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8-9장 (8/12)

제8장

설산(雪山)의 기연(奇緣)

피(血)의 대립시대!

세인들은 당금의 중원무림의 정세를 그렇게 명명했다.

-혈각(血閣)!

-호천단혈맹(護天丹血盟)!

중원을 양분하고 피(血)의 대결전을 벌이고 있는 두 개의 거대산맥... 

이백 년 전까지 계속되어 오다가 의문 속에 종식되어 버린  천 년대전 이후, 이 피

의 대결전은 삼

백 년 만에 처음 맞는 정마대전(正魔大戰)이었다.

혈각은 정확히 십팔 년 전에 등장했다. 그   전까지는 천하가 평온했으며 사마외도

들은 깊은 음지 

속에 숨어 있었다.

근 이백 년에 걸친 평화로  무림인들은 태평연월을 흥청거리며 즐겼고  평화에 파

묻혀 익사지경이

었다.

허나 의식있는 인사들은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흐르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으

니... 흡사 폭풍전

야의 고요함이랄까...?

그리고... 온누리를 강타한 대혈겁의 주인공 혈각(血閣)!

이로부터 대혈륜(大血輪)은 구르기 시작하였으니...

그들의 등장은 그 때까지  정파무림을 지탱해온 한 가문의 멸망으로부터 시작되었

다.

<금사궁(金獅宮)...>

이백 년  전통을 자랑하며 동악(東嶽)  태산(泰山) 제일봉의 천만 평  대분지 위에  

자리잡은 일만의 

초강고수들로 둘러싸인 정도 최강의 문파요, 최고의 성역(聖域)...

허나, 그들의 실체는 철저히 신비에 가려져 있다.

-금사천존(金獅天尊) 능사한(凌獅漢)!

금사궁의 당대 궁주이자  정도(正道)의 수호자인 그가 자랑하는 한 쌍의  벽월천뢰

도(碧月天雷刀)는 

일단 주인의 손만 떠나면 태양이라도 박살내고마는 정도최강지병이었다.

헌데 무적사자와 무적천병을  지녔으며 일만의 무적군단(無敵軍團)을 거느리고  무

적천하를 구가하

던 금사궁이 어느날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것도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천만   평 대지 위에 자리

잡고 있던 휘황

찬란한 금성(金城)이 완전히 잿더미로 화한 것이다.

그 뿐인가? 최강의 무적군단이라 불리우던 일만의 금사천단의 시신은 폐허를 완전

히 뒤덮어 버렸

고, 정도제일천병이라던 벽월천뢰도는 동강난 채 금사천상(金獅天像)의 두 눈에 밝

혀 있었으니...!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 모든 일은 단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것이었으니...!

허나, 무림인들이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  뒤를 이어 천하를 강타한  사건이 

있었으니...

<혈각(血閣)...>

금사궁이 멸망한 바로 그 자리에 거대한 성이 세워진 것이다. 

이로부터 천년정도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였으니... 

구파일방과 이십 사 정문이 혈겁당한 후 봉문(封門)!

녹림십팔류(綠林十八流) 말살!

마도십강 자진해서 영부 상납!

십만 사도맹 합병!

미증유의 전력 앞에 천  년 영광의 정도는 암흑 속에 스며들고, 음지  속에서 숨을 

감추고 있던 마

도가 천하를 폭풍처럼 휩쓰니...!

혈각!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정도 제일 성역이던  곳이 천년제일마역으로 변했으며, 이로

부터 혈각의 천

하가 이루어지니...

정도(正道)는 그러나,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암흑 속으로 스며든 정도인들은 성존을 위해서... 마(魔)의   제거를 위해서... 천 년 

래에 처음으로 

굳세게 뭉쳤다.

<호천단혈맹(護天丹血盟)...>

피로써 하늘을 수호하리라고 단지(斷指)한 열혈철한들이 하나로 모요 들었다.

지옥혈(地獄血)과 호천혈(護天血)의 혈전시대(血戰時代)!

지옥의 피로써 천하를  군립하려는 혈각과 정천(正天)의  피로써 천하를  수호하려

는 호천단혈맹의 

대혈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십팔년 전... 대명조 영락원년의 일이었다.

                                       

뭉클뭉클!

사방을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감싸고 흐르는 마기(魔氣)!

완전히 밀폐된 핏빛 대전(大殿)에 십 인의 가공할 기도를  소유한 자들이 좌정하고 

있다.

문득, 

"크크! 그까짓 조무라기들 때문에... 우리  혈왕마가(血王魔家)의 천년대업이 늦춰지

다니...!"

가공할 마기가 담긴 음성이 대전을 뒤흔들었다.

엄청난 기도를 소유하고  있는 십 인도 그  음성의 마기에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 마음(魔音)은 

대전 상단의 핏빛 주렴 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일존!"

대전이 뒤흔들릴 정도의 엄청난 마음이 터지자 칠순 가량의 혈포노인이 땀을 줄줄 

흘리며 앞으로 

나섰다.

"지.... 지존... 하명하십시오..."

그가 핏빛 주렴 뒤를 향해 숙이고 떨리는 목솔로 대답하는 것으로 보아  신비인을 

대단히 두려워

하는 것 같았다.

"일존! 그  호천단혈맹인가 하는 정도의  조무라기들을 십팔년이 지나도록  멸하지 

못하다니...!"

신비인의 질책에 일존을 내심 떨리는 마음으로 간신히 대답했다.

"놈들이 워낙 신비하게 행동하는지라..."

"닥쳐랏!"

머리통을 부수는 듯한 신비인의 폭갈에 십 인은 목을 조르는 듯한 긴장을 느꼈다.

"크크! 그래 쓸  만한 놈들은 이미 십팔  전에  모조리 죽었거늘 피라미  새끼들도 

처리하지 못한단 

말이냐?"

"허나, 조금만 있으면 놈들을 모조리 몰살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일순, 주렴이 부르르 흔들렸다.

"그럼 무슨 묘책이라도 있단 말이냐?"

일존이 고개를 돌려 눈짓을 했다.

"육제(六弟)..."

이때,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사십대의 청수한 중년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눈가에 은은히 혈기가  감돌았는데 반짝이는 동공에는 유현하기조차 한 지혜

(智慧)가 가득했

다.

"후훗! 지존께서는 그런  자질구레한 일에 신경을 쓰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십팔 

년이나 지지부진

하게 끌어온 호천단혈맹과의 싸움을 단 천 일 안에 끝내 버릴 것입니다."

"그래?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보십시오..."

중년인의 대답과 동시에 좌측 벽면이 열리며 지도가 나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중원뿐 아니라  대막(大漠), 남해(南海), 북해(北海), 동해(東海),   묘강(苗

疆), 천축(天竺)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그려진 천하대전도(天下大全圖)였다.

뚜벅! 뚜벅!

중년인은 지도 앞으로 다가갔다.

"이제껏 본벌이 침묵을 지킨 것은 천하대계(天下大計)를  위해 힘을 축적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계속하라!"

"우선 본벌의 힘은  십팔 년 전에 비해 백  배 강해졌습니다! 일존(一尊) 천마대작

(天魔大爵)께서는 

일만의 마마혈전강시(魔魔血戰彊屍)를, 오사저께서는  일천의 혈영환염대(血影幻艶

隊)를,  칠제(七

弟)는 일만의 독혈마강시(毒血魔彊屍)를 십제(十弟)는   오천의 빙천설인(氷天雪人)

을 각각 제련하

였으니 이것만으로도 천하혈세가 가능합니다."

이것이 진정 사실이란 말인가?

-독혈마강시(毒血魔彊屍)!

일천 종의 독초 속에서 제련하여 만들어진, 일갑자 이상의  독공을  지닌 독문최강

(毒門最强)의 강

시... 무엇이든 스치기만 해도 녹여 버리는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있다.

-마마혈강시(魔魔血강屍)!

도검수화불침의 금강지체인 완벽의 살인병기...!

이성이 없는 이들은 살아있는 것은  무엇이든 흔적도  없이 남기지 않고 몰살시켜 

버리며, 강시가 

되기 전보다 열 배의 내공을 발휘할 수 있다.

-빙천설인(氷天雪人)!

빙한담(氷寒潭)이라는 만년빙호(萬年氷湖)에 백  년 간  담궈져 빙정(氷精)을  흡수

함으로써 탄생된 

빙설강시...

빙기에 스치기만 해도 모든 것은 얼음조각이 되어 부서져 버린다.

-혈영환염대(血影幻艶隊)!

오백 년  전 혈염소혼문이라는 여인문파가 출현하여  천하를 혈세하다가 천왕팔가

(天王八家) 중 제

왕천가(帝王天家)에 멸망당했다.

허나, 그 가공할  미혼술과 염공에는 제왕천가의 철한들도 무수하게 곤욕을   치뤄

야 했으니... 혈영

환염대는 바로  혈염소혼문이 제왕천가를  괴롭힐 때  사용한 혈영환염마령시들로   

이루어진 것이었

다.

가히 한 가지만으로도 천하를 공포에 떨게 한 강시들... 

대체 어떤 인간들이 그런 것들을 한두 개도 아니고 수만 개씩이나 제조할 수 있단 

말인가?

"보십시오!"

육존이 지도의 한 곳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호천단혈맹의 발호는 이곳   청해(靑海)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감숙성과  사천성이 

주활동무대이고 

최근에는 녕하성과 섬서성, 호남성에 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중원 지도의 서반부는 수십 개의 붉은 홍기(紅旗)가 꽂혀 있었다.

"홍기는 호천맹의 발호지로써 그들의 비밀분단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허나..."

이때 문득 육존의 눈가에 득의의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비밀분단들의  위치는 대부분  파악되었습니다. 문제는  총단이나 그것도  조만간  

발견 가능합니다! 

이제부터... 호천멸살천일지계(護天滅殺千日之計)를 실시하겠습니다!"

휘장이 흔들거리며 신비인의 마음이 으시시하게 들렸다.

"호천멸살천일지계?"

"예, 본벌 휘하  십삼 개 총원에 각기  일만 명씩 배속된 마전사(魔戰師)들과 각기 

일천의 강시군단

과, 천이백 군데에 흩어져 있는 분단을 총동원해서   천라지망을 펼쳐 걸려드는 고

기는 모조리 척

살해 버립니다."

"많은 인원과 시간이 소요될 것 아닌가?"

신비인의 기세가 약간 수그러진 질문에 육존이 자신있게 대답했다.

"세부적으로 치밀하게 조직되어  있어 틀림없이 천 일이면 호천단혈맹의 총단마저 

박살낼 수 있습

니다!"

"천 일이란 말이지? 십팔 년 동안 끌어온 전쟁이 삼 년이면 끝났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천일 후 중원은  일통될 것이며, 이후... 남해의  해왕세가(金龍靑海武

閥), 서장(西藏의 

천불세가(天佛崖),  대초원(大草原)의 도왕세가(刀王世家)...  동해(東海)...   묘강(苗

疆)... 그리고 천축

(天竺)까지 모조리 본가의 발 아래 굴복할 것입니다!"

순간,

"크하하핫!"

신비인의 광소가 대전을 들썩이며 퍼졌다.

"크크... 크하하핫! 좋다! 실시하랏! 호천멸살천일지계(護天滅殺千日之計)를...!"

"충(忠)!"

십 인이 동시에 머리를 조아리며 우렁차고 음산하게 외쳤다.

아는가 천하여! 암흑 속에서 악마(惡魔)의 숨결이 서서히 천하를 뒤덮고 있음을...

                                 

휘이이이잉!

천지를 얼려 버릴 듯한 지옥한풍(地獄寒風)...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엄청난 

대폭설... 일백 

장 만년설로 뒤덮인 은세계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이곳은 어디인가?

희마랍아산!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애불륵사봉이었다.

태고적부터 인간의 발자취를 하나도 허용치 않은 절대험지인...!

헌데...

휘이이잉!

그 절대의 험지 위에서 폭설을  동반한 대빙풍을 맞으며 일고의 흔들림도 없이 우

뚝 서 있는 인영

이 하나 있었다.

이 절대의 험지 위에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휘날리는 그의  옷자락 뿐이었다.  그리

고, 칠흑같은 그

의 흑발(黑髮)...

전신에는 금라승포를 걸치고 있으나, 흑발로 보아 결코 승인은 아닌 듯싶었다.

나부끼는 장발 사이로 언뜻 비치는  옥안은 한 군데  흠잡을 곳  없이 완벽했으며, 

은은한 금광이 

어린 동공은 신비롭기까지 하였다.

화우성!

바로 그가 아닌가?

헌데... 천기예성전에서 엄청난  신위를 보여주어 전 병황인들을 감복케  하면서 천

축무림맹을 장악

하고 사라천황이라는 명예로운 칭호까지  받은 그가 이곳에는 무엇 때문에 나타났

단 말인가...?

더구나 그의 눈가에 어려 있는 슬픔과 분노의 빛은...?

문득, 화우성의 입에서 애틋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사부님...!"

화우성은 새하얀 눈발이 끝도 없이  휘날리고 있는 천공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나

직하게 중얼거리

는 것이었다.

십팔 년 전...

화우성은 아련히 떠오르는  피비린내를 연상하며 무시무시한 살광(殺光)을  뿜어냈

다.

그는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강보를 안고 필사적으로 탈출하고  있는 여

인...  그 뒤를 끝

없이 추적하는 혈의복면인들...

결국, 여인은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자신을 살렸고, 겨우 금령천불의 손에 의해 구

함을 받았다.

(유리빙궁이라 했던가?)

화우성의 뇌리에 금령천불이 남긴 서찰의 내용이 떠올랐다.

(나의 신세내력... 사부의 원수... 모든 것이 중원에 있다!)

화우성의 눈빛은 차갑게 내려앉고 있었으니...

"가리라! 중원으로! 그리고...!"

폭갈을 터뜨리는 화우성의 눈에는 마침내 가공할 살광이 폭출되어 나왔다.

"나를 건드리는  자들... 모조리  죽이리라! 설사... 천하가  나의 적이 된다  할지라

도..."

들었는가?

--천하(天下)가 나의 적(敵)이 될지라도 모조리 죽이리라!

대중원이여... 아는가?

드디어 어린 사자가 사자지왕이 되어 포효하고 있음을...!

복수의 갈기를 세운 사자 화우성!

헌데... 문득,

"...!"

화우성의 눈에 기광이 어렸다.

"이 한적한 곳에서 비명이라니..."

허나 화우성의 의혹어린 생각도 잠시였다. 화우성의 입가에   곧 섬뜩한 살소가 어

리는 것이 아닌

가?

"후후후! 감히... 본 사라천황의  대지(大地)... 변황의 성역인 이곳에서 피를 흘리다

니...!"

화우성의 신형이 그대로 허공으로 둥실 떠오르더니 가공할 속도로 사라져 갔다.

                                      

챙! 차창!

시퍼런 검기(劍氣)가 난무하고, 

"크악!"

"으아악!"

귀를 찢는 비영이  줄을 이으며, 새하얀 눈  위에 섬뜩한 혈화(血花)가 흩뿌려지고 

있다.

사인(四人)의 백의노인들을 둘러싸고 수십 명의 흑의인들이 공격을 퍼붓고 있는데, 

장내에는 이미 

삼십 명 가량의 흑의인들이 죽어 나자빠져 있었다.

사 인의 노인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도로   보이는 노인들이었건만 중과부적

인 듯 흑의인들

에게 서서히 밀리고 있었다.

<천(天)...>

네 노인들의 가슴에는 하나같이 하늘 천 자가 새겨져 있다.

츠츠츠츳!

콰르르르!

"크윽!"

"크아____ 악!"

육 인의 흑의인들이  공격하다가 한 노인의 일검에 모조리 허리가  두 동강이  나 

버리며 나뒹굴었

다.

허나, 노인들도 결코 무사하지는 못했으니... 

이미 한 노인은 왼팔에  검상이 그어지고, 또 한 노인은 갈라진 배를  움켜쥐고 있

었다.

"크흐...! 지독한 놈들!"

방금 복부에 일검을 맞은 노인이 쥐어짜듯 신음을 내뱉았다.

"....!"

빙 둘러선 채  정신없이 흑의인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노인들의 한가운데 한 

명의 백의여인이 

서 있다.

늘씬한 몸매에 흑발을 허리까지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전신에서는 성스러움과 감

히 함부로 범접

지 못할 기도가 흘렀다.

무공을 모르는 듯 한풍에 얼어 발그레한 두 뺨...  상큼한 아미는 날아갈 듯 귀밑까

지 뻗었고, 동그

랗고 커다란 두 눈에는 백의에 어울리는 순수함과 한없는 지혜의 빛이 어려 있다.

달덩이 같은 얼굴 아래로 이어진  목덜미는 어찌나 맑고 고운지 새파란 물이 묻어

날 듯 뽀얀 윤기

가 흘렀다.

뿐인가? 늘씬한 키에 봉곳한 가슴과 팽팽한  둔부는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

다. 오히려 천하

에서 가장 풍만한 몸매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리라.

헌데 지금, 백의소녀는 초조와 당혹으로 고운 아미를 찌푸리고 있었으니...

"혈각의 눈길을 피해 여기까지 왔거늘... 천비사혈신(天秘四血神)께서도 천금사상진

(天禁四像陣)으

로 간신히 버티고 있으나... 이미 기력이 쇄하신 듯한데..."

소녀이 안색에 어둠의 그늘이 내리 덮였다.

헌데 천비사혈신이라니...!

-천비사혈신(天秘四血神)!

창해용왕(蒼海龍王)!

풍운권왕(風雲拳王)!

신주비검옹(神州飛劍翁)!

만리비성혼(萬里飛星魂)!

일갑자 전 수공(水功), 권공(拳功), 비검술(飛劍術),  경공술(輕功術)에서 천하제일을 

자부하던 신비

고인이 바로 그들이었다.

언제나 부운같이 떠돌며 해학과 기행(奇行)으로 인생을 즐기던 천비사혈신...

헌데... 그들이 이 오지에서  한 소녀를 보호하며 생사혈투를 벌이다니... 더구나 진

식의 오묘함으로 

버티고 있으나 천비사혈신은 이미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위태롭기 그지없는 상

태에 빠져  있으

니...!

"크큭! 놈들은 이미 지쳤다! 일제히 공격하랏!"

사두의 흑의인이 대갈일성을 터뜨리자, 

"크크... 감히 혈각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하다니...!"

흑의인들이 일제히 공격하자 수백 줄기의 검강과 도기가 처지를 애워쌌다.

"으음!"

천비사혈신들이 안색을 침중하게 굳히며 마지막 기력까지 모조리 끌어 올렸다.

창해용왕이 양손의 분수자를 폭풍같이 떨쳐냈다.

"창룡노파(蒼龍怒波)!"

그와 동시에 풍운권왕의 양손도 우뢰성을 동반한 채 날았다.

"대풍운권(大風雲劍!"

신주비검옹의 손에서는 일평생 열 개 이상 써본 적이 없다는 삼십육 개  탈명비검

이 모조리 허공

으로 날았다.

"크하핫! 천강비검술(天 飛劍術)은 구주(九州)를 뒤엎는닷!"

이때, 만리비성혼의 신형은 안개처럼 사방으로 뭉글뭉글 흩어지는 것이 아닌가?

"만리추풍행은 귀신도 잡지 못하지!"

가히 그것은 폭풍 같은 기세로 짓쳐나가는 파천지무였다.

일순, 양측의 기세가 격돌하며 천붕지열의 대파멸음이 터지고,

"크아악!"

"캐애액!"

"크후...!"

"허억!"

눈발이 천장 허공까지  치솟으며 온 천지를 새하얗게   뒤덮고, 그 사이로  처절한 

다말마가 줄지어 

터졌다.

이윽고 한참 후 눈발이 가라앉으며 드러나는 장내는 이렇게 끔직할 수가 없었다.

새까맣게 타죽고, 묵사발이  돼 죽고, 미간에 문양이 수놓인 채  죽고... 흑의인들은 

겨우 십여 명이 

생존해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성한 자는 하나도 없었다.

천비사혈신도 결코 성치는 않았다.

창해용왕의 오른손을 손목에서부터 뭉그러진 채 핏물이 솟고... 

풍운권왕의 전신에는 거미줄처럼 금이 쩍쩍 가 핏줄기가 줄줄 흘렀다.

신주비검옹과 만리비성혼의 상세도 별반 다름이 없었다.

"사패공!"

백의소녀가 황급히 신주비검옹의 신형을 부축였다.

"울컥! 총군주... 어서 피하시게..."

신주비검옹이 피를 토하며 소리지르자, 소녀가 힘차게 도리질을 했다.

"안 돼요. 사패공을 두고 어찌..."

소녀가 이번에는 왼손으로 급히 창해용왕을 부축했다.

창해용왕이 신형을 비틀거리며 분노에 찬 신음성을 터뜨렸다.

"크흑...! 이곳만 넘으면 천축이거늘... 여기까지 와서 당하다니...!"

헌데 바로 그 때였다.

스스스!  

갑자기 장내에 다섯 명의 혈의인들이 나타났다. 헌데 이들의  얼굴은 판에 박은 듯

이 똑같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들은 다섯 쌍동이...?

이들을 본 풍원권왕의 신형이 부르르 떨리며 경악성이 터졌다.

"오행혈사존(五行血死尊)!"

오행혈사존!

_금령혈마(金靈血魔)!

_묵검수라(墨劍修羅)!

_흑수마종(黑水魔宗)!

_지둔혈서(地遁血鼠)!

_벽력천마(霹靂天魔)!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오행에 따라 오행의 무공을 익힌  전설적인 대마두들... 특

히 이들의 합격

술은 천하무적을 자랑했다.

오행혈사존의 우두머리인 금령혈마가 금관을 흔들며 앞으로 나섰다.

"흐흐! 천비사혈신... 일갑자 만이로군!"

이때, 천비사혈신들은 낭패감을 느끼고 있었다.

(으음! 평소라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저놈들을 감당할 수가 없는데...)

소녀의 안색도 절망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아... 천축을 눈앞에 두고... 하늘이시여! 진정 천하의 운명을 저버리시나이까...)

오행혈사존은 이들의 안색을 보며 궁지에 몰린 그들의 고통을 천천히 음미하는 듯 

포위망을 좁혀

왔다.

그와 동시에 가공할 압력이 천비사혈신들을 덮쳐 오는 것이 아닌가?

"흑...!"

"크... 윽!"

천비사혈신들의 입에서는 꾸역꾸역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금령혈마의 입에서 비릿한 괴소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크크... 천비사혈신... 이제 네놈들은 갈 때가 되었다!"

금령혈마의 몸에서 뿜어지는 금기(金氣)가 더욱 짙어지더니  종내에는 마치 커다란 

황금구처럼 변

하는 것이 아닌가?

헌데...

"크크녠!"

"크흐흐... 계집만은 살려두슈, 형님!"

오 척 단구에 쥐눈을 번들거리며 지둔혈서가 소녀의 전신을 음탕한 눈길로 훑어내

리며 입가에 침

을 질질 흘렸다.

소녀의 눈에서 살광이 폭출되었다.

허나... 어쩌겠는가? 그녀는 닭모가지 하나 비틀 힘도 없고, 천비사혈신은 생사지경

을 헤매고 있는

데...

일순 오행혈사존이 허공에 둥실  뜨더니 오행강기의 막강한 위력을 앞세우며 천비

사혈신의 전신을 

짓누르듯 조여가는 것이 아닌가?

"으음!"

(끝장인가...?)

천비사혈신의 눈가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고,  백의소녀는 안면에서 구슬땀을 

비오듯 흘렸다.

헌데 바로 그때,

"후후! 감히 이곳에서 불결하게 피를 흘리다니...!"

돌연 허공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가공할 살음이 울려 퍼지는 것이 아닌가?

"아앗!"

"흑! 누... 누구냐!"

오행혈사존은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이렇게 가까이 오도록 전혀 눈치를 챌 수 없었다니...!)

경악에 찬 오행혈사존이 허공으로 시선을 모으자, 무려... 삼십 장 허공에 한  명의 

금라승포를 걸

친 미청년이 둥실 떠 있는 것이었으니...

화우성의 눈가에는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네놈들은 누구냐?"

"네...놈... 이라고...?"

성질이 지독히도 급한 벽력천마가 눈꼬리를 파르르 떨더니 미친 듯이 외쳤다.

"크흐흐! 하룻강아지 같은 놈! 태워 죽이리라. 태양천염공(太陽天炎功)!"

화광이 단번에 일백 장 방원을 뒤덮어 버렸다. 헌데,

"후후!"

화우성은 조소를 지으며 두 손을 합장하는 자세로 내밀었다.

"본좌의 살심을 돋우다니... 옥령적살강(玉靈赤殺剛)!"

그와 함께, 섬뜩한 혈강기가 날아갔다.

콰쾅!

"크아악!"

벽력천마왕은 비명과 함께 눈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몇 번인가   경련을 일으키

던 벽력천마왕의 

몸이 축 늘어져 버렸다.

"오제...!"

"으득! 죽여 버리겠다!"

아연실색하던 나머지 사 인이 분노에 몸을 떨며 일제히 합공했다. 비록,  벽력천마

가 빠졌으나 사 

인의 합공은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화우성이 두 손을 활짝 펴자 전신에서 금광이 어리기 시작했다.

일순, 금광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사행혈사존을 짓밟아 버렸다.

"크아악!"

"으으... 안 돼... 크악!"

"으아악!"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줄줄이 터지더니, 잠시 후 설풍이  불고 뒤이어 나타난 참상

은 너무도 처참

하고 끔찍했다. 사행혈사존은  완전히 분육이 되어 짓이겨진 채 널브러져  있는 것

이 아닌가?

(허억! 저... 저럴 수가...)

(하나도 아닌 넷을 단 일초에...!)

천비사혈신은 안색이 흙빛이 되어 넋을 놓고 있다가 화우성의 눈길이  자신들에게 

미치자 흠칫했

다.

허나, 화우성의 눈길은 곧 그들을 지나 소녀의 얼굴로 향했다.

순간,

"...!"

"...!"

두 사람은 동시에 경직되고 말았으니...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이  우연한 만남으

로 인하여 향후 

천 년 무림의 안녕과 거대한 운명(運命)이 시작됨을...

그것은... 운명의 만남이었다. 

화우성에게 있어 세상에 이런 류의  여인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하나의 커다란 

충격이었다.

(으음! 전설의 천혜성령지신(天慧聖靈之身)을 타고난 여인이 존재하다니...!)

놀람의 물결이 화우성의 뇌리를 강타했다.

천혜성령지신(天慧聖靈之身)!

천인무색할 지혜와 백지같이 깨끗하고 성스러운 성기(聖氣)를 타고났다는 성체...

너무나도 깨끗하고 순결하기에, 만일  이런 체질을 타고난 여인이 마(魔)에 물들면 

천하를 혈세(血

洗)할 대여마두가 되고 정도에 들면 천하를 구세할 성녀가 된다.

허나, 하늘이 시기하여 이런 체질에도 영원히 고칠 수 없는 고질이 있었으니...  도

저히 무공을 익

히지 못하며, 이십 세 이전에 반드시 죽는 것이다.

만일 극마지경의 마인이 이 여인을 얻는다면 마의 극인  천마지존경에 들 수 있다. 

가히 전설속에

서나 가능한 체질이 아니겠는가?

헌데, 그런 여인이 실제로 현세에 존재하다니...! 그것도 이미 이십  세가 넘은 나이

로...

소녀의 얼굴에도 역시 놀라는 빛이 역력했다.

(아아! 저런 인물이 이런 곳에 있다니..더구나 중원인 같은데..)

소녀는 화우성의 혜광(慧光)이  감도는 눈을 바라보며 자신이 한없이 빨려  들어감

을  느꼈다. 그것

은 그녀에게 있어 생애 최초이며, 최대의 충격이었다.

허나, 그녀는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내가 무슨 생각을...나의...나, 남은 생은 이제 겨우 일 년뿐이거늘...!)

뇌리를 스치는 생각과 함께 그녀의 얼굴에 쓸쓸하고 애수어린 고소가 감돌았다.

잠시 후 그녀는 신색을 회복하더니 화우성을 향해 치사했다.

"소녀와 사패공을 구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어 그녀는 눈빛을 빛내며 자신을 소개했다.

"소녀는 호천단혈맹의 총군사를 맡고 있는 단리운혜(端里雲慧)라 하옵니다. 은인께

서는...?"

"운혜! 아름다운 이름이군. 나는 화우성이라 하오!"

(화우성(花雨星)...!)

단리운혜의 머리 속에서는 이 이름이 한참동안 여운을 끌며 맴돌았다.

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천비사혈신...

탐스러운 은염(銀髥)을 쓸어내리고 있는 신주비검옹은 감탄의 기색이 역력했다.

(허허... 진정 어울리는 한 쌍이로고...)

이어 그의 신형이 앞으로 나섰다.

"소협의 구명지은을 이 늙은이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겠소이다."

헌데, 화우성이 말없이  돌아서더니 싸늘한 안색으로 천비사혈신을  주시하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화우성의 동공에서 칠채서광이 천비사혈신을 향해 쏟아져 나왔다.

천비사혈신은 너무도 갑작스런 일이라 꼼짝도 못하고 철채서광에 휩싸여 버렸다.

"아앗!"

천비사혈신은 깜짝 놀라 경악성을 터뜨렸으나 곧 그들은 감격에 겨운 표정이 되는 

것이 아닌가?

(세수칠채성령지기...최상의 의술을 아낌없이 시전하다니...최소한 내공이 사갑자  이

상 되어야 펼칠 

수 있으며 그 정도 내공으로도 쉽게 탈진하는데...)

이것이 정녕 사실이란 말인가?

세수성령지기...(洗髓聖靈之氣)!

이론상으로나 존재한다는 의술의 최고 경지! 

천하의 만산지기를 응집하여  펼치는 것이며, 사지가 조각나지 않는 한  어떠한 내

외상이라도 말끔

히 치료한다.

그러나, 이것을 펼치려면 최소한 사갑자의 내공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내공의 손

실이 엄청나 알

더라도 시전치 않으려 한다.

헌데, 화우성은 생전 처음보는 사람들에게 이 신비의 의술을 베푼 것이다. 

게다가 그는 전혀 내공의 소모가 없다는 듯이 멀쩡하다니...!

천비사혈신들의 안색은 불그스레하니 홍조를 띠었다. 이미   내상이 완전히 치유되

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내공이 증진됐다는 증거인 것이다.

감격에 겨운 신주비검옹이 입을 열었다.

"소협..."

그는 화우성의 차가운  눈길에 말을 잇지 못했으니... 화우성의  입에서 단호하고도 

항거할 수 없는 

한 마디가 떨어졌다.

"지금 떠나시오! 가능한한 빨리 내 곁에서 사라지는 것이 좋을 것이오!"

"...!"

천비사혈신과 단리운혜는 흠칫했다.

(이 분은 뭔가 크나큰 상심이 있으신가 봐... 온몸에서 피어 오르는 저 고독함은 대

체 무엇 때문일

까?)

사박사박!

단리운혜가 예쁜 당혜로 하얀 눈을 밟으며 화우성의 앞으로 다다랐다.

이때 돌연 단리운혜가 화우성의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

화우성이 깜짝 놀라며 물음을 던졌다.

"이게 무슨 짓이오?"

천비사혈신도 대경하여 부르짖었다.

"아니!... 총군주..."

허나, 그들은 단리운혜의 눈길에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혜천성녀(慧天聖女) 단리운혜(端里雲慧)...

그녀가 어떤 여인인가? 여인으로서는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지고한 신분의 여인이

며, 풍전등화와

도 같은 정도의 마지막 희망이라면 지나친 과장일까?

구파일방을 비롯하여 혈각의  출현으로 박살이 나버린 정도연합체인 호천단혈맹의  

실질적인 수뇌

는 바로 그녀였다.

현재 호천단혈맹에는 어찌된 일인지  맹주가 없었다. 헌데,  세력이 현저한 열세에

도 불구하고, 맹

주조차 없으면서 이제까지 버티어 온 것도 모두 단리운혜의 탁월한 용병술과 지략 

덕분이었다.

하나, 화우성이 그런 것을 알 리가  있는가? 지금 자신 앞에  무릎을  꿇은 여인이 

그렇게 대단한 

여인인 줄을...

이때, 무릎을 꿇은 단리운혜가 화우성을 우러러보며 간절하게 입을 열었다.

"소녀는 알고 있어요. 소협의 사문이 어딘지를..."

"...?"

화우성은 그녀의 말에 어리둥절한 수밖에 없었다.

"소녀와 사패공은 바로 천축무림맹으로 가던 길이었어요!"

"천축무림맹으로...?"

화우성은 여전히 의아해서 그녀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때, 단리운혜가 그의 의혹을 풀어 주겠다는 듯 품  속에서 하나의 서찰과 금시를 

꺼내 보였다.

금시를 본 화우성의 안색이 흠칫했다.

"제왕금시(帝王金矢)! 황금사원(黃金寺院)의 지존영부가 어찌 당신 손에..."

"알아보시는군요. 그래요. 이것이 제왕금시예요."

단리운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제왕금시를 화우성에게 건네주었다.

"받으세요."

그것을 받는 화우성은 여전히 의혹어린 시선으로 단리운혜를  주시했다. 왜 생면부

지의 사람이 만

나자마자 자신에게 황금제왕금시를 주는가?

헌데, 단리운혜의 다음 말은 화우성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니...

"전대 사라천황이신 금천상군 금해산... 그 분은 바로... 소녀의 사부님이에요."

화우성의 눈이 일순 휘둥그래졌다.

"어찌... 그 분이 중원에까지."

서찰을 내미는 단리운혜의 얼굴에 우울한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먼저 이것을 보세요."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며 화우성은 서찰을 펼쳐 들었다.

<미거한 제자 해산(海山)이 사부님께 전합니다

...(中略)... 황금사원 중원지부가  궤멸되어 제자가 그 진상을  알아내고자 중원으로 

떠나온 것은 사

부께서도 이미  아시는 일... 허나 그것이  저를 끌어내기 위한 암중세력의  음모인 

줄을 그 누가 알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저에게 다짜고짜 제왕금시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

는 거절했고, 그

들과 격돌하게 되었지요. 그들의 조직이나 무공은 가공할 정도였습니다. 

오직 사부님을 비롯한 범황삼패천 모두가 합친 것과 비견될 정도였습니다. 

아니... 그보다도 더 가공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제왕금시를 요구한 것도 결국 천하제패를 위한 한 가지 준비일 뿐이었으니

까요. 

해산은 불충하여 사부님의 무공을 반도 익히지 못한 데다 자질이 부족했던 관계로 

실력이 부족해 

그들에게 쫓기는 바 되었습니다.

                       (中略)... 

도중에 한 여아를 만나 제자로 거두었으니 잘 이끌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

다.

                        불충한 제자 해산(海山) 올림...>

"이... 이것은...?"

화우성은 불신의 눈으로 단리운혜를 주시했다.

그의 의문을 잠재워 주려는 듯 단리운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사부님은 범황삼패천  중 성령사원의 지존이신  금령천불 사조님의 기명제자셨어

요."

"이 사부님의 제자...? 그런 소리는 들은 적이 없는데...?"

"사부님은 사조님께 어려서 잠깐 사사받으셨다고 하셨어요."

화우성의 고개가 갸우뚱했다. 여전히 이해가 안 가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한테 사형이 계실 줄은 몰랐군! 헌데... 그런 소저는 나를 어떻게 알아봤단 말이

오?"

단리운혜는 그에게 확신을  줄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

다.

"아까 펼치신  무공은 범황삼천종  어르신네들의 비전무공(秘傳武功)이 아닌가요.? 

그래서..."

"그렇군!"

이제 믿겠다는 듯 화우성의 안색이 풀렸다.

"그럼 사형은 어디 계시오?"

이때, 단리운혜의 안색에 서글픈 표정이 스치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칠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놈들에게 쫓기시다가 입은  내상이 도져

서..."

말을 들은 화우성의 눈에서 질식할 것 같은 살광이 뿜어지며 노성이 터져나왔다.

"누구요? 그 분을 핍박한 놈들은?"

화우성의 분노가 엄청나자 단리운혜와 천비사 신은 숨쉬기가 거북할 지경이었다.

"지금에야 쫓겨오면서 느꼈어요. 혈각(血閣)이라 불리는 세력이에요."

"혈각! 놈들이 감히... 변황의 지존인 금사형을..."

화우성은 눈으로 살광을 푹출시켰다.

"혈각! 네놈들이 또  다시 본좌를 건드리다니... 혈왕마가(血王魔家)의  하수인인 혈

각! 그  조무라기

들이 감히 변황을 건드려? 후후후... 그렇다면 나는 지옥의 학살자가 되어 주지!"

_지옥(地獄)의 학살자가 되리라!

지옥의 학살자... 이제... 지옥에서 숨쉬는 모든 것들은 존재조차 없어질 것이다. 

지옥, 그 자체까지도...!

화우성은 그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살소(殺笑)를 머금었다. 

순간, 화우성의 전신에서 일어난 억만장 해일같은 살기가  엄청난 기세로 대설원과 

만장 거봉들을 

짓뭉갤 듯이 퍼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헉...!"

"..."

단리운혜와 천비사혈신은 일순 전율 같은 공포감에 휩싸여 헛바람을 삼켰다. 

허나,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화우성을 주시할 수 밖에 없었다.

죽음과도 같은 침묵... 장내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저 여인의 말대로라면 중원 천하가 혈각의 수중에 장악당했다는 뜻인데... 후후!)

조용한 미소였다. 

허나 뉘라서 감히 그 미소를 직시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비록 조용했으나... 심혼

마저 얼릴 듯한 

미소였으니...!

(혈신...! 혈각...! 분명  혈각은 혈왕마가의 변신이거나 그 꼭두각시일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 해

도 세상을 혼탁하게 하는 놈들은 모조리 지옥(地獄)으로 보내 주리라! 제놈들이 좋

아하는  지옥으

로...)

모든 것을 결정한 화우성은 단리운혜에게 다가가 부축했다.

"내가 범황삼천종의 제자이자 천축무림맹의 새로운 맹주인 사라천황이오!"

"아...!"

단리운혜의 입에서 탄성이 터지며 수줍은 듯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소녀... 사숙님께 인사올립니다."

"사... 숙...?"

화우성의 얼굴에 떠오르는 곤혹스런 표정...!

그렇다! 

금천상군 금해산이 그에게 사형 뻘이니 단리운혜는 당연히 사질녀가 되는 것이다.

화우성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나는 그런 것에 구애받기 싫소! 우리는 젊으니... 그런 것에 속박되지 맙시다."

(아...!)

단리운혜의 교구가 파르르 떨렸다.

그 모습을 보는 화우성의 눈빛이 가볍게 일렁였다.

(후훗! 정말 사랑스런  여인이로군! 천하를 위해 얼마  남지도 않은 생명의 불꽃을 

태우는 여인...!)

"당신은 성녀요! 운혜 누님... 좋소! 혈각이라는 마성(魔城)을 지상에서 제명시켜 주

겠소!"

화우성의 말은 광오의 극치가 아닌가? 

허나, 이 순간... 천비시혈신은 물론  혈각의  가공할 힘을 알고 있는 단리운혜에게

조차  그의 말이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말 운명처럼 느껴졌다.

"어맛!"

문득 단리운혜의 뾰족한 교성이 고요한  분위기를 깨뜨렸다.  화우성이 듬직한  팔

로 그녀를 안아 

든 것이다.

"운혜 누님은 죽지 않소!  천혜성령지신을 극도로 억제하며 살아왔으나, 이제 남은 

생은  삼 년 남

짓... 허나, 나는 신에게 도전해서라도 반드시 누님을 살릴 것이오!"

(아아...이 분...처음 만난 나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계시구나.)

단리운혜는 순간적으로 화우성을 하늘인 양 착각했다.

허나, 과연 그것을 착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진정한 하늘의 품에 안긴 것이다.

"홀홀..."

"클클... 용봉(龍鳳)이 만났으니..."

"참으로 어울리는 한 쌍이로고..."

천비사혈신들은 흐뭇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문득, 화우성이 고개를 돌려 그들을 향했다.

"노인장들은 이마 돌아가시오!"

"흘흘! 그럼세..."

"하핫! 그럼 먼저 가서 기다리겠네!"

천비사혈신들이 짓궂은 표정을 하고 사라졌다. 떠나가는   그들의 눈가에는 화우성

에 대한 신뢰감

이 역력히 보였다.

"...!"

화우성과 단리운혜는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헌데,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크크크!)

벽력천마!

죽은 줄 알았던 그의 신형이 꿈틀거리는 것이 아닌가?

(크크...! 놈들... 나 혼자만 죽을 줄 알았더냐? 모조리 죽여 주마!)

벽력천마가 악독한 살광을 흘리며 품 속에서 주먹만한 검은 구슬을 꺼내는 것이었

으니...

"...?"

갑자기 느껴지는 살기에 돌아선 화우성의 몸이 흠칫했다.

"저것은... 벽력굉천뢰!"

화우성은 흑구(黑球)가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벽력굉천뢰(霹靂宏天雷)!

화문(火門)의 제일지존보로서,  천하에 오직 세 개밖에  없는 지상 최강의 화기(火

器)... 한  번 터졌

다 하면 방원 일천 장이 초토화되어 버린다.

"크흐흐! 이것을 알아보는 것을 보니 위력이 어떤지도 잘 알겠군? 죽어랏!"

벽력천마왕이 광인처럼 괴소를 터뜨리며 벽력굉천뢰를 던지자 화우성도 소홀히 할 

수가 없었다.

"뇌룡등천무(雷龍騰天舞)!"

콰쾅!

화우성이 단리운혜를 안고 솟구침과 동시에 벽력굉천뢰가 터지고,

콰콰콰콰쾅!

천붕지열의 폭음이 천지를 진동하며, 일천 장 이내에  가공할 태양화기가 해일같이 

휩쓸고 지나갔

다.

"으... 음!"

화우성이 위험을 느끼고 주위에 무적금강호신강벽을 일으키며 더욱 신형을 솟구쳤

다.

뇌룡등천무...

그것은 낙뢰의  움직임을 역형으로 추산하여  창안한,  뇌정마찰 최고의  경공으로 

수직으로 단번에 

삼백 장을 치솟을  수 있는 경공은 천하에   이것밖에 없었다. 허나  벽력굉천뢰의 

가공할 파괴력은 

그런 화우성의 내부를 뒤흔들 정도였다.

이윽고, 화우성이 천천히 하강했다.

헌데, 

우르르르...!

대폭설!

수십만 년 간 잠들어 있던 빙설이 벽력굉천뢰의 가공할 위력 앞에 무너져  내리며 

눈사태를 야기

시키고 있었으니...

"허억!"

화우성의 안색도 이 때만큼은 창백하게 굳어졌다.

제아무리 초극강고수라 한들 대자연의  엄청난 위력 앞에는 미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기에...

헌데 문득 화우성의 눈가에 기광이 스쳤다. 

산사태가 일어난 정봉 위에서 뭔가 동공을 파열시킬 듯한  기광(奇光)이 솟구친 것

이다.

(눈사태가 날때 밑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  시발점으로 가는 것이 그래도 안전한 

편이다!)

허공에 뜬 화우성은 한 차례 심호흡을 하더니,

"운학비선무(雲鶴飛仙舞)!"

마치 학이 날 듯  신형을 비스듬히 뽑아 섬전을 방불케 할 속도로  날아갔다. 대지

신모의 독창적인 

경공으로, 옆으로 단번에 일천 장을 날아갈 수 있다는 운학비선무... 그것이 펼쳐진 

것이다.

                                     

구 층에 달하는 황금거전(黃金巨殿)!

그것은 실로 불가사의 그 자체였다.

지상 최고의 대설산(大雪山)...! 그 중에서도  최고봉인 성모봉 위에 높이 백   장에 

달하는 거전이 

축조되어 있다니...!

화우성이 내려선 곳은 바로 황금거전의 첨탑 부분이었다.

우연찮은 눈사태로 인하여 웅자를 드러낸 황금거전...

"...!"

화우성과 단리운혜는 어이가 없는 듯 마주보며 천천히 내려섰다.

지상최고봉인 성모봉의 대설 속에 묻혔다가 드러난 신비거전...  과연 그 정체는 무

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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