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색녀와의 뜨거운 정사
준석은 나른함을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오르가즘의
여운에 겨워하는 메사리나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아직도
들려오고 있었다.
"어땠어?"
"굉장해! 역시 늑대다워!"
"남편이 지금 없다고 했던가?"
"응. 지금 출장 중이야. 하긴, 있어도 상관없어. 도대체 나
를 제대로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무능한 남편이야. 난 사랑
에 굶주려 있는데, 그 사람은 나를 마치 일수쟁이 취급하더
라구."
"일수쟁이?"
"남자들이 흔히 그러잖아, 퇴근하면서 '나 오늘 일수 찍는
날이야. 일찍 집에 가야해'라고."
준석은 불만 섞인 그녀의 투정을 들으며 소리 죽여 웃었
다. 그녀에게 성적 매력이 없어서일지, 아니면 남편이 일에
바빠 밤일을 제대로 못해내고 있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부부 사이의 일이니 난 잘 모르겠고, 리나는 섹스를 좋
아하는 것 같은데 폰섹이나 컴섹만으로 되겠어?"
"지금은 이걸로 만족하고 있지만, 조만간 내 몸이 폭발해
버리고 말 것 같아. 이거 알고 보면 자위행위나 마찬가지인
데 언제까지 손장난이나 하고 살겠어? 남편과는 도무지 이
루어지지 않을 것 같고, 근사한 파트너 하나 만들어야 할까
봐."
"남편에게 들키면 어쩌고?"
"나도 그게 걱정이야. 그래서 지금은 이걸로 만족하고 있
어. 들킬 염려가 제일 적으니까. 안 그래?"
메사리나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준석은 그녀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또한 유부녀이기 때문인지 숨김없
이 솔직하게 접근해오는 그녀의 호탕함이 즐겁기만 했다.
"아이는 없어?"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한 달에 한번도 할까 말까야. 결
혼한지 3년이 되었는데 이상하게 아이가 들어서질 않아. 아
이라도 있다면 그 낙에 살겠는데…"
"병원에는 가봤어? 무슨 이상이라도 있는 거 아냐? 그런
경우 있잖아. 불임이라는 거."
"가봤는데 난 정상이야. 그리고 작년에 임신이 됐었는데
2주도 안된 태아가 그냥 자연 유산 되버렸어. 내가 몸이 좀
약하다나봐. 아주 어렵게 된 임신인데… 솔직히 말해서 시
댁에도 눈치 보여. 며느리 노릇 제대로 못하는 것 같고…"
준석은 전화기 코드를 조심스레 잡아 다니며 다시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았다. 커서가 깜박이는 푸른 모니터에는 접
속을 끊기 전에 메사리나와 나누었던 대화 내용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메사리나가 눈치 채지 못하게 모뎀에 연결되어 있는 전화
선을 다른 번호의 선으로 바꿔 끼웠다. 먼저 연결되었던 선
은 메사리나와 통화 중이었기에 통신으로 접속하려면 또 다
른 전화선을 연결해야만 했다.
"남편이 정력이 약한가보군. 보약이라도 먹여. 왜 그런 말
있잖아. 남자는 위로 먹고 여자는 밑으로 먹는다! 몰라?"
준석은 접속 발신음이 들리지 않도록 모뎀 초기화 명령을
수정 입력하며 말했다. 15초 정도 후, 접속이 완료 되었을
때였다. 접속이 이루어지자마자 메모가 날아오기 시작한 것
이다.
[메모:컴섹녀엠마] 늑대! 요즘 어떻게 된 거지? 왜 나에게
한번도 연락하지 않는 거야?
준석은 엠마의 메모를 무시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구는 엠마는 단 하루라도 자신에게 연락하지 않으
면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메모를 퍼붓곤 했다.
"내 이야기 듣고 있어?"
"어어! 미안, 잠시 딴 짓 좀 하느라고 내가 못 들었어. 무
슨 이야기했지? 정말 미안해."
"널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말을 했어."
"좋지. 시간이 맞는다면 나야 상관없어."
메사리나라면 차라리 엠마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준석이 쉽게 대답했다. 그러나 그녀를 쉽게 만나주지
는 않을 것이다.
[메모:컴섹녀엠마] 대체 왜 대답 안하는 거지? 이젠 나 같
은 년 쳐다보지도 않겠다는 거야?
[메모:컴섹녀엠마] 이봐! 난 지금 네가 필요해! 날 좀 안
아 달란 말야!
[메모:컴섹녀엠마] 너랑 하고 싶어 미치겠어! 네 목소리를
듣고 싶어!
준석은 끝내 대꾸하지 않았다. 이미 그녀와는 질리도록
컴섹을 나누었기 때문에 신비감이 없었다. 새로운 상대가
필요하다. 엠마처럼 집요하고 끈질긴 성격이 아니라 메사리
나처럼 성을 즐기고 싶어하는 속시원한 성격이라야 한다.
그러나 한 여자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다. 최소한 3명 정도
는 있어야만 한다.
"그럼 나를 진짜 만날 생각이야?"
"당연하지.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언제라도 좋아. 네
가 원할 때 나와. 난 혼자 사니까 집으로 와도 좋구. 이제
됐어?"
"와아… 기분 좋아! 나 내일이라도 당장 가고 싶어!"
"어쩌지? 내일은 안될 것 같아. 미안하지만 이 달 말쯤
연락하고 올래? 한 일주일만 지나면 되니까 그때 보자."
사이버 공간에서 만난 사람과 컴섹, 폰섹을 즐기고 오프
라인(OFF_LINE)으로 연결되면 그것은 백발백중 섹스가 성
사된다. 어차피 서로의 진심을 알고 있으니 누가 먼저랄 것
도 없이 자연스레 그렇게 되는 것이다. 또한, 컴섹에서 시작
된 폰섹은 금방 만남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준석은 조심스럽고도 신중하게 처신했다. 엠마와
같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
대는 섹스에 굶주려 있는 생과부(?)가 아닌가.
[메모:색녀] 굶주린 당신의 배를 제가 채워드리면 어떨까
요?
근사한 메모였다. 준석은 메모를 보낸 아이디의 프로필를
조회해보았다. 역시 비공개였다. 대개의 컴섹족들은 아이디
의 프로필을 공개하지 않는다. 자신의 신변과 관련된 일이
기 때문이었다.
[메모:밤의늑대] 오히려 색녀님께 잡아 먹힐까봐 걱정이
되는군요.
[메모:색녀] 당신에게서 야성미가 느껴져요.
[메모:밤의늑대] 칭찬인가요? 아마 대화명 탓일 겁니다.
[메모:색녀] 어때요?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요. 뜨거
운 입김을 내뿜는 남자의 목소리…
이제 메사리나의 전화를 계속 들고 있을 수는 없다. 준석
은 어깨 위에 걸쳐놓은 수화기를 바로 잡으며 메사리나에게
말했다.
"리나? 어떡하지? 나 지금 급한 연락이 와서 말야."
"아이잉~! 한번 더 하고 싶은데… 나중에 전화 걸어도 괜
ㅊ아?"
"응. 언제라도 좋으니까 연락해."
메사리나 또한 다시 통신에 접속할 것이다. 그녀는 아직
욕망이 채워지지 않았다. 분명 통신에 다시 접속하여 덜 채
워진 욕망을 가득 메워줄 상대를 찾아낼 것이다. 이번에도
그녀는 요사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남편에 대한 불평
을 털어놓겠지, 라고 생각하며 준석은 색녀가 띄워준 번호
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야… 색녀야. 나 지금 당신을 떠올리며 만지고 있어."
촉촉한 물기가 느껴지는 목소리의 여자가 자신이 색녀임
을 밝혔다. 그녀의 목소리는 리나보다도 어렸다. 물어보지
않았으니 확실한 그녀의 나이를 알 수 없다. 하지만 20살
안팎의 여자가 틀림없었다.
"그래, 내가 늑대야. 널 잡아 먹을 거야."
"좋아. 하지만… 내가 널 리드하고 싶어…"
준석은 색녀가 대화명대로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생
각했다. 어린 목소리를 가졌지만 폰섹을 많이 해본 솜씨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벌써부터 준석의 아랫도리가 달아올
랐다. 리나와 한차례 뜨거운 정사를 나누었음에도 그 못지
않게 흥분되는 것은 색녀의 어린 목소리가 또 다른 자극을
주고 있음이 분명했다.
♣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