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17/71)

<-- 7 회: 채음지체...? -->

커다란 모니터 화면에 비치는 험악한 인상의 사내. 

그는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인간말종’, 혹은 ‘인간쓰레기’라는 소리를 듣는 사내다. 

천성이 그런 건지 후천적인건지 알 길이 없지만 중학교도 폭행사건으로 중퇴, 그 이후 양아치로 살다가 건달패에 섞여 어둠의 자식, 즉 조직폭력배의 행동대장이 되어 살인, 살인교사, 인신매매, 강도, 강간등 수많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조직의 보스가 무슨 짓을 시켜도 군말 없이 행동하는 그를 귀하게 여겨(쓸모있게여겨서) 어리버리 한 조직의 신참에게 죄를 돌리는 식으로 단 한 번도 법의 처벌을 받지 않은 자였다.

 그렇기에 나는 그를 나의 ‘마루타(인체실험대상)’으로 삼았다. 

정의감이나 허술한 법에 대한 분노 때문이 아니라 그가 저지른 죄가 너무 많기에 내 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나마 덜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헉?! 누,누구...!!] 

화면에 들어온 사내는 어울리지 않게 득도한 고승처럼 눈을 지긋이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가 자신의 앞에 나타난 희끄무레하고, 거무스름한 빛무리에 퍼뜩 눈을 뜨고 당황했다.

 그런 그의 반응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지 희고 검은 빛무리가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것처럼 대치하고 있다가 갑작스레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으아아악!! 뭐,뭐야! 아,안돼! 사,살려줘어어어!!] 

-우드득! 우득! 

-츠즈즈즈즉...! 

자신에게 달려든 빛 무리를 떨쳐내려고 이리저리 손을 휘두르는 사내. 

하지만 그 무의미한 저항에 사내는 소스라치게 놀라다가 이내 처절한 비명소리와 함께 사지는 물론 온몸의 뼈마디가 기형적인 각도로 꺾이며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마치 쪼그라든 미이라처럼 삐쩍 마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르르르...! 

사내가 한줌 먼지가 되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희고 검은 빛무리가 사라졌다. 

그렇게 모니터 속의 영상은 끝이 났다. 

나는 한 ‘사람’의 죽음 목격하고,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재차, 삼차 확인하고 나서야 동영상파일을 삭제했다. 

“역시...무턱대고 익히면 안 되는 거였군...” 

그렇다. 

나는 지금 내가 얻은 ‘채음진경’을 인간을 이용해 테스트 해본 것이다. 그것도 내 목숨이 아닌 타인의 목숨으로! 

그 결과 채음진경은 함부로 익혀선 안 되는 것으로 결론 내려졌고, 최면술은 이미 검토가 끝난 상태다. 

“최면술이야 각개 각 분야에 많이 적용되니 어려울 게 없었지만 채음진경이 문제로군...게다가 채음진경을 이용한 최면술이 저술된 내용대로라면 어마어마한 파급효과가 날텐데...흐음...역시 어설프긴하지만 기존의 채음진경을 모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는 것 인가...?”

무려 두 달간의 연구 끝에 도달한 결론이다. 

두 달, 즉 61일이지만, 그것은 잠을 자는 일반인들에게 해당되는 일. 불면증에 걸린 나에게는 넉 달이라는 시간이다. 그것도 식사와 배변활동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투자하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쥐어짠...

“뭐,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별로 어려울 것도 없지만...문제는 안정성인데...” 

채음진경을 연구해본 결과. 

채음진경의 기본원리는 여성의 음기(陰氣)를 흡수해 내가 가진 양기(陽氣)를 중화시키며 제혼력(帝魂力)이라는 힘을 키운다. 

제혼력(帝魂力), 그것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의 영력(靈力)을 높여 보다 쉽게 최면을 걸 수 있게 만들고, 나아가 쉽사리 최면이 풀리지 않도록 하는 힘이다. 문제는 이 제혼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여성의 음기를 흡수해야하고, 그것을 내 양기와 섞어 제혼력으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정작 문제는...

“힘의 공백으로 인해 중간계에 균형에 민감한 천사와 악마들이 채음진경이 부활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린다는 거지...그 때문에...” 

모니터 속 사내가 한줌의 먼지가 되어 사라진 것이다. 여성의 음기를 ‘흡수’만을 해서 자신의 양기와 섞어, 제혼력을 늘리다가 말이다. 

즉, 제혼력을 키우기 위해 무분별하게 여성의 음기를 흡수해 세상에 존재하는 음과 양의 조화를 깨뜨리면 나도 모니터 속의 사내처럼 죽고 말 것이다. 한줌의 먼지가 되어서.

 나는 그런 사실을 깨닫고 고민에 잠겼다. 

“가져가는 만큼 되돌려주면 어떨까...? 채음진경을 모르는 일반인이라면 선천적인 자정능력으로 인해서 내가 준 양기가 음기로 변하지 않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무런 위험 없이 제혼력을 높이고 내가 가진 양기를 해소할 수 있겠지만...하아! 정확한 것은 역시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나...?”

-풀썩...!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복잡해지는 머릿속. 

생각 같아서는 모니터 속의 사내처럼 또 다른 ‘마루타’를 만들고 싶었지만 감성이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 내 스스로의 욕심으로 희생되는 생명은 하나면 족하다. 아니 차고 넘친다.

 결국 남은 것은 둘 중 하나... 

“스스로 익혀서 실험하던가, 아니면 그냥 불완전한 최면술에 만족하며 불면증에 시달리던가...”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나는 쓰게 웃었다. 

“빌어먹을! 책에 수면의 기쁨을 쓰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민 따위는 하지 않았을 텐데...!” 

망할 놈의 인간이 수십 년간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비록 10분이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수면에 들었을 때의 기쁨을 그렇게 상세하게 쓰지 않았더라면, 점차 일반인처럼 잠을 잘 수 있게 된다는 말을 안 썼다면 이런 고민 따위 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책의 저자는 그걸 써버렸고, 나는 읽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수면을 갈망하고 있었다. 

“일단은...새로운 채음진경, 아니지 채음보양(採陰補陽)? 으음, 이것도 아니고 그래, 보음보양경(補陰補陽經)을 외워두기나 하자. 최면술도 아직은 초보단계라 끽해야 감각을 속이는 수준이고, 나는 애인도 없으니까...”

결국 기회가 생기면(?) 직접 실험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그 생각을 끝으로 ‘최면술’과 새롭게 만들어낸 ‘보음보양경(補陰補陽經)’에 대한 연구를 마쳤다.

“아그그...! 그럼,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나 갔다주러 갈까나?”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대충 씻고서 최면술과 채음진경을 연구하느라 빌려온 전문서적들을 잘 챙겨 도서관으로 향했다. 때는 겨울방학이 끝나기 보름 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