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회: 천사와 악마 그리고 인간... -->
-따르르르릉!
“자! 오늘 강의는 여기서 마치겠어요. 다들 과제 잊지 말고 해오도록해요!”
“예에에!”
잊지 못할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강을 한지 벌써 한 달...
이제는 익숙해진 소리가 울려 퍼지고, 강단에 서있는 교수님이 강의을 마치는 말을 꺼내자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교우들을 보며 나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신학기에 들어섰지만 별로 달라진 건 없구나...’
처음엔 재수강이다 뭐다 시끄러웠고, 이제는 과제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며, 벌써부터 중간고사준비다 뭐다 해서 시끄러운 놈들도 있지만 결국 그것뿐. 내게 대학교 2학년의 생활은 대학교 1학녀, 신입생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아...! 달라진 게 있긴 하다. 그것은...
“저,저기 진우야...상담...좀 부탁해도 될까?”
“음..? 그래, 여기 앉아.”
평범했던 1학년 생활과 달리 지금은 이렇게 다른 사람 몰래 최면술을 이용해 같은 과 학생들에게 카운슬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 뭐가 고민이야?”
“으응...그게....”
나름 능숙하게 이야기를 꺼내는 나와 달리 안절부절한 모습으로 내 앞에 앉아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내는 여학생을 흘낏 바라보던 나는 이내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는 암시와 나에게 친밀감을 느끼도록 하는 암시를 걸어 그녀가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만든다.
“요즘 공부가 잘 안돼서...집중도 안돼고, 자꾸 다른 일이 하고 싶어져서 그렇거든...과연 이공계계열학과를 선택한 게 잘한 건지 고민도 되고.”
“...그래?”
이렇듯 약간의 최면으로 카운슬링을 하고자하는 친구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그들의 고민을 조금이나마 해결해준다. 어차피 같은 과의, 같은 또래의 상담이지만 약한 최면으로 인해 나에게 마음껏 자신들의 고민을 털어놓는 얘들은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언제나 고마워하면서 떠나간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걸었던 최면을 풀어주며 조금씩, 조금씩 능숙해지는 최면술에 고마워하면서 그들을 배웅하고 말이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의 고민 상담이지만 그것으로 꽤나 만족하는 애들을 보내며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도서관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벌써 한 달째...인가? 혜림누나와 만나지 않은 것이...?’
내가 이렇게 어설픈 카운슬링을 하는 이유가 저곳에 있다.
내가 한 달 동안 가지 않은 도서관에...
그렇다. 나는 이렇게나마 아이들의 고민상담을 해주며 내가 저지른 죄 값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직접적인 피해자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지 아닌지도 모른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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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들 다음 강의 때 봐요~!”
“예에에~!”
-드르르륵!
2학년이 되면서 처음 알게 된 물리학교수님의 상냥한 인사말을 끝으로 요란한 책걸상소리를 내면서 강의실을 나서기 바쁜 얘들을 보며 그 부산함이 싫어 뒤늦게 책가방을 정리하던 내 귀에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같은 과 남학생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야야, 봤냐? 오늘 교수님 빨간색 속옷 입은거?”
“진짜야?! 캬아~! 섹시한데?! 대담하게 하얀 블라우스 속에 빨간색 브래지어라니...!”
“크으! 그뿐이냐?! 얼굴도 예쁘지 몸매도 빵빵하지...! 완전 죽여준다. 죽여줘!”
“하긴, 나도 우리나라사람 같지 않은 그 거유(巨乳)에 반했다. 크큭!”
“교수만 아니면 그냥...!”
“헹! 퍽이나! 김지희교수님이 우리 같은 대학생을 쳐다보기나 하겠냐?!”
“하,하긴...!”
이번에 우리 대학에 새로 부임한 교수의 외모를 평가하며 21살, 한창 혈기 왕성한 나이답게 미모의 여교수를 떠올리며 침을 흘리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물리학교수가 꽤나 젊고 예쁘지...’
새로 부임한 교수, 물리학을 담당하고, ‘김지희’라는 이름을 가진 여교수는 그들의 말대로 한국인답지 않은 글레머러스 한 몸매와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여성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30세의 능력 있는 미모의 여교수가 고작 앞날이 보장되지도 않은 대학생을 좋아할 일은 없다. 게다가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김지희교수가 아무리 예쁘다한들 결국 그것뿐.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뭐, 내가 수면에 대한 욕망을 떨쳐버리지 않았다면 김지희교수에게 최면을 걸어 보음보양경을 수련해 수면을 취했겠지만 이미 나는 그런 마음을 버린 지 오래다.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텅 빈 강의실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엔 그렇게 느려 터졌으면서 하교할 때는 엄청 빠르구만...!”
교수가 강의실을 나간 지 불과 3분여 만에 모조리 빠져나가버린 학생들을 떠올리며 느긋하게 강의실을 빠져나가려던 찰나.
강의실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끼이익...!
“........?”
조심스레 열리는 강의실 문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누군가 물건을 놓고 가서 찾으러 왔나 보다하고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저물어가는 태양이 붉게 물들이는 노을빛을 받고 아름답게 빛나는 금빛머리카락과 파란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인상적인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H,Hi...!"
아름답게 빛나는 금빛머리카락과 파란 에메랄드빛 눈동자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번에 학교 측에서 재학생을 상대로 ‘영어회화’를 가르치기 위해 직접 영입한 외국인교수인 마리아교수가 서있었다.
열려진 강의실문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어색하게 나에게 인사를 하는 마리아교수의 모습에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마리아...교수님? 여긴 어쩐일로...?”
“um...! Me...진우...한테...um...사,사담? 상담? 받으러 왔어요.”
“에엑?!”
뜻밖의 등장에 아직 한국어가 서투른 마리아교수님을 위해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질문한 나는 교수님의 어설픈 한국어에 깜짝 놀랐다.
한국어가 어설프긴 했지만 강의실을 찾아온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마리아교수님의 대답. 그것은 놀랍게도 나에게 상담을 받으러 왔다는 소리다. 하지만...
“하하! 무슨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저한테 상담을 받으러 오셨다니요. 저는 고작 얘들 고민상담을 해주는 수준이라고요. 교수님.”
내가 뭐 전문 상담사도 아니고 고작해야 얘들 고민상담, 아니 정확히는 고민들 ‘들어주는’수준인 것을 도대체 무슨 소리를 어디서 어떻게 듣고 왔는지 자뭇 진지한 마리아교수님의 모습에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마리아교수님은 여전히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NO, No 나 소식 많이 들었어요. 진우, 상담 잘해요. 학생들 Um...건? 곤? 아! 권, 해 줬어요.”
“아...!”
아마도 마리아교수님과 친하게 지내는 학생들 중에 나한테 고민상담을 했던 녀석이 있었나보다.
하지만 성인의 고민과 철없는 대학생들의 고민이 같을 수는 없는바. 내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교수님을 바라보자 마리아교수님이 울상을 지었다.
“안돼...요?”
난감하다는 내 표정을 보고 잔뜩 실망한 표정을 짓는 마리아교수님의 모습에 나는 잠시 갈등을 하다가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근처의 책상에 책가방을 내려놓고 교수님에게 자리를 권했다.
“하아아...! 알겠어요. 해드릴게요. 이쪽으로 오세요”
“Thanks 진우!”
“예,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