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제 2의 빨간 마후라
캐시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지만 나 역시 그녀가 무엇을
알아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영문을 몰라 갸우뚱거
리는 내가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 정말 모르겠죠? 하지만 우린 성공했어요. 결국
내가 그 원인을 너무도 쉽게, 우연히 찾아낸 거죠!"
"훗, 어떻게 하셨는지 무척 궁금하군요."
그제야, 지난번 인터뷰를 끝내고 강 사장과 캐시가 모텔
들이 즐비한 골목으로 들어서는 것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던졌던 질문에 대한 해답이 정해졌다. 그들은 그날 분명히
성공했을 것이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이 만약 실패했다면 캐시가
이런 인터뷰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강 사장이 나를 만날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의 인터뷰는 처음
부터 '성공'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축하드리는 것이 옳겠죠? 후후… 진심이에요. 정말 축하
드립니다."
"그럼요, 축하할 일이죠. 저 보다는 강 사장님이 축하 받
을 일이지요. 어쨌거나 그 이가 그 날 이후 행복해하는 모
습이 정말 보기 좋았어요. 새로 태어난 기분이래요. 남자들
은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봐요. 하긴… 여자도 마찬가지겠지
만. 만약 제가 불감증이었다면 무척 힘들었겠죠? 더구나 남
자들은 그것을 남성의 상징으로 보는데… 그게 불능이었으
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일이 해결된 후, 그 사람 마음이
이해가 가더군요."
"저는 솔직히 아직 이해가 안가요. 오십대의 아저씨라면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 그런 나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혹
시 삼십대나, 사십대라면 중요하겠지만…"
"훗, 미연씨가 모르셔서 하는 말이죠. 남자들은 문턱 넘어
갈 힘만 있으면 백발 노인네라도 여자에게 침을 흘린 대요.
후후후… 남자에게 있어 그것은 생존 본능이나, 종족 번식
의 본능과는 달라요.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제가 알기로는
남자라는 존재가 지탱하는 자존심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
해요. 우리가 흔히 옛날부터 쓰는 말이 있잖아요. 남자 구실
못하는 남자…"
"……"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보통의 남자들은 남자라고
당연히 인정받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소위 '고자'인 사람들
은 '남자 구실'을 못한다고 해서 사람 취급도 못하고 손가락
질 당했지요. 결국 남자의 '성교 가능'여부 즉, '발기'가 되고
안되고의 문제, 혹은 발기가 되더라도 수태의 가능성 여부
가 인간으로써가 아닌, 남자로써의 존재 의미를 가능케 해
준다고 봐요. 제가 너무 억측을 부리는 걸까요?"
"아뇨. 맞는 말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모든 남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런 문제가 남자의 자존심과 분명 관
련이 있다고는 생각해요. 뭐, 기죽는 남자, 고개 숙인 남
자… 우회적인 표현이지만 결국 그런 의미 아닐까요?'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의견이 일치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더할 나위 없는 즐거운 인터뷰임이 틀림없었다. 지니와의
인터뷰는 우울함과 연민이 가득했었고, 사이버 맨 김준석과
의 인터뷰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사람은 두 번 다시
만나고싶은 않을 정도였다.
*
강 사장을 거의 끌다시피 하여 인근의 호텔로 들어선 캐
시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그를 세워놓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어, 정은이니? 나 캐시야! 너 지금 한가하면 내가 있는
곳으로 와주겠니? 아니, 바쁜 일이 있어도 무조건 달려와
줘! 여기 신촌에 XXX호텔이야."
강 사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녀가 호텔로 들어온다는
것은 뻔한 일인데, 친구를 불렀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
다.
"캐시! 왜 친구를 부르는 거지?"
"이제 곧 알게 되요. 제가 시키는 대로 따라주면 돼요. 오
늘 자기는 젊음을 되찾게 될 거예요."
"설마… 이렇게 빨리? 난 믿어지지 않아."
"그렇겠죠. 하지만 제 말이 틀림없어요. 자기의 문제를 해
결하는 방법은 이 한가지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시키
는 대로만 해요. 알았죠?"
강 사장은 캐시가 말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구체
적인 계획이야 캐시의 친구가 도착되어야만 알 수 있겠지
만, 확신을 갖고 말하는 그녀를 믿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
었다.
캐시의 친구인 정은이 도착한 것은 한 시간 가량이 지나
서였다. 그녀는 요란스럽게 초인종을 누른 뒤, 방안으로 들
어서면서도 호들갑을 떨었다. 화사한 정장 차림의 그녀가
들고 있는 쇼핑 백이 눈에 들어왔다.
"어휴, 기집애! 대체 뭔 일이길래 호텔까지 불러내고 난리
야?"
"호호, 인사부터 해! 이쪽은 강 사장님이셔. 우리 애인이
야. 호호호…"
정은은 강 사장을 알아보고는 인사를 건넸다. 긴 생머리
를 하나로 질끈 동여맨 그녀는 캐시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
는 듯 했지만, 두 사람이 나누는 말투로 보아 친구임이 분
명했다.
"이거 참, 초면에 실례가 많습니다."
"아아… 누구신지 알겠네요. 강공태 사장님… 맞죠? 대한
물산의… 사장님이시라는."
"허허허… 이거 정말 쑥스럽네요. 제가 벌써 소문의 대상
이 된 겁니까?"
세 사람은 의외의 편안한 마음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뜻
밖의 상황에서 마주하게된 것이 새삼스레 어색하고도 우스
웠기 때문이다.
"정은아, 부탁 좀 들어줘."
"뭔데?"
부탁이라는 말에 정은이 호기심 띤 얼굴로 물었다. 강 사
장은 곁에서 지켜볼 뿐이었다.
"너, 내가 부탁한 것 같고 왔어?"
"응, 가져왔는데… 대체 이 캠코더로 뭘 하려고?"
정은은 들고 있던 쇼핑 백을 캐시에게 건네주었다. 그녀
의 말대로 쇼핑 백에는 액정 모니터가 달린 8밀리 캠코더가
들어 있었다.
"후훗, 고마워! 내가 이거 일주일 정도 쓰고 줄게. 괜찮
지? 안되면 할 수 없지만… 부탁이니까 좀 들어줘. 대신 술
한잔 거나하게 살게!"
캐시와 강 사장은 캠코더를 건네준 정은에게 고맙다는 말
을 전한 뒤, 한사코 마다하는 그녀를 호텔 로비까지 따라가
배웅했다.
"그래, 이제 말해봐. 대체 해결책이 뭔지… 궁금해 죽겠
어!"
룸으로 다시 들어서자마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강
사장이 말했다. 캐시는 장난스레 웃으며 드디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자기, 궁금했죠? 후훗, 사실… 섹스라는 것이 성적인 욕
구를 느껴야만 가능한 건데, 그게 마음뿐이고 몸이 그것에
길들여져 있으면 별 느낌을 갖지 못하거든요. 음… 뭐에 비
유를 해야만 좋을까? 그러니까… 바나나가 우리들 어렸을
때는 귀하고 귀해서 1년에 한번 먹을까 말까였고, 그래서
더 맛있었던 건지도 몰라요. 하지만 요즘 너무 흔해지니까
그 맛에 길들여져서 이젠 맛있는 줄을 모르잖아요. 그렇
죠?"
"으음…"
"강 사장님은 한동안 섹스를 즐기지 않은 것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젊었을 때 자칭 섹스 매니아였기 때문에 어지간
한 성적 자극에는 길들여져 있는 거죠. 그래서 지금처럼 나
이든 후에는 평범한 자극만으로는 충분치 못했던 거라고 생
각해요. 특별한 어떤 충격이 필요해요. 아주 쇼킹한 것일수
록 좋죠."
"그, 그게 뭐지?"
"훗, 아까 백화점에서 옷 갈아입는 방… 기억하죠?"
"응, 기억하고 말고!"
"그땐 키스만으로도 발기했잖아… 그렇죠? 그러니까 그런
특수한 상황이 되어야만 해요. 누군가 지켜보는 앞에서 행
위를 한다거나 긴장감이 감도는 곳이어도 좋고… 이를테면
공개된 장소 같은 곳."
"그럼 왜 캐시가 일하는 그 룸싸롱에선 안됐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강 사장이 되물었다. 그러나 캐
시의 표정은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그거야 뻔하죠. 어차피 술집의 밀실은 그런 일들이 비일
비재한 곳이고 남녀 단둘이 있을 경우, 일부러 부르기 전에
는 누가 들어오지도 않잖아요. 그리고 사업하시는 분이니
그런 분위기의 접대 자리가 오죽 많았겠어요?"
"흐음…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 같아. 그래서 이제 어쩔
거지?"
"빨간 마후라 기억해요? 오늘은 이 캠코더로 강 사장님과
저의 섹스 장면을 촬영할 거예요. 제 2의 빨간 마후라죠. 후
후… 단, 촬영한 후에 필름은 파기하기로 해요. 나중에 찜찜
한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물론, 영상을 확인한 다음
에 그래야겠죠? 후후…"
강 사장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두 사람의 섹
스 장면을 촬영할 것이라는 캐시의 말만으로도 그는 벌써
흥분하고 있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