그녀가 거슬려 눈살을 찌푸리는 우중. 

“난 레몬파이랑 자허 토르테 먹을 건데 너도 줘?”

“아니, 배불러요.”

“그럼 넌 차나 마셔.”

우중은 고급스런 장식에 손잡이 부분이 금색인 찻잔에다 차를 따라주었다. 자신의 자리에도 차 따른 찻잔을 내려놓고, 그것과 한 세트인 듯한 접시에다 디저트를 담아 자리에 앉는다. 완전히 마음 풀린 얼굴로 디저트를 먹는 그를 보자 그녀의 불안도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참 단순한 남자 같지만...

하영은 휴,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차를 마셨다. 카페인이 들어가지 않았는지 순한 맛의 차에선 독특한 향이 났다. 우중은 아까처럼 아주 천천히, 입 안이 보이지 않게 입술만 움직여 디저트를 먹고 있었다. 하영도 그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 아주 천천히 차를 마셨다. 

“난 설거지 할 테니까 넌 가서 샤워하고 있어.”

“저도 도울까요?”

“필요 없으니까 씻어.”

하영은 핸드백과 팬티를 집어 들고 옷을 벗어둔 방으로 갔다. 팬티를 옷들 위에 올려놓고, 다시 핸드백만 들고 욕실을 찾았다. 옷을 다시 입을까 하는 망설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까 그의 포효가 떠올라 차마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우중의 집은 현관에서부터 왼편에 침실 딸린 방이 하나 있고(하영의 옷을 벗어둔 곳이다.) 입구에서부터 정면에 거실, 거실 너머에 베란다가 있다. 침실 딸린 방과 같은 쪽에 부엌이 붙어 있고 그 반대편에 방이 하나 더 있는데, 욕실은 그쪽에 있다. 

거실에는 커다란 티비, 검정색 유리 테이블에 소파가 있고 검회색 털 달린 타원형의 깔개가 바닥 테이블과 소파 쪽에 깔려있다. 티비도 그렇고 소파도 그렇고 아까 밥 먹은 식탁도 그렇고, 대부분의 가구들이 선이 각지고 날렵하게 떨어져 있어서 굉장히 절도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대충 방 전체를 구경한 하영은 반쯤 문이 열려 있어 아무리 봐도 욕실이 분명한 그 곳으로 들어갔다.

문을 잠그고 흰색 수납장 안에다 백을 뒀다. 앞치마를 벗어 그 밑에다 놓은 다음 수납장 문을 열어 놓은 상태로 샤워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샤워 부스 안에는 샴푸, 린스, 바디 샴푸, 클렌징 폼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세척용품이 있었다. 거의 방만한 넓이의 욕실엔 욕조도 있었는데, 욕조는 샤워 부스 건너편에 계단처럼 올라간 공간에 있었다. 훨씬 높은 곳에 있어서 계단을 올라가야 하고 바닥을 파서 만든 욕조라서 이쪽에선 잘 보이지 않는다. 그쪽에 설치된 선반엔 각종 모양과 색깔의 입욕제가 비치되어 있다. 눈이 휘둥그레진 하영은 계단을 올라가서 구경했다. 

다시 내려와 샤워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우중이 문을 쾅쾅 두드렸다.

“문 열어.”

물을 묻히다 만 몸에다 타월을 감싸고 문 쪽으로 걸어간 하영은 열어 주지 않은 채 아직 다 씻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겠지. 나도 들어갈 거야. 열어.”

같이 씻자는 건가? 싫지만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남편과 사이 나쁜 아내를 연기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 정정. 실제 부부 사이였더라면 기분과 상태에 따라 혼자 씻겠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체로 사이가 좋다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하영은 출장 아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