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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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서 지난 10년간은 끔찍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비록 신동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어릴때 남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모든일에 적극적이 었지만

28살의 나이로 결혼을 하고 부터는 무슨 일들이 그렇게 꼬이는지...

음반대리점에서 광고업, 마지막엔 리어카로 장사까지 안해본것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직업을 바꿔가며 해봤지만 제대로 되는것 하나 없었다.

게다가 무슨놈의 재수가 그렇게도 없는지

결혼한지 10년이 다 되도록 자식하나 없는 그야말로 실패의 연속이었다.

결국 아내의 잔소리가 시작되었고 더이상은 같이살지 못하겠다는 말이 나오자

꼴난 남자의 자존심은 이혼으로 이어지자 이렇게 빈털털이가 된채 홀로서기를 해야만 했다.

이혼소송을 마치고 가정법원을 나와 허탈한 마음에 먼산을 둘러보니

법원에 들어갈땐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듯 먹구름이 잔뜩 끼었던 하늘이

제법 햇살이 따가울 정도로 밝고 환하게 비취고 있었다.

씨 발~ 그놈의 여편네~ 잘먹고 잘살아라~

재식은 몇개피 남지않은 담뱃갑에서 담배 한개피를 꺼내어 물고는

일회용 가스라이터로 불을 붙여 긴 한숨과 함께 한모금의 연기를 바람에 날려보내며

주차장에 세워둔 재산목록 1호이자 거처가 된 승합차로 발길을 옮겼다.

당장 갈곳도 없는 처지에 놓인 재식의 재산이라곤 털털거리는 중고 승합차 한대와

지갑을 털어봐야 만원짜리 7장과 천원짜리 몇장 뿐이다.

아~ 뜨 거!!! 아이 씨이~

평소에는 길게 느껴졌던 담배마져 언제 탔는지 필터를 태우면서 재식의 입술을 지진다.

재식은 짜증스럽게 차의 시동을 걸어 보지만 막상 갈곳이 막연해

한참동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눈을 감은채 멍하니 앉아있다가

정처없는 긴 여정을 위해 악셀레이터를 밟았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람마져 재식에게는 따갑게 느껴질 뿐이다.

나~~ 차 암~ 바보처럼 살았군요 오~ 나 차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노래를 부르던 재식은 문득 룸미러를 통해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마음마져 무거웠던 오늘 아침에 면도조차 하지 못했기에

거울을 통해본 자신의 모습은 인생의 패배자의 낙인처럼 몰골이 말이아니다.

그래 씨팔~ 가는거야~ 어디간들 내입에 풀칠하나 못하려고~

목적지가 없는 재식의 너덜거리는 차는 어느덧 원주의 외곽지를 향하고 있다.

왼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크지않은 강가에서는 아이들 너댓명이 모여 고기를 잡고있다.

후후훗!! 나도 저런적이 있었지~ 그래... 잘들 놀아라~

재식은 비맞은 중처럼 중얼거리며 또다시 악셀레이터를 세게 밟았다.

씨발년의 마누라~ 아니지~ 이젠 마누라도 아니지...

그래 그 얼굴, 그몸매로 섹골처럼 왜그리 밝히는지...씨팔~ 그래~ 난 이제 자유인이다...

한참을 달리던 차가 모퉁이를 돌아가니 조금 넓은 공터가 눈에 들어왔고

마음이 천근이나 된 재식은 조금 쉬었다 가려고 차를 한귀퉁이에 세웠다.

재식이 또다시 담배 한개피를 꺼내 물면서 차에서 내린다.

이번에는 앞쪽에 세워져 있던 검은 외제 승용차가 눈에 거슬리는 것이었다.

아이 씨~ 어떤놈은 복이 많아서 저런차를 타고 다니는데 에이 씨팔!!~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일들이 오늘따라 왜그리 눈에 거슬리는지

재식은 심통이 나서 거친욕을 서슴치 않고 내뱉고는

어지러웠던 머리나 식히려고 강둑을 내려 가려는데 뒷쪽에서 여인의 소리가 들려온다.

저어~ 죄송하지만~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갈 정도의 고운 목소리다.

평소같으면 맘씨좋은 아저씨의 미소로 돌아 보았을 재식 이었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기에 짜증 스럽다는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저희들 차에 타이어 펑크가 나서 그러는데요 오~

뒤를 돌아본 순간 재식은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까만색 스커트에 하늘빛이 감도는 듯한 하얀 티셔츠를 받쳐입은 그 여인은

여태껏 자신이 한번도 보지못했던 미의 절정 그 자체였으며

나이가 들어 보이는듯 했으나 30대가 채 되지않아 보였다.

재식은 그순간 자신의 어두운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그 여인이 가리키는 차로 발길을 옮겼다.

차는 BMW의 M5 였으며 한눈에 보아도 무척 고급 스럽다고 느껴졌다.

엄마~

재식이 다가가자 차문이 열리면서 차안에 타고있던 자매 인듯한 아이들이 나왔다.

아니~ 이럴수가!!! 처녀인줄 알았는데...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재식은 다시한번 그 여인의 얼굴을 쳐다 보았지만

아이들의 엄마라고는 상상조차 할수없는 얼굴이다.

아이들 역시 엄마를 닮아서인지 티하나 잡을데 없이 예쁜 얼굴들 이었다.

아저씨~ 부탁해요~ 벌써 30분도 더 됐을꺼예요~

조금 커보이는 아이가 애교스럽게 말을 걸어온다.

그래? 넌 몇학년이니? 무척 예쁘게 생겼는데...

으음~ 전 중 3요~ 제 동생은 6학년 이구요~

이렇게 이쁜 공주님들이 부탁을 하니 안들어 줄수가 없구먼...하 하 하~

재식이 그렇게 말하자 그제서야 아이들의 엄마의 얼굴에도 안도의 미소가 떠 올랐다.

뒷 트렁크좀 열어주세요~ 아마 거기에 공구가 있을껍니다~

아가씨 처럼 보이는 그 여인은 차에 올라 뒷 트렁크를 열어주었고

재식은 한참을 뒤진후에야 보조 타이어와 공구를 찾아냈다.

역시 외제차라 다르네~ 휴우~

평소 같으면 금방 마쳤을 일을 시작한지 겨의 30여분을 지체하여

온몸을 땀으로 적신 후에야 타이어를 갈아 끼울수가 있었다.

정말 고마워요~ 사례라도 하고 싶은데...

뭐야~ 사례라니~ 기껏 타이어 하나 갈아 끼운것 가지고...

아닙니다~ 뭐 별로 한일도 없는데요~

정말이예요~ 너무 고마워서 그러는데 어디 사시는지...

재식은 거절을 해보지만 그 아름다운 여인은 끈질기게 사는곳을 물어보는 것이다.

갑자기 밀려오는 허탈함과 자신의 처절함이 겹쳐지면서

재식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괜찮습니다...그리고 전 지금 사는곳이 마땅치 않구요~

재식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대답을 하자

그 여인은 괜한것을 물어 봤다는듯이 잠시 얼굴이 붉으스레 달아오른다.

아 저 씨~ 이걸로 얼굴을 닦으세요~

조금전 6학년이라던 예쁘장한 아이가 하얀 수건을 건네주면서 얼굴을 닦으라고 하였다.

재식은 얼굴에 뭐가 묻었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며 백밀러를 통해 자신의 얼굴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조금전에 타이어를 교체하면서 왼쪽 뺨에 검은 자욱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고마워~ 예쁜 꼬마 아가씨~

재식은 아이가 건네준 타올을 받아서 얼굴을 닦고있는데 다시 여인의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저 어~ 사는곳이 마땅치 않다뇨? 아~ 죄송해요~ 초면에 이런걸 물어봐서~

난 오늘 이혼을 했거든요~

재식은 얼굴을 문지르면서 당신네들이 내 처지를 어떻게 알겠냐는 생각이 들어

통명스러운 어투로 말을 내 뱉어 버렸다.

재식의 뜻밖의 대답에 여인은 잠시 얼어 붙은듯이 아무말도 하질 못했다.

저..정말 죄송합니다.~~ 괜히 아픈곳을 건드렸네요~

아닙니다~ 휴우~ 그냥 가보세요~

재식은 다시 담뱃갑을 꺼내어 한개피의 담배를 꺼내더니

라이터로 불을 붙여 길게 빨아들이며 먼산을 향해 내 뿜는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앞으로 좋은일이 생길꺼예요~

재식의 퉁명스런 어투와 짜증으로 인해 그 아름답던 여인은

고맙다는 인사를 몇번 되풀이 하더니 아이들과 함께 차에 올라

재식이 오던길로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져 버린다.

제기랄!! 저런년하고 사는놈은 어떤복을 타고 났는지... 휴 우~

담배연기는 바람에 날려 제멋대로 사라져 버리고

재식은 세수나 하려고 개천을 향해 둑 아래로 내려갔다.

푸 후 후~ 푸 풋!! 아휴~ 시원타!!

한참동안 머리를 적신후에 호박돌에 걸터앉은 재식은

두손으로 머리카락에 묻은 물기를 훑어내면서 고개를 들어보니

조금전 꼬마아이가 건네 주었던 하얀 수건이 목에 걸려 있는것을 만져졌다.

허 허 헛!! 그 녀석 참!!

생긋 웃으며 건네주던 그 아이의 표정을 떠올리며

재식은 허탈한 미소와 함께 그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언덕위로 올라왔다.

아저씨 이~ 아저씨 이~

그렇게 목메여 부르는 그 목소리는 조금전 재식에게 수건을 건네준 그 꼬마아이의 목소리였다.

뛰어오는 아이의 뒷쪽에는 조금전 타이어를 갈아 주었던 외제 승용차가 서있고

뭐야~ 이번엔 또 뭐가 잘못됐나?

헉 헉!! 아 저 씨~ 엄마가 잠시 보재요 오~

여인이 떠나갈때는 부러운 마음에서 욕도 해봤지만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다시 돌아오니 왠지모르게 반갑게 느껴져

재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꼬마아이와 함께 그 여인에게로 다가갔다.

무 스 은~??

죄송한데... 조금전에 갈곳이 없다고 그러셨죠?

예~ 그런데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희집에...

재식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기껏 타이어 하나 갈아 끼워줬는데 집에까지 초대라니 ...

제가 그냥 몰랐다면 모를까...

선생님의 처지를 안이상 그냥 못가겠더라구요...이상하게 생각지 마시고..

마땅히 갈곳없는 재식이기에 그 아름다운 여인의 제의는 무척 반가웠지만

과연 자신이 그렇게 따라가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괜히 자신이 비참해 지기까지 한다.

아니~ 제가 부탁을 드릴께요~ 사실 저희집에는 남자가 없어서... 항상 불안 하거든요..

아저씨~ 그렇게 해주세요~

중학교 3학년이라던 아이가 생글거리며 부탁을 해온다.

아저씨이~ 제발이요~ 그렇게 해주시면 제가 정말 잘해 드릴께요~ 네에?

이번에는 6학년인 막내아이가 재식의 팔을 잡으며 애원을 하다시피 졸라오는 것이다.

아휴~ 저야 고맙지만... 초면에 너무 실례가 아닌지...

그럼 됐어요~ 제가 앞장을 설테니 같이 가 주세요.. 따라 오실꺼죠?

그여인은 그제서야 예의 그 은은한 미소를 지으면서 차에 오른다.

재식은 혹시 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머리를 닦던 수건을 목에 두르고는 타고온 봉고차에 몸을 실었다.

검은색 고급 세단은 소리없이 미끄러지듯 아스팔트위를 달리고

이어서 다 낡은 베스타 한대가 굉음을 내면서 뒤따르는 것이 여간 볼품 사납지않다.

시속 70km속도에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 재식의 머리는 어느새 다 말라버렸고

앞서가는 승용차에서 간간히 창문을 통해 흔들어 주는 아이들의 손짓이 귀엽기 그지없다.

핸들을 잡고있는 재식에게 꿈처럼 이어지는 오늘 하루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차는 어느새 원주 근교로 다시와 새로 놓은듯한 아스팔트 길로 접어들자

주위의 싱그러운 풀냄새로 재식의 코끝이 상큼해진다.

도대체 뭘하는 여자일까? 그리고 저렇게 큰 아이들이 있다면 나이는 몇이나 될까?

재식은 이름도 성도 모르는 여인에 대하여 궁금해지는데

저 멀리 작은산이 보이며 그 앞쪽으로 제법 그럴듯한 통나무집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재식이 추측했던 대로 앞서가던 승용차는 그곳으로 향했고

이미 열려있는 커다란 대문을 주저없이 통과해 버리더니 통나무집 바로 앞에 멈추어 선다.

재식은 미리 멈춘 승용차 옆에 차를 주차시키며 어리둥절 해있는데

승용차의 문이 활짝 열리더니 작은아이가 제일 먼저 차에서 내린다.

아저씨 이~ 여기가 우리집이예요~ 어서 내리세요 오~

앙증스러운 두갈래 머리를 달랑거리며 재식에게 내리라는 말과함께 밝게 웃어 보였지만

재식은 엄청난 규모의 커다란 집을보자 완전히 위축이 되어 어깨가 움츠려진다.

그러나 재식은 조금이나마 대범하게 보이려고 큰 한숨과 함께

차에서 내려 다가온 꼬마숙녀에게 말을 건넨다.

근데 넌 이름이 뭐야? 이름을 모르니 뭐라고 부를수가 없어서...

아하~ 그렇구나~ 전 예린이예요~ 윤 예 린, 그리고 언니는 수린이구요~

꼬마숙녀는 언니의 이름과 함께 또박또박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예린이~ 수린이~ 이름도 얼굴만큼이나 예쁜데...하 하 핫!!

너무 화려한 집과 규모에 질려버린 재식은 웃음이 나올리 없었지만

위축이 된것을 잠시나마 모면해 보려고 오버를 해가며 크게 웃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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