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회: 천사와 악마 그리고 인간... -->
“고,고마워...”
“뭐...?”
“고맙다고...도와줘서...”
“알긴하냐...?”
“...으응”
“쯧...! 그래, 아무튼 집에 가서 얼음으로 찜질하고 내일은 병원가봐. 덧날수도 있으니까.”
“알았어...”
-띵! 28층입니다.
고맙다는 말이 부끄러운건지 이 상황이 부끄러운 건지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주희의 모습에 혀를 차며 그녀의 집과 내 집이 있는 28층에 내려선 나는 주희를 업은 채로 주희네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띵동~!
[누구세요?]
“아, 미희누나! 저 진우에요. 강진우”
“야...! 내,내려줘! 이,이제 혼자서 충분히 집에 갈 수 있어...!”
“시끄러워 인마...!”
초인종을 누르자 주희의 부모님이자 친언니인 미희누나의 목소리가 인터폰을 통해 들려왔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뒤늦게 자신이 내 등에 업혀있다는 걸 깨닫고 내려달라고 발버둥치는 주희에게 한소리하고는 가만히 문앞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찰칵!
“오랜만이야 진우야! 그나저나 어쩐일로...?”
“아하하, 안녕하세요 누나. 다른게 아니고 이 녀석이 좀 다쳐서요.”
“응? 어머! 주희야!”
현관문을 열고 나를 반겨주는 미희누나의 모습에 싱긋 웃으며 등에 업힌 주희를 보여주자 미희누나가 깜짝 놀란 눈으로 주희를 살폈다.
“마,많이 다쳤어?!”
“아,아니야. 언니...! 그,그냥 다리가 조금 삐어서...”
“이,이게 어떻게 된거니, 진우야?”
걱정스레 자신을 바라보는 미희누나의 모습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주희의 모습이 성에 안찼는지 나를 바라보며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어오는 미희누나의 모습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뭐, 어릴 때처럼 덜렁대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삔거죠 뭐...”
“그,그래? 하긴...예전에도 주희가 덜렁대다가 넘어지면 진우, 네가 항상 업고 왔었지...?”
“하하, 그랬나요?”
“내,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확실히 어릴때에는 자주 그랬다. 주희, 이 녀석 지금이랑은 다르게 하도 덜렁거려서 넘어지기 일쑤라 종종 내가 업어다 주곤 했었다. 뭐, 정작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그보다 이제 내려줘!”
“아,아! 그래.”
미희누나랑 이야기를 나누느라 잠시 잊고 있던 주희가 바동거리며 내려달라고 하자 조심스레 주희를 내려준 나는 미희누나의 부축을 받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주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현관으로 나오는 미희누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호홋, 아무튼 고맙구나. 진우야”
“아니에요,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후훗, 그래. 아참, 나...삼개월 있다가 결혼해, 그때 혜영언니랑 같이 꼭 와주렴.”
-스윽...!
“아...!”
심플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스타일의 청첩장을 건네는 미희누나의 모습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누나가 건네는 청첩장을 받아들었다.
‘하긴...결혼할 때도 되셨지...주희랑 12살차이가 나시니까...’
10여년 전 주희와 미희누나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 24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고작 8살밖에 안된 주희를 키우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열심히 일하는 미희누나가 드디어 짝을 만나 결혼을 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미희누나의 성격이나 외모로 봐선 벌써 결혼하고도 남았을 텐데...부모님이 안 계셔서...’
솔직히 살짝 늦은 감이 있었다. 미희누나의 착한 성격과 아름다운 외모, 알뜰살뜰한 살림솜씨를 생각하면 벌써 결혼을 해도 두어 번을 했겠지만 부모님이 안 계시다보니 어린 주희를 키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결혼을 미루고 계신 것이었다. 특히나 결혼을 하고서 주희와 함께 살고 싶다는 말을 늘 해오던 터라 결혼이 더욱 미뤄질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아무튼 주희와 함께 사는 것을 받아들이고, 미희누나가 사랑하는 배필을 만나 결혼을 한다는 소리에 나는 싱긋 웃었다.
“축하해요. 누나, 결혼식장에 잊지않고 갈께요!”
“호호, 그래, 고마워”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는 미희누나.
확실히 누나는 33살에 결혼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흑단 같이 찰랑이는 머릿결이 허리 아래로 살랑거렸고, 반듯한 이마에 초승달처럼 고운 눈썹을 따라 길게 뻗은 오똑한 콧날, 그리고 그 아래 자리 잡은 순수하고 맑은 누나의 심성을 닮은 눈망울과 레드와인의 그것처럼 붉고 윤기나는 입술, 그리고 어릴 때부터 고생한 것과 다르게 마치 양갓집 규수처럼 잡티 없이 백옥 같은 맑고 탱탱한 피부가 어우러져 청순하고 정숙한 여성의 얼굴이다. 게다가 그녀를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
하늘하늘한 아이보리색 블라우스위로 보이는 가녀린 어깨선을 따라 자리잡은 풍만한 가슴이 블라우스를 뚫고 나올 듯 했고, 한팔에 쏙 들어올 것 같은 얇고 미끈한 허리라인을 따라 옆이 살짝 트인 암갈색 스커트위로 드러난 육감적이고 탱탱한 엉덩이와 걸을 때마다 살짝 살짝 드러나는 늘씬하게 뻗은 고혹적인 각선미가 그녀를 더 아름답게 하고 있었다.
“그럼,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이만 가볼께요. 누나”
“응, 그러렴, 아! 그리고 가끔 놀러와! 우리 주희가 옛날부터...”
“언니이이잇!!”
“아이코! 귀청이야...!”
미희누나가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에 주희가 예의 없이 소리를 버럭! 지르는 통에 미처 미희누나의 말을 잘 듣지 못한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여전하네 주희는...”
“으응? 아! 호홋! 뭐 그렇지...”
“그럼 안녕히주무세요.”
“그래, 조심히 들어가렴, 다음에 또 오고~”
“예~”
-스르륵...철컥!
따가운 귀청에 예쁜 얼굴을 살짝 찡그린 미희누나가 내 말에 피식 웃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나는 다음에 찾아뵐 것을 약속하며 미희누나의 배웅을 받으며 주희네 집 현관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몇 걸음 안걸어가 집앞에 도착한 나는 주머니 속에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찰칵...!
“다녀왔습니...”
“우아아앙~! 왜 이렇게 늦었어~! 얼른 밥줘어어어~! 배고파아아~!”
아니, 지옥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