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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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빌라 현관을 빠져나오는 차돌이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한 번도 차돌이의 얼굴이 이렇게 무겁고 심각한 표정은 없었다.

아니 심각한 정도가 아니고 눈에서 광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차돌 이는 차에 올라타고 빌라를 빠져나간다.

새벽인데도 제법 많은 차가 거리를 내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차돌이가 가는 길은 별 혼잡하지 않아 차는 빠른 속도를 내며 달려간다.

집 대문에 와서 내린다.

아침운동을 하던 곰과 외팔이가 외박까지 하며 들어온 차돌 이에게 뛰어와 무슨 말인가를 하려했지만 차돌 이는 손짓으로 하고자 하는 말을 중지시키고 말없이 키를 곰에게 주고 뒷산으로 올라간다.

언제나 이곳에 오면 그랬듯이 차돌 이는 바위에 앉아 낮게 중얼거린다.

[사신, 이리와라...........]

조금 있으니 뭔가 히 끗 하더니 차돌이의 발치에 세 마리의 뱀이 나타난다.

[어. 백왕과 홍 왕도..............]

그렇다, 사신의 자식들인 것이다.

새끼의 몸통도 너무 작아 손바닥으로 말아 쥐면 쏙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작기만 하다.

허나 차돌 이를 보는 눈빛만은 사신과 다름없이 총총하기만 하다.

어미인 큰 홍사는 나타나지 않는 걸로 보아 새끼를 낳고 자기 몸을 새끼들의 양식으로 주지 않았나 생각이 들지만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신은 차돌이의 다리위에 올라오더니 기쁜 듯 혀를 날름거리며 머리를 아랫도리에 비벼대고 있다.

차돌 이는 반가운 표정을 짓고 한참이나 그들이 재롱떠는 모습을 구경한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뱀들의 재롱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차돌 이는 일어난다.

[사신........앞으로 나의 말이 들리는 곳에 있어야한다.

아무의 눈에도 노출되지 않게 나의 주변에 항상 있어야 할 것이야........]

차돌 이는 인상을 굳히며 심각해진다.

뱀들은 그런 차돌 이에게 무서움을 느꼈는지 또 아리를 틀더니 말없이 사라진다.

차돌 이는 뱀들이 사라지자 뭔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천천히 산을 내려온다.

그런데 상의 호주머니에서 뭔가 이상한 촉감이 느껴진다.

급히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본다.

손목에 밧줄 같은 작은 물체가 감기는 듯하다.

차돌 이는 눈을 크게 뜨고 그리고 크게 웃는다.

[어라. 사라진 게 여기였어. 으하하하......좋아. 정말 멋있어.........

그래 내 주변에서 멀리 떨어지지 마.

어쩌면 네게 일을 시켜야할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흐흐흐.......]

차돌 이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곰을 안채로 들어오라 이르고는 현관으로 들어간다.

차돌이의 굳은 표정을 보고 있는 곰의 처와 윤지, 그리고 무랑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특히 무랑은 표정에 변화가 없어 보였지만 깊은 눈 속에 걱정의 눈물이 어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윤지는 신났다.

차돌이가 자기와 아이를 찾는 것이다.

정인의 굳은 표정을 보고 불안해 있다가 밝은 음성으로 아이를 찾는 그를 보자 언제 불안해 있었냐는 듯 품에 아기를 안고 번개같이 뛰어가 아기를 안긴다.

[오빠. 얼마나 걱정했다고..........

어디있은거야. 괜찮아..........그래도 그렇지 연락이나 해주지...오빠 나빠. 미워........]

윤지는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다.

아기를 돌보는 것도 있지만 차돌이 때문에 잠을 설친 것이다.

[허허허.......이런 아기 엄마가 너무 어리광피우는 것 아냐........

오빠 여기 있잖아...세상에 날 어찌할 놈은 아무도 없어....걱정하지 마..........

이제 앞으로 종종 일어날 일이니. 하하..........]

차돌이가 윤지의 어깨를 토닥거려주고 아기를 받아 품에 안아든다.

[허허허...그놈, 하루가 다르게 크는 구 만.........]

노래를 흥얼거리며 아기를 어른다.

누구나가 그럴 것이다.

자식을 안고 있으면 모든 걱정도 한순간에 사라진다.

더군다나 이제 태어 난지 얼마 안 되는 천사 같은 아이인데 말해 무엇 하리...

차돌이가 아기를 보고 있는 눈에 행복이 가득했다.

[삼촌, 무슨 일 있었어요, 옷이 그게 뭐야.....

석이 이리주고 빨리 옷이나 갈아입지 그래요. 호호호...........]

곰의 처가 활짝 웃으며 다가오더니 차돌이의 꼬락서니를 보고 손을 벌린다.

차돌 이는 그 손에 석이를 안겨주며 마주 웃어준다.

[형수, 살다보니 별짓도 하게 되더라 구.....

이 구겨진 옷은 천하를 얻는데 남겨진 산물이라 구. 히히....]

[어머머. 좋은 일이 있었나보지.........]

곰의 처는 뭐가 궁금한지 눈이 둥그레진다.

며칠간 집에도 오지 않더니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얼굴을 하지 않는가.

그게 무슨 일이기에 저토록 환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래요, 형수 이제 내 소원을 이루었어.

그토록 짓누르던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모두 이루고야 말았어. 하하하....

뭔지는 곧 알게 될 거야........지금은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아.. 히히히........]

차돌 이는 그 말을 하면서 무엇이 좋은지 실실거리고 웃으며 방으로 들어간다.

아직은 모두에게 지금 기분을 말할 단계가 아니었다.

그러나 기분이 좋은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곁에서 아무 말도 없이 지켜보던 무랑이가 차돌 이를 따라 들어온다.

차돌 이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들어오는데 무랑이 따라 들어오자 의아해서 묻는다.

[어....무랑아, 나 옷 갈아입어야 해. 왜 방까지 따라오고 그래....]

[할아버지 사부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녀라 했어.

그런데 오빤 어제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어.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이젠 어디든 죽어도 따라 다닐 거야.]

무랑은 며칠을 말도 없이 속 앓 이를 했다.

이렇게 말도 없이 사라지는 차돌이가 원망스러운 듯 가볍게 눈을 흘겨가며 자기할말을 하고 있다.

무랑은 이제부터 조금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설령집이라도 그의 그림자처럼 붙어있어야겠다고 작정했다.

그런 마음이니 방에까지 따라오는 건 당연했다.

[무슨 소리야.....그러지 않아도 돼....

네가 필요하면 찾을 테니 안심하고 편하게 살아.........]

차돌이가 무랑을 안심시켜준다.

그러나 무랑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거절의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차돌 이는 무랑의 고집과 성격을 안다.

자기가 하고자하면 끝내 성취를 보고 마는 독한 여자임을....

차돌 이는 어쩌다 집을 비운 것이 무랑에게 엄청난 고통과 충격을 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이곳 오직 자기하나만을 믿고 따라온 동생 같은 무랑 이를 아무 연락도 없이 걱정을 하게 하였고 무랑은 혹시 자기가 잘못되면 모두가 제 책임인줄 알고 엄청난 결단을 내릴 아이가 아닌가....

그래 무랑의 마음을 이해하자 그녀에게는 나만이 보호잔데 내가 없으면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할까...자기를 지켜주기 위해 사는 여자라 생각하는 무랑이가 더 가까이 있기 위하여 모든 것을 참고 자기가 시키는 모든 공부를 빠른 시간에 이룬 아이가 아니던가.

가까이 두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차돌 이는 지금 무랑이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자기 하나만을 믿고 의지하려는 아이인데 차돌이가 연락도 않고 들어오지 앉자 그 불안하고 조바심 나는 심정으로 한숨도 자지 않았음을 얼굴표정에 드러나 있지 않는가,

결국 차돌 이는 무랑에게 몇 가지 엄중하게 주의를 주며 무랑의 뜻을 들어준다.

[그래, 너 하고 싶은 데로 해라. 단 내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또 하나 여기선 고개로 대답을 대신하면 안 된다.

짧아도 확실한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겠지...]

무랑이 급히 고개를 끄떡이며 환하게 웃는다.

하얗고 고른 치아가 드러나도록 예쁘게 웃는다.

표정이 환해지고 만면에 기쁨이 충만해진다.

[허어....그래도, 말을 해라했는데.......

이번만은 넘어가지만 두 번 다시 용서 안 해. 알았으면 이젠 밖에서 기다려.]

차돌 이는 얼굴을 무섭게 하고 무랑을 겁준다.

뭔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랑이 잠자리에까지 와서 보초를 설 것 같아서다.

그런 무랑이 밉지는 않지만 불편할 것이 자명하기에 어느 정도 선을 그어놓고 싶었다.

무랑이 멋쩍게 웃어 보이며 그때서야 방문을 열고 나간다.

차돌이도 어이가 없었지만 절대적인 충성을 보이는 무랑이가 어느 여자보다 좋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가 간단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자 곰이 소파에 앉아 있다가 차돌이가 나오니 일어선다.

[형, 그냥 앉아있지, 왜 그래... 이상하게...........]

차돌 이는 일어나 격식을 차리려는 형을 만류한다.

여긴 집안이고 그가 자기보다 나이도 많은데 항상 저런 식으로 대하니 쑥스러웠다.

밖이면 몰라도 집안까지 그러지 말라며 손을 저어 그의 행동을 제지시킨다.

[하하하. 대장, 나이는 내가 많지만 세상엔 위계질서라는 것이 있어.

그걸 절대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것이 남자들의 세계야....그렇지 않아....하하하.....]

곰은 자기의 행동에 차돌이가 부담을 가지자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확실히 한다.

그도 어떤 세계에서 생활 할 땐 나이는 문제가 아니었다.

힘이 우선이었고 그 힘이 존칭을 받는 그런 세계에 있었으므로 밑에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한다는 것을 철칙으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어....그러니까 내가 형보다 위라는 말이야....그렇지 않아......

난 형을 진짜 내 형처럼 생각하고 있어. 난 동생으로 매달리는 거고, 히히히....]

차돌 이는 가당치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다며 절대 그러지 말라고 당부한다.

[하하하.....대장 아무리 그래도 대장은 우리 윗사람이야......

난 그러고 싶지 않아도 대장만 대하면 몸이 그렇게 되어버리는걸....하하하.....]

그러나 곰은 웃으면서 지킬 것은 분명히 해야 한다고 다시 강조한다.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곰이다.

[히히..... 말도 안 돼. 그런 게 어디 있어...........]

차돌 이는 그만 포기하고 만다.

곰이 고집을 부리면 아무도 꺾을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제풀에 쓰러지겠지 지금 말린다고 들을 사람이 아니니 그냥 자기하고 싶은 데로

하도록 내버려두기로 했다.

[하여간 무슨 일이 있어. 아침부터 날 찾게...........]

곰이 궁금하여 먼저 찾는 까닭을 묻는다.

[형, 이유는 나중에 알려줄 테니.. 사람 좀 구해봐.......

조직계에 알고 있는 사람이면 더욱 좋고.... 난 형이 그런 쪽의 사람을 알고 있다고 봐..

그래서 부탁 안하려고 했지만 피치 못 할 사연이 있어.

구해줄 수 있겠어. 정말로 믿을 만한 사람으로.........

그리고 앞으로 내가 데리고 있어도 될 사람으로.]

차돌이도 장난을 거두고 심각하게 변한다.

그리고 곰에게 일을 부탁한다.

[대장, 지금이 아니라도 이유는 말해줄 수 있겠지.

그런 놈이 하나있어. 지금도 그곳에 있을 런지는 모르지만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곰은 멍청해진다.

차돌이의 실력이면 조직이 아니라 어떤 무술을 한 사람이라도 충분히 격퇴시킬 것인데 지하조직에 있던 사람이나 잘 알 수 있는 사람을 구해 달라니. 그것도 데리고 있겠다니 뭔가 무슨 일이 있어도 큰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 느껴진다.

더군다나 자기가 차를 끌고 간 곳이 병원이라면 누군가 대장과 가까운 사람이 봉변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되는데 그 일이 지하조직과 관계된듯하니 조바심도 일어난다.

그러나 이미 마음속으로 차돌이가 내몰지 않는 한 평생 부하로 살기로 맹세한 사람이 아닌가. 곰은 차돌 이를 쳐다보며 승낙한다.

[형, 고마워.......

오늘 중으로 알아보고 찾으면 내일 아침에 여기 불러다 줘...

난 곧 나가야 하니............]

차돌 이는 일어난다.

자기할말은 다했으니 물러가라는 암시다.

[그래, 알았어. 대장..]

곰도 자리에서 일어나 나간다.

차돌 이는 곰이 나가자 한사코 자기 뒤에 서 있는 무랑을 앞자리에 앉힌다.

[무랑아, 네 말대로 앞으로 내가 나갈 때에는 나를 수행하라.

허지만 절대 내 명에 따라야한다.

다시 말하자면 내 말을 조금이라도 어긴다면 난 가차 없이 쫒아내고 말 것이야.

지킬 수 있겠나.]

[오빠 맹세할게. 오빠 곁에 그냥 있기만 할게......]

무랑 이는 싱글 벙 글이다.

그냥 차돌 이와 있는 것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무랑이다.

[후후후. 내가 좋은 거니, 걱정이 되어 그런 거니.........

재미있게 좋은 시절을 멋지게 보내게 해주려했는데 도무지 네 마음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차돌 이는 무랑이가 안타까웠다.

젊고 예쁜 무랑 이를 멋진 남자를 소개해주어 나름대로 행복하고 재미난 인생을 살다가게 해주고 싶은데 무랑이 한사코 거절하니 대책이 서지 않았다.

그저 자기 옆에만 있도록 해주면 저렇게 좋아 싱글 벙 글이니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다.

[둘 다야. 오빠.............]

무랑이 필요 없이 말을 많이 하고 있다.

뭔가 무랑 이에게 절실한 것이 있는지 차돌이가 자기를 항시 곁에 두겠다는 말에 기쁨을 표시하다가 잘못하면 쫒아내겠다는 말에 겁을 먹은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래, 지금 준비해 난 나가야하니.........

그리고 운전은 하려나 모르겠네,]

[응. 할 수 있어.............]

무랑 이는 차돌이의 마음이 변할까봐 자기 방으로 급히 가버린다.

아마 외출복으로 갈아입으려는 것 일게다.

차돌이도 안방으로 들어가서 움직이기 간편한 옷차림과 장갑을 준비하고 또 장롱에서 양복과 와이 셔 쓰 그리고 넥타이를 담은 양복가방을 들고 나오다가 무랑이 준비를 마치고 거실에 있는 것을 보고 가방을 맡긴다.

그리고 천천히 현관을 나선다.

윤지와 곰의 처가 나와 차돌 이를 배웅한다.

[오빠, 오늘도 늦을 거니................]

윤지의 얼굴은 걱정으로 찡그러져있다.

[그래, 오늘도 들어오지 못한다.

그리고 이번 일요일 모두를 모이라고 해라,

할 말이 있으니.....형수, 석이 부탁해.............]

차돌 이는 부드럽지만 거역하지 못 할 엄숙한 어조로 윤지와 곰의 처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고 밖으로 나온다.

이미 무랑 이는 차의 시동을 걸어놓고 뒷문까지 열어놓고는 대기하고 있고 곰과 외팔이가 차 옆에 서 있다.

곰과 외팔이는 차돌이의 복장이 예사롭지 않는 것을 보고 의문을 갖는다.

[대장,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웬 간하면 우리가 나설게.......]

곰은 차돌이의 복장과 표정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고 넌지시 떠본다.

[하하하. 형, 나중에 형의 도움을 받을지도 몰라.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걱정하지 말고 내 부탁이나 속히 알아봐........

그럼 나, 간다.]

차돌 이는 모두의 걱정과 우려를 일축하고 차에 오른다.

그리고 무랑 이에게 출발을 지시하고는 눈을 감아버린다.

[..................................................]

모두는 더 이상 아무소리도 못한다.

차돌이의 표정에서 더 이상 말 듣는 걸 싫어하는 걸 읽었기 때문이다.

차돌 이를 태운 차는 천천히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

차돌이가 도착한곳은 중구 1가 XX주차장 이였다.

차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나오면서 관리인에게 피치라는 싸 롱의 위치를 알아내고 그곳으로 발을 옮긴다.

무랑은 차돌이의 두발자국 뒤에서 말없이 따라가고 있었다.

피치 싸 롱이라는 간판 앞에 차돌이가 섰다.

주위의 여느 간판보다 화려하고 웅장하다.

크기도 크고 아주 시설이 화려하게 꾸며 돈이 많이 있지 않으면 감히 엄두도 안 나도록 화려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차돌이가 피치 싸 롱 문을 열고 들어간다.

덩치 좋은 장정한 놈이 홀을 거닐다가 들어오는 차돌 이를 발견하고 의아하여 묻는다.

[여보시오, 아직 장사시간이 아니니. 나중에 오쇼........

씹 헐. 지금 분위기가 엉망인데 대낮부터 젊은 아이들이 재미 보려고 설치고 있어.

퉷.......제 기랄...........]

처음에는 정중히 인사하다가 차돌이가 새파랗게 젊었고 뒤에 여자하나까지 데리고 들어오니

대낮부터 젊은 놈들이 희희낙락하러 들어오는 줄 알고 눈꼴이 시려 중얼거리듯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날치라는 놈이 있다고 들었다.

안내해라..........]

차돌 이는 놈을 보며 싸늘하게 내 뱉는다.

눈에는 시퍼런 광기가 줄기줄기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피를 보지 않고는 물러나지 않을 악마의 눈빛과 같았다.

[뭣이....그럼...네놈이..하하하.........요 런 대가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놈이...

겁 대가리 없이 상호를 그 지경으로 만들었단 말인가,

으하하하......이 좆만 한 개새끼가..........으하하하............]

놈은 허리를 뒤로 제키며 가소롭다며 크게 웃는다.

아무리 보아도 싸움깨나 할 몸도 아닌 것 같았고 그것보다 새파란 젊은 놈이었기 때문에

더욱 기가차서 웃고 만 것이다.

이런 놈에게 상호가 당하다니 정말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다시 말하마..........죽기 싫으면 안내해라 두 번 말 안한다.]

차돌 이는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눈에 살기를 보이더니 번개같이 달려들어 놈의 멱살을 잡더니 치켜 올려버린다.

놈은 졸지에 허공에 버둥거린다.

단번에 호흡이 막히고 전신에 맥이 빠져버린다.

[컥. 컥........알았다...이손................]

놈은 차돌이의 조그만 몸집에서 나온 어마어마한 완력에 숨이 막혀 컥컥거리며 겨우 말을 내뱉는다.

너무나 갑자기 기습을 당한 탓이라 여기기엔 뭔가 달랐다.

내 몸무게가 몇인데 그런 나를 한손으로 들어 올린다면 이건 보통 완력이 아니다.

감히 내가 상대할 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더 험한 꼴을 당하기보다는 순순히 말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또 안에는 이놈이 누구인지 어떻게 족치는지 연구 중인 형과 동료들이 많이 있지 않는가.

그쪽으로 유인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으로 여겼다.

차돌 이는 놈을 떠밀어 버린다.

[이런 씨 벌 개새끼가.....좋아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니 죽으려면 따라와. 씹 헐, 놈아...]

그러자 놈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더니 눈에 쌍심지를 켜고 말한다.

놈은 복도를 걸어 나가 조그만 뒷문으로 들어간다.

차돌 이는 뒤에 있는 무표정의 무랑에게 지시한다.

[무랑아, 여기서 기다렸다가 한 놈도 나가지 못하게 해라........

도망 나오는 놈은 병신을 만들어 버려, 모두 내가 책임질 테니........]

[오빠, 염려 마.............]

무랑이 안심하라며 환히 웃어준다.

차돌이도 그런 무랑을 향해 웃어주고는 놈이 들어간 곳을 향하여 걸어간다.

무랑을 뒤로한 차돌이의 인상은 굳게 다물어져 엄청난 분노를 뿜으며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다.

뒷문을 들어가자 주차장으로 보이는 곳이 있고 놈들은 차돌이가 혹시 도망이라도 갈까봐 철문을 이중으로 굳게 닫고 기다리고 있었다.

열 명이 조금 넘을듯하다.

그 무리들 중 가운데 덩치가 좋고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놈이 차돌 이를 보며 한껏 비웃는다.

[이런....새파란 애송이 아닌가...........

이놈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모여야 했단 말인가.........

정말 기가차도 안하네.................

야, 좆만 한 새끼........어디서 글러먹던 놈이야............]

그중 형정도 되는 놈이 기고만장하여 차돌 이를 응시하며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짓는다.

[네놈이 날치야,]

차돌 이는 울분을 삼키고 조용히 묻는다.

[이런 씹할 놈 보았나......어디서 형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있어.

어린놈이라 좋게 말로 하려했더니만 안 되겠군.

일단 건방진 네놈의 버릇을 고쳐놓고 말해주지.............

야. 적당히 손봐주고 내게 데려와................]

모여 있던 놈들 중 두목격인 놈이 무리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그러자 옆에 있던 놈들이 이구동성으로 허리를 굽히며 대답한다.

[옛, 형님...........]

그리고 다시 차돌 이를 보며 험악한 인상을 그린다.

[얘들아, 적당히 손 좀 봐주라............하하. 요즘 조용해서 죽을 것 같은데.

하필이면 저런 아 새끼가 시비를 거니. 이거 원........야 뭐하냐..........족치지 않고..]

무리 중 한 놈이 큰소리로 욕설을 하며 무리를 부추긴다.

그러자 덩치가 날렵해 보이는 한 놈이 재빠르게 차돌이 앞으로 나서더니 다짜고짜 주먹을 날린다.

차돌 이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허긴 준비가 되지 않았어도 신경 쓸 일은 아니었지만 제법 매섭게 내뻗는 주먹을 고개를 돌리며 피한다.

놈은 차돌이가 피하자 겁도 없이 방어자세도 없이 다시 공격해 들어온다.

차돌 이는 들어오는 놈을 향하여 몸을 옆으로 돌리는 가 했는데 어느새 발길이 놈의 면상을 걷어차고 있었다.

[쿠 당 탕,,,,,,,,,,,,,,]

놈은 몇 바퀴나 그르더니 쭉 뻗어버린다.

졸지에 한 놈이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놈들의 눈에는 놀람과 분노가 뻗친다.

[이런 씨 발 놈이..제법 한 가닥이 있었구나. 야, 안되겠다. 전부 덤비자............얏.......]

한 놈이 고함을 지르며 공격해오고 옆에 서서 방관하던 놈들도 동료가 한방에 쓰러지고 정신을 잃자 분노가 솟는 듯 무차별로 공격해 들어온다.

차돌 이는 이미 여기올때부터 사정 따위는 생각도 안았다.

놈들이 공격해오자 번개같이 몸을 날리며 선두에서 주먹을 휘두르며 들어오는 놈의 면상을 발길로 날려버리고 미처 착지하기도 전에 다시 주먹으로 그 뒤에서 공격하는 놈의 어깨를 주먹으로 박는다.

그리고 다시 몸을 회전하며 발길로 공격목표를 잃고 멍청해있는 놈의 옆구리를 발로 차고는 뒤이어 옆에 있는 놈들의 턱주가리를 주먹으로 연달아 내갈긴다.

삽시간에 여섯 놈이 나 둥그레지고 여기저기 신음이 터져 나온다..

[퍽. 퍽.........쿵. 콰 당..........으.............으....우.............]

차돌 이는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졸지에 낙엽처럼 동료가 쓰러지며 정신을 잃은 모습을 보고 있는 나머지 놈을 향하여 비호같이 몸을 움직인다.

다시 숨넘어가는 비명이 터지고 바닥에 뒹구는 소리가 들리며 나머지 놈들 모두가 뻗어버린다.

그리고 이상한 예감이 들어 문을 열고 나오는 놈의 면상을 발로 차버린다.

한편에서 숨어 기회를 보던 두 놈은 죽어라 뒷문으로 달아난다.

차돌 이는 두 놈을 그냥 두고 문을 나오다 차돌이의 강한 발길질에 맞아 고통의 신음을 뱉는 놈을 잡아 일으킨다.

차돌 이는 놈이 날치임을 믿고 더한 고통을 주기위해 힘을 줄여 정신까지 잃게 충격을 가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놈은 차돌 이에게 잡혀 일어나면서 새파랗게 질려있다.

불과 수분사이에 그래도 내놓아라, 하는 동료들을 전부 그로기로 만들지 않는가.

정말 듣도 보도 못한 무시무시한 실력이 아닌가....

이제 죽는구나 생각하고 온몸을 떨어댄다.

[네놈이 날치인가............]

차돌이가 찬 서리가 내릴 정도로 차갑게 묻는다.

[으............아닙니다, 형님은 우리에게 맡겨두고 볼 일 보러 갔습니다.]

놈은 겁에 질려 온몸을 부르르 떤다.

차돌이의 시선을 쳐다보기도 무서웠다.

시퍼런 광채가 빛줄기처럼 쏟아 나오며 인상을 그리고 있는 그가 마치 야차로 보였다.

심지어 불과 수분사이에 그래도 내 노라 하는 우리들을 완전 묵사발로 만들지 않는가.

그의 실력에 반쯤 혼이 나간 상태인데다 지금 자기에게 다가오니 마치 염라대왕을 보는 것 같아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뭣이. 내가 기다리라고 했는데.........흐흐흐........그래 어디로 갔나,]

[그건 모릅니다. 으......윗분이 하는 걸 우린 물어볼 수가 없습니다.]

놈은 겁에 질려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술술 불어댄다.

가슴 밑바닥에 구멍을 뚫어대며 몰아치고 있는 공포의 검은 그림자가 느껴진다.

조금이라도 대답이 늦어 혹시라도 엄청난 린치를 가하기라도 할까봐 차돌이가 말을 끝내자마자 대답한다.

[흐흐흐......그래... 후후. 아직 죽기가 싫은 모양이라 도망갔는가, 본데..........

다시 전하라. 이틀 후에 온다고.........목욕재개하고 죽을 준비하고 기다리라고........

그리고 네놈도 세상에 패악깨나 지른 놈 같으니 다신 이런 짓 못하도록 만들어주마..]

차돌 이는 용서가 없었다.

놈의 오른쪽 어깨를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려친다.

그는 눈에 불을 켜고 누나를 조금이라도 그렇게 만든 사람이나 조汰� 깡그리 없애버리리라 혈안이 되어 있었다.

[으윽........]

놈은 다시 고통의 비명을 지른다.

차돌 이는 놈을 뒤로 밀쳐 사무실 문에 쳐 박아 버린다.

[네놈은 이제 하루에 두 차례 팔에 엄청난 고통이 올 것이다.

그리고 네놈이 주먹을 쓴다면 그 고통의 시간은 더 길어질 것이고 그러다 영원히

쓰지도 못하는 불구가 될 것이다.

나머지 인생은 부디 사람답게 착하게 주먹을 쓰지 않는다면 고통도 없어질 것이니

믿고 안 믿고는 네놈 마음이고 다신 이곳에서 네 눈에 보이지 않도록 해라.......

그땐 다시는 용서하지 않을 테니...........

그리고 내말을 날치라는 놈에게 전하고 이틀 후에 날 반기라고 전해라........]

차돌 이는 그 말을 끝으로 놈에게 등을 보이며 뒷문으로 나온다.

다시는 이놈들을 위해 밝은 빛으로 나오지 않으리라.

세상에 법이 없다면 이놈들을 모조리 무인도에 쳐 박아두고 몇 달 몇 년을 굶기고 싶었다.

이제 놈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나의 보복이 얼마나 처절한지,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몰고 오는지 확실히 가르쳐 주고자 한다.

분노에 찬 그가 홀에 들어서자 이미 두 놈이 입에서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고 있었다.

무랑이 자기를 보면서 싱긋 웃고 있다.

시키는 데 로 했다며 의기양양한 표정이 아닌가.

차돌 이는 무랑을 향해 다시 지시한다.

[무랑아. 이놈의 가게를 전부 엎어버려. 몽땅 부셔버려................]

무랑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도 없이 번개같이 몸을 날리며 홀마다 돌아다니며 기물을 부시고 난장판을 만들어버린다.

마치 재미있는 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신이 나서 온갖 기물을 던지거나 발로 차며 난장판을 만들어버린다.

[콰 당, 우르르. 부지직.............와장창,,,,]

온갖 기물이 부서지고 깨어지는 소리가 한동안 요란하게 들리더니 무랑이 손뼉을 치며 웃으면서 나온다.

차돌 이도 진열장에 쌓인 양주 등을 모조리 박살내고는 한동안 영업은 꿈도 꾸지 못하게 만들고는 밖으로 나온다,

밖의 호화찬란한 간판을 보며 손에 들고 온 병을 던져 부셔버린다.

[째 쨍, 와장창...........]

유리조각의 파편들이 도로에 떨어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차돌 이는 놀란 시민을 의식도 하지 않은 채 할 일을 한 것처럼 태연하게 걸어 주차장으로 향한다.

한편.

덕만 이는 풀이 죽은 모습으로 집으로 온다.

일화는 남편이 풀이 죽은 모습을 처음 보는지라 멍청해진다.

나름대로 자손 심과 호기로 큰소리를 즐겨하며 의기양양하던 남편이 세상을 다 잃은 듯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집으로 들어와 거실 쇼 파에 힘없이 앉는다.

일화는 그런 남편이 궁금해지지만 일단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잔에 부어 덕만 에게 준다.

덕만은 말없이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테이블에 놓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그때 미지가 외출준비를 하고 나가려다 아버지가 일찍 들어온 것을 보고 반갑게 인사한다.

미지는 아버지가 처한 표정을 보지 못하였기에 웃으� 아버지를 반긴 것이다.

[어머...아빠, 웬일이세요. 이렇게 일찍 들어오시다니.........

호호호. 엄마랑 재미있게 이야기하세요, 전 잠깐 나갔다 올게요.]

미지는 모처럼 아버지가 일찍 들어온 것이 신기했다.

언제나 회사일이니 하며 늦게 들어오거나 안 들어오기 일 수인데 오늘 이상하게 일찍 들어온 아버지가 이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표정을 보일수가 없었다.

그저 반갑게 인사하며 환하게 웃는다..

[잠깐, 미지야, 혹시 차돌 이에게 간다면 가지마라.......]

덕만은 미지의 인사를 서글픈 미소로 응해주고는 미지를 잡는다.

[어머. 아빠도 족집게시네, 내가 그곳에 가는 줄 어찌 알고........왜요.]

미지는 의아해진다.

아빠가 차돌 이와 자기가 예사롭지 않는 사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 좋다 나쁘다 소리도 않으시고 모른 척 묵인해주시던 분인데 자기가 차돌 이에게 가는 걸 눈치 채시고 더군다나 가지 말라고 하지 않는가.

아빠가 갑자기 얼토당토 안하는 소리를 하니 미지도 의아해지며 아빠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덕만은 깊은 한숨을 연거푸 토하시며 힘들게 입을 연다.

[휴우.....나랑 뭔 일이 있었어, 아마 가도 널 보기 싫어할 거야.....

한동안 그 집엔 가지마라.....가보았자 차돌이도 집에 없을 테고.....]

[아빠, 이상하시네, 차돌이랑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요.]

미지는 궁금하여 미칠 것 같다.

아빠가 차돌이가 집에 없다는 것을 어찌 알고 있으며 또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렇게 깊은 한숨을 토하시며 애통해 하시는지....

미지는 아빠를 쳐다보며 대답을 원하는 시선을 주고 있다.

[휴우.....사실 내가 차돌 이에게 몹쓸 짓을 했어.

하여간 한동안 가지마라. 그렇게 하도록 하고 네 방으로 올라가........]

덕만은 말할 수가 없었다.

어찌 차돌이의 친누나를 자기와 회사 욕심으로 납치하여 강간까지 자행했다는 그런 비겁한 짓거리를 한소리를 딸에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차돌이가 그토록 목매달고 가슴 저미며 오직 누나와의 상봉 때 기쁨을 주기위하여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기이고 딸도 이미 차돌 이에게 몸도 마음도 모두 주며 오직 차돌이의 사랑을 얻기 위해 경주한다는 것을 처와 딸의 행동으로 듣고 보지 않았는가.

이제 자기로 인하여 모두에게 마음고통과 실망을 줄 것은 뻔 한 이치이고 자기의 한 순간 잘못 판단으로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되었으니 할 말이 있을 수 없었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누구에게도 말 할 수도 없고 그래서 미지에게 당분간 차돌이 와의 접근을 말라며 제지시키고는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뒤에서 딸이 부르짖는 소리가 들린다.

울먹이는 소리도 함께 들려온다.

[아빠...무슨 일이에요...어서 말해보세요........흑...........

만일 아빠가 차돌 이를 정말 괴롭히거나 나쁘게 했다면 저도 용서하지 않을 거 에요.....

흑......그 사람이 아빠 때문에 힘든 다면 전 살수도 없는데. 이를 어째. 흑 흑........

엄마 어서 아빠에게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세요..

차돌이가 잘못되면 난 어찌하라고..엉 엉엉........난 몰라. 엉 엉엉.........]

급기야 미지가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터뜨린다.

보고 있던 일화도 천 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는다.

마음속에 진정한 사랑을 품고 있고 다가가고 싶어도 현실이라는 굴레 때문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지만 그런 사람이 내 남편에게 몹쓸 짓을 당했다고 하니 눈앞이 캄캄해지고 머리가 텅 빈 듯 다리에 힘이 빠져 미지처럼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몸과 마음을 억지로 참는다.

금방 눈에서 눈물이 맺히고 슬픔이 밀려온다.

그러나 이곳은 남편과 자식이 있는 집이 아닌가.

마음속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미지와 같이 눈물을 보일수가 없었다.

답답하고 아찔하여 온몸에 기운이 빠졌지만 억지로 참으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천천히 옮겨 덕만이 들어간 안방으로 들어간다.

[엉 엉엉. 아빠 미워. 난 어떻게. 엉 엉엉......]

미지의 통곡소리를 뒤로하며 방으로 들어간 일화는 남편을 본다.

침대에 앉아 머리에 손을 얹고 괴로워하는 남편을 본다.

일화는 천천히 다가가 남편 옆에 앉는다.

[여보.......무슨 일인데 그렇게 괴로워하세요.

말씀해보세요, 우리도 뭔가 알아야 대처할거 아니에요.]

[아. 말 못해. 여보............내가 죽을 짓을 했어. 차돌 이와 그 누나에게.....]

덕만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좌우로 흔들다가 무의식인지 이상한 말을 흘러낸다.

[옛........누나라니..........

그럼 차돌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누나 말인가요............]

그 소리를 들은 일화는 정말 놀랐다.

누나라니..그토록 내 님이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던 이 세상에 하나뿐인 혈육인 누나를 남편이 들먹이고 있다.

그것도 아주 몹쓸 짓을 했단 말인데 일하는 정말 기절하도록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남편이 그토록 칭찬하고 자랑하던 차돌 이에게 죽을 짓을 했다면 나는....미지는........

갑자기 남편을 죽이고 싶어지도록 미워진다.

그러나 자초지종을 알아야 대처할 방법도 나오는 법 일화는 아직도 진정되지 않은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확인한다.

[으...... 그래. 여보, 난 모르겠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

여보, 날 좀 도와줘..........여보...]

덕만은 괴로워하며 머리를 흔들다가 일화의 품속으로 무너지며 안겨버린다.

그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없이 울고 있다.

어쩌다가 내가 이런 실수를........왜 하필이면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제일 아끼고 좋아하던 내 피붙이 같은 차돌 이와 연관 있는 사람인지. 그것도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는 친누나에게........세상이 미워지고 자신에게도 미워지고 막막하고 답답하여 미치고 싶을 지경이다.

내가 저지른 죄악을 무엇으로 갚아야할지 마지막에 차돌이가 자기에게 원망과 증오의 눈으로 쏘아보며 부르짖던 말이 귀에 생생이 남아있다.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을..........내가 언제 그 정도의 소리에 약해질 만한 사람도 아닌데도 이상하게 차돌 이에겐 처절하게 앙갚음당할 것 같다는 심증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얌전하고 착하기만 하리라던 그 아이가 몸을 날리고 깡패의 팔꿈치를 아무렇지도 않게 부러뜨리는 무섭고도 빠른 무술실력과 냉정하리만큼 처절하게 응징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떻게 이 원한을 풀어야 한단 말인가...

딸은 이미 차돌 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지금 거실에서 대성통곡하며 차돌이가 잘못되면 아빠인 자기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며 울부짖는 것을 보니 이미 차돌 이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을 만큼 깊이 사랑하고 빠져있지 않는가....

이젠 아무리 딸이 그를 사랑하여도 정상적으로 부부의 연을 맺 여 주지 못하게 되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손안에 넣어 다니고픈 딸이 내 목숨같이 여겼던 딸에게 조그만 실망도 없진 않았지만 저 나이에 사랑을 알면 물불 가리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보다 자기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좋을까........차돌 이는 이제 나의 행위에 분노를 느끼고 내 소중한 딸을 정액 받 이 처럼 가지고 놀 것이 아닌가......부인하려해도 그렇게 한다면 나는.....어찌해야하나. 덤벼들어 놈의 따귀를 때려야하나 무릎 꿇고 빌어야하나 아니면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둬야 하나......

답도 내려지지 않고 그저 막막할 뿐이다.

답답한 심중은 가중되고 까닭 없는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린다.

일화는 남편이 자기 가슴에 안겨 우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어깨를 들먹이며 소리 없이 우는 남편이 한편으론 불쌍하기도 한다.

얼마나 모진 일을 하였기에 생전 처음으로 자기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다니........

한손으로 남편의 머리를 살그머니 쓸어 넘기며 진정하길 기다린다.

그러면서 차돌 이를 생각한다.

만일 정말 힘든 고초를 남편이 안겨줬다면 그 삶은 지금 어찌하고 있는지.

괴로워 울고 있는지 정말 복수의 날을 세우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이제 나와 미지의 진심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것 같은데. 이렇게 중요한 고비에 남편이 찬바람을 일으켰다면 혹시나 우리들의 사랑이 욕망이나 채우려는 얄팍한 수작으로 보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우리를 처절하게 파멸시키려고 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남편은 몰라도 나와 미지의 모든 적나라한 것이 차돌 이에게 있지 않는가..

세상이 알면 천하의 창녀보다 못하고 인륜도 천륜도 모르는 개백정보다 못한 금수 같은 짓을 했다며 증오와 저주의 돌을 던질 것은 사실이 아닌가.

그 영향이 어찌 남편과 친정에 미치지 않겠는가.

이 나라 재계의 커다란 거두하나가 사장되는 일은 어렵지도 않을 것인데. 남편은 모르고 있지만 우리의 모든 것은 이미 차돌이의 손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는데 어찌 남편이 그와 누나에게 죽을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어찌하자고.....

차돌 이는 지금 어찌하고 있을까. 궁금하여 미칠 것 같았다.

지금 자기품안에서 괴로워 울고 있는 남편보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를 차돌이가 더 걱정되고 보고파진다.

자기에게 이러한 현실이 주어짐이 한없이 저주스러워진다.

당장이라도 차돌 이에게 달려가서 그이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다.

강아지가 되어 벌거벗고 엉덩이를 흔들어서라도 그이의 얼굴에 웃음을 찾아주고픈 마음이 절실해진다.

일화도 그만 소리 없이 눈물이 떨어지고 만다.

일화는 급히 손으로 눈물을 지우고 남편을 떼어낸다.

[여보, 내 물 가져올게. 마시고 내게 말해 봐요.

당신이 힘든 거나 미지도 차돌이도 힘든 것은 싫어요.

사실을 알아야 뭔가 해결책이 나오지 않겠어요.

난 당신을 도와줄게요. 무슨 일이라도 한번쯤 내 목숨을 다하여 도와주려했어요.

그러니 이따 말해주세요.]

일화는 그랬다.

차돌 이와 엮이고 난후 죄책감으로 정말 자기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한번은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갚고 싶었다.

그것이 남편에 대한 마지막 예우라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차돌이가 나타나기 전엔 사랑은 몰라도 나름대로 행복하다 느끼고 살았으니...

일화는 그런 마음에서 말한 것이다.

그리고 방문을 열고 나와 버린다.

덕만은 그런 처가 정말 고마웠다.

자기를 위해서 도와주겠다는 그 의미가 무슨 뜻인지 모르고 다만 자기를 위해서 어떤 일도 주저치 않겠다는 그 말이 한없이 고마운 것이다.

어쩌면 마누라는 나의 이런 행위를 용서할 것 같다.

어차피 알아질 일이다.

늦게 알아 더욱 힘들게 할 이유도 없다 이실직고하고 용서를 빌고 그리고 용서를 받는다면 같이 이 난제를 풀고도 싶어진다.

처에게 말해야겠다.

죽을죄를 인정하고 어떠한 처벌도 받을 각오를 하고 용서받아야겠다.

조금이라도 늦어 차돌이가 혹시 무슨 사단을 벌이려든다면 회사에도 자기에게도 엄청난 고난이 닥칠 것은 자명한일이고 아무행동도 없이 자기와 정말 인연을 끊는다면 현재 흑자를 보고 있는 한참 거대해지고 있는 유일한 합작회사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궁금해진다.

미국의 존스 회장은 분명 차돌이가 회사에 적을 둬야한다는 계약서를 원했고 그러했기에 성사되었고 만약 지금이라도 존스회장이 미국 지분을 정리하고 물러난다면 막강한 죤스 회장 힘으로 구축한 미주시장을 잃게 될 것이고 그러면 회사는 하루아침에 파탄하고 그 여파는 전체그룹에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혀 한동안 구제불능의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하든 차돌이의 마음을 100프로 돌리지는 못하더라도 적이나 나와 등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마누라랑 의논하자......그리고 용서를 받자.]

덕만은 모든 것을 밝히기로 마음을 굳힌다.

.

.

거실로 나온 일화는 아직도 울고 있는 미지를 본다.

[엄마, 아빠가 뭐래. 그 사람을 어떻게 했데.....]

미지는 아빠 때문에 자기가 차돌 이와 멀어지는 것이 불안한 모양이다.

하긴 지금 온통 차돌 이에게 몸과 정신을 빼앗겨버렸는데 어찌 조바심이 나지 않으랴...

[미지야, 울지 말고 그만 방에 가서 기다려, 엄마가 알아내면 네게 말해줄 테니..........]

일화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미지를 달래준다.

자기도 아직 상황을 알지 못하니 답답하기는 딸이나 다를 게 없었다.

혹시나 잘못될까봐 울부짖으며 있는 딸이 남의일 같지가 않았다.

자기역시 딸이란 진배없는 마음인데도 세상의 연륜이 그녀를 차분하게 만들은 것이다.

[싫어, 안 갈래. 여기있을거야.....알기 전엔 안 간다고...엉 엉엉......]

미지가 떼를 쓴다.

그러자 일화의 얼굴이 엄숙해지며 말소리가 낮아진다.

겨우 미지가 들을 정도의 소리로 냉담하게 말한다.

[올라가 기다리고 있으라했다.

난 너처럼 울고 싶은 마음이 없어 안 우는 것이 아니란 말이야........

우린 분명한 룰이 있어. 절대로 거역하지 못하는........

이건 엄마가 아닌 한 남자를 모신 언니로서 말한다. 올라가 있어.......]

그녀의 목소리는 엄중했고 거역하지 못하게 하는 위엄이 있었다.

[엉 어 엉..........엄마 미워. 언니 미워. 엉 엉엉........]

미지는 그때서야 울면서 그리고 엄마를 원망하며 자기 방으로 올라간다.

일화는 지금 저녁에 일어난 사건이 집안을 어수선하게 한 것이 아줌마가 없음을 한편으론 안도하기고 한다.

일화는 전화를 들고 차돌이집으로 전화를 건다.

윤지가 전화를 받는다.

[응. 그래..........아무 말도 않고 나가셨다고...........

그런데 곰 아저씨가 차를.........

그분도 말씀을 안 하신다고. 그냥 병원에서 만나 차를 주고 왔다고.

혹시 그분이 다친 데는 없고.....무척 심각해보였다고.....알았어. 고마워.....]

일화가 전화를 하면서 점점 표정이 굳어진다.

어쩌면 일이 의외로 어렵게 되어 수습이 곤란할 것도 같이 여겨졌기 때문이다.

[ 어디 갔을까........]

일화는 크게 한숨을 내지른다.

분명 무슨 일이 있어도 크게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웬만해선 차돌이가 화를 내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무척이나 솔직한 사람이라 속에든 말을 숨기지도 않는 사람인데 그가 말을 않는다면 이건 뭔가 불안한 일임에 틀림없다.

더군다나 남편과의 사이에 금이 갈 정도로 악화되는 일이라면 ....그리고 남편은 그의 누나를 들먹였다.

그가 하늘처럼 생각하고 언제나 그리워하며 보고 싶어도 크게 성공해서 찾으려고 참고 사는데 그분과 무슨 일이 있음이 분명한데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래, 알았어. 들어오면 내게 전화해줘. 궁금해서 미치겠어....

그 사람도 말은 안하니.............. 나중에 연락할게....]

일화는 전화를 끊는다.

곰 아저씨가 차를 병원에서 인계하고 왔다고.......

분명 큰일이 있었다는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어 더욱 궁금해 안달이 난다.

일화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컵에 담고는 안방으로 들어간다.

...............................................

남편이 씁쓸한 얼굴로 침대에 앉아있었다.

좀체 보기 힘든 우울한 얼굴을 하고 다리를 벌리고 바지를 흐트러뜨린 채 풀이 죽어 기운이 없는 모습으로 빠르게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입은 벙긋 열려있고 얼굴은 찌푸려지고 눈동자는 풀려있었다.

불과 하루사이에 남편은 쇠약해져 보였고 그의 얼굴에서 해골이 보이는 듯 했다.

고통스럽고 힘겨운 표정이 모두 그에게 옮겨간 듯 괴로워하며 얼굴의 묘한 뉘앙스에서 남편은 악을 쓰는 것도 같고 말을 참고 있는 것도 같아 보인다.

일화가 남편 곁에 다가가자 남편은 일화의 손을 잡는다.

그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그는 힘겹게 입을 열고 말을 하기 시작한다.

남편의 이야기를 듣는 일화의 눈은 경악으로 물들어간다.

모든 이야기를 끝낸 남편은 일화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를 조아리고 흐느끼며 운다.

일화는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그런 일이...............

도대체 신은 무얼 하고 있었단 말인가.

도대체 신이 어디에 있었기에 우리에게 닥친 이런 상황을 간섭하지 않았단 말인가,

왜 우리가 그의 사랑을 받는 것에 시기를 한단 말인가.

그가 우리를 천천히 가슴을 저미게 하는 그런 미움으로 변하는 위기를 막아주지 않았단 말인가.

나도 사람이고 그의 사랑을 절실히 원하는 여자이기에 남편과 마찬가지로 그 무엇에 대한 불안감으로 공포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럴 수가. 어찌 이런 일이, 아우성의 반항이 저절로 입 밖으로 새어나온다.

제발 용서해주세요, 우리를 미워하지 마세요. 아우성이 내 속에서 울려 퍼진다.

비록 입 밖으로 토해져서 발할 아우성은 아니었지만 내 속에서 울부짖는다.

그러나 이미 갈라놓은 이 간격을 어찌해야 한다 말인가,

이제 미소가 고통으로, 환희가 싫증으로 변하게 될 이 상황을 누가 들어 풀어준단 말인가,

말 못하는 지금 이 심정을 어디에다 하소연 한단 말인가.

이젠 우리는 님 의 속에 있으면서도 다른 이들과 같이 생활할 명분이 없다.

같은 여자들이면서도 우린 그들과 다른 현실 속에 생활하기에 더 더욱 발이 묶일 수밖에 없는 절박한 입장에 놓인 것이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더 이상 남편을 바라보거나 옆에 있기가 싫어진다.

바보 같은 남편이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저주스럽도록 미워지기도 한다.

일화는 겨우 일어나 휘청거리는 발걸음을 뗀다.

[난 미지와 자겠어요.

당신이 이러다니........정말 꼴도 보기 싫어요,

허나 내가 당신을 도와준다, 약속했으니 방법을 당신이 찾아봐요.

이일은 빨리 처리해야 모두가 편안할거란 생각이 드네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물과 불을 가리지 않고 할게요.

내가 말한 약속이니...이번 한번은 당신을 도와줄게요......

그렇다고 내가 당신을 이해하고 용서한다고 생각하지마세요.

아마 이일을 내 가슴속에 죽을 때까지 당신을 저주할지도 모를 상처를 준 것만은

틀림없고 영원히 당신을 저주할 거 에요.]

일하는 더 이상 남편을 쳐다보기가 싫었다.

어찌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사업도 중요하지만 남을 죽이면서까지 해야 되는 것인가,

돈과 권력이 무엇이라고 죄 없는 사람을 그토록 비참하게 만들면서 까지 하며 해야 하는가...

만약 차돌 이에게 이일을 맡기지 않았다면 남편은 그의 누나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렸을 것 아닌가...

짐승보다 못한 행동을 한 남편이 가증스러웠다.

물론 자기도 그와 진배없이 짐승보다 더한 행위를 하지만 지금 왜 그렇게 남편이 미운지 정말 죽여 버리고도 싶었다.

지은 죄가 있기에 더 이상 닦달하지 못하고 일화는 남편에게서 물러난다.

[여보. 고마 와....흑....흑....]

덕만은 일화가 그 정도로 이해해준 것만도 고맙다.

그리고 속에 있는 상처를 모두 풀어버리니 시원하기도 하고 그러나 주어진 현실에 자기의 처지가 갑자기 불쌍하고 외로워지자 서러운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덕만 이는 울면서 후회하고 있다.

이미 때늦은 후회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이 눈앞에 보이는데 망설일 자가 있겠는가.

이미 부자이지만 더 부자가 되고 싶고 더 높은 권력이 있는데 마다할 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것 때문에 이렇게 추해지고 비참해졌지만 그 순간엔 지금 이런 날이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이제 이루고자 하는 것도 이룰 수가 없이 되어버렸고 몸과 마음이 추해지고 나락에 떨어진 듯 헤어날 길이 없어 진듯하니 어찌 눈물이 아니나오고 후회가 없을 소야,

부처님 말씀이 생각난다.

가지지 못한 가난보다 마음의 가난을 두려워하라는 말씀이....

아무리 물질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이제 마음을 모두 잃고 말았으니 그 어찌 불쌍한 거지가 아닌가.

그것 때문에 가족 간에 친구 간에 동료 간에 틈이 생기고 의좋던 사이가 만신창이 되는 것을 누구보다 많이 보아왔고 경계하고 있었는데 한순간의 방심이 자신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생각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이제 그 욕심으로 가정의 행복마저 위태로워지고 아니 사라지고 만 것 같았다.

덕만 이는 침대에 올라가 이부자리를 머리끝까지 둘러쓰고 만다.

[엉 엉엉......엄마 이젠 어쩌면 좋아. 아빠 미 워. 엉 엉엉........]

산발이 되어 일화의 품에 안겨 하염없이 우는 미지였다.

그런 미지를 일화가 포근하게 안아주며 머리를 쓸어주고 있었다.

일화의 눈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너무나 난감한일이 자기들에게 닥쳤음을 피부로 느꼈다.

이일이 분명 자기들에게 엄청난 불행을 야기시키는 일이 아닌가.

성인군자라도 용서하지 못할 일이라 생각했다.

사랑하는 정인이 제일로 사랑하는 누나를 남편이 그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어찌 불똥이 자기들에게 미치지 않으리...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속이 상했다.

[엉 엉엉...난 이제 어떻게 해......그이를 볼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아...엉엉.....

엄마는 그렇지 않아.아무렇지도 않냐 구......엉 엉엉......]

거의 발광하듯이 처절하게 울부짖는 미지의 머리를 쓸어주던 일화의 목소리가 떨리며 조용하게 흘러나온다.

[왜, 나라 구 그러지 않겠니. 나도 미쳐버릴 지경이야.......

그러나 이렇게 울 수만은 없는 일 아니니.....아빠말대로 지금은 참을 수밖에.....

아빠가 무슨 방법을 생각해 내겠지..............기다려 보자꾸나...미지야....]

일화는 미지가 애처로운지 계속 머리를 매만지며 위로한다.

다른 말이 생각나지도 않았다.

어떻게 처리하며 과연 자기들이 어떻게 될까 답답해서 자기도 미칠 것 같았다.

[엉 엉엉....엄마, 아빠를 죽여 버리고 싶어......

그래서 그이의 마음을 돌리고 싶어. 그럴 수만 있다면....엉 엉엉......]

미지가 감히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소리로 아빠를 원망한다.

일화는 정말 놀랐다.

아무리 차돌 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도 그렇지 아빠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질 수가 있다고 생각하니 미지가 무섭고 님 을 향한 마음이 부러웠고 아빠를 대하는 딸의 마음이 야속하고 서럽기도 했다.

.

[미지야, 안 돼. 네 아빠야.........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돼.....]

일화는 미지를 조그마한 소리로 나무란다.

아버지를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패륜이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너를 낳게 해 준 아버지니 말을 삼가라는 것이다.

[왜 엄마. 아빠는 누구를 아무렇게나 해도 되고 우린 안 된다는 거야....

엄마는 아빠가 밉지도 않아. 엉 엉엉......]

미지는 아빠를 용서하는 것 같은 엄마도 미웠다.

엄마 품에서 얼굴을 들고 표독스런 눈빛을 하며 일화를 노려본다.

일화도 솔직한 심정을 미지에게 숨기지 않는다.

떨리며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에도 표독함이 묻어있다.

[왜. 안 밉겠어. 지금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지만 어쩌겠니..내 남편이고 네 아빤데....

허지만 엄마도 이젠 아빠랑 절대로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을 거야...

이제까진 내가 잘못한 것도 있고 해서 잠자리를 거절하지 않았지만 이제 네 아빠도

할 말이 없을 거야....

네 만큼 내 마음도 찢어질듯이 아파..........]

일화도 그만 참고 참았던 속내를 밝혀버리고 만다.

어찌되었건 이십년을 넘게 살아온 부부고 자식을 낳아 화목하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차돌이로 인해 방황과 갈등 속에서도 한 번도 따로 잘 만큼 모질지도 못한 일화였다.

그런데 이번 기회로 덕만 이와 두 번 다시 잠자리를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 마음을 딸에게 보인 것이다.

마음은 온통 차돌 이에게 가 있으면서도 덕만 이와 부부라는 이유로 잠자리를 하고 그런 몸으로 다시 차돌 이를 받아 드린다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몸을 열 수 있다는 생각에 위안은 되었지만 지금 차돌이가 처한 고통이 어떠할지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고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래, 잘했어. 엄마...엉 엉엉...........

절대 아빠랑 같이 자지마........아빠가 미워.....엉 엉엉......]

미지는 그런 엄마를 거든다.

둘은 한동안 눈물을 그치지 않는다.

어두워지도록 모녀는 서로를 안고 하염없이 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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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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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한 저택.

넓은 거실에 이태리제 가구와 소파가 위풍당당하게 거실중앙에 자리하고 온갖 그림이나 글이 쓰인 액자가 벽면 군데군데 걸려있고 바닥은 비싸고 호화로운 양탄자가 깔린 거실이다.

쇼 파 중앙에 중년남자가 앉아있고 양옆으로 여자가 셋 앉아 있었다.

가운데에 앉은 남자가 딸의 이름을 부르며 웃는다.

[허허허......이제 현영이도 졸업을 하고 조금 쉬었으니 뭔가 할 일을 찾아야하지 않겠어.

언니가 올해 시집가면 이젠 우리 막내만 남아있는데...일 시키기가 싫지만 그래도

노는 것보다는 모양새가 좋지 않겠어.]

얼굴에 기름기가 자르르하고 넉넉하게 생긴 중년남자가 만면에 웃음을 띠우고 현영 이를 바라보며 말을 하고 있다.

[맞아요, 진작 당신이 막내 일자리를 만들었어야 했다 구요.

조 계집애가 할 일이 없으니 틈만 나면 외박이니 불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호호호...........]

역시 중년의 부인이 선뜻 나서며 중년남자의 편을 들고 있다.

현영이 엄마인 것이다.

현영이 엄마가 남편의 말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현영 이를 보며 눈을 흘기기도 한다.

사실 현영이 엄마는 현영이가 집밖에 따로 사는 것도 불안한데 그것도 요즘은 외박이 잦다는 것을 전해 듣고는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어느 엄마가 그런 딸을 그냥 두고 보겠는가.

현영이 엄마는 현영이가 회사에서 묶어두고 저녁엔 집으로 불러들여 확실하게 신부수업을 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에는 아빠회사에는 일을 죽어도 안하겠다는 아이가 순순히 말을 듣는다.

[어머머. 엄마는. 내가 어린앤가.........

그래요, 아빠, 내가 있을 자리가 있나요.

설마 내게 말단직을 주진 않으시겠죠. 호호호.............]

현영이가 밝게 웃으며 아빠에게 애교를 떤다.

그런 현영이가 마냥 귀여운지 중년남자는 입이 귀에 걸리는 것도 모른 듯이 좋아한다.

설마 했는데 현영이가 회사에 자발적으로 들어오려 하는 것이 아닌가.

천금 같은 딸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도 아빠는 좋은 것이다.

[그럼, 내가 이렇게 귀여운 막내에게 설마 그런 자리를 줄 수 있어.

본사 기획실에 자리를 비워두었어, 진작부터...하하하.....

네가 가도 아무른 불만도 없을 거야.... 허허. 이것이 사내만 되었어도.....]

현영이 아버지는 현영이가 여자로 태어난 것이 서러운 모양이다.

딸 셋을 키웠지만 제일 활달하고 추진력도 좋으며 사교성 또한 나무랄 데가 없었다.

언제나 마음속에 저놈이 아들이었으면 했다.

[어머머...아빠는 또........맨 날 사내타령이야........

그렇지만 아빠 고마워....사랑해. 쪽...............]

현영 이는 벌떡 일어나 번개같이 아빠의 볼에 키스를 해준다.

그런 것이 이 중년남자를 무지하게 기쁘게 하는지 마냥 좋아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허허허. 다 큰 녀석이. 아마 저놈을 데려가는 놈은 복 받은 놈일 거야....암. 허허허......]

그 말을 들은 현영이가 다시 시큰둥해진다.

집에서는 이렇게 모두의 사랑을 받고 사는데 유독 한사람 내가 죽도록 사랑하고 매달리고 싶어 안달하는 그 남자는 날 거들떠도 보지 않는 듯하니.....

그래도 요즘은 예전과 달리 조금 마음을 주고 있는 것 같지만 내가 어디가 못나서 그런 수치스런 행위와 변태의 섹스까지 받아주며 애원할 정도로 쓸모없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 사람을 잊는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다.

그 사람을 얻을 수만 있다면 아빠 앞에서도 벌거벗고 자기의 치부를 까발릴 용의가 있다고 자인하며 서글픈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긴 아빠와 있는 집이다.

괜히 울적한 표정을 지어 부모님들께 불안감을 주기는 싫다.

현영 이는 얼굴표정을 밝게 변화시킨다.

[그러나 아빠, 내가 여기서 아빠랑 같이 산다는 것이 직원에게 알려지면 좋을 게 없어.

그러니 지금 있는 집에 그대로 살게 해 주는 거다. 그렇게 해 줄 거지 아빠.]

현영인 따로 살고 싶었다.

부모님이 극구 반대하고 지금도 들어오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다 큰 처녀를 혼자 살게 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게 현영이 부모님들의 지론이었다.

[안 돼.....이제 너도 집에서 생활해야해....

언니도 시집가버리면 아빠랑 나맘 남는데 나는 그렇다 해도 아빠가 외로워서 안 돼....]

엄마가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선다.

현영 이는 그 소리에 울상을 짓는다.

[엄마.................]

[허허허......내버려 둡시다,

우리 현영이가 아무렇게나 할 아이도 아니고 조금은 자유로워야 멋진 사위를 구하지

않겠어요.

두 언니는 정략적으로 시집보냈지만 우리 현영 이는 그렇게 하지 않고 싶소...허허허..]

현영이 아버지는 현영이 편이었다.

저것이 말처럼 날뛰어도 제 할일은 할 것이라고 여겼다.

차라리 집에 구속시키는 것보다 자유롭게 살게 내버려 두고 싶었다.

[이야 호. 역시 아빠가 최고야........쪽...쪽...쪽....]

현영이가 아빠의 등으로 돌아가 고개를 옆으로 하여 수차례 아빠의 볼에 입술 도장을 찍어 기쁨을 표시한다.

역시 아빠가 최고라는 표현이다.

[당신은 왜 아이를 부추기고 그러세요.

당신나이가 몇인 줄이나 알아요. 후 명년에 회갑이라고요 회갑........]

현영이 엄마는 그런 남편의 태도가 못마땅한지 볼이 불룩하게 부어버린다.

현영이 편을 드는 남편의 처사에 앙칼지게 따지고 나선다.

[허허허. 회갑이면 어디 이 세상 다 살 은 것이오.

걱정 마시오. 난 절대 당신보다 먼저 죽지 않을 테니.....

그러니 저 아이가 하고 싶은 데로 내버려 둬 봅시다. 허허허........

대신 현영 이는 절대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하면 안 돼.............알았지.]

아빠는 반대하는 엄마를 설득하며 다시 한 번 현영 이에게 확실한 다짐을 받는다.

[그럼요 아빠.......내가 왜 편한 직장을 그만둬요. 월급이나 많이 주세요. 호호호..........]

현영 이는 자기편을 들어주는 아빠에게 매달리며 더 한층 애교를 떤다.

[저런 저 계집애가.......하여간 난 겁이나요.........

저것이 아빠만 믿고 저러니...........당신이 저걸 책임지세요.

이젠 나도 모르겠어요.......]

엄마가 할 수없이 포기하고 만다.

허긴 언제 엄마가 아빠를 이긴 적이 있었는가......

아빠는 두 언니에게는 무척 엄하게 대하면서도 막내인 현영 이에게는 그냥 제하고 싶은 데로 두는 너무나 관용 많고 푸근한 아빠였다.

현영 이는 그런 가정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던 것이다.

...................................

현영 이는 차를 몰고 가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차가가고 있는 방향은 차돌이의 집이었다.

이젠 그 집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밤의 변태 같은 행위가 머리에 떠오르자 얼굴이 약간 붉어지며 몸에 전율이 이는 듯 야릇한 웃음마저 그린다.

현영이도 이제 서서히 그룹섹스나 변태 짓에 맛이 들어간 것이다.

며칠 전에 아무도 없이 차돌 이와 둘만의 관계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고 쾌감도 전에 없이 약한 것이 영 찝찔했던 것이다.

옆에 누가 있어 같이 해줄 수만 있다면 다른 누군가의 손이나 입이 나의 허전한 곳을 누비고 애무했으면 하다못해 고통이라도 줄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들은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놀라고 만 것이다.

내가 이런 여자였는지 나의 피가 원래 이것을 좋아했는지 변태같이 행하는 섹스가 그리워지고 바라는 마음이 절실히 일어나다니....현영 이는 무척이나 당황하였다.

그러나 섹스 할 때에는 그 짓이 좋아지고 그렇게 바란다는 말은 못해도 그렇게 했으면 더 심하게 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찬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현영 이는 그렇게 변한 자신이 이상했고 또 한편 오늘 그러한 행위를 마음껏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얼굴이 달아오르고 전율이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며 야릇한 생각에 젖은 것이다.

그러한 생각이 마음을 들뜨게 하고 기분이 마냥 업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젠 차돌이가 원하는 취직 문제도 해결되었고 모든 것이 순탄하고 즐거운 상상으로 가득 차니 콧노래도 나오고 얼굴엔 환희의 미소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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