⑪ 욕실에서 일어나는 뜨거운 정사
다음 날 오후, 이천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민기의 본가
에서 몇 가지의 짐들이 도착했다. 민기의 옷가지들과 필요
한 물품들이었다. 우습게도 그런 것들을 가져온 것은 민기
의 본처였다.
"이천댁… 부탁해요."
그녀가 무엇을 부탁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혜
영은 그녀의 부탁이 혜영 자신이 하루라도 빨리 임신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그것은 이천댁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혜영은 그저 그녀의 부탁이 민
기가 다른 마음을 먹지 않도록 조심해달라는 뜻으로 풀이해
본다.
"사모님… 죄송해요."
"이천댁이 죄송할 게 뭐 있어요. 이게 모두 박복한 제 탓
이죠. 원망 같은 것 하면서 누굴 미워할 때도 지났어요. 이
왕 이렇게 된거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마음을 편
히 먹으려 해도 잘되지 않는군요."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옹색한 자세로 서 있는 혜영을 돌
아보는 그녀의 눈에는 냉랭함이 감돌았다. 본능적인 경계심
이 분명했다. 혜영은 그녀의 눈빛에 두려움을 느끼며 시선
을 정하지 못해 그저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아가씨… 이름이 혜영씨라고 했죠? 민혜영."
"네."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아가씨는 대리모예요. 첩이 아
니라구요. 나도 여자예요. 그리고 여자이기 이전에 그 사람
의 안사람이구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그녀의 말에서 혜영은 자신이 커다란 벽을 마주하고 있다
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민기와 함께 지낼 수 있다지만
그녀의 말처럼 그의 부인은 따로 있을 뿐이었다. 혜영은 민
기의 본부인도, 그렇다고 첩도 되지 못한다. 결국 대리모일
뿐이었다. 돈으로 자신의 아이를 팔기로 계약을 맺은.
"……"
"아가씨를 원망하고 미워하진 않아요. 하지만… 미워하게
될 것만 같아서 속이 상해요. 이 모든 것이 정말 내 탓이고
내 운명인지 화가 나요. 믿을 수조차 없는 일들이 생기는
요즘의 세상이… 또 그런 일들을 겪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비참해요. 분명 아가씨는 대리모일 뿐인데 어째서 내 자리
를 빼앗긴 듯한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어요."
그녀와 혜영의 사이에서 이천댁이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이천댁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두 여자의 분위기를 어떻
게 해서든 깨어보려 했지만 감히 자신이 끼여들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등을 돌렸다.
"죄송해요…."
혜영은 분명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민기의 마음이 자
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사실을 모르고
언젠가는 남편이 돌아오리라 믿고 있는 그녀에게 한없이 죄
스러웠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인 민기가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다만 그 싫은 일이 오래 계속되어
자신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질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
민기의 짐을 정리하는 혜영은 낮에 느꼈던 죄책감을 쉽게
잊었다. 그녀는 오직 민기와 지낼 수 있다는 설렘으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혜영아!"
"어머! 오빠!"
"쉿[email protected]#"
이름을 부르며 살며시 들어오는 민기의 인기척에 혜영은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대꾸했다. 오히려 놀란 쪽은 민기
였다. 그는 재빨리 방문을 닫으며 자신의 입술에 검지 손가
락을 대었다.
"아… 아줌마가 들었을까?"
"아냐. 못들었을거야. 내가 저녁 먹었다고 하니까 쉰다고
하면서 방으로 들어가셨어. 후후…"
안도하는 혜영이 환하게 웃으며 그의 품안에 안겼다. 민
기는 그런 혜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낮은 소리로 웃고 있
었다.
"이런 일이 생기리라곤 생각 못했어. 나도 어제 이런 결
정을 어머니로부터 전해듣고는 싫은 척 연극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후후…"
"나도 그래, 오빠."
혜영이 민기의 목을 끌어안으며 속삭이자 민기의 입술이
그녀의 이마에 살포시 다가왔다. 부드럽고 감미로운 입맞춤
이 혜영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오늘 나 애무해줄꺼지?"
민기의 말에 혜영의 얼굴이 붉은 장미처럼 물들었다. 그
녀는 부끄러운 마음에 몽롱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머니 주무시니까, 우리 함께 샤워하자."
"어머! 싫어, 오빠! 미쳤어! 들키면 어쩌려구…"
"들키긴 왜 들켜? 괜찮아…"
민기는 방문을 살짝 열고는 불꺼진 거실의 동태를 살폈
다. 이천댁이 잠든 건넌방에는 불이 꺼져 있는 듯 조용했다.
민기는 싱긋 웃어 보이고는 혜영의 손을 이끌어 거실 한쪽
의 욕실로 향했다.
"오빠… 보고 싶었어."
혜영의 속삭임을 들으며 민기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는 혜영이 입고 있는 옷들을 하나씩 벗기고는 자신이 입
고 있는 옷가지들을 벗어 던졌다. 벌써 세 번째 보는 민기
의 알몸이었지만 혜영은 여전히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바보…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수줍어해?"
"오, 오빠! 조용히 해! 제발… 아줌마 깨겠어!"
민기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입
을 가리고 웃었다. 적당히 데워진 온수가 빗물처럼 두 사람
의 몸을 적시기 시작했다. 민기는 혜영의 몸에 비누칠을 하
고는 두 손으로 거품을 내어 쓰다듬었다.
"간지러워…"
"쉿~! 조용히 하라고 하더니, 네가 더 떠든다! 움직이지
말고 그냥 있어!"
아이를 꾸짖듯 혜영을 조용히 나무라는 민기는 그녀의 풍
성한 젖가슴을 문지르고는 천천히 자신의 손을 아래쪽으로
움직였다. 무성한 음모가 숲을 이룬 계곡에 다다른 그의 손
이 계곡 사이를 쓰다듬으며 혜영의 잠든 욕망을 일깨우고
있었다.
♣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