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⑪ 이제, 널 가질 거야. (12/64)

                   ⑪ 이제, 널 가질 거야.   

     

       오빠의 억센 손에 잡힌 손목이 아파 왔다. 그러나 오빠는 

     손을 놓아줄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산 속 깊은 곳으로  나를 

     계속 끌고 갈 뿐이었다.

       

       "대체 어딜 가는 거야!!?"

       

       "조용히 하는 게 좋을걸? 너, 여기서  들키면 좋을 게 없

     다는 걸 잘 알텐데?"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오빠의 대꾸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창고에 불

     을 지른 범인이 나라는 것을 오빠가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

     었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우거진 나무들 틈에  묻혀 길도 바다

     도, 동네도 보이지 않는 곳에 도착한 오빠는 커다란 바위와 

     덤불이 무성한 곳으로 나를 주저앉혔다.  그곳은 흡사 작은 

     동굴처럼 어둑하고 습기로 축축했다. 

       

       "왜 여기까지 와서 이야기해야  하는 거지? 난  오빠에게 

     별로 할 말이 없어!"

       

       "야! 너 이 오빠를 6년만에 보고  겨우 한다는 말이 그거

     니? 좀더 반가운 척 할 수 없어?"

       

       "난, 하나도 반갑지 않아!"

       

       오빠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을씨년스러운 산바람과 습

     한 이끼의 냄새에 뒤섞여 오빠의 미소는 끔찍스러운 괴물처

     럼 징그럽게만 느껴졌다.

       

       "왜… 왜 그… 그렇게 웃는 거…야?"

       

       "후후… 내 웃음이 어때서? 그것보다, 너 내 앞에서 시치

     미 뗄 생각하지마. 난 다 봤으니까."

       

       "대체 뭘 봤다고 자꾸 그러는거야?"

       

       "네가 창고에 불을 지르는 것을 봤지, 달리 뭘 봤겠어?"

       

       휘둥그레지는 나의 눈을 들여다보며 오빠는 또 한번 징그

     러운 미소를 지었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는  물끄러미 

     발끝만 내려다본 채 손가락에 깍지 껴 양 무릎을 가슴에 끌

     어안았다.

       

       "겁낼 것 없어! 나도 너와 공범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정민 오빠의 표정은 너무도  의미심장하고 

     싸늘했다. 내가 불을 지르는 것을  모두 보고 있었으면서도 

     말리지 않았고, 하물며 영미를 구할 시간이 충분했을텐데도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왜 영미를 구하지 않은 거지?"

       

       "넌 영미와 나를  죽이고 싶었겠지만, 난  영미를 죽이고 

     싶었거든.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죽일 생각은 없었어. 감히 

     꿈도 꾸지 못했었는데 네가 그 일을  해준 거야. 난 영미가 

     귀찮았거든. 어릴 적부터 살 좀  섞었기로서니 부인 행세하

     려들고, 나이도 어린것이 결혼 운운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고 은근히 협박해오는게 너무 너무 지겨웠어!"

       

       참았던 화를 터뜨리는 사람처럼 오빠의 얼굴이 무섭게 일

     그러졌다. 오빠가 내뱉는 말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

     운 사실들이었다. 내 질투심을 달래려  저지른 일로 오빠를 

     이롭게 한 꼴이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밀려와 가슴이  아파 

     왔다.

       

       "내 나이가 몇인데 벌써 여자를 책임 지냐? 내가  닭대가

     리냐? 이 좋은 청춘을 여편네  얻어서 망치고 있게? 난 이

     제 스물 둘이야! 스물 둘에 내 인생이 개 꼬라지 나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아! 너라면 안귀찮았겠어? 난 미칠 지경이었다

     구! 내가 이번에도 왜 여길 왔는지 알아? 방학  때 안 내려

     오면 엄마 아빠에게 이르겠다고 영미가 얼마나 편지질을 했

     는지 몰라!"

       

       "그래도 그렇지… 불을 지른 나도 잘못이지만, 그걸 가만

     히 지켜본 오빠는 더 나쁜 거야.  난 지금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몰라… 오빤 이해 못해. 영미는 내 친구였어… 그래

     서… 그래서 견딜 수 없었어! 흐흐흑…"

       

       불 속에서 두려움과 고통으로 울부짖었을 영미의  모습이 

     떠오르자 참고 있었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한번 터진 울음

     은 참았던 시간만큼이나 격렬했고  눈물은 끝도 없이  흘렀

     다.

       

       "그만 울어. 잊어 버려! 나하고 너만 조용히 있으면  모든 

     일은 조용히 끝날 거야. 목격자도 없고 그렇다고 증거가 될 

     만한 것들도 발견되지  않았어. 그러니까  이제 잊어버리란 

     말야. 영미는 벌을 받은 거야!"

       

       "입에 침이나 바르고 그딴 소리해! 가슴에  손을 얹고 생

     각해봐! 어떻게 영미가 벌을  받은 거라는 말을  오빠가 할 

     수 있어? 영미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부터 오빠는 그 애를 

     갖고 놀았어!"

       

       "남자를 괴롭혔잖아. 게다가 네가 말한  대로 6학년일 때

     부터 그 짓을 해온 나를 말야.  그렇게 따진다면 난 남편과 

     같은 몸이야. 게다가 그 애 말로는 날 사랑한다고 했어! 그

     럼 사랑하는 사람의  앞길을 그렇게 막는  게 잘하는  짓이

     야?"

       

       "말도 안돼는 소리  좀 하지마! 오빠가  저지른 일이니까 

     영미를 책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잖아! 오빠는  정말 나쁜 

     사람이야! 그날… 나하고 그랬었으면서…  그리고는 영미랑 

     또 그랬잖아! 지금까지 6년이나 그랬잖아! 흐흐흑…"

       

       "너… 질투하고 있었구나?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넌 지

     난 6년 동안 날 기다린 거야. 내가 다시 널 이 대나무 숲으

     로 불러주길 기다린 거야. 맞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소리치는 나에게 정민 오빠가 음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오빠의 그 말은 나의 심장을 꿰뚫

     고 있었다. 꼭꼭 감춰 두었던 부끄러운 감정을 들켜버린 나

     는 고개를 무릎에 파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울음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바보…"

       

       바보…. 단 두 글자를  읊조리듯 내뱉은 오빠가  두 팔로 

     나를 끌어안았다. 오빠의 입술이 눈물로  얼룩진 눈가에 닿

     았다. 이내 오빠의 입술이 열렸고 따뜻한 혀가 눈물을 핥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안돼! 안돼! 안돼!

       

                     - 계 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