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71)

"아빠..요새..많이 힘드시죠..." 

"아니..매일 노는데..뭐가 힘드냐..." 

언제나 아버지는 이런 식이다..동문서답형 인간..모르겠다..어떤때

는 답답하기는 하지만..때로는 이런 아빠가 편할때도 있다..힘들

죠...?? 그랬는데..응..힘들어 죽겠어..라고 한다면..그것도 곤란한 일

인 것이다. 

뭔가..편하게 할만한 이야기 꺼리가 없나... 

"동주네 누나 말이예요..." 

"응..서연이...갠..왜..." 

"어디서 일해요..." 

"진성기업 다닌다고 하더라..." 

"아..역시..." 

"왜...그건.." 

"아뇨..그냥..." 

"세상일이라는게..참 묘한거야..." 

"예..뭐가요..." 

"옛날에는 그 이동준이네가..한민호..그러니까..한동주 알지...니 동

창...그 아버지가 한민호다..아무튼.. 그녀석네..머슴이었거든..." 

"머슴요..." 

"그러니까..말하자면..긴데..." 

"에이..말 꺼낸김에 해주세요..." 

-계속- "그러니까..니.. 할아버지때..일이야..사실은 니 할아버지하고..

그 누구냐..니 동창..있잖아..이동준이..아들말야.." 

"준석이요.." 

"그래..니 할아버지하고 준석이 할아버지하고.... 둘다 한동주인가..

그녀석...할아버지..음..할아버지는 아니고..그 증조 할아버지겠구

만..." 

"꽤나..복잡하네..." 

"복잡하냐..쉽게 말해주지...일제 시대였다..우리나라를 쪽빠리 놈들

이 지배할때였지..한동주네..증조 할아버지는 그때만해도..이동네..

최고의 부자였어..이동네..땅 절반이 그집 꺼라는 말이 있었으니

까.." 

아버지는 한 번 말을 꺼내자..마치..그 시대에 살던 사람처럼 얘기

하기 시작했다.. 

"니 할아버지하고..준석이 할아버지는 그 집 머슴일을 하고 있었

는데..." 

"잠깐..할아버지가 머슴이라뇨..지난번엔..대대로 우리집은 양반집

안이라고 했잖아요.." 

"흠흠...그..그건..원래는 양반인데..그때..좀 가세가 기울어서..아무

튼..머슴이라고..해도..대대로 종살이를 했다는게..아니고..그냥..그집

에서..말그대로..머슴일을 했다는 거야..." 

"아..뭐..그게 중요한건 아니니까..그래서요.." 

"아무튼 니 할아버지는 그 집에서..머슴살이..뭐..머슴도 아니고..그 

비슷한 일을 했었는데..그러던 어느날이었다..동주네 할아버지지..

그 집 도련님이었던 동주할아버지에게 징집 통지서가 날아왔어..." 

"강제징용 말인가요.." 

"그래..강제 징용 통지서였어..그때..동주 할아버지는 동경에서 공

부를 하다가..방학이라 잠깐 고향에 돌아와 있을 때였어...듣기로는 

잘생기고 똑똑한 분이었다고 하더구나..." 

잘생기고 똑똑했다고..그러고 보니 한동주도 얼굴은 그만하면 잘

생긴 편이고..공부도 제법하니 똑똑한 편이기는 했다.. 

"아무튼..외동아들에 집안의 장손이기도 했었고..그게 아니더라도..

한 번 가면..살아 돌아오기 힘든 전쟁터로 가야하는 일이니..집안

에서는 난리가 났었지..." 

"흠.." 

"그래서..어떻게 하면 징용을 면해 볼까..여기저기 알아보기 시작

했지..워낙 부잣집이니까...돈을 써서라도 피해보려고 했었던 거야..

하지만..전쟁중이라..왠만한 연줄로는 징용에서 빼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어..." 

"방법이라.." 

"징용 대상자 대신..다른 사람을..대신 보내는 방법이 있었지..그 

당시에는 그런 일이 많았다..징용 대상자 대신 자기가 그 사람이

라고 속이고 들어가는 거지.." 

"하지만..죽을 지도 모르는 전쟁터에..대신갈 사람이 있었을까요.." 

"가난하던 시절이다..하루종일 죽도록 일해도..끼니를 굶고 사는 

사람도 많았어..대부분이 자기 땅이라곤,..한뼘도 갖지 못한 소작농

들이었다...너희 할아버지도 그런 사람이었고..." 

"한부자집에서는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지..한부자네라고..그 집에

서는 자기 집에서 일하는 사람중에 누군가가 동주 할아버지 대신 

일본군에 가주기를 바랬어..대신 가주기만 하면..큰 보상을 해주겠

다면서..." 

"보상요.." 

"땅이다..땅이 전부였던 시절이었어..더구나...대다수의 사람들이 농

사를 짓던 시절이었어..지금처럼 아파트 짓고 땅투기하는 그런 땅

이 아니었다..피땀 흘려가며.. 땅을 일구어..농사를 짓고 거기서 나

오는 곡식으로 사랑하는 가족들을 배불리 먹일수 있던 진짜..땅이

었다..." 

"그럼..할아버지는..." 

"자기를 보내달라고..자청을 하셨지..그때는 피붙이 하나 없던 몸

이셨어...그래서..살아 돌아오면.. 전쟁터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고 돌아오면..그 대신...저기..너도 알지..진성 스포츠 센터..자

리..." 

"아..거기요...아니..그럼..그게..우리땅이었나요..." 

"아니..중간에 말끊지 말고..계속 들어라..." 

"할아버지는 돌아오면..그 진성 스포츠 센터 자리의 옜날에는 논

이었지..그 논을 받기로 했었어...하지만 결국은 받지 못했다..." 

"아니 왜요...한부자가 땅을 주지 않았나요..." 

"그게 아냐...할아버지는 일본군에게 여기저기 끌려다니다가 저 멀

리 서태평양의 팔라우까지 가게 되었지..거기서도 죽을 고생을 하

시다가..." 

"그럼..할아버지도 전투에 참가하신 건가요..." 

"흠흠..그게..그러니까..그건 아니다..." 

"아니..전쟁터에서 죽을 고생을 하셨다면서요..." 

"그러니까..그게..할아버지는 원래 손재주가 많은 분이셨지...그래

서..이발 기술도 가지고 있었는데..거기서도 그 일을 했다..." 

"이발병요...??" 

"그래..실력이 좋아서..간부 이발병이었지...주로..머리깍고 구두닦고 

그런 일을..흠...아무튼..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기신건 확실한 일

이었지..." 

"아.대충 알것..흠...흠..." 

"어쨌든 뭘 했냐가 중요한게 아니라..강제 징용이었고..쪽빠리들에

게 갖은 수모를 당했다는 게 중요한 거야..너도 잘 알잖아..우리집 

남자들 특성...자존심 빼면..시체잖아..그런데..거기서..머리나 깍고..

구두 닦아주고...얼마나 맘 고생이 심했겠니...안그래...차라리..전쟁

터에서 총쏘는게 낮지..." 

"글쎄요...전..잘..." 

"거기까지 하고..아무튼 전쟁이 끝나고..일본도 패망하고...그제서

야..겨우겨우 고향으로 돌아왔는데..한부자네는 이미 망해버린거

야..." 

"망하다니요..그렇게 큰 부자였다면서요..." 

"할아버지도 몇 년 만에 돌아온 거라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마

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대충 이런 얘기였단다...할아버지가 한부

자네 도련님 대신 일본군에 끌려가고..얼마 후에..도련님도 어디론

가 사라져 버렸대.. 

그리고 한 2년 동안 보이지 않다가..어느날 컴컴한 한밤중에 한부

자네 집에 다시 나타났다는 거야..." 

"한밤중에요..." 

"그래..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말이야...나중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사라진 2년 동안 한부자네 도련님은 그러니까..동주네 할

아버지는 독립 운동을 했었다는 거야...그러다가..군자금이 필요해

서...다시 아버지를 찾아온거지..." 

"아..동주네 할아버지가 독립군이었다니...대단한데..." 

"한부자도..지주이기는 했었지만..그렇게 막 되먹은 인간은 아니었

다..땅을 유지하고 재산을 지키려고 일본놈들에게 뇌물도 간간히 

주고는 했지만..근본적으로는 왜놈들을 싫어했지..그래서..아들이 

독립군이 된걸 자랑스럽게 생각했어...그래서..군자금을 달라는 아

들에게...넉넉히 군자금을 마련해줄 생각이었지" 

"돈을 마련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했고...그동안은 집안에 동

주 할아버지를 숨겨 놓을 생각이었어...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

두 오래전부터..일하던 심복들이니..안심을 한 거야..." 

"그런데..." 

"그런데요...???" 

"한 놈이 배신을 했다..." 

"혹시..준석이 할아버지..." 

"맞다..그놈이었어...그 집안 내력이지 약삭빠르고...의리 따위는 모

르는 인간들이다...우연히 한부자와 동주 할아버지가 하는 이야기

를 엿듣고는 몰래..동네..지서에...신고를 했던 거야..." 

"으이구...역시나..씨는 못 속이는군...." 

"그때..지서에서...순사인가.. 뭔가를 하던 놈이 스즈키 겐조라는 놈

이었다..원래는 조선 사람이었는데..동네에서 제일 먼저 창씨 개명

을 했던 놈이었지...본명은 오창식...지금 뭐냐...우리 지역구 국회의

원...오형우씨 알지..그 사람 애비되는 사람이지...." 

"예...그럼 명진이 할아버지...세상에..." 

세상은 돌고 돌고 역사는 반복된다더니...옜날이나 지금이나..젠장.. 

"아무튼 그 두 놈이 작당을 하고는 동주 할아버지를 잡아들인거

야...그리고는 지서에 가두어 놓고는 갖은 고문을 했었나봐..." 

"저런 죽일놈들..." 

"그뿐만이 아냐...원래..독립군이면..정치범이라..그냥..상급기관으로 

넘기면 될일이었지만..그놈들 꿍꿍이는 그게 아니었어...둘이 짜고..

한부자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협박이요..." 

"독립군 활동을 했으니...한 번 잡혀가면..살아 돌아오기 힘들었어...

동주 할아버지는 한부자네..외동아들이자..장손이었다..한부자에게

는 무엇보다 소중한 자식이었고..잘못하면 대가 끊길지도 모르는 

일이었어..." 

"아니..뭘...어떻게..." 

"사랑하는 아들의 목숨을 살려주는 댓가로...한부자의 전재산을 요

구했다...." 

"헉..그래서..모두 뺏겨버린 건가요..." 

"별수 없었지...매일같이 한부자를 불러놓고..그 앞에서..동주 할아

버지를 무자비 하게 고문하고는 했어...아버지로써..견디기 힘든 정

말 상상하기 힘든..그런..고문이었다..." 

"개만도 못한놈들...." 

"한부자는 아들의 고통을 더 이상 볼수가 없었지...하긴 사람 목숨

이 먼저지..돈이 무슨 소용이냐...한부자는 미련없이 전재산을 그 

두 놈들에게 양도해 주었다...." 

"그뿐이 아니었어..동주 할아버지에게는 윤씨 부인이라는 아름다

운 부인이 있었다...그런데..어느날..남편을 면회온 윤씨 부인을 그 

오창식이란 놈이 겁탈을 했어..그것도..남편이 보는 앞에서 말야..." 

"이..씨..개...으휴..." 

"한 번이 아니었어..남편을 죽이겠다고 협박을 해서..그 후로도 감

방안에서..수도 없이 겁탈을 한 모양이야..나중에는 준석이 할아버

지까지 가담했다고 하더군...아무튼 윤씨 부인은..." 

"어떻게 됐죠.." 

"나중에..배가 불러오기 시작했어..결국은 나무에 스스로 목을 매

었다..." 

"세상에 어떻게...." 

" 그러면..동주 할아버지는 어떻게 되었죠..." 

"풀려났어...반 병신이 되기는 했지만..." 

"저..저런..." 

"하지만..아버지..그 후에..독립이 된 후에..쪽빠리들이 다 쫓겨간 

후에는요..그때..다시 재산을 찾지는 못했나요...." 

"그게 더 기가막히지..." 

"기가막혀요...???" 

"그 일이 있고 얼마 안 있어 전쟁은 끝났다.. 왜놈들이 다 쫓겨가

고..나서...니 할아버지도 막 팔라우에서 돌아왔을 무렵이었어 ..한

부자네 일을 동네 사람들에게 들은 너희 할아버지는 그 두놈...들

을 죽여버리겠다고...몽둥이를 들고는 두 놈들은 찾아 다녔지만..이

미 그 두 쥐새끼들은 어디론가 몸을 숨겨 버린 후였다...하지만..그

때까지도 할아버지는 의심하지 않았어..억울하게 빼앗긴..한부자네 

재산은 당연히 되찾을 것이고..그러면..할아버지가 약속받은 땅도 

받을 거라고..." 

"못받았잖아요..결국..." 

"좀 진득하니 들어라...얘기 안끊났어..." 

"마을 사람들도..당연히 한부자가 옛 재산을 찾을 거라고 생각했

어...너무도 당연한 이치잖아...거기다..아들이 반병신이 되기는 했

었지만..독립운동가였으니...이제는 한부자네 세상이 왔다고들 떠들

어 댔지...그런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