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26)

00009  출장 아내 서비스 개시  =========================================================================

                                                      

그로부터 보름이 지났다. 악몽 같은 나날이었다. 이제 영희에겐 지낼 방도 있고 얼마간의 현금도 있다. 그녀는 악몽 같은 곳에서부터 완전히 벗어나 완전한 혼자가 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이 일을 잘 할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친절하고 상냥한 매니저 언니가 웃으면서 말했더랬다.

‘영희 너 정도면 인기도 많고 잘할 거야. 손님들이 다 귀여워할 텐데?’

그 말을 덥썩 믿을 순 없었지만 최면을 걸기로 한다. 어차피 날 받아주는 곳은 여기 밖에 없잖아? 적어도 자신을 쪽팔려 하는 수찬보다는 이 일이 나아보였다.

인환은 영희를 보자마자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사진 속의 영희는 어리고 만만해보였지만, 실제로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었다. 

서른이 되도록 못해본 남자인 그는, 이번 기회에 제대로 동정을 탈출하고 싶었다. 

그는 어서오라며 영희의 등을 반갑게 떠밀었다.

비쩍 마른 체격에 왜소한 인환의 몸에서 예상치 못한 악력이 느껴지자 영희는 초반부터 겁을 집어 먹고 말았다. 

“아, 안녕하세요. 여보.”

몇 번이나 연습했는데도, 밝고 낭랑하기는커녕 어둡고 암울하게 들린다. 매니저인 선영은 밝고 상냥하게 말하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었다. 혼자 연습했을 때에는 꽤 성공적이었는데,

실전에서는 완전히 망해버리고 말았다. 영희의 얼굴에 낭패감이 가득했다.

“그래, 자기, 잘 왔어.”

인환은 잔뜩 얼어있는 영희의 모습이 우스웠다. 그녀를 무안하게 만들고 싶었지만, 초장부터 기를 팍 죽여 버리자니 불쌍했다. 그는 태평하게 영희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영희가 자신감을 잃어갈수록 인환은 기고만장해졌다. 인환은 여자가 조금이라도 도도하거나 기가 세보이면 불편해서 제대로 상대하질 못했다. 

그는 몇 번이나 여자를 사서 섹스를 시도하려 했지만, 호락호락하게 다리를 벌리는 데에도 그녀들이 어딘가가 불편해서, 결국 단 한 번도 제대로 세워보질 못했다.

하지만 눈앞의 이 자그마한 아이하고는 무엇이건 가능할 것 같았다. 인환은 히죽 웃으며 그녀를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1인용 침대와 책상 하나가 전부인 좁은 방 안에선 퀴퀴한 냄새가 났다. 이미 1주일간 특별 훈련을 받은 영희는 인상을 찌푸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영희는 선영의 말을 명심, 또 명심하고 있었다.

‘손님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날 수도 있어. 아참, 손님이 아니라 남편이지. 나야 프런트 직원이니까 손님이라 부른다지만 넌 꼭 남편이라고 불러야 돼. 평소에도 그렇게 생각해야 하고. 

아무튼, 아무리 손님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해도 절대로 내색해서는 안 돼. 출장 아내를 하고 있는 동안은 정말 아내인 것처럼,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굴어야 해. 아무리 지독한 냄새가 나도 그 냄새까지 사랑하겠다는 각오로. 

예전에 혜민씨라고 있었거든? 이혼녀인데, 기가 세고 좀 예쁜 여자였어. 첫 손님 받고 그만뒀는데 남자 몸에서 냄새가 너무 나서 못 참겠다는 거야. 

난 솔직히, 그 정도 각오로는 이 일 좀 안했으면 좋겠어. 그 여자가 출장 가서 당신 몸에 냄새가 지독한 거 알고 있냐부터 시작해서 손님 면박을 제대로 줬나봐. 

누가 돈 내고 그런 소리 듣고 싶겠어? 

영희야, 넌 절대 그러면 안 돼. 내 말 알아듣겠어?‘

영희는 심호흡을 하고, 계속 기분을 불쾌하게 만드는 이 냄새가 마치 안 나는 것처럼 주문을 걸었다. 

이미 곰팡이 냄새, 똥 냄새, 다량의 정액 냄새와 음식물 쓰레기 냄새 참기 특훈을 받은 뒤였다. 그래서인지 곧 마음이 편안해졌고 아무 냄새도 안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훈의 성과이자 이미 코가 피로해져서 이기도 할 것이다.

인환은 슬쩍 영희의 눈치를 보더니 훌훌 옷을 벗기 시작했다. 

정말 아내와 남편처럼 얘기도 주고받고 밥도 같이 먹고 하는 손님도 있다던데, -아, 남편이지. 영희는 무의식적으로 손님이라고 생각하고 만 자신을 속으로 꾸짖었다.

이 남편은 바로 몸부터 섞고 싶은 것 같았다.

영희는 이 남자, 아니 남편을 따라 자신도 옷을 벗어야 하는지, 벗겨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우물쭈물 거리고만 있었다.

그는 선영에게 잠자리 방식에 대해서는 부끄러워 차마 못 물어본 것을 뒤늦게 후회했다. 좀 더 상세하게 숙지하고 있어야 남편을 상대할 때 탈이 없을 텐데. 

문득 자신의 우물쭈물한 모습을 미워하던 수찬이 떠올라 영희의 마음이 어두워졌다.

이 손님, 아니 이 남편도 나를 미워하면 어떻게 하지?

영희는 주인환마저 수찬처럼 자신을 갈굴까봐 두려웠다. 만약 모든 남자들이 수찬처럼 자신을 무시한다면, 서러워서 이 일 계속 할 수 있을까?

“쑥쓰럽니? 너 남자 경험 없는 거야?”

“아, 그게...”

이미 나체가 된 인환이 싱글벙글 거리며 영희에게 다가왔다. 영희는 그 모습이 낯설고 이상했다. 수찬은 영희랑 할 때 옷을 입고 바지만 내린 적도 많았고 벗더라도 저 남자처럼 훌렁훌렁 거리낌 없이 벗는 느낌은 아니었다. 

수찬에게 익숙해져 있는 영희는 그와는 전혀 다른 이 남자가 좀 괴이하게 느껴졌다.

그나저나 이럴 땐 뭐라고 답해야하지? 왠지 있다고 대답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없다고 대답하는 건 또 거짓말이었다. 소심한 영희는 유도리 있게 대처할 줄 몰라 쩔쩔 매기 시작했다.

인환은 당황하는 영희의 모습을 보고 혹시 처녀인가? 싶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매춘까지 하는 애가 설마 처녀일까? 긴가민가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기대를 하고야 말았다.

“너 정말 귀엽다. 일로 와 봐. 벗겨줄게.”

인환은 다행히 영희를 밉게 보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영희는 좀 더 자신감을 가지기로 하고 인환에게 다가갔다.

주인환, 30세. 친구 집에 얹혀살고 있는 재택근무자. 그는 형편이 어렵다며 영희를 딱 두 시간 동안만 빌렸다. 

매니저인 선영과 면담을 한 뒤 출장 아내들 중에 영희가 자신에게 딱 맞을 것 같다며 아무런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고 했다.

선영은 첫 남편인 인환과 별 탈이 없어야 앞으로 이 일을 자신감 있게 계속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이미 선불로 100만원을 받았고, 이 일을 잘 마치면 100만원 중 30만원을 갚은 게 된다. 

물러설 곳이 더 이상 없다는 걸 새삼 깨달은 영희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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