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오십대 아저씨의 특별한 요구
세 번째 인터뷰의 대상은 캐시였다. 첫 미팅 때 무척이나
튀어 보이던 뽀글뽀글 파마 머리를 했었는데 어쩐 일인지
단정하게 생머리로 변신을 꾀한 여자다.
"결국 제 차례까지 왔군요. 앞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어
서 대충 미연씨의 실력을 알고 있어요. 꼼꼼하고… 이야기
를 성의 있게 잘 들어준다고 하더군요."
"칭찬, 감사합니다. 좀 부끄럽네요. 열심히는 하고 있습니
다만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어요."
캐시는 첫 인터뷰 때의 지니처럼 술잔을 앞에 놓고 있었
다.
"전, 술을 무척 즐기는 편이죠. 지니가 주로 술 상대가 되
주었는데… 지니의 일은 정말 안됐어요. 우리들도 아쉽게는
생각하지만 그녀가 원한 것이니까 옳은 선택을 한 것이라고
믿어요."
"……네에."
지니의 자수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그녀 말이 옳다는 것
을 알고 있다. 비록 어릴 때 저지른 일이지만 죄책감에 시
달려 평생을 고민과 방황으로 힘겨워 하는 것보다 죄값을
치르는 것이 홀가분한 지도 모른다.
"자…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요?"
캐시가 술잔에 담긴 위스키를 비우며 말했다. 갈색 액체
가 쉼 없이 단숨에 그녀의 식도를 타고 흘러 들어갔다.
"먼저… 소개부터 해주세요. 그리고 겪으신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친구에게 털어놓듯이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캐시는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인터뷰의
준비를 위해 메모장과 펜을 들었다.
"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술집 호스테스였어요."
이윽고,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녀
의 첫 마디는 '호스테스'였다.
*
"야! 캐시! 왜 이렇게 늦게 오고 지랄이야? 넌 영업시간
도 모르니?"
캐시는 마담의 짜증 섞인 말투에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시계를 보았다. 딱 한 시간 지각이었다. 룸에는 벌써부터 손
님이 찼는지 음악 소리와 아가씨들의 웃음소리에 시끌벅적
했다.
"이 멍청한 년아! 그렇게 늦게 다녀서 손님 다 놓치고 언
제 돈벌라고 그러는거야? 미친년…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
닭대가리 같은 년!"
"에이, 언니는 초장부터 무슨 욕을 그렇게 해?"
"이 년아! 그러니까 일찍 다니란 말야! 너 지금 갚아야
될 돈이 대체 얼만지나 알아? 일수돈 얻어준 것만 해도 이
자가 눈덩이같이 불어났어! 너 이자가 어떤건지나 알아? 번
데기 똥구녕에서 실 뽑듯이 정신없이 늘어나는 게 이자야!
에이, 닭대가리 같은 년 붙잡고 말 해봐야 내 주둥이만 아
프지!"
마담은 더 이상 말 할 필요가 없다는 듯 손을 내두르고는
손님들이 있는 룸으로 사라지자, 캐시는 아가씨들이 손님을
기다리기 위해 준비하는 대기실로 들어갔다. 손님 테이블을
배정 받지 못한 몇 몇 아가씨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의 아가씨들이 보이지 않았다.
홀 복으로 갈아입고 30여분쯤 지나서였다. 마담이 대기실
로 들어와 캐시를 찾았다.
"캐시, 네가 들어가야겠다."
"네? 제 손님인가요?"
"아니, 처음 온 손님인데 아무래도 네가 상대해야 할 것
같아."
"에이, 언니! 혹시 진상 아니에요?"
캐시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설마 손장난이 심
한 짓궂은 손님들이 걸린 것이라면 상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기에는 진상인 것 같지는 않아. 네 년이 그딴 것 가릴
처지냐? 빨리 들어가기나 해!"
마지못해 룸으로 향하는 캐시의 마음은 어두웠다. 혹시라
도 변태 손님이라 자신에게 이런 저런 곤란한 것들을 시킬
까봐 걱정스러웠다. 더욱이 일행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
온 사람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더욱 컸다.
불안한 마음으로 밀실의 문을 열었다. 널찍한 실내에는
얼마 전에 도배한 실크 벽지의 꽃무늬가 화려한 조명 아래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캐시예요."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버지뻘의 남자 손님이었다. 나
이가 지긋한 손님이었기에 캐시의 걱정은 조금 누그러들었
지만 그렇다고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아니, 옆에 앉지 말고 맞은 편에 앉도록 해요."
뜻밖의 요구였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자신의 옆에 여자를
앉혀놓고 손장난을 즐기려하는 것에 비한다면, 이 나이 지
긋한 오십대 남자 손님은 점잖은 요구를 하는 것이다.
"후후… 마담이 어린 아가씨를 들여보내 주겠다고 하길래
내가 사양했소. 어쩐지 딸 같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오. 뭐,
아가씨도 내 딸 또래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어린 아
가씨들은 좀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말끝을 흐리는 사내는 쑥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캐
시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술… 따라 드릴게요."
"고맙소. 그런데… 몇 살이지? 솔직히 말해줬으면 좋겠는
데…"
"네… 전, 스물 일곱이에요. 좀 나이가 들었죠? 다른 손님
들에게는 스물 네 살이라고 거짓말하고 있어요. 점잖으신
분 같아서… 그래서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건데, 기분 나쁘
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두 개의 잔에 술이 가득 채워졌다. 캐시와 사내는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가볍게 잔을 부딪쳐 건배를 하고는 술잔을
비웠다.
"아가씨에게 부탁할 일이 있소. 가능할지는 모르겠소
만…"
"……"
요란한 소리를 내며 캐시의 심장이 수백 미터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만 같았다. '부탁'이라는 말에 캐시의 마음은 또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먼저, 고백할 일이 있소. 난 마담과 안면이 있는 사람이
오. 개인적으로. 남자와 여자로써 알고 지냈다기 보다는…
마담이 이곳에 오기 전에 일하던 가게에서 좀 알고 지냈지.
동생처럼 생각하고 있소."
"……"
"음, 할 말이 그것은 아니고… 사실대로 말한다면 내가
마담에게 섹스에 능하고 건강한 아가씨를 부탁한다고 했
소."
섹스에 능한 아가씨? 그렇다면 그가 원하는 것은 섹스란
말일까? 캐시의 마음은 불안이 아니라 이제 공포로 얼룩지
고 있었다.
"난…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고자요. 즉, 성불능자란 말이
오."
캐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고자(鼓子)라는 그 사내
의 말에 아연할 뿐 대체 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고자(鼓子)라면 대체 무엇을 원한다는 말인
가. 마음이 다급해진 캐시는 급한 나머지 차가운 얼음 냉수
를 벌컥벌컥 들이키기에 급급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