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ep2. Jealousy-- >
며칠을 아무런 의욕도 없이 시간을 보냈다. 친구 놈들이 무슨 일 있냐면서 걱정해왔지만 나는 아무 일 없어. 그냥 피곤해서 그래. 라며 그냥 얼버무렸다. 학교에서 지혜는 이전처럼 내 옆에 오지를 못했다. 지난 며칠은 함께 버스를 타고 돌아가지도 않았다. 내가. 잠시만 그러자고 그녀에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힘도 없이 지냈다. 미진이 누나한테는 그 사이 몇 번 더 전화를 해봤지만 누나는 내 전화를 받질 않았다.
"그럼. 잘 쉬고. 내일 보자."
"어. 그래. 니도 잘 가라."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힘 내고. 요새 너 보면 민수 아닌 거 같아 좀 그렇다."
"어. 걱정해 줘서 고맙다."
항상 장난을 쳐오던 현민이 놈도 요 근래는 나한테 장난을 쳐오지 않고 있었다. 학교 시간이 다 끝나고 나는 가방을 어깨에 메고 일어났다. 지혜는 오늘도 쭈뼛쭈뼛 내게 다가왔다. 아마. 우리 둘 관계에서 다른 애들도 뭔가 있다는 것을 눈치는 챘을 것이다. 그게 정확히 어떤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지혜를 바라보았다. 정말 다행히도 그40/44 40
녀의 왼 뺨의 멍은 이제 거의 사라져 유심히 보지 않으면 티도 안 날 정도로 없어져 있었다. 여전히 왼쪽 입술 끝자락에는 살짝 튼 흔적이 있었지만. 사실 내 이마도 꿰맸다. 찢어졌더라고. 한 일곱 바늘정도? 뭐 크게 흉이 지지는 않겠지만.
"오늘도.. 따로 가는 거야?"
"그래. 조금만 더 그러자. 아직까지 좀 그렇네. 입술 그거. 약 바르고."
"알았어. 그래. 그럼 내일 보자."
"어. 잘 가라."
지혜를 보내고. 나는 터덜터덜 교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나는 미진이 누나를 볼 수 있었다. 그녀의 흰 색 승용차를 교문 앞에 세워놓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그녀. 지나가는 학생들이 뭔가 포스 넘쳐 보이는 커리어 우먼의 모습에 미진이 누나를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먼저 나갔던 지혜도 누나를 보지 않았을까?
"누나. 왔어요?"
"일단 타."
"알.. 겠어요."
나는 군말하지 않고 그녀의 차에 올랐다. 내가 차에 올라타자 미진이 누나도 차에 올랐다. 서서히 출발하는 자동차. 어디를 가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차안 공기는 무겁고 또 무거웠다.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히. 누나와 난 함께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차마. 나도 그녀에게 뭐라 말을 할 형편이 아니었고. 누나는 처음부터 차가운 인상으로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있었다. 차를 한참을 몰고 간 그녀가 도착한 곳은 한적한 곳의 카페였다. 조금은 조용한 분위기의 카페. 그 곳에 차를 세우고 내리는 누나를 따라서 나는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은 어두운 조명에 분위기 있는 카페랄까? 하지만 그런 카페 분위기를 즐기기에는 상황이 말이 아니었다. 누나가 내게 말도 걸지 않은 채 커피 두 잔을 시켰다. 커피가 나오자마자 홀짝 커피를 한 잔 마신 누나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마는. 어쩌다 그런 거야?"
이 와중에 내 걱정을 하는 누나. 하아.
"벽에다 받았어요."
"벽에?"
"네. 제가 너무 한심하고 화나서요. 벽에다 받아버렸죠. 잘 다쳤죠?"
조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내가 말했다.
"아무 말이나 해봐."
"네?"
"아무 변명이나 해보라고. 그때 그 일 말이야."
변명이라. 변명이라. 허. 무슨 변명을 한단 말인가. 이미. 지혜랑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는데. 나는 누나의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 변명이나 해보라니까. 응?"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미진이 누나가 날 재촉했다.
"변..... 명... 할게 없네요."
"뭐어?"
"누나가.. 보신 대로에요. 제가 누나 속이고.. 그 애랑 데이트했던 게 맞아요."
내 말을 들은 미진이 누나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녀의 고운 두 눈에는 눈물방울이 아롱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누나한테는 정말 미안해요. 저... 누나한테 할 말이 있어요."
"그.. 만해. 듣고 싶지 않으니까."
"아뇨. 누나. 사실대로 말해야 될 거 같아요."
"그만하라니까. 응? 그만해."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애처로웠다. 하지만 난 멈출 생각이 없었다. 만약 내가 이 말을 해서. 다시는 누나를 볼 수 없게 될 지라고. 그리고 누나가 큰 상처를 입게 될 지라도. 더 이상. 속이고 숨기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나. 미안해요. 나 사실. 걔.. 랑. 잤어요."
"나.. 쁜... 새끼."
내 폭탄발언에 미진이 누나는 너무 화가 나서 오히려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는 듯 했다. 손까지 조금씩 떨리는 그녀. 난 그 모습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시발. 정말 이 무슨 상황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복이 넘친다고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진짜... 솔직한 내 심정이 어떤지 아냐? 다 놓고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다. 개 찌질하지 않냐? 남자로서 책임감도 하나도 없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나도 이런 내가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솔직히 어떻게 해야될 지도 모르겠다. 먼저 저질러 놓고 뒤늦게 후회하는 꼴이라니. 내 자신이 이렇게도 한심하고 또 한심한 놈이라는 거에 나는 놀라고 있다.
"좋았어? 응? 그 년이랑 자니까 좋았어?"
유구무언. 입이 열 개라도 지금 난 할 말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 수 밖에. 더 이상 내가 할 말이 뭐가 있겠는가.
"왜? 아무 말도 안 해? 응? 아무 말이나 해 봐. 응? 뭐가 그렇게 당당한데? 뭐가 그렇
게 당당해서 그 년이랑 잤다고 그렇게 당당하게 고백하는 건데? 응? 제발... 흑흑. 무슨 변명이라도 해 보란 말이야. 그 년이 꼬셨다. 넌 싫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변명이라도 해 보라고. 엉엉엉."
조용하던 카페에서. 누나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의 시선이 우리테이블로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이 수군수군 거리는 소리도 들리는 듯 하고 말이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누나와 나. 둘 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누나는 흐느끼고. 나는 고개를 쳐박고 있은 지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누나가 붉은 눈을 한 채로. 말했다.
"나가자. 일단 나가."
누나는 그렇게 말을 하고 먼저 일어났다. 카운터에 가서 계을 하고 카페를 나가는 누나의 뒤를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따라갔다. 그녀가 차에 오르고. 나 역시 차에 오르고. 그렇게 출발한 그녀의 자동차. 그녀와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누나는 내가 살고 있는 원룸 앞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내가 그녀의 차에서 내리려고 할 때. 누나는 내게 말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네?"
"지금 내가 어떤 마음인지 넌 절대 모를 거야. 너무 비참해. 내가 너무 비참해. 근데 시.. 발. 왜 내 입에서 욕까지 나오게 하는 거야. 응?"
"미안해요."
"그 년이랑 잤다고 할 때. 당연히 박차고 나와야 되는데. 너한테 욕이라도 퍼붓고 물이라도 시원하게 뿌리고 나와야 되는데. 그게 안 돼. 그게."
그녀의 원통한 마음이 담긴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하아.
"그래서. 넌 어떻게 할 생각인데?"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될지."
"... 걔랑 헤어지겠다. 누나. 용서해 달라. 뭐 이런 말은 안 하는 구나."
"미안해요."
"미안하다는 말 좀 그만해. 짜증나니까. 나 갈 거야. 내가 먼저 너한테 연락하기 전까지는 나한테 연락도 하지 말고. 집에 찾아오지도 마."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내 앞에서 떠나갔다. 난 잠시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발걸음을 옮겨 원룸으로 들어갔다. 가방을 던져 놓고. 씻지도 않은 채 나는 교복을 입은 그대로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런 내 손에. 방울이 들려있었다. 지금 내가 하소연할 수 있는 대상이 이 놈 밖에 없다는 게 참 어이없지만. 말이다. 딸랑. 딸랑. 딸랑.
"야. 어쩌면 좋냐? 크크. 지금 내가 뭐하고 있는 건지."
캐스트 어웨이에 주인공이 이해가 되는 시점이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털어놓으니 기분은 좋다.
"크크.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건지 모르겠다. 솔직히 지금 이 상황이 말이 되냐? 내가 뭐가 잘났다고 갑자기 여자들이. 그것도 어디 하나 부족한 거 없는 여자 둘이서. 이렇게 날 괴롭히는지. 너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냐?"
방울아. 이해가 되니? 크크. 딸랑. 딸랑. 딸랑. 내가 힘을 주어 흔드는 방울이지만 이 방울소리가 왠지 나를 위로해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방울소리를 듣고 있는데 점점 나른해진다.
"남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라고 고함을 지를 수도 있겠지만 막상 이 상황에 있으니까 너무 힘드네. 어디서부터 시작된 거였을까? 어쩌다가 부족할 거 없는 여자들이 나한테 꼬인 건지."
내가 그 날 잠이 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방울에다 대고 했던 말이었다. 그리고... - - -
"그랬던 거구나. 그랬던 거였어. 니 힘이었어. 방울."
나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각성은 화끈하게. 그냥 순식간에. 크크맞습니다. 제가 멘붕이 되어 버렸음. 여하튼 일단 2장. 그리고 1부 여기서 끝. 그리고 2부 부터는 주인공이 상당히. cool해집니다. 하아.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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