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26)

00007  불공평한 관계  =========================================================================

                                                      

“오빠.. 어쩐 일이야?”

의혹 가득한 얼굴. 수찬은 그 모습에 실망했다. 그는 그녀가 활짝 웃으며 자기를 반갑게 맞아주길 바랐다. 그랬더라면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가족에게 소개시켜 줄 수 있을 텐데.

수찬은 이제껏 영희를 부끄러워하며 하대했던 자신의 모습은 쏙 잊고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

울컥한 그는 거칠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낡고 볼품없는 개량 한복을 거칠게 뜯듯이 벗겨내려하자 바로 버둥대며 반항해온다. 누구는 자기랑 못 자서 안달이 났는데 누구는 지 좋다는 데도 이런다. 

수찬은 화가 나 영희를 벽에다 갖다붙쳤다. 갑작스럽고 배려 없는 손놀림에 영희의 머리가 벽에 부딪혔다. 영희는 갑작스레 나타나 자신을 범하듯 안으려는 그가 원망스러웠다. 이렇게나 자기를 힘들게 하는 남자를 왜 만나고 있는 건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바보 같았다.

“오빠, 하지 마..”

“넌 그냥 가만히 있어!”

강압적인 수찬은 평소보다 배로 무서웠다. 평소에도 종종 강압적인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수찬은 죄책감과 분노, 혼란스러움이 뒤범벅되어 갈피를 잡지 못한 채로 영희를 범하듯 안았다. 

평소에도 섹스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던 영희는, 그가 어떠한 전희도 배려도 없이 다짜고짜 밀고 들어오자 너무 아팠다. 약간 젖은 상태에서도 아플 판인데 지금처럼 빡빡한 상태에서는 지옥이 따로 없었다. 영희는 입술을 꼭 깨물고 흘러나오려는 비명을 참았다.

“마영희, 너 그러는 거 아냐..”

분노에 콧김을 씩씩대며 움직이고 있던 수찬은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했다. 뭘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거야? 그건 내가 오빠한테 해야 할 말 아닌가?

억울하면서도 영희는 잇새 사이로 흘러나오려는 말을, 눈물을, 비명을 참았다. 그녀의 내부는 방망이로 휘저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평소에는 약간 느낄 법한 적이라도 있었는데, 오늘은 그마저도 없다.

자신은 이 지경인데도, 수찬은 느끼고 있는지 얼굴을 가득 찡그리고 연신 신음을 흘려대고 있다. 왜 한 쪽은 지옥을 맛보고 있는데 다른 한쪽은 천국을 맛볼 수 있는 건지 영희는 궁금했다.

“아.. 하... 영희야...”

폭발적인 사정감이 몰려오자, 수찬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영희의 이름이 나왔다. 

평소와는 달리 콘돔도 준비하지 못한 그는 앞뒤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녀의 안에다 사정했다. 

겨우 영희로부터 몸을 빼낸 수찬은, 자신이 초래한 처참한 사태를 그제서야 인지하기 시작했다. 엎드린 상태로 흑흑 흐느끼고 있는 영희. 그녀의 다리 사이로 정액이 주루룩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그것에 아차 싶었다가, 굉장히 서러운 영희의 모습에 한 번 더 아차 싶었다. 

도대체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걸까. 사과해야 하지만, 그의 몸 안에 뻣뻣하게 자리잡고 있는 경직성이 그것을 방해했다.

그는 머뭇대다 영희의 옷가지들을 주워 그녀에게 입혀주었다. 속으로 연신 그녀의 눈치를 살피느라 정액을 닦아주는 배려는 잊어버렸다. 수찬 딴에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위한답시고 한 행동이었지만, 너무 타이밍이 늦어 버린 데다 제대로 표현하지도 않았기에 영희에겐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영희는 요즘 자꾸 헛구역질이 났다. 점심시간, 친구 수현과 같이 밥을 먹고 있는데도 어김없이 구역질이 올라왔다. 웁! 입을 틀어막고 웩웩 거리다,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뛰어가는 도중에, 토사물이 살짝 그녀의 손바닥을 더럽혔다. 변기에 얼마간 토하고 손과 입을 씻는 사이에 식욕은 사라져버렸다.

“야, 너 임신 하냐?”

그녀의 건너편에 앉는 영희더러 수현이 킬킬대며 묻는다. 그 말에 영희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얼굴이 사색이 된다.

“진짜?”

수현의 표정이 아까보다 진지해졌다. 웃음기를 거둔 그녀가 영희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둔하고 성 지식이 없는 영희는 그냥 요새 몸이 좀 안 좋아졌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몸이 안 좋을 이유가 없는데 왜 이러지? 하며 걱정하기도 했었다. 그러고 보니 생리도 하지 않고 있었다. 영희의 얼굴이 점점 사색이 되어간다.

영희는 살살 눈치를 살피며 주변을 둘러본 다음,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 수현에게 물었다.

“내가 임신했을 수도 있는 걸까?”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떻게 해? 피임은 제대로 했어?”

“피임? 어떻게 하는 거야?”

“맙소사!”

영희의 순진무구한 표정에 수현은 기가 막혔다. 평소에도 좀 애가 얼이 빠지고 어리버리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영희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해지기 시작했다.

“나 임신이면 어쩌지?”

“임테기 써보자. 지금 나랑 약국 가.”

수현은 갑자기 밥 먹을 마음이 뚝 사라졌다. 그래서 급식판에 담긴 음식물을 수거함에 죄다 버리고, 영희와 함께 교문을 넘었다. 심각한 낯빛의 영희를 약국으로 데려가면서, 수현은 자꾸 한숨이 나왔다.

그녀는 ‘내가 피임만 제대로 했으면 넌 절대로 태어나지 않았을 거다.’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그 말을 하면서 한숨을 푹푹 쉬며 그녀를 원망스레 쳐다보던 엄마의 눈빛이 떠오르자 몸서리쳐졌다. 

수현은 수많은 남자와 동시에 사귀면서도 피임 하나는 확실히 했다. 

영희의 애인이라면서 학교에서는 찬바람 쌩 날리고 아는 척도 안하던 수찬. 그런 남자이니 영희 몸을 생각해줬을 리가 없다. 수찬에게 질질 끌려 다니는 영희가 측은해 헤어지란 충고도 해 줬던 수현이지만, 반쯤 동의하면서도 쉽사리 결정 못 내리는 영희가 답답해 그냥 신경을 꺼버렸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구나, 싶어 수현은 씁쓸했다.

영희는 수현이 건네주는 임신 테스트기를 들고 떨리는 마음으로 변기에 앉았다. 긴장해서일까, 소변이 잘 나와 주질 않는다. 한참을 용을 써 소변을 보고, 임신 테스트기를 적신 뒤 결과를 기다린다. 그녀의 심장이 두근두근 금방이라도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뜀박질 쳤다.

그럼 수찬이 오빠랑 내가 한 게 아이 만드는 일이었단 말이야? 임신하면 어떻게 하지.

영희는 다른 여고생들이 들으면 경악할 만한 생각을 하며 불안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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