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스커트 밑으로 손을 넣어
세 번째 인터뷰를 하러 그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의 전화를 받은 이틀 후, 어디까지나 그
와 나 사이에는 '일'이라는 끈이 있었기에 사적인 감정은 금
물이었다.
물론 그에게 어떤 흑심을 품었다거나, 연정이 생겨난 것
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화에 대고 그가 나에게 전한 말들
때문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부끄러움과 수줍음 혹은 까닭
모를 긴장과 당혹감 등등이 한데 어우러져 얼굴을 붉혀야만
했다.
"그럼… 오늘도 또 시작해 봅시다."
태연한 모습의 그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스스럼
없이 말했다. 전화에서 말 한 것처럼 그가 나의 몸을 쓰다
듬는고 있는 듯한 시선에 몸을 잔뜩 긴장시키며 녹음기를
켰다. 손끝까지 떨리며 경직되고 있는 나와는 달리 그의 목
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
대기실 명단을 아무리 훑어봐도 민영의 아이디는 보이지
않았다. 준석은 자신도 모르게 민영의 아이디를 찾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더 이상 키보드를 두들기지 않은 채
모니터만을 멍하니 응시했다. 그녀를 찾아다니며 일주일이
흘렀지만 찾을 수 없었다. 전화 연락도 없었다.
그리고… 긴 장마를 이겨내듯 한 달 가까이 흐른 어느 날
이었다. 드디어 민영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메모:민영이] 오랜만이네요. 그쵸?
[메모:준석이] 정말… 오랜만이야. 왜 한동안 안 들어 온
거지? 연락도 없고?
[메모:민영이] 그냥… 조용히 지내고 싶었어요.
[메모:준석이] 전화 통화 할 수 있을까?
그게 전부였다. 전화통화를 하고 싶다는 그의 메모에 그
녀는 우연인지, 고의였는지 접속을 끊고 나갔다. 또 다시 지
루한 기다림이 시작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준석은 이유를 깨닫지 못했다. 그저, 무의식
중에 그녀만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무
료한 세월을 보낼 뿐이었다.
그녀가 세 번째 연락을 해왔을 때에야 비로소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준석은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얼굴도 모르고, 단 한번의 사이버 섹스를 나눈 그녀
에게 현실 세계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을 쌓
은 것은 스스로도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왜… 그날 왜 접속을 끊은 거지?"
"미안해요. 얼굴도 모르는 준석님께 제가 자꾸만 마음이
쏠리고… 오늘도 이렇게 마음에 이끌려 전화를 하게 됐어
요."
"만나자. 다른 말은 하지 말고 우리 만나도록 해."
준석의 만나자는 말에 민영은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 않았
다. 준석은 다급하고 초조했다. 그녀가 이대로 연락을 끊으
면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민영아… 부탁이다. 네가 이대로 연락을 끊는 것을 원하
지 않아. 우리 그냥 아무 부담 갖지 말고 만나기로 하자.
응? 부탁이야…"
그 동안의 시간보다도 더욱 길게만 느껴지는 지루한 침묵
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준석의 마음은 전화가 끊어질까 두려
운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민영의 대답이 들려
왔다.
"나… 흉보지 않을꺼죠?"
"바보 같은 소리하지마. 난 민영이 기다렸어. 절대로 흉보
지 않아.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기뻐."
"혼자… 혼자 사신다고 했죠?"
"응"
"그럼… 제가 찾아가도 될까요?"
"그게 좋다면 그렇게 해. 오늘이라도 올 수만 있다면 꼭
와줘. 더 이상 바라지 않을게."
"오늘… 오늘 갈게요. 이따 저녁 7시까지 찾아갈게요."
어떻게? 준석의 마음속에 무성하게 일어나는 질문은 그녀
가 어떻게 자신의 집에 찾아올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반신
불수의 몸으로 자신의 집까지 어떻게 올 수 있느냐는 질문
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무슨 생각하시는지 알아요. 걱정 마세요. 대충 위치만 알
려주세요. 집 앞에서 초인종 누를게요."
"알았어. 혹시 찾기 힘들면 전화해. 기다리고 있을 게."
수화기를 내려놓고 그녀가 도착할 7시까지 기다리는 동안
에도 준석은 마음을 놓지 않았다. 그녀가 약속을 하긴 했지
만 안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그녀
를 맞을 준비를 하는 준석은 되도록 그녀에 대한 기대감을
갖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이윽고, 시침이 그녀가 도착하기로 한 7시를 정확하게 가
리킬 즈음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였다.
"아… 안녕?"
현관문을 열자 그녀가 있었다. 검고 긴 생머리, 화장을 한
듯 안한 듯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맑고 투명한 피부, 유난
히 검게 반짝이는 눈동자는 한없이 빨려 들어갈 만큼이나
빛이 났다. 두 손을 무릎에 모아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녀
의 모습은 단아하고 아름다웠다.
"네가… 미, 민영이?"
미소가 하얗다는 것을 준석은 처음 깨달았다. 고개를 끄
덕이는 민영의 미소는 하얗다 못해 순수하고 깨끗했다. 준
석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안아 올
려 거실로 들어왔다.
"내려놓지 말아요… 이대로 있고 싶어요."
"민영아…"
"그냥… 이대로 가만히 안고 있어 주세요. 잠깐만이라
도…"
민영이 준석의 목을 힘주어 끌어안으며 손을 놓지 않았
다. 그녀의 머리에서 달착지근한 샴푸 냄새가 준석의 코끝
을 간질이고 있었다. 준석은 그녀를 쇼퍼에 내려놓고는 현
관에 남은 휠체어를 들여왔다.
"후후… 현관문이 열려 있는데 사람들이 지나가다 들여다
보면 어떡해. 그렇지?"
"보고 싶었어요."
준석의 말과는 엉뚱하게도 민영의 입에서 보고 싶었다는
말이 흘러 나왔다. 준석은 쇼퍼에 앉은 민영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녀의 손이 준석의 이마를 다정하게 쓸어 올
리고 있었다. 준석은 그대로 그녀의 무릎에 고개를 파묻었
다. 그녀의 손길이 그의 목덜미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나도 네가 보고 싶었어… 네가 안올까봐 걱정했어… 네
가 연락해오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이제 됐어… 널 만
나게 되어 정말… 정말 다행이야…"
준석의 온 몸이 민영의 손길을 따라 흥분으로 꿈틀거렸
다. 아랫도리가 후끈해지며 온몸의 뜨거운 피가 쏠리고 있
었다. 준석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민영이 입고 있는 스커
트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매끄럽고 부드러운 그녀의 살
결이 준석의 움직임에 녹아 내리고 있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