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2장 (11/12)

제12장

해상혈전(海上血戰), 떨치는 신위(神威)

해왕도(海王島)...

뭔가 이유를 알 수 없이 숨통을 조여오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사해대평의회(四海大評議會)...>

사해(四海)와 오호(五湖)를 관장하는 해왕세가의  주축인 금룡십팔대군도(金龍十八

大群島)의 도주

들이 한자리 모여 대사를  논의하는, 매 십 년마다 열리는 해왕세가   최대의 모임

이며, 최고의결기

관이었다.

헌데 이번의 사해대평의회는  금룡십팔대군도주 중 구 인(九人)의 발기로 열린  것

이었으니...

해왕대전(海王大殿)...

사해대평의회가 열리고 있는 이곳에서는 거대한 원탁을  중심으로 십팔 인(十八人)

의 도주가 둘러

앉아 있었다.

최상석에는 금무령이 있었고, 그의 반대편에는 흑룡천군 막사여의 모습이 보였다.

금무령은 의혹이  어린 눈빛으로 흑룡천군을  직시했다. 물론 그 의문이라는  것이 

다분히 연극적인 

것이지만... 이 자리의 어느 누구도 그것이 금무령의 계획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없

었다.

"그래... 이도주(二島主)는 어인 일로 사해대평의회를 소집하셨소?"

이것이 진정 수하가 상전에게 하는 말투인가?

허나 금무령은 그런 것을 느꼈는지 못 느꼈는지 질문을 던졌다.

"중대한 안건이라니 그게 뭐요?"

흑룡천군의 얼굴에는 서서히 승리자의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본가의 해왕(海王)이 무능할  경우 사해대평의회의 의결을  통해 재선출할  수 있

다는 금룡제일율

법을 아시겠지요?"

"아오!"

흑룡천군의 말에  장내의 도주들은 조금씩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해왕 

재선출 운운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허나 그들 중에는 분명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은 자들이 있었다.

"흐흐! 본 천형마은도(天刑魔隱島)를 포함한 열  개의 도주들의 중지를 모아  해왕

교체승인의 건을 

발기하는 바이오!"

순간, 중인들의 뇌리에서 벽력성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한 인물이 탁자를 내리치

며 노성(怒聲)을 

터뜨렸다.

쾅!

"이 무슨 망발인가?"

백의(白衣)를 걸치고, 백발(白髮)에 은염(銀髥)을 드리운 신선같은   노인이었다. 그

의 얼굴은 도저

히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만큼 온통 주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선학월명도주(仙鶴月明島主) 월제(月帝) 운학빈(雲鶴彬)...

이백 세가 넘은 해왕세가의  최고의 원로이며, 평소 학(鶴)같이  고고하고 수일(秀

逸)한 인품으로 

가장 존경받던 그가 벽력같은 노성을 터뜨린 것이다.

"네놈은 해왕께 불충함은 삼족멸살에 해당함을 모른단 말이냐?"

금무령이 조용히 일어서며 손을 내저었다.

"잠깐, 모두 잠시만 조용히해 주시오!"

금무령은 자신을 주시하는 좌중의 침묵을 꿰뚫고 준엄하게 입을 열었다.

"흑룡천군! 본왕은 금룡제일율법을 준수하오! 차기 해왕의 후보자는 그대 흑룡천군

이오?"

"흐흐, 그렇소!"

"그렇다면 금룡제일율법에  하나의 단서조항이 있다는 것도  명심하고  있겠구료? 

그대같은 인물이 

출현할 것을 우려한  나머지 해왕(海王)을 축출하려면 후보자가 현 해왕을  물리쳐

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

흑룡천군은 그의 당당한 태도에 그만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설마 저놈이... 독왕액을 해독했단 말인가?)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독왕액은 천년불해지독(千年不解之毒)! 놈이 공성계(空城計)를 쓰는군!)

흑룡천군은 모든 내막을 알았다는 듯 음흉한 괴소를 터뜨렸다.

"물론! 본도주는 해왕과의 대결을 바라는 바이오!"

말과 동시에 자신만만하게 나서는 흑룡천군...

금무령은 월제에게 침착한 음성으로 제안을 했다.

"장로께서 공증(公證)을 서 주시오!"

"알았소이다! 해왕!"

월제의 승낙을 끝으로 대결의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십팔도주들이 모두 일어나 밖으로 나온 것이다.

연무장, 금무령과 흑룡천군이  대치하고 있는 주위로 십팔대군도주들이  물러서 있

다.

"흐흐흐! 슬슬 시작합시다."

흑룡천군이 승리는 이미  확실한 자신의 것이라는 듯  득의의 괴소를 터뜨리며 두 

손을 쳐들었다.

순간, 

창!

금속성이 울리더니 어느새 그의 양손에는 흑백(黑白)의 쌍검이 들려  있는 것이 아

닌가?

흑백천마환검(黑白天魔環劍),

평소에는 팔목에 끼는  환(環)이나 공력을 주입시키면 절대의 신검으로 변하는  천

고기물(千古奇物)

이었다.

"흐흐! 재주껏 막아보시오!"

스스스스!

흑룡천군의 득의에 찬 괴소에 채 끝나기도 전에 놀랍게도 그의 신형은 수십  개로 

갈라져 무수한 

환영을 만들었다.

"헉! 극정(極頂)의 수준에 이른 천마광혼무(天魔狂魂舞)!"

"흑룡천군! 본 실력을 감추고 있었군!"

십육도주들의 입에서 찢어질 듯한 경악성이 터졌다.

금무령도 흑룡천군의 기세를 보자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의 좌수에는 하나의 번(幡)이 들려 있었다.

-금룡천황번(金龍天皇幡),

대해(大海)를 파멸시킬 수 있다는 금룡지존병!

파라락!

금무령은 긴장된 심기를 조절하려는 듯 금룡천황번을 힘껏 움켜쥐었다.

"죽어랏! 천마광혼무(天魔狂魂舞)!"

파츠츠츠!

흑룡천군이 천지를 양단할 듯 폭갈을 터뜨리며 덮치는 순간 십 팔 개의  환영들이 

사방을 뒤덮으

며 금무령을 덮쳤다. 열여덟  개의 환영들은 가공하게도 각기 쌍검(雙劍)으로 검강

(劍剛)을 폭출시

키며 섬전처럼 폭사해 왔다.

이때 금무령의 입가로 조소가 분수처럼 피어올랐다.

"하핫! 금룡(金龍)이 대해를 파멸시킨다! 금룡천해파멸참(金龍天海破滅斬)!"

콰우우우웅!

금무령의 전신에서 폭사되는 금룡!

콰콰쾅!

연무장이 박살나고 사위가 광란에 휩싸인 순간,

"우욱!"

고통에 찬 비명과 함께 십 장 밖으로 날아가 내동댕이쳐진 것은 흑룡천군이었다.

"이... 이럴 수가...! 너는..."

흑룡천군의 안색은 불신과 경악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금무령은 그에게 천천히 다가서며 냉소를 터뜨렸다.

"독왕액 말인가? 후후... 한 사람의 도움이 있어  본좌는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되었

지!"

금무령이 말을 마치며 우측으로 시선을 돌렸다.

헌데, 언제 나타난 것일까?  연무장 한쪽에 화우성이 미소를 지으며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저놈이 죽지 않았단 말인가?"

흑룡천군은 너무도 놀라 말조차 더듬었다. 

허나 여우는 명청해져도 여우요, 늑대는 배가 불러도 늑대일 수밖에 없다. 

어느새 흑룡천군은 주위에 운집한 해왕세가의 고수들을 둘러보더니 음융한 생각을 

떠올렸다.

(흐흐... 그렇다면 최후의 방법을...!)

흑룡천군의 섬뜩한 안광이  고수들의 가운데 서 있는  인을 향하자 득의의 빛으로 

변했다.

-천해사룡(天塞四龍)!

해왕도의 천해사전을  맡고 있는  초고수들이다.  나이  육순에 접어든 네  쌍둥이  

노인들이며, 중원 

무림에 나갔다면 각기 한 사람씩으로도 일방의 절대패자가 되었을 천해사룡이다.

이때 흑룡천군의 악에 바친 귀성(鬼聲)이 군웅들이 귀청을 찢어발겼다.

"천해사룡! 쳐랏!"

순간,

"하하핫!"

"푸하하핫!"

느닷없이 천해사룡이 흑룡천군의 폭갈에는 아랑곳 없이 자신들의 얼굴을 쓱  문지

르는 것이 아닌

가?

"헉! 네놈들은..."

그들의 얼굴을 본 흑룡천군의 안색이  썩은  간처럼 변하며 입에서 헛바람 삼키는  

소리가 요란했

다. 천해사룡은 어디로 가고 그곳에는 사십 가량의   위맹한 종년 장한들이 우람하

게 버티고 서서 

앙천대소를 터뜨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

"하하핫! 늙은 지렁이! 네놈이 무슨 용이  되다 만 이무기라고 감히 본좌를 암살하

려 해?"

"으으...! 모든 것은... 네놈이...!"

화우성이 얄궂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다가오자 흑룡천군은 잡아 죽일  듯이 노

려보았다. 만약 

안광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지금 그는 화우성을 수만 번도 더 죽였으리

라!

"후회란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지!"

천천히 다가오던 화우성의  안색이 한빙지옥(寒氷地獄)의 만년빙풍처럼 차갑게  굳

어지는 순간,

"과연 그럴까?"

흑룡천군은 아직도 믿는 곳이 있는 듯 태연하게 괴소를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때,

"크아악!"

"독이다! 크아악!"

군웅들의 뒤쪽에서부터 줄에 꿰인 듯 비명이 줄줄이 터지며 귀성이 공포스럽게 울

렸다.

"끼이이..."

"끼끼끼끼!"

휘르르르!

군웅들이 물결처럼 갈라지는 사이로 괴음을 발하며 짙은   녹무(綠霧)와 함께 나타

나는 일단의 괴

인들이 있었다. 인간이라고 할 수도 없는 괴인들은  나타나자마자 죽음의 호곡성을 

터뜨리며 사방

으로 쉬지 않고 녹강을 뻗어내고 있었다.

독(毒)! 녹강(綠剛)은 천하의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가공할 절독을 함유하

고 있는 독강이

었다.

"독중독인!"

공포로 물든 월제의 입에서 비명같은 외침이 터졌다.

"모조리 녹여 버려랏!"

독종독인들의 선두에 독황은 혈류독형편(血流毒形鞭)을  미친 듯 휘두르며 광소(狂

笑)를 터뜨렸다.

혈류독형편은 영사처럼 휘돌며 독편강을 분출했다.

"크아악!"

"크록!"

장내는 완전히 한 폭의 아수라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혈류독형편이 날 때마다 파라처럼 죽어가는 고수들...  독종독인들의 독강은 그대로 

사람들을 눈처

럼 녹여 버리고, 그들의 앞을 막아섰던 고수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구멍이 뻥뻥 뚫

리고 있었다.

독종독인들의 손이  가슴에 닿으면 가슴이, 얼굴에  닿으면 얼굴이, 복부에 닿으면 

복부가... 닿는대

로 모조리 녹아 버리며 구멍이 뚫리는 것이었으니...!

"감히...!"

금무령은 너무도 어이없고 믿을 수  없는 사태에 그만 말문이 막혀 분노하고 있었

다. 이때,

"후후! 독물은 태워 버리면 간단하다는 진리는 백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만찬가지

지!"

화우성이 신형을 빙긋 미소를 띄우더니 허공으로 신형을 쭉 뽑아 올렸다.

그와 동시에 화우성의 펼쳐진 두  손에서 천지를 뒤덮을 듯 금광에 휩싸여 날아가

는 물체...

제왕신망(帝王神網)!

바로 그 대정항마(大正降魔)의 기물(奇物)이었다.

순간, 금무령의 귓전으로 화우성의 전음성이 들렸다.

"모두 물러나라고 하시오!"

"...?"

금무령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의아한 표정이 스쳤으나 곧 그는 웅혼한 외침을 터뜨

렸다.

"모두 물러나라!"

스스슥!

그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해왕세가의  고수들은 섬전처럼  날려 이십 장 밖으로 

물러났다. 순간

적으로 장내에 남은 것은 반응이 느린 독종독인들과 독황뿐이었다.

"제왕파천무(帝王破天舞)!"

촤아아아아!

제왕신망이 화우성의 천지를 뒤엎을 듯한  벽력성과  함께 순식간에 방원 이십 장

을  모조리 덮어 

버리자,

"피해랏!"

심상치 않음을 느낀 독황이 다급한 외침과 함께 신형을 폭사시켰다.

파츠츠츠!

하늘마저 가두어 버린다는 제왕신망은 삽시간에 독종독인과 독황을 휘감아 갔다.

"끄아아!"

"끼아악!"

치치치치칙!

이렇게 가공할 수도  있는가? 모든 것을 녹인다던  독종독인들이 제왕신망에 갖힌 

순간  오히려 녹

아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허나, 그것도 눈깜빡할  사이의 일이었고 어느새 백여  구의  독종독인들과 독황은 

실체도 없이 사

라지고 말았다.

정말... 장내는 너무도 깨끗했다!

"허____ 억!"

"저... 저럴 수가...!"

도저히 있을 수도 없는 광경을 믿어야만 하는 금무령과 군웅들은 놀란 입이  닫혀

지질 않아 고생

하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화우성은 너무 놀랄 필요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투명망을 회수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 정도로 놀란다면 화우성의 진정한 실력을 봤을 때 아예 까

무라쳐 버릴 것

이 아니겠는가?

헌데, 화우성은 마치  한 끼 식사를 간단히 끝낸 어린애처럼  태연스럽게 중얼거리

는 것이었으니...

"후후! 별 것도 아닌  것들이...! 제왕신망에다 벽력천뢰를 주입시켰으니... 간단하게 

타 죽었군!"

제왕신망! 천년불정을  얻은 화우성은  이 가공할  기물을 장난감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 찰나의 순간에 천하마저 통째로  숯더미로 만들만큼 강력한 벽력천뢰력

(霹靂天雷力)을 

주입시켰으니...

독종독인! 독성지체의 조종이라도 견디지 못할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이...이럴 수가...!"

흑룡천군! 썩은 간 빛이 되었던 그의 안색은 마침내 죽음의 빛깔로 바뀌어  버렸으

니...  그의 안색

은 공포의 극에 달한 인간이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는가를 직접 시범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휘익!

한동안 정심없이 떨고 있던 흑룡천군이   공기와의 마찰로 인피가 벗겨지라고  죽

자사자 도망치는 

순간,

"어엇!"

"잡아랏!"

화우성의 신위에 넋이 빠져 있던 군웅들이 먹이를 본 비천신응처럼 분분히 추적했

다.

도망가는 흑룡천군을 바라보는 화우성이 섬뜩한 냉소를 입가에 흘렸다.

"배신자의 말로란 언제나 비참한 거야!"

쐐애액!

화우성의 신형은 말의 여운이 끝나기도 전에 흑룡천군의 뒤로 폭사되고 있었다.

핏빛 혈전선(血戰船)! 일천 척에 달하는 혈전선이 바다가 안 보일 정도로 새빨갛게 

해왕도를 에워

싸고 있었다.

가히 대해를 뒤엎고도 남을 엄청난 위용이었다.

"크크! 쓸모없는 놈! 혈운파멸폭(血雲破滅爆)!"

"허억!"

해안으로 부리나케  도망오던 흑룡천군은 갑작스런   폭갈과  함께 엄청난 혈광이   

덮쳐들자 기겁을 

했다.

그의 손은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뻗어나갔다.

"크아악!"

털썩!

흑룡천군은 자신이 죽었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순식간에 황천길로 떠나고 말았다.

그와 함께, 

푸스스스!

허공에서 한 덩이의  혈무가 어리더니 혈영이 나타났다. 그가 나타나자  갑자기 해

안의 모래사장에 

죽음의 냄새가 자욱하게 깔리는 것이 아닌가?

저승길에 한 발을 걸쳐 놓은 흑룡천군이 그를 보고 최후로 던진 한마디는  아직도 

공중을 떠다니

고 있었다.

"신비혈가(神秘血家)의 부가주인 천혈도부(天血屠夫)... 그대가 왜?"

천혈도부는 허공에 부유하는 흑룡천군의 말에 대답이나 하듯 독백하고 있었다.

"쓸모없는 놈을 구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손해거든! 네놈도   본가의 제일상칙을 잊

지는 않았을 텐

데...!"

흑룡천군의 시신은 이미 그에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미  한줌의 핏물이 되어 모

래 사이로 스며

들고 있었으니까...!

흑룡천군의 시신이 누웠던 자리에는 사신의 그림자만이 핏빛으로 펼쳐 있었다.

"혈상제일칙(血商第一則)은 불용자필살(不用者必殺)!"

붉은 사신의 그림자는 바로 혈영(血影)이 중얼거리는 최후의 독백이었다.

흑룡천군-! 

해왕세가의 이인자이며  천하제패의 음모를 꾸몄던 효웅의  말로는 이토록 허무했

다.

신비혈가(神秘血家)! 죽음의 장사꾼들...!

철저한 신비요, 비밀의 장막 뒤안길에서 천하를 용투야(龍鬪野)의 혈전장으로 내모

든 피와 죽음의 

대명사! 그 악마의 핏줄을 이어받은 장사꾼들의 부련주가 마침내 출현한 것이다!

휘익!

천혈도부의 핏빛 그림자가 거대한 혈선 위로 날아내렸다.

"초천상! 진군하랏!"

"존명!"

천혈도부의 비릿한 음성이 울려퍼지자 사사혈상 초천상은 길들은 강아지처럼 공손

히 대답했다.

촤아악!

그는 선미로 다가가 거대한 혈번을 번쩍 치켜들었다.

"크하하핫! 모두... 진격하라!"

순간,

"와아아!"

"해왕세가를 쳐라!"

둥둥둥!

전고(戰鼓) 소리의 충격에 십 장이  넘는 엄청난 파도가 끝도 없이 밀려오고, 일천

혈선단이 가공무

비할 기세를 몰고 진군을 시작했다.

헌데 바로 그 때였다.

쐐애액!

허공 일백 장 높이에서 한 인영이 천룡처럼 솟구쳐  오르며, 기이하고 엄청난 굉음

이 대해를 찍어 

누르며 퍼져 나가는 순간, 

금룡(金龍)!

마치 구름을 뚫고 등천하는 듯 엄청나게 거대한 금룡이 일백 장도 넘는 꼬리를 흔

들며 서서히 유

영하는 것이 아닌가? 금룡의 길이는 족히 육백 장에 달했다.

그와 동시에, 

둥! 둥! 둥!

전고 소리로 일어나는 십 장 높이의 거대한 파도를 헤치며  질서 정연하게 출현하

는 대선단(大船

團)!

끝이 없었다. 금룡기를 나부끼며 망망한 지평선 너머로부터  일천혈전단의 뒤로 다

가서는 대선단!

"금룡천위(金龍天威)!"

"금룡천하(金龍天下)!"

대선단에서는 창해(蒼海)가 떠나간 듯한  우렁찬 함성이 터졌다. 그 위에는 구리빛  

동체를 드러낸 

채 오연히 서 있는 진정한 대해의 전사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가히 엄청나고 가공

할 위세가 아닌

가!

창공을 뒤덮은 거대한 금룡, 그것의 여의주 부분에   위치해 부유하고 있던 화우성

조차 경악에 물

들었다. 

화우성은 단지 공력을 주입시켜 금룡천부를  치켜들었을 뿐 그 결과가  이렇게 가

공하리라고는 예

상도 못했던 것이다.

거대한 금룡은 금룡천부에 새겨진 것과 생김새가 똑같았다.

"금룡(金龍)의 전사(戰士)들이여! 사해투사(四海鬪士)들의 위용을 마음껏 펼쳐라!"

화우성의 웅혼한 외침이 대해를 뒤덮은 순간,

"금룡천황의 명을 받드오!"

"와아! 쳐랏!"

"크하하핫! 감히  사해(四海)의 제왕 앞에서 해전(海戰)을  펼치려 하다니... 모조리 

물고기밥으로 만

들리라!"

콰콰콰콰쾅!

"크아악!"

"케애액!"

기이하게도 창공의  거대한 금룡은 해왕세가의 이천  대선단과 신비혈가의 일천의 

혈천혈전단을 모

조리 뒤덮였고, 순간 해왕세가의 이천 대선단이 금룡(金龍)의 움직임에 따라  기이

한 진세를 형성

하며 조여드는 것이었다.

그 결과... 대선단이 형성하는 진세의 가공거력에 먼지조차  남기지  못하고 으스러

지는 혈전단...이

었다.

이때, 

(이제 끝낼 때가 되었군!)

마지막까지 남은 삼십 장 길이의 거대한 혈전선 한척을 응시하며 화우성이 폭갈을 

터뜨렸다.

"낙뢰폭멸참(落雷爆滅斬)!"

벽력의 낙하!

낙뢰는 거대한 혈전선을 강타하고 있었다.

콰콰콰쾅!

대폭풍이 인 듯 대해가 요동하더니 순식간에 잠잠해져 버렸다.

후세에 해왕대전(海王大戰)이라 불리운 대해전!

이미 그것은 싸움이라고 할 수조차 없었다.

사해(四海)의 제왕인 해왕세가... 천년대해무적세가인 해왕세가의 힘은 과연 가공할 

정도였다.

그것으로 대해제왕은  가려진 것이다.  최소한 해왕세가는 바다에서는  무적이었음

을...

"금룡천광을 육백장에 걸쳐 뻗어내다니...!"

금무령은 순식간에 거울처럼 잔잔해져 실  하나  남아 있지 않은 대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

다.

"금룡천광이 삼백 장 이상 뻗어야  금룡천위군단(金龍天威軍團)이 나타난다! 그 정

도로  펼치려면 

내공이 최소한 오  갑자는 필요하다. 육백 장이면  무려 십 갑자의 내공이  있어야 

하거늘...!"

그의 옆에 선 요요는 황홀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우성... 정말 멋 있어!"

일순 요요의 커다란 눈가에 어떤 결심의 빛이 어렸다.

"성(星)... 나는 꼭 네 각시가 될 거야!"

요요는 자신이 말을 해 놓고도 어쩔 줄 몰라 옥용을 빨갛게 물들였다. 

요요의 부끄러움을 감싸주듯 금령천위군의 대함성이 울려퍼졌다.

"와아!"

"금룡천황 만세!"

"해왕세가 만세!"

일백 장 허공에서 해왕도의 해안으로 천천히 내려서는 화우성의 얼굴에서는  미소

가 어리고 있었

다.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라네! 대해의 전사(戰士)들이여..."

                                  

쾅!

"모조리 실패했단 말인가?"

끝을 알 수 없는  악마지저의 저 밑바닥에서부터 수천  개의  거종(巨鐘)이 울리는 

듯 음산한 마음

(魔音)이 대전을 뒤흔들었다.

뭉클뭉클!

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섬칫함을 느끼게 하는 핏빛 혈무(血霧)가  자욱한 대전은 흡

사 유황지옥(硫

黃地獄) 같았다.

암흑과 귀기(鬼氣)...

핏빛 혈무 속에 떠 있는 세 개의 진홍빛 글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섬뜩하

여 숨이 막히게 

만들었다.

지옥전(殿)!

휘르르르르!

짙은 혈무 속에 두 개의 공포스런 혈안(血眼)이 가공할 혈광을 분출하고 있었다.

그 앞에 부복하고 있는 문사차림의 단아한 육순 청의노인은 혈광이 전신을 훑어내

리자 공포에 휩

싸인 듯 전신을 떨었다.

"종주시여..."

노인은 두려움에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때, 혈무 속에서 비릿한 내음을 동반한 귀음(鬼音)이 들려왔다.

"크흐흐! 범황삼패천은 이미 죽었다. 따라서 천축(天竺)에는  우리의 적수가 없거늘 

어찌하여 변황

을 못 건졌단 말인가?"

"그것은 새로이  사라천황이 된 화우성이라는 애송이   때문입니다. 워낙  그 놈의 

무공이 막강하여 

천중오비혈 정도는 상대가 안 됩니다."

"크흐흐! 그래서?"

혈영의 냉소를 들으며 청포노인은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다.

"사실, 변황 정도는 누워 눈을 감고도 언제라도 격파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좋다! 그것은  그렇다 치고 금룡(金龍)을 잡으러  갔다는 놈들이 하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고 했지?"

"그렇습니다! 독왕세가의 독황과 천독사신을 비롯해 신비혈가의   부가주인 천혈도

부도 연락이 끊

겼습니다! 소인의 생각으로는 몰살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크흐흐흐... 모조리 죽었단 말이지?"

"그, 그런 것 같습니다."

의외로 신비마음의 주인공은 그러한 결과가 당연하다는 듯이 태연했다.

"해왕세가... 과연  명불허전이군! 허나 그들도 피해가  막심했을 것이다! 이제   삼 

년 후에 열릴 팔

왕대종회는 이제 있으나 마나 하겠군! 크하하핫..."

오히려 신비마음이 주인공은 통쾌하다는 듯 괴소를  터뜨렸는데 그 내면에는 천년

야망(千年野望)

이 깊숙이 내재되어 있었다.

                                            

지옥십혈작(地獄十血爵)-!

-천마대작(天魔大爵) 천마대혈종(天魔大血宗) 염백천(廉白天)...

-사천혈작(邪天血爵)겁황혈사제(劫荒血邪帝) 사천승(邪天昇)...

-혈해작(血海爵) 잠해용왕(潛海龍王) 감곡(甘谷)...

-천살작(天殺爵) 천살도객(天殺屠客)...

-염후(艶后) 환락밀염후(歡樂蜜艶后) 문미령(文美玲)...

-뇌천작(腦天爵) 쌍뇌사혼자(雙腦邪魂子) 북궁기(北宮奇)...

-독혈작(毒血爵) 살황마독존(殺皇魔毒尊)...

-한천빙설작(寒天氷雪爵) 빙백마황(氷魄魔皇) 빙백(氷魄)...

-천음후(天音后) 천음서시(天音西施) 소옥령(簫玉齡)...

-신비혈작(神秘血爵) 신비대야(神秘大爺)...

천하 각 방면의 무적마인(無敵魔人)들인 지옥십혈작!

그들은 혈각의 모든 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도멸살(正道滅殺)의 귀계(鬼計)는  이 가공할 무적마인들에  의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하늘이여! 진정 천하를 버리시나이까?

대중원(大中原)은 철저하게 피(血)의 지도(地圖)를 그리고 있었다.

<호천멸살천일지계(護天滅殺千日之計)...>

그것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정도의 붕괴(崩壞)를 의미하는 공포의   대파멸지계(大破滅之計)! 철저한 점조직(點

組織)으로 이루

어져 신비(神秘)에 가려져 있던 호전단혈맹의 신비가 벗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호천단혈맹은 십방(十方)에서 하늘이라도  뚫고 나가지 못할 천라지망(天羅地網)을  

펼치며 조여드

는 혈각의 십만마군(十萬魔軍) 앞에서 바람 앞의 촛불인 양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

다.

                                            

절강성(浙江省) 어산도(魚山島)...

육지와는 일 리(一里) 가량  떨어진 무인도(無人島)인 어산도를 수백 척의 전선(戰

船)이 에워쌌다.

새카맣게 뒤덮인 전선(戰船)들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흑영(黑影)들이 어산도로 폭

사했다.

일천에 달하는 흑영들은 소음 하나 없이 조용히 전진하고 있는데 그 선두에는  눈

가에 은은히 감

도는 벽광을 폭사하는 칠순 가량의 백의노인이 달리고 있었다.

그는 숨막힐 듯한 막강하 기도를 지니고 있었다. 백의가  가슴 부위에 그려진 혈룡

(血龍)은 아마도 

그의 신분을 나타내 주는 표식이리라!

백의노인이 전진을 멈추고 왼손을 치켜올리자 뒤따르던 흑영들이  착착 맞물려 돌

아가는 기계(機

械)처럼 일제히 전진을 멈췄다.

백의노인과 흑영들은 어산도 중앙의 분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곳에는 수백여  호의 촌락이 있었다.  무인도라 알려진 어산도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단 말인가?

이때, 백의노인이 눈에서 녹광(綠光)이 일렁이더니 스산한 괴소가  암천(暗天)을 뚫

고 사방으로 퍼

져갔다.

"녠! 호천단혈맹 놈들이 이런 곳에 숨어 있었군! 허나   노부 잠해용왕(潛海龍王)의 

눈에서 벗어나

진 못해!"

잠해용왕!

지옥십대혈작 중 서열 삼위인 무적거마(無敵巨魔)로 천년해벌인  해왕세가의  이단

자(異端者)로 사

부인 전대 금룡해왕 (金龍海王)을 암습했다가 실패한 후   도망쳐서 혈각에 가입한 

천하의 배덕자

(背德者)이다.

수공(水功)에서 만큼은 아무도 따를 수 없다는 제일인자!

잠해용왕은 득의의 괴소를 터뜨렸다.

"크크.....이 곳이 호천단혈맹의 절강분타란  말이지? 호천멸살천일지계가 시작된 지 

단 삼백 일 만

에 노부에 가장 큰 대어를 낚았군!"

말을 마친 잠해용왕의 손이 번쩍 들렸다.

"크하하핫... 쳐랏!"

그의 벽력성 같은 명령이 일천 흑영들의 귓전을 강타했다.

"크크... 모조리 죽여랏!"

"씨를 말려 버려랏!"

일천 흑영들이 우뢰와 같은 기성을 지르며 촌락으로 폭사해 갔다.

"기습이닷! 으악!"

잠을 자다가 순식간에 기습을 당한  호천단혈맹도들은 제대로 손 한 번 쓰지 못하

고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그것은 결코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도살이었다.

호천단혈맹도들은 기습을 당했을 뿐  아니라  숫적으로나 무공으로나 혈각의 상대

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수라지옥도(阿修羅地獄圖)!

호천단혈맹의 절강분타인 어산도는 단 반나절 만에 전멸하고 말았다.

생존자 전무(全無)! 

허나, 그것은  작은 시작일  뿐이었다. 호천단혈맹의 최대무기는  신비(神秘)였으나 

그것이 백일하에 

드러난 지금, 비밀리에 암약하던 호천단혈맹은  천하각지에서 무차별적으로 박살나

고 있었다.

가공할 호천멸살천일지계!

                                             

밀실에는 지금 일남일녀가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이십오륙 세쯤 되어 보이는  빙기옥골의 미녀는 바로 호천단혈맹의 군사인 단리운

혜였다.

이미 화우성에 의해 진정한 여인이  되었기 때문인지 그녀의 몸매는  더욱 풍염하

게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남자는 대략 이십오 세쯤  되었을까?  검은 흑의에 묵도(墨刀)를 찬 사나이로   각

이 진 턱은 그의 

성품이 단호함을 대변해 주었다.

헌데, 태산(泰山)도 찍어누를 듯 가공할 패기(覇氣)가 담긴 그의  눈에서는 지금 강

렬한 살광(殺光)

이 폭출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지금도 계속해서  날아들고 있는 전서구들이 가져오는 서찰에 집중되

었다.

단리운혜의 섬섬옥수에도 한  통의 서찰이 들려 있는데  그것을 읽고 있는 그녀의 

봉목에도 침통의 

빛이 가득했다.

<지옥십대혈작 중 천마대작(天魔大爵) 천마대혈종  휘하 일천마마혈전강시군단(一

千魔魔血戰彊屍

軍團) 침입! 생존자 전무... 호천호북단주 천도옹(天道翁)...>

"그마저..."

단리운혜가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듯 탄식했다.

천도옹(天道翁)...

무당파(武當波)의 최고원로이며  도가(道家)의 제일인인 그마저  혈각의 마수 아래 

죽은 것이다.

비보(悲報)는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탁자 위에는 전서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초급구원요청, 복건지부(福建支部)에 지옥십대혈작  중 염후   환락밀염후가 일백

혈영환염강시와 

혈각의 일만마왕폭풍대를 이끌고 급습! 삼차 방어전까지 무너지고 있음...>

<으으! 인간도 아니다!  호천산동지단(護天山東支壇)의 일천  맹도들이  단 백구의 

독혈마강시에게 

한 줌 혈수(血水)로...>

수십 장의 전서들은 모두 호천단혈맹의 지부에서 놀라운 긴급구원요청이거나 몰살

을 알리는 파멸

지서였다.

이때, 

"총군사!"

흑의장한이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노호를 터뜨리며 단리운혜를 잡아먹을 듯 노려

봤다.

"이렇게 앉아서 맹도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오?"

쾅! 

노기에 찬 그의  주먹은 보검으로도 박살낼 수  없다고 알려진 흑옥탁자를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하나 단리운혜는 담담한 눈길로 분노하고 있는 그를 올려다 보았다.

"무상(武相)... 참아야 해요."

단리운혜의 표정은 온유했으나 말만은 칼로 자른 듯 단호했다. 

그녀의 표정과 말투가 너무도 고요하자 그것 때문에 더욱 화가 난 듯 장한이 폭갈

을 터뜨렸다.

"가득이나 전력이  열세인데 중요한   고수들가  정예영재들을 빼돌리다니 그것은   

앉아서 고스란히 

맞아 죽으라는 소리 아니오?"

철사자(鐵獅子) 담운룡(潭雲龍)...

후기지수 중의 최강자이며, 지난  십팔  년 간 호천단혈맹이 심혈을   기울여 키워

온 호천십이천풍

(護天十二天風)을 거느리고 호천단혈맹의 무상(武相) 자리를 맡은 정도최강의 고수

이다.

단리운혜 앞에서 조급한 성질을 못  이겨 폭갈을 터뜨리고 있는 이 사나이는 바로 

담운룡이었다. 

그의 폭언(暴言)을 말없이 듣고 있는 단리운혜였지만 사실   외양과는 달리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아아! 혈각의 힘이 막강한 줄은 알았지만 이토록 엄청날 줄이야... 그 분의 말씀이 

맞았어...)

지금 이 순간 단리운혜의 눈앞에는 한 사나이의 영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야성적인 체취가 물씬  나는 미청년으로 약간 짓궂고  고집이 센 화우성의 미안이 

그녀의 괴로움을 

달래 주려는 듯 웃으며 다가왔다.

사내는 여인의  풍염하고 탄력적인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여인은  사내의 

머리를 소중하게 

부여잡고 천천히 앵두 같은 입술을 달싹거렸다.

"성(星)... 혈각의 조직과 힘은 대충 그 정도예요."

화우성은 머리를 들어 단리운혜의 봉목을 지그시 내려다 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운혜 누님! 그것은 잘못될 판단이오!"

".....?"

"그들의 조직력과 잠재력은 현 호천단혈맹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소! 더

욱이 그 막강한 

힘을 한  곳에 결집시켜 한꺼번에   폭출시키기  위한 호천멸살천일지계를 짜놓고   

덤빈다면 지금의 

호천단혈맹 정도는 말발굽에 밟힌 개미꼴이 될 거요!"

"그럼 어떻게?"

천혜(天慧)를 자랑하던 여인도 이 순간 만큼은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믿을 만한 남자가 있는 여인은 절대 골치 아프게 머리를 쓰지 않는 법이다.

그녀는 신뢰의 눈빛으로 화우성을 주시했다.

"훗... 죽이려고 덤비는 놈에게는 죽어 주는   것이 최선이지! 손자병법(孫子兵法)에 

이르기를 도저

히 이길 수  없을 때는 삼십육계(三十六計) 주위상책(走爲上策)이라 했소!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

데 도망가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소? 게다가 희생도 최소로 줄일 수 

있으니..."

만천과해(滿天過海)!

별것도 아닌 화우성의 말을 들은 단리운혜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그때, 화우성이 장난스럽게 그녀의 유두를 살짝 비틀며 말했다.

"후훗... 거기에 무중생유지계(無中生有之計)!"

"당신..."

단리운혜는 황홀한 탄성을 터뜨렸다. 

화우성의 귀계(鬼計)에 놀란 탄성일까, 아니면 달아오르는 몸이 열기를 못 이긴 교

성이었을까?

주위상책(走爲上策)... 

고래로 전래하는 수많은 방법들이란 모두 적과 싸워 이기기 위한 것이다.

허나, 만약 적이 아(我)보다 강하여 도저히 상대가 안 될 때는 어찌하는가? 

도주(逃走)! 그저 적이 나를 치기 전에 도저히 손댈 수 없는 곳으로 도망가서 피해

를 최소로 줄인 

후 역공(逆功)의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 최상책인 것이다.

만천과해(滿天過海)...

과거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이 고구려(高句麗)를  치기 위해 요동정벌(遼東

征伐)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육로(陸路)로 가면 험산준령을 몇 번이나 거쳐야 하기에 병력의  손실이 많을 것인

즉 당군(唐軍)은 

일단 산동에서 출발하여  요동으로 해로를 따라 건너갔다가,  요동반도에서 일대는 

육로를 따라 의

주, 국내성(國內城)으로 진군하고, 일대 즉, 주력은   육로군(陸路軍)을 막느라 정신

이 없는 고구려

군의 허점을 찌르기 위해  해로를 타고 살수(撒水:現 大洞江)를 거슬러 국내성으로  

진격하기로 했

다.

허나, 너무도 강대한 고구려의 힘을 두려워한 당태종은   해로로 가다가 격전을 치

를 경우 전멸할

까 두려워 망설였다.

이에, 신하들은 수천 척의 전선(戰船)을 묶어 육지에 열결시킨 후 마치 그 위가 육

지인 듯이 꾸몄

던 것이다.

그곳에서 시찰을 나와 촌장이라는 인물에게 술대접을  받고 만취한 당태종이 사흘 

후  깨었을 때 

전단(戰團)은 이미 망망대해 위에 있었고, 그 때에야 비로소 당태종은 과단성 없는 

자신을 부추기

고자 신하들이 선의의 속임수를 쓴 것을 알았다.

이 때부터 아군조차  선의의 속임수에 넘어가게 하여  과감한 역공을 취할 전력을 

확보하는 방법을 

일컬어 만천과해라 하게 되었다.

무중생유(無中生有)...

없음(無) 속에서 있음(有)이 생성되도다.

무중생유의 병법이란 허허실실(虛虛實實)의 진법으로 있음 가운데 없음이 있고, 없

음 가운데 있음

이 있어 적으로  하여금 아(我)가 무(無)의 상태에 있는  듯 느끼게 한 후 묘계(妙

計)를 써서 유(有)

를 만들어 적의 허(虛)를 찌르는 것이다.

화우성은 여전히 손으로 단리운혜의  귀여운 유두와 매끄러운 아랫배를 만지며 빙

긋 웃었다.

"후후... 호천단혈맹을 모조리  분해시키는 거요. 왼손의 거취를 오른손도 모르도록 

그리고..."

"....?"

"혈각의 행동은 치밀한  계산과 조직력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오... 호천멸살

천일지계! 그것은 

가히 완벽한 조직력과 전력이 필요하니까... 허나 그것도 결국 막강한 변수(變數)가 

하나만 등장하

면 제풀에 궤멸될 것이오! 정교한  기계는 완벽하지만 바로 그 정교함  때문에  지

극히 작은 먼지 

하나에도 고장이 잦은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오..."

"변수?"

"그렇소! 그들이 생각지 못하는 변수는   둘이오! 바로 나와 일천천불군!  힘의 불

균형이라고 하는 

두 가지 변수!"

이윽고 단리운혜는 상념에서 벗어나며 중얼거렸다.

"그래 나는 너무 안일했어!  성의 말대로 혈각의  힘을 얕보지  말고 공성계를  펼

쳤어야 하는 것

을..."

단리운혜는 자책의 빛이 역력하더니  순식간에 마음을 수습하고 담운룡을 향해 단

호하게 말했다.

"무상(武相)! 특급의 전서구를  전 분타에 띄우세요! 모두 항쟁을 멈추고  철수하도

록..."

이때 담운룡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호안을 부릅뜨며 외쳤다.

"안 되오! 총군사는  정도의 마지막 등불인 호천단혈맹을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말

이오?"

단리운혜는 총기 어린 눈길로 분노의 화염에 휩싸여 있는 담운룡을 보았다.

(철사자! 당신같은 고수가 열 명만 있었다면 대적이 가능했을 거예요. 허나...)

단리운혜의 봉목은 안개에 젖어들고 있었다.

(호천단혈맹... 정도의 힘은 너무도 미약해요. 오직 성!  그 분만이 혈란을 종시시킬 

수 있을 뿐!)

철사자 담운룡은 명실상부한 정도최강고수라 할 수 있으나 그 혼자만의 힘으로 이 

대세를 역전시

킬 수는 없는 것이다.

지옥대전(地獄大戰)의 서막은 이렇게 열리고 있었다.

                               

막북(漠北)...!

오직 고독(孤獨)과 투쟁(鬪爭)만이 난무하는 황폐한 오지...!

파미파(巴彌坡)... 

이곳은 천하에 가장 황폐하다는 막북에서도 최대초험의 대황지(大荒地)였다.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 대강풍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모랫바람으로 인해 일

명 불귀파(不歸

坡)로도 불리우는 곳이다.

휘이잉!

엄청난 사풍(砂風)이 천지를 뒤덮어  하늘조차 누렇게 변색해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모래

알들... 

한 치 앞도 안 보이도록 광란하는 사풍 속에서 그 수억 천만 개의 모래알 중 하나

가 섬전처럼 바

위에 꽂혔다. 

콰콰쾅!

집채만한 바위는 티끌만한  모래알 하나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박살이 나 버리는 

것이 아닌가!

휘이잉!

그 바위의 잔재는 다시 사풍(沙風)에 휩쓸려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

콰콰콰쾅!

또다시 주위의 바위들을 박살내어  자신의 비참한 신세에 동반자가 되도록 만들었

다.

모래알은 바위를 부수고, 바위는 모래알로  회하고 모래알로  화한 바위는  또다시 

다른 바위들을 

강타하여 모래알로 만들고  사풍은 시간이  갈수록 엄청나게 기세가  배승(培勝)했

다. 그것은  억천 

년 만년 전부터 반복되어 온 파미파의 섭리였다.

쿠쿠쿠!

천 장(千丈)? 이천 장(二千丈)? 

아니 그 이상으로 치솟아 떠받치는 신주(神柱)가 되어 버린  대사풍은 무엇이든 집

어 삼키고 있었

다. 바람의 제왕(帝王)이라는 사막의 용권풍(龍卷風)도 파미파의   사풍에 비한다면 

옷자락을 스치

는 미풍이었다.

인간이 생존하기는커녕 대지 자체마저  살점을 깎이며 죽어가고 있는 공포와 전율

의 대황지---파

미파!

헌데, 

슈우우!

휘몰아치는 강풍 속에서 갑자기 대지가 울부짖는 듯 기이한 소성이 터져나왔다. 

콰콰우우웅!

그 소성은 순식간에 천지폭멸의 대파멸음으로 변했다.

그리고... 갈라졌다. 무려 이천 장이나 치솟아 천지와 대기의 처녀막을 갈갈이 찢어

발기고 있던 죽

음의 대강풍이 정확히 둘로 갈라졌다. 마치 물살이 갈라지듯....!

"호호호훗! 드디어 이루었다! 도왕(刀王)의 전설을....!"

그리고 천지와  대기와 대사풍(大沙風)마저 전율케 하는  사나운 웃음!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예리

한 비수로 난자하듯 꿰뚫어  버리는 웃음소리가 갈라지는 강풍 속에서 터져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 죽음의 대황지 파미파에 인간이 존재하다니! 

더군다나 웃음소리로 미루어 보아 그는 여자인 듯하지 않은가?

쿠우우우!

이윽고 티클 하나로도  만근거석을 박살내던 대강풍을 장막을  찢듯 둘로  가르며 

서서히 떠오르는 

그 인영은 삼십대 가량의 여인(女人)이었다.

천왕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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