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녀를 위한 소나타◀ 제18화 키스 테크닉 Ⅰ (16/19)

▶창녀를 위한 소나타◀ 제18화 키스 테크닉 Ⅰ

불쾌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고나서 미선은 머리를 쓸어 넘

겼다. 그녀의 배다른 언니가 진희의 선배만 아니었어도 진

희에게 시달릴 이유가 없을 터였다. 미선은 체질적으로 진

희와 같이 고집스럽고 이기적인 성격을 싫어했다.

그것은 미선 자신이 진희의 성격을 능가할 정도로 강했기

때문이다. 미선은 자기가 원했던 것을 손에 넣어 보지 못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녀는 널따란 침대에서 몇 번 몸을 뒤척였다. 이태리에

특별 주문을 해서 맞춘 침대였다. 일본으로 섹스 관광을 하

러 러브호텔을 들렸을 때, 회전하는 커다란 원형 침대를 눈

여겨보았던 덕에 마음에 드는 침대를 주문할 수 있었다. 그

녀는 이 침대에서 섹스 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지만, 이곳에

누울 자격을 갖춘 사람들은 드물었다.

어렴풋하게 동이 터 오고 있었다. 한숨을 쉬면서 시트를

밀어내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봉긋 솟은 하얀 살결의 가슴이 탐스럽게 흔들렸다.

그녀는 오늘 할 일이 무척 많았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

을 붙였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칭얼대는 시아를 해결해야했

다. 미선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익숙하게 전화 버튼

을 차례대로 눌렀다.

" 오늘 한 여대생을 맡아줘야겠어. K 여대 도서관을 가서

뒤져봐. 그 애는 실버야. 네 마음대로 해도 좋아. "

사냥감을 위한 덫은 충분했다. 그녀는 짧게 명령조로 말

을 마친 다음 *표 버튼을 눌렀다. 음성으로 메시지를 남겨

놓았으니 오늘 시아는 더 이상 그녀에게 달라붙지 않을 것

이었다.

미선은 기지개를 크게 켜고 간단한 맨손 체조를 했다. 햇

살이 조금씩 내리쬐었다. 발코니에 그대로 나가서 몸을 기

대었다. 우유를 배달하는 청년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날 시

간이었다.

" 안녕? "

어김없이 그 시간에 우유를 배달하는 청년을 오늘도 볼

수 있었다. 청년은 그녀의 맑은 인사에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황급히 시선을 내렸다. 그녀

는 언제나처럼 눈이 부신 하얀 나신이었다. 청년은 힐끔거

리며 미선의 몸을 보았다. 그렇게 한눈을 파는데도 사고가

안나는게 신기할 정도였다. 벌써 한 달이 넘도록 미선은 그

에게 알몸으로 그렇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 귀여워. "

미선은 콧노래를 부르고 손을 흔들어 보이며 발코니를 떠

났다. 청년은 오늘도 한참 동안을 아무도 없는 그녀의 발코

니에 시선만 고정시키고 있을 것이다.

시간을 점검하고 그녀는 주영에게 전화를 했다. 잠에서

덜 깬 듯한 나직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선은 겉치레

로 하는 인사는 생략하고 주영을 바꿔달라고 말했다.

" 제법 근사한 목소리네. "

주영이 전화를 받을 때까지 미선은 주영의 남편 목소리를

음미하고 있었다. 눈여겨보았던 주영의 나약해 보이면서도

자극적이었던 군살 없는 몸매를 매일같이 어루만지는 게 바

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라 생각하니 질투가 밀려들고 있었

다.

미선의 취향은 꽤 까다로운 편이었다. 진희나 시아 정도

의 여자라면 주변에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주영은 뭔가

특별한 느낌이었다. 미선은 입맛을 다시고 고양이처럼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였다.

" 여보세요. "

결코 편히 잠들었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미선은 연민을

느끼며 짤막하게 아침 인사를 했다. 수화기 저편에서 주영

이 긴장하는 숨소리가 들렸다.

"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어제는 아무 일도 없었니? "

" ...... 있었어. "

" 어떤 일인데? "

" 그건... "

" 아! 내 정신 좀 봐. 말하기 곤란하겠구나. 내가 갈까?

아니면 네가 올래? "

" 내가 갈게. 어디로 가면 돼? 그때 갔던 곳으로 나가면

되니? "

" 아니, 내가 사는 곳은 그 빌라가 아냐. L 호텔 맨 꼭대

기 층으로 와. "

" 응. 언제쯤 가면 돼? "

" 아무때나. 네가 원하는 시각에 오면 돼. 하지만 될 수

있으면 빨리 와. 널 보고 싶어. "

" 응... "

고분고분하게 대답하는 목소리가 애틋하게 들렸다. 분명

히 주영은 남편과 각 방을 썼을 것이다. 여비서와 펠라티오

를 즐긴 남편은 주영을 옭아매었던 장본인이었다. 그런 남

자와 섹스를 즐기고 싶을 정도로 주영은 뻔뻔한 여자가 못

되었다.

' 진희라면 태연하게 다리를 벌렸을 테지. '

비아냥거리며 미선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간단한 아침

식사가 호텔 주방장의 멋들어진 솜씨로 차려져 있었다. 미

선은 눈으로 신문을 읽고 귀로는 아침 뉴스를 들으며 시간

을 때웠다.

호텔 지배인이 깍듯이 머리를 조아리며 들어와서 침실을

정돈할 때 그녀는 다시 발코니로 나가 바깥 풍경을 감상했

다. 그녀가 평소에도 알몸으로 지낸다는 것에 지배인은 익

숙했고, 그녀의 침실만큼은 손수 정리 정돈 해주길 희망했

었다.

그녀가 한강변에 위치한 L 호텔을 사들였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격렬하게 반대했었다. 대기업의 총수인 그녀의 아

버지는 저명한 인사답게 남들의 시선을 지나치리만큼 의식

하고 있었다. 인기 여배우와의 염문설을 뿌리다 그 여배우

가 임신을 하자 지방의 별장에 숨길 정도로 매스컴을 두려

워했었다. 그리고 여배우의 몸에서 미선이 태어났다.

" 태생이 천박한 건 어쩔 수 없구나. 이게 무슨 짓이냐.

아버지 얼굴에 먹칠을 할 셈이냐. "

아버지는 그녀의 존재 자체를 못마땅해했다. 그녀가 두

남자와 질펀한 섹스를 즐기고 있을 때, 그녀의 아버지가 불

시에 습격한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호적에 올라가 있진 못해도 난 엄연히 당신의 딸이에

요. 내가 아무리 당신을 증오해도 흐르고 있는 피까지 어쩌

진 못하니까요. 떠들썩하게 친자 확인 소송이라도 하길 바

라는 거예요? "

그녀의 아버지는 대꾸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에게 골칫덩

이였지만 영악했다. 미선은 씁쓸하게 웃으며 발코니에 몸을

반쯤은 걸쳐놓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 지배인. "

" 예. "

" 지금 로비에 내려가서 저 초록색 쟈켓을 입은 여자 분

을 정중히 안내해줘요. "

" 예. 알겠습니다. "

환갑을 맞이하는 나이인데도 지배인은 얼굴하나 찡그리지

않고 머리를 조아리며 그녀의 지시에 따랐다. 쭈삣거리면서

주영이 그녀의 방문을 열 때, 미선은 말끔하게 옷을 차려

입고 한껏 웃으며 두 팔을 벌려 포옹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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