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빠가 처음이었어! ⑩

       이야기를 잠시 멈춘 지니는 거실 한쪽에 놓인 웨건에  놓

     여진 위스키의 코르크 마개를 땄다. 

       "어때요? 술 한잔 할래요?"

       "아뇨, 전 술 마실 줄 몰라요. 그냥 물이나 한잔 주세요."

       "에이, 무슨 재미로 살아요? 술도  못 마시고? 술을 마실 

     줄 알면 참 좋은데… 사람들은 술이 몸을 망친다고  하지만 

     또 다른 장점도 있어요. 몸을 망칠지언정 정신적인 것은 오

     히려 유익하다고 보거든요. 잊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술을 

     마시면 잊을 수 있고, 아무리 슬퍼도 술을 마시면 히죽히죽 

     웃음이 나오거든요. 아픈 몸을 고치기  위해서 많이 먹으면 

     좋지 않은 화학약품을 적당히 사용하듯이 술도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마시기 싫으면 그냥  와인이라도 한잔해요. 마침, 

     미연씨에게 적당한 술이 있네요. 설마  와인 한잔에도 취하

     는 것은 아니겠죠?"

       그녀는 두 개의 투명한  크리스탈 글라스를 손에  쥐고는 

     다시 내 앞에 앉았다. 한 잔에는 갈색 액체가, 또 다른 잔에

     는 짙은 선홍빛의 액체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어찌 되었나요?"

       "사람들이 숲으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

     어요. 내 예상대로 일은 저질러진거죠. 그곳에는 홀랑  타버

     린 재뿐이었어요."

       "그럼 두 사람은요?"

       그녀가 술잔을 들고  거실을 가로질러  베란다로 향했다. 

     한쪽 손에는 여전히 담배가 쥐어져 있었다. 먼 곳을 응시하

     는 그녀의 뒷모습이 어쩐지 침울해 보였다. 오래 묵은 고독

     의 그림자가 거실 바닥으로 길게 늘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

     였다.

       "죽은 것은 영미였어요. 오빠는 그 자리에 없었더군요. 사

     람들이 수군거렸어요. 왜 영미가 그날 밤 그곳에서 홀로 있

     다가 죽었는지 말이에요. 불에 타버린  딸의 시체를 붙잡고 

     오열하는 영미의 엄마와 아빠를 지켜보는 사람들 틈에 정민 

     오빠가 있었어요."

                               *

       애써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있었지만 느낌만으로도  오빠

     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슬그머

     니 뒷걸음질쳐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산을 빠져 나왔다. 

       다음 날, 도저히 밖으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과 영미의 부모님을 보기가 두려웠다.  불을 지른 사

     람을 찾기 위해 파출소에서 순경들이 가가호호 탐문 수사를 

     펼쳤지만 단서를 찾아내지 못했다. 

       너무 늦은 밤이었고, 새벽부터 바다로 나가려면 초저녁부

     터 잠을 자야만 하는 어민들로써는 그 시각에 깨어있는  사

     람이 드물었기에 방화범을 보았다는  사람이 있을 수  없었

     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어젯밤 불에 타버린 대나무 숲의 

     창고로 향했다. 시커멓게 타다 남은 목재들이 숯이 되어 바

     닥을 뒹굴고 있었다.

       "역시 너였군!"

       등뒤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민  오빠가 입술 

     끝을 비틀어 올리며 히죽 웃어 보였다.

       "무… 무슨 말이야? 나라니?"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대답했다.  그러나 오빠는 여전

     히 나를 향해 히죽거리고 있었다.

       "넌 그런 말도 모르니? 범인은 범행 현장을 다시 한번 찾

     아온다, 라는. 후후…"

       범인이라는 단어에 화들짝 놀란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손끝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입을 열어 부정하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힘겨웠다.

       "범인이라니? 왜… 왜 계속 아…알 수 없는 말만  하…하

     는 거지?"

       "걱정하지마! 널 신고할 생각은 없어. 나도 오히려 너에게 

     고마워하고 있으니까… 후후후…"

       정민 오빠의 소름끼치는 웃음이 숲을  뒤흔들었다. 그 웃

     음소리는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공포심을  불러 일으켰고, 

     나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여기 계속 있다가  사람들에게 들키면 입장이  곤란해질

     껄? 나를 따라와. 할 이야기가 있어!"

       "왜 내가 오빠를 따라가야하지?"

       "왜냐면, 넌 나를 좋아하니까!"

       내뱉듯 말을 마친 오빠는  나의 손을 잡아끌고는  대나무 

     숲 안쪽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  그곳은 꿩이며 산토끼들

     이 다닐 정도로 외진 숲 속이었다.

                     -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