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Prologue)
그들은 모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곧 하얀 담배 연기가 주위를 안개처럼 감싸기 시작했다. 카
페 안은 의외로 조용했다. 아마도 그들이 이런 분위기를 찾
아 이 카페를 약속 장소로 골랐던 것 같다.
"인사드릴께요. 저는 장 미연이라고 합니다."
"네, 말씀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어요. 후후… 출판계에서
는 제법 알려진 대필 작가님이라고 들었거든요."
긴 머리의 절반을 옥수수 수염처럼(왜 나에게는 그렇게만
보여졌을까?) 노랗게 물들인 붉은 입술의 여자가 요염한 웃
음과 함께 말을 건네 왔다.
대필작가라는 말이 언뜻 귀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대필작가, 그 말은 곧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껏 많은 글을 써왔지만 나의 이름으로 책을 출판
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나, 자신을 홍보하기 위한 몇
몇 돈 많은 사람들의 자전적인 수필집 혹은, 사회문화센터
의 문학강좌를 듣는 '가진 것은 돈뿐인 주부'들의 작품을 대
신 써주곤 했었으니까. 또한 그런 일들을 하면서 나의 이름
이 공공연히 알려진 것은 사실이었다. 나름대로 대필작가로
써 성공한 셈이라고나 할까.
"뭐, 본론부터 말할께요. 우리들은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
야기로 시간 낭비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거든
요."
예의 그 노랑머리 절반인 여자가 또 다시 말을 꺼내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3명의 젊은 여자와 2명의 꽤 괜찮은(소
위 매력 있어 보인다는 부류) 남자들은 그네들의 이야기를
써주길 바라고 있었다.
"아가씨가 꽤 마음에 드는군! 글쓰는 솜씨야 난 잘 모르
겠고… 음, 올해 몇 살이죠?"
일행중의 한 남자가 약간은 거만한 듯한 몸짓으로 담배를
비벼 끄며 물었다. 그 남자의 시선은 시종일관 나의 몸 구
석구석을 징그러운 뱀처럼 휘감고 있었다.
"또 시작이군. 이 일에서 만큼은 본색을 좀 버려봐! 누가
돈쥬앙 아니랄까봐… 후후."
이번에는 온통 폭탄을 맞은 것처럼 파마를 해서 머리를
부풀리고 있는 검붉은 립스틱의 여자였다. 그녀가 얼굴을
돌릴 때마다 눈가에 붙인 스팽글이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인지 알고 싶은데요. 특별히 원
하는 형식이 있으시다거나…"
나의 말에 다섯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 시선
을 맞췄고 무언의 긍정이 오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네들은 곧 합의가 된 듯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예의 그 노랑머리 여자가 말을 이었다. 그녀가 대표인 듯
했다.
"글만 잘 써주시면 대가는 섭섭하지 않게 지불할께요. 일
단 이 돈을 받으세요. 이건 착수금으로 받으시고, 일이 끝나
면 나머지를 드리도록 할께요. 그리고 원고가 완성되면 검
토 후, 우리가 만족한 만큼의 보너스를 드리도록 하죠."
그녀는 자신의 가방을 열어 하얀 봉투를 꺼내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봉투의 두께를 보아 수표가 들어 있는 듯했다.
이런 분위기는 항상 어색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대가임
에도 돈을 받는 것에는 늘 어색함을 버릴 수 없었다.
"열어서 확인해보세요. 일단 3백만원을 넣었습니다. 나머
지 2백만원은 일을 마친 후 드릴께요."
"감사합니다."
봉투를 열어 확인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당연히 확인
을 했어야겠지만, 그런 행동마저도 나에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원하는 형식은 없어요. 아가씨가… 아참, 이름이
장 미연이라고 했던가요? 맞죠? 그래요, 미연씨가 쓰고싶은
대로 담담하게 편안히 쓰세요. 다만 글을 쓰는 화자, 즉 주
인공은 우리들이 되어야겠지요. 우린 좀 색다른 걸 원해요.
우리들이 겪었던 경험이 보통 사람들의 경험과 다르기 때문
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글로 모으려 하는 것이고요."
"…네에"
"우린, 저마다 특별한 경험을 갖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과
다른. 후후…"
"구체적으로 어떤…?"
"S! E! X!"
그녀의 말에 나는 숨이 멈추는 듯 했다. 어떤 류의 글이
될지 뻔했기 때문이다.
"놀라시는 건가요?"
"아뇨. 놀란다기보다… 좀 의외라서…."
나의 표정에 그네들은 모두 웃고 있었다. 특히 노랑머리
의 그 여자는 거리낌없이 나를 비웃고 있었다.
"이거 괜히 쓸데없는 시간낭비를 하는 거 아냐?"
"글쎄 나도 그런 기분이 드네. 지니 넌 어때?"
"아냐, 난 장 미연씨를 믿고 싶어. 그렇죠 미연씨?"
'지니'는 노랑머리 여자의 이름인 듯 했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의미 있게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엄지손가락을 들
어 보였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나는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그네들이 제시한 액수도 만
만치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그네들이 말하고 있는 '특별한
경험'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일은 언제부터 시작할까요?"
나는 입술을 세게 깨물며 물었다. 나의 말에 그들 모두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언제라도 좋다는 듯 빙긋이 웃
어 보였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무언가 수군거리며 의논하기 시작했
다. 순번을 정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들은 누가 먼저하고
나중에 하는 것에 그다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자연스럽
게 노랑머리의 '지니'라는 아가씨가 첫 번째 인터뷰를 시작
하기로 정해졌다.
"그럼, 내일부터 시작하기로 하죠. 어때요? 괜찮겠어요?"
"네! 물론이죠."
"좋아요! 내일 오전 10시까지 홍대 정문 앞에 있는 카페
'페르시아'에서 뵙기로 하죠!"
"알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세 명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가 들려주는
'특별한 섹스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나는 그
들의 이야기를 '첫 경험에 관한 일곱 가지 보고서'라고 정하
기로 마음먹었다.
5명의 이야기가 어찌하여 '일곱 가지 보고서'가 되었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것은 그네들 각자의 다섯 가지 보고서 이
외에도, 특별한 정도가 아니라 상상이 불가능한 엄청난 경
험이 두 가지 있었기 때문이다.
그네들이 들려주는 SEX! 그 이야기들은 모두 '첫 경험'이
라는 것에 특별함이 있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SEX에
대한 또 다른 세계였다고나 할까. 그들과 인터뷰하는 내내
나 자신이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
었다.
♣♣ 계속 ♣♣
첫 경험에 관한 일곱 가지 보고서 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