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빠가 처음이었어! ⑧
"어때요? 후훗, 재미있나요?"
"재미로 듣는 것은 아니잖아요…"
"호호, 그래도 제 이야기가 재미없다면 말해주세요. 글쓰
는 것과는 상관없겠지만, 그래도 난 재미있게 들어주길 바
라거든요. 잘못된 생각일까요?"
그녀의 입술에서 담배 연기가 흘러나왔다. 잠시도 쉬지
않고 피우는 그녀의 하루치 담배양은 두 갑이 족히 넘고도
남을 것 같았다.
"재미… 솔직히 말씀드리면 재미있어요."
"호호호, 그렇죠? 아휴, 재미없다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근데… 전에도 말했지만 미연씨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었나
요?"
그녀가 말하는 '전(前')은 지난번 인터뷰를 말하는 것이리
라. 그때 나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
었다.
"경험이 아주 없었다면 솔직히 거짓말이겠지요. 이십대
중반을 넘기고 있는 여자들 중에서 순결한 여자가 과연 몇
이나 될까요? 하지만, 지니씨처럼 특이한 경험을 한 적은
없어요. 지니씨의 이야기는 굉장히 특이한 경우라고 생각해
요."
"그럴까요? 하지만 나는 내 마음속의 것들을 행동으로 드
러냈을 뿐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런 호기심과 욕망이 있다
고 생각해요."
"잘 모르겠네요. 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흐음… 왜 그런 경험 없어요? 문득, 길을 걷다 마주친
남자가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아, 저 남자의 품에 안기면
기분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 경험요. 그리고 우연히 잠
이 깬 밤에 안방에서 들려오는 엄마와 아빠의 섹스 장면을
몰래 훔쳐본다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영화에서 주인공 남녀
가 서로의 몸을 애무하는 장면을 보며 몰입된다거나… 그런
것 말이에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은 어디에나 있어
요. 그 호기심과 욕망을 행동으로 옮기느냐 그렇지 않느냐
의 차이죠."
"네에…, 그럴 수도 있군요."
"그럴 수도 있다니오? 엄연한 사실이라고 생각하는데? 호
호호…"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시큰둥
한 나의 대답과 표정이 아니꼽다는 것인지 분명치는 않지만
지니라는 여자는 여전히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 끝에 늘 질문을 던져 나를 연관시
킨다. 그것은 자신의 특별한 경험을 스스로 만들어 놓은 가
치판단으로 합리화시키고, 또한 다른 사람들마저 그 '합리
성'을 인정해주길 바라는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는 게 어때요?"
"아아… 벌써 가려구요? 아잉, 재미있었는데 벌써 가면
서운해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렇게 즐거웠던 적
이 없었거든요."
우리가 대화를 나누었던가? 일방적인 이야기꾼이었던 자
신이 나와 대화를 나누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
이다. 게다가 나에게 자신의 그 '합리성을 부여하는 근거'에
동조하길 종용하다시피 한 그녀가 아닌가.
"미연씨, 만약 당신이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네?"
또 다시 그녀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나에게서
무엇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직 그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태도로 봐서는 다른 사
람에게서 '합리성'을 인정받고 싶은 또 다른 '일'이 있는 것
이 확실하다.
"저라면 그냥 집으로 돌아갔겠죠. 분명 그랬을 거예요. 그
리고 잊으려 애쓰겠죠."
"어휴, 미연씨! 정말 소극적이네요. 후후, 난 그 사람들에
게 물어보고 싶었어요. 정말 좋은지, 그렇게 숨이 넘어 가는
소리를 질러댈 정도로 좋은 것인지,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
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묻고 싶은 반면에 두 사람을 죽이고
도 싶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지요.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작은 소녀가 무의식중에
기억 속의 한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어른이 되길
기다리면서… 이해하세요? 그런데 그 빌어먹을 자식이 초등
학교 6학년이었던 나와 헤어진 그날부터 곧바로 내 단짝 친
구와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기분이 좋았
겠어요?"
"……"
"난, 죽여버리고 싶었어요. 그네들이 한데 엉켜 땅바닥을
기며 신음소리를 내는 것에 강한 흥분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만큼 배신감도 커졌던 거예요. 자, 그럼 내가 어떻게 했을
까요? 그들에게 다가가 '너 지금 정말 기분 좋아? 어떻게
좋아?'라고 호기심을 채울 질문을 던졌겠어요? 아니면 꽃잎
이 어쩌고저쩌고 떠들며 서로의 은밀한 부위를 애무하고 있
는 그 인간들의 뒤통수를 돌로 내리쳤을까요?"
정답은 무엇일까? 그녀라면 그들에게 다가가 질문을 던지
는 것이나, 뒤통수를 내리쳐 죽게 만든다거나 어느 쪽이건
가능했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만큼 자기주장이 강하고
굽히지 않는 행동제일주의의 소유자라고 믿기 때문이다. 현
재까지로는.
그렇다면… 가장 '나'다운 대답은 어떤 것일까? '나'다운
대답, 즉 나는 그녀가 되어야한다. 그녀의 입장이 되어 내
기준으로 그 상황을 판단하고 그녀가 느꼈을 질투와 배신감
을 맛보아야만 한다.
생각이 이쯤에 미치자 결론은 한가지다. 나였다면 두 가
지 해답 중에 후자를 택했을 것이다. 배신감에 몸을 떨다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들을 몰살시킬 궁리를 했을 것이
다. 만약, 내 자리로 돌아가 그네들을 잊는다는 또 하나의
선택이 없다면.
그.러.나.정.말.나.는.잊.을.수.있.을.까?
그.렇.게.쉽.게?
"나였다면, 아마 그들을… 죽였을 거에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