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일억팔천만원짜리 섹스
그때의 일을 회상하는 혜영의 얼굴이 수줍게 붉어졌다.
별로 새삼스러울 것이 없을텐데도 불구하고 얼굴까지 붉히
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얼마나 때묻지 않은 사람인지 알
도록 해주었다.
"제가 너무 주책이죠? 그런 이야기까지 하고…"
"아뇨. 그렇지 않아요. 사실, 이런 말씀 드리기는 뭣하지
만 서른이 넘어간 나이에 순수함을 갖고 있기란 힘들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혜영씨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아직
도 아이 같은 순수함을 지니고 계신 것 같아요. 보기 좋아
요."
그녀가 내 말뜻을 이해했을는지는 의문이었지만 빙긋이
웃는 표정으로 보아 적어도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
는 것 같았다.
"고마워요, 그렇게 봐주셔서. 아이까지 있는 아줌마가 순
수하면 얼마나 순수하겠어요. 괜히 부끄럽네요."
그녀의 웃음이 싱그럽다는 생각을 한다. 길을 가다 언제
어느 곳에서 마주친다 해도 결코 아이가 있는 엄마라고는
보이지 않을 그녀의 맑고 깨끗한 이미지를 재삼 재사 확인
하는 나의 마음이 어쩐지 뿌듯해져왔다.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대리모를 어쩌다 하게 되셨는지
말씀해주시겠어요?"
그녀가 잠시 고개를 떨구며 쓸쓸하게 웃었다. 괜한 질문
을 했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어차피 그녀의 이야기를
쓰려면 필요한 질문이었기에 찜찜함을 털어 버려야만 했다.
"생활이… 너무 곤경스러웠어요. 학교는 어떻게든 마쳐야
하겠는데 곰팡이 냄새 퀴퀴하게 나는 골방에서 비오는 날이
면 비가 새고… 여름이면 온통 찜통인 그 방의 사글세조차
내기 힘들었죠. 학생 신분으로 아르바이트하는 것에도 한계
가 있었어요. 시간당 천오백원짜리 해봐야 간신히 입에 풀
칠하기도 바빴고… 학비까지 충당하기에는…"
갑작스레 찾아드는 육중한 무게의 암담함에 그녀가 겪은
많은 고생과 역경이 나의 것이 되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처지의 사람에게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고 마음이
통하게 된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그녀만큼은 아니었지만
나의 경우에도 결코 만만치 않은 역경들이 있었기에 그녀의
과거가 나의 그것과 오버랩 되는 것만 같았다.
"낮에는 커피 전문점에서, 밤에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하며 하루에 서너 시간 잠을 자는 것이 고작이었어요. 그러
다 몸살을 앓았죠. 비가 왔어요. 커다란 바위로 짓눌린 것처
럼 꼼짝할 수 없는 상태에서 천장에서는 비가 새고… 눈물
이 나더군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입
술을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나 비가 새는 곳에 세숫대야를
받쳐 놓았죠. 그리고는 새는 빗줄기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
렸어요."
"……"
"그리고 다음 날… 옆집에서 이사가면서 버리고 간 낡은
텔레비전을 켰는데… 무슨 시사 프로그램에서 대리모에 대
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어요. 그것을 보고는 물에 빠진 사
람이 나무토막이라도 잡은 것처럼, 바로 이거다…하며 대리
모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는 며칠 동안 앓
아 누운 탓에 수척해진 몸을 되살리기 위해 밥을 먹고 고기
를 먹고… 후후, 용돈을 모두 털었죠. 일단 대리모가 되려면
건강해야 할 것 같더군요. 몸이 건강해지고 얼굴 색이 좋아
졌을 때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의 화장실들을 뒤졌어요."
"아… 그곳에서 대리모에 대한 광고를…"
"네. 그랬어요. 하지만 광고를 보고 찾아가진 못했어요.
막상 행동으로 옮기려니 용기가 나질 않았어요. 병원 로비
에서 어슬렁거리다 화장실을 들어가고 또 나와서 어슬렁거
리며 안절부절하며 망설이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중년 부
인이 찾아 왔어요.
그 아줌마가 바로 이천댁이었어요. 그 아줌마는 내가 무
엇을 하려는지 대충 눈치채고 있었어요. 슬쩍 말을 걸어오
며 돈이 필요하냐고 묻더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줌
마가 조용한 곳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기에 따라갔어
요.
차를 마시면서 아줌마도 좀 머뭇거리는 듯 하더니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꺼내더군요. 그 아줌마로써도 그런 일은 처
음이었기 때문에 주인이 큰돈을 주겠다며 시키기는 했지만
자신이 한심스러웠다고 나중에 이야기 하더라구요. 후후…"
"그래서 결국 그 아줌마와 이야기를 하고 대리모가 되었
던 거군요. 우연치고는 너무 극적이라서… 마치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해 연기하는 배우들 같아요. 혜영씨의 이야기가
우연이 난무하는 소설 같거든요. 미안해요. 이렇게 말해
서…"
"아뇨.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결국 이렇게 소설로
만들게 된거 아니겠어요?"
나는 혜영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혜영은 문
득 내 앞에 놓여진 음료수 잔이 비워져 있는 것을 보고는
냉장고에서 또 다른 음료수를 꺼내왔다. 우유였다.
"차갑지만… 다른 음료수보다 우유가 좋을 거예요. 드세
요."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그녀의 마음 씀씀이에 작은 감
동으로 훈훈해짐을 느꼈다. 혜영은 다소곳했고 흠잡을 데
없는 참한 맏며느리 감이었다. 나는 민기라는 남자의 어머
니가 훌륭한 며느리를 놓쳤음을 알았다.
"대리모가 되기 위해 일단 그의 어머니를 만나 일종의 면
접을 봤죠. 내가 그래도 못생기지는 않았나 봐요. 후후… 그
자리에서 만족스러워하시며 내 성격이 좋아 보이고 선해 보
인데요. 그리고 고아라는 사실에 무척 흡족해하고 있었어요.
남자 경험이 없다는 것도 플러스 요인이 되었죠.
물론 남자 친구가 없다는 것도요. 남자가 있다면 당연히
성경험이 있을 테고… 그쪽의 입장에서는 나중에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거에요.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아이를
낳아놓고 그 사실을 들통낸다며 협박하는 사람들…"
"……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판단한 그 사람들은 서울 외곽에
좀 싸다싶은 아파트를 얻었어요. 그리고 아들을 낳아주면
아파트의 명의는 나의 것이 된다고 하더군요. 만약 딸을 낳
으면 삼천만원이었지만… 후후."
인간에게 가격이 있다면, 만약 나는 얼마 짜리 일까? 그
사람들의 논리라면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삼천만원이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아들은 일억 오천만원에 현금 삼천만원을
얹어 도합 일억팔천만원이 되는 것인가? 참으로 비인간적인
논리였다.
"우습죠? 미연씨가 보기에도 아들과 딸이라는 존재가 그
렇게 가격으로 매겨진다는 것이 우습지 않아요? 결국 난 일
억팔천만원이 걸려 있는 섹스를 한 거예요. 그 금액에 내
순결을 팔았다고 하는 편이, 자식을 팔아 넘겼다는 말보다
는 나을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게 자위하며 살고 있어요"
"그, 그럼… 유림이는? 유림이는 어찌된 거죠? 그 사람의
딸이 아니었던가요?"
놀란 나의 질문에 혜영은 다시 한번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유림인 삼천만원짜리… 후후. 그래요 그 사람의 아이죠.
그리고 이 집은 아들을 낳아준 대가로 받은 바로 그 아파트
예요."
소설이라는 것을 쓰면서 극적인 반전과 사건을 개입시키
는 나로써도 도저히 쉽게 정리되지 않는 그녀의 말에 둔기
로 얻어맞은 듯한 현기증을 떨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
는 아들과 딸을 모두 낳았다는 것인가?
"유림이와 유진이… 두 아이는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났어
요."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