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 0>
(1/19)
<추억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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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봄날. 난 누군가와 즐거운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얼굴은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고 여기가 어디인지도 몰랐지만
그녀와의 데이트는 편안하고 행복했다.
분명 잘알고 있는 사람인데도 머릿속에 희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그녀가 길가의 가로수 사이로 달려가더니 숨어버렸다.
그녀에게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는데 순간적으로 나무 옆으로 그녀가 얼굴을 내밀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슬픔이 어려있는 눈동자가 아른거렸다.
순간 그 여자의 이름이 생각나는 동시에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지아야.."
미친듯이 그 나무쪽으로 뛰어갔지만 다가갈 수가 없었다.
한참을 허욱적대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두운 방안이었다. 시간을 알 수 없었다.
이마를 만져보니 식은땀이 흥건했고 시트가 온통 땀으로 젖어있었다.
옆에는 아내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언제부턴가 잊고 있었던 그녀와의 추억.. 불현듯 왜 그녀가 생각난 것일까?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가 식탁에 양주를 꺼내놓고 얼음을 놓은 컵안에 따랐다.
한잔을 가볍게 들이키고 또 한잔을 따랐다.
조명 아래 유리컵 안에서 양주와 얼음이 섞이는 듯 아지랭이 같은 무늬가 피어올랐다.
봉인돼 있던 이름.. 나를 몇 년 동안이나 울게 만들었던 그 이름..
점점 난 희미해진 추억을 더듬어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