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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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 파에 누운 차돌이 위에 가녀린 하얀 여체가 포개어있고 여자는 비좁은 쇼 파 위에 떨어질 것 같은 위태로운 몸을 잘도 버티어내며 남자의 작은 젖꼭지를 희롱하고 있다.

[전 정말 그동안 허무하고 괴로운 나날을 보냈어요.

남들은 내가 평안하고 행복하리라 여겨질지 모르지만 그 사람들은 나의 껍데기만

보아줄 뿐 나의 마음은 아무도 읽지를 못했어요.

나도 그런 척 하고 살았고요.]

지란은 문득 그런 말을 꺼내놓고 차돌이의 반응을 보려는 듯 고개를 들어 차돌 이를 본다.

그리고는 빙긋이 웃고 있는 차돌 이를 보자 행복함을 가진다.

자기가 내려다본 차돌이의 표정은 환해있었다.

그리고 자기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았다.

지겨움과 포기에서 나온 미소가 아닌 너무나 편안하고 말쑥한 남자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아주 약간은 조금 난처해하기는 해 보이지만 사랑을 받은 듯이 느껴지는 큼직한 눈을 가진 그는 정말 잘생겼다고 느껴진다.

수염은 깍 아 파르스름한 면도자국을 나타내고 눈은 초롱초롱 빛내며 자기의 말을 경청하는 그의 표정은 부드럽고 온화하였다.

또한 이 남자는 무엇이든 뛰어나고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자기가 엉뚱한 말을 하는 것에 조금 당황한 것 같으면서도 자기의 매력에 빠진 듯 자기의 말을 기다리는 표정이었다.

지란은 그의 얼굴에 미소로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어간다.

[정말 단조롭고 공허한 생활이었어요.

남들이 보는 커다란 집, 명성,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집안에 갖춰져 있는 여기저기 가구와 집기들은 아직 한 번도 자리를 바꿔보지도

못했어요.

어느 날, 응접실 쇼 파를 옮겨보려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러나 마음뿐이고 전 하지를 못했어요.

달리 옮겨보았자 앉을 사람은 나뿐인데 굳이 옮길 이유가 없다 느꼈기 때문이에요.

그만큼 전 제가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느꼈고...아니 그랬어요.

지금껏 살아온 삶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살아왔으니 그것이

나를 이렇게 화려하게 만들어주었지만 진실로 전 불행했어요.

그러나 이젠 아니에요.

이젠 용기가 생겼어요.

당장 이 쇼 파부터 옮겨보고 싶어요.

어떻게 놓으면 내가 그리고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누군가가 좋아할까 그걸

생각하며 옮겨볼래요.

이러는 내가 자기는 보기가 싫지 않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차돌이의 대답을 들으려는 듯 그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차돌 이는 지란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처음 파리해져 보이다가 나중엔 점차 환해지며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생활은 세상 사람들이 아는 것과는 거대한 차이가 있었다.

그녀의 내면 깊숙이 숨어있는 그 삶은 보기엔 장엄하고 불일치해 보이지만 너무나 가슴을 에 이는 것이어서 차돌이의 마음은 무거워진다.

그것은 지란의 마음진위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직 욕망으로 자극되어 하소연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화려한 생활에서 벗어날지라도 정말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보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자극되어있었고 그것이 그녀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매혹적인 억양에서, 그런 슬프고 아련한 이야기가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금 진정으로 하는 지란의 목소리는 노래같이 아름답게 들려지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를 즐겁게, 기쁘게 할 요량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거짓말로 들리지는 더욱 아니다.

그녀는 분명코 남보다 우월하였고 성실함으로 이날까지 부와 명성을 이어왔고 그것이 이날까지 그녀를 지배하였지만 지금 나를 향하여 그 맑은 눈으로 보내주는 고백은 오로지 나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였다.

그녀는 자기의 마음을 온통 금방 말속에 담아서 나에게 보낸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웃어주고 만다.

[나중 후회할거야........]

[아니.....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후회할 수도 없어요,]

지란은 급히 차돌이의 말을 받는다.

차돌이가 마음을 여는 것 같아 확실하게 잡고 싶어서 일거다.

[난 말이야......

여자가 무지 많아.

당신은 이해 못하겠지만 내 집엔 나를 섬기는 여자가 한손을 넘어.

그리고 나는 밤에 무지 거칠고 상상도 못할 이상한 짓을 원해......

물론 아무도 나의 뜻을 거 슬 리는 여자도 없고 지금은 스스로 알아서 하지...

당신은 그런 추하고 수치스럽고 괴상한 나의 행동을 받아드리지도 그리고 나도

하라고는 할 수가 없어.

애초 당신을 안지 말았어야 하는데....내가 자제하지 못한 게 탈이었어.

그러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아.

당신을 위하고 아끼고 사랑해줄 정다운 남자를 찾는 것이 좋을 거야.

당신을 이해하지만 당신으로 하여 우리의 생활에 조금이라도 불편해지기는 싫어.]

차돌 이는 지란에게 마음을 돌리라는 뜻을 밝혀준다.

호화스런 생활 항상 남이 자기를 받들어주는 생활에 익숙한 지란이 자기 곁에 온다면 이때까지 지켜온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며 자기가 행하는 이상한 놀이에 질 겁을 하고 후회할 때는 이미 모든 것은 잃어버린 후일 테니..이쯤에서 물러난다면 고귀하게 지켜온 명성에 금이 가지 않고 남들의 우상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돌 이는 자기의 버릇, 행동을 짚어가며 지란이 물러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안돼요, 이젠 늦었어요.

이젠 창녀가 되어서 당신 곁에 갈수 있으면 지금이라도 창녀가 될 거에요.

나의 마음, 나의 정신은 오직 당신에게로 가 있어요.

여기 있는 나는 당신의 한 부분이고 그래서 나는 당신의 어떤 명령도 수행할 수

있어요.

차라리 제가 죽는다면 몰라도 이젠 돌이킬 수가 없고 이미 늦어버린걸요.

그리고 당신의 생활은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제가 예전 당신을 모르고 조사하지 않았나요.

난 그 여자들이 부러워 날마다 가슴앓이 하고 살았어요.

이제 당신 곁으로 갈수 있는데 제가 못할 짓이 어디 있겠어요.

한 치도 당신과 주변 여자들에게 누가가지 않도록 노력하고 최선을 다할 테니 저를

가까이 해주세요.

저의 간절한 소망이에요.]

지란의 각오는 대단하였다.

기다림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 그를 잡을 확실한 기회가 왔는데 어찌 그 끈을 놓겠는가..

그의 생활이 일반의 범주를 넘었다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그의 곁에서 남은 인생을 보낼 수 있기만 기대했다.

앞으로 다가올 날들과 그리고 만나야할 많은 사람들이 두렵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가 있는 한 그 어떤 것도 참을 수 있었다.

그의 말투와 표정은 진지하다 못해 독기까지 품고 있었다.

차돌 이는 지란을 밀어내고 몸을 일으킨다.

차돌 이는 일어나 욕실로 발걸음을 옮기며 지란에게 말한다.

[후후후....나도 이젠 모르겠어.

그러나 당신은 고통일거야.

더군다나 난 나를 거슬린다, 여기면 결단은 무지하게 빨리 내리는 법이라.......

뭐하고 있어. 빨리 일어나........

낮엔 당신이 언니일지 몰라도 밤엔 당신에게 언니가 될 여자가 차에 있는데 모셔와

커피라도 대접하지 않을 참이야.

그리고 또 하나 나를 맞이할 때에는 속옷은 입지 않는 법이라는 걸......

그러니 속이 환히 보이는 옷을 입고나가 그 여자를 데려와.

그래서 당신이 내 여자라는 걸 인식시켜놓는 것도 좋은 방법 아니겠어.]

차돌 이는 지란의 대답도 듣지 않고 욕실로 들어간다.

지란은 화들짝 놀란다.

밖에 차돌이가 몰고 온 운전사가 어쩌면 자기언니라는 말에 기겁을 하고 정갈하게 옷을 걸쳐 입으려다가 나중 그가 한말이 떠오르고는 얼굴이 화색으로 변하더니 안방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지란의 모습은 하늘하늘한 잠옷을 입고 나온다.

속이 환히 보여 입으나 마나한 옷이다.

지란은 얼굴에 아직도 홍조를 그리며 그런 차림으로 현관을 나선다.

그리고 조금 후 지란은 무랑 이를 데리고 들어온다.

지란의 수줍고 부끄러운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무랑 이는 그녀의 그런 차림에 의아함도 민망함도 보이지 않고 당연한 듯 받아들이며 오직 차돌이가 자기를 집안으로 오게 했다는 것에 감격하고 흥분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나중에 안 일이지만 무랑은 지란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기에 더더욱 그러하였지만......

그런 무랑 이를 보며 지란은 차돌이의 능력과 처세에 다시 한 번 경악을 금치 못했고 자신의 각오도 단단히 가지는 계기가 된 것이다.

.

.....................................

며칠이 지났다.

날씨가 아침부터 우중충하다.

모든 식구들이 저마다 맡은 일에 충실하려 학교나 근무처로 나가고 집안엔 차돌 이와 무랑이 그리고 윤지의 어머니 그리고 곰의 처가 있다.

곰의 처는 요즘은 거의 안채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다.

워낙 많은 식구들의 식사도 그러하지만 곰이 아침에 나가면 저녁 늦게 들어오고 어떤 날은 안 들어오는 그런 경향이 많아지자 혼자 있기도 그렇고 석이와 노는 것도 즐거운지라 그렇게 생활패턴이 바뀌어 진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곰에게도 있었다.

곰은 무슨 생각인지 전화로 차돌 이와 이야기하고는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곰은 이런 기회로 차돌 이에게 자기 처를 눈에 익게 만들려는 속셈이 들어있는 것이 아닌지 아니면 남자로서의 구실을 못하고 보니 마누라보기가 민망하고 같이 자는 게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이날 차돌 이는 모두가 나가고 난 뒤 집에서 석이를 어르고 있었다.

[어머니......석이 좀 보세요.

저놈이 기려하는 것 같지 않아요. 허허허...........]

기분 좋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아들이 하는 짓이 귀여운지 윤지의 어머니인 양 여사에게 석이의 노는 모습을 보며 자랑하고 있다.

어느 누가 자기 자식이 커가는 것이 즐겁지 않으리...

차돌 이는 하루하루가 무섭게 커가는 석이를 보면 만사를 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허긴 사람의 일상생활이 모두 즐거움으로 채워질 수는 없다.

그러나 한순간 한순간의 일마다 즐거움을 찾는다면 바로 그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호호호. 그러네, 허긴 누구자식인데 어련 하시려고..........]

양여사도 그런 석이를 보다가 손자를 보며 행복해하는 차돌 이를 보며 기분 좋게 웃어준다.

양여사도 며칠이 지나자 집안의 분위기에 익숙해진 듯 말도 서슴치 않고 편하게 하고 있다.

사람은 모든 일에 익숙하다보면 그것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도 마치 마땅한 것처럼 느껴 지나보다.

[하하하...내 자식이라기보다 윤지를 닮아서겠죠..]

차돌 이는 웃으며 모든 공을 윤지에게 넘긴다.

실로 아첨이 잔뜩 묻은 말이다.

[자네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되네.

자넨 고약한 심보를 부리고도 그런 식으로 얼버무리려 하지 않아도 되네.

이젠 나도 포기했으니.........고얀 놈 같으니..]

양 여사는 간접적으로 차돌 이를 책망한다.

아무리 못난 딸자식이라도 오로지 남편에게 사랑받는 그런 자식이길 바랐는데 이건 숫제 사랑받는 것은 고사하고 사랑하지 못해서 난리를 치는 것 같으니 그런 딸자식을 가진 어미로서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어렵고 힘든 생활에서도 오로지 딸 하나만을 위하며 살았는데 일반적인 가정도 아니고 자식까지 있으면서도 처로서 호적에도 아직 올리지도 못하고 있으니...사위가 딸을 저버리려 하는 것은 아니고 자기에게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까지 있는 딸을 두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꼴을 보려 하겠는가.

그것도 딸이 원하고 권하고 있으니 처음 마음이 찢어질듯 아프고 괴로운 심정도 사위를 보고 이미 이렇게 된 상황이라면 그런 식으로 해서라도 거둘 수밖에 없는 실정을 아는지라 벙어리 냉가슴 앓듯 마음고생만 할뿐이다.

그러니 어찌 잘한다고 좋은 말이 입에서 나오겠는가.

욕은 못하더라도 얄밉고 서러운 마음에 잠깐씩 말꼬투리를 잡고 빈 정될 수밖에 없었다.

[허허허.......어머니, 모두가 제가 못난 탓입니다.

너그럽게 용서해주세요.]

차돌 이는 그런 양여사의 마음을 알기에 항상 고분고분하였고 아양 섞인 소리로 위로해 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달리 양 여사를 위로하고 안심시켜줄 방도가 있는 것도 없었다.

[그건 그렇고 나는 별채에 들어가면 안 돼.....

왜 모두 나를 별채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지는 알지만.....

그래도 새댁이 별채에 청소하고 오면 땀 흘리는 모습이 안타까워 도우려 해도 별채에는

안된다고 그러니......

별채에 색다른 룰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나도 들어가서 새댁을 도우 게 해주게나.

설마 이 늙은이에게도 벗고 들어가라는 말은 안하겠지.]

양 여사는 별채가 궁금한 모양이다.

자기가 별채에 따라 들어가려하니 곰의 처와 모두가 말리자 화를 내며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고 여인들은 무섭게 따지고 드는 양 여사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말았다.

양 여사는 처음 그 소리를 듣고 너무나 놀라고 말았다.

이건 숫제 임금이 거처하는 궁전보다 더한 환락의 극치를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어이가 없고 모두가 사람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모든 여자들이 하나도 부담을 가지지 않고 편하게 자유스럽게 그것이 마땅한 것처럼 행동하자 그만 그렇게 사는 것도 사람 사는 것이니 무슨 죄와 흉이 되랴 느껴지게 되었다.

그러나 새댁이 너무 수고를 혼자 하는 것 같아 도우 고는 싶은데 새댁이 양여사도 그곳에 들어가면 천하의 누구라도 벗을 수밖에 없으니 벗고 들어갈 용기가 있으면 따라오라는 통에 질 겁을 하고 포기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차돌 이와 조용히 있게 되자 자기는 예외로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허허허....그건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그만 어머님은 여기서 편하게 쉬시면 됩니다.

내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어머님께서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으니 그때까지

석이와 놀며 편하게 지내시면 됩니다.

그곳은 어머님을 모실 자리가 아닌지라.........]

차돌 이는 자기도 어쩔 수 없으니 양 여사는 모른 척 여기에서 지내시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

[허어.......새댁이 고생하는걸 보고 있어야 되다니.

난 본래 가만히 있는 성질도 아닌데 그냥 있기도 그렇고 도와주자니 자네 처처럼

해야 하고 정말 자넨 몹쓸 사람이야.

만약, 만약에 말이야, 내가 자네 처처럼 들어가도 혹 흉보지는 않겠지.]

양 여사는 혹시 그런 일이 생겨도 사위가 흉볼까 염려가 되어 물어본다.

차돌 이는 양여사의 진의를 몰라 어리둥절 한다.

설마 정말로 그런 모습으로 들어가서 집안에 걸려있는 딸과 다른 여자들의 나체사진이나 그보다 더한 흉측한 장난감들 그런 것을 본다면 아찔한 생각이 든다.

[아니...흉볼 겁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머님의 그런 모습을 온 식구들에게 말하고 흉볼 테니 절대

별채에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

차돌 이는 손 사레를 치며 절대불가하다는 의사를 밝힌다.

어찌 어머님에게 발가벗고 그 곳에 들어가라는 말을 할 수가 있는가,

기금까지 보아온 어머님은 예전 아낙처럼 정숙하고 깔끔한 분인데..그 곳의 실태를 본다면 기절을 하고도 남을 것인데 또 어찌 자기의 변태적인 생활을 장모님께 보여드린단 말인가.

천부당만부당했다.

그는 양여사와 더 대면하기 싫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간다.

안방침대에 TV를 켜고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화면을 주시한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노크소리가 들리고 무랑이가 들어온다.

[오빠, 손님이 오셨어.]

무랑이가 누군가가 찾아왔음을 알린다.

[어. 그래...누군데......]

차돌이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묻는다.

[모르는 사람이야.

다른 사람도 모르는 모양인데.........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을 어디서 본 것 같아,,,,,,,]

무랑 이는 그 사람을 어디선가 본 얼굴 같다며 말하고는 눈빛을 발한다.

[어. 넌 더군다나 이곳 사람들은 알지를 못하잖아.

다른 사람은 모른다는데 네가 어찌 찾아온 사람을 안다 말인가.....모를 일이네.]

차돌 이는 의아했다.

무랑이가 한국에 와서 외부사람을 알 리가 없었다.

어디 남과 잘 어울리는 성격도 아니고 중국이라도 거의가 모르는 사람일 텐데 자기가 알 것 같은 사람이라니 멍청해 질뿐이다.

[응. 맞아, 맞아, 내 생각이 틀림없을 거야.

내가 어렸을 때 절에 기거했던 아저씨가 맞을 거야.

한 2년 정도 있었지

아마, 나보고 꼬마사숙이라고 그러며 안아주시기도 했던 걸로 기억해.

저 아저씨는 날 기억 못하겠지만 난 분명히 기억해.......]

무랑은 찾아온 사람이 자기가 보았던 사람임을 확신한다.

그것도 아주 어렸을 때 일이었지만 확실히 기억에 있음을 확신했다.

[그래.]

차돌이도 뭔가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진양사형이 예전 한국에서 온 청년의 기개를 보고 2년 정도 데리고 있었다한 것을 생각해냈다.

차돌 이는 창가로 가서 찾아온 사람을 본다.

30대 중반의 말끔하고 정갈하며 준수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맑은 눈에 총기가 번뜩이고 가만히 서 있는데도 뭔가 위압감이 들 정도로 위엄으로 그를 감싸고 있는 듯도 해 보였다.

자세나 행동거지를 보고는 차돌 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는다.

[그래, 아마 무랑이 네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군.

허지만 넌 모른 척 해야 해...

날 찾아온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데도 찾아온 사람이라면 득이 될 것은 아니니 무슨

일인가부터 알아보기로 하자.]

차돌 이는 무랑에게 행동거지를 주지시킨다.

그리고는 방을 나가 현관을 통해 찾아온 사람 앞에 선다.

[날 찾아왔다고 하시는데. 누구시며 무슨 일로 찾아 오셨소이까.......]

차돌 이는 정중하게 그러나 냉정하게 말한다.

[이렇게 찾아와 죄송합니다.

실은 제가 모시는 분의 서찰을 가지고 왔습니다.

보시고 답해주시기 바랍니다.]

신사는 정중하게 찾아온 용건을 말하고 품안에서 작은 봉투를 꺼내 차돌 이에게 내민다.

차돌 이는 그 봉투를 받고 내용을 읽어보고는 신사를 보고 가부를 말하려한다.

그러나 차돌이보다 먼저 말하는 신사였다.

[죄송합니다.

가부를 듣기 전에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접때 당신의 무술과 기개에 감복한바 있습니다.

본인도 조그마한 재주가 있다 여기고 늘 당신 같은 사람과 겨룰 기회를 갖고

싶었습니다.

무리인줄 알지만 진심으로 손속을 나눌 기회를 주실 것을 감히 청합니다.

그 후에 가부를 들으면 안 되겠습니까.]

신사는 대결을 청하고 있었다.

차돌이의 무술을 보았다는 이야기고 그렇게 말하는 신사의 눈빛은 음흉하지도 비겁하지도 않고 맑고 청명하게 사내로서의 기개와 전의를 나타내고 있었다.

차돌 이는 그런 신사를 잠시 쳐다본다.

그리고는 신사를 거쳐 지나가며 낮게 말한다.

[여기서는 곤란하지 않겠소.

따라오시오.

멀지않은 곳에 손속을 나누기에는 더할 수 없이 조용하고 아늑한 공터가 있으니.]

차돌이가 그 말을 하며 앞장서서 걸어간다.

그 역시 신사의 맑은 눈빛과 온몸에 서린 정기를 보고는 무사의 기개를 나누고 싶었다.

또 지금 피한다 해도 한번은 부딪쳐야 할 사람이다.

지금 그가 대결을 청해오니 피하고 싶지도 않았고 오히려 승부사의 기질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신사는 그런 차돌이의 등에 대고 절과 감사의 인사를 한다.

[정말 고맙소이다.]

신사는 차돌이의 뒤를 따른다.

그리고 그 뒤에는 무랑이가 조심스레 따라가고 그렇게 세 사람은 순식간에 종적을 감춘다.

.

..............................

소나무로 둘러싸인 공터.

그 공터에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서 있다.

차돌 이는 본래 가벼운 차림이라 그대로였지만 신사는 양복상의를 소나무가지에 걸어놓고 차돌 이와 다섯 발자국 가량 떨어진 곳에 서서 무심한 눈으로 차돌 이를 보고 있다.

[좋은 자세........대결에 앞서 이름을 물어봐도 좋을지........]

차돌 이는 신사의 자세와 대결을 앞두고 취하는 몸가짐이 정갈하고 신중해지자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신사의 이름을 물어본다.

[하하하.

아직 난 누구에게도 이름을 밝혀본 적도 없고 내 이름을 내가 불러보지도 않았소이다.

그렇지만 귀하에게는 말을 안 할 수가 없군요.

전 달리 부르는 것보다 상허라는 함자가 마음에 들어 이제껏 그 이름을 쓰고

있소이다.]

신사는 명호를 밝힌다.

[흐흠. 역시....자, 그럼 시간이 귀하에게도 많지 않을 것 같소이다.

시작해볼까요.]

차돌 이는 몸을 옆으로 옮기며 자세를 잡는다.

[그럼 무례를 끼치겠소이다.]

신사도 더는 양보하지 않고 반대쪽으로 몸을 옮기며 차돌 이를 보며 눈을 빛낸다.

[이얍...휘익.....탁, 탁.........]

드높은 기합과 손과 손이 그리고 손과 발이 부딪치는 소리가 조용한 공터를 시끄럽게 한다.

몇 합을 나누었을까....차돌 이는 신사의 발길질에 옆구리를 강타당하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서며 잽싸게 자세를 다시 잡는다.

[흠...기가실린 발길질이구만........잘 배웠어.]

차돌 이는 찡그리는 표정이 아닌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상대를 칭찬한다.

신사는 조금 당황한듯했다.

자기의 발길질을 정통으로 맞고도 고작 두어 걸음 물러나게 밖에 못하다니......신사는 이 발길질에 적어도 상대가 땅바닥으로 나 뒹 구리라 믿었고 그러면 손속을 그만둘 셈이었다.

허나 상대가 얼굴을 찡그리기는 고사하고 자기의 공격을 받고도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도리어 자기를 칭찬하자 자기를 얕보는 줄 알았다.

분기가 솟아오르고 더욱 손발에 기를 충만 시키고 차돌 이를 공격한다.

[으 랴 압.......휘익.........]

차돌 이는 몇 합 서로 손발을 부딪치며 공수를 주고받더니 갑자기 눈을 빛내고 그 자세에서 땅을 박차고 하늘로 치솟는다.

그리고 미처 방비하지 못한 상대의 어깨를 발로 짚고 뛰어넘더니 재빨리 몸을 돌려 상대가 자기를 보기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 인중에 손가락을 가볍게 찔러주고는 서너 발자국 물러나며 빙그레 웃는다.

상허는 알았다.

도저히 자기가 어찌해볼 수 없는 고수라는 걸....

얼굴에 참담한 표정이 어린다.

그리고는 손을 내리고 조용한 음성으로 차돌 이에게 말한다.

[졌소이다.]

언제 이런 처지가 되어본 적이 있었던가.

내 노라 하는 주먹들과 드잡이 질을 해서도 몇 합이면 상대를 나뒹굴게 했는데 상대는 자기에게 엄청난 양보를 했음에도 이기기는 고사하고 수비마저 할 수 없는 보기 드문 고수이지 않는가.

지금까지 살아오고 무술을 배우고 처음으로 상대에게 졌으니 그 암담한 심정이 목소리에 그대로 묻어나왔다.

[당신은 지지 않았고 난 이기지도 않았소.

난 당신이 배운 무술의 사문을 존경하는 사람이니....후후후.........]

차돌 이는 자기가 이기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지........

그러고 보니 저와 같은 기술이 섞여 있는 것도 같았는데...

정말 저의 사문을 아는 사람입니까......

전 이때까지 저의 사문을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이 없는 사람인데.......]

상허는 머리를 갸웃거린다.

무엇보다 자기 사문을 아는 듯하자 차돌이가 누구인지 갑자기 더욱 궁금해진다.

[저기 저 아가씨를 아시오.]

차돌 이는 나무 밑에서 자기들의 대결을 편하게 웃으며 바라보고 있는 무랑 이를 가 르 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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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허는 차돌이가 갑자기 난데없는 아가씨를 가 르 키며 아는 사람이야 묻자 어이가 없었지만 그가 알려주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무랑 이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옆으로 가볍게 흔든다.

[아니.... 전 모르는 아가씨입니다.]

상허는 정중하게 말하며 왜 아가씨를 나에게 아는가 묻는 것이 궁금한지 차돌 이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후후후. 저 아가씨는 귀하를 아는 것 같던데....

귀하가 저 아가씨를 예전 꼬마사숙이라고 불렀다고 하던데 아니었소이까,]

차돌 이는 다시 웃어가며 이래도 정녕 모르는 사람인가 확인한다.

그리고는 아가씨가 어릴 때 들었다는 예칭까지 말해준다.

[꼬마사숙.....꼬마사숙........그러면 저 아가씨가 무아거사님과 같이 있던 그 아기란

말입니까. 어찌 이런 일이.....그렇다면 귀하는..........]

상허는 꼬마사숙을 입속에서 불러보더니 그만 눈이 둥그레지고 놀라움에 싸여있다.

먼 예전 자기가 무술을 배울 때 보았던 자그마한 꼬마가 벌써 이렇게 자랐고 지금 한국에 있으며 자기를 쳐다보고 있을 줄이야.......

과연 이일이 있을법한 일인가.

도무지 뭐가 뭔지 몰라 허둥댄다.

평소 그답지 않는 행동을 하고만 것이다.

[후후후.......난 진양도인을 사형이라 부르오이다.]

차돌 이는 그제 서야 자기가 무술을 배운 사문을 밝힌다.

[아. 그랬구나....그것도 모르고 내가 불경을 저지르다니.................

사숙.........제자가 그만 아무것도 모르고 커다란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절 벌하여 주십시오.]

상허는 그 자리에 덥석 무릎을 꿇고 몰라본 것에 대해 사죄하며 벌을 청한다.

진양을 사형이라 함은 차돌이가 무아거사님께 직접 사 사를 받았다는 말이다.

상허도 가끔 들리는 무아거사님의 금과옥조 같은 말에 많은 깨달음을 얻은바있고 자기의 사부인 진양도 무아거사님의 직계로 인정받지 못하던 그런 것으로 알고 있는데 눈앞에 서 있는 젊은 차돌이가 무아거사님의 직계제자가 아닌가.

실로 하늘같은 사문의 어른이 아닌가...

그것도 모르고 불경스럽게 대결을 청했고 진 것을 비통하게 여기다니 이제야 사숙이 왜 이기지도 지지도 않았다고 말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문의 어른이 제자에게 이겼다고.... 이겼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는가....

상허는 반가움과 용서의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감격에 흐느끼고 있다.

[일어나라, 자네가 정심하고 눈에 맑은 정기가 있음은 세상을 나쁘게 살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이니 사문의 어른으로서 기쁘기 그지없다.

그런 점으로 본다면 내가 지금까지 모시는 그분은 검은 세계에 있지만 밝게 사는

분이라 여겨진다.

그분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쳐 충성하라.

그리고 내가 곧 찾아뵙겠다고 전하고.........]

차돌 이는 상허의 태도나 눈에서 보는 정기에 더러운 물에 휩싸이지 않음을 느꼈고 그래서 상록수회장에 대한 자기의 편견도 약간은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아닙니다. 이젠 사숙님을 모셔야지요.

제자를 사숙님 곁에 두어주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상허는 얼토당토 아니라며 차돌 이에게 자기를 거두어줄 것을 청한다.

사문의 어른이 지척에 있는데 그분을 제외하고 남을 모신다는 게 있을 수 있는 법인가.

지금까지는 이 나라에 오직 자기 한 사람뿐이다 라고 생각하며 누굴 모셨지만 이젠 생각을 달리해야 했다.

그 것이 도리이기 때문이다.

[허허...자네도 지금껏 그 사람이 나쁘지 않기에 따란 걸로 보아지네.

그런 사람이라면 적어도 자네만큼은 목숨 바쳐 충성해야 하지 않겠나.

나중에 우리가 금이 가는 일이 생길지라도 자넨 그 사람을 위하여 나를 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할 것이네.

사문이기 이전에 그것이 사내가 한번 마음 주면 지켜야할 의리이고 도리인거야...

그러니 우리 사이가 나쁘지 않게 되면 그럴 수 없겠지만 그런 불상사가 생겨도 난

자네를 추호도 사문의 제자가 아니라고 하진 않을 테니 염려마시고 자네는 그 사람에게

충성을 다 하시게나.....]

차돌 이는 자기의 견해와 사내가 할 이야기를 해준다.

한번 섬긴다고 했으면 죽어도 그 끈을 놓지 말라는 뜻이다.

물론 그분이 시킨 짓이 모두가 선한일이 아닐지라도 남자가 충성을 맹세했으면 주인의 명을 하늘처럼 따르는 것이 법 일진데 내가 사문의 어른이라고 해서 배신하고 등을 돌리는 어리석은 행동은 절대해서는 안 된다는 따끔한 충고가 서린 말이다.

[아. 사숙님............]

상허는 더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차돌이만 부르고 있다.

지금 자기가 모시고 있는 분과 어쩌면 사숙과 원수지간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느 자리에 서서 누굴 도운 단 말인가,

눈앞이 깜깜했다.

[난 가겠네. 나중에 자네의 꼬마사숙과 못다 한 이야기를 할 시간이 있을 거야.

그럼, 나중에 보도록 하세.......]

차돌 이는 멍청히 있는 상허를 그냥 두고 공터를 빠져나간다.

나가면서 차돌 이는 다정하게 무랑이의 손을 잡고는 즐거운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마치 한가로이 놀러갔다 온 연인처럼....

.

...............................

.

차돌이가 산속의 집에 도착했다.

낮 시간에 차돌이가 상허를 만나고 안내되어 간곳은 산중의 호화롭게 지어진 산장 같은 집이었다.

산장 안엔 사람들의 왕래도 없었고 무엇 때문인가, 딱딱한 분위기가 돌며 종업원들도 극히 말수를 아끼고 있었다.

없어도 될 정문에는 사람이 나와 다른 사람의 접근을 막는 듯이 보였고 사람들이 출입한다 해도 일반인들은 감히 오지도 못할 시설과 분위기를 풍기는 집이었다.

차돌 이는 어느 방 앞으로 안내된다.

상허가 조용히 문밖에서 방안을 향해 말한다.

[손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오,,,그래...어서 들어오시라고 하고 넌 밖에서 대기해라.

내가 부르기 전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안에서 넉넉하고 포근한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음성이 흘러나온다.

[자. 들어가시죠. 사숙님......]

상허가 허리를 숙이며 차돌이가 들어가기를 기다린다.

[그러지. 무랑아 너도 상허랑 같이 지난일이나 이야기하며 기다려라.]

차돌 이는 무랑이도 밖에 남게 하고 미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차돌이가 들어가니 방 아랫목에 술상을 펴놓고 그 상좌에 앉아있던 머리에 무스를 발랐는지 반짝반짝 빛을 내고는 앉아있던 60가량의 초로의 신사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차돌이가 가까이 오도록 기다린다.

차돌이가 초로의 노인 앞에 서자 노인이 입을 연다.

[이렇게 초대에 응해주어서 감사하오이다.

더군다나 오늘 알았지만 내가 데리고 있는 사자의 사숙이라니 너무나도 놀랍소이다.

어째 틀린다했으나 진정 이런 분이 였을 줄은 더군다나 몰랐으니 오늘 접때의 결례와

함께 정중히 사과드리오이다.]

초로의 노인은 손을 내민다.

차돌이가 생각한 중년노인의 인상은 생각 그대로였다.

검은 세계의 총 보스면 어딘가 틀릴 것이고 또한 상허를 데리고 있고 상허가 따를 만큼 그러 분이라면 비록 지하세계에 있어도 광명정대할 것이라 생각했다.

차돌 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노인의 손을 잡는다.

[무슨 말씀을...접때는 소인이 결례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만나 뵈게 되어서 반가운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따뜻하게 맞아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어디서 뵙던 분 같아서.........]

차돌이도 노인의 손을 잡으며 전의 무례를 사과한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생각날 듯, 하면서도 생각나지 않는 노인의 정체에 대해 머리를 갸웃거린다.

[하하하. 무슨 말씀을........자..자....일단 앉읍시다.]

노인은 차돌 이에게 앉을 것을 청하고 차돌이가 앉자 자기도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다시 차돌 이를 보며 환하게 웃어준다.

[역시 범상합니다.

난 누구랑 앉아있어도 위압감을 가져보지 못했는데 젊은 분에게 이렇게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가져보기는 진정 처음입니다.]

노인은 차돌 이를 칭찬한다.

한 치의 허 트러 짐도 없이 자기 앞에 당당하게 앉아있는 차돌이가 무서운 생각도 든다.

어느 누가 자기 앞에서 이렇게 당차고 흔들림 없이 자기를 대한 자가 있었는가,

아직 새파란 젊은인데 마치 세상을 한손에 쥔 것 같은 패기와 용기는 어디서 나와 오히려 나를 주눅 들게 만들고 있지 않는가.

무서운 생각이 든다.

[무슨 말씀을........

그건 그렇고.... 실례가 안 된다면 존함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아...아참, 이런 실례가. 전 손 차돌이라고 합니다.]

차돌이도 중년노인과 같은 말로 그가 겸손함에 감사드리며 존함을 묻는다.

그리고는 자기가 나이가 어린데 노인의 존함을 먼저 물은 것이 무례라 여기고 급히 자기소개를 먼저 하였다.

[하하하....알고 있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이 늙은이의 보잘 것 없는 이름은 정 대찬이라 하지요.]

노인은 보잘것없는 이름이라며 자기를 밝힌다.

그러나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차돌 이는 속으로 엄청 놀랐다.

자기가 어디서 본 듯해서 물었지만 노인이 진정 이렇게 어마어마한 분이라는 걸 짐작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선생께서.........]

차돌이가 아직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은지 말을 끝내지 못한다.

[맞소이다.]

노인은 차돌이가 짐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는 순순히 시인한다.

정 대찬은 현재 다음 대권후보로 결정 난 여당의 대두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혼자 독학하다시피 공부하여 젊은 나이에 검사가 되었고 그의 날카롭고 무서운 철퇴는 폭력배나 다른 범죄자를 공포에 몰고 갈 만큼 철저하게 그리고 무서운 벌로 징계하기를 마다치 않았으며 그가 검사직을 할 때 우리나라에서 제일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해로 인정될 만큼 죄를 지은 사람은 그야말로 저승사라로 보일만큼 무서운 분이었다.

그분은 그 후로 장관직등 여러 가지 행정을 맡았으며 그가 맡은 부서는 깨끗하고 부정부패 없는 관으로 소문이 날만큼 조금의 허점도 보이지 않고 살아왔던 분이다.

청렴결백하고 일을 함에 추호도 사심이 없는 섞은 정치판에서 그야말로 여야 할 것 없이 존경하고 우러러 모시는 분이다.

이분이 여러 대통령을 모시며 행정 권력을 쌓았으나 조금치도 비리나 삶에 허점을 드러내지 않아 야권의 대권후보는 이미 차 차기에 도전할 만큼 그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신망은 대단한 분이었다.

이분이 상록수 회장이며. 암흑세계의 총 보스라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 도리어 멍청해진다.

차돌이의 그런 모습을 보자 대찬은 빙그레 웃으며 조용히 말을 꺼낸다.

[내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겠소.

옛날에 가난한집에서 태어난 아이가 있었소.

그는 가난했고 못사는 부모 밑에서 자랐으나 법 없이도 사실만큼 선량한 부모를

존경하며 커오던 중 힘들게 살아가는 부모가 어렵사리 마련한 돈으로 행상을

시작했으나 폭력배의 등살에 그마저도 세금이라는 미명아래 돈을 갈취해가는

폭력배들의 만행에 분노를 느끼고 이다음에 꼭 그런 놈을 세상에서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세상을 만들고 말겠다고 맹세했지요.

아이는 자라고 자기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자 불쌍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놈들에게 무시무시하게 대했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면 없어질 줄 알았던 폭력배는 조직이라는 우산을 쓰고

숨어버리더군요.

조직을 알아내고 무서운 엄벌로 다스려보았지만 조직폭력배는 사라지지 않고 음지에서

기생충처럼 기생하고 있더군요.

아무리 없애도 그 없앤 자리에는 다른 놈이 앉았고 그놈을 없애면 또 다른 놈이......

그는 생각을 차츰 바꿨어요.

차라리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면 이놈들 우두머리가 되자.

그래서 내 통제 하에 두면 세상이 아는 그런 엄청난 사건은 미연에 방지하고 나름대로

힘없고 불쌍한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말입니다.

그는 그 뜻을 행동으로 옮겼고 그리고 지하세계를 다스렸지요

물론 그 세계를 압도하는 힘은 사자가 했지만.......그렇게 지하세계는 내 통제 하에

들어왔고 그들은 필요악이지만 남의 힘줄을 먹지 않고는 살수가 없는 놈인지라 어느

정도 선까지는 인정을 해 주었지만 내가 하지 말라는 지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이 조용하게 지내왔어요.

물론 댁에게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댁이 전에 왔다가고 난 뒤에 알았지만

그 사건이 그처럼 커질 줄은 진정 몰랐고 그 진위조차 몰라 우두머리로서 그냥 있을

수가 없어 당신이 한낱 힘을 앞세운 졸장부라면 가차 없이 제거하려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 사람이 본인이라 어리둥절할 것입니다.]

대찬은 자기가 상록수 회장이란 걸 밝히고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한다.

[아.....그렇게 된 것이군요.]

차돌 이는 대찬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자기도 역시 그러한 입장이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즈음 걱정이 생겼소이다.

내가 더 이상 상록수회장을 맡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이지만 이 나라에 힘든 중책을 떠맡게 되어

상록수문제로 골치가 아픕니다.

내가 자리를 물러나면 그들은 이합지산이 될 것이고 그러면 다시 세력다툼이나

이권개입에 서로 물고 늘어지면 자연히 쌍방이 부딪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한데,

물러나지 않을 수는 없던 차에 귀하를 만났고 나는 지금 크게 안도하고 있소이다.]

대찬은 자신이 물러나야할 처지를 말한다.

그리고 자기가 물러나고 난 뒤의 일을 걱정하고 있다.

자기가 물러나면 세력다툼에 치열한 전쟁을 벌일 것을 예상했고 그 것은 누구도 말릴 수없는 암흑세계의 싸움이 아닌가..

그러면 지금까지 나름대로 그들을 통제하고 질서를 잡은 것은 헛일이 된다.

권력이 탐이나. 대권을 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더 높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평화와 안정을 누리게 하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었고 그럴 기회가 왔는데 모든 걸 포기하고 암흑세계만 통제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는 종내에는 차돌이 자신을 쳐다보며 환하게 웃는 것이다.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를 보고 안도하다니.....]

차돌 이는 점점 아리송해진다.

마치 미궁에 빠진 듯 대찬의 이야기에 감을 잡지 못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난 귀하면 어쩌면 하고 ...그렇게 마음속으로 생각했소.

그런데 오늘 사자가 귀하를 자기 사숙이라는 말을 듣고 정말 놀랐소.

그리고 편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소.

사자가 저러할 진데 그의 사숙이라면 이 어둡고 무서운 지하세계를 나름대로 잡아둘 수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난 귀하에게 상록수 회장을 맡아 주십사하고 간절히 청하오.

귀하라면 그놈들을 확실하게 잡아둘 것이란 믿음이 확실하기 때문이오.]

대찬의 부탁이 절정을 이룬다.

자기가 보는 눈을 믿는 것이다.

이제까지 살면서 수없는 사람들을 보았고 나름대로 관상과 행동거지를 보면 그 사람의 심성이나 선악을 구분하는 정도의 경지에 올랐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날 차돌 이를 보고 반했고 지금 다시 정면에 마주앉고 보니 조금치도 허 뜨러 지지 않고 남에게 굴복하는 약한 기개나 불의를 눈감아주는 그런 불의를 저 지러 지도 않을 실로 광명정대한 인물로 보았다.

대찬은 믿었고 주저함이 없이 어두운 세계를 다스려달라고 그렇게 함으로서 그놈들이 마음껏 활개 치는 세상을 만들지 못하도록 해달라며 간곡하게 부탁하는 것이다.

[선생의 말씀은 이해하고 나또한 그러한 지경에 이르렀다면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난 젊고 할 일이 많은 사람입니다.

전 그런 더러운 세계엔 발을 들여놓고 싶은 심정은 추호도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다른 사람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차돌 이는 망설이지 않고 거절한다.

그런 더러운 놈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허허허....귀하는 이미 그런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소이까.

귀하가 중앙 파를 재건했고 난 귀하의 요구를 수용했는데 그래도 귀하가 아무른 연관이 없다면 나중에 다른 놈이 귀하의 복수를 한다고 하면 그때도 나서지 않을 참이오.

물론 귀하를 어쩌지는 못하겠지만 귀하의 동료들도 모두 귀하 같을까요.

그리고 등 뒤로 날라 오는 비수를 전부 막을 수가 있을까요.

난 당신이 이일을 맡아줌으로 동료들을 지키고 불쌍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데 절대 거절하지 않으리라 믿소.

귀하는 내말을 믿지 못하겠소.]

대찬은 조리정연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차돌이가 맡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차돌 이는 대찬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마치 진의가 무엇인가 속마음을 깨낼 듯이 쳐다보고는 슬며시 고개를 내린다.

[그래요, 선생의 말이 모두 맞고 내가 상록수를 맡는다 합시다.

그럼 상록수를 내 마음대로 해도 가만히 있겠소.]

차돌 이는 꼬리를 내리고 대찬의 청을 수락하면 이후의 일은 전적으로 내가 하고자하는 데로 해도 되느냐고 묻는다.

[물론이오, 이미 당신 수중에 있는 물건이고 내손을 떠난 물건이오.

물건은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이 마음대로 하는 법이오.

난 귀하가 무엇을 하던 모르는 일이오.]

정 대찬은 당연하다는 듯이 한마디로 차돌이의 뜻에 수긍한다.

살아온 만큼 맺고 끊는 것도 빠르고 확실하다.

[허어...이것 참.........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차돌 이는 수긍도 부정도 아닌 결정을 내리고 만다.

너무 간단히 그리고 수월하게 말하는 대찬의 진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해서다.

물론 대찬이 이런 조직을 관장했다는 것이 알려져서는 세상이 시끄러운 일이 될 것이니 마땅한 후임자가 나타났을 때 손을 빼고도 싶었을 것이다.

[난 아니오. 모든 수장들을 소집하고 정식으로 새 회장을 소개할 것이오.

물론 그때 보았던 그놈들이 대다수고 몇 놈은 어쩌면 귀하에게 반기를 들지 모르나

이미 귀하의 무술을 보고 기가 죽어있는 상태라 어렵지 않을 것이오.

조만간에 연락을 할 테니 그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인수받으시오.

난 이제 귀하가 거절해도 이미 나는 귀하에게 물건을 손에 쥐어주었다 생각할 것이니...

허허허.....]

대찬은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무엇이 그를 기분 좋게 하는지 웃음소리가 끊이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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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찬은 웃음을 거두고 다시 자세를 바로 한다.

그리고 아까와 같은 진지한 자세로 돌아온다.

차돌이도 대찬의 입에서 다시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궁금히 여기며 귀를 기울인다.

대찬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상상을 넘었고 차돌 이를 기절하도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대찬이 입에서 나온 말은 진정 엉뚱했고 진지했다.

[난 이 세상에 친구라고는 없소.

진정으로 부탁이 있는데 나와 친구가 되어주지 않겠소.]

차돌 이를 똑바로 쏘아보듯 쳐다보면서 한 톨의 흐트러짐도 없이 뱉아 내는 대찬의 말은 가히 상상도 할 수없는 어마어마한 말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누굴 가지고 놀리려는 것도 아닌 정말 진실 된 심정에서 우러나온 말이라는 걸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네엣...........]

차돌 이는 또다시 놀라고 만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이며 자기를 놀리려는 말치고는 너무나 도를 넘은 것이 아닌가,

접 입 가경이다.

대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하나가 차돌 이를 놀라게 한다.

대찬이 상록수회장이라는 사실도 자기를 놀라게 하고도 남는데 이젠 대찬이 자기를 친구로 삼자는 말에 기절하도록 놀랄 지경이다.

대찬이 누구이던가.

차기 대통령선거에 불을 보듯 당선이 확실시 되는 사람이 아닌가.

아무리 살아온 과거가 무의미하고 재미없었더라도 거의 입에서 새파랗게 젊은 나에게 친구가 되자는 소리가 나올 수 있다니.......

그리고 난 이 사람의 자식뻘밖에도 안 되는 사람인데........

뭔가 틀린 사람은 하는 행동도 남의 상상을 초월 한다 들었지만 이건 기인의 행각보다 더 심하지 않는가.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이제까지 살면서 얼마나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말 행동을 하고 싶었으면 젊은 나에게 저렇게 매달리나 싶어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지만 이건 절대로 안 되는 일이다.

차돌이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말을 꺼내려하는데 대찬의 말이 다시 들려온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소.

우리가 자주는 아니지만 한 달에 한번은 만나 모든 것을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그런

인연을 맺길 청하니 받아주지 않겠소.

귀하가 나보다 젊을지는 모르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오.

난 조금 일찍 태어났고 귀하는 늦게 태어난 것인데 사람은 언젠가 죽는 법이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죽을 때에는 순서가 없다했소.

난 그때까지 마음을 열어놓고 마음껏 웃으며 마실 수 있는 친구가 내겐 없다오.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런 사람이 내겐 한사람도 없으니 허전하고 쓸쓸해서 그러니 내

요청을 거절하지 마시고 받아주시길 진정으로 청하오.]

대찬은 진실했고 정중했다.

차돌이가 거절할 것을 알았고 다시 한 번 사정하다시피 말을 하는 것이다.

대찬은 차돌 이를 보고 내 나이가 젊었으면 이친구도 두 말 않고 들어 주었을 일인데 쓸데없이 나이만 먹어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과 친구의 인연도 맺지 못하는 신세라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그깟 권력이 명예가 사람 사는데 조금 도움은 되겠으나 도움보다는 불편이 많다는 것을 알지 않았던가.

그런 허울을 쓰고 있으니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세상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게 되니 진정으로 마음속에 들어있는 말 툭 까놓고 하고 싶은 친구가 얼마나 그리웠던가.

앞에 앉아있는 이친구가 비록 나이는 나보다 한참이나 어리겠지만 내가 젊었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당당하고 거짓 없는 진실로 나를 감복하게 하지 않는가.

이런 사람이 내 친구라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고 아니 친구로 삼아서 편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었고 그래서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그런 부탁을 하게 되었으며 그날을 하는 대찬의 표정은 심한 고뇌로 물들어 있었다.

차돌 이는 대찬의 얼굴에 그늘이 지는 것을 본다.

얼마나 고달프게 인생을 살아왔으면 이제 친구를 사귀려 해도 만인의 눈에 있는 사람이라 그것마저도 할 수없는 처지가 아닌가.

저분이 저렇게 쓸쓸히 늙어가는 것이 애처로워진다.

[친구라니 말도 되지 않습니다.

형이라면 모를까........]

차돌 이는 친구는 할 수 없고 동생이 되겠다는 말로 승낙을 표시한다.

대찬의 진심을 막무가내로 거절하기가 어려웠고 이 정도라면 그분이나 나나 모양새가 좋다고 생각해서 용기를 내어 드린 말이다.

[아니오, 난 형이나 동생은 필요 없소,

오직 친구가 필요하오.

서로 터놓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오.

귀하가 나를 형이라 부르던 졸장부라 부르던 상관 않을 테니 우리 둘이 있을 때만은

편하게 서로 터놓고 말하는 사이가 됩시다.]

대찬의 고집도 여간 아니다.

그는 고개를 강하게 옆으로 흔들면서 차돌이가 자기를 뭐라 불러도 좋으니 서로 대중 앞에서는 안 되지만 둘이 있을 때에는 말을 놓고 지내는 사이가 되길 원한다고 밝힌다.

형, 동생사이라면 아무래도 조그만 벽이 있을 것이고 예의를 차리다보면 서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도 없으니 그런 사이라면 절대 안 되니 오직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 두고서라도 말은 까놓고 지내는 친구로 하자고 강하게 말한다.

차돌 이는 다시 대찬을 한참 보더니 더 이상 거절하기도 또 거절하고 싶지도 않아 승낙하고 만다.

그리고 차돌이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와 행동은 지금껏 대해온 언행과는 백팔십도 틀렸다.

[형, 이제 술이나 마시자.

이렇게 친구가 되었는데 한잔 술이 없으면 되겠는가.

그리고 난 원래 가난뱅이니 계산은 형이 하고 어때..........고리타분한 이야기는 끝내고

그만 취하도록 마셔보자고...좋다면 노래도 한곡 하고 말이야........]

차돌이가 대찬을 향해 조금의 망설임 없이 말을 놓는다.

차라리 그와 친구로 맺으려면 더 이상 격식이 필요 없다 싶었다.

어쩌면 그가 맞을 것이다.

이놈의 세상에 와서 과연 진실한 친구가 몇 있을까.

진정 하나라도 마음 터놓고 자기보다 친구를 먼저 생각하고 위해주는 자가 있을까, 진즉부터 의문이 들었었다. 자기 사리사욕부터 챙기는 냉정한 세상이다.

허울로 뒤집어쓴 인간들이 입에서 나오는 말 모두가 의리가 어떻고 우정이 뭐니 하면서도 어렵고 난처한 상황에 처해지면 슬그머니 뒷걸음치거나 모른척하질 않는가.

나 역시 지금껏 마음 나눌 지기도 없었다.

마음 한편 내게 그런 친구가 생길까했는데 앞으로 어찌될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 가슴 벅차오르기는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진정 친한 친구에게나 할 소리를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험악하게 인상을 그려가며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지기가 상대를 반가워하는 것 같은 소리로 대한다.

그의 말과 행동을 보던 대찬은 가가대소한다.

[역시....하하하....자넨 내 친구야...내가 버거울 정도로 멋있는 친구야.

암, 암.. 마셔야지...물론 계산은 내가 하겠지만 부자는 자네가 나보다 몇 천배가

되지 않는가. 짜기는 하하....

그래 친구야. 아니 차돌 아.

나중에 내가 실업자 되면 나를 먹여 살려야 할 것이야...으하하하....]

대찬은 얼굴에 온통 기쁨의 물결이 일고 있다.

지금껏 자기에게 이렇게 대해준 사람은 한 번도 없던 일이다.

이렇게 지내보고 싶은 친구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항상 동경하고 그리워했는데 젊은 차돌이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먼저 마음을 열어주자 너무나 기뻐 태어나서 처음이랄 수 있는 호탕한 웃음을 마음껏 질러대고 있다.

[하하하...물론이지. 형은 언제든지 환영이야..하하하....]

차돌이도 웃음을 크게 터뜨리고 만다.

그리고 상허를 부르며 마치 자기수하에게 하듯 큰소리로 말한다.

[으하하하.....사자. 상을 물리고 새 상을 들여오게 해....

그리고 아가씨도 부르고, 오늘 나도 형인지 친구인지 정말 골치 아픈 사람과 세상 잊고

마셔보고 싶어..하하하......]

차돌 이와 대찬의 호기가 뭉쳤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은 동심으로 돌아간 듯 한줌의 거짓도 숨김도 없이 밝아있었다.

차돌이의 새로운 인연은 여기서도 이루어진 것이다.

비록 세상은 혼탁하고 비정하지만 지금 이곳 두 사람의 의기와 맺음은 서로 등불이 되어주고 진정으로 가슴을 함께 나누는 더없이 맑고 넉넉한 자리였고 맹세였다.

사람의 눈은 항시 무엇을 보고 있다.

허나 자기 자신을 볼 수가 없다.

그리고 항시 익숙한 물건은 잘 보아지질 않는다.

사실 그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항시 보는 물건이라 보지 않는다 치부하기 때문이다.

특이하고 처음 보는 것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모르는 것이 있다.

사람의 마음이다.

그것을 보려면 가슴을 열고 마음으로 봐야한다.

마음으로 보아야 느낄 수 있고 누릴 수 있고 기뻐할 수 있으며 진실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서로를 보는 따스한 눈길...

그것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거뜬히 짐작할 수 있고 주는 건 없을지라도 받은 것 이상의 기쁨으로 만족할 수 있고 서로가 서로를 신뢰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사랑으로 둘은 영원하길 바라며 마음껏 마시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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