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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ep3. Awakening-- >1 (37/40)

< --Step3. Awakening-- >

 [그대가 나를 깨우지 않기를 그토록 기원했건만. 결국 나를 찾았군. 안타까운 일이야. 죽을 때 까지 나를 깨우지 않았다면 그냥 그렇게 날 사용해가면서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제는 다르네. 나를 깨웠기에 그대는 이제 책임을 져야만 한다네. 날 사용할 때마다 말일세. 그 이유는 어렵지 않네. 나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할 때는 자네가 나를 사용해도 그 사용에는 자네의 의지가 없어. 그렇기에 그대는 인과의 법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네. 하지만 지금은 달라. 나의 존재에 대해 알아차렸기 때문에 이제는 나를 사용함에 있어 자네의 의지가 들어가는 것이지. 그대가 인과의 강물 속에 발을 담근 것이야. 나를 사용한 그 대가는 자네의 생명력일세. 나도 자네의 생명력을 뺏기는 싫지만 나를 만드신 어느 절대적인 존재의 의도가 그러하니 낸들 어찌하겠네. 하아. 반드시 날 사용하기 전에 주의하게나. 처음에는 아주 작은 양의 생명력만이 사라질 테지만 많이 사용하게 된다면 금방 자네의 생명력은 바닥이 되고 말테니 말이야. 생명력이 다 사라진다면? 말 안 해도 알 수 있을 테지. 아. 내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 배려는 해 주지. 자네 스스로에게 나를 사용하는 것에는 생명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말이야. 너무 고마워하지는 말게나.] - - - 모든 것을 알아버린 후에. 나는 극도의 허무감에 빠져버렸다. 미진이 누나. 그리고 지혜가 내게 보여주었던 그 사랑이. 그리고 그 인연이 모두 이 작은 방울 하나로 인해 41/44 41

초래된 것이었다니. 난 손에 들려있는 방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연의 출발이었다. 신(God)이라 불려야 마땅할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만들어 낸 신물. 방울의 주인이 된다면 그 자는 기본적으로 주위사람들의 호감을 얻게 된다. 물론 방울소리를 들은 사람에 한정해서지만. 그 호감의 정도는 약하지만 그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약간의 호감은 먹고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거기다가 방울은 자신의 소리를 들은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안정을 안겨주고, 집중력 등 정신적인 능력을 일시적으로 상승시키는 효과도 준다. 하지만 방울은 그보다도 더한 능력이 있었다. 바로 정신감응. 자신이 원하는 존재와의 정신을 감응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정신적 방향을 바꾸는 능력. 바로 이것이 방울의 가장 중요한 능력이었다. 이제는 방울의 능력을 알았으니 난 내가 유리한 방향으로 이 방울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심정으로는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뻔 했다는 것이다. 내가 방울의 능력을 몰랐을 때에는 나는 그냥 방울을 흔들며 그 방울이 가져다주는 행운에 기뻐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나는 이제 방울을 사용하면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그것은 나의 생명이다. 얼마의 생명력을 강탈당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방울의 경고를 따르자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빠져나가는 생명력의 양은 점점 늘어날 거라는 것? 즉 빨리 죽기 싫으면 방울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결론이었

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보다 나는 지금 나를 감싸고 있던 인연이 이 방울로 인해 조작된 거라는 것에서 너무나도 큰 허무감을 느꼈다. 최미진, 한지혜. 이 아름다운 두 여성. 최근에 나를 찾아온 소중한 인연들. 그런데 그 둘은 정말 나를 좋아했다기보다는 방울의 능력으로 인해 나에게 빠져버린 것이었다. 지금에 와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미진이 누나와 지혜와 인연을 맺기 전에 내 손에는 항상 방울이 들려있었다. 하아. 그렇구나.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은 극도의 허무감이 맞을 것이다. 

"하아."

 절로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언제까지 허무감에 빠져있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는 내게 주어진 이 방울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방울에 대해서 생각이나 정리를 하자.

방울은 의식세계에서 내게 분명히 말했었다. 스스로에게 쓰는 거에는 대가를 받지 않겠다고. 그렇다면 적어도 난 방울소리가 가져다주는 안정감, 그리고 여러 정신적 능력의 상승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만 해도 어딘가. 적어도 난 남들보다 더 뛰어난 집중력과 정신력으로 모든 일에 임할 수 있다는 말이 되는 거니까. 공부를 하든, 운동을 하든, 무엇을 하든, 남들보다 한발자국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정신감응은 정말 중요할 때만 사용하면 될 터. 

"그래. 그러면 돼."

 그 날부터 나의 변화는 시작되었다. - - - 

"그래? 그래서 넌 어떻게 했는데?"

"당연히 싫다고 했지. 나한테 민수 너 하나 뿐인 거 알잖아."

"그러냐?"

"응. 잘했지?"

"그래. 잘 했다."

 나는 내게 애교를 부리는 지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다. 2학기도 어느새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내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뭔지 가르쳐 달라고? 뭐 별거 있으랴? 다 이 놈 때문이지. 나는 손 안에 있는 방울을 바라보았다. 

변화의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래. 솔직히 말해서 난 당당하게 양다리 중이다. 대놓고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말이다. 두 달 전쯤에 있었던 미진이 누나와 지혜와 나 사이의 헤프닝. 하지만 그건 아주 깨끗하게 해결됐다. 방울에 대해서 알게 된 내가 그 당시 느끼는 허무감을 잔뜩 담아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식으로 나오니까 잔뜩 화가 나 있던 미진이 누나마저도 내 양다리를 인정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래. 그 때 생각이 나네. 누나한테서 연락이 오고 누나와 내가 만났을 때 누나의 어떻게 할 거야? 라는 물음에 내가 했던 말. 뭘 어떻게 해요. 헤어질까요? 뭐하려고 어색하게 이러고 있어요. 그냥 깔끔하게 끝낼까요? 그런데 내가 이런 말을 하니까 미진이 누나의 반응이 더 가관이었다. 맨 처음에는 어이가 없는 듯 나를 쳐다보더니 내가 그냥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니까. 도리어 나한테 매달리는 모습이라니. 날 너무 사랑한다면서 죽어도 헤어질 수 없다면서. 애원하면서. 그 때 미진이 누나한테 소맷자락이 잡혔을 때 내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이 뭔지 아냐? 참 모든 게 쉽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 생각을 해봐라. 세상에 조선시대 양반도 아니고 지금 대놓고 양다리를 걸치는 꼴이라니. 

"내리자. 데려다 줄 테니까."

"안.. 그래도 되는데."

"됐어. 운동하는 셈 치고 걷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

 나는 지혜와 함께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걸었다. 길가에는 가로등이 어두운 거리를 그나마 밝게 비추고 있었다. 

"그럼. 잘 들어가."

"알았어. 민수야. 너도 잘 가."

"그래. 빨리 들어가."

 쪼옥. 내 입에 살포시 뽀뽀를 하고 부끄러운 듯 돌아서 들어가는 지혜. 참. 그 모습도 지금 나한테는 웃기게 보인다. 그녀는 지금 정말 자신이 나를 좋아하고 있다. 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하지만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나한테는 이런 것들에 대한 설레임이 없어져 버렸으니. 세상사는 게 참 재미없어졌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방울소리를 들으며. 밤길을 걷는다. 남들이 보면 이 광경이 어느 미친놈이 걷는 거처럼 보일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제는 겨울이 다된 지라 차가운 밤공기를 느끼며 나는 원룸으로 돌아갔다. 원룸에 도착하고 보니. 원룸 앞에 미진이 누나가 서 있었다. 

"왔어?"

"미진이 누나."

"조금 늦었네. 9시에 끝나는 거 아니야?"

 누나의 말에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보았다. 10시가 지나간 시각. 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구나.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지혜. 데려다 주고 온다고요. 그러다보니 늦었네요."

 내가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자 미진이 누나가 입술을 꽉 깨무는 것이 보였다. 흥. 기분 많이 상한 모양이다. 허. 나는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뭔가 진짜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나가 어쩌다가 나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를 다 아는 사람이 아닌가? 요 조그만 방울이 저렇게도 인간의 마음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

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마음 상했어요? 라고 물어보았다. 

"그럼 내가 그냥 실실 웃으면서 그렇구나. 하겠니? 당연히 기분 나쁘지. 기분만 나쁘겠니? 아주 비참해. 정말..."

 참.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살짝 잡아주었다. 

"추우니까 들어가요. 일단."

 끄덕. 울컥했던 미진이 누나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나는 원룸 문을 열고 들어갔다. 미진이 누나가 내 뒤를 쫄쫄 쫓아 원룸으로 따라 들어왔다. 어두컴컴한 방에 불을 켜고. 나는 가방을 던져놓았다. 그러면서 침대에 있는 전기장판의 전원을 켰다. 

"여기 올라가 있어요. 곧 따뜻해질 거에요. 나 좀 씻고 올게요."

 사실 다른 난방은 하지도 못한 채 추운 겨울을 전기장판 하나로 버티는 나였다. 그래도 요 놈 하나라도 있는 게 얼마나 따뜻한지 모른다. 재빠르게 들어가 나는 폼 클렌징을 이용해서 세안을 하고 양치질을 하고 발만 씻고 나왔다. 솔직히 말해서 요즘은 샤워하는 것도 고역이다. 아침에 한 번 샤워를 하긴 하는데 저녁에까지 샤워하기에는 

날이 너무 추웠다. 하긴 샤워를 한 번만 하면 되지. 여름도 아닌데. 

"여긴 되게 아득해."

"허. 좋은 말로는 아득한 거고. 나쁜 말로는 좁은 거죠. 뭐."

"치. 비꼬지 마. 가뜩이나 나 우울한데."

"그리고 그 우울한 원인은 나일테고."

"잘 아네."

 잘 알다마다. 누나 인생에서 지금 피곤한 원인이 나 말고 뭐가 있겠습니까. 뭐 때문에 사랑을 하건 간에 일단 사랑하는 남친이 대놓고 다른 여자가 있다는데. 그럼에도 매달리는 여자의 심정이란. 감히 나 따위가 상상할 수 있는 건 아닐 테죠. 나는 앉아서 스킨과 로션을 얼굴에 간단히 펴바르고 수분크림까지 살짝 펼쳐서 얼굴에 발랐다. 겨울이라 수분크림은 정말 필수다. 가뜩이나 지방에 계시는 부모님께서 보내주는 생활비도 빡빡한데 이런 화장품에 까지 돈이 나가니. 난 정말 가난한 놈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학교에서 두 끼를 먹으니까 다행이지. 아 물론 학교급식은 아버지 통장에서 자동이체된다. 그러니 식비의 3분의 2는 절약이 되는 셈이다. 41/44 

"뭐 마실래요?"

"뭐 있는데?"

"음. 뭐. 따뜻한 보리차 정도?"

"좋아. 보리차."

 나는 화장품을 다 바르고는 수면양말을 신고 일어났다. 요 수면양말 하나가 얼마나 보온효과가 높은지는 신어본 사람들만 알 것이다. 요것도 난방비를 낮출 수 있는 요령 중에 하나니까 꼭 기억하자. 나는 보리차를 끓여 놓은 주전자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불을 켜고 다시 물을 따뜻하게 하는 중이었다. 정수기를 넣을 형편이 안 되니. 물은 항상 수돗물을 끓여먹는다. 그냥 끓여먹으면 맛없으니 보리차를 사서 같이 끓이는 거고. 

"따뜻해요?"

"따뜻하네."

"이불 폭 덮고 있어요. 그럼 더 따뜻할 테니까."

"겨울에는 많이 춥겠다. 앞으로 더 추워질 텐데."

"서울에 올라와 살겠다고 한 건 저니까. 어쩔 수 없죠. 그리고 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아요."

"내.. 오피스텔로 오는 건 어때?"

"네?"

"아. 아니. 그러니까. 같이 살면 뭐.. 너도 편할 거고. 돈도 덜 나갈 거고. 그러니까."

 내 반문에 횡설수설하는 누나. 동거라. 생각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동거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물론 누나같은 미녀랑 같이 살면 좋겠지. 그래도 난 아직까지는 그냥 혼자 사는 게 훨씬 좋을 것 같다. 내가 뭐 그렇다고 여자에 궁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아뇨. 누나. 마음은 고마운데 아직까지 제 나이에 동거는 좀 그런 거 같아요. 뭐 동거 안 한다고 누나랑 저랑 못 만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전 지혜도 있잖아요."

"둘이 있을 때는 그 애 이야기는 안 하면 안 되니?"

"아. 미안해요. 하여튼 동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내 확고한 태도에 미진이 누나는 그래. 너가 그렇다면. 이라면서 풀이 죽어 말했다. 나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주전자 안의 보리차가 끓는 것을 보고는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보리차를 두 잔 머그컵에 부었다. 그리고 나는 보리차를 들고 누나가 누워있는 내 침대로 걸어갔다.

============================ 작품 후기 ============================뉴 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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