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5장 (5/12)

제5장

밝혀지는 비사(秘事), 

천라오겁혈비도(天羅五劫血秘圖)

"이럴 수가!"

이 순간 화우성의 전신은 폭풍 속의 낙엽과도 같이  뒤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눈은 

경악으로 한껏 

치떠져 있었으며, 그의 안면근육은 사자(死者)의 그것인 양 푸르뎅뎅하게 변색되어 

있었다.

설사 하늘이 조각조각 부서진다 해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을 그가 무엇 때문에 이

렇게 놀라고 있

는가?

아아! 이럴 수가!

화우성의 전면을  보라! 화우성의 눈앞에는 산산히  부서지고 불탄 흔적만이  남은 

폐허가 전개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의 발 밑으로는 무참히 쪼개진 현판이 나뒹굴고 있었다.

<뇌정마찰(雷霆魔刹)...>

그렇다. 이곳은 화우성에게 있어 고향이요 요람과도 같은 뇌정마찰이었다. 그의 성

장과 추억의 그

림자가 깃들어 있었던 뇌정마찰..

헌데, 그 뇌정마찰은 옛날의 위용은 도저히 찾아 볼  수 없을만큼 참혹하게 파괴되

어 있었으니...! 

마치, 엄청난 대강진과 대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뇌정마찰은 파헤쳐져 있었

던 것이다.

"우욱! 누구냐? 누가 나의 땅을 이렇게 만들었느냐?"

일순, 화우성은 분노의 대갈을 터뜨렸다.

허나, 들려오는 것은 덧없는 메아리뿐이었다.

그때, 화우성의 뇌리로 불현듯 스쳐가는 불길한 생각,

"뇌정마찰이 이 지경이 되었다면..."

화우성은 문득 눈썹을 파르르 떨며 그대로 신형을 날렸다.

"사부님!"

범황삼천종!

그들의 상태는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뇌정패불의 추측은 불에 그슬린 듯 태워져 있었으며 좌측은 흡사 빙인을 연상시키  

듯 하얀 서리

로 뒤덮여 있었다.

대지신모의 상태는  그보다 더욱 처참했다.  대지신모의  새하얀 백옥같은  살결은 

거북의 등껍질같

이 균열되어 있었던 것이다.

금령천불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었다. 그는 심장에  한 자루의 묵검(墨劍)을 꽂은 

채 누워 있었다.

천축의 전설적인 기인들인 법황삼천종! 

그들은 과연 죽었단 말인가?

콰꽝!

"사부님!"

그나마 간신히 지탱하고 있던 천뢰전의 벽면이 산산히 부숴지며 한 인영이 짓쳐들

었다.

"...!"

막 천뢰전을 들어서던 화우성은 그대로 석상과도 같이 신형이 굳어졌다.

"사... 부..."

화우성의 입에서 넋이  나간 듯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그의 눈은  무섭게 가라앉

기 시작했다.

범인이 분노하면 이성을 상실하거나 자신의  모든 기능을 망각의 늪으로 빠뜨리고  

만다. 그러나, 

화우성은 차라리 무서울 정도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의 눈은 무저의 심해를 보는 듯 침잠되었다. 

허나, 그의 분노... 살심(殺心)...  울분... 회환의 폭죽은 서서히 응어리지고  있었다. 

그의 뇌리와 가

슴으로...

뚜벅! 뚜벅!

영원히 움직일 것 같지 않던 화우성의 신형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기 시작했

다.  그 한 걸음

에 천만 그의 분노를 실은 채...

화우성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

범황삼천종의 처참한 신형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엄청난 화염의 불꽃을 내재하

고 있었다. 

흡사, 폭발하기 직전의 활화산과도 같았다.

"...?"

문득, 그의 시선으로 한 줄기 이채의 빛이 스쳤다. 뇌정패불의 손 끝이 바닥을  파

고들며 한 줄의 

글을 만들어 놓은 것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혈신(血神)!

혈왕(血王)...조심...천뢰마고(天雷魔庫)...삼(三)...금붕(金鵬)으로...>

뇌정패불이 남긴 글귀는  두서없이 휘갈겨져  있었다.  생명의 기력이 다한   듯한 

극한의 상황에서 

쓴 글인 듯했다.

"혈신!"

화우성의 입에서 급기야 찢어질 듯 엄청난 노호성이   터져나왔다. 그의 가슴 속에 

응어리져 있던 

분노가 드디어 폭발한 것이었다.

일순,

"울컥!"

화우성의 입에서 한 사발의 묵혈이 분출되었다.

그와 아울러,

"혈신! 너를 죽이리라! 이 세상에서 가장...잔혹스런...방법으로..."

쿠웅!

심화(心火)! 화우성은 들끓는 심화를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화우성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화우성의 전신에서 엄

청난 분노의 불

길이 일더니,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체내로 갈무리되었다.

분노의 불길을 안으로 억누른 화우성의 눈에서 이글거리던  안광이 잦아들고, 어느

덧 분노가 극에 

형성된 절대무심의 차가운 빛으로 변했다.

뚜벅뚜벅!

화우성의 폭풍의 눈과도 같은  발걸음은 뇌정마찰의 한쪽 귀퉁이로 찾아들고 있었

다.

<천뢰비고(天雷秘庫)...>

뇌정마찰의 지하에는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지하밀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뇌정마

찰의 모든 것이 

집합되어 있는 비고였다.

그그그긍!

거대한 철문이 둔중한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천뢰비고는 방원 일천 장에 달하는  엄청난 서고였다. 일천  개의 서가에  각기 일

천 권의 서책이 

꽂혀 있는 천하유일의 대서고(大書庫), 

"...!"

화우성은 천뢰마고의 문을  열고 천천히 들어섰다. 그의  눈은 일천 개의 서가  중 

하나를 직시하고 

있다.

<삼(三)... 만상일천예(萬象一千藝)...>

천뢰비고 안의 일천 개에 달하는 서가는 각기 한 부류의 서책을 집대성해 놓은 것

이었다.

세 번째 서가에는  일천 가지에 달하는 초절진법서가 꽂혀져 있었다.  화우성은 세 

번째 서가로 다

가가 서슴없이 그 중 한 권의 책을 뽑아들었다.

<내실기관비경(內室機關秘經)...>

화우성이 뽑아든  낡은 고경(古經)은 실내에 설치할  수  있는 모든  기관토목술을 

기술한 기관서책

이었다.

"...!"

그는 묵묵히 내실기관비경을 펼쳐보았다.

<서가잠밀비해(書架潛密秘解)...>

"서가잠밀비해... 실내의  서가를 이용한  기관술... 그렇군! 사부님이  말씀하시고자 

한 것은 바로 이

것이었군!"

화우성은 책을 덮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잠시 서가를 주시하더니 손을 

뻗어 여기저기

의 책을 뽑기 시작했다.

두서없이 취해지는 그의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십여 권의 책을  뽑아든 순간

이었다., 

돌연, 

그그그그긍!

육중한 서가가 중심을 축으로 하여 회전하는 것이 아닌가? 

그와 아울러, 원래의 서가가 자리잡고 있던 곳에는 자그마한 밀동이 드러났다.

"과연!"

화우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밀동으로 손을 뻗었다.

밀동 안에는 한 개의 쇠로 만든 상자가 들어 있었다.

"대체 이  안에 무엇이 있기에 뇌정대사부께서  그런 극한상황에서도 알리려 했을

까?"

화우성은 호기심어린 눈길로 그것을 내려다 보며 중얼거렸다.

쇠상자 안에는 세권의 비급과 한 통의 서찰이 들어 있었다.

<뇌정마해(雷霆魔解)...>

<대지천라경(大地天羅經)...>

<금불천예(金佛天藝)...>

세 권의 고경은 바로 범황삼패천의 비전천무(秘傳天武)가 담긴 비급이었다.

"....?"

화우성은 세 권의 비급을 품 속으로 갈무리하며 서찰을 펴보았다.

그것은 뇌정패불이 남긴 글이었다.

<우성! 사랑하는 제자에게 만일을 대비하여 이글을 남긴다. 만약   네가 스스로 이 

글을 찾아내어 

볼 때는 노부들이 아마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슬퍼할 것은  없

다. 우리들은 이

미 살만큼 살았으니까!

얼마 전부터 범황삼성의 기운이  쇠하여지면서 우리들의 앞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

을 알게 되었다. 

비록 적살기(赤殺氣) 사이에 미미한 명광(明光)이 비치긴 한다만...!

사랑하는 제자야... 우선은 너의 신세부터 알려 주마!>

"나의 신세내력...!"

화우성의 눈가로 격동의  빛이 일렁였다. 자신의 신세내력을 여태껏 그는  알지 못

했던 것이다.

<십팔 년 전, 노납은 성역인 애불륵사불에서 너를  발견했다. 당시 너는 한 여아의 

극심한 보살핌

으로 살 수 있었다.

이름은 모르나 그 여아는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허나 노납은 그  여아를 그대로 두었다. 왜냐하면  그 여아는 천하에 드물기  짝이 

없는 태음지신을 

타고난 여아였기에 능히 애불륵사봉의 빙정을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 여아는 유리빙궁에 거두어질 것이다. 

네 신세를 확실히  알고 싶으면 유리빙궁을 찾으면 될  것이다. 현재,  유리빙궁의 

소재지는 노납도 

알 수가 없으나 기회가 닿는다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요 근래 노납이 천기를  본 바에 의하면 중원과 변황이 온통 혈류(血流)에 

휩싸여 있는 것

으로 보아 조만간 엄청난 혈겁이  천하를 강타할 것이다.  그것을 평정할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오직 너 하나뿐이다.

용왕천좌성! 네 가슴에는 일곱 개의 용성좌(龍星座)가 있다. 

오직 심안(心眼)으로만 볼 수 있는 고금제일무적신체의 용왕천좌성이...!>

"용왕천좌성?"

화우성은 일순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 보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그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서찰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화우성은 몰랐

다.

용왕천좌성!

천인성(天人星)이라 불리우는 전설의 성체,  천인(天人)의  지혜와 파천(破天)의 무

위(武威)를 지니

고 탄생한다는 그 무적지신을 자신이 타고났음을 화우성은 알지 못했으니...

금령천불은 명경지수와도 같은 심안으로 그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일곱 개의 별에 대해 전설은 말한다.

---용왕칠좌성이 현신할 때 천지는 광명의 천신을 맞이하리라!

"천라오겁혈비국(天羅五劫血秘國)!"

서찰을 읽어내려가던 화우성의 얼굴은 온통 경악과 불신의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대체 무슨 글을 보았기에...?

이제 밝혀지지 않았던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비밀이 드러난다.

백 년 전, 천하가 인정하는 변황최강삼세가 있었다.

일컬어, 

<범황삼패천(梵皇三覇天)...>

뇌정마찰(雷霆魔刹),

대지신궁(大地神宮),

성령사원(聖靈寺院),

일문의 힘으로도 전 중원과 맞설  수 있다고 알려진 막강한 전력을 지녔던 초강파

들...

헌데, 어느날인가? 

폭풍이 휘몰아치고 낙뢰가 천지를 박살내며 떨어지던 그날,  그들 범황삼패천은 천

하가 모르는 곳

에서 이제껏 아무도 알지 못했던 그 무엇과 천지붕멸의 대결전을 치루게 되었다.

삼파의 정예인 오만 이천의 무적군단, 

처절한 사투는 장장 일  년을 끌었으며, 피(血)는 산하를  적토(赤土)로  만들고 시

신은 천 리에 깔

렸다.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대혈전(大血戰)!

그리고 승리! 그것은  찢기고 박살난 승리였다. 오만 이천의  정예 중 생존자가 단 

삼천(三千)에 불

과했다는 사실이 말해 주듯 그것은 승리가 아니었다.

이로서 범황삼패천의 이름은 천하에서 사라졌다.

무림역사상, 이제껏 단 한 번도 출현치 않았으며, 아무도 알지 못했던 신비와 전율

의 세력, 

<천라오겁혈비국(天羅五劫血秘國)...>

그렇게 불리워진 천외천(天外天)의  괴이국(怪異國)들, 그들은 존재는 다음과  같았

다.

-흑해(黑海)!

아득한 태고시대... 죽음의  검은 바다 위에 떠  있던 고도가 거대한 바다의   해일 

속에 침몰되었고, 

고도의 인간들은 모두 수장되고 말았다.

그러나, 한 인간이 있어 물 속에서도 살 수  있었으니 그로부터 부어족이 생성되었

다.

용린(龍鱗)같이 단단한 갑린(甲鱗)을 가지고 있는 무적해인들, 그들이  살고 있다는 

전설지가 흑해

였고, 그곳은 죽음의 검은 바다였다.

-축융마염봉!

열두 개의 활화산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는 불의 왕국이었다.   일명(一名), 백야마

염국(白夜魔炎國)

이라 불리우는 화인들의 나라... 

-북천빙설국(北天氷雪國)!

전설 속의 설인(雪人)들만의 천국,  얼음속으로 주식을 삼고 빙정을 흡수하며 산다

는 얼음인간들이

었다.

한 번의 입김에 조그마한 호수쯤은  간단하게 얼음으로 만들어 버릴 수 없다는 설

인들만의 설국! 

그곳이 북천빙설국이었다.

-암흑유혼계(暗黑幽魂界)!

지저세계! 만장지하에 살고 있다는  빛이 없는 암흑 속의 유령인들만이 살고  있다

는 유부,  사후세

계의 실질적인 지배자들, 어둠이 있는 한 그들은 무적이 될 수 있었다.

-청동용골족(靑銅龍骨族)!

범인의 세 배에 달하는 거구를  지닌 초거인들만의 대인국(大人國)! 선천적으로 엄

청난 신력을  타

고나며 그들의 신체는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벨 수 없는 무적천강지신을 이루고 

있었다.

천라오겁혈비국(天羅五劫血秘國)!

-흑해(黑海)!

-축융마염봉(祝融魔炎峯)!

-북천빙설국(北天氷雪國)!

-암흑유혼계(暗黑幽魂界)!

-청동용골족(靑銅龍骨族)!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천외천의 비역들은 일시에 역사의 표면에 나서길 원했다.

허나, 인간은 그것을 용납치 않았다.  토화라국(吐火羅國)의 절대오지인 천황대밀림

에서 펼쳐진 인

간과 괴이족의 일 년여에 걸친 대결돌 속에 그들은 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부어족은 차디찬 바다로...

설인들은 은륜(銀輪)의 세계로...

피눈물을 흘리며 역사를 저주하며  패주하던 그들은 하늘을 향하여 환호성을 내질

렀다.

--삼천 년, 그 이전에는 본국의  국주(國主)되는 분들을 실종시키어 우리들을 파묻

어 버리더니...

하늘이여... 너를 저주한다!

허나 기억할지어다! 오행(五行)이 깨지고 제왕(帝王)의  바람(風)이 불때 우리는 다

시 진군할 것이

다!

인간에 눌려 역사의 주인이 되지 못한 괴이족들... 그들은 그렇게 사라져야만 했다. 

어둠의 뒤안길

로...

                                  

"사부님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 자신들의 모든 것을 희생하셨다."

화우성은 호탕하게 대소를 터뜨리는 뇌정패불의 얼굴을 떠올리며 숙연해졌다.

"천하최강인의 영명과 범황삼패천을 희생시키고도 그 분들은 웃을 수 있었다! "

화우성의 가슴 저 밑에서 무엇인가 뭉클한 열기가 치솟아 오름을 느꼈다.

"결국... 인간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진정한 무적인(無敵人)이 될 수 있는가? 

좋다!"

일순, 화우성의 눈에서 강렬한 안광이 나왔다.

"나... 화우성! 인간이 될 것이다! 진정한 인간... 가장 위대한 승리자가..."

뇌룡(雷龍)의 창룡후(蒼龍吼)는 천지를 떨어울린다.

환상이었을까? 

이 순간, 화우성의 가슴에서 칠성광휘가 스쳐 지나갔음은...

"...!"

화우성은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그의 가슴은 모든   것이 공으로 되돌아간 명경지

수와도 같이 맑

게 가라앉아 있었다.

<금붕국(金鵬國)으로 가라... 

천라오겁혈비국과의 대혈전 중 알게 된 사실은... 그들은 오행(五行)의 파멸과 제왕

의 바람을 기다

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만일, 그것들이 나타난다면 천하는 인간이 아닌 괴물들에 의해 멸망할 것이다.

찾아라! 금붕국의 금붕천밀전에 있다는 오행혈비도(五行血秘圖)와 천년제왕풍(千年

帝王風)을... 

근래들어 천기예성전을 빌어 출몰하는 심상치 않은 기류도 그것을 노린 것이 아닌

가 한다. 

막아야 한다! 우성... 오직 너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제자야... 부디... 천룡(天龍)이 되어라!>

"대사부님..."

화우성은 조용히 서찰의 내용을 음미하여 신형을 돌렸다.

뇌정천밀전을 벗어나는 그의 안색은 무겁게 변해 있었다.

이제... 그는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대로 해야만 되었다.

누구도 그의 앞길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기에...

"우성은... 천룡이  되겠습니다. 가장 강한...  패하지 않는 절대무적패룡(絶代無敵覇

龍)이..."

한 줄기 힘있는 음성이 조용히 흘렀다.

                                       

<금붕국(金鵬國)...>

천축을 비롯한 변방제국들은 수많은 왕조가 바뀌며 명멸해 갔다.

헌데, 그런 중에도 유독  금붕국만은 천 년 동안이나 긴 세월을 이어오고   있었으

니... 금붕국은 넓

은 영토를 보유하지도, 국강한 전사(戰士)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금붕국은 그 명맥을 천 년 간이나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지극히 간단했다. 마치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수많은 종교의 덕분이었

다.

천축고태의 바라문, 서역의 회회교... 불교, 지나교,  파자국의 배화밀교 등... 수많은 

종교군은 천축

전역에 분산되어 있었다.

천 년 래... 그들 종교파벌들은 서로 피어린 쟁투를 거듭하고 있는 상태였다.

금붕국!

이 조그만 소국(小國)은  기묘하게도 모든 종교군 세력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

다. 그 위치는 서

로의 직접적인 종교대립을  은연 중에 방비하는 완충지대였던  것이다.  그 덕분에 

금붕국은 천 년

의 긴 시공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덧... 조그마한 이  소국은 천축뿐 아니라 새외변방의 중심지로 발달하

고 있었다.

온갖 문물과 인종, 댜양한 종교의  집산지가 되었으며, 십 년 마다  행해지는 금붕

국의 최대행사인 

천기예성전은 어느새 변황의 가장 성대한 연희가 되었다.

<금붕천황성(金鵬天皇城)...>

금붕국왕인 금붕천황(金鵬天皇)  아륵천이 기거하는 대성이었다.  평소엔 조용하기 

이를 데 없는 곳

이었으나 지금은 금붕천황성 전체가 술렁이고 있었다. 

또한, 범상치 않은 기인, 괴걸들이 연신 출몰하고 있었으니... 

밤(夜)... 

여인의 탐스런 둔부 같은 만월은 현란한 은하의 물결을 내뿜고 있었다.

<금라화원(金羅花院)...>

금붕천황성의 밀지였다. 금붕국의 왕족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별원이 그곳이었다.  

일명(一名), 천

화비원(天花秘院)이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기화요초군으로 뒤덮여 있는  세외선경

이었다.

헌데, 월하(月下) 속 은하의 물결을 따라 걸어오는 두 인영의 모습이 보였다.

손을 마주잡고 다정스럽게 걸어오는 두 여인, 

좌측의 여인, 십칠팔 세쯤 되었을까? 

푸른 청보석을 박아 넣은 듯  빛나는 벽안에 월하의 잔광으로 반짝이는 금발을 지

닌 여인이었다. 

가벼운 궁장을 따라 여실히 드러나 있는 자극적인 여체... 

만월이 무색할 정도로 부풀어 오른 젖가슴의 융기가 탐스러운 그녀의 몸에는 독특

한 품위가 깃들

어 있었다.  범인이라면 감히 직시하지도 못할  고아함과... 귀품(貴品), 성결스러움

이..., 

그녀의 옆에는 십오 세 정도의 소녀가 손을 잡고 있었다. 

신비롭게도 긴 적미(赤眉)와 은은한 홍광이 감도는 머리결을 지닌 소녀였다. 

그녀의 몸매 또한 특유의 서역여인답게 풍염하기 그지없었다. 허나, 몸은 숙성했어

도 나이는 어쩔 

수 없는 듯 그녀의 옥용엔 천진스러움과 장난기가 물씬 배여 있었다. 

흡사, 귀여운... 인형을 보는 듯 아름다운 소녀였다.

누군가? 각기 독특한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있는 인간 같지  않은 미모를 지닌 이 

여인들은...?

"이제 내일이면..."

문득 금발여인이 뜻모를 탄식을 발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의 말에 적미소녀가 입술을 꼭 깨물며 단호하게 말했다.

"흥! 난 죽어도 그 놈한테는 시집 안 가!"

금발소녀가 서글픈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버님과 어머님을 구하려면..."

금방이라도 주르르 흐를 듯 눈물이 글썽이는 봉목...!

"...!"

적미소녀도 그녀의 말에 고개를  푹 숙이고 발로 돌을 툭툭 찼다. 이  소녀들은 대

체 무슨 일이 있

어 이토록 수심이 가득하단 말인가?

헌데... 순간, 

"언니!"

마치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는 듯  그녀의 고개가 발딱 들리며 희망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그 분을 부르면 되잖아!"

금발소녀도 눈물이 찰랑이던 눈을 들었다.

"그 분이라니...?"

적미소녀는 생각만 해도 기쁘고 모든  근심이  사라지는 듯 손뼉을 치며 아기처럼  

기뻐하는 것이 

아닌가?

"화공자님 말이야!"

금발미소녀의 봉목(鳳目)에도 기광이 어렸다. 허나... 그녀는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그 분이 사는 곳은 아무도 모르는데... 설혹 안다  해도 어떻게 내일까지 

모셔온단 말이

니?"

"그렇구나...!"

적미소녀는 금시 풀이 죽었다. 

두 소녀가 떠올린 시공자라는 인물... 그가 누구이기에  이들에게 금방 희망을 주었

다가 실망을 주

곤 한단 말인가?

"난... 난 싫어!"

적미소녀가 금시 눈물로 얼굴을 적시며 금발소녀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싫어! 그 늑대 같은 사내는 싫단 말이야... 흑흑...!"

금발소녀도 눈물을 글썽거리며 동생의 홍발(紅髮)을 쓰다듭었다.

"할 수 없지 않니...부모님의 목숨이 그 사람 손에 달렸는데..."

"흑흑...! 언니 어떻게 해...?"

"..."

금발소녀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에 찰랑거리는 구슬같은 이슬방울... 

금발과 적미의 두 소녀는 바로 금붕국의 공주였다.

<금붕쌍미려(金鵬雙美麗)...>

--금령공주(金靈公主) 아화라(亞花羅)!

--적미공주(赤眉公主) 아나나(亞那那)!

바로 금붕국왕인 금붕천황 아륵천의 두 천금이었다.

헌데... 금붕천황의 목숨을 쥐고 있는 자가 있다니...! 더구나 그를  구할 수 있는 기

간은 겨우 내일

까지라니...? 이 밤이 지나면 금붕국은 유래없는 대축제가 벌어지거늘!

<천기예성전(千技藝聖殿)...>

여기에서 우승하는  자(者)는 변황세력들의 총동맹(總同盟)인 천축무림맹(天竺武林

盟)의 맹주(盟主)

가 되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게다가... 우승자에게는 또 하나의 은전이 주어졌다.

또 하나의 은전(恩典)!

금붕국의 결혼풍습은 대단히  특이하다.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자매들은 하나든 

열이든 모두 한 

남자에게 시집을 가야 하는 기이한 풍습이 있었다. 

그리하여... 금붕국에서는 아내를 얻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반드시 

어떤 대결을 통

한 승자만이 한 집안의 자매들을 몽땅 아내로 취하는 것이다.

천기예성전! 

그것은 아내를 얻기 위한 대결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었다.

금붕국의 공주들도 이 기괴한 풍습에 예외일 수는  없는 것...그리하여 공주들이 혼

인할 나이가 되

면 황궁에서 전 금붕국 청년들이 문무를 겨뤄 승자가 공주들의 공동남편이 된다.

헌데... 이번  천기예성전은 과거와 달리 전  변황이  들석일 정도로  요란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금붕쌍미려 때문이었다.

고금에 유래가 없는 변황제일미의  일이위를 다투는 두 미녀... 뿐만 아니라... 우승

자는 금붕쌍미려

를 아내로 취함은 물론 금붕천밀전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었으니...

<금붕천밀전(金鵬天密殿)...>

모든 종교가 병립하고 있는 금붕국의 특수한  지리적 여건 때문에 지난  천 년 간

에 온갖 기서(奇

書), 기물(器物), 영약(靈藥)이 비장되어  있는 보고(寶庫)... 그것을  이름하여 금붕

천밀전이라 하였

다.

미녀와 명예와 천년기연! 

꿈과 야망이 넘치는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원하는 것들이 아니겠는가? 드디어 

천 년  래에 가

장 성대한 천기예성전이 내일로 닥친 것이다.

헌데... 그것에 모종의 훙독무비한 음모가 깔려 있다니...

두 소녀는 근심에 젖어 망연히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헌데... 바로  그때, 금령공주와 아화라의 눈이  빛나며 한 곳을 주시했다.   그늘진 

나무 아래... 백호

피로 아랫부분만 가린 야성적인 미청년이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미풍에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안(美顔)이 나타났다.

뇌신(雷神)도 움추려 들만큼 가공할 기도...! 

바로 화우성이 아닌가?

"안녕하셨소? 화라 누님!"

화우성이 뚜벅뚜벅 걸어나오며 빙긋 웃었다.

그를 본 화라의 눈에는 기쁨에 찬 눈물방울이 아롱졌다.

"우성... 당신이었군요."

이때 아나나가 응석을 부리듯 화우성의 품으로 와락 뛰어들었다.

"우성 오빠!"

아나나는 짐짓 토라진 듯 화우성의  가슴을 조그만 손으로 마구 때리며 화난 표정

을 지었다.

"흥! 왜 이제야 왔죠? 나나는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화우성이 대견스럽고 귀엽다는 듯 아나나의 등을 쓰다듬으며 위엄있게 대답했다.

"미안! 좀 일이 있어서..."

"오빠... 정말 보고 싶었단 말이야..."

아나나의 그윽한 눈길이 화우성의 미안을 스쳐 지나갔다.

"나도... 흡!"

화우성은 말을 잊지  못했다. 어느새 아나나가 향긋한 입술로 입맞춤을  해버린 것

이다.

"나나..."

화우성이 그녀를 살며시 떼어 놓으며  한 마디 하려는  순간, 나나가  어느새 품에

서 벗어나 혀를 

낼름 내미는 것이 아닌가?

"언니하고 얘기 많이 해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며 저쪽으로 폴짝폴짝 뛰어갔다.

"...!"

그녀의 구여운  모습을 본 화우성과  아화라는 마주보며 빙그레 웃었다.  화우성은 

이미 사 년 전부

터 금붕국으로 와  귀인으로 대우받고 있으며, 특히 화라와 나나와는  각별한 우의

가 있었다.

사 년 전, 아화라는 선천적인 걸증 때문에 지금처럼 건강하지가 못했다.

폐맥응혈천음지신(閉脈凝血天陰之身)!

이 병에 걸린 여인은 전신 혈맥이  막히고  피가 엉켜붙으며 보통 여인의 수십 배

에  말하는 음기

(陰氣)를 지니게 된다.

아화라는 이 절증이 극에 이르러 이미   동사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그때...  화우

성이 범천삼천종 

몰래 사라천림을 빠져나와 천하를 유람하던 도중 금붕국에 들리게 되었으니...

당시 그의 나이 고작 십사 세! 수많은 변황 제일의  명의들도 고치지 못한  화라의 

병을 고치겠다

고 나섰을 때 어는 누구도 믿지 않았으나 화우성은 거뜬히 고쳐 버렸다.

그러나 화라의 달과 같은 음기는 지울 수가 없었다. 

실상 화라는 아무에게도 시집갈 수가 없는 여자였다. 보통  여인의 수십 배에 달하

는 음기를 지녀

서 어떤 남자도 당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허나... 그것은 일반인에 해당할 뿐   특히 빙공(氷功)을 익힌 자가 그녀를  위하면 

무적의 빙강(氷

剛)을 연성할 수 있게 된다. 

가히... 인간지보(人間之寶)가 아닌가?

화우성은 화라를 고쳐준 후 매년 한 번씩 금붕국을  방문했다. 그 덕분에 화우성은 

화라와 나나와 

매우 친숙하게 됐다. 특히... 나날이  강성해 가는 화우성에게 두 공주는 모두 연심

을 품고 있었다.

마주보던 화우성의 한쪽 눈이 찡긋하며 장난기 어린 말이 흘러나왔다.

"하핫! 화라 누님은 나날이 아름다와지는구료... 정말 눈이 부실 지경인데?"

"우성... 흑!"

헌데... 화라는 화우성의 가슴에 무너지듯 안기며 오열하는 것이 아닌가?

화우성은 흠칫했다.

"누님... 왜?"

"흑...!"

화라는 대답없이 울기만 했다.

"내일이면 좋은 낭군을 만날 텐데 기쁜 날 왜 울고 있소?"

"흑...! 우성은 몰라요."

화우성의 뇌리에 언뜻 생각이 스쳤다.

(흐음...! 뭔가 어두운 분위기라고 했더니...무슨 일이 있군...)

이때... 화라가 눈물을 훔치며 애절하게 말했다.

"우성...! 아바마마와 어마마를 구해 주세요."

화우성의 얼굴에 놀람과 의혹의 표정이 스쳤다.

"아니! 두 분께서는 무슨 일을 당하셨습니까?"

화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바로 한 달 전이었어요. 돌연 다섯 명의 괴한이 몰려와서는..."

화라는 울먹거리며 화우성에게 지난 한 달 동안 일어난 일을 모두 말했다.

한 달 전, 심야에 금붕천황의  침실로 돌연 오 인의 괴한이 잠입했다. 그들은 순식

간에 금붕천황을 

제압하고 천기예성전을 개최토록 종용했다.

그와 동시에 천 년 간 이어져 온 율법을 깨고 모든 변황인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라고 협박했

다. 뿐만 아니라... 우승자에게는 천년비고인 금붕천밀전을 개방하라고 위협하는 것

이었으니...

괴인들은 금붕천황과 황후에게 독약을 강제로 먹였다.

아울러 말을 안 들으면 금붕국을 씨도 남기지 않고 궤멸시키겠으며 두 공주를  강

제로 끌고 가겠

다고 협박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금붕천황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화라는 겁에 질려 떨면서 마지막 사실을 밝혔다.

"그들은 자신들이 천중(天中)에서 왔다고..."

"천중오비혈(天中五秘血)!"

화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우성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졌다.

화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우성... 제발 구해 주세요!"

애처롭게 떠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화우성이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누님, 걱정 마시오! 나는 이 세상의 어떤 독도 다 해독할 수 있으니까...!"

"고마와요, 우성..."

화라는 믿음직스런 말에 안심이 된 듯 화우성의 품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화라의 금빛 머리를 쓸어내리는 화우성의 안색은 만년빙정처럼 싸늘하게 굳었다.

(천중오비혈(天中五秘血)이 어찌 알고 금붕천밀전을 노린단 말인가?)

화우성의 눈가에는 가공할 살광이 번뜩였다.

(이제부터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놈들은 가차없이 척멸하리라! 내  모든 능력을 

써서라도...)

드디어 잠룡이 용트림을 시작하는가? 

금붕국의 풍운은...과연 종식될 것인가?

월광(月光)이 두 남녀 위로 은싸라기를 흩뿌리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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