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 (15/50)

차돌이가 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오니 곰과 외팔이는 보이지 않고 아주머니만 있다.

[형수, 나, 갔다 올게요........]

차돌 이는 아주머니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며 신발장을 뒤적인다.

[저...삼촌.....여기 물이나 마시고 가세요.]

여자가 나가려는 차돌 이를 세우고는 숭늉을 사발에 담아 들고 와서는 준다.

차돌 이는 그걸 받아 입에 대고 벌컥벌컥 마신다.

[여...시원하다. 역시 형수가 최고야........하하.]

차돌이가 빈 그릇을 형수에게 주고 소리 내어 웃는다.

그리고 바쁘게 신발을 신고 휑하니 문밖으로 사라진다.

차돌이가 대문을 급히 벗어나려 하는데 뒤에서 소리가 들린다.

[대장, 바쁜 것 같은데 태워드릴까........]

곰이 뛰어나오면서 차돌 이를 쳐다본다.

[괜찮아요, 형.]

차돌 이는 한손을 저어 거부의 표시를 하고는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차돌이가 버스 정류장을 향해 바쁘게 걸어간다.

사실 차돌 이는 이러지 않고도 편하게 학교에 갈수 있었다.

집에서 생활하려니 일일이 버스를 타고 다니는 곰 처의 행색을 보고는 급히 중고 승용차를 사서는 곰에게 맡긴 것이다.

허나 차돌 이는 아직 나이도 있는데 벌써 승용차에 젖어 게으름이나 피우고 사고가 낙관적으로 바뀌는 것이 두려워 일부러 버스를 타고 조금이나마 젊은이다운 고초를 맛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차돌이가 열심히 정류장을 향해 길을 가는데 저만치서 오던 승용차가 차돌이 옆에 정차하더니 멈춘다.

그리고 차문이 열리더니 꾀꼬리 같은 여자의 목소리가 차안에서 터져 나온다.

[후. 그럴 줄 알았어. 미련한 곰 탱 이.........어서 타.........]

미지였다.

미지는 이렇게 가끔 집에 와서 차돌 이를 태우고 가기도 했다.

[히히....누나네. 알았어.]

차돌이가 주저 없이 조수석의 문을 열고 몸을 들이민다.

차는 다시 달린다.

차가 학교정문을 거쳐 커다란 건물 옆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차돌이가 차에서 내리려고 안전벨트를 푼다.

[누나. 고마워..........]

차돌이가 미지를 향해 웃어주고는 차문을 밀려하자 미지가 정지시킨다.

[잠깐, 차돌아........]

차돌이가 차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미지를 쳐다본다.

미지는 아직 핸들에 손을 잡고 움직이지 않고 앞만 보고 있다.

[나중 마치고 기다릴게.....할 말이 있어.]

미지는 차돌 이를 보지 않고 있다.

예쁜 얼굴에 무언가 심각한 표정이 어려 있다.

차돌 이는 한동안 미지를 바라보다가 거부할 수 없음을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누나..........그럼 나중에 봐.]

차돌이가 차에서 나간다.

미지는 차돌이가 가는 모습을 차안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는 얼굴을 찡그린다.

차돌이가 가고 있는데 어디서 여자가 바쁘게 뛰어와서는 차돌이의 팔짱을 끼고는 건물로 들어서지 않는가.......

[현영이 저 계집애가.........]

차돌이의 팔짱을 낀 여자는 현영이었다.

현영 이는 몇 번인가 차돌 이에게 만나기를 청해도 응해주지를 앉자 자손 심을 상해 못 견뎌 하다가도 또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 것이 매력으로 자기의 마음을 파고들지 않는가.

어떻게 하면 차돌 이를 자기와 가깝게 지내게 할 수 있는 가 온통 그 생각뿐이 없었다.

그래서 말로 안 되면 육탄공세라도 펼쳐야겠다고 생각하고 학교에 먼저 와서는 어디엔가 숨어 있다가 차돌이가 나타나면 번개같이 뛰어가 팔짱을 끼고는 같이 강의실로 가는 것이다.

그러면 현 영이는 느끼는 게 있었다.

남자들의 시퍼런 광기와 여자들의 부러운 시선들을........

그만큼 차돌 이는 학교에서 조금은 명물로 통하고 있는 것이다.

목석같은 사내를 현영이가 꿰차고 들어가니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들은 부러운 시선을 보낼 수밖에......

차돌이도 처음엔 거부의 표시를 완강하게 했으나 조금도 물러나지 않는 현영이의 끈질김에 내 맘대로 해라는 식으로 버려두고 있었다.

그때마다 속삭이는 현영이의 약속을 무참하게 바람 놓는 것으로 만족하기도 했다.

오늘도 현 영이는 숨어서 기다리다가 차돌이가 미지와 같이 차를 타고오자 마음속에서 알지 못 할 질투가 치밀어 올라 미지가 보란 듯이 더욱 밀착하여 차돌이의 팔짱을 끼고는 속삭인다.

[오늘도 바람 놓으실 거 에요.]

차돌 이는 팔꿈치 근처에 현영이의 물컹한 젖가슴 살이 눌려오며 비벼지자 불연 듯 성욕이 치밀어 오름을 느낀다.

그러나 여긴 학교며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곳이니 숨길 수밖에.........

차돌 이는 모른척하고 현영 이를 바라보며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는다.

[허허...참 끈질긴 아가씨네........

좋아, 오늘은 미지누나와 만나기로 했으니 같이 술 한 잔 어때.......

대신 나 돈 없어.]

차돌 이는 미지의 부분적인 승낙의 손을 들어준다.

현영 이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가 금 새 풀어버린다.

[좋아요....둘만이 아니라 조금 섭섭하지만........]

[하지만 현영 이는 우리 뒤를 따라왔다가 우리가 어디를 가던 지 20분후에

들어와야 해.......

우연히 만난 것처럼 말이야........]

차돌 이는 현영 이와 만나게 되는 장면을 우연하게 꾸며 미지에게 쓸데없는 오해를 받기 싫었다.

그래서 그런 제안을 한 것이다.

[어머......여자에게 미행이나 시키다니 난 싫어요.]

현영 이는 고개를 젓는다.

[어랍 쇼..이게 무슨 말이지,

현영 이는 미행에 도사가 아니야...내 뒤를 따라다닌 게 어디 한두 번이야 하하하......]

차돌 이는 현영 이를 보며 크게 웃는다.

얼굴엔 어처구니가 없어하는 표정을 잔뜩 담고서 시선을 현영 이에게 준다.

[어.......어머머......몰라요..............]

현영이가 부끄러운지 아님 자기의 행동이 들통 나 화가 나는지 심 떠 렁 해진다.

[하하하................]

[호호호,,,,,,,,,,,,,,,,]

두 사람은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

.

.

조그만 레스토랑

아담하게 꾸며진 홀에 탁자는 대 여섯 개 정도밖에 안 되는 레스토랑치고는 작은 편이다.

[왜, 누나 아까부터 내 얼굴만 보고 말을 안 하니............]

차돌 이가 커피 잔을 주물럭거리며 미지에게 묻는다.

[,,,,,,,,,,,,,,,,,,,,,,,,,,,,,,,,,,]

그래도 미지는 말이 없다.

차돌 이는 커피 잔을 들어 입에 가져가 남은 커피를 모두 마시고는 자세를 잡고 일어나려는 시늉을 한다.

[할 말 없으면 난 가야겠어.

더 이상 앉아 있기가 어색하고 .............]

차돌이도 이런 분위기가 어색했다.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차돌이가 일어나 가방을 집어 들고 나가려하자 미지가 잡는다.

[앉아 봐....]

[어라...이제 입을 여네........]

차돌 이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미지를 쳐다본다.

미지는 차돌이가 자리에 앉자 테이블위의 커피 잔을 보며 조용히 말한다.

[차돌아,

왜 나를 기피 하는 거니..........]

미지의 음성은 울먹이고 있었다.

[어.........누나, 그렇게 보였어.

난 그런 적 없는데...........

언제는 누나가 날 왕 따 시키더니 갑자기 무슨 말이지........]

차돌 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한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느냐하는 말이지만 실상은 미지의 말이 맞았다.

모든 것은 차돌이의 흉계에 의한 것이지만 미지는 그걸 알 수도 없었고 설령 알았다 해도 이젠 차돌이의 마수에서 벗어날 자신도 없었다.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느냐는 차돌이의 말에 미지는 서운함과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하긴 과거 차돌 이를 못 살게 군 경험이 수도 없이 많지 않은가.........

그것 때문이라면.........미지는 모든 게 슬퍼지고 암담해진다.

[미안해 그때는 정말..,,,,,,,, 허지만 그때랑 지금이랑 다르잖니.........]

[누나, 뭐가 다른데........

그깟 육체관계 한번 가졌다고 우리 사이가 달라 진거야.....

난 누나를 연인이나 뭐 그딴 것으로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어.

그러니 누나도 그때 일 잊어버리고 살 어.]

차돌 이는 냉정했다.

육체관계가 있었다고 사람을 억압하거나 구속하려 들지 말라는 이야기다.

자기는 벌써 잊고 누나로 여기려하는데 무엇 때문에 누나가 안달하는가 하는 말이다.

속으로는 미지가 이 사슬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걸 알면서 능청스럽게 대수롭지 않은 일로 무얼 그렇게 심각하게 대하는 가 오히려 미지가 이상한 듯 충고 비슷하게 말 한다.

[뭣.........뭣이. 그딴 것이라고........

넌 여자의 순결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 줄 모르고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할 수 있지.......흑....흑.........]

미지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서러운 것이다.

미운 강아지마냥 함부로 대하고 그랬지만 어찌하였건 자기의 23년간을 고이 간직한 처녀를 가져가지 않았는가...

그런 처녀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볍게 여기는 차돌 이가 야속하기만 하였다.

돌이켜보면 그때 못된 짓 한 것도 차돌 이가 너무 영리하고 어른스러워 괜한 심통을 부린 것에 지나지 않는데 남자가 그딴 걸 하나 이해하지 못하다니.........이런 남자에게 내가 순결을 가져갔다고 매달려야하나 그런 생각도 든다.

그래서 서러운 것이다.

알지 못 할 눈물이 흐르고 슬퍼지는데 뒤이어 들려오는 차돌이의 말은 심장을 찌를 듯이 아프기만 하다.

[누나....난 이 세상에서 나의 사랑을 얻을 사람은 오직 한사람이야.

난 그 여자를 위해 이렇게 잘살아 보려고 발버둥치고 있어.

그 여자는 누나랑 태생이나 방식도 틀려.

오직 줄줄만 알고 받기를 모르는 그런 여자이지.

난 평생을 그 여자에게 봉사하고 살기로 맹세한 놈이야.

괜히 누나가 내 옆에서 혹시 나를 어찌 해 보겠다면 일찍 생각을 접는 것이 좋아.

쉽게 말하자면 그 여자 외엔 나에게 여자란 그저 즐기는 대상일 뿐이란 말이야..]

[아니...그럼 나도 그 대상자에 한사람이란 말이야. 내가..이 김 미지가......]

미지는 기가 찼다.

우수에 잠긴 모든 것이 나를 무시한 채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어제까지 분명 허무에 휩쓸렸다가도 한편으로는 야릇한 행복감에 빠져 있지도 않았던가....

우리 것보다는 내 것을 원하고 땅보다는 하늘을 사랑보다는 돈에 탐욕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 아름답고 아늑해야할 이 세상에 이기주이를 뿌리는 몹쓸 사람들이 많은 작금에 차돌 이는 그런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고 순수해 보였으며 자기의 순정을 호소하면 서로 의지하고 행복한 세월을 보내리라 여겼는데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란 말인가...

미지는 차돌 이를 빤히 쳐다보며 자기는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란다.

차돌 이는 순간 멈칫해진다.

미지의 눈물에 얼룩진 얼굴과 고운 눈망울을 바로 쳐다보기가 민망해진다.

미지가 누군가......

어떤 남자라도 이렇게 예쁘고 세련된 미지를 좋아하지 않겠는가,

사실 차돌 이도 그런 미지가 처녀를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에 적이 놀라기도 했지만...

차돌 이는 미지에게서 눈을 돌린다.

[그래. 누나도 한가지야.......

난 그 여자 외엔 어떤 여자건 내겐 정액 받 이로 밖에 여기지 않아........

누나도 혹시 날 좋아한다면 포기하고 옛날에 날 대했던 것처럼 하는 것이 좋을 거야.

그래야 상처가 덜 할 테니.........]

차돌 이는 확고했다.

사실 그것이 진정 차돌이의 마음이었기에.....................

[엉...엉............]

미지가 그만 대성통곡을 터뜨린다.

아직 초저녁이라 손님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음 다른 사람들의 눈요기가 충분히 될 수 있을 정도로 소리 내어 울어버린다.

카운터에 멍청히 앉아있던 아르바이트 학생이 쳐다보다 차돌 이와 눈이 마주치니 고개를 돌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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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는 한동안 울었다.

미지의 울음이 잦아지고 그 울음소리대신 처연하고 젖은 음성이 새어 나온다.

[차돌아, 나 잘할게......나만 생각해줄 순 없니.....

그래...... 이제부터 차돌이라 부르며 반말도 하지 않을게......]

미지는 생각한다.

고통은 짧고 행복은 긴 법이라고.

지금 이 순간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이 한세상 한숨과 눈물로 지새울지도 모른다.

닭이 새벽에 홰를 치며 우는 것도 밝고 희망찬 미래를 알리기 위함이 아닌가......

모든 자존심 따위 팽개쳐버렸다.

오직 차돌이의 사랑만이 절실했다.

[누나, 미안해..

이건 지금 생각하고 한 말이 아냐.......

난 그럴 것이고 그렇게 꼭 살아야 돼.........]

차돌 이는 미지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냉정했다.

마음속에 숨겨둔 사랑은 그 무엇도 파괴하거나 부술 수 없는 단단한 쇠붙이처럼 견고하고 단호했기에 미지의 순수한 사랑을 뿌리치는 것이다.

어쩌면 차돌이의 지금 심정은 미지가 자기의 마수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사실 미지를 원해도 커다란 철창살이 있지 않은가.

모녀가 한 남자를 사랑하다보면 언젠가는 마주칠 것이고 그러면 꼴 볼견한 상황은 눈에 보듯 선하지 않는가........

두 여자 모두 자기의 사슬에 묶여있으면 자기의 변태성향에 천인공로 할 행위를 연출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어쩌면 그것이 두려웠기도 했다.

마냥 생각하고 느낀 변태 섹스행각을 모녀를 상대로 해본다는 기대감과 호기심도 컸지만 이순간만은 그런 사태를 막고 싶은 심정이 들었던 것이다.

얼마나 사이좋고 정다운 모녀인가.

그걸 자기가 깬다는 것이 마음에 결렸던 것이다.

[흑.......난 어쩌라고...........]

미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자기의 처녀를 가져간 남자가 자기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설령 그의 곁에 있고 싶어도 창녀 같아야 한다하지 않는가.

그의 여성 편력을 눈앞에 보면서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아무른 항의도 하지 못해야 한다하지 않는가.........

어찌 꽃다운 23살의 처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인가...........

그러나 차돌 이는 그걸 원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차돌이의 마음속에 숨겨둔 사랑이 무척이나 부러웠고 질투가 일어나기도 했다.

얼마나 마음속에 견고히 쌓인 사랑이면.......저토록 절실할 수가 있을까하는......

그러니 어쩌겠는가.

이미 단단히 굳혀있는 그의 마음인데. 미지는 그저 막막하고 슬플 뿐이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머...차돌 씨......어라 미지도 있었네..........

계집애, 어디를 갔나 했더니 차돌 씨와 오붓하게 테이트를 하고 있다니.......

그래. 이게 우리를 따돌리고 하는 바쁜 일이야........]

현영이었다.

미니치마에 쭉 뻗은 다리에 스타킹을 신었지만 여과 없이 내어놓고 차돌이의 옆에 앉으며 미지 모르게 윙크를 한다.

[어. 현영이네..........

넌 어쩐 일이니...........]

미지가 급히 얼굴을 매만지며 어색하게 대답한다.

[왜. 천하에 내가 못갈 곳이 어디 있어.

그런데 너 얼굴이 왜 그래, 운거야....

차돌 씨 미지를 때린 거 에요.]

현영이가 궁금한 듯 묻는다.

친형제는 아니지만 한집에 기거하고 차돌이가 항상 누나라 칭하고 모든 수모를 당해도 말 한마디 없이 받아주지 않았는가,

미지의 친구인 자기한테는 반말을 하고 이름을 불러대는데도 미지에겐 항상 공경했는데 이렇게 둘이 있으며 무엇 때문에 미지가 울어야 할 일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현영이의 머릿속에 갑자기 안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혹 저 계집애가 차돌 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나보다 더 차돌 씨와 가까워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미지가 진정 차돌 이를 좋아하게 된다면 자기로서는 연적이 하니 느는 정도가 아니라 손에 벅찬 강적을 맞이하게 되는 셈이니......제발 그런 일이 없도록 마음속으로 빌면서 차돌 이를 보며 웃어 보인다.

그러나 그 웃음에 힘이 없어 보인다.

사실 현영 이는 차돌 이가 너무나 좋았다.

어떤 남자라도 자기가 제의하면 따라오지 않는 남자를 만나보지 못했는데 나이도 한살이나 어린 차돌 이는 행동이 어른스럽고 자기를 마치 지나치는 여인정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봐주니 처음엔 건방져 보이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점점 그 점이 마음에 들고 급기야 강한 카리스마로 다가와 자기의 심장에 박혀 이젠 빼지도 못할 정도로 온통 차돌 이의 생각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왜 때려......

미지누나가 마음상한일이 있어 그러나 봐.........

누나는 성격이 활달하니 곧 괜찮아 질 거야....

그나저나 여긴.......아니 오늘 모처럼 만났으니 한잔 사주지 않겠어.

요란한집 말고 .................]

차돌 이는 어색했다.

그래서 자기도 무신일인지 모른다는 시늉을 하고는 누가 술이라도 한잔사달라고 하면서 분위기를 얼버무린다.

[좋아..차돌 씨가 원하면 지옥 염라대왕 앞에서라도 내가 술상을 차려주지 호호호.........]

현영 이는 환하게 웃으며 적극적으로 나선다.

차돌 이와 같이 있고픈 마음이 있었는데 잘되었다 싶어 호기롭게 외치며 나선다.

[어머머, 저 계집애........말하는 것 좀 봐.......

차돌 이가 무슨 술꾼으로 아나 봐........]

미지가 어느새 진정했는지 현영이의 말꼬리를 문다.

미지는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데 현영이 가 나타나 차돌 이에게 아양을 떨지 속으로 분노가 치밀었다.

아무리 그래도 네게까지 한 테는 질 수없다는 묘한 질투심이 일어난 것이다.

[왜.....내가 못할 줄 아니......

난 차돌 씨를 위해서라면 뭣이라도 할 수 있어.

그런 내 맘을 몰라주는 목석같은 차돌 씨가 얄미워서 그렇지...........]

현영 이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쌍심지를 돋운다.

미지가 차돌이 앞서 대변인 노릇을 하자 더욱 기분이 상했다.

넌 누나로서 만족해라는 그런 식의 억양이 묻어있었다.

[어라....불꽃이 내게까지 튕겨오네..........

자. 나가자..........누나도 갈이 가지........ 소주 먹는 데로........]

차돌 이는 두 사람의 실랑이가 자기에게로 번져오자 잽싸게 피한다.

여자들의 실랑이가 예사롭지 않았고 심해지면 오랜 우정이 자기로 인해 틈이 생길까 우려한 것이다.

그래서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서 나가는 것이다

[아냐..미지는 바쁘니까 가야 할 거야........

우리 둘이서 가자.........]

현영 이는 미지를 향해 혀를 쑥 내민다.

[어머머. 점점........

계집애가.....나는 네가 우리 차돌 이를 잡아먹을까봐 감시하러 라도 가야겠어.

계집애가 차돌 이를 보더니 날 빼돌리려고...흥......턱도 없지...........흥.....]

미지는 약이 올랐다.

현영이가 뭔가 딴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았고 자기 없을 때 현영이가 꼬리를 흔들어 차돌 이를 유혹할까봐 겁이 났다.

[하하하........여자들끼리 실 갱이 하는 것도 정말 재미있네.......

자,,,자..여기서 그만 떠들고 그만 나오시죠........멋쟁이 두 분 아가씨.......]

차돌 이는 보다 못해 두 사람을 말린다.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시늉을 한다.

그러자 두 여자도 할 수 없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현영 이는 차돌이의 말에 그냥 지나치지를 않는다.

아마, 미지가 들으라고 하는 듯 웃으며 말을 받는다.

[호호호..역시 차돌 씨는 사람을 볼 줄 안다 말이야...호호호.......]

............................................

포장마차.

벌써 세 사람은 술이 거나하게 되어 있었다.

빈 소주병이 두병이나 있고 다시 새로운 병이 오고 그 술이 잔을 채운다.

[치 이.... 안주 좀 다른 것 시키면 안 돼. 이게 뭐야, 이게...치 이.........]

현영이가 발음이 부정확한 소리로 투덜거린다.

[난 꼼 장어가 좋은데....나 술 사주려 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내식대로 먹어야지.....누나도 싫어.....]

[......................................]

미지는 말이 없다.

허긴 미지라고 별게 있겠는가.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느끼한 냄새나는 꼼 장어를 어디 먹어보기라도 했었는가.

차돌 이가 있고 현영이가 차돌 이에게 꼬리를 치고 있으니 불안해서 억지로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속이 울렁거려 미칠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어찌 싫다 할 수 있겠는가....정확하고 활달한 미지가 이렇게 참을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분명 차돌 이에게 다른 마음이 있어 꼼작 못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럼, 다른 것도 시켜...허나 그럼 난 가니 둘이서 먹으면 되겠네........]

차돌 이는 막무가내다.

그런 차돌 이를 보는 현영 이는 입이 한발이나 나오며 더욱 투덜거린다.

[어머머......정말 자기마음대로야.. 미지야 그렇지 않니.............

고집불통, 말미잘......흥.......정말 미워........]

현영 이는 자기 뜻이 관철 안 되자 술을 들이킨다.

이미 발갛게 변한 얼굴이 더욱 붉어진다.

긴 속눈썹아래 양 볼이 붉게 변하여 입이 튀어나와 삐죽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보이기도 한다.

현영이 빈 잔을 차돌 이에게 준다.

차돌이가 빈 잔을 받아 현영이가 따라주는 술을 받아 탁자에 놓자 현영이가 자기를 빤히 쳐다보며 심각하게 묻는다.

[이봐요, 차돌 씨.............

내가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솔직하게 말해 줄래요.]

차돌 이는 뜬금없이 심각하게 물어오는 현영이의 말에 어리둥절해 지다가 미지를 한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도대체 차돌 씨의 여성관은 어떤 거 에요........

차돌 씨는 정말 누구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리고 나는 차돌 씨의 여자로 써 자격이 없나요.

왜 날 멀리 하는 거 에요........

난 차돌 씨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정말 궁금해요.]

현영 이는 머리를 숙이고 만다.

아마 자손 심을 버리고 속마음을 미지 있는데서 한 것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혹시 차돌이가 자기를 싫다하면 더욱 미지보기에 창피하기에 미리 머리를 숙이고 잔을 잡고 있는 가느다란 자기 손만 쳐다보고 있다.

한편 미지도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도도하고 당당하기만 한 현영이가 모든 걸 버리고 차돌 이에게 사랑을 구걸하다시피 하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미지는 현영이가 차돌 이를 좋아한다고는 짐작했지만 이렇게 목매달고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미지는 눈을 크게 뜨고 차돌 이를 바라본다.

차돌이의 대답이 궁금해서이다.

이미 자기의 처녀성을 가져간 차돌이가 딴 여성을 원하면 자기는 어떻게 하나.

미지는 차돌 이가 어떤 말이 나오는지 정말 궁금하였다.

차돌이도 그때 미지를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조금은 당황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듯 하더니 삽시간에 평정심을 되찾는다.

[그렇게 알고 싶어.

허긴 내가 말하지 않으면 언제까지 졸졸 따라다닐 테니 오늘 말해주지....

분명히 난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내가 철들고 그 사랑하는 사람을 한시도 내 뇌리에서 지워보지 않았어.

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난 언젠가 그 사랑을 내 품에 가득 안고 말겠다는 집념하나로 지금껏 어려움도 견디며 살아온 놈이야.

나에게 그 여자가 전부며 그 여자 없는 삶은 생각해 보지 않았어,

난 그 여자를 위해 살 것이고 그 여자의 뜻 아래 움직이는 로봇일 뿐이야.

지금 나에겐 다른 여자란 성욕대상자이며 노리개일 뿐이지.

말이 심하게 들릴 진 몰라도 그게 확실한 내 마음이야.

현영 이는 나 아니라도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 구 태어 나 같은 놈을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모르겠어.

솔직히 난 현영이도 성욕 대상일 뿐인데..........

그리고 난 그 여자 외에는 정상적인 성행위로는 만족을 못 느끼는 놈이야.

아주 지독한 변태란 말이야.........

그러니 모든 걸 처음으로 가는 게 좋아. 나 만나기 전으로..............

어때 이제 시원해.........

아니 내가 도리어 시원하네.......]

차돌 이는 말을 끝내고 소주를 입에 털어 넣는다.

마음속에 숨겨둔 감정을 토해내니 시원하기도 했다.

그리고 곧 이어 터질 현영이의 불같이 노한 소리를 감당할 준비를 하며 눈을 감는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소리가 없다.

다만 귓가로 약하게 들려오는 울음소리만 있을 뿐.........

차돌이가 슬며시 눈을 뜨고 현영 이를 바라본다.

현영 이는 자기 손가락을 매만지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마 차돌이가 자기를 전혀 마음속에 담아두지도 않았고 오직 성욕대상자로 보았단 사실에 서러움이 밀려왔는지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현영 이는 눈물을 흘리며 다시 물어온다.

[그럼, 그 사랑을 얻기까지 당신에게 다가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이네요.

만약 당신이 그 사랑을 얻고 그 사랑이 날 인정하면 그때도 지금처럼 날

대하실건가요.]

차돌 이는 다시 흠칫 놀란다.

현영이가 이처럼 나올 줄은 진정 몰랐기 때문이다.

[이봐요, 아가씨.......정신 차려요.

난 아직 그 사랑을 만날 준비도 아니 되었고 그동안 수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맺을 건데

그 여자 모두가 현영 이처럼 그러길 원한다면 수도 없이 많은 여자들이 내게 있을 건

뻔 한 일이 아냐....

자손 심 강한 현영이가 그걸 참을 수 있겠어. 그리고 현영이 부모님은 좋아하겠다.

난 현영이가 내 소굴에 드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어.

난 마음먹은 여자를 한 번도 그냥 보내준 적이 없어.

꼭 소유하고 내 종으로 만들고 마는 사람이야.

지금도 내 한마디면 여기서 치마를 내릴 여자가 더러 있어.

난 천성적으로 거짓말은 못해.......

현영이 너도 내 종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내 참고 있으니 이만 포기하고 내 눈에서 벗어 나도록 하는 게 좋아......

그러니.........에이......술맛 버렸다.

일어나자.......난 가야겠으니...........]

차돌이가 이야기하다말고 일어나 버린다.

현영 이와 미지는 아직도 큰 눈을 감지 못하고 있다가 차돌이의 행동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킨다.

미지도 놀라고 있었다.

자기는 이미 차돌 이에게 몸을 줬는데 차돌이가 자기까지도 성욕 대상자로 삼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어찌 보면 차돌이가 고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차돌이가 집을 나가 딴 살림을 하려한 것은 자기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겠다는 그런 표시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뜩 들은 것이다.

순간 미지는 이런 차돌 이를 위해서라면 창녀 같은 짓을 해서라도 차돌이 곁에 있고 싶어진다.

말로만 듣던 남자들의 변태가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그 어떤 행위라도 감수하고 곁에 있고 싶어진다.

물론 일화가 이미 차돌이의 종이 되어있는지 몰라서 하는 생각이겠지만 미지는 차돌 이의 행동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없다.

지금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차돌 이가 더없이 멋있어 보여 진다.

대신 현영 이는 말이 없다.

조용히 주인에게 다가가 계산을 하고는 거리로 나가 차돌이 곁에 선다.

차돌 이는 두 사람을 쳐다본다.

조금 전의 냉혹한 표정은 사라지고 취기어린 어린 소년처럼 두 사람을 보며 웃는다.

[내가 대리운전 불렀어. 타고가..........]

[그럼, 넌.............]

미지가 차돌이가 걱정되어 묻는다.

[응. 난 들릴 데가 있어.

이 기분으로 집에 가지를 못해서 어디 조용한데 좀 있다 가야겠어.]

[응......그래 알았어.]

미지는 차돌이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기분이 심란해서 혼자 있고 싶은 줄 알았다.

조금 있으니 대리운전기사가 왔고 차돌 이는 먼저 현영 이를 차에 태워 보낸다.

[잘 가.............]

현영이가 말이 없다 .

현영이의 차가 사라지고 미지도 차에 올라탄다.

[차돌아........ 나, 네 집에 들 리도 되지......]

무언가를 갈망하는 애타는 눈빛이 그득하다.

그런 미지를 쳐다보는 차돌 이는 순간 흠칫했으나 이내 부드러운 미소로 답해준다.

[응..누나.....하지만 들릴 데는 연락하고 와야 해......

난 누구라도 내 집에 들리 지 말라고 엄명을 내려놓아 집에 와도 내 허락 없이는

대문 안에 한발 짝도 들여 놓을 수 없을 거야....

그러니 차라리 오지 않는 게 누나에게 편 할 거야.

온다면 누난 울고 갈 거고 그 눈물은 평생을 갈거니........이건 누나생각해서야....

잘 가............. 누나............]

미지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왜 차돌이집에 가면 내가 울고 갈 일이 생긴단 말인가.......

차돌이의 여성관이 아무리 지저분해도 지금 마음이면 충분히 견딜 것 같은데 어떤 것이 나로 하여금 가슴 아프게 할 것이 있어 저토록 연막을 친단 말인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차돌이가 저런 말을 한다면 필시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다.

내가 아직 차돌 이에게 믿음을 주지 못해서 일거다

언젠가는 차돌이도 나의 마음을 읽고 따뜻이 맞아줄 때까지 지금은 마냥 그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기를 매몰파게 대하는 차돌이의 말에 섭섭한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그려져 나타난다.

미지는 그런 차돌 이를 쳐다보다가 시동을 건다.

미지도 사라지고 차돌 이는 혼자임을 깨닫는다.

터벅터벅 걸아 가는데 갑자기 자기 옆으로 차가 정차한다.

차돌이가 고개를 돌리자 아는 차가 정차하며 차문이 열린다.

[타세요.]

현영이다.

현영 이는 먼저 가는체 하다가 저만치 차를 세워두고 미지가 가고 난 뒤 차를 돌려 차돌 이에게 온 것이다.

[왜, 아직 가지 않았어. 난 갈 곳이 있다 했는데........]

차돌 이는 집에 간줄 알았던 현영이가 도로 오자 의아해서 묻는다.

그러나 현영 이는 아직 냉랭한 소리로 앙칼지게 대꾸한다.

[치 이.. 갈 곳이 뻔 한 곳 아니에요,

빨리 타세요, 내 마음 바뀌기 전에.............흥.......]

[어라 이 아가씨가 겁주네...... 알았어.]

차돌이가 현영 이를 보며 싱긋이 웃고는 차에 탄다.

차가 달리기 시작하고 대리운전기사가 묻는다.

[어디로 모실까요,]

[으음.......아무 곳이나 가까운 곳 홍등가로 가 주세요.]

차돌이가 가고자 하는 곳을 밝혀주자 현영이 눈을 부라리며 큰소리로 저지한다.

[어머머....정말 이상한 사람이네.......

차돌 씨....돈도 없잖아요.

쓸데없는 생각 말고 집으로 가요.

아저씨, XX동으로 가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기사는 이상한 웃음을 흘리며 현영이의 뼁� 공손히 대답한다.

차돌 이는 불쾌했다.

현영이가 마치 자기를 손아귀에 쥐고 있는 듯이 보였는가, 노한 눈길로 현영 이를 바라본다.

[정말 겁 대가리가 없네.

나 성질나면 물불을 안 가려...

어디서 여자가 남자가 하고자 하는 일을 방해하고 그래.......]

[치이....... 성질 내 보라 지, 설마 여기서 날 패 죽이기야 하겠어.]

현영이도지지 않는다.

비록 차돌 이를 쳐다보지는 않지만 확고한 결심을 한 것 같다.

차돌 이는 건방진 현영이의 대꾸에 뺨이라도 때려주려고 손을 쳐들었지만 그만 슬그머니 내리고 만다.

[이런. 씹 헐...... 이거 내 꼬락서니가 엉망이 되 버렸잖아.......제기랄.]

차돌 이는 혼자 궁시 렁 거린다.

현영 이는 차돌이가 뭐라 지껄이던 상관이 없는지 아무소리도 않고 슬그머니 차돌이의 손을 잡더니 자기 배 쪽으로 당겨 포근히 감싼 다음 눈을 감아 버린다.

차돌 이는 그런 현영이의 행동아 어처구니도 없었지만 술 먹은 탓이 아니겠느냐 생각하며 자기도 눈을 감는다.

[손님. XX동에 다 왔는데요.]

[아. 벌써요, 그럼 저기 슈퍼 지나 우회전해서 제일 산 쪽에 가서 세워주세요.]

차돌이가 눈을 뜨며 자세를 바로하고 짐을 챙긴다.

차는 차돌이가 원하는 방향에 섰고 선 곳은 차돌이의 집 대문 앞이었다.

차 소리가 들리니 곰이 뛰어나와 누군지를 살피더니 차돌이가 타고 있는 걸 보고 작게 묵례를 하고는 차돌이가 내리길 기다린다.

차돌 이는 현영 이를 바라본다.

[이제 집에가....

너 때문에 내가 기분이 엉망이 되었다는 걸 명심해.

앞으로 이런 일 한번만 더 있으면 절대 용서하지 않겠어.]

차돌이가 그 말을 하고 차에서 내리려는데 현영이가 붙잡는다.

차돌 이는 현영이가 또 다시 자기를 제지하자 불같이 노한다.

성난 얼굴로 현영 이를 바라보며 뭐라 한소리 하려했는데 현영이의 크고 맑은 눈에 어렴풋이 눈물이 고여 있는 걸 보고 화를 억누른다.

[또 왜 그래.......]

차돌이의 목소리는 아직도 냉랭하다.

[나. 오늘 차돌 씨와 있고 싶어....나 여기서 자고가면 안 돼.]

현영이가 뭔가 굳은 결심을 한 것인지 말투가 비장하기 그지없다.

허긴 여자로서의 자존심을 모두 팽개친 소리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너 내가 어떤 놈인지 아까 이야기 들었잖아.

왜 사서 고생하려고 지 랄 하는 거야.

그런다고 내 마음이 바뀔 줄 알아....괜한 헛수고 하지 말고 빨리 집으로 꺼져.]

차돌이가 현영이가 잡고 있는 손을 뿌리치고 다시 문을 열고 나가려한다.

그러나 현영 이는 다시 차돌 이를 잡는다.

[나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냥 차돌 씨 옆에 있고 싶어.

정말이야 이일로 절대 차돌 씨를 괴롭히는 일은 없을 테니 오늘 하루만 재워 줘........]

현영이의 두 눈에 물기가 자욱하다.

얼마만큼이나 하기 싫은 말과 행동을 보여주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기에 그녀는 점점 서러움에 복받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런.....맹랑한 아가씨 보았나............]

차돌 이는 현영 이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현영이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쳐다보고 있다.

그 눈에 확고한 결심이 어려 있는 듯 입술도 앙 다물고 있다.

[너...후회 안할 자신 있어.]

[그래, 절대 후회 안 해...]

현영 이는 입술을 앙다물며 다짐한다.

[알았어, 내려,]

차돌이가 내리고 뒤이어 현영이도 내린다.

차돌 이는 곰에게 기사를 저 아래까지 태워주고 차를 집안에 들여 놓으라 지시하고는 집안으로 들어간다.

차돌이가 현영이가 집안에 들어서니 험상궂은 외팔이와 곰 처가 반갑게 맞는다.

[삼촌, 식사 전이죠.

오늘 씨래 기 국 끓여 놓았는데 정말 맛이 괜찮아요.]

[오..그래요, 형수.....

그럼 이 아가씨 것도 부탁해도 될까요.]

차돌 이는 곰의 처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며 현영이의 것도 부탁한다.

[그럼요. 많이 끓여 놓았으니 실컷 드셔도 모자라지 않을 거 에요...호호호...]

[아이고 형수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만날 늦게 와서 일만 시키고 그러네요.

언제고 형이랑 형수를 내가 톡톡히 대접할 테니 조금 봐 주세요. 헤헤헤......]

차돌 이는 고개를 숙여주고는 멋쩍게 뒷머리를 글 적 인다.

[무슨 말씀을..삼촌도 참..]

곰의 처도 차돌이의 아량이 멋 적는지 고개를 돌리고 만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듣고 있던 현영 이는 조금 놀라고 있었다.

그렇게 무뚝뚝한 차돌이가 아줌마 앞에 간사한 웃음을 흘려가며 아부를 하는 모습이 천진난만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도 이런 면이 있구나, 새삼 차돌이의 다른 면모를 발견하고는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지금 현영이가 보는 차돌 이는 세상의 모든 착함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들과의 허물도 경계도 없는 너무나도 편안하고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자상한 면이 있는 사람이니 내가 열성을 보이면 사랑을 쟁취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집과 집사이의 경계를 알리는 담이 우리 사는 세상에 빠짐없이 있지 않은가.

이것은 필요불가견한 조치이긴 하다.

모르는 사람을 경계하고 방어하기 위한 최초의 방법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남으로부터 오는 위협 같은 불안을 다소나마 해소 할 수 있기에 누구나가 취하는 조치가 아닌가.

그러나 우린 가끔 이웃 간의 담장을 허물고 서로 왕래하며 사는 이웃도 본다.

무엇이 이웃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궁금한 건 당연지사다.

어려운 것도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는 마음을 없애고 이해하고 존중하며 서로가 숨김없는 마음으로 진정으로 대한다면 사물의 담뿐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속의 벽도 없어질 것이 아닌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는지는 몰라도 이 순간 현영 이는 자기는 언젠가 차돌이의 마음속에 있는 나라는 벽을 허물고 편안하고 다정한 그런 사람이 되어 그의 마음속에 안주하고 싶었다.

현영 이는 마치 천국에 온것 같았다.

그런 현영이가 예쁜 얼굴로 환하게 웃자 그 모습이 마치 선녀가 웃는 듯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곰의 처는 그런 현영 이를 보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어머나..어쩜 이렇게 고울 수가.......웃는 모습이 마치 천사 같네요.

오......... 고운 아가씨 어서 들어가요.]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호호호..]

현영 이는 기분이 하늘을 나를 것 같았다.

누군들 자기를 예쁘다고 칭찬해 주는데 싫어할 리가 있겠는가, 아주머니의 찬사가 차돌이가 옆에 있어 듣고 있으니 더욱 기분이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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