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7. 이별 그리고 만남... (17/34)

#07. 이별 그리고 만남...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분노의 한계가 있을까?’

난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마다 그 차이는 좀 있을지 몰라도,

분노의 한계는 있다.

그날 새벽 난 그 한계를 넘어봤다.

‘무아지경...’

아무런 기억도 없었다.

분노도...

슬픔도...

어떤 생각도...

아침 햇살이 침대에 앉아있는 나에게 쏟아지기 시작하자,

눈이 부신 아침햇살에 정신이 돌아오면서 내 코에는 진한 피 비릿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그 피 냄세와 함께 다리쪽에 통증이 일순간에 전해지고 있었다.

고개를 아래로 내리자,

내 손에 쥐어진 볼펜이 허벅지를 찌르고 있었다.

거기서 흐른 피가 다리를 타고 침대를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이...이게 머...뭐지? 내...내가...언제...이런...’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 지기 시작했다.

난 이대로 있다가는 죽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힘겹게 몸을 이끌고 방을 나섯다.

계단을 내려가려고 하는데 누군가 황급히 집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최씨였다.

최씨는 부엌을 흘깃 보고는 바로 안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저...저 새끼가 왜?’

예정대로라면 최씨는 내일모래에 집에 오기로 되 있었다.

난 다시 방으로 들어가 도청기 이어폰을 귀에 꼽았다.

“사모님! 사모님!”

“최...최씨? 아니...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된거예요?”

“흑...흑...흑...”

갑자기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울음이 그치자 엄마가 사정 얘기를 최씨에게 털어놓고 있었다.

아빠의 소개로 만난 보험설계사에게 보험을 들면서 좀 친해지게 됐고,

그 보험설계사가 어느날 엄마에게 마약 얘기를 하면서 엄마에게 권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지만,

차츰차츰 보험설계사의 유혹에 넘어가 결국에는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 몇 번 손쉽게 약을 대주던 설계사가,

얼마전부터 약을 구할 수 없다면서 엄마의 연락을 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점점 다급해진 엄마는 결국 내 예상대로 마약을 구하기 위해 조폭들을 직접 만나러 갔다가,

강간을 당한 모양이었다.

마약을 하는 처지이니 신고도 못하고,

거기다가 강간을 하면서 동영상을 찍은 모양이었다.

이쯤되니 걱정스런 마음에 마땅히 하소연 할 곳도 없고 해서 최씨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엄마의 얘기가 모두 끝날때까지 최씨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위치가 어디라고 했죠?”

“그...그건 왜?”

“글세...위치가 어디냐구요!”

“**나이트...서...설마...찾아갈려고 그러는건 아...아니죠?”

“걱정 말아요...내가 어쩌면 사모님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최...최씨가 어떻게?”

“그런 걱정은 말고...우선 몸조리나 잘 하고 있어요...”

최씨는 알수없는 뉘앙스를 풍기며 집을 나갔다.

‘도...도대체...무슨 생각으로...’

나 역시 최씨의 의도가 궁금했지만,

지금은 내 상처가 시급했기에 서둘러 집을 나가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심한 상처가 아니라는 의사의 말에 치료를 받은 뒤 병원을 나왔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지금 내 다리의 상처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복수...

엄마를 강간하고 동영상을 찍어 협박하고 있는 조폭들 보다,

처음 엄마를 꼬셔 마약에 손을 대게한 보험설계사...

언젠가 집에 왔을때 얼핏 본 그 여자의 얼굴이 머리에 떠올랐다.

‘우리엄마 같이 순진한 여자를 꼬셔 마약에 찌들게 하다니...개같은년...가만 놔두지 않을꺼야...’

난 집에 들려 보험설계사의 사무실 주소를 적은뒤,

부엌에서 칼을 들고 사무실로 찾아갔다.

건물 밖에서 한시간여를 기다리자 점심시간이 됐는지 아줌마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난 그 많은 아줌마들 중에 우리집에 왔던 아줌마의 얼굴을 떠올리며,

한사람한사람의 얼굴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많은 아줌마들 속에서 유독 돋보이는 외모를 가진 아줌마...

우리집에 왔던 그 아줌마가 내 시야에 들어온 순간,

난 아무런 망설임 없이 아줌마에게 다가갔다.

옷 속에 감춘 칼에 손을 대고 다가가는 순간...

“엄마!”

내 바로 뒤에서 들리는 음성...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애가 나를 스쳐 그 아줌마에게로 달려갔다.

아마도 그 아줌마의 아들인 듯 보였다.

난 꺼내려던 칼을 다시 넣고 아줌마를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멀리서 보는 둘의 모습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나에게도 저런 날이 있었는데...’

‘나에게도...’

그렇게 첫 번째 복수의 시도는 실패를 하고 말았다.

아무생각 없이 길을 걸었다.

다리상처에서 다시 피가 올라오는지 옷 위로 피가 묻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아픔 따위를 느낄 머릿속에 공간은 없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길을 걷다보니,

어느세 내 앞에는 우리집이 보였다.

하지만 예전에 내가 느끼던 그런 집이 아니었다.

왠지 쓸쓸해 보이는 모습...

난 내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내 가슴속에 뭔가가 꽉 막힌듯한 이 느낌...

폭팔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럴 대상이 없었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을때,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으로 보니 들어오는 사람은 최씨였다.

최씨는 오른손을 붕대로 감은체 가방을 하나들고 집안으로 들어와서는 곧바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최...최씨...”

“이거...사모님 동영상 찍었던 원본이니까...이제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그...그게 무슨...헉! 소...손에...피...피가?”

“허허...그놈들...그냥은 순순히 안줍디다...”

“그...그럼?”

“쓸모없는 손가락하나 줬더니...테이프 줍디다...”

“최...최씨...”

순간 최씨의 말에 나 역시 놀라웠다.

도대체 최씨가 어떤 사람이길래 조폭들과 단판을 짓고 왔는지,

거기다가 우리 엄마를 위해 손가락 하나를 잘랐다니...

“이제 사모님은 아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흑...최...최씨...흑...흑...흑...”

“허허...누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구...잠깐만요...”

“흑...흑흑...”

“전 우선 병원에 가서 치료 좀 하고 올게요...사모님은 몸이나 추스르세요...”

그리곤 최씨가 방을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이렇게 고마운 생각을 갖게 됐는데...엄마는 더 하겠지?’

그렇게 엄마의 엄청난 사건은 일단 매듭이 지어졌다.

그날 이후 엄마는 마약을 끊고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 보였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최씨를 아빠보다도 더 극진히 대한다는 것...

거기다가 내가 집에 있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언제든지 섹스를 즐겼다.

심지어 아빠가 있는 시간에도 둘이 창고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곤 했다.

아빠의 부인이 아닌 최씨의 부인으로,

엄마는 내가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 될 때까지 그런 생활을 유지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를 수상히 여긴 아빠가 사람들을 시켜 뒤를 밟은 모양이었다.

대낮에 엄마가 최씨와 모텔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아빠는 다시 집안 곳곳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집에서 최씨와 섹스를 하는 장면들을 포착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아빠에게서 마음이 떠나간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빠에게 먼저 이혼을 요구했고,

엄마와 아빠의 이혼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그래도 약간의 양심은 남았는지 떠나는 날까지 엄마는 내 눈길을 피했다.

엄마가 떠나간 빈자리는 의외로 내게 커다란 구멍으로 자리 잡았고,

그 여파로 겨울동안 난 우울증에 시달리며 정신병원에서 치료까지 받았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미쳐버릴것 같은 생각에 정신을 가다듬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고, 떠들고...

마음속 한구석에 응어리를 간직한 채...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날,

아빠는 한 여성을 집으로 대리고 왔다.

설지연...

아빠보다 10살이나 어린 30대 중반의 나이...

글래머 스타일의 큰키에 늘씬한 몸매...

거기다가 샤프하면서도 섹시한 얼굴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매력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머릿속을 텅 비게 만들었다.

나 역시 잠시 그녀의 섹시함에 잠시 정신을 잃었을 정도였다.

아빠는 나에게 그 여자를 새엄마가 될 여자라고 소개시켜 줬다.

처음에 새엄마가 될 여자라는 말에 조금 의아해 했지만,

아빠의 재력을 생각하니 조금은 이해가 갔다.

“안녕? 니가 종석이구나...만나서 반가워...”

“네? 네...”

그녀는 부드럽고 맑은 목소리로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아빠는 셋이서 저녁을 먹자고 제의를 했지만,

그녀와 같이 있다간 심장이 터져버릴 듯한 내 마음을 숨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결국 난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거부를 했다.

그것이 그녀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비록 아빠의 돈을 보고 아빠에게 접근 했을지는 몰라도,

이쁘면 모든게 용서된다고 하듯,

그녀의 첫 인상은 내게 너무도 강렬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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