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물 속에서 꽃잎을 벌리고
붉어진 얼굴로 보아 제법 술이 오른 듯한 강 사장이 그때
의 일을 떠올리며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술병은 거의 바
닥까지 비어 있었고, 과일이 담겨 있던 접시도 어수선할 뿐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어머, 자기야! 술이 없어.
으하하하하핫~! 그래? 하하하핫~! 그럼 더 시켜야지! 술
한 병 더 가져오라고 그래. 그리고 맛있는 안주도 좀 시켜
봐! 미연씨가 아무 것도 안 드신 것 같은데… 음료수 말고
화채 같은 것 어떨까? 미연씨, 어때요?
전 아무래도 좋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신통치 않은 나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캐시가
한쪽 눈을 찔끔 감아 보였다. 접대부로 일하고 있는 그녀로
써는 강 사장이 아무리 특별한 관계로 있는 사람이라고 해
도 매상을 올려야만 할 것이다.
그, 그럼 화채를…
어머! 음료수 잔뜩 마시고 무슨 화채예요? 미연씨, 그러
지 말고 저녁을 안 드셨으니까 낚지 볶음 같은 것 어때요?
아니면 쇠고기 육회라도…
그녀가 권하는 안주는 모두 값비싼 것이었다. 그녀의 속
마음을 읽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인터폰을 든 그녀는 자
신이 권한 안주를 주문했다.
그나저나… 두 번째에서도 결국 실패하셔서 실망이 크셨
겠어요.
아하하하핫핫~! 그럼요, 무척 실망했죠! 캐시가 얼마나
욕을 욕을 하던지…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등줄기에서 땀
이 흐른다니까요! 하하하하…
오히려 그때의 기억이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리는 강
사장의 옆에서 캐시는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뭐가 그렇게 웃겨, 자기는? 섹스라는 게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둘이 함께 하는 건데 내가 아무리 자기랑 모종의
거래가 있어 의무적으로 했다고 해도, 행위 중에 달아오르
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냐? 자기 애무해주다가 나도 후
끈 달아올랐는데 될 듯 될 듯 하다 바람 빠지는 고무 풍선
처럼 피시시 꺼져버리니… 열받아서 창 밖으로 뛰어 내리고
싶었단 말야!
어이쿠! 그랬어? 하하하핫~!
강 사장은 캐시의 뾰로통한 모습이 귀엽다는 듯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다정한 그네들의 모습과 달리 내 자신
이 머쓱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정하신 모습이 보기 좋네요. 후후…
하하하… 그렇습니까? 이거 원, 영 쑥스럽고 부끄럽습니
다. 소설 쓰시더라도 좀 멋있게 써주십시오. 할 말은 아니지
만, 그래도 보잘 것 없는 늙은이라고 등장하는 것보다는, 젊
음을 되찾기 위해 마음 고생하며 노력하는 중년의 로맨스
그레이로 보여지고 싶습니다. 하하하하…
후후… 알겠습니다. 고려할께요.
그 날의 인터뷰는 주문한 안주와 술 한 병을 바닥내는 것
으로써 끝을 맺었다. 영업시간이 거의 끝날 때쯤 모두 함께
밖으로 나왔고, 만류해도 호의라며 강 사장이 쥐어주는 흰
봉투에는 적지 않은 사례비가 들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승차한 택시 안에서 그들의 모습을
뒤돌아 보았을 때, 다정하게 서로의 몸을 껴안고 골목 안으
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사라진 골목은 모텔이 즐
비한 주택가 골목이었다.
피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오늘 밤, 그들이 과연 성공할 것인
지 생각했다. 어쩌면 진작 성공해서 젊음을 되찾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
띠띠띠띠… 띠띠띠띠…
해가 중천에 떠 있지만 캐시에게 있어 밝은 대낮은 밤과
도 같은 것이었다. 캐시는 요란하게 울리는 호출기를 짜증
스럽게 집어들고는 입력된 번호를 확인했다. 강 사장이었다.
여보세요?
캐시? 자고 있었어?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전화예요? 난 지금 한창 잠잘 시간
이란 말야. 너무해!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캐시가 툴툴댔다. 수화기 저쪽의
강 사장은 꽤나 미안하다는 듯 너스레를 떨며 말을 이었다.
자기 오늘 바쁘지 않으면 나랑 밥 먹을까? 어때?
귀찮아… 매일 먹는 밥, 아무거나 먹으면 어때서? 난 그
냥 잠이나 더 잘래요.
에이… 그러지 말고 씻고 준비해. 어제 일로 미안하기도
하니까 쇼핑이나 가자. 나도 오후에는 별로 할 일도 없
고…
여자들이 늘 그렇듯, 선물이라는 말에 캐시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것은 계약에 없는 보너스였다.
정말? 뭐 사줄껀데?
속보인다! 속보여! 네가 사달라는거 사줄 테니까 백화점
에 가자. 대신 너무 큰 거 바라면 안된다는 거 알지?
캐시는 강 사장과 시간 약속을 정하고는 외출 준비를 하
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났다. 속살이 내비치는 얇은 네글리
제가 몸에 휘감겨 볼륨 있는 몸매가 그래도 살아났다.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향한 캐시는 벽면 한쪽을 차지
한 커다란 거울에 자신의 몸을 비추어 보았다. 군살이라곤
한군데도 보이지 않는 곡선이 스스로도 도취될 만큼 아름다
웠다.
얇고 투명한 네글리제를 벗고 원시 그대로의 모습이 되어
거울 속의 자신을 유심히 살폈다. 윤기 있는 피부에서 금방
이라도 이슬이 맺힐 것만 같았다. 하얗고 탐스러운 유방과
조그맣게 튀어나온 유두는 작고 달콤한 열매처럼 자리잡았
고, 배꼽 아래의 울창한 숲 속에는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
은 듯한 야생화가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된 캐시는 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오른 손으로 숲을 쓰다듬었다. 까칠한 음모가 가을 낙엽처
럼 바스락 소리를 내며 손가락을 간지럽혔다. 왼손의 검지
와 중지로 유두 끝을 조심스럽게 비틀었다. 거울 속의 여인
이 눈을 반쯤 감고는 흥분으로 몸을 떨고 있는 것이 보였
다.
아…
강 사장이 번번이 풀죽는 바람에 미처 채우지 못했던 욕
망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살갗이 후끈 달아올라 열기로 타
버릴 것만 같았다.
캐시는 아쉬운 듯 몸을 쓸어 내리며 따뜻한 물이 가득 채
워진 욕조로 들어갔다. 온 몸을 휘감으며 잔잔하게 일렁이
는 따뜻한 물 속에 눕자, 남자의 품에 안겨있는 듯 편안하
고 포근했다.
손으로 부드럽게 몸을 쓸어 내리던 캐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물 속에 잠긴 자신의 꽃잎으로 손을 가져갔다. 손가
락을 펼쳐 꽃잎을 열자, 물고기의 아가미처럼 그것이 벌렁
거리고 있었다.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볼록하게 솟아오른
클리토리스를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길이 스쳐 지나가는 곳마다 피가 거꾸로 도는
것처럼 뜨겁게 달아오르며 황홀한 쾌감이 번졌다. 검고 탐
스러운 유두는 빳빳하게 일어섰고, 흥분으로 자신도 모르게
할퀸 젖가슴은 탱탱하게 부풀어올랐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