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돌이가 차를 타고 한참 가다 민우를 부른다.
[이봐요, 민우라고 했나. 이름 부르기가 껄끄럽군.....]
사실 그랬다.
어쨌거나 자기보다 연상인 것 같은데 함부로 이름을 부르기가 무엇했다.
그러나 민우는 달랐다.
차돌이가 정답게 불러주자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히히...대장님....그럼 제비라고 불러주십시오. 전 별명이 좋아요.
그리고 말씀도 낮춰주십시오. 제가 대장님께 존칭을 듣는다는 걸 형님이 알면 난 그
자리에서 죽은 목숨이니깐 요. 히히히....]
민우는 서글서글했다.
붙임성도 있어보였고 웃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알았어, 제비....어디 물 있고 조용한 산을 알아..알면 그곳으로 날 좀 데려다 줘...]
차돌 이는 사양하지 않는다.
바로 말을 낮추고는 가고자하는 방향을 일러준다.
[아. 예... 염려 마십시오.......]
제비는 싱글거리며 빠르게 차를 내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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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불어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산새도 지저귀고 무엇보다 물이 맑고 차가워 좋은 곳이다.
차돌 이는 바위위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크게 심호흡을 하며 가슴을 편다.
그리고 윗저고리를 벗고 걸친 와이셔츠도 벗고 맨몸으로 만든다.
가슴털이 수북이 돋아있고 울퉁불퉁한 근육이 너무나 조각처럼 아름다워 보인다.
그리고 바지마저 벗고 팬티바람으로 물이고인 웅덩이로 들어가 앉는다.
가슴 밑까지 물이 찬다.
그리고 차돌 이는 편한 자세로 앉아 눈을 감는다.
제비는 차돌이가 더워서 멱이라도 감으려는 줄 알고 있다가 한참을 그 자세에서 변동이 없자 그저 차돌이의 행동을 지켜보고만 있다.
한 시간 가량 물속에 있던 차돌이의 머리에서 뿌연 김 서리가 떠오른다.
그리고 우렁찬 기합소리와 더불어 그 자리에서 몸을 솟구친다.
솟구친 차돌이가 바위위에 착지하는 가 했는데 근방 나무숲으로 번개같이 치달리더니 다시 기합과 함께 몸을 날려 허벅지만한 나무 등걸을 발로 강타한다.
[쿵............뿌지지 직...........]
나무에서 커다란 타격소리가 들리고 아름다리 나무가 허리를 꺾으며 넘어진다.
차돌 이는 다시 땅에 발을 붙이더니 두 발을 하늘로 하여 떨어지는 나무를 양발로 차버린다.
[와지지 직.........]
넘어지던 나무가 다시 강한 타격으로 몇 조각으로 부러지고 갈라지며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지고 흩어진다.
그리고 차돌이가 자세를 잡고 호흡을 고르자 제비가 요란하게 박수를 치며 감탄을 금치 못 한다.
눈이 휘둥그레 해 가지고 놀란 빛을 감추지 못하고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연신 차돌이의 실력에 경탄의 소리를 하는 것이다.
[짝....짝....짝.... 우와.......대장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전 난생 처음 보는 광경입니다. 마치 무협영화를 보는 기분입니다. 히히히...]
[그랬냐..............]
차돌이가 빙그레 웃어주고는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천천히 앞장서서 산을 내려온다.
그런데 제비는 그냥 있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대장님, 우린 움직이는 걸 많이 연습하는데 대장님은 왜 물속에 스님처럼 오래 동안
앉아 계신 겁니까.......그리고 몸에서 나는 이상한 서리는......]
제비가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고 물어본다.
정신을 가다듬는다는 것쯤은 알겠는데 요동도 않고 물속에 앉아있지를 않나 그리고 그 몸에서 하얀 안개 같은 서리가 이는 것을 보고는 신기해서 물어본 것이다.
[하하하. 궁금해..........
무릇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모든 힘은 몸 안의 잠재력에서 시작된다고 봐...........
그 잠재력을 몸 밖으로 얼마나 강하게 내칠 수 있는가에 힘의 우열을 나타내게 돼.
그 잠재력을 많이 움직이게 하는 것이 기를 얼마만큼 수련했느냐에 있어.
운동선수들이 싸움을 하기 전에 눈싸움으로 기선을 잡으려하듯이 말이야...
그건 자기의 기로 상대를 먼저 제압하기위한 것이라고 봐도 좋아......
움직이는 건 하나의 형이고 격이야.......
내가 쓰고자 하는 곳에 잠재해 있던 나의 기를 쏟아 넣으면 몇 배의 타격을 입힐 수 있어.
모든 것은 단련에서 오는 것이야.
아무리 기가 세어도 그걸 쓰고자하는 곳이 무르고 힘이 없으면 기를 받아들이는데
무리가 오지 않겠어.
몸이란 기를 받아들이고 그걸 쓰는 데에도 편리하게 단련을 시켜야하는 법이야.
그래서 난 기를 운기 했고 그걸 쓰고자하는 곳에 힘이 실리는지 실험했을 뿐이야...
제비....몸은 가꾸기에 따른 것이야.
무릇 열심히 하면 안 되는 것이 없는 것이 사람의 인체야.........
너도 남이 너보다 잘하는 것에 감탄하고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나는 저걸 넘도록
해야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부단히 노력하면 그 결실은 반드시 오게 돼......
하하하..... 이해하겠어.]
차돌 이는 간단하게 기에 대한 나름대로의 지식을 알려줌과 더불어 자기의 운동방식과 모든 사람들의 삶의 이치와 같은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것도 알려준다.
설명은 길었지만 뜻은 간결했다.
[히히.......대장님. 사실 조금 어려운 말이라...........]
제비는 뒷머리를 글 적 거리며 송구스러워 한다.
그 모습을 본 차돌 이는 웃으며 다시 대충 뜻을 알려준다.
[그래. 무엇이든 하는 일에 신념을 가지고 최대한의 노력을 해라 이 말이야. 하하하....]
[알겠습니다.
좌우간 난 대장님을 별로로 봤는데 이젠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대장님을 따르겠으니 절 언제나 곁에 두시길 간청합니다.]
한 번의 행동과 한 번의 설법이 제비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은 것이다.
사실 제비는 종 민이 형이 대장차를 몰아라하기에 너무나 좋았다.
이유는 무엇이든 서열이 제일 높은 사람 곁에 있으면 자기보다 높은 서열을 가진 사람도 어쩌지 못하는 게 정석이라 기뻐했는데 이제 대장이 실력과 모든 것이 남을 압도할 만큼 지대하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보니 차돌이의 곁에서 진정 떨어지기 싫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한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이런. 내가 또 쓸데없는 것을 보였어. 후후......... 허지만 그것도 네 하기 나름이야...
자자......... 어서 내려가자.]
차돌 이는 앞장서서 빠른 걸음으로 내려간다.
뒤에서 따라가는 제비의 표정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싱글벙글해있다.
제비는 아까 차돌이가 몸을 날리며 그리고 나무를 타격하고 그 타격에 아름다리 나무가 부러지고 조각나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다.
내가 형님으로 모시는 분이 큰형님으로 모시는 분 그분이 모시는 분이 아닌가.
처음 볼 때 외제 승용차나 타고 다니며 돈으로 무엇이든 하는 철부지라 여겼는데 이렇게 어마어마한 실력을 숨기고 있을 줄이야.......
자기가 속해있는 세계가 힘을 우선으로 하는 집단이 아닌가.
저렇게 센 분을 곁에서 모신다는 자체가 영광이고 행운인 것이다.
절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죽음도 마다않고 충복으로 남고 싶어진 것이다.
내가 대장님을 위하여 할 일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내가 대장님의 곁에서 영원히 같이 있을 수 있는가,
오직 맹목적인 충성 말고는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입을 앙다물고 그러한 사람이 되겠다고 맹세한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보니 누구보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 더없이 보람되고 영광스러우니 기분이 좋아지고 어깨가 우쭐거려진다.
이일을 소문내어 함부로 대장님을 깔보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지........
좌우간 제비는 점점 입이 벌어져 이젠 함박웃음을 지우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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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승용차가 집안으로 들어가고 차가 정차하자 운전석에서 젊은 사람이 부리나케 나오더니 뒷좌석을 열고 엉망으로 취한 중년을 부축하며 끌어내고 있다.
안간힘을 쓰며 겨우 차에서 내렸을 때 현관으로 해서 여자들이 나와 술 취한 중년을 젊은이와 같이 부축하여 집안으로 모신다.
거실까지 젊은이가 중년을 부축하여 간신히 도달하니 술 취한 중년이 정신이 조금 드는지 자기의 몸을 부축하고 있는 손을 뿌리친다.
[놔.....놔....놔란 말이야.........나 아직 술 취하지 않았어.]
그리고는 비틀거리며 안방으로 간신히 들어간다.
모든 사람들은 멍청히 중년남자가 걸어가는 것을 바라볼 뿐이다.
[이제 됐어요, 김 기사도 가서 쉬어요,]
세련되고 멋진 중년여자가 신사를 부축하고 온 기사에게 말한다.
[예, 사모님, 안녕히 계십시오.]
기사는 두 말 않고 현관문을 밀고 나간다.
그러자 사모님이라 불리는 일화가 옆에 서 있는 여자들에게 조용히 말한다.
[아줌마도 들어가요, 미지, 너도 어서 들어가..........]
[예................]
일화는 사람들이 제각각으로 사라지자 주방으로 가서 찬물을 한 그릇 떠서는 안방으로 간다.
술이 취해 옷도 벗지 못하고 침대위에 아무렇게나 널 부러진 덕만을 부축하여 일으키고는 가지고 온 물을 마시게 한다.
덕만은 물을 마시고 상대를 쳐다본다.
그녀를 보자 안색이 순식간에 먹구름처럼 어두워진다.
[아..여보,...내가 정말 죄인이오, 진정 이렇게까지 사건이 커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소.
여보, 내가 죽일 놈이오,....흑...흑....]
덕만은 그만 울어버린다.
일화는 덕만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다시 덕만 에게 다가가 상의와 바지를 벗겨주고 침대에 눕힌다.
[내일 이야기해요, 지금 너무 취했어요.]
일화는 낮은 소리로 말해주며 몸을 일으켜 돌아 나온다.
그런데 덕만 이가 흐느끼면서 그런 일화를 가지 못하게 애원한다.
[아. 여보, 가지 마시오. 제발........]
[흥........당신에게 그런 말 할 자격이라도 있나요.
지금 심정 같으면 바로 이혼하고 싶은걸 참고 있으니 그냥 잠자코 주무시고 내일
이야기해요.]
일화는 냉정하게 방에서 나와 버린다.
등 뒤로 낮게 흐느끼는 덕만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그녀는 지금 힘든 남편을 너무 모질게 대하는 게 아닌가, 조금 씁쓸하기도 했지만 이 기회를 그녀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번일로 어쩌면 남편을 꼼작 달 삭 못하도록 만들어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더욱 편하게 하고 싶기고 했다.
그것이 차돌 이와의 사랑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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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아빠가 무슨 이야기를 해........]
미지가 조심스럽게 아빠 일을 일화에게 묻는다.
아니 그러겠는가.
아빠와 그와의 사이가 원만히 해결이 되어야 그녀도 편한 일이 아닌가.
불안한 그림자가 그녀 얼굴에 가득했다.
[아니. 아마 안 좋은 소식인가 봐........
미지야. 넌 지금 엄마가 이러는 게 밉지.......
그러나 난 아주 잘되었다고 속으로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야.
날 이해하겠니........]
일화는 남편이 저렇게 된 것을 염려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반기는 것이다.
부부의 정이 멀어지고 상대 중 누구하나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이때까지 쌓아 온 정은 한낱 물거품이 되는 것인가 보다.
일화가 그러고 있다.
솔직한 심정을 딸에게 밝힌다.
미지도 그런 엄마를 이해하고 손을 들어준다.
[그럼, 언니 엄마.........
이젠 엄마나 난 하나야......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일체란 말이야.......
난 엄마가 무슨 짓을 벌여도 엄마편이 될 수밖에 없고 아니 그럴 거야........
진심이야, 엄마.............]
미지의 마음도 벌써 차돌 이에게 가 있었다.
두 모녀는 근 30년을 살아온 부부의 정도 부녀의 정도 무시하고 욕망과 사랑에 먼저 목을 매고 있다.
지금 일화뿐만 아니라 미지도 아빠를 배척하고 배신하는데 한 몫 하는 것이다.
아빠를 돕기보단 자기의 사랑이 어찌될까 걱정하는 철면피한 짓을 하고 있다.
[그래, 고맙다..아...............우리가 어쩌다가..........]
일화는 자기를 이해해 주는 미지가 고맙기도 했지만 한줌의 양심이 마음한구석에 남아있는지 당금의 상황에 후회하기도 한다.
[아니, 엄마 후회 하는 거야..........]
미지는 조금 놀랐다.
엄마는 용감하지 않았던가.
차돌 이와의 문제도 엄마가 나서서 자기를 이해시키려고 했던 엄마인데 후회하는 것 같은 소리를 하자 의아했다
일화는 그런 미지에게 다시 차분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응.....후회도 해........하지만 미련은 없을 것 같아.
난 진실하게 내가 사랑할 남자를 만났고 그래서 못 잊어하고 그이를 향해 목숨도
도덕도 내 팽개치고 살기로 한 사람이야.......
그 와중에 네가 있었고 무척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야.
너도 그이의 여자로 보이고 우린 같은 여자라 생각하니 편해지더라고.......]
미지는 엄마를 이해할 것 같았다.
어찌 후회가 없을 수 있겠냐고.......
그래도 엄마는 자기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미지는 엄마의 손을 잡으며 용기와 앞으로의 일을 밝히고 맹세하듯 일화에게 분명하게 전한다.
[아. 엄마. 나도 그래.......우린 그이 앞에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말자.
그저 엄마나 나나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하나의 여자로 보고 살자.
그리고 다른 곳에선 엄마야,
내가 사랑하는 엄마로 있어줘야 해. 알았지 엄마..........]
미지는 차돌이 앞에서는 모든 걸 잊자고 당당하게 엄마에게 말한다.
비록 한 남자를 같이 사랑하고 살을 섞는 금수 같은 행위를 저지를망정 그걸 떠나서는 엄마로써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걸 말하고 있다.
지금 두 사람은 세상에서 다시없는 아름다운 사랑을 속삭이는 것이다.
모녀로서도 같은 여자로서 한 남자를 공유하는 동업자로서 질시하지 않고 현실에 맞춰 살아가려는 천륜을 저버린 더러운 사랑을 아름답게 승화시키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랑, 알아서도 안 되는 사랑을 공유하면서 헐뜯거나 싸우지 않고 그저 이름 없는 들꽃처럼 살다가 자취 없이 사라질 그런 사랑을 하며 서로는 더불어 사는 마음을 소중히 가꾸며 자기 앞에 펼쳐진 길을 열심히 걸어가고자 하고 있다.
[그래, 그래, 고맙다. 그렇게 하며 살자꾸나. 미지야.]
일화는 미지를 안아준다.
그리고 미지의 반듯한 이마에 입술을 찍다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입술을 내려 미지의 입술에 살며시 입술을 대고 한동안 그대로 있는 것이다.
같은 여자끼리 입맞춤이다. 그것보다 모녀의 입맞춤이다.
이일이 어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허나 모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의 입술에 만족하지 않고 혀까지 주고받는 진한 프렌치키스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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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해가 중천에 떠올라 따스한 햇빛 을 온 누리에 비추일 때 안방 침대에 앉은 남녀가 있다.
무슨 이야긴지 한참을 남자가 했고 여자는 듣고 있을 뿐이다.
남자가 이야기가 끝났는지 길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인다.
그런 덕만을 보고 일화가 냉정하게 말해준다.
[이것 봐요.....당신은 지금까지 권력과 재력이 당신의 모든 것 인 냥 그걸 위해
살았지만 여자에게는 제일 중요한 게 권력도 돈도 아닌 정조에요.
그것도 당신과 잘 아는 차돌이의 하나뿐인 누나이니 그 심정은 어떠하겠어요.
차돌 이는 이 세상에 사는 목적이 오직 누나를 위해 목숨도 모든 것을 누나를 위해
이제껏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온 아이에요.
이제 그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당신이 안겨주었는데....난 이해가 되요.
반대로 당신이 당했어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난 내가 그렇게 되었으면 차돌이 누나가 하는 것보다 더 심한 걸 요구했을 거 에요.
이제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차돌이 누나말대로 날 그렇게 하기로 했나요.
그렇지 않음 내가 그렇게 하도록 원하는 거 에요.
당신이 무얼 내게 바라던 나는 분명 말을 들어준다 했어요.
이제 말해보세요.
내가 어떻게 했으면 해요.]
일화가 무슨 생각인지 선영이의 손을 들어주는 발언을 한다.
모든 것이 남편잘못이며 그렇게 해야 풀리지 다른 방법은 없다는 그런 말로 덕만 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중시킨다.
일화의 추상같은 말에 덕만은 점점 쪼그라드는 자신을 숨길수가 없다.
다만 일화에게 매달릴 뿐이다.
[아. 여보, 나도 모르겠어.
어찌하면 좋을지 나도 모르겠어..............휴우........]
덕만은 해답이 나오지 않는지 그저 한숨만 내쉬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그러하듯이 사실상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오랜 세월동안, 아님 한평생을 꿈속에서 행복을 쫒아 다닌다.
그러나 그것을 손에 넣고 향유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설사 손에 넣었다고 하더러도 그것이 덧없는 미혹임을 깨닫게 된다.
덕만은 지금 그걸 뼈저리게 느낀다.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거늘....과한 욕망은 패망으로 이끈다는 걸 망각하고 있었다.
[참, 태평이십니다.
지금 시간이 많지 않은 걸로 아는데 그렇게 대책 없이 있어도 되는 건가요.
상대는 차돌이가 아니라 XX그룹이에요.
잘못하면 당신이나 그룹전체가 망할지도 모르는데 마냥 이러고 있다니........
문제는 내가 아니에요.....말해 봐요. 내가 어떻게 해주기를....
아님, 내가 지금 어디론가 사라져 있을까요.]
일화는 냉정했다.
그리고 아무 대책도 준비하지 않고 한숨만 쉬며 답답하게 구는 덕만을 꾸중한다.
[안 돼.... 그건 절대 안 돼....]
일화가 사라진다는 소리에 덕만은 그만 자기도 모르게 속마음을 밝히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어떻게 내가 그런 걸 시킬 수 있으며 요구할 수 있는가.
절대 그럴 수 없다 여기지만 한편으론 마누라가 나서서 해결해주길 기대하고 있기도 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유일한 돌파구가 그녀인데 그녀가 몸을 사려 어디론가 잠적한다면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마누라 말대로 이젠 차돌이 뿐 아니라 상대 그룹을 상대해야하는 무서운 사태가 일어날지 모르는데 열쇠를 쥐고 있는 마누라가 사라진다면...생각하기도 끔직했다.
허나 평생을 같이하며 어느 누구보다 정숙한 마누라가 아닌가.
그런 마누라를 선영 이에게 보내 어떤 수모를 당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설사 마누라가 참고 수모를 받아주어 일을 해결한다 해도 걱정이었다.
마누라를 어찌 얼굴 들고 보겠는가.
나로 인하여 다친 불쌍한 마누라지만 또 한편 불결한 마누라를 과연 내가 용납하고 모른 척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든다.
하여간 지금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다.
덕만은 속 시원히 말도 못하고 터져버리려는 가슴만 태우고 있다.
[호호호. 당신 참 나쁜 사람이다.
결국 마음은 내가 그렇게 해주길 바라면서 빙빙 돌리고 있다니..........
알았어요, 이제 당신 마음을....이까짓 몸 뚱 아리가 무엇이라고...
당신이 원하는 건 내가 아니고 그 잘난 돈과 명예인데....나 까짓게 아무렇게나 되어도
당신만 잘된다면 된다는 그런 사람이었군요.
두말 할 필요도 없어요.
설마 그 아가씨가 날 죽이거나 어쩌지는 못할 것이니 지금 비위를 맞춰줄 수밖에....
허지만 약속하세요.
아무리 내가 당신을 위해 무언가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이일은 어쩌면 나에게도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지도 모를 위험한 일이에요
만약 이일로 인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고...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서 나도 살아야하니 당신 주식의 반을 내 앞으로 해주신다면 그 모든 걸 서류로
입증 해 주겠다면 당장 당신 뜻에 따를게요.]
일화는 냉정하게 코웃음 치며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남편을 원망한다.
그녀는 차후의 일도 신경을 써야했다.
속으로는 선영이의 계책이 너무 황당한 것이라 갈피를 잡을 수 없었으나 지금 그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나중에 적절하게 사용하여 남편을 올가미에 매는 기회였고 그렇다면 확실히 그리고 철저하게 해두고 싶었다.
선영이 누나가 그런 요구를 했다면 필시 차돌 이와 나와의 관계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가 일부러 나에게 이런 기회를 갖도록 만들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 들었다.
하여간 그녀는 남편을 꼼작 달 삭 못하게 서서히 올가미를 조여 간다. .
[아. 여보...........휴우....]
덕만은 아무대꾸도 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 그러했고 지금의 형편은 마누라가 도와주지 않으면 끝장이 날 것 같으니 달리 할 말도 없고 그저 선처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허긴 마누라도 그런 마음이 들지가 않겠는가.......
잘못되면 자기의 일신에 쌓아올린 위신과 명예 자손 심은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나중에 이 일이 원만히 해결되면 그때 서류도 주식도 자기에게 줄 여자가 아닌가.
지금 불안하고 암담하여 저러는 것은 당연하다 여겨지면서도 그렇게 만든 자신이 부끄럽고 처를 대할 면목이 없어 그저 한숨만 내 쉬는 것이다.
[여보라는 소리도 하지마세요.
이제 당신과 같이 살아도 난 당신을 내 남편이라 여기지 않을 테니......
꼴도 보기 싫으니 나가겠어요.
나를 팔겠다면 지금 전화하시고 당신과 그룹을 망치겠다면 전화하지 마세요.
어차피 선택은 당신의 몫이니.........]
일화는 덕만의 가슴에 다시 한차례 못을 박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남편이 어떤 결정을 할 거라는 걸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요구를 내 앞에 드러내는 건 나에게 그 일을 해달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속으로는 음흉한 미소를 짓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냉기가 날릴 정도로 싸늘하게 또 야속하게
여겨 분노의 표정을 그리고 있었다.
다시 아담하고 예쁘게 꾸며진 방이다.
침대위에 일화가 다리를 뻗고 앉아있고 미지가 일화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었다.
모녀는 한손을 꼭 잡고 있었다.
일화가 조금 전의 상황을 미지에게 하나도 숨김없이 모두 말했다.
그리고 네 아빠가 어떤 결정을 내릴 것 이 다라는 것도 알고 있다며 빙그레 웃었다.
자기의 예감이 어떤 것인지도 알려주고 이런 요구에는 뭔가 우리에게 확실한 기회를 주고자 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도 말해주었다.
[엄마, 정말 그런 일이. 어떻게 그렇게 무리한 요구를....
난 믿기지가 않아. 무슨 원수지간도 아닌데....]
미지의 눈에는 연신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다.
차돌이의 누나라는 사람이 너무 무리한 요구를 서슴없이 했다는 것이 또 그것이 우리를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엄마의 말이 전혀 믿어지지 않다는 표정이다.
[그러니, 난 너와 생각을 달리 하고 싶구나.
그이가 거짓말을 싫어하잖니.. 하고 싶은 것도 마음속에 두고 참지 못하듯....
내 생각이 맞다 면 그녀는 우리 모녀와 그이와의 사이를 알고 있을 것 같아.
내말이 확실할거야.....]
일화는 머리를 약하게 저어며 뭔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조우하게 될 그이의 누나를 만나기가 부끄러워진다.
상황이 어찌되었건 모녀가 한 남자를 사랑하고 그이 앞에서 온갖 변태행위를 마다않는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그녀가 아닌가.
우리모녀를 과연 사람이라고 여겨주실까 하는 걱정도 든다.
[어머...그게 이일하고 무슨 상관인데....]
미지는 아직 어린것이다.
상황판단이 느렸고 엄마의 아리송한 말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또 엄마가 많이 괴로워해야함에도 전혀 그런 기색이 없이 오히려 미소까지 흘리고 있으니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인지 분간이 서지 않았다.
[내말을 끝까지 들어.
아마, 그이가 우리들과의 일을 누나에게 말한 듯 보여.
누나는 그런 나를 자유롭게 차돌 이와 가까이 있을 수 있도록 배려하려는듯하고...
물론 내 생각이지만 틀림없다 싶어.
나를, 아니 우리가 그이를 떠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자유롭게 해주려는 듯이 보인다
말이야...
어쩜, 그이와 누나는 우리가 상상했던 이상의 사이인줄도 모르겠어.]
일화는 천장을 보며 뭔가 생각한 것을 딸에게 말해준다.
아주 심각하게 그리고 마치 확정짓듯 마치 눈앞에서 보고 있는 듯 말하고 있다.
[어머머. 엄마도 이상해 보인다.
상상이상이라니....세상에 혈육이란 둘뿐이 없으니 그렇지....]
미지는 엄마의 행동이 더욱 이상해 보인다.
차돌 이와 누나는 어릴 때 헤어진 것으로 아는데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마의 느낌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그이가 우리모녀를 같이 가진 것도 어쩌면 마음에 부담
같은 게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어.
내 생각이 맞다 면 아마 누나는 누나가 아니라 그이의 사랑하는 여자일거야.
그이가 말했잖아.
자기 목숨과 같은 여자가 있다고 그 여자만 죽을 때까지 사랑하기로 했다고...
만일 누나가 아니고 딴 여자가 있다면 지금 누나를 죽도록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을 거야.
혈육이지만 여자가 둘 일수는 없으니.....
두고 보면 알겠지만.......]
일화는 확신에 찬듯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면 근친인데 얼굴은 어둡지 않고 도리어 밝아진다.
죄를 지은 사람이 같은 입장의 동지가 생기면 좋아한다더니 아마 차돌이가 누나와 근친의 관계를 맺고 있다면 자기들의 부끄러운 행위나 입장도 편안해질 것이고 대하기가 조금은 당당해지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분명해 보였다.
그런 관계가 아니라면 자기를 몰아치는 듯 보이지만 편하게 만들어주려는 뜻을 보일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아하 내게 찬스를 주는구나, 이 기회에 자유로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선영이의 편에서 남편을 더욱 겁주고 몰아쳤지만 의아한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 곰곰이 생각하니 이 모든 사실이 자기를 위해서 있는 일임에 분명해보였다.
그래서 밝은 미소를 짓는 것이다.
역시 생강은 늙을수록 맵다하더니 나이를 먹은 일화의 생각이 정확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엄마, 만약 엄마 말이 사실이라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미지도 아직도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다.
[호호호,,,,,더욱 잘된 일이지. 네 아빠에겐 죄송하지만........
정말 그러하다면 우리의 언니로서 정말 최선을 다해 모셔야 할 것이야.
어쩌면 그분이 우리를 지켜줄 진정한 사람이야. 호호호.........]
일화는 얼굴을 환하게 밝히며 즐겁게 웃는다.
그리고 앞으로 자기들이 해야 할 일도 미지에게 각성시키며 딸을 켜 안는다..
[설마............]
미지가 믿기지 않는다는 말투다.
[그이는 그분을 위해서 이 세상에 존재한다 했어.
그이는 우릴 버릴 수 있지만 그 언니에게 우리가 밉보이지 않으면 그이는 우리를 절대 떼어놓지 못한다는 게 내 믿음이야.
절대 내 말이 틀리지 않아.......
엄만 세상도 너보다 많이 살아왔고 많은 사람들을 보아왔어.
그이는 당당하고 거짓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일이 없어.
좋으면 좋은 데로 나쁘면 나쁜 데로 항상 솔직했어........
너도 엄마 말 명심하고 그 언니에게 무조건 잘하도록 해..........
그길 만이 평생을 그이 곁에 있을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이니.....호호호.....]
일화는 자신의 예감에 점점 자신감에 붙여간다.
그러면서 그런 일이 있어도 우린 이해하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며 딸을 이해시킨다.
우리 모녀가 그러하듯 사랑하는 정인도 오누이면서도 부부라......이상한 상상에 입가에 묘한 미소도 그리고 있다.
우리모녀가 그렇듯 그녀도 우리눈앞에서 정인의 몸 아래 헐떡이는 모습을 상상하곤 엄청나게 기대되고 기다려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분명 우리 상전으로 모셔질 분임은 확실했다.
우리가 편하고 그이 곁에 있을 수 있도록 특권을 누릴 그녀에게 잘 보여야하고 그래야함을 딸에게도 상기시키며 들떠있는 마음을 진정시킨다.
[정말. 그럼 엄마는 걱정도 안 돼..
그이를 우리가 차지하는 날이 줄어드는데.......난 그게 걱정인데........]
미지의 바람은 다른 곳에 있었는가....
아님 육체의 기쁨을 알고는 그것을 갖지 못하는 아쉬움이 더 큰 것 같았다.
정적이 한사람 늘었는데 좋아하는 엄마가 바보가 아닌가 하는 멍청한 표정을 하고....
그녀가 우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막강한 여자라는 걸 아직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호호호. 이 애가.........너도 여자가 된 모양이네....
허지만 걱정마라.
이 문제가 해결되면 그이는 이때까지 가슴을 짓누르던 고민이 없어지니.....
그리고 그분의 정력은 아마 우리 모두를 상대하고도 힘이 남아 돌 거야......호호.....
난 그이가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괴롭힐까 그것이 걱정돼.........호호호........]
일화는 미지의 걱정을 일축시킨다.
자기가 본 차돌 이는 가히 천하에 다시없는 초정력가라고....아무리 여자가 많아도 그분 하나를 감당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다.
딸의 말에 조금도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이다.
[피 이. 엄마는 걱정된다고 하면서 같이 즐기던데.....]
미지는 갑자기 엄마가 얄미운 생각이 든다.
자기는 답답하고 앞으로의 상황이 걱정되고 힘든데 엄마는 아주 걱정 없다는 표정으로 웃고 있으니 약이 올라 골려줄 심산으로 트집을 잡는다.
[맞아. 난 그이가 더 거칠게 해주길 마음으로 바라고 있는지도 몰라.
나에게 어디서 그런 음탕한 피 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이가 괴롭히고 난폭해질수록 겁은 나지만 몸은 그걸 즐기고 있으니........
아마. 엄마에게 더러운 피 가 있음이 틀림없어, 호호호.........]
일화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자기의 마음을 종잡을 수가 없다고 딸을 향해 웃어준다.
그것뿐이 아니라 더욱 심하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며 오히려 자랑하듯 크게 웃는다.
[그럼, 그이는 악마 게........]
미지는 그만 기가차서 손을 들고 만다.
[맞아, 악마야, 변태악마. 호호호....우린 그런 변태악마를 주인으로 모시는 종이고........
미지야,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래 살아도 채 백년을 못살아.
그런 보잘것없고 덧없이 사라질 사람이지만 억만년이 흘러도 나는 나 한사람이야.
그런 세상에 우리는 태어났으며 살아가며 관습과 도덕, 그리고 질서라는 거추장스런
존재 때문에 하고 싶은 것도 참고 사는 게 거의 대부분인 것이 사람이야.
그리고 누구나가 사랑을 하지..
그 사랑 또한 과연 몇 사람이 진정 죽을 때까지 사랑했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처음엔 그런 느낌도 올 수 있어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식상하고 시들해지는 게
우리 인간이고 일생이야.
난 악마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으며 그의 한마디를 법으로 아는
하인으로 살아도 몸과 마음이 너무나 편해하고 자유로운데 왜 마다하겠어.
난 후회 없는 나머지 삶을 나의 뜻대로 살고 싶어.
그것이 지금처럼 너와 날 세상이 저주하는 일을 행했듯이 이보다 더한 일을 벌여도
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사랑을 확인하기위하여 순종하며 내 마음 가는 데로
살다 죽고 싶어. 호호호....]
일하는 즐기다 못해 앞으로의 삶도 밝힌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밝게 웃고 있다.
미지도 그런 엄마를 보며 그만 웃고 만다.
그러면서 한손을 슬며시 일화의 가슴으로 가져가서 풍만한 젖가슴을 주물러본다.
[어머머. 이애는...엊저녁에도 그렇게 못살게 주무르고 깨물고 하더니 또........]
일화는 눈살을 찌푸린다.
그러나 미지는 태연하다.
도리어 손을 더욱 깊숙이 넣어 브래지어 안으로 넣어 맨살의 물컹한 젖가슴을 움켜쥔다.
[피 이....그러는 엄마는.....
난 아직 엄마의 그것이 그대로 묻어있어.
볼래.... 치마를 벗을 테니........]
미지가 다른 손으로 치마를 들추려한다.
[어..알았다, 알았어...호호호. 계집애 아직 씻지도 않았잖아.]
일화는 웃으며 두 손을 양옆으로 흔들고 만다.
[그러는 엄마는 씻었어.]
미지는 마주 대꾸한다.
그러자 일화는 못 말리겠다는 시늉을 하며 웃으며 미지를 밀친다.
[호호호....아니.........그리고 이제 그만 일어나,
엄마랑 목욕이나 하게...........]
일화가 몸을 일으킨다.
[그래요, 언니엄마. 호호호............]
둘은 조금 전의 상황도 잊었는지 마냥 신이 나는 모양이다.
모녀는 침대위에서 옷을 벗더니 발가벗은 채로 미지의 방에 달린 욕실로 들어간다.
.
..............................................................
[대장님, 집에서 큰형님이 찾는데요.]
제비가 달리는 승용차에서 차돌 이에게 전화를 건네준다.
어떻게 할 것이냐며 백미러로 쳐다보고 있다..
차돌 이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지금껏 한 번도 없던 일이다.
곰 형이 달리 큰일이 아니라면 절대 자기에게 연락하지 않을 텐데 갑자기 무슨 일인지 궁금해진다.
제비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형, 나야.............]
[,,,,,,,,,,,,,,,,,,,,,,,,,,,,,,,]
곰이 수화기 저편으로 무슨 말인가를 전해온다.
전화를 받는 차돌이의 얼굴 표정이 점점 심각하게 굳어진다.
[알았어요, 다시 전화 오면 내가 그곳으로 간다고 전해줘요.]
차돌 이는 전화를 제비에게 주며 자기가 갈 곳을 알려주고 생각에 잠긴다.
그래 만나야 할 사람이다. 어차피 그곳에서 물러나야할 것이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사장은 만나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사장이 오라는 곳이 묘하게도 언젠가 중국집 아저씨가족을 데리고 간 그 강변의 장어구이집이다.
음식점이면서도 남자가 원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야릇한 곳이었다.
사장도 이 나라에서 유명한 스타가 운영하는 곳이고....언젠가 호랑이라 불리는 여사장이 한 말이 생각난다.
언제고 이곳에 다시 들릴 거라는 말이.....묘하게도 들어맞은 꼴이었다.
그러자 문득 엄청난 수치와 괴로움을 주고 말았던 세은이가 생각났고 약간 미안한 마음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한편으론 무엇 때문에 사장이 날 만나자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갑자기 차돌이의 인상이 험악해지며 나직이 중얼거린다.
[만약 그 일을 누구에게라도 발설했다면 단연코 그를 이 세상에서 숨을 쉬도록 만들어 놓진 않을 것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 그러겠지, 세상 사람들은 . 후후후..... 웃기네.........]
그러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마음으론 수천 번도 더 죽였을 것이다.
덕만 이라는 사람을..........
그러나 참고 참으며 더 이상 묻지 않고 인연을 끝내는 것으로 하고 싶었다.
그와 관계되는 일은 모조리 지워버리고 싶었다.
사실 그동안은 덕만은 모르지만 자기가 죄를 짓고 있었으며 얼마나 겉으로는 좋은 사이였던가.
아무것도 모르는 덕만은 자기를 위하여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었다.
차돌이도 그런 덕만을 위하여 일화 말고는 항상 최선으로 모셔왔고...그 심장이 멈춰지는 사건만 없었더라면 지금도 계절 따라 과일이 익고 농촌에 남아있는 한두 개의 초가지붕처럼 또는 보도블록이 사람들의 발길로 더럽혀져도 아직도 죽은 게 아닌 인정을 만나기도 하면서 평화롭고 재미있고 그러면서도 고달프고 때때로 행복했으며 별로 불행이란 단어가 없을 사이가 아니었는가.
그런데 삶이란 얼마나 맹랑한 것인가,
마음먹기에 따라 무한히 자유로우며 단순하고 그러면서도 재미있고 외로운 것으로 시 귀를 끌 적이며 조잘거리던 그 삶이란 것이 우리를 갈라놓기 전엔 태평성세였다.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었고 아무 의미나 책임도 없었다.
일상의 자질구레한 법칙마저도 무시하고 살아온 것이다.
현실적인 어떤 욕망도 가지지 않은 채 오직 가슴속에 하나만 묻어두고 마음 가는 데로 살아온 것이다.
내 가슴의 하나의 생명체인 물방울과 나의 생명이랄 수 있는 두 개의 물방울이 만나 합쳐지길 바라며 그 어떤 것도 현실을 위해 산 것이 아니고 그 물방울이 만나는 그날을 위해 준비해온 삶이었다.
그런데 그 물방울이 만났는데 합쳐졌는데 그 과정이 너무 쓰라리고 심한 고통으로 이렇게 둘의 물방울이 심한 몸살을 만들었고 그 물방울에 상처를 준 것이 덕만 이라 그 회한도 너무나 컸던 것이다.
마음 같아선 갈 갈이 찢어 흔적조차 남기지 않겠는데 한편으론 자기를 돌보아주고 키워준 어버이 같은 사람이 아닌가.
모든 것을 잊는 것으로 마감하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있는 집도 처리하도록 했고 곰은 자기가 살 곳을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상처받고 아픈 물방울이 섞여 가느다란 실낱같은 물줄기가 되어 아무리 음습한 옹달샘의 맨 밑바닥에 숨어 흐른다 해도 자갈밭 깊숙이 드러나지 않아도 흐르듯이 흐름은 결코 아픔만이 아니고 또는 슬픔도 아니고 억울함도 아니라며 위로하고 보듬으며 영원히 같이 돌아다니며 어둠속에서나마 맘껏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다.
일화와 미지도 잊고 싶었다.
그러나 여자들은 자기가 원하는 데로 마음 가는 데로 하도록 두기로 했다.
사실 자기의 변태를 빛내주는 엄청난 도구로서 마냥 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허지만 덕만 과의 일은 이제 끝내기로 굳게 마음먹은 것이다.
그래서 이제 다시 보지도 않겠지만 더 이상 악화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차돌이의 심정이었다.
그러나 사장은 내가 그렇게 하게 두지를 못하게 할 것이다.
덕만 이가 사정을 밝힐 입장도 아니고 기업으로 엄청난 타격을 몰고 올 일을 한마디말도 없이 물러난다는 것은 명칭이라도 대외 업무이사라는 직책을 가진 자가 할 일이 아니란 생각을 했고 만나서 그만 이별이라도 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무던히도 자기를 인정하고 능력을 알아봐준 사람이 아닌가....
씁쓸한 생각이 든다.
차가 강변 장어구이 집 주차장으로 들어가자 이미 세은이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원망하는 것도 같고 반가운 것도 같지만 알 수가 없다.
웃기는 하지만 버릇으로 익힌 것일 테고 목소리는 감정이 실려 있지 않다.
[어서 오세요, 진정 오랜만에 뵙는군요.]
세은이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얼굴엔 반가움이 그득하다.
[그렇군, 자 안내하지........]
차돌이도 달리 할 말이 없는 터라 기다리는 분의 자리로 안내하라고만 한다.
[절 따라오세요.]
세은이 앞장서서 걸어간다.
세은이 앞장서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차돌 이는 뒤에 따르면서 본다.
엉덩이가 요염하게 좌우로 흔들리며 한복의 치맛자락을 나부끼게 하고 있다.
저 치마단 안 풍성한 살집속의 구멍을 내가 찢어놓듯이 희롱하며 즐겼던 과거가 생각난다.
조금뿐인 털 밭을 마구 뽑아가며 수치와 고통을 맘껏 주고 골려가며 즐겼던 옛날이 생각난다.
아직도 그 모습이 저 안에 있을 것인데......
차돌 이는 얄궂은 생각에 조그마한 소리로 웃고 만다.
그러자 세은이가 걷다말고 멈추더니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냉랭하게 쏘아붙인다.
[흥, 분명 옛날 생각하고 날 비웃고 계시는데..그렇게 좋으세요.]
[아...... 아니다. 사실 옛날 생각했지만 미안해서.....]
차돌이도 머쓱해진다.
세은이의 말대로 그날을 생각하고 자기도 모르게 비릿한 웃음소리가 나왔고 그걸 세은이가 듣고 화를 내니 급히 변명을 한다.
[흥. 나쁜 사람........아예 그날 차라리 날 죽여 버리지 않고. 날 힘들게 해.......]
세은 이는 그날일이 생각난 모양이다.
그렇게 큰놈으로 자기의 보지를 들쑤신 것도 부족해 어느 누구의 침범도 허용하지 않았던 항문도 거의 강압적으로 취하고는 음흉하게 웃던 모습을.......
그 충격으로 3일간 잘 걷지도 못하며 누구에게 그런 꼴을 당했다고 하소연도 할 수 없도록 만들은 장본인을 다시 보았으니 쾌심하고 분한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허허허. 그랬어, 그렇지만 지금은 괜찮아 보여 좋군....]
차돌 이는 능글능글 맞게 대꾸한다.
[흥...흥...지금은 더 힘든 다 말이에요. 당신 때문에...흥....한 번도 오지 않고....
그러고도 반갑다는 말은 없고 아직도 골리고 싶은 마음만 차있으니...흥..]
세은의 밑도 끝도 없는 아리송한 말에 차돌 이는 멍청해지고 만다.
그 이후에 한 번도 만난 적도 없는데 지금 더 힘든 다니...혹시 그날일로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가져보지만 어디를 봐도 세은의 몸에 큰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힘든 다고 하니 멍청해질 뿐이다.
[어라,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차돌 이는 길을 걷다말고 멈추어버린다.
[쳇........저러니 바보지. 가요,]
세은 이는 정말 차돌이가 그 뜻을 몰라 멍청해지는 것을 보고 쓴웃음을 짓고 만다.
그리고는 다시 쌩 뚱 맞은 소리로 따라오라고 말을 한다.
[허허허. 이거 원, 뭐가 뭔지.....]
차돌 이는 정말 바보가 된 듯 했다.
세은이가 하는 말의 의도를 도무지 모르겠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나 세은이의 가자는 독촉소리에 정신이 돌아온 듯 다시 세은을 따라 걷는다.
본 건물을 지나가고 별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여사장과 대담한 곳으로 세은이 안내한다.
차돌이도 별 생각 없이 세은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호랑이 여사장이 환히 웃으며 차돌 이를 맞는다.
[호호호. 안녕하세요. 더욱 멋져 보이네요....]
호랑이 여사장이 차돌이의 손을 잡는다.
[허허. 호랑이 여사장님도 그동안 잘 계시었소.]
차돌이도 호랑이 여사장이 생각 밖의 행동으로 자기를 대하자 민망해진다.
그렇지만 반갑게 마주잡은 손을 흔들어준다.
[아뇨, 당신 보고 싶어 죽을 뻔 했어요...호호호......
봐요, 내말이 맞았지요. 우린 만난다고 그랬잖아요. 호호호...]
지란[호랑이 여사장]은 호들갑스럽게 웃으며 진정 반가움을 금치 못한다.
[허허허. 정말 그렇게 되었구려....]
사람이 표정을 보면 그 사람의 진실을 어느 정도 눈치 챈다고 했다.
지금 지란은 자기를 진정으로 보고 싶어 한 것이 얼굴 가득 나타나 있었다.
차돌이도 어색했지만 반가웠고 저렇게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에 자기도 기분 좋게 웃어버린다.
[자, 손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안에 계신분이 둘만 이야기하고 싶다고 그러니 조금 후에 예쁜 색시로 시중들게
하겠어요.
괜찮다면 저도 나중에 동석하고 싶은데......호호호.........]
여사장[지란]도 나중에 같이 동석할 기회를 달라고 부탁한다.
지란은 사실 진사장이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차돌이임을 알고 속으로 뛸 듯이 좋았다.
왜 그런지는 몰랐다.
허나 차돌이의 이름을 듣는 순간 가슴이 쿵쿵 뛰고 호흡이 빨라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사실 많이 보고 싶어 했다.
아무른 인연의 고삐가 없는 사람인데.....어쩌다 한번 만난 사람인데....더군다나 나보다 한참이나 젊은 사람인데.... 그녀는 자신이 왜 그런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보아 온 사내가 어디 몇 수십 백이던가. 물론 조금씩 마음에 들기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 새파란 젊은이에게 왜 신경을 가지며 보고 싶어 하는지 자기 자신도 헤아릴 수 없었다.
오늘 그토록 보고파하던 사람이 왔다.
세은 이를 초죽음 시켜 며칠을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든 지독한 변태인 사람이다.
화를 내기보다는 반가움이 앞섰고 그 반가움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과 말투에서 쏟아지고 있다.
물이 더러우면 발을 씻고 물이 맑으면 세수를 한다.
더러우면 멸시하� 깨끗하면 존경한다는 뜻이다.
지란이가 보는 차돌 이는 더없이 맑은 물이었다.
믿음이 가면 존경하는 마음도 저절로 우러나게 되는 것이다.
지란은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여긴 사장님집이고 또 특별히 여기로 모신 모양인데 사장님을 빼놓았다가 나중에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요,
물론 전 환영합니다만.....]
차돌 이는 그러고 싶지만 일행이 만든 자리라 자기로서는 권한이 없다는 말투로 받는다.
인생이 다 그런 것이다.
자기가 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는 것이다.
인생은 놀이도 아니며 더군다나 경기는 더욱 아니다.
내가 행할 수 없는 일을 놀이로 생각하고 한다면 그건 술 취한 망나니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경기라면 승패의 가위놀림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놀이가 되던 경기가 되던 초청한분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결정할 문제지만 지금은 그럴 단계가 아니다.
그녀의 뜨거운 시선만으로 족해야 한다.
차돌 이는 그런 마음으로 그녀를 대하며 농담을 주고받고 있다.
[그럼 됐어요, 호호호.... 안에 계신 분은 벌써 허락하셨는걸요. ]
지란은 다시 소리 내어 웃으며 좋아한다.
[허허허.....그랬어요, 그럼]
차돌 이는 웃으며 고개를 약간 숙여주고는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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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으로 들어서자 진사장이 만면에 웃음을 띠우고 기다리고 있었다.
상석에 앉아 있던 진사장이 차돌이가 들어오는걸 보며 슬며시 일어나더니 차돌 이에게 다가와서 손을 내밀고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하하....어서 오시게,]
[바쁘실 텐데 괜히 저 때문에 시간을 뺏기는 거나 아닌지 송구스럽습니다.]
차돌이도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드리며 내민 손에 자기 손을 겹친다.
[하하하. 무슨 소리.
손이사가 어디 남인�, 나랑은 한솥밥을 먹는 처지인데..
정말 한번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이제 사 뜻을 이룬 것 같네그려...하하하....]
진 사장은 마주잡은 손에 다른 한손을 겹치며 정말 반갑다는 말을 거듭한다.
그 손이 마음만큼이나 따스하고 포근하다는 것을 차돌 이는 느낀다.
[저도 한번 찾아뵈어야겠다고 마음만 먹었지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사실 아무것도 하는 게 없으면서 월급이나 받아먹고 있어 면목 없었는데 이렇게나마
만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겠구나하고 부리나케 달려왔습니다.
늦게 인사 올리는 걸 용서하십시오.]
차돌 이는 찾아뵙지 못함을 사과한다.
아무튼 자기도 그 회사의 임원이며 월급을 받아먹고 있는 처지인데도 한 번도 나가지 않았으니 도리가 아니다 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인하고 용서를 빈다.
[ 하하하.......역시.......자넨 여전하구만........
하여간 오시느라 수고 많았네, 자...자....앉게나.....]
진 사장은 차돌 이를 방석위에 앉히고 자기도 자리로 가서 앉는다.
그리고 잠시 차돌 이를 쳐다보더니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차돌 이는 사장이 보여준 호감과 배려가 나쁘지는 않지만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나 자신에 몸에 밴 친절과 인사성이 혹 상대방에게도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진 사장은 자기에게 자리를 권하고 나서 담배만 피우고 있다.
차돌 이는 담배연기를 기세 좋게 내뿜는 진 사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참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거북하고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하기 전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담배를 꺼내고 또 불을 붙이고 그리고 한 모금 길게 연기를 내뿜기까지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대화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지 않는가.
마치 사형수들이 죽기 전에 담배한대의 유예를 얻어 죽음에 대한 무장을 할 수 있으며 흙탕물에 뛰어들기 전에도 담배한대의 시간이면 그 흙탕물을 조금이라도 덜 뒤집어쓸 요령을 터득하기 위함이 아닌가...
차돌 이는 자기도 담배를 배워볼까도 생각이 든다.
사실 차돌 이는 담배를 피워보지 못한 탓인지 아무리 어렵고 곤란한 문제가 당면해도 언제나 정면 돌파로 승부를 걸지 않았던가.
조금이라도 일을 결행하기 전에 담배한대피울시간만큼 사건을 생각하고 방책을 모색했다면 보다 수월히 일을 진행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들은 것이다.
차돌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진사장이 담배를 피우는 속도가 너무나 느렸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진 사장은 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입을 연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부회장님과 무슨 일이 있었나.]
진사장이 얼굴에 심각한 표정을 드러낸다.
[왜 그렇게 물어보시는 겁니까.............]
차돌 이는 진사장이 터놓고 물어오자 일체의 잡담은 생략하고 직설적으로 되묻는다.
내가 궁금한 것인가, 아님 회사일로 찾은 것인지.....
아니면 자기와 덕만의 일을 알고 화해를 주선하러 온 것인지...알고 싶었다.
[허어. 그게.....이거 어떻게 말해야 하나......
사실 난 뭐가 뭔지 몰라서 그래.
부회장님이 내게 전화로 묻더군.
자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고 하며 자네 없이 지금 합작회사가 유지될 수
있는지 물어오더군. 심각해 보이더라고.....흠....
심지어 나더러 자네를 잡아둘 묘책이 없겠는가 하며 얼토당토 안 되는 소리를 하기에
자네와 혹시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모처럼 술자리도 할 겸
겸사겸사 묻는 것이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는가, 부회장님은 온통 자네이야기로 시작해서 자네로 끝내더군.
모든 일정도 취소하고 반 칩거상태로 집에서 두문불출이니 도대체 영문을 알아야
대책을 세울 것 아닌가..
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네...
자넨 우리 회사의 지분이 지금 17-8프로정도이며 막강한 최대주주로 있는 사람이야.
자넨 우리 회사와 끊을 수 없는 연관이 있는 사람인데 부회장님의 말씀이 하도
엉뚱하고 별안간이라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네.
하여 자네를 만나보고도 싶었고 대체 무슨 이유인지 알고 싶어 그러네...
자네가 그 이유를 말해줄 수 없겠나..]
진 사장은 뭔가 차돌 이와 문제가 있다는 것만 예견했을 뿐 내용은 모르고 있었다.
진 사장은 만약 차돌 이와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다면 빨리 푸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했고 또한 회사의 우두머?� 자리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말해주므로 그 사유를 알고 싶었고 불상사가 있었다면 좋게 매듭을 풀어보고자 나선 것이다.
그만큼 차돌 이를 회사에서 중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장님이 말씀하신대로 저와 부회장님 사이에 좋지 못한 불상사가 있었습니다.
영원히 서로를 대면하면 안 되는 그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더 이상은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부회장님이 아니라 그 사실을 아는 누구라도 전 이 세상에 살려놓지 않기로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부회장님을 그냥 잊기로 한 것은 내게 한때나마 많은 도움과 지금의 나로
성장시켜준 분이라 여기기에 이 정도에서 인연을 끊고자 한 것입니다.
마침 사장님이 절 보자 하시기에 이 정도는 알려드려야 도리일 것 같고 회사에서도
제 이름 석자를 영원히 지워달라는 부탁을 드리고자 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전 이 시간부터 회사사람도 아니란 걸 알려드리려고 온 것입니다.
그러니 나와 부회장님과의 사건을 더 이상 알려하지 마십시오.
만약 사장님이 그때의 상황을 알게 된다면 전 그러고 싶지 않지만 사장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무례하고 당돌한 겁 없는 소리를 지껄인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리며 부디 제 말을 흘려
듣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차돌이의 처음 음성은 낮게 시작되었는데 끝날 즈음에는 제법 소리가 높아있었다.
그만큼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분개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눈에서는 알지 못할 무서운 안광이 토출되어 보는 사람을 섬뜩하게 만들고 있었다.
진사장도 산전수전 겪은 사람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차돌이가 저 정도로 분개하고 사건을 숨기려는 고뇌와 또한 사람을 협박하며 무서운 살기를 내뿜는 것을 보고는 상상하지도 못할 엄청난 사건이 있음을 눈치 채고 다시 담배를 문다.
차돌이의 눈빛이 안정으로 돌아오는 것을 본 진 사장은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조용하게 말한다.
[알겠네, 그렇게 심각한 일이.......다시는 알려하지 않겠네.
하지만 이 말만은 해야 되겠네....
자네도 이 나라 사람이고 지금 이 나라의 경제 상태를 알 것이네.
자네가 어떤 결단을 내리던 그건 자네몫이지만 난 감히 자네에게 충고하고 싶네.
자네가 회사를 떠나면 미국 측의 오너는 계약대로 이 회사에서 손을 뗄 것이 분명하네.
지금 이 회사는 그룹 내 유일하게 흑자를 보고 있네. 그것도 아주 크게 말이야..
그 모든 것은 미국 측의 오너가 미주시장을 석권하고 있기 때문이네.
미국 측이 마땅한 상대가 없어 우리 회사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네.
자네 한사람의 고집과 투지 그리고 나라사랑하는 마음 같은 것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네..
그런 자네가 이 회사를 떠난다면 그룹의 생사여부는 그냥 두더라도 그 많은 인력들이
거리의 실업자로 나서야 될 것이네....
그 여파로 그룹 내 여러 개의 회사와 협력업체들이 도산의 위기를 맞을 것이네.
그 숫자는 실로 엄청나지 않겠는가.
다른 말은 않겠네.
부회장님과 어떤 원수가 졌건 내가 풀 수는 없을 것이네.
자네 한사람을 편히 하기보다는 넓게 보고 우리 국가와 국민들의 삶을 자네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차버리지 마라는 말이네....]
진사장의 말은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진정 차돌 이를 위하고 있었다.
아니 차돌이 뿐 아니라 이 나라도 국민들도 걱정하고 있었다.
개인이 하는 일에 타인이 가타부타 잔소리를 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엔 분명 선악이 따라붙게 마련이다.
일이 잘되면 선이고 잘못되면 악인 것은 아니다.
잘하자고 한일이 잘못될 수 있고 처음부터 아니다 라고 생각한일이 잘될 수도 있다.
선악의 갈림길에 서면 인간의 분별력은 흐려진다.
악이 선으로 돌아갈 수 있고 선이 악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고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 했다.
모든 허물을 감싸주고 덮어주는 미덕을 발휘하여 불편한 서로를 이해하고 다듬어 예전처럼 돌아가 주길 바랐다.
[..............................]
차돌 이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진사장이 이 정도로 모두를 걱정하며 진정으로 말을 하고 나올 줄은 진정 몰랐다.
차돌 이는 너무나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내온 사람이다.
누구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도와주고자 애쓰려 한 사람이다.
물론 여자에 집착하는 독식은 강했지만 그것과는 별개 인 냥 남이 힘들어 하는 것을 잘 보지 못하는 성격도 있었다.
진사장이 그런 자기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대꾸할 답도 없었고 해서 막연하게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그런 차돌 이를 보고 진 사장은 살 짜기 미소를 짓는다.
[그냥 지금처럼 해주면 되네.......
난 자네를 믿네,
언젠가 모든 것을 툴툴 털고 말 것이란 걸.....]
진 사장은 그냥 지금처럼 해주길 바라는 눈치다.
차돌이가 성급하게 결단 을 내려 회사에서 손을 떼 미국 측의 오너에게 빌미를 잡혀 국가에도 국민에게도 모두가 이득을 주는 이 사업에 손을 떼서는 안 된다는 경고성이 담긴 말로 차돌이의 마음을 이나마 잡으려고 하고 있다.
[.................................]
차돌 이는 난감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잊고자했는데 그럴 수 있다 여겼는데 끊어지지 않는 실이 여기에 있어 보이지 않는 발목을 잡히게, 될 줄이야...
진 사장의 말은 자기도 생각하고 있었지만 모든 고리를 끊겠다고 다짐하여 결정한일이 누구도 아닌 불쌍한 국민들을 빌미로 날 다시 감옥으로 몰고 있으니 기가 찰 일인 것이다.
구구절절 옳은 말만하는 진 사장을 차돌 이는 눈을 뜨고 바라본다.
살며시 웃고 있는 사장의 표정에서 사심이 아닌 진실을 읽을 수 있었다.
허긴 덕만을 원망하고 미워하여 내가 모든 고리를 끊는 것은 모든 이에게 적절치 못한 일이 된다는 것을 차돌 이는 안다.
너 때문에 내가 이럴 수밖에 없다. 이런 것은 남의 빈축만 살뿐 일말의 동정심도 유발하지 못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차돌이다. 이것도 나의 운명일진데 나는 남의 일생을 가로채고 살면서 남은 나에게 잘하라는 것은 모순일수도 있다.
남의 탓만 하기에는 나의 인생도 그렇게 밝게 살아오지는 않았지 않는가........
후회와 회환이 가슴을 친다.
그런 자기의 모습을 보고 진 사장은 웃고 있다.
그리고 그런 차돌이의 마음을 읽었는지 분위기를 바꾼다.
[허허허............ 모처럼 자네랑 한잔하려했는데 그만 분위기가.....
내가 괜히 이상한 이야기로 자네심기를 불편하게 했어...........허허허.......
저......이봐요, 이제 술상 좀 들이지.]
진 사장은 더 이상 차돌 이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지금 표정을 보면 엄청 힘들어하는 것이 역력히 드러나 있다.
더 그를 몰아세워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싶었다.
그런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할 이야기는 했고 차돌이도 알아들었을 것이고 나머지는 두 사람이 처리해야 할 일이다.
다만 좋아지기를 바라는 노파심에서 했던 말이지만 상황의 심각성은 너무 깊었고 매듭은 맨 사람이 풀듯 이제 자기가 할 일은 다했다고 여겼다.
그냥 술이나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종업원을 불렀고 준비된 상을 들이라 했다.
진사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이 커다란 상에 진수성찬으로 차린 음식들이 들어와 두 사람 가운데에 놓인다.
상을 들고 온 아가씨들이 물러나자 여사장인 지란이 들어와 차돌이 옆에 앉는다.
[호호호, 말씀이 너무 길었어요,
전 기다리다 죽는 줄 알았어요,]
지란이 진 사장을 보며 예쁘게 웃어주며 호들갑을 피운다.
[이런...하하하.....천하의 호랑이 여사장님이 우리 손 이사에게 반해 있었다니....그래서
아직 손님들에게 내준 적이 없는 여사장님 방까지 제공해주고 참으로 영광 입니다.
하하하....]
진사장이 애간장이 탄 듯 말하는 지란을 놀려주며 다른 한편으로 특별한 좌석을 마련해준데 대해 감사를 드린다.
[어머.....진 사장님....사람을 그렇게 무안 줘도 되는 겁니까......호호호....]
지란은 부인하지 않고 웃음으로 얼버무린다.
[하하하.......그럼 내말이 거짓말이란 것이오.]
진사장이 턱도 없다는 듯이 지란을 보고 반문한다.
[호호...그건 아니지만......]
지란도 역시 걸물이었다.
호랑이답게 진심을 숨기지 않고 말해버린다.
그렇지만 약간은 부끄러운지 끝말을 다하지 못하고 만다.
[하하하....역시.....
이보시게, 손 이사.
이분 여사장님이 자네에게 반한듯하네 그려.....하하하.....]
진 사장은 다시 호쾌하게 웃는다.
자기의 말이 맞았음에 우쭐한 기분이 들었고 젊은 차돌이가 부럽기도 하여 차돌 이를 보며 놀리듯 하는 것이다.
[아닙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차돌 이는 그제 서야 입을 열었다.
진사장이 말한 것은 나중에 천천히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진사장이 사람을 부끄럽게 하자 더 이상 그냥 있으면 곤란할 지경까지 갈 것 같아 빨리 수습하고자 말문을 열은 것이다.
[자, 두 분 잔 드세요, 제가 한잔 올리겠습니다.]
지란이 술병을 들고 두 사람을 재촉한다.
두 사람은 지란에게 차례로 술을 받아 사위에 놓는다.
그리고 진사장이 술병을 들더니 호기롭게 말한다.
[자, 사장님도 한잔 받으시오.]
[어머....호호호....대낮부터 여자에게 술을 권하다니......
좋아요, 나도 보고 싶은 사람을 보았으니 한잔 해야겠어요.]
지란이 술을 받자 진 사장은 술잔을 들더니 건배를 제의 한다.
차돌이도 할 수없이 술잔을 들자 진사장이 말을 잇는다.
[오늘의 만남을 축복하고 크게는 이 나라와 국민들에게 평안과 그리고 우리 모두의
우정이 영원히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건배.....]
진사장이 나라와 국민을 들먹거리는 것은 차돌이가 절대 회사를 떠나면 안 된다는 묵시적 암시가 들어있었다.
[건배......]
차돌 이와 지란도 따라 건배를 외치며 잔을 부딪치고는 입으로 가져가 단숨에 술을 털어 넣는다.
모두는 빈 잔을 자기 앞에 내려놓는다.
진 사장은 마냥 기분이 좋은 것인지 호기가 나는 것인지 지란을 향해 말한다.
[사장님, 이거 자꾸 호랑이 사장님께 술 따라달라면 언제 물려 죽을지 모르니 혹시
준비된 색시가 있으면 넣어주시오,
난 오래 살고 싶어서 말이오...하하하.......]
진 사장은 넌더리를 치며 아가씨를 부른다.
아마 지란이 차돌이만 경계하자 시기심이 일어난 것처럼 하는 행동이다.
[호호호.........그럼 당연히 준비되어 있지요.
그런데 내가 언제 사람을 물기라도 했나요.
물론 짐승을 보면 물었지만.....호호호......
자, 들어들 와라......호호호.....]
지란은 진 사장을 보며 역시 농으로 대꾸해주곤 사람을 부른다.
그 농속에 야무진 뼈가 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진 사장은 오그라드는 모습을 보여주며 웃어버린다.
[알았소이다. 이거 원.....하하하.....]
[호호호.............]
미끈하고 잘생긴 이제 갓 이십을 넘긴 듯, 한 아가씨둘이 들어온다.
그런데 한복이 아니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다.
이집엔 모든 아가씨들이 한복을 입고 접대하는 줄만 알았던 차돌이가 이상해서 아가씨의 얼굴을 쳐다보곤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딘지 알고 있던 여자 같았기 때문이다.
지란이 웃으며 아가씨들에게 말한다.
[호호호.....예쁘고 귀여운 아이들이지요.
인사드려라.]
[최 진희입니다.]
[오연수라고 합니다.]
곱게 큰 절로 인사하는 아가씨다.
잘 빠진 다리를 거침없이 보이며 큰절로 인사를 한다.
뽀얀 살갗을 감추는 스타킹은 벗어 버렸는지 맨살을 보이며 시리도록 눈부신 자태로 인사를 하고는 두 사람 곁으로 하나씩 다가와 앉는다.
진 사장은 입이 함지박하게 변하며 두 아가씨에게 묻는다.
[이게 누구야.......무슨 프로인가에서 연기하던 아가씨들 아냐......이런 호강이 ....하하하... 역시 호랑이 사장님 가까이 있으니 이런 호강도 받아봅니다. 하하하..]
진사장이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다.
허긴 언제 이런 아가씨에게 술시중을 받아볼 수가 있겠는가.
만일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지금처럼 이런 분위기가 아닐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일까........
진 사장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한껏 호기를 부린다.
[호호호. 왜 아니겠어요,
요즘 엄청난 인기를 받고 있는 아이들이지요.
모처럼 제게 놀러왔다가 내가 부탁했지요.
마음에 들은듯하니 기분이 좋군요. 많이 예뻐해 주세요.]
[하하하...그러 다 마다요, 내 생전에 이런 호강은 처음인데...하하하......]
진 사장은 계속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얼굴에 온통 함박웃음과 늙었다는 것이 안타까운지 손까지 약간 떨고 있었다.
[호호호.....사장님도....우린 아무것도 모르니 잘 살펴주세요.]
진 사장 옆에 앉은 진희라는 여자가 애교를 피우며 진 사장 잔에 술을 채워준다.
가느다란 긴 손가락에 반지를 낀 두 손으로 공손하게 술을 따른다.
[오냐,..오냐...하하하....
너도 한잔 하려무나...하하하.....]
진사장도 진희에게 술을 부어주며 기쁨을 전하고 있다.
차돌 이는 그제 서야 여자들의 정체를 알았다.
TV연기자였다.
지란이가 여배우니 자연히 그런 계통의 사람을 알고 있을 것이고 그래서 지란의 부탁으로 이 자리에 들어왔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여자들의 차림새가 너무나 야해 연기자가 아니었다면 고급 콜걸로 오해하기 십상인 그런 아찔한 옷차림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속이 뒤틀려지기 시작한다.
무엇이 아쉬워 이런 자리에 아무리 이집 여사장과의 친분이 두텁다하더라도 여자로서 자존심은 지켜야할 것인데도 그것마저 팽개치고 이런 자리에 나와 웃음을 팔고 있다니...
소위 공인이라는 연기자가....돈이 아쉬운 건가, 아니면 여사장에게 뭔가 책을 잡혀서인가.
그렇지 않으면 본래 색을 밝혀 드러내놓고 섹스를 할 수 없어 비밀스런 이런 자리에서 만난 사람과 재미를 보고 돈도 버는 그런 추한 여자였단 말인가.
그냥 지근지근 밟아 뭉개버리고 싶은 심정을 눌러 참는다.
그것은 지금 진사장이 한참 들떠 있는지라 분위기를 허 트려 트리기 싫어 그냥 기분 좋은 듯 웃고 있는 것이다.
[얘들아, 절대 손님에게 실수하면 안 돼....
나에겐 둘도 없는 귀빈이니.....호호호........]
진사장이 다시 한 번 다짐을 아가씨들에게 해준다.
[알았어요..언니.....]
...............................................
주거니 받거니 근 한 시간을 먹고 마셨을 것이다.
차돌 이는 웃고 떠들 기분은 아니었지만 자기를 초대한 진사장의 호쾌한 기분을 망가뜨리기 싫어 억지로 자리를 하며 마냥 즐거운 듯 웃어주지만 그만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고 만다.
더 이상 마시기가 무리인 듯 진사장이 일어나 양복 상의를 찾아 걸쳐 입는다.
이제 그만 일어나야 했고 더 이상 술을 마시기도 무엇하고 아가씨랑 노닥거릴 수도 없었다.
회사에 다른 업무도 있어 더 이상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다.
차돌이도 그때서야 살았다는 듯이 같이 일어나 상의를 찾는다.
그러나 지란이 옷을 빼앗는다.
아마 차돌 이와 뭔가의 용무가 남아있듯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웃고 있다.
진 사장은 그런 모습을 보더니 다시 큰소리로 웃는다.
[하하하...손 이사. 그냥 조금 더 있게...
저 호랑이 마나님께서 자네에게 할 말이 있나보이...
내말이 맞소. 사장님.....하하하.........]
진 사장은 차돌이가 자기를 배웅하려는 것을 만류한다.
[호호호....역시....생강은 늙을수록 맵다하더니 사장님이야말로 대단한 분입니다. 호호호.]
지란도 그런 진사장의 농 섞인 말에 전적으로 수긍하며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사실 그러했다.
그냥 이렇게 차돌 이를 보내기가 싫었다.
또 언제 만난단 말인가.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하하하. 알았소.
그럼 난 이만 작별을 고해야겠소,
정말 오늘 좋은 접대를 받았소이다.
자넨 더 놀다 가시게 하하하.....]
진 사장은 모두에게 작별을 고하고 방을 나간다.
[안녕히 가십시오.]
[안녕히 가세요. 사장님.......]
여자들이 방 앞에서 작별의 인사를 드린다.
아마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해서 더 이상은 마중하기가 곤란해서다.
진 사장은 그것을 아는지 마음 좋은 아저씨마냥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세은이가 웃으며 나타나더니 진 사장을 모시고 나간다.
그때서야 차돌이도 진시장의 등에 대고 작별인사를 고한다.
[살펴 가십시오.]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드니 진 사장은 벌써 저만치 가고 있었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머리위로 손을 흔들고 있다.
차돌이도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없었다.
손을 내밀어 지란이 가지고 있는 옷을 달라는 포즈를 취한다.
그러나 그런 여유를 주지 않는 지란이었다.
손을 내민 한쪽 팔에 가느다란 손이 걸쳐지더니 자기를 다시 방안으로 끌어들인다.
[자, 어서 들어가요......]
지란이 막무가내로 끌고 들어가더니 차돌 이를 상석에 앉히고 만다.
그리고 사람을 부르더니 상을 물리게 한다.
진희와 연수는 두 사람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볼 뿐 말이 없다.
물린 상이 나가자마자 금 새 다른 상이 들어온다.
아까완 대조할 순 없지만 그래도 성찬이다.
상이 내려지자마자 지란이 차돌이의 잔에 술을 붓고는 자기의 잔에도 채운다.
[2년 가까이 되지요. 우리.......]
지란이 알쏭달쏭한 말로 차돌 이에게 묻는다.
서로가 처음만나 헤어지고 다시 만난 지금까지 세월이다.
[아마 그럴 것이오. 그리고 아가씨들도 앉으라, 그러시오.
저렇게 서 있으니 영 민망하군요.]
차돌 이는 그럴 것이라는 대답을 해주고 멍청히 서있는 아가씨들을 쳐다본다.
[물리치면 안 될까요. 난 둘이 있고 싶은데....]
지란이 속마음을 드러낸다.
그건 아가씨가 있으면 자기의 본심을 이야기하기가 곤란하다는 말일 것이다.
[아니오. 그럴 필요가, 난 사장과 별 할 말이 없으니 곧 갈 것이오.
그러니 대체 날 잡은 이유가 뭔지 빨리 말이나 해 주시구려.]
차돌 이는 거부한다.
차돌 이는 지란 이와 둘이서 속닥거릴 아무른 이유나 할 이야기도 없었고 괜히 다른 사람의 눈에 이상하게 비쳐 보이는 것이 싫었다.
지랑은 차돌이가 자기와 둘이 있는 걸 부담스러워 하자 할 수없이 눈짓으로 아가씨를 앉게 한다.
아가씨는 자리에 앉아마자 조금 수다스러운 진희가 궁금증을 참지 못해 한마디 던지고 만다.
[어머...누구 시 길래 언니가 저렇게 안달하실까.....
난 언니가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건 진정 처음이야...호호호....]
진희가 지란을 놀리고 있다.
이정도로 이야기를 주紫事� 사이라면 보통 친한 사이가 아니란 걸 말해주지만 지란은 진희의 수다에 눈을 부라리며 분기를 나타낸다.
[계집애, 가만있지 못해....]
지란은 자기를 놀리고 있는 진희를 야단치고는 고개를 돌려 차돌 이를 본다.
조금 전 진희를 야단칠 때 무서운 눈빛과는 달리 언제 바뀌었는지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부드럽게 변해있다.
그 눈에 눈웃음까지 가득 담고서....
그리고 가녀린 손에 길 다란 잔을 잡으며 앞으로 내민다.
진정 빠른 표정변화다.
[일단 같이 재회의 건배나 해요.]
다시 두 사람은 건배를 하고 잔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그 잔을 채운다.
그리고 다시 건배를 하자는 지란의 강요에 건배를 세 번이나 하고서야 안주를 먹을 수 있었다.
차돌 이는 안주를 입에 머금고 지란을 쳐다본다.
[이제 술은 되었으니 날 잡은 이유나 들어봅시다.]
차돌이가 먼저 자기를 남게 한 용건을 묻는다.
[알았어요, 단 흉은 보지마세요.
전, 숨기지 않고 전부 말해드릴 테니....]
지란이 뜸을 들인다.
[알았으니 말해보시오.]
차돌 이는 갑갑했다.
지란이 같은 호랑이 여사장이 어린 아가씨가 있다고 할 말을 못하는 졸장부가 아니란 걸아는 그가 이렇게 뜸을 들이자 갑갑증을 느끼며 물어본다.
[당신을 사모하는 것 같아요.]
한참을 망설이다 내 놓은 뜬금없는 지란의 말이다.
지란이로서는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말이다.
새파란 젊은 후배가 좌석에 같이 동석해 있는 자리에서 한번만난 사이이며 자기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어린 사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어찌 간단한 일이겠는가.
그러나 지란은 차라리 솔직해지자. 빙빙 돌려 이야기한다고 좋을 것도 없다.
이런 화끈한 남자라면 차라리 솔직하게 고백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만다.
창밖 하늘에 비추이는 햇살이 그녀의 창백하고 불안한 얼굴에 비추인다.
부드러운 미소로 입 꼬리를 말아 올리고 있지만 그녀의 양미간은 불안에 구겨져 있었다.
차돌 이는 어안이 벙벙했다.
여자가 그것도 세상에서 주목받는 여자가 한번만난 남자에게 반했다는 말인데 그 당사자가 자기라는 게 우습기도 하고 기가 찬다.
멍청한 표정이 되어 한참을 지란을 쳐다보던 차돌 이는 지금 지란이 하기 힘든 엄청난 말을 해놓고 처분을 기다리는 도살장의 소처럼 불안해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저 여자는 지금 진실을 말했다는 걸 느낀다.
나에게 무엇이 있어.....
차돌이도 숙연해진다.
어떤 말로 지금난관을 헤쳐 나가야 할지 막막해진다.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여자를 어떻게 지켜줘야 할지 몰랐다.
허나 말도 안 되는 것은 빨리 제자리로 돌려야한다고 생각하고 지란의 애소를 물리친다.
[허허허.....이런.......허허...장난도...........정말 말도 안 되오.
난 당신과 맞는 게 없는 사람이오.
나보다 잘생기고 멋진 남자들 천하에 널린 곳이 이놈의 세상이오.
날 놀리는 건 이정도로 하고 맙시다.
설령 당신이 그렇다 해도 내겐 당신이 아니오.
왜 내가 젊은 여자들을 놓아두고 당신 같은 사람들과 어울리겠소.
그러니 지금 했던 말은 없던 걸로 합시다.]
차돌 이는 그녀를 쳐다보며 웃고 만다.
다짜고짜 꺼낸 한마디가 나를 사랑한다니........어찌 사람이 한번보고 사모의 정을 느낄 수가 있단 말이야....
아무리 젊은 사람의 냄새가 그립고 몸이 달아서 장난을 쳐도 유분수지 그리고 할 말이 따로 있지 어찌 대 여배우이고 만인의 존경을 받는 이 여자가 나를 보고 사랑한다니 정말 어이가 없어 어리벙벙했다.
[아무래도 좋아요.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이날까지 살면서 어느 남자도 사랑해 본적은 없었어요.
물론 남자와 살았지만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의 사이에 자식은 필요 없다 여겼기에
이 나이가 되도록 자식도 낳아보지 못한 여자입니다.
그런데 당신을 첫눈에 보고 이 남자가 내 남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내가 늙고 초라하지만 내 가슴속의 열정도 늙고 초라해지진 않았어요.
그래요, 당신은 젊고 했으니 마땅히 젊은 여자가 좋겠지요.
난 많은걸 바라지 않아요.
그냥 당신의 숨은 여자로 있고 싶어요.
늙어 당신의 비위를 맞춰주지 못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남자를 위해 나머지
인생을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제발 그렇게라도 있게 해 주세요.]
그녀는 다시 솔직한 심정을 밝히며 그의 여자가 되길 소원한다.
그리고 말이 끝나갈 즈음에는 감정을 주체 못 한 울음이 섞여있었다.
듣고 있던 두 아가씨들은 입을 한없이 벌리고 놀라 아연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는 모습이다.
우리 언니가 어떤 여자인가.
방송국 사장도 영화 제작자도 모두가 한발 물러서는 대장부 같은 여걸인 언니가 한없이 약하고 애처로운 몸짓으로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니 천지개벽한일보다 더 심한 타격에 멍청해지고 기절할 듯 놀란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차돌 이는 도저히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그리고 말없이 방을 나가 버린다.
[내일 모시겠어요.
제발 제 청을 거절하지 말아 주세요.]
뒤에서 지란이 울먹이며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랬다.
지란이 누구이든가.
차돌이가 빈틈을 보일 때 재빨리 휴대폰전화번호를 알아낸 것이다.
그래서 내일 모시겠다고 한 것이다.
차돌 이는 말없이 혼자 주차장으로 향한다.
주차장으로 향하며 차돌 이는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
지금 지란이 자기에게 하는 말이.... 그 말을 하는 저의가 진실인 것 같아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속으로 많이 놀라기도 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용기에........
사람에겐 저마다 가야할 길이 있고 지켜야 할 자리가 있는 법인데.......
도대체 지란이 가고 지켜야 할 자리가 어디고 어디이기에..........
누구나 자기가 가고 지켜야할 자리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해야 얻어질까말까 한 세상에
그나마도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없는 세상 아닌가.
과연 지란이가 나에게서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농담이라기엔 너무나 진솔하지 않는가..........
진실로 나를 마음에 두고 늙었어도 그런 용기를 가졌다면 그 용기에 찬사라도 보내줄
정도로 아름다운 용기가 아니겠는가.
도무지 뭐가 뭔지 생각에 정리가 되지 않는다.
이때 그의 생각을 깨는 뾰족한 여인의 소리가 들린다.
[이봐요.]
차돌 이는 누군가 자기를 부르는 듯하자 고개를 돌린다.
세은이었다.
차돌 이는 세은을 쳐다본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말이 하고 싶지 않아 쳐다만 보고 있다.
[제게는 간다는 말도 하지 않고 가버릴 참이었어요.
정말 야속한 사람이네...]
세은이 표독한 눈을 하고 외친다.
[아....미안하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잘 있으시오.]
차돌 이는 그제 서야 사과의 말과 함께 간다는 인사를 한다.
[흥.....다른 남자를 눈에도 보이지 않게 하고선.....
하여간 오늘은 물러나겠어요.
하지만 당신만 보이도록 만든 이 몸 뚱 아리는 반드시 책임지셔야 해요. 흥.....]
세은은 눈 꼬리를 말고 차돌 이를 쳐다본다.
이제 이 몸뚱이를 당신에게 길들여졌으니 당신이 책임지라고 앙칼지게 쏘아붙인다.
차돌 이는 환장할 지경이었다.
이거야 말로 엎친 데 덮친 꼴이 아닌가.
막다른 골목에서는 생쥐도 고양이를 무는 법이라 했다.
그래서 고초를 받는 자를 비웃거나 흉잡지 마라했다.
약한 자를 비웃거나 얕잡아보다가 큰코다치는 사람 부지기수가 아닌가...
사나운 짐승이 따로 없다.
무엇이든 심하게 다루면 사나워지는 법이다.
남을 험담하거나 흉보기는 자기 혀에 가시를 돋게 한다 했는데...혀에 돋은 가시는 남을 찌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찌르게 되는 법이다.
남의 약점이나 아픈 곳을 들추어 괴롭히는 것은 흉터자국에 상처를 내는 짓이거늘...
그때의 상처가 얼마나 심했으면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법인데....
모든 것은 내가 저지른 일, 내가 책임져야할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예전이면 모르되 지금은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
이제 사 행복을 찾았는데 다시는 더 이상 여자를 두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왜 갑자기 하나도 아닌 두 사람이 목숨을 걸다시피 달려든다 말인가...
누나를 어찌 대한단 말인가, 속이 갑갑해온다.
누나를 만나 모든 여자들을 정리하고 조용히 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생각지도 않은 여자들이 다가오고 있으니 행인지 불행인지....
여느 남자라면 좋아서 죽을 지경이겠지만 지금 차돌이의 입장에선 누나볼 면목이 없어지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차에 오니 제비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제비가 열어주는 차문으로 들어가 시트에 몸을 가라앉힌다.
제비는 운전석으로 돌아가 차를 몰아 서서히 집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대장에게 행선지를 물어보려하다가 대장이 심각하게 있는 것을 보고 차의 속도를 천천히 하며 운전을 하고 가는 것이다.
차돌 이는 창밖으로 보이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강 저 편에 검은 구름이 잔뜩 몰려오고 있다.
강을 덮는 구름들이 점점 넓어지면서 기분 나쁜 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올적에 간혹 보이던 낚시꾼들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아마 소나기가 쏟아지고 번개가 칠 것이 두려워 어디론가 몸을 피한 듯 강가에는 이상한 정적만이 감도는 듯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강둑에 심어진 나무들이 바람을 맞고 휘청거리며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내면서 흐느적거린다.
곧 잔인하고 소름끼치는 살인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은 긴장이 몰려온다.
하늘은 속이지 않았다.
차돌이의 마음만큼이나 어두운 구름들이 순식간에 몰려와 강가를 어둡게 하더니 금방 주위가 캄캄해지고 억수같은 비가 내리친다.
변동 많은 여름날의 날씨를 한껏 보여주는 하늘의 처사이다.
[이봐, 제비....]
[옛, 대장님....]
차돌이가 자기를 부르자 제비는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한다.
[내말 명심하고 들어.
이젠 제비는 나의 여러 면을 누구보다 많이 보고 알게 될 거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자넨 내가 허락하지 않는 것은 보고도 봉사고 들어도 귀머거리가
되어야 한다는 걸 명심해.
내 말을 어길 시에는 제비는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없는 몸 일거야.
이 말은 전에도 했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하는거야.
지킬 수 있겠어.]
차돌 이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제비가 알고 있는 말을 재삼 강조시킨다.
아마 오늘 같은 일이 더러 생겨 혹 제비가 입이라도 잘못 놀려 자기 뿐 만아니라 자기와 같이 있던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다 여기고 재삼 당부하는 것이다.
[옛, 대장님.
대장님이 저를 충성스런 부하로 보고 어려운 일을 맡겨주시는데 어찌 내가 대장님의
한마디를 허술히 할 수 있습니까.
만약 그러한 일이 생긴다면 목숨을 내어 놓겠습니다.
아니 제 손으로 제 목숨을 정리해 버리겠습니다.
그리고 전 벌써 대장님이 하시는 일엔 벙어리고 귀머거리며 봉사입니다.
아무 염려 마시고 그냥 있어도 없다 생각하십시오, 히히...]
제비는 한껏 충성을 보인다.
이미 대장을 위해서 목숨마저 불사하겠다고 속으로 천명하고 있었으니 대답이 막힐 리가
없었다.
차돌 이는 흡족하였다.
[좋아, 내가 첫눈에 자네를 알아보았지.
그럼 XX동 극동빌라로 가자.]
[옛, 대장님....]
억수같은 비와 검은 하늘에 번쩍이는 번개를 보며 차는 앞을 밝히는 불을 키고 속도를 내며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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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돌이의 호주머니에서 전화가 왔음을 알리는 멜로디가 새어 나온다.
차돌 이는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는다.
[누나야.....]
[응....잊었어.]
선영 이는 자기와 약속한일을 혹시 잊고 있는지 묻는다.
[아니.....알았어, 그리로 갈게.....]
차돌 이는 전화를 끊고는 제비에게 휴대폰을 건넨다.
[제비, 앞으로 나와 있을 때에는 제비가 내 휴대폰을 관리해...
난 이것이 싫어.....
그리고 종로 XX백화점주차장으로 가자.]
차돌 이는 휴대폰을 제비에게 건네며 몸을 뒷자리에 눕힌다.
[알겠습니다. 대장님....]
제비는 차돌이가 주는 전화기를 받아 안주머니에 간직하더니 힘찬 어조로 복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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