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26)

00013  짓밟힌 여교사의 순정  =========================================================================

                                                      

“창밖을 내다봐요, 아가씨.”

헐레벌떡 화장실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텅 빈 복도엔 아무도 없다. 그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녀 바로 앞에 있는 창가 쪽으로 다가가기만 해도 되었지만, 대신 그녀는 복도와 계단을 전력 질주했다. 하영아? 하는 소리와 불확실한 소음이 그녀의 손에 꼭 쥐어져 있는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지만, 그녀는 핸드폰을 도로 귀에 가져다대지 않는다. 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했지만 용케도 미끄러지지 않은 그녀는 가까스로 수족관과 신발장이 있는 현관에 도달했다. 열린 유리 문 너머,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대고 있는 남자. 흐릿하고 작게 보이는 그는 분명히 승낙이다. 그제서야 핸드폰을 귀에 붙이고,

“정말 왔네.”

거친 숨을 토해내며 그렇게 말하는 하영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우리 아가씨는 성질 참 급하다니까.”

주저앉을 듯 휘청휘청 대며 정신없이 숨을 토해내는 그녀의 등을 승낙은 아기 어루만지듯 조심스런 손길로 쓸어주었다. 얼마나 헐레벌떡 달려왔으면 이럴까 싶을 정도로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가 귀엽게 느껴지는 승낙. 눈꼬리에 눈물까지 맺혀 있는 게 보이자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난 그렇게 좋은 인간이 아닌데, 란 말을 해주고 싶을 정도다. 

“이제 좀 진정됐어?”

결국 운동장에 털썩 주저앉아 가슴에 손을 대고 천천히 숨을 쌕쌕 내뱉던 그녀는 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진정되었다. 승낙이 손가락을 뻗어 눈꼬리에 매달린 눈물을 닦아주며 다정하게 속삭인다. 장신구를 좋아하는 그답게 반지며 피어스며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그녀가 좋아하는 흑과 백의 바둑판무늬 후드를 입고 온 것도 하영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하영은 대답 대신 엉뚱한 소리를 했다.

“나, 다 그만둬버리고 싶어.”

가만히 그녀를 마주보던 승낙은 눈꼬리를 휘며 예쁘게 웃었다.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이어 손을 내미는 그.

“잘 생각했어. 나랑 같이 가자.”

하영은 망설이지도 않고 손을 잡았다. 그는 분명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나도 가볍게 행동하면 되는 거지 뭐. 

수업은 끝났지만 아직 교직원 회의와 공문 처리가 남았다. 아, 8시쯤 회식한다고 했지. 내일 수업 준비도 해야 한다. 

승낙은 하영의 손을 꼭 잡고 교문을 향해 달려갔다. 하영은 산통을 깨는 대신 그에게 자신을 내맡겼다. 뽀얀 모래바람이 두 사람의 흔적을 따라 피어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하영의 집으로 갔다.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 원룸엔 교사들이 모여 산다. 물론 지금은 퇴근 시간이 아니니 대부분 비어 있을 것이다. 5층짜리 건물의 2층. 거기엔 마주보는 형태의 방 4개, 끝에 한 개 총 5개의 방이 있다. 하영은 계단에서 오른쪽 맨 처음에 있는 방 앞에 섰다. 승낙은 선수를 쳐서, 비밀번호 키에다 자기 생일을 눌렀다. 장난스레 그래 본 것뿐인데 정말 문 열리는 소리가 난다. 고개를 돌려 하영을 보자 살짝 부끄러워하고 있다.

“날 많이 좋아하는구나?”

그녀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덮으며 부비적대자 살짝 고개를 숙인 상태로 소심하게 긍정해온다. 집 안으로 들어선 둘. 좁은 현관엔 운동화 한 켤레가 놓여있다. 승낙이 신발장을 열어보자 몇 켤레의 구두와 샌들, 운동화가 들어있었다. 신발을 벗고 올라서자 바로 앞에 싱크대, 그 너머엔 화장실. 장지문 너머에 침대와 책상, 옷장, 화장대가 전부인 좁은 방이 하나. 거리낌 없이 방을 휙휙 돌아보는 승낙의 행동은 하영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볼 것도 없는데 뭘 그렇게 열심히 봐?”

“응. 볼 것 정말 없다. 그러니까 미련도 없겠네?”

“응?”

설마, 하는 의혹이 스쳤다. 내가 한 말 진심으로 받아들인 거야?

물론 아까, 하영은 정말 이따위 짓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적성에도 안 맞는 일, 형편만 된다면 때려 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건 모든 직장인들의 애환 아닌가. 

“승낙아.. 아까 한 말.....”

“날 믿고 따라와. 평생 네 마음 편하게 해 줄게.”

승낙은 더없이 진지한 눈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정말 듣기 좋은 고백이었다. 이왕이면 평생 널 사랑해줄게, 라고 해주면 안 되겠니? 역시 그건 자신 없나보지? 하는 생각이 살짝 들면서도 가슴 가득 잔잔한 기쁨이 퍼져나간다. 

그의 고백에 기분 좋으면서도 그녀 안의 의혹이 완전한 기쁨을 방해했다. 승낙인 가난한데 날 어떻게 책임지겠어? 부터 시작하는 그와 사귄 이후 계속 따라다닌 고민. 게다가 우린 아직 사귄지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다. 그를 잘 알지도 못하고 그러니 신뢰한다고 할 수도 없는 사이. 혼란스런 상태로 하영은 승낙을 보았다. 승낙은 부드러운 미소로 그녀의 시선에 회답했고 하영은 여전히 갈등 중. 성큼 그녀 바로 앞에서 멈추어선 그는 

“챙길 거 있음 챙겨. 옷이나 침대, 책상 이런 건 다 여기 두고 가는 게 좋겠다.”

“승낙아 나 아직 결정 못했..............”

“결정하고 자시고가 어디 있냐? 너 나 만난 첫 순간부터 너무 힘들다고, 너랑 안 맞는 일 억지로 하는 거 서럽다고 울었잖아. 그냥 좀 적응하느라 힘든 거랑 영 안 맞는 건 구분해야 해. 나 너 몇 번 안 만난 건 맞는데, 이 일 너한테 아닌 건 내 눈에도 확실해 보인다. 어영부영 시간만 흘러 보낸다고 해결될 것 같아? 왜 교사들이 스트레스 풀러 나이트 많이 오겠어? 너네 학교 선생들 술 엄청 마신다며? 그만큼 교사란 게 안 맞으면 힘든 일이란 말이잖아. 천상 교사로 태어난 애도 힘들 판에 넌 진짜 아니다. 

내가 맞는 일 찾아줄 테니까 오늘 부로 관두고 나 따라와.”

그는 그렇게 말한 뒤 책상 밑에서 캐리어를 끄집어냈다. 옷장 서랍에서 속옷을 꺼내 그 안에 집어넣더니 양말, 잠옷 한 벌을 추가로 넣는다. 반면 하영은 멍하니 꿈속을 걷고 있는 기분이다. 

악몽 같았던 나날... 열심히는 하는데 왜 열심히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어 괴로웠던 시간들. 취향이 아닌 얌전하고 고상한 원피스와 정장을 억지로 입고 통제 안 되는 교실에서 매일매일 억지로 수업을 진행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수많은 행정 업무들을 처리하고, 각종 행사와 업무 분담에 시달리던.... 그런 나날을 당장 끝내자고 와 있는 승낙이 믿겨지지가 않는다. 

그런데 저기, 그냥 그만두는 걸로 다 해결된다면 진작에 끝냈을 거야, 나도. 승낙이 너는 꿈만 좇아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마냥 낙천적일 수 있는 거야? 네가 날 사랑하는지도 확실치 않는데 어떻게 믿지? 다시 회의에 빠져 엉거주춤하는게 눈에 들어오자 승낙은 답답했다.

“핸드폰 내놔봐.”

부탁도 명령도 아닌 게 말 끝나자마자 바닥에 놓인 스마트폰을 집어 들어 전화번호부를 뒤적였다. 하영은 멍하니 앉아 그가 어떻게 나오나 지켜보았다.

“집 주인이시죠? 오늘 방 뺄 거라서요. 

지금 하영씨랑 같이 집에 있어요. 곧 오실 수 있나요?

물건은 사람 보내서 내일 내로 다 처리할 거구요.

아 네, 보증금은 사람 구해지고 나서 돌려주셔도 되요. 네.“   

통화를 종료하고는 씨익 웃어 보이는 승낙. 하영은 따라 웃을 수 없었다.

“이제 넌 몸만 나 따라와 주면 돼. 다 해결됐어.”

“무슨 소리야. 학교는.”

“일단 오늘은 방 빼고 나랑 서울 가자.”

“내일 주말 아니잖아. 어떻게 그래.”

승낙은 몸을 낮추더니 무릎걸음으로 하영에게 다가갔다. 그녀를 꼭 껴안고, 쪽, 입 맞춘 뒤 그녀 품에 머리를 파묻는다.

“너는, 결국 내 말대로 했어. 처음엔 거절해놓고.”

그녀의 품 안에 머무른 채 그렇게 말한 그는 다시 몸을 올려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아직 그가 완전하게 편안하지 않은 그녀는 눈을 마주쳐오는 그가 설레고 떨렸다.

“하영아. 넌 싫은 일 억지로 못하는 애야. 너처럼 그렇게 노골적인 애 잘 없어.

그러니까, 날 믿어.“

그렇게 말한 다음 그는 하영의 옷 안에 손을 집어넣고 브래지어 후크를 풀렀다. 

“집 주인 아저씨 온다며.”

“아직 시간 있어. 바로 오는 거 아냐.”

“왜 갑자기 이렇게 되는 건데?”

“자연스러운 거 아냐?”

태연하게 그리 말한 승낙은 다급하게 하영의 상의를 벗겨버리고 자신도 벗었다. 거의 일주일 만에 그의 몸을 맛보게 된 그녀는 망설임 가득한 표정과는 달리 속으로는 좋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하영을 끌어안고 자신의 허리를 그녀 다리로 감싸게 한 그는 하영의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까슬한 음모를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부끄럽고 야릇한 감각이 찌르르하게 온몸을 타고 흐른다. 살짝 몸을 떨며 입술을 깨무는 그녀의 입 안을 손가락으로 헤집으며 좀 더 편하게 있어, 하고 귓가에 속삭이는 그. 그 말에 꾹 참으려던 소리를 살짝만 내보내는 하영.

그는 얼마간 음모 속 이곳저곳을 손가락으로 더듬다가, 그녀의 다리를 다시 앞으로 하고, 팬티를 내렸다. 반쯤 내려 그 사이로 자신의 성기를 가져다대려다가, 불편함을 느끼고는 완전히 벗겨 집어던져버렸다. 하영을 자신 쪽으로 끌어와 꼭 끌어안은 채 탐욕스럽게 그녀의 혀를 자신의 혀로 농락하다가, 바닥에다 눕히고 발기된 성기를 그녀의 음부 쪽으로 가져다댄다. 

바로 본론에 들어가 버리려는 승낙이 서운했지만, 집주인이 신경 쓰인 하영은 전희를 조를 수 없었다. -사실 그녀 성격상 해주지 않는 걸 해달라고 요구하자니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웠다.

“좀 빡빡해도 참아.”

그렇게 말하고는 한 번에 밀고 들어온다. 약간 뻑뻑함이 느껴지고 미묘한 통증도 느껴졌지만, 어느 정도 젖어있었기에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의 골반을 잡고 격렬하게 허리를 움직이는 승낙의 일그러진 표정이 섹시하다. 고조되는 승낙의 움직임에 따라 하영의 아랫도리와 뱃속도 흥분으로 움찔거렸다. 승낙이 너무 서둘러서일까. 하영은 승낙보다 더 빨리 절정을 맞이해버렸다. 아직 다 끝내지 못한 승낙이 그녀 위에서 움직이고 있을 때, 벨소리가 들렸다. 

하영씨? 집주인 목소리다.

“승낙아, 집주인 왔어.”

“흐읏, 하영아, 잠깐만.”

“승낙아!! 빨리 나가봐야 되는데.”

“지금 못 그만둬! 잠깐만.”

승낙은 괴롭게 숨을 뱉어내며 한참을 그녀 안에 머물러 있었다. 이미 식어버려 서서히 안쪽이 아파오기 시작했기에 시간으로 환산하자면 채 몇 분이 되지 않는 동안, 그녀는 지옥을 맛보았다. 겨우 마치고 그녀 배 위에서 사정하는 동안도 벨은 울리고 스마트폰도 쉼 없이 웅웅되고 있다.

“하영아, 빨리 옷 입어.”

그녀에게 원피스를 집어던진 승낙은 대충 바지와 상의를 꿰어 입고 문 쪽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급한 대로 허둥지둥 안에 아무 것도 입지 않고 원피스만 입었고, 그때 문이 열렸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팬티, 대충 입은 옷. 정사의 흔적이 적나라한 풍경에 집주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승낙은 넉살 좋게 집주인에게 말을 건다. 낯뜨거워진 하영은 승낙이 집주인을 상대하는 동안 후다닥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영아, 이거 네가 해야 되는데.”

하영은 이 동네에서 계속 살긴 그렀구나 싶었다. 뒤따른, 왠지 속은 것 같다는 생각. 

한 시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승낙은 잠만 잤다. 만사 다 제치고 날 보러 오느라 피곤했던 걸까? 하영은 잠 든 승낙에게서 애틋함과 사랑을 느꼈다. 집도 빼버렸고 짐도 거의 다 버리고 왔지만, 그 정돈 월급날까지 고생 좀 하면 그럭저럭 무마할 수 있다. 아직은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실감이 잘 나지 않는 하영. 어쩌면 며칠간의 일탈로 끝날 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그 며칠을 그와 단 둘이 보낼 것을 생각하니 두근두근 심장이 떨렸다.

“승낙아, 다 왔어.”

하영의 어깨에 기대 깊이 잠든 승낙을 몇 번이나 흔들어 깨운 뒤에야 그는 간신히 눈을 떴다. 피곤에 찌든 얼굴로 주섬주섬 짐을 정리하고 내릴 채비를 한다. 그가 이끄는 대로 그저 따라간다는 사실이 그녀는 마냥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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