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회: 채음지체...? -->
-탁...!
“후우우...! 다...본 건가?”
장시간의 독서로 뻑뻑해진 눈을 비비며 책을 덮은 나는 상념에 잠겼다.
‘천사와 악마의 싸움이라...정말 이 세계에 그런 것 들이 존재하긴 하는 건가...?’
너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을 슬쩍 바라본 나는 슬며시 책에 적혀있던 내용을 떠올렸다. 너무나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지만 상세한 설명과 묘사, 그리고 간혹 들어가 있는 삽화들로 인해 그것이 ‘저자의 망상(妄想)’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이 책에 담겨져 있었다.
“결국...천사와 악마는 인간들 틈에 섞여 싸우고 있다는 것인가...”
정확히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선(善)과 악(惡)의 혼재를 원동력으로 서로를 간섭할 수 없는 천계(天界)와 마계(魔界)에서 빠져나와 이 세상 어딘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 책의 저자(著者)는 나와 같은 지독한 불면증을 지녔던 사람...!’
흥미로운 점은 그뿐만 아니라 이 낡은 책의 저자는 나와 같은 지독한 불면증을 지녔던 사람이었다. 처음 그 사실을 알고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을 느꼈지만 그것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경악과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 이유는 바로...
‘채음지체(採陰之體)라니...무슨 말도 안돼는 소리야..?’
저자가 자신이 불면증임을 밝히며 그것을 치료해보고자 연구하던 중 밝혀낸 사실.
그것은 바로 무협지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로, 여성의 음기(陰氣)를 취해야 ‘불면증’에서 벗어 날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의 말을 대충 요약해보자면 나와 ‘그’가 불면증에 걸린 이유는 선천적으로 양기(陽氣)와 성욕(性慾)이 일반인에 비해 수십, 수백 배는 높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그’가 말하는 양기(陽氣)는 보통 떠올리게 되는 ‘태양지체(太陽之體)’니 뭐니가 가진 육체적인 양기(陽氣)와 달리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양기(陽氣) 즉, 정신력에 해당하는 양기(陽氣)였다.
육체적인 양기(陽氣)야 흔히 무협지에 나오는 ‘태양신공(太陽神功)’이나 뭐 그런 류(流)의 심법으로 다스릴 수 있지만, 정신적인 양기(陽氣)는 그런 것으로 다스릴 수가 없었단다.
나와 그가 가진 정신적인 양기(陽氣)는 몸 밖으로 표현 할 수 있는 ‘외적인 힘’이 아니라 정신(情神), 즉 ‘내적인 힘’에 해당하는 무형(無形)의 것이기에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그는 크게 낙담하여 ‘불치병’치료에 대한 연구를 포기하려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단다.
그것은 바로 정신력의 외적인 힘으로 표출 할 수 있는 이들!
즉 염력(念力)을 사용한다거나 텔레파시를 한다거나 하는 등의 이능(異能)을 가진 이들이었고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들을 찾아가 이능(異能)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단다. 하지만...그런 소문난 이능력자들의 절반은 사기꾼으로 밝혀졌고, 나머지 절반의 반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이들이었기에 그를 가르쳐줄 것이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남은 이들은 스스로 수련(修鍊)을 해 이능을 지니게 된 사람들이었는데 아쉽게도 그들 모두가 심산유곡에 틀어박혀 홀로 수련에 정진하는 이들이라 쉽게 만날 수도 찾을 수도 없었다.
결국 모든 희망이 사라진 그는 절망과 실의에 빠져 ‘단 일분이라도 잠들고 싶었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40여년간의 불면(不眠)에서 벗어나 영원한 잠에 빠져들려고 했다. 그때...
어디선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크나큰 절망과 좌절, 그리고 하늘에 대한 원망이 풍기는 달콤한 냄새를 맡고 이 세상에 현신(現身)한 악마가 자신을 세상에 나오게 해준 대가라며 그에게 그가 그토록 원하는 것을 던지듯이 주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단다.
악마가 그에게 던지듯이 주고 간 것은...
‘최면술(催眠術)과 채음진경(採陰眞經)...’
정신적인 양기(陽氣)를 외부로 표출해 양기(陽氣)를 다스릴 수 있는 최면술(催眠術)과 여성과의 성교(性交)로 양기(陽氣)식힐 수 있는 채음진경(採陰眞經)이었다.
비록 악마가 주고 간 것이지만 아무런 대가 없이 주고 간 것인데다가, 그가 그토록 바라 마지 않았던 것을 얻었으니 그가 어찌 그것들을 익히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아무런 대가 없이 그 두 서책을 주고 간 악마의 계략이었음을 그는 알지 못했다.
'결국 익히지 말아야 할 것을 익힌 그는 공적(公敵)이 되어버렸고, 악마와 천사들의 싸움에도 휘말리게 되었지...!‘
그가 두 서책을 익히기 위해서는 최면술과 채음진경의 실험대상이 있어야 했고, 그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와 서로 사랑하고 있던 연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것을 펼쳤다. 하지만 그것이 악마의 함정임을 그는 몰랐다.
악마가 준 최면술과 채음진경은 정숙하고 현숙하던 그의 연인을 희대의 요녀(妖女)로 만들어버렸고, 그 또한 희대의 색마(色魔)로 만들어버렸다. 한 쌍의 요녀와 색마가 되어 부녀자를 겁탈하고, 남성을 현혹하여 남녀의 정기를 갈취하는...그런 요괴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타락한 그들은 점점 더 큰 쾌락과 정기를 원했고, 결국 천사와 악마들에게까지 손을 뻗기에 이르렀고, 그로인해 인간은 물론 천사와 악마마저 적으로 돌려버린 그들은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도망쳤다. 하지만 단 두 명이서 그들을 막기에는 역부족...
결국 천사와 악마들보다 피해가 큰 인간들에게 사로잡혀 그의 연인은 무참히 살해당하고, 그는 거세를 당하고는 인간들이 ‘무간지옥(無間地獄)’이라 부르는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렇게 거세를 당함으로서 모든 힘을 잃자, 예전의 냉철한 정신이 돌아온 그는 뒤늦게 이 모든 것이 자신에게 두 책자를 건네준 악마의 계략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는...두 책을 익힘으로서 인간세상을 크게 어지럽혔고, 꽤나 많은 수의 천사와 악마를 죽였으며, 수많은 인간들에게 악마들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이너스적인 감정을 잔뜩 심어주어 악마가 인간 세상에 더욱더 많이 현신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그는 분노하며 어떻게든 자신을 이렇게 만든 악마에게 복수하기 위해 절치부심했고, 그 결과...
[이 책을 발견한 이라면 필시 나와 같은 ‘채음지체’의 사람일 것이다. 부디...연자여...나의 복수를...이루어다오...]
‘...이 책을 남긴거지’
악마가 주었던 두 가지 책자를 개량하고 개량해 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막강한 위력을 내는 한편 악마들에게 치명적인 ‘제마(制魔)의 공능’과 ‘항마(降魔)의 공능’을 지닌 것으로 탈바꿈 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일대기와 천사와 악마들에 관한 이야기, 그들의 약점 등을 기록하고 말이다.
“뭐...복수는 둘째 치고라도 ‘불면증’을 벗어 날수 있다라...흐으음...!”
아무런 연관도 없는 그를 위해 고작 동병상련의 정으로 그의 복수까지 해줄 정도로 나는 그리 착한 놈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가 새롭게 개선한 ‘최면술’과 ‘채음진경’에 관심이 갈 뿐...그의 절박한 심정과 죽어가면서까지 이렇게 책을 남겨 자신의 복수를 이루고 싶은 마음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게다가...
“이 책이 도서관에 있을 정도면 이미 누군가가 이 책을 보았다는 소리지...그렇다는 것은 누군가 나 대신 그의 복수를 해준 놈이 있었겠지, 보아하니 나처럼 복수를 하지 않을 놈들을 위해 책이 있던 장소에 모종의 안배를 해둔 것 같은데 말이야...”
이 낡은 책이 도서관에 처박히기까지 과정을 생각한다면 굳이 내가 복수를 안 해도 상관없다. 억지로 복수를 시킨다거나 하는 안배 등은 이 책을 최초로 발견한 녀석이 전부 받았을 테니까...!
결국 내가 걱정할 것은...!
“과연 이 책에 적힌 것들을 내가 익혀도 되느냐인데...”
무턱대고 이것들을 익혔다가 책의 저자처럼 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기에 망설여졌다. 하지만...
“훗...! 뭐 어차피 남는 건 시간인데 혼자 연구해 보면 되겠지...!”
나에게 남는 것은 어차피 시간!
지독한 불면증으로 인해 매일을 홀로 밤새야 하는 나에게는 그따위 것은 일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 책이 작성된 시대와 다르게 지금은 도서관이라는 것이 있고, 전문서적이 있으며, 인터넷이라는 녀석이 있다. 즉 이것들을 파헤치고 또 파헤치면 결국 이것이 위험한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자아...그럼 어디 시작해볼까...?”
새벽 4시 38분...모두가 잠들어 있는 이 시간...내 인생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물건이 수중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