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거성(巨星)의 추락(墜落)...
폐찰(廢刹),
오래 전에 세워진 듯 폐허로 낡디낡은 절(寺)이었다.
꽈르르릉!
이곳에도 예외없이 뇌전과 벽력성이 작렬하고 있었다. 일순, 번쩍 섬광이 일며
대지를 대낮같이
환하게 비추고 그 사이로 부서져 내린 폐찰의 현판이 드러났다.
<뇌정마찰(雷霆魔刹)...>
오랜 풍상을 겪은 듯 희미해진 서체는 그러나 웅휘하기 그지없었다.
헌데 뇌전이 작렬할 때마다 을씨년스럽게 드러나는 폐찰의 전모를 보라! 족히 십
만 평은 됨직한
대지 위에 수백여 채의 고루거각이 늘어서 있는 엄청난 웅자(雄姿)를!
폐허가 되었으나 융성기에는 엄청난 영화를 누린 듯 폐찰의 전경은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헌데 이곳이 정녕 뇌정마찰이란 말인가? 천축무림의 전설적인 패세인 벼력력의
후예들이 세웠다
는...?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천축은 그야말로 최극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는 천 년
의 전통을 지닌
삼대패세에 의해 주도된 전성기였다.
<범황삼패천(梵皇三覇天)>
뇌정마찰(雷霆魔刹),
대지신궁(大地神宮),
성령사원(聖靈寺院),
가히 한 세력만으로도 천축뿐 아니라 천하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으리만큼 막강한
세력을 보유했
던 범황삼패천이었다.
그러나, 백 년 전 이들 범황삼패천은 어느날 신비롭게도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이 돌연 세상에서 모습을 감춘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능히 파천황의 성세를
구가하던 범황
삼패천의 실종으로 인해 천축무림은 경악하며 범황삼패천을 찾았다.
허나 오리무중이었다. 어디에고 범황삼패천의 종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백 년의 시공이 흐르자 차츰 범황삼패천의 이름도 잊혀져 가고 있
었다.
뇌정마찰은 바로 그 범황삼패천중에서도 첫 번째로 꼽히던 천축제일패세였던 것이
다.
그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수백 년 동안 무적의 성세를 구가
하던 뇌정마찰도
결국은 폐허가 되고 말았으니...
<천뢰전(天雷殿)...>
과거 천축제일의 패문이던 뇌정마찰의 지존 뇌정패불(雷霆覇佛)이 거처로 삼던 곳
이다.
하지만 지금은 부서진 기와와 목없는 석주만이 덧없는 영화의 무상함을 대변하듯
황폐하게 잡초
속에 뒹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생물의 그림자라곤 없는 이 폐찰에서 은은히 등광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과거, 천축제일의 성역이었던 이곳에도 장대같은 폭우와 전율스런 뇌성벽력이 작
렬하고 있었다.
천뢰전의 내전에는 지금 세 개의 인영이 흔들거리는 황촉을 아래 좌정해 있었다.
이남일녀(二男一女)! 깊은 침묵이 흐르는 사이로 그들 삼 인은 어떤 상념에 잠긴
듯 지그시 두 눈
을 내리감고 있다.
"허어...! 대체 이 놈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삼 인 중 좌측의 마의노인이 입을 열었다.
태산(泰山)인가? 그는 가히 하늘이라도 무너뜨릴 가공할 극강기도의 소유자였다.
가슴까지 드리워
진 흑염(黑髥)은 그의 기도와 유사하리만큼 어울렸다.
눈(眼)! 보통사람이라면 뇌정이 작렬하는 듯한 그 눈빛만으로도 그 자리에서 즉사
하리만큼 공포스
런 안광을 마의노인은 흘리고 있었다.
"호호! 그 아이가 이런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요? 패불(覇佛)께서 아무리 잡아 놓
으려 해도 무리
지요. 특히나 이렇게 뇌성과 벽력이 휘몰아치는 날엔..."
마의노인의 말을 받은 것은 우아한 금라의(金羅衣)를 일신에 걸친 중년미부였다.
나이는 이제 갓 사십쯤 되었을까? 정숙하고 고결하기 이를 데 없는 분위기의 중년
미부였다.
한 쌍의 눈은 봉황(鳳凰)의 그것을 닮았고, 오똑한 콧날과 섬세한 아미, 꽃잎 같
은 입술은 그 누
구도 흉내낼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비록, 세월의 흐름이 그녀의 얼굴에 몇 개의 가는 선을 그어 놓았지만 그것으로
그녀의 아름다움
을 지울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런 그녀의 자태를 젊은 여인에게선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완숙한
우아함과 고아한 품위가 있었다.
여인은 약간 노기가 서려 있는 마의노인을 바라보며 그윽한 미소를 머금었다.
흡사 국화 같은 중년미부의 벽안은 한 사내아이의 영상을 떠올리고 있었다.
항시 자신의 금발을 베개와 이불삼아 잠들곤 했던 한 마리 어린 사자를...
(훗! 우성, 그 애는 정말...)
중년미부는 자애스런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그때,
"아미타불... 패불시주는 심려 놓으시구료, 신모의 말씀대로 그 애가 장난은 좀 심
하나 능히 사자
지왕의 재목이 될 터이니..."
마지막으로 입을 연 것은 황금빛의 승포를 걸친 팔순 가량의 승인이었다. 은은히
빛나는 벽안은
심유함과 아울러 그 누구도 범접치 못할 성스러움이 배여 있었다.
한데 그의 손은 황금을 입힌 듯 찬연하게 빛나고 있는 것이었다.
황금수(黃金手)...!
이런 손을 가진 인물은 천하에 단 한 사람뿐이다.
아는가? 백 년 전... 천축과 서장 일대, 서역의 모든 것을 우선하며 모든 서역인들
이 성인(聖人)으
로 추앙하던 삼 인(三人)이 있었음을...
이름하여,
<범황삼천종(梵皇三天宗)...>
뇌정패불(雷霆覇佛),
대지신모(大地神母),
금령천불(金靈天佛),
뇌정패불,
패도(覇道)!
그에 관한 모든 것은 이 한 마디의 말로 표현된다.
범황삼천종 중 최극강의 무공을 소유하고 있는 천축최강인이 바로 그다!
폭급한 성질과 악(惡)을 사갈시 하는 그의 성정(性情) 때문에 당시 천축은 마
(魔)의 그림자조차
밟지 못했다.
가공함과 전율! 능히 조그마한 동산 하나를 쌍장으로 부수는 엄청난 뇌력(雷力)을
지녔던 뇌정패
불의 손에서 시신마저 온전히 부존한 사람은 전무했다.
오직 한 줌의 잿가루로 화할 뿐!
백 년 전 당시 최극성기를 이루었던 뇌정마찰의 지존(至尊)이 바로 그 뇌정패불이
었다.
대지신모,
여인들만으로 이루어졌다는 신비의 문파인 대지신궁(大地神宮)의 궁주(宮主)였다.
백 년 전 당시, 그녀가 출현하자 모든 천축인들은 그녀를 성녀(聖女)로 추상하며
따랐다. 그녀가
이르는 곳엔 모든 분쟁과 불화가 사라졌으며, 대지신모는 비록 극악한 마인(魔
人)이라 할지라도
개과천선시키고자 노력했다.
성녀(聖女)라 일컬어지는 대지신모는 딱 한 번 분노했다.
태음천락교(太陰天樂敎),
음사한 술법과 음약(淫藥)으로 서역(西域)을 탕세하려던 사교의 무리들이었다.
대지신모는 자파의 궁도들마저도 태음천락교의 무리들이 음수를 뻗치자 분노했고,
단 삼 주야 만
에 전 서역을 물들이던 태음천락교는 멸문(滅門)당하고 말았다.
대지신모!
혹자는 이 신비의 여인이 뇌정패불보다 오히려 무공이 더 높을 것이라고도 했다.
금령천불,
그는 석가 이래 최대의 성불(聖佛)로 칭송받던 인물이었다.
바다와 같은 불심으로 천하 위에 우뚝 선 대성불(大聖佛)인 금령천불! 그의 몸에는
천축최강의 수
공(手功)인 전설의 천강인(天剛印)이 담겨 있었다.
금강석일지라도 바숴 버리고 열두 검의 호신강벽도 깰 수 있다는 파괴지수(破壞
之手)를 가진 천
강인을 극성까지 이루면 쌍수가 금광(金光)으로 항시 덮여 있다. 천축무림사를 통
틀어도 오직 금
령천불만이 천강인을 극성까지 이루었다고 소문나 있었다.
헌데 백 년 전에 신비롭게 멸문된 범황삼패천 중 뇌정마찰의 고적에서 담론을 나
누고 있는 세 인
물들...
그렇다!
바로 이들이 범황삼패천의 지존들인 범황삼천종이었다. 천하에 이런 인물이 그들
외에 또 누가
있겠는가?
이미, 죽었다고 알려져 사람들의 뇌리에도 지워져 가는 그들이 백 년의 시공이 지
난 지금 폐허가
된 뇌정마찰에 모여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삼 인의 절대자, 과거 천하에 적수가 없었던 이들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어떻게 된 놈이 천둥, 번개만 치면 미친 듯이 좋아라 날뛰니.."
뇌정패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성아가 천둥 번개를 좋아하는 것은 그 아이의 천성(天性)인데 어찌하겠어요?"
대지신모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을 받았다.
"아미타불..."
금령천불은 불호를 되뇌이며 두 눈을 내리감았다.
주마등같이 스쳐가는 추억...
(벌써 십팔 년이 흘렀는가? 대설산(大雪山)에서 우성을 데려다 기른 지가...)
이들 범황삼천종에게는 엄청난 비밀이 있었다. 그것은 차후로 밝혀지겠거니와...!
화우성(花雨星)!
그는 천축무림 최강자들인 범황삼천종(梵皇三天宗)의 제자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을 품고 있는 범황삼천종이었으나 화우성의 괴행(怪
行)에는 천하의
범황삼천종도 두 손을 들고 말았으니...
당년 십팔 세인 그에겐 괴이한 두 가지의 버릇이 있었다.
금령천불의 입가로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아미타불! 성아는 원래 특이한 구석이 많은 아이잖소?"
"그건 그래요."
대지신모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성아는 옷을 입히면 거북하다고 벗어 버리고... 엉덩이까지 오는 긴 머리를 자르
려고 하면 기를
쓰고 도망다니니..."
"녠녠...! 그 뿐이면 그래도 이쁘지. 어떻게 된 놈이 뇌전만 치면 뛰쳐나가서 도통
보이질 않으니...
오늘은 두 분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인데... 쯧!"
뇌정패불은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화우성은 범황삼천종의 모든 것을 한 몸에 이어받은 초기개였다.
"녠...! 놈은 불과 열 살때 내 밑천인 천뢰마벽강(天雷魔碧剛)을 몽땅 훔쳐가 버렸
소이다. 우성, 그
놈이 벼락만 치면 망둥이처럼 길길이 뛰며 좋아하는 게 천뢰마벽강 때문인지도 모
르겠소!"
"호호 저도 옥령공(玉靈功)은 단 일 년 만에 빼앗겼어요."
뇌정패불의 말에 대지신모도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마주 웃었다.
"아미타불... 그 녀석은 천강인(天剛印)을 익혔음에도 손에 금광(金光)이 서려 있지
않소이다. 그것
은 이미 노납의 경지를 뛰어 넘었다는 증거지요."
드 사람의 말에 금령천불도 허허롭게 웃음을 머금었다.
-천뢰마벽강(天雷魔碧剛)!
뇌전이 작렬하고 벽강이 일천 장을 뒤엎으면 그 안의 모든 것을 초토화시키고
마는 뇌정마찰의
천년정화!
-옥령공(玉靈功)!
여인들만이 있는 대지신궁의 전설의 비학(秘學)이 그것이었다. 보법, 신법, 후공(吼
功), 검무(劍武),
장공(掌功) 등... 모든 것을 응용하여 펼칠 수 있는 만류무(萬流武), 무려 삼만 칠
천오백의 변화를
담고 있는 기오막측한 무학이었다.
-천강인(天剛印)!
설명이 필요없는 천하최강의 파멸수강(破滅手剛)! 가히, 하나만이라도 얻으면 천
하를 굽어볼 수
있는 경세절학이다.
헌데, 그것을 화우성이 모조리 얻었으며, 원 주인들보다 더욱 심오하게 발전시켰
다.
"흐음! 이제 그럭저럭 때가 된 듯하오!"
"...?"
"...!"
금령천불의 침중한 말에 나머지 이 인은 어리둥절해했다.
"어제 천기(天機)를 짚었소. 다시금 우려하던 일이 재현될 것 같소이다. 아미타
불..."
"그렇다면... 오겁혈풍(五劫血風)이 또다시?"
뇌정패불이 안색을 일변시키며 묻자 금령천불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다시 나타났단 말인가요? 백 년 전 우리 범황삼패천이 간신히 물리친 그
들이..."
대지신모의 옥용은 점차 굳어지고 있었다.
"허나 그리 우려하지 않아도 되오! 우리에겐 성아가 있으니... 게다가 우린 지난 백
년 간 이 때를
대비해서 힘을 축적해 놓았지 않았소?"
"하지만... 만일을 위해 이제 성아를 금붕국(金鵬國)으로 보내야겠어요."
"녠! 성아만 계획대로 성장해 준다면 그깟 오겁(五劫)이 아니라 십겁(十劫)이라 해
도 문제없지."
뇌정패불은 주름을 풀며 호언을 던졌다.
그의 말에 나머지 두 사람은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삼 인의 뇌리에
는 길이 안든 망
아지 같은 화우성의 영상이 떠올랐다. 화우성이 뇌성벽력처럼 좌충우돌하며 썩은
짚단 쓰러뜨리
듯 적들을 무찌르는 장면이 선하게 펼쳐졌다.
그들의 미소는 한 점의 의심도 없이 자신들의 생각에 확신을 가진 상쾌한 미소였
다. 광풍폭우와
뇌성벽력을 조용히 잠재워 버릴 듯한 신념의 미소인 것이다.
헌데 그들이 나눈 말은 하나의 비사를 밝혀 주기에 충분했다.
백 년 전, 의문의 실종을 당했던 범황삼패천이 바로 오겁혈풍(五劫血風)이란 것을
잠재우려 했기
에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오겁혈풍(五劫血風)!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것을 잠재우기 위해 범황삼패천이 종적을 감춰야 했
단 말인가? 허
나, 범황삼천종의 말은 하나의 비사(秘事)를 밝혀 주는 대신 또하나의 의문을 던져
주었다.
<금붕국(金鵬國)>
범황삼패천이 화우성을 보내려는 그곳은 대체 어떤 곳인가?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그들이 그토록 확신에 찬 미소를 지을 수 있는가?
"....!"
스으! 스으!
어둠의 일각을 부수며 백영(白影)이 뇌정마찰을 향해 유령처럼 소리없이 다가들고
있었다.
일 인(一人), 짙은 죽음의 냄새를 풍기며 귀신처럼 스며드는 인영은 단 한 사람이
었다.
"...!"
문득, 그가 뇌정마찰의 대웅전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백의미청년, 의 전신에서는 대지를 박살낼 듯 가공할 패기(覇氣)가 스며나오고 있
었다. 그의 좌수
(左手)에는 한 자루 거대한 혈룡은번(血龍銀幡)이 들려 있었다.
휘리리릭!
피의 구름을 타고 악마의 혈안을 희번덕거리는 섬뜩한 혈룡문(血龍紋)에는 짙은
살기가 배어 있
었다.
그렇다면 그는 바로...!
천뢰전(天雷殿)의 불단(佛壇) 위에는 수백 개의 각기 다른 불상이 자리잡고 있었
고, 대전의 벽면
에는 가지각색의 불화가 정갈하게 그려져 있었다.
"...!"
"...!"
폐부가 시원해질 정도로 청량한 사라향이 은은하게 흐르는 사이로 좌정한 범황
삼천종의 표정은
지금 이 순간 심각하게 굳어져 있었다.
대체 무엇이 이들을 심각한 고뇌 속에 빠뜨리는가?
문득 금령천불이 침묵을 깨뜨리며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근자에 들어 변황무림의 동태가 심상치가 않소이다. 특히 천기예성전(千技藝聖戰)
을 둘러싼 금붕
국의 상황이 미묘하게 돌아가고 있소이다."
"으음...!"
"천기예성전에 무슨 이상이 있단 말인가요?"
뇌정패불은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침묵을 삼켰다.
아울러, 대지신모의 고운 옥용으로 살짝 주름이 잡혔다.
"그렇소이다."
금령천불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기예성전은 변황최고의 성스런 비무대회... 헌데 대대로 천기예성전을 개최했던
금붕국에 때아
닌 이족(異族)들이출몰하고...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하오..."
"감히... 어떤 놈들이 변황을 건드린단 말인가?"
뇌정패불의 쌍안(雙眼)에서 새파란 뇌전의 불꽃이 작렬했다.
천기예성전!
그것이 무엇이기에 범황삼천종이 관심을 기울인단 말인가?
허나 그들이 천기예성전에 지대한 관심을기울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천기예성전(千技藝聖戰)...>
말 그대로 천 가지의 기예(技藝)를 거두는 비무대회였다. 이 비무대회는 이십 년에
한 번씩 열리
는 것으로 변황인만이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전 변황의 축제인 천기예성전에서 우승하는 전사(戰士)에겐 무궁한 복연과 영예가
보장된다.
우선, 천기예황(千技藝皇)이란 무상지명과 함께 변황지존이 될 수 있는 천축무림맹
(天竺武林盟)의
맹주위에 오를 수 있다.
뿐인가? 변황최고의 부국(富國)인 금붕국의 최고미녀를 취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
된다.
대대로 천기예성전은 금붕국에서 개최되었다.
헌데, 전 변황의 성스런 제전인 천기예성전에 뭔가 불길한 암운(暗雲)이 드리워지
고 있었던 것이
니...
"현재... 그 암운의 원인이 어느 류파인지는 알 수가 없소이다. 아미타불..."
금령천불은 침중한 신색으로 백팔염주를 굴렸다.
"천기예성전을 건드림은 전 변황인들을 능멸하고 있다는 명백한 도전... 어떤 놈들
인지 주리를 틀
리라!"
뇌정패불의 눈가로 수만 개의 벽력이 작렬했다. 그의 노성은 천뢰전 전체를 뒤흔
들었다.
대지신모의 옥용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표정에는
곧 폭발할 듯한
폭풍이 담겨 있었다.
천지를 단숨에 함몰시켜 버릴 듯한 분노의 대폭풍이...
"호호... 변황을 건드린다고요? 나의 땅... 우리들의 대지를?"
대지신모의 입가로 고요한 웃음이 감돌았다.
대폭풍이 일기 직전의 고요함이랄까?
세인들은 알지 못한다. 바로 범황삼천종이 있었기에 변황의 평화가 지속되고 있음
을...!
물론, 천축무림맹(天竺武林盟)이라는 결맹이 있기는 하다. 하나 기실 타세력이 변
황무림을 건드리
지 못하는 것은 범황삼패천의 과거의 위명(威名)과 인세를 초월한 범황삼천종의
무위(武威) 때문
이었던 것이다.
문득, 대지신모의 고운 아미가 살짝 이그러졌다.
"정말 큰일이에요. 이 급박한 시기에 성아는 장난만 치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그녀의 곤혹스런 표정과는 달리 대지신모의 옥용에는 한 줄기 훈훈한 정감이 떠올
라 있었다.
"녠! 그게 다 신모께서 성아 그 놈을 오냐오냐 하며 키운 탓이외다."
뇌정패불은 대지신모를 돌아보며 혀를 찼다.
"아미타불... 아무래도 그 애가 오는 즉시 금붕국으로 보내야겠소이다."
금령천불의 말에 뇌정패불은 흐뭇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놈이 가면 한 바탕 소란스러워지겠군! 특히 변황쌍미(邊荒雙美)라는 그 계집들
은..."
이때 돌연, 뇌정패불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
"...!"
그와 아울러 대지신모와 금령천불도 흠칫하여 시선을 모았다. 무엇인가 거대한
암류가 천뢰전을
무섭게 짓누르고 있음을 느낀 것이었다.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범황삼천종은 허공으로 신형을 뽑아올렸다.
헌데, 바로 그 때였다.
돌연,
콰콰콰쾅!
천뢰전의 우측 벽면이 종잇장처럼 찢어지며 엄청난 폭음이 터졌다.
"웬놈이냐?"
뇌정패불은 바닥에 내려서며 무서운 폭갈을 내질렀다.
허나, 그의 일수(一手)는 말보다도 먼저 침입자의 몸에 닿았다.
순간, 거암이 뽀개지는 듯한 굉음이 터졌다.
뇌정패불의 신형이 부르르 떨렸다. 이어 그의 입에서는 절로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양극천강(兩極天剛)!"
괴영은 오히려 뇌정패불의 공격을 쳐부수며 보이지도 않을만큼 신속하게 덮쳐왔
다.
화르르르!
천지를 태워 버릴 듯이 강렬한 화염!
공기마저 투명하게 얼려 버리려 다가드는 빙강(氷剛)!
괴영은 극성의 성질을 지닌 빙(氷), 화(火)의 두 가지 극강패공이로 공격해 왔다.
지옥겁화인 양 가공할 화기는 뇌정패불의 금강신체를 녹여 버릴 듯 타오르고... 투
명한 빙무는 독
사의 혓바닥처럼 넘실거리는 것이 아닌가?
뇌정패불은 안색을 싸늘하게 굳히며 두 손을 건곤(乾坤)의 위치로 갈랐다.
"천불폭뢰강(千佛爆雷剛)!"
뇌정패불의 입에서 천지를 함몰시킬 듯한 폭갈이 터져나왔다.
그와 함께,
콰콰콰콰앙!
천붕지열의 굉음과 벽력폭음이 대지를 산산이 바숴 버렸다. 빙기(氷氣), 화광(火
光), 벽력강(霹靂
剛)이 어우러지자 장내는 순식간에 휘황한 색채로 일변했다.
이윽고, 비산하던 파편이 가라앉고 장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뇌정패불! 놀랍게도 그는 두 걸음 물러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입가로는
가는 선혈을 흘
리며 서 있는데 일견키에도 가볍지 않은 내상을 입은 듯했다.
"천뢰마강(天雷魔剛)... 그것의 극성이 화(火)와 빙(氷)의 극대조화인 양극천강임을
아는 자가 있을
줄이야...!"
뇌정패불은 이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공력을 운집시켜 감에 따라 그의 전신
에는 강렬한 뇌
강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허나, 그가 생각하고 공력을 끌어올린 한 순간은 눈 깜짝할 사이의 백분의 일이었
다. 괴영은 마마
천불폭뢰강에 주춤거리는 것도 없이 그대로 짓쳐드는 것이 아닌가?
"천뢰마강!"
뇌정패불의 입에서 엄청난 천뢰마후(天雷魔吼)가 터져나옴과 동시에,
쩌쩌쩌쩡!
낙뢰(落雷)!
수천 수만 개의 벼락이 작렬하며 사위는 낙뢰의 비로 뒤덮이고 말았다.
그와 아울러,
콰쾅!
수만 개의 유성군이 한꺼번에 폭멸하듯 장내는 굉염한 폭음 속에 휘감겼다.
"크흑!"
처절한 신음이 터져나왔다.
이럴 수가...! 뇌정패불의 전신이 참흑할 정도로 갈라져 있는 것이 아닌가?
"울컥!"
뇌정패불의 입에서 한 사발의 핏물이 토해졌다.
내장 부스러기마저 섞인 선혈이 토해지자 안색에 사신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허억!"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사건이라 미처 뇌정패불을 도와줄 시간이 없었던 금령천
불과 대지신모는
경악성과 함께 섬전처럼 괴영을 덮쳤다.
고오오!
휘황찬란한 금광이 금령천불의 전신을 휘감싸고,
파아아아!
대지신모의 십지(十指)에서 가공할 혈광이 뻗쳤다. 순간,
"천(天)_____ 강(剛)_____ 인(印)!"
"혈망류(血網流)!"
뇌정패불의 비참한 결과를 목격한 두 사람이 자신들의 최고절학으로 암습자를 공
격했다.
카카카캉!
천지파멸의 굉음과 둔탁한 쇳소리가 장내를 휘감음과 동시에,
"크윽!"
"아흑!"
금령천불은 헛바람을 삼키며 신형을 휘청거리고, 대지신모는 가슴을 움켜쥐며 그
대로 교구를 바
닥에 눕히고 말았다.
"이... 이런 쾌검이...!"
금령천불은 믿을 수 없는 듯 신음을 발했다. 그의 전신에는 금강벽과도 같은 무
적금강호신강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헌데, 괴영의 쾌검은 빛살보다도 빠르게 그의 호신강을 파괴하고 심장을 꿰뚫었으
니...
허나, 그는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대지신모의 전신은 온통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
쩍 갈라져 있는
것이 아닌가?
"..."
"..."
범황삼천종은 어이가 없었다. 느닷없이 출현한 괴영은 자신들의 약점과 무공 정
도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네놈은.... 누구냐?"
범황삼천종이 경악에 물든 시선을 괴영에게 던졌다.
그 순간,
파아아아!
눈부신 백의를 걸친 괴영이 말 한 마디없이 몸을 움직인 순간 찬란한 광채가 사위
를 뒤덮었다.
광채는 눈에 보이기도 전에 이미 범황삼천종을 휘감았다.
실로 가공할 속도였다. 어찌 인간의 무공이 빛보다도 빠르게 펼쳐진단 말인가?
"커억!"
"흐윽!"
범황삼천종은 일시에 명문혈이 화끈해짐을 느끼며 쓰러졌다.
급습! 거대한 암경은 순식간에 그들의 전신 내부를 가닥가닥 끊고 으스러뜨려 버
렸던 것이다.
이때 비로소 세 사람의 눈에 침입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백의미청년, 아무런 표정도 떠올리지 않은 냉혹무비한 무심안의 미청년이었다.,
지옥혈룡(地獄血龍) 냉유성(冷流星)!
바로 그였다.
냉유성은 무심한 눈으로 쓰러져 있는 범황삼천종을 내려다 보았다.
"..."
잠시 후 냉유성은 발길을 돌리며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의 입에서는 절대무심한
음성이 흘러나왔
다.
"범황삼천종! 그대들이 죽은 이유는 너무 강했기 때문이오!"
육중한 무게로 내리깔리던 말이 끝나는 순간, 그의 신형은 암천 저편으로 유성처
럼 사라져 갔다.
범황삼천종!
그들이 진정 이토록 어이없이 죽는단 말인가? 애제자와 변황을 걱정하던 불세출의
절대자들인 그
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