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상상 속의 섹스가 현실 속으로
준석은 민영을 침대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마음속에 있는 그녀에
대한 애정을 표시했다. 그녀의 머리칼을 들어 코끝에 대자
향긋한 샴푸 냄새가 느껴졌다. 머리칼을 쓰다듬고는 손등으
로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자 그녀가 졸리운 듯 눈을 감았다.
대부분의 여자들의 성감대가 전신에 퍼져있고, 특히 머리
카락도 성감대의 하나라는 것을 또 한번 확신하게 되는 순
간이었다. 이처럼 여자들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
다듬어 준다거나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눌러주는 등의 행위
로 말미암아 상대방의 자신에 대한 애정을 읽게 된다.
지금 민영의 마음이 그랬다. 머리에서부터 천천히 쓸어
내리며 자신의 두 뺨을 정성스레 만지는 준석의 마음이 자
신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에 매력적이고도 환
상적인 따스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향기가 좋아… 내가 상상한 모습 그대로야. 설마… 민영
인 나를 보고 실망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워…"
달콤하게 속삭이며 준석이 그녀의 상의를 풀어헤쳤다. 겉
옷이 벗겨지고 엷은 블라우스가 날개처럼 접혀 한쪽에 놓여
졌다. 준석은 숨겨져 있던 그녀의 몸이 드러나자 그녀의 목
선에 입을 대고는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옮겨가며 키스를
했다. 그녀의 입에서 훅- 뜨거운 입김이 터져 나왔다.
양손을 그녀의 등뒤로 돌려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쓰다듬
는 준석은 그녀의 탄력 있는 가슴을 에워싼 브래지어의 후
크를 끌려냈다. 어린 신부처럼 그녀가 몸을 웅크리며 두 손
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고는 수줍게 웃었다. 준석은 그녀
의 미소를 보며 자신이 천사를 농락하는 것이 아닌가 긴장
해야만 했다.
"왜…? 민영아… 이렇게 하는 것이 싫은 거야?"
준석은 민영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솔직한 그녀의 마음을 스스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아뇨… 기분이 너무… 너무 황홀해요. 정말 다정하고 좋
은 사람 같아요. 작은 것 하나하나 꼼꼼하게 신경써주고 정
성을 기울이는 마음이 느껴져요. 행복해요… 꼭 신부가 되
어 첫날밤을 치르는 것 같아요. 아니… 그 이상이에요."
준석은 그녀의 대답에 만족하며 또 다시 그녀의 목과 귓
불에 입을 댔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밀쳐내고
는 유방을 움켜쥐었다.
"아아… 오, 오빠… 으으음…"
준석이 그녀의 귓불을 깨물 듯 잡아 다니다, 혀를 뾰족하
게 내밀어 그녀의 귓속으로 살며시 밀어 넣고는 뜨거운 입
김을 불어 넣었을 때였다. 민영이 무의식적으로 신음을 내
뱉으며 준석을 힘있게 끌어안았다.
준석은 자신의 애무에 뜨겁게 반응해오면서도 여전히 한
쪽 유방을 감추고 있는 그녀의 손을 들어 손바닥에 입을 맞
추었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녀가 준석을 바라보았지만 그
는 오히려 그녀의 손가락을 벌려 자신의 혀를 넣어 애무할
뿐이었다.
민영은 그대로 넘어지듯 뒤로 침대에 누웠다. 준석이 몸
위에 포개지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욕망과 쾌감으로 풀린
준석의 흐릿한 눈빛이 그녀의 터질 듯한 유방과 두 개의 검
고 윤택한 유두를 탐스럽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
준석의 말투는 지니와는 좀 달랐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훨씬 노골적이고 리얼했다. 듣는 나로써도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자극적인 그의 이야기는 나를 바라보는 뜨거운 눈빛으
로 말미암아 더욱 긴장하게 했다.
"잠시 쉬고 싶어요. 갈증이 나는데… 괜찮으시다면 물을
좀 가져오겠습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주방의 냉장고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곁을 막 지나칠 때였다. 그
가 불현듯 나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 다녔고, 나는 그 충격
으로 그의 무릎에 주저앉았다.
"무, 무슨 짓이에요!!!"
그러나 그의 무릎에 주저앉은 나는 그대로 두 손을 그에
게 붙잡힌 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으읍! 읍!!"
억센 그의 손이 나의 두 손을 붙잡고는 다른 한 손으로
나의 머리를 받쳐 입술을 포개어 도둑처럼 키스를 해왔다.
머리를 흔들어 그로부터 입술을 떼어내려 했지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준석의 입술에 나의 입술이 한껏 비비적거리기
만 해질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의 입술이 격렬한 흡입력으로 나의 입술을 삼키고 있어
숨이 막혀왔다. 기습적인 그의 키스에 나는 분개하고 있었
다.
"이제 갈증은 없을 거요!"
키스를 시작할 때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가 급
작스럽게 입술을 떼어내며 말했다. 그의 말이 날카로운 유
리 조각처럼 가슴에 박히는 듯 했다. 나의 갈증을 자기 마
음대로 해석하고 무례하게 행동한 그가 너무도 어처구니없
고 원망스러웠다.
이제 그의 얼굴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와의 인터뷰를 어
떻게 진행할 것인가. 앞으로 그와 태연하게 인터뷰를 진행
할 일이 암담하기만 했다.
"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는지는 모르지만, 김준석씨가
생각하는 그런 여자들과는 다릅니다. 오늘 같은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해요."
"화났소?"
어떻게든 상황을 마무리하고 앞으로 또 다시 이런 일로
기분을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말이었다. 그러나 단도리
하려는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깟 일쯤이야 별 것 아니
라는 표정의 그가 더욱 나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그럼 제가 태연하게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하셨나요?"
"그렇소. 그것이 아니었다면 미안하게 됐소.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군."
"……"
"난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당신의 표정을 읽었을 뿐이
오. 진지한 태도로 듣는 것은 좋지만, 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흥분하는 일을 삼가도록 해주시오. 내가 착각을 일으
키지 않도록 말이오. 어떤 착각을 말하는지 알겠소? 당신이
나를 원하고 있다는 착각을 말하는 거요. 뭐… 내가 아닌,
그저 남자를 원하는 것인지도 모르지! 후후…"
그의 그물에 걸려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어쩌면 그
것은 사실인지도 몰랐다. 며칠 전만 해도 그의 전화를 받고
야릇한 흥분으로 젖어버린 나는 내 스스로 그 욕망을 해결
하기 위해 가랑이를 벌려야만 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말하는 대로, 그의 이야기에 도취되어 야릇한 상상 속
으로 빠져들었었다.
그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여 주인공과 김준석의 뜨거운
정사에 내 자신이 몰입되어 어느 틈에 그 여자가 아닌, 바
로 내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일련의 생각들이 나의 얼굴에 드러나 그에게 보여졌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름대로 태연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자신했던 내 자신이 끝없이 원망스러워졌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